青山啊,我怀念你! 山川啊,我爱你!!!

雁南飞Y

<h3>그젯날 그 넓은 품에 포근히 감싸안고</h3><h3>정답게 다독여주던 청산! </h3><h3>따뜻이 보듬어주던 산천 !</h3><h3>오늘도 그 청산을 누비던 때가 사무치게 그립고 </h3><h3>그 산천에서 정을 나누던 친구들이 그립습니다.</h3> <h3><br></h3><h3> 청산! 그 이름만 들어도 격동되고 </h3><h3> 산천! 그 이름만 들어도 울렁입니다.</h3><h3><br></h3><h3> ㅡ잊을수 없는 등산의 나날을 추억하여ㅡ</h3> <p class="ql-block"> 긴긴 세월 책상머리에 마주앉아 책과 씨름하면서 저의 심신은 몹시 지쳐있었습니다.</p> <h3> 지인들의 권고로 주등산협회를 따라 산을 누비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로부터 7년이라는 세월 매 주말마다 주등산협회를 따라 산을 누비며 대자연의 품에 안겨 심신을 추스렸습니다.</h3> <h3> 등산 첫날 주등산협회의 최룡철주임과 박부장의 인솔하에 주정협 황삭주석님과 조윤철회장님을 모시고 로투구 도끼봉에 올랐습니다.</h3> <h3> 첫 등산이라 힘들었지만 여러 대원들의 응원하에 무사히 등산을 마칠수 있었습니다.</h3><h3> ㅡ도끼봉을 멀리 뒤에 두고 ㅡ</h3> <h3><font color="#010101"> 우린 매 주말마다 산으로 향했습니다.</font></h3> <h3> 오늘은 해란강따라 비암산남쪽기슭으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h3> <h3> 산기슭에서 주정협 황삭주석님을 모시고 사진을 한장 찰칵! 했습니다.</h3> <h3>  녀성대원들끼리 또 한장 찰칵! 했습니다.</h3> <h3> 비암산꼭대기 발사대앞에서 집체로 또 한장 찰칵! 했습니다. 즐거운 하루였습니다.</h3> <h3> 또 기다리던 주말이 돌아왔습니다. 아직 산천이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봄 우린 씩씩한 걸음으로 모아산으로 향했습니다.</h3> <h3> 모아산정상에 올라 야~호~!하고 소리 높이 웨치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것 같았습니다.</h3> <h3> 오늘은 뾰족산을 톺아올랐습니다. 가파른 돌산을 톺아오르는 우리 대원들 칼산 불바다에라도 뛰여들 기세입니다 </h3> <h3> 꽃망울이 부풀무렵 우린 두번째로 뽀족산에 올랐습니다. 대자연속에 몸을 담그고있노라니 내 가슴도 꽃망울과 같이 부풀어올랐습니다. </h3><h3>주: 그때 우린 대자연에 대한 보호의식이 모호한탓에 산에 가면 들꽃을 꺾어갖고 집에 와 병사리에 꽂아놓고 감상했죠. 량해를 먼저 구합니다.</h3> <h3> 어느덧 봄은 다가와 내 고향 산기슭 가는 곳마다에는 버들개지 움트고 살구꽃이 만발했습니다.</h3> <h3> 오뚜기꽃도 활짝 피였습니다.</h3> <h3> 그 향기에 취해 오래오래 그속에 머물고싶었던 저입니다.</h3><div> ㅡ(소하룡에서)</div> <h3> 해마다 봄이면 내 고향의 산과 들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h3> <h3> 그래서 진달래고향으로 불리우는 내 고향!</h3> <h3> 아무리 바쁜 등산길일지라도 그저 지나칠수 없는 그 꽃ㅡ진달래! 흐드러지게 활짝 피여있는 그속에서 나도 함께 활짝 피고싶었습니다.</h3> <p class="ql-block"> 어서 와 보세요. 저기 저 멀리까지 산과 들이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어있잖아요?</p> <h3> 도심을 벗어나 대자연속에 와있노라니 내 고향산천의 봄이 이토록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되였습니다.</h3> <h3>  아름다운 내 고향 연변의 산천이여!<br></h3><h3> 봄을 맞아 그대 품에 안겨 </h3><h3> 아름다운 진달래 흔상하려니 </h3><h3> 이내 마음 한없이 즐겁기만 합니다.</h3> <h3> 록음이 짙어가는 어느 주말, 우린 또다시 모아산으로 향했습니다.</h3><h3>ㅡ모아산이여, 안녕! </h3><h3>ㅡ맨 오른쪽 분이 어느 병원의 김의사입니다. 씩씩하죠? 뒤에서 이분의 이야기 나옵니다.</h3> <h3> 산정상에 오르니 이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 만세, 만세, 만만세를 목청껏 웨치고 또 웨칩니다.😁😁😁</h3> <h3> 멀리 펼쳐진 세전이벌을 뒤에 두고 우린 등산력사에 또 한페지를 남겼습니다.</h3><h3>ㅡ주등산협회 대륙산악회</h3> <h3> 내 고향의 숲에서 싱그러운 풀내음에 취해봅니다.<br></h3> <h3> 모아산에서 내려오는 도중 우린 또 한번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h3> <h3>  오늘은 구룡 어느 무명산에 올랐습니다.</h3> <h3> 무명산에서 미라, 옥선이와 함께 ...</h3> <h3> 이번 주말에는 일송정을 방문했습니다.</h3><h3> ㅡ주등산협회 대륙산악회 </h3> <h3>  雁鸣闻三国,虎啸惊三疆,</h3><h3> 花香飘三邻,笑语传三邦。</h3><h3>ㅡ훈춘 금삼각을 찾은 주등산구락부 회원들.</h3> <h3>一眼望三国,一鸡鸣三国。</h3><h3>ㅡ이날 우리는 신비의 땅 방천에서 기념사진을 남겼습니다.</h3> <h3> 한눈으로 삼국을 볼수 있는 동방의 첫동네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노라니 감개가 참으로 무량했습니다 </h3> <h3> 사초봉련꽃늪에서 주등산협회의 박부장, 최주임, 박대장과 함께 </h3> <h3> 대자연의 신비함에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습니다. </h3> <h3> 우리는 오늘 평봉산에 올랐습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우에 오구구 모여앉은 우리 대원들 어때요? 담대하죠?😁😁😁</h3> <p class="ql-block">여름철 청산리 등산길에서.</p><p class="ql-block"> ㅡ이날 우리 대륙산악회는 룡정산악회와 련합하여 청산리로 등산을 갔습니다. 차가 산아래에 도착하자 근 40여명 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일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얼마 안돼 공교롭게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하는것이였습니다. 산이 원래 험하고 가파로운데다 비까지 쏟아지니 미끄러워 도무지 곧바로 올리 걸을수 없어 사선으로 돌면서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걷고 걸어도 산정상에 다닫지 못하는겁니다. 대장이 대오를 멈춰세우고 지남침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웬걸 몇시간 걷고 걸은 결과가 결국은 제자리에 돌아왔다지 뭡니까? 비는 계속 억수로 쏟아져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사람들은 지칠대로 지쳤고 날도 저물어가니 어쩔수없이 산을 내릴것을 명령하더군요.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원 넷이 보이지 않는거예요. 이 깊은 산중에서 사람이 잃어졌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 세월엔 핸드폰신호가 지금처럼 좋지 않은데다 산중이라 련락이 근본 될수가 없었죠. 전체 대원들을 차에서 기다리라 하고 몇몇 책임자분들이 비속을 헤가르면서 다시 산속으로 찾아 떠나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숨 죽이고 소식 기다리는데 저 멀리에서 사람자취소리가 들려오면서 일행모두가 무사히 다가오는거였어요. 모두 안도의 숨 내쉬는 순간 어느분인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라구요. 얼마나 가슴 졸였으면 그랬겠어요. 청산리 하면 홍범도장군이 한차례 왜놈들과의 격전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둔 대첩전적지 아니예요? 몹시 험한 산세를 리용해 왜놈들을 골탕먹였던 깊은 산중이라 거기에 들어서면 맑게 개인 대낯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동서남북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넘어져 가로놓인 썩박나무도 너무도 실해 가로타고 건너지 못하고 에둘러 지나야 하는 깊은 산속입니다. 곰이 내려와 소를 잡아먹었다는 전설이 있는 심심산중에서, 거기에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날이 저물어가는 그 깊은 산중에서 사람이 잃어졌으니 어쨌겠어요?. 지금도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납니다.</p> <h3> 렬사비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맹세하는 우리 산악회 대원들.</h3> <h3><font color="#010101">  저희 등산대 대원의 남편 부식작가님의 문단등단과 새 작품발표를 축하하여.</font></h3> <h3> 무더운 여름의 또 어느 주말, 등산을 마치고 천보산 발사대건물앞마당에서</h3> <h3>즐거운 등산길에서</h3> <p class="ql-block"> 오늘점심은 "우리네 표"세치네탕으로 🖐🖐🖐</p><p class="ql-block"> ㅡ안전국 김국장님, 우리 산악회 김경남대장, 김성화부대장, 성보빌딩 최부장 외 우리 녀성대원들. 너무나도 즐거웠던 잊을수 없는 하루였습니다.</p> <p class="ql-block"> 등산휴식여가에 신선한 풀숲에서 꽃향기, 풀내음 맡으며.</p> <h3> 조잘거리며 흐르는 시내가에서 휴식의 한때를 즐기며.</h3> <p class="ql-block"> 군함산을 등산목적지로 가던 도중 화룡시 숭선향마을어구지에서.</p><p class="ql-block"> ㅡ저뒤에 산을 쪼개놓은듯한 그 어간으로 트인 길 보이죠? 저 길은 50년대 숭선마을 사원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삼태기를 메고 우공이 산을 옮기는 정신으로 산을 허물어서 낸 길이랍니다. 숭선마을은 앞으로는 두만강을 끼고 조선과 맞닿아있고 뒤로는 돌산에 둘러싸여있다보니 사람들은 내지로 나가려면 짐을 들고메고 걸어서 군함산을 에돌아가야 했답니다. 후손만대의 편리를 위하여 사원들은 자발적으로 일떠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가리지 않고 정으로 돌을 까고 그 돌을 한짐한짐씩 져나르면서 억세게 산을 깎아내렸답니다. 그 정신에 감동되여 산도 머리 숙이고 길을 내주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린 그저 무심히 지나갈수 없었습니다. 저 길을 사진에 담아 그 정신을 오래오래 기리고싶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사진에서 저 길을 볼 때마다 숭선마을사원들이 비바람속에서, 눈보라속에서 산을 깎아 저 길을 내던 그 모습 보는듯합니다.</p> <h3> 숭선세관마당에서</h3> <h3><font color="#010101">  숭선 두만강반에서 조선산을 배경으로 등산친구와 함께. </font></h3><h3><font color="#010101"> ㅡ군함산등산하러 갔던 어느날.</font></h3> <h3>  오늘은 병풍산에서.</h3> <h3> 병풍산상상봉에 올라서니 우중충한 뭇산들도 내 발밑에 엎드린듯.^^^👍👍👍</h3> <h3> 여름철 장백산등산시합에 참가하고저 장백산천지에 모인 우리 등산대 대원들</h3> <p class="ql-block"> 장백산폭포로 가는 길에서 한국손님과 함께.</p><p class="ql-block">ㅡ민족의 성산 장백산에서 우리의 민족복장을 입고 기념남기고싶어 그 바쁜 와중에도 한복을 바꿔입고 폭포로 올라가는데 그만 내려오던 한국손님들에게 붙잡히고말았죠. 중국땅에서 한복차림을 보니 너무나도 감개무량하다면서 함께 기념사진 찍자고요. </p> <h3> 한국에서 온 비구니들한테까지도 붙잡히고 말았지 뭐예요. </h3> <p class="ql-block"> 시간은 촉박한데 폭포에서의 기념사진은 포기할수 없고. 서둘러올라가 끝내 한장 찍었죠. 그러다나니 그만 하루등산 빼먹고 말았어요. 미안합니다. 😬😬😬😝😝😝 </p> <p class="ql-block"> 주등산협회 최룡철주임과 박준덕부장과 함께 장백산천지에서ㅡ </p><p class="ql-block">ㅡ 오늘 색이 거의 바래지는 이 사진 보노라니 그제날 함께 등산하던 나날들이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전 올리막을 오를라치면 가슴이 꺽 막히면서 숨이 차오르는 모병이 있더라구요. 전엔 저도 몰랐는데 등산다니면서 알았어요. 하여 대오뒤에 자꾸 떨어지면서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최주임은 앞에서 대오를 천천히 움직이게 하고 박부장은 맨뒤에서 저를 동무해 걸으면서 고무격려해주시더라구요. 너무도 미안해 등산 안다니려 하니 소박한 언어로 하시는 말씀: " 미안해할것 없습니다. 서로서로 돌보면서 챙겨주는것이 등산의 취지입니다." 그때 그 말씀 지금도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듯합니다. 나에게는 동생이래도 한참 아래 동생벌되는 두분이 나뿐아니라 중풍후유증으로 걸음이 몹시 불편한 어느 병원의 의사선생님까지도 도랑 건늘 때마다 훌쩍 거들어 건네주고 올리막 오를 때면 손잡아 이끌어주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히 떠오릅니다. 이렇게 몇년간의 끈질긴 등산끝에 김의사는 차츰 몸이 회복되여 나중에는 우리와 함께 랄라라를 부르며 아주아주 즐겁게 등산할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얘기 있었던 분) 김선생님, 지금도 유쾌히 잘 지내고계시죠? 박부장과는 며칠전 연변대학에 회의갔다가 우연히 만나 그동안 그립던 이야기 잠간이나마 반갑게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최주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계시는지요? 보고싶습니다.</p> <h3> 전주 등산시합에 참가한 우리 등산대 대원들.</h3> <p class="ql-block"> 연변의 금강산으로 불리우는 유수천 솔바위에서.</p><p class="ql-block"> ㅡ산을 정복한 사람들 모습 어때요? 한번 자세히 보세요. 그 하나하나의 당찬 모습 가관이죠? 그래서 산에 올라 찍은 사진 보면 미운 사람 없다 했어요. 하하, 김성호대장님께서 수고스레 높은 나무우에 올라가 내리 찍은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예술사진 탄생했지 뭐예요. 고마워요.</p> <h3><font color="#010101"> 푹신한 가을락엽 두툼히 깔고 앉으니 방금전 아스라한 바위꼭대기를 타고 기여나가던 일 언제 있었던듯 꿀맛점심 얼씨구!</font></h3> <p class="ql-block"> 오늘 등산은 화룡 선경대에서.</p><p class="ql-block"> ㅡ 주도서관 공회 박주석님, 안녕하셨습니까? 사모님두요. 두분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등산다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덧 1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소식에 의하면 두분께서 지금도 산으로 다니신다면서요. 더우기 사모님은 지금도 주등산협회 "한마음산악회"를 이끄신다면서요. 정말 대단합니다. 두분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p> <h3>  중간중간 기념사진도 남기면서 .</h3> <h3>  잠간 가쁜 숨도 돌려쉬면서.</h3> <h3> 와아 ~! 승리는 눈앞에 , 화ㅡ이ㅡ팅ㅡ !</h3> <p class="ql-block"> 선경대 높은 봉에 올라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아름다운 산천을 굽어보노라니 마치 한폭의 그림을 감상하는듯 야~ 아~! 감탄뿐입니다. </p> <p class="ql-block"> 험한 봉에 올라 어찌 기념사진 안남길수 있겠습니까? 선경대에서 또 한번 차알ㅡ칵! 했습니다.</p> <p class="ql-block"> 여섯 선녀들 박부장, 최주임, 박대장과 함께 선경대 선녀샘앞 잔디밭에서</p> <p class="ql-block"> 그날의 선녀들 다 어데로 갔는지? 박대장과 최주임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있는지? 박부장은 지금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집행비서장을 담당하고계신다면서요? 김성호대장님은 대평양건너 먼 미국에서도 그날의 등산친구들이 그리워 종종 문안전화 오군 합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김대장께서 10여년만에 고향 ㅡ 연길에 오셔서 등산친구들이 보고싶다고, 함께 만나 회포 나누자고, 꼭 참석해달라고 전화왔을 때 사실 전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아팠습니다. 아프다고 사실대로 말하기도 그렇고 에둘러 말하려니 거짓말이 잘 안돼 서둘러 전화를 끊고말았어요. 그렇게 김대장과의 상봉의 기회를 놓치고말았죠. 너무나도 아쉽고 후회되더라구요. 하느님은 왜 하필이면 그때 저를 아프게 했냐고 원망도 많이 했구요. 김대장님, 미안합니다. 우리 언제든 고향땅에서 지난날의 등산친구들과 다정히 모여 회포를 실컷 풀자요. 꼭이요. 약속해요.</p> <h3> 어두운 기차굴 빠져나와 등산력사에 남길 사진 또 한번 차알ㅡ칵!</h3> <h3> 고산준령인들 겁날소냐? </h3><h3> 오르고 오르노라면 정복못할 산 없도다.💪💪💪</h3> <p class="ql-block"> 오늘은 주등산협회와 룡정산악회가 련합으로 비암산 등산을 했습니다.</p> <h3>  미라, 김옥금사모님과 함께 비암산에서</h3> <p class="ql-block"> 방금까지도 푸르디 푸르던 청산은 어데로 가고 뼈가 앙상한 나무들만 남았는지. 그래도 나는 산이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대원들과 함께 또다시 뾰족산으로 왔습니다.</p> <h3>  무한한 풍광 험한 봉에 있어라!</h3><h3> ㅡ청산리상상봉에서</h3> <p class="ql-block"> 장하고 장한 우리 대원들 청산리상상봉에 올라.</p><p class="ql-block">ㅡ 이날 저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고 푹푹 빠지는 눈속에서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밟으며 온몸이 땀벌창이 되여 죽기내기로 대원들을 따라갔습니다. 끝내 그 험하기로 유명한 산꼭대기에 올랐습니다. 아, 끝내 해냈구나, 이만하면 나도 장하구나 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 뭐예요. 말 그대로 뜨거운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걷잡을수 없더라구요. 지금도 왜 그때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는지 알수 없습니다. 어찌 됐든 청산리산정을 정복했다는건 그것도 눈속에서 정복했다는건 자랑찬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전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합니다.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돌변한 이상기후때문에 먼산으로 못가고 등산코스를 바꿔 모아산으로...</p><p class="ql-block"> 저의 기억에 의하면 그때 우리 산악회에 주검찰원의 김철당서기와 리상구과장님을 비롯한 씩씩한 젊은이들 적잖이 있었죠. 지금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있겠죠?</p> <p class="ql-block"> 설을 맞아 황삭주석님, 리결사상무부주장님 및 주령도동지들과 함께 로투구 도끼봉에서 . </p> <p class="ql-block"> 리결사상무부주장과 주등산협회 책임자 ㅡ문자와 함께.</p><p class="ql-block"> ㅡ문자는 지금도 협회에서 활약하고있는지요? 항상 정들게 일처리하던 문자 보고싶어요.</p> <p class="ql-block"> 황삭, 리결사부부와 주등산협회 조윤철회장님과 함께.</p><p class="ql-block"> ㅡ조회장님, 잘 지내고계시죠?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그 맘 너무 고맙습니다. 부디 모든 일 잘되시길 바랍니다.</p> <h3><font color="#010101"> 리결사상무부주장, 그의 딸과 수행인원, 등산협회책임자 문자와 함께.</font></h3> <h3> 지신 발사탑아래 어느 산을 배경으로.</h3><h3> 이날 얼마나 추웠는지 입술이 다 얼어붙을 지경이여서 말하기조차 힘들었어요. 봐요! 모두 얼어서 토비같잖아요? ㅎㅎㅎ.😂😂😂</h3> <h3> "장백의 빛"겨울철 장백산등산초청경기에 참가한 주등산협회 회원들.</h3> <h3>  장백산입구에서 </h3> <h3> 박선생, 조윤철회장님, 김성호대장님, 김옥금사모님. 그리고 짙은 하늘색등산복입은 분은 석유공사에 출근했던건 생각나는데 이름은 기억 잘 안나요. 미안합니다. </h3> <h3> 엄동설한에 폭포는 꽁꽁 얼어붙어 얼음만 떵떵! 그래도 웅위로운 그 자태엔 손색이 없습니다.</h3> <h3>  김이 물물 서려오르는 온천에서</h3> <h3> 장백산설경, 보고보아도 너무 아름답고 황홀합니다.</h3> <p class="ql-block"> 내 고향산천의 봄, 여름, 가을이 너무너무 아름다워 청산에 묻혀 살아왔다면 오늘은 고향의 겨울산천에 푹 빠져보렵니다. 어디로 가나 온통 흰눈으로 뒤덮인 장백산풍광이여!</p> <h3>  장백산 선수촌 눈조각장에서</h3> <p class="ql-block"> 장관을 이룬 눈세계속에 서있노라니 내 고향의 성산ㅡ 장백산의 웅위함에 다시한번 탄복합니다.</p> <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 1, 1);"> 그제날 등산다녔던 그 7년간 손꼽아기다려온 주말이 얼마였던지요? 사무실에 앉아서 책을 보면서도 주말이 돌아오길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주말이 돌아오면 또 이튿날의 등산으로 하여 잠을 설친 밤이 얼마였는지 모릅니다. 청산은 그토록 제 혼을 빼앗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청산은 의연한데 사람과 세월은 왜 이다지도 변해있는지요? 무정한 세월!!!</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7년간 내 고향 연변의 8대명산을 비롯해 산산천천을 두루 밞으면서 내 고향산천이 그토록 아름답고, 내 고향산천이 그토록 신선하고, 내 고향산천의 품이 그토록 넓다는것을 피부로 느꼈고 또 느꼈습니다. 오늘도 자랑스런 내 고향의 산천을 세상에 소리소리 높이 알리고싶습니다. 내 고향 연변산천이여, 무성번창하라!</p> <p class="ql-block"> 그리운 산천이여! </p><p class="ql-block"> 내 언제든 그대의 품으로 돌아가리니 </p><p class="ql-block"> 기다리시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천혜의 청산이여!</p><p class="ql-block"> 세월과 더불어 그대 품에서 살리니 </p><p class="ql-block"> 영원히 영원히 사철푸르르라!</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제날 함께 웃고 떠들며 </p><p class="ql-block"> 산속을 누비던 登友들이여! </p><p class="ql-block"> 부디 만수무강하시라.</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주등산협회여, 영광이 있으리라!</p> <p class="ql-block">  맺는 말 </p><p class="ql-block"> ㅡ 새 천년을 앞두고 시작한 등산과 더불어 흘러간 세월 어언간 18년. 우리 이 인생에 이제 몇개의 18년이 더 있겠습니까!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돌이켜봐도 만감이 교차할뿐입니다. 이제 남은 여생을 다시 뒤돌아보아도 후회없는, 그래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런 추억을 계속 만들어가렵니다. 안녕히!</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