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얼음 나무 / 류시화</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첫해부터 후회가 되었다</p><p class="ql-block">집 가까이</p><p class="ql-block">그 나무를 심은 것이</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구부러진 손가락으로 </p><p class="ql-block">밤마다 창을 두드린다</p><p class="ql-block">첫 시월부터 마지막 여름까지</p><p class="ql-block">가지마다 비와 얼음을 매달고서</p><p class="ql-block">나의 부재를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람에 갇힌 영혼같이</p><p class="ql-block">상처 입은 불같이</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겨울이 떠나면서 </p><p class="ql-block">덧문을 열어놓고 갔을 때는</p><p class="ql-block">잠 속까지 걸어 들어와</p><p class="ql-block">꽃으로 내 삶을 두드린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그 나무로부터 너무</p><p class="ql-block">가까운 거리에 살았다</p><p class="ql-block">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마저도</p><p class="ql-block">심장을 건드리는</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겨울 / 조병화 </b></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침묵이다</p><p class="ql-block">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p><p class="ql-block">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람은 지나가면서 </p><p class="ql-block">적막한 노래를 부른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p><p class="ql-block">노래만 남아 쌓인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p><p class="ql-block">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p><p class="ql-block">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p><p class="ql-block">하얗게 덮는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덮은 눈 속에서 </p><p class="ql-block">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p><p class="ql-block">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p><p class="ql-block">봄을 준비한다</p><p class="ql-block">묵묵히</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0px;">겨울 나기 / 도종환</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p><p class="ql-block">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p><p class="ql-block">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p><p class="ql-block">나무들이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p><p class="ql-block">다 되돌려주려고</p><p class="ql-block">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p><p class="ql-block">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p><p class="ql-block">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p><p class="ql-block">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p><p class="ql-block">부스러진 잎사귀와 </p><p class="ql-block">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p><p class="ql-block">그래도 뿌리 하나로 </p><p class="ql-block">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p><p class="ql-block">떨어진 잎 </p><p class="ql-block">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p><p class="ql-block">뿌리까지 얼고 만 밤</p><p class="ql-block">씨앗 하나 살아서 </p><p class="ql-block">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겨울 우리 몇몇만</p><p class="ql-block">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p><p class="ql-block">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p><p class="ql-block">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