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 五工 🎭 酕冬筆

<h3><h3 style="text-align: center;"><b>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b></h3><h3 style="text-align: center;">모동필︱酕冬筆</h3><h3><br></h3><h3>보물처럼 깊숙이 숨겨두었던 꼬깃꼬깃 구겨진 돈을 꺼내면서 숫접게 말을 건넨다.</h3><h3><br></h3><h3>“우리 손주를 잘 부탁드립니다.”</h3><h3><br></h3><h3>할머니의 거친 손에서 건네받은 건 백원짜리 두 장, 200원이다. 기어코 받지 않겠다고 되돌려드렸지만 기어이 쥐여 주신다. 그리고 할머님의 떨리듯 서운함이 담긴 음성은 귀를 아프게 때렸다.</h3><h3><br></h3><h3>“적어서 안 받슴까?”</h3><h3><br></h3><h3>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과 우리 교육 현장이 왜 이 모양새로 전락됐는지 마음만 서글퍼 난다.</h3><h3><br></h3><h3>할머니를 잘 설득하여 돌려보내셨지만 마음은 우중충하기만 하다.</h3><h3>여러 모로 보아 부유한 집안은 아닌데, 할머니가 촌지를 건넨 까닭은 무엇일가? 그것도 사교육 현장에서… 그렇다면 공교육 현장의 “거래”도 류추하여 짐작이 가능하지 않을 가?</h3><h3><br></h3><h3>안 그래도 기울어져 가고 있는 민족교육현장에서 근절돼야 할 페습들이 응당한 관례로 여겨지는 원인은 무엇일가?</h3><h3><br></h3><h3>학부모로부터 은밀하게 받은 액수가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환산되는 “경영철학”이 우리 교육현장에서 일반화 되였다고들 한다.</h3><h3><br></h3><h3>주는 부모님과 받는 선생님,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동시에 모두의 잘못이기도 하다.</h3><h3><br></h3><h3>사회적으로 만연돼 보편현상이 되여 버렸는데, 안 주기도 안 받기도 서로에게 예의는 아니다. 단지 “대세”와 “사조”에 편승하여 이를 거역하지 않았을 뿐이므로 “죄”는 아니다. 그러나 교육환경을 병들게 하는 옴같은 존재로서 주는 이와 받는 자, 모두가 대역죄를 짓는 일이다.</h3><h3>모든 선생님과 학부모가 일괄적으로 똑같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꾸라지 한 마리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 것은 분명하다.</h3><h3><br></h3><h3>할머니의 시름에 찬 눈동자와 걱정으로 휘여진 뒤모습을 바라보면서 스승의 참된 덕목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꺼림칙함으로 흐려진 마음은 설음이 차올라 울컥했다.</h3><h3><br></h3><h3>“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h3><h3><br></h3><h3>빈손으로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h3><h3><br></h3><h3>만일 “부당한 거래”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상품”으로 전락 돼버린다면 장성한 아이들은 어떤 인격체가 되여 있을가?</h3><h3><br></h3><h3>명절을 앞둔 어느 날, 유치원으로 가는 딸애의 가방 속 책 사이사이에 2천원을 끼워 넣어 보냈더니 돈은 무사히 “증발”되고 아이는 가방이 열린 채로 유치원을 나서더라는 친구의 사연, 그리고 친구가 건넨 한마디.</h3><h3><br></h3><h3>“받더라도, 받은 돈 액수로 아이의 가치를 가늠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줬으면 좋겠더라.”</h3><h3><br></h3><h3>그리고 지인 한분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다사스러운 소학교 선생님으로 취직했다. 그가 넌지시 건넨 한마디.</h3><h3><br></h3><h3>“그래도 소학교가 먹을 떡이 크답니다. 물론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합니다만…”</h3><h3><br></h3><h3>“아이들이 힘차게 걸어가면 모든 것들이 한마음 되여 길을 열어”(윤동재 시, &lt;아이들이 힘차게 걸어가면&gt;)주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이 추락해도 교육과 스승의 품위는 절대 실추되지 말아야 한다.</h3><h3><br></h3><h3>“촌지현상”은 주는 이와 받는 자, 양자가 자신의 “리익”을 보장받기 위한 행위이다. 때문에 페풍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리익을 동시에 만족 시킬 수 있는 구조적 혁신과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식 전환도 가져와야만 한다. 동시에 당국에서 엄한 처벌 제도 등 여러 조치를 취하고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h3><h3><br></h3><h3>사회 일반에서도 교육현장의 병페를 적극 고발하고 해결책을 활발하게 공론화하여 논의하면서 개선을 가져와야 한다.</h3><h3><br></h3><h3>“…진실로 교원의 얼굴과 자세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학교가 된다.”(김호웅 칼럼,&lt;교원의 얼굴과 자세&gt;)</h3><h3><br></h3><h3>이링공뎌링공하야 참된 덕목과 교양을 갖춘 “큰 스승”님들의 량지(良知)와 사명감으로 충만 된 교정에서만이 우리의 빛나는 미래를 노래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h3><h3><br></h3><h3>“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h3><h3>“우리 미래를 잘 부탁드립니다!”</h3><h3><br></h3><h3 style="text-align: right;">2017. 07. 18</h3></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