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银实

<h3>단오 휴가가 시작된 어제. 오전. 남편은 바람처럼 캐리어 하나 끌고 집을 나섰다. </h3><h3><br /></h3><h3>출장이라고 했다. 일이라고 했다. 가족을 부양할 임무를 짊어지고 떠나는, 본인도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는 조직에 매운 몸으로서 거역할 수 없는 그런 비장한... </h3><h3><br /></h3><h3>사직하고 집에서 놀아. 까이꺼 내가 먹여살릴게. 따위 객적은 농담 따먹기를 하며 기분을 돌리려 애써 봤다. </h3><h3><br /></h3><h3>김동무의 미안함 가득한 그 얼굴 뒤로 보이는 한가닥 미소를 예리하고 집요한 나는 보아냈다. </h3><h3><br /></h3><h3>정말 고생하겠다. 어쩌겠니. 나도 정말 가기 싫다... 라고 말하는 김동무의 입과. 출장지에서 만날. 친한 형님과의 신나 보이는 문자대화는 퍽이나 모순되지만 뭐 그러려니 한다. </h3><h3><br /></h3><h3>어찌됐든. 나는 사흘 동안을 에너자이저한 네살 짜리와 백평방도 안되는 공간에 갇혔다. </h3><h3><br /></h3><h3>다들 신나게 들로 산으로 나가서 뛰어노는데 아빠도 없이 엄마랑만. 집에 갇힌 네 심정도 오죽할까 싶어서 아이의 리듬을 따르기로 했다. </h3><h3><br /></h3><h3>물장난을 하면. 그래. 내가 너랑 같이 물 속에서 뒹굴 수도 없는데 맘껏 놀거라, 하고 이야기 책 읽어 달라면 소리가 갈라질 때까지 읽어 주었다. </h3><h3><br /></h3><h3>막막함과 죄책감과 그 둘을 더한 감정에 삼십여 시간을 시달리자 급격히 정신과 마음과 육체가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h3><h3><br /></h3><h3>오전에는 아이를 자전거에 싣고 공원으로 가서 지칠 때까지(내가 지칠 때까지)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h3><h3><br /></h3><h3>나는 내 시간이 절박하다!!! </h3><h3>마음 속에서 전해오는 소리를 나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h3><h3>그렇게 결연히 가방 둘쳐메고 나온 곳이 고작 커피숍이다. </h3><h3>커피를 시키고 가방 안에서 책을 꺼낸다. </h3><h3><br /></h3><h3>그리고 베낀다. </h3><h3><br /></h3><h3>그렇게 베껴둘 만한 글귀인가? 아닐 수도 있다. </h3><h3><br /></h3><h3>뭔가를 읽고 베끼고 쓰고 마시며. 오로지 나를 위한 그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다. </h3><h3><br /></h3><h3>내리금도 비뚤고 마침표 쪽을 향해가며 글씨체는 한껏 무너진다. </h3><h3><br /></h3><h3>마음이 급하다는 증거다. </h3><h3>속에서 구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두서없이 올라온다는 증거다. </h3><h3><br /></h3><h3>다급하고 절박한. 이 마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h3><h3><br /></h3><h3>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그 수많은 구절들이 필을 드니 연기처럼 사라진다. </h3><h3><br /></h3><h3>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그 공백도 괜찮은데 </h3><h3>나는 왜 허둥대고 있는 것일까...</h3><h3><br /></h3><h3>아무 생각없이 맘을 쉬고 싶어서 한 외출에 </h3><h3>난 왜 코김 씩씩 내쉬며 이처럼 다급한 구절들을 적고 있는 것일까... </h3><h3><br /></h3><h3><br /></h3><h3><br /></h3><h3><br /></h3><h3><br /></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