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나리오창작생애(5)‍나의 시나리오창작생애(6)‍ㅡ 2 0 2 4. 1 2. 1 5 ㅡ

扶宣(拒私聊)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민들레꽃"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35돐 헌례작품으로 나의 두 작품이 수상했다. 한 작품은 자치주 창립 35돐 응모작품 우수창작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마음의 그림자"이고 다른 한 작품은 2부작으로 된 텔레비전예술영화 "민들레꽃"이다.</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자치주 성립 30돐에 조선족의 첫 텔레비전예술영화 "어머니 시름 놓으세요"를 선물한 후 나는 35돐에 선물할 작품으로 영화를 선택했다. 1980년 북경영화학원 시나리오작가반에서 시나리오 창작을 배운 후로 조선족의 형상을 부각한 영화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것이 나의 최대의 꿈이였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생활체험 차 연길현(당시 룡정시를 연길현이라 했다)의 한 농촌마을에 갔는데 내가 투숙한 집엔 남성이 없고 고부 3대가 살고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틀 안에는 고인들의 사진과 렬사증 세 개가 모셔져 있었다. 고부 3대의 남편들이 다 렬사였다. 항일전쟁 렬사, 해방전쟁 렬사, 자위반격전 렬사이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조선족의 거창한 력사를 대하소설로도 다 담을 수 없다. 1시간 반 정도의 영화에 3대가 거쳐 온 력사를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마저도 못할 일이다. "한 방울의 물에서도 해가 빛난다."는 말이 떠올랐다. 고부 3대를 통해 력사를 보는 시각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고부 3대의 형상을 무엇에 비할 가 한참 고민했다. 하경지 시인은 연변에 왔을 때 "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렬사비"란 제사를 남겼다. 고부 3대를 우리민족의 상징인 진달래에 비할 가 생각도 해보았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마을 뒤의 언덕에 수없이 핀 민들레꽃을 보고는 바로 이거다고 무릎을 쳤다. 민들레꽃도 우리민족의 상징으로 되고 있는 꽃이다. 작지만 아주 예쁜 꽃인 민들레의 특성은 강인함이다. 밟히고 뽑혀도 계속 살아남아 또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3대 조선족 녀성의 삶을 조명한 시나리오를 집필하기 전에 영화 제명이 먼저 지어졌다. 영화 주제가 가사도 나왔다.</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나도 그 덕을 크게 보았다. "민들레꽃"을 내놓기 전에 소설을 꽤나 많이 썼지만 곁에서 나를 소개하면서 어느 어느 소설을 쓴 작가라고 하면 상대방의 반응이 별로였다. 헌데 "민들레꽃" 작가라고 하면 그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다는 치하의 말씀부터 앞세우면서 사인을 요구한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연변대학 최상철 교수님은 "숭고한 정신적 풍모, 깨끗한 도덕적 미"란 제목으로 시나리오 "민들레고개" 평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작자는 '민들레고개'에서 누가 보든 말든 소문 없이 피어 언제나 수줍게 정답게 미소 지으며 뿌리내린, 이 강산을 아름답게 수놓아주는 ‘민들레꽃’과 같은 고부 3대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조선족 녀성들의 숭고한 정신적 풍모와 깨끗한 도덕적 미를 찬미하였고 중국혁명 중에서 이룩한 조선족 인민의 거대한 공훈을 열정적으로 가송하였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님이 가는 천만리 길에 이 맘도 따라서 함께 가네.'라고 노래를 부른 고부 3대의 내심세계는 그야말로 민들레꽃처럼 소박하고 아름답다. (중략) 이것이 바로 이 작품에 담긴 작자의 귀중한 사색인 것이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이 작품의 무게도 매력도 우선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 시인은 "민들레는 납작하게 땅에 붙어 한 치도 옮기지 못하는 삶을 살지만, 자기의 몸 전체를 부수어 수많은 꽃씨로 온 공중을 날며 수 백리 떨어진 대지위에서 또 새로운 삶을 접착시키는 즉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력사를 이어가는 삶을 보여준다,"고 했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해마다 도처에 피여난 민들레꽃에서 나는 우리민족을 본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 <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나의 시나리오창작생애(6)</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무정세월"</b></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시나리오 "무정세월"도 북경영화학원 졸업작품으로 쓴 론문이다. 첫 론문은 1980년 북경영화학원 시나리오작가연수반 졸업작품으로 쓴 "꽃샘"이다. 1989년 다시 북경영화학원에서 시나리오공부를 시작했는데 당시 시나리오고급연수반은 석사연구생반이다. </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시나리오 "무정세월"은 "민들레꽃"처럼 고부 3대가 등장하지만 등장 년대가 다르고 처한 운명도 다르다. "민들레꽃"에서는 고부 3대의 헌신적인 기여에 모를 박았다면 "무정세월"은 고부 3대의 가슴속에 맺힌 한을 재조명하는데 치중했다. 시나리오 "무정세월"에 관한 창작소감이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세월이 무정했어도 덧없이 흘러갔어도 인간에게는 끈질기게 존속하는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기억이다. 흘러간 세월이 인간의 기억 세포에 남긴 그 흔적이 바로 그 인간에게 존속해 있는 력사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우리 민족은 그 어느 민족에 비해 한이 많은 민족이다. 고향, 친인, 지어는 자기 이름자마저 빼앗겼던 민족, 이런 저런 전쟁과 수난을 거듭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이다. 나로선 우리 민족의 가슴속 깊이에 응어리진 한을 재조명하기란 힘에 부친 일이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나는 방대한 력사의 화폭을 순서적으로 펼쳐 보이는 식의 재조명보다도 현실 생활의 흐름 속에서 가담가담 자신의 삶의 기록을 드러내 보이는 인간을 통해 어젯날이 낳은 한, 더불어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그 한을 엿보는 식으로 작품을 꾸며갔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우리 민족의 한에 대한 불감증에 마비돼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제와 오늘로 통하는 한을 엿볼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시나리오고급연수반을 졸업할 때 론문심사가 있었는데 당시 나는 한국 출장중이였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론문답변은 반드시 본인이 해야 하는데 출국한 나의 특수사정을 고려해 론문 심사위원들은 나의 창작소감을 다른 학생이 대독하게 했다. 론문 점수도 높은 축인 87점을 매겼다. 참으로 고마운 은사님들이시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북경영화학원 두 번이나 나들면서 닦은 시나리오 창작 기량에 힘입어 시나리오창작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창작한 작품이 꽤나 된다. 텔레비전예술영화로 제작된 시나리오 중 단편 영화도 있고 상, 하집으로 된 영화도 있으며 10부작 드라마도 있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이 외 장르로 보면 미니영화, 음악풍경영화, 애니메이션 영화도 있다. 시나리오가 영상물의 대본이라고 볼 때 다큐멘터리 대본 역시 시나리오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다큐멘터리 대본에서 대표작은 사상 최초로 구석기시대로부터 자치주 창립까지의 력사를 다룬 "피와 땀으로 걸군 대지(1992년 제작)"이다.</span></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또 하나의 다큐멘타리 대본은 "반파쇼전쟁 녀 영웅 리민"이다. 2010년 다큐멘터리 "반파쇼전쟁 녀 영웅 리민"을 제작하기 위해 할빈에 가서 리민 영웅과 여러 번 인터뷰를 가졌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리민 영웅은 생전에 450여수의 동북항일가요를 수집했다. 그가 수집한 항일가요중 20여곡을 선별해 리민 영웅의 일대기에 맞춘 음악서사시 대본이 완고되였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영상물로 만들어지지 못해 지금도 그 유감을 씹고 있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시나리오 창작에 각별한 열성을 보인 나에게 북경영화학원은 벅찬 "선물"을 안겨주었다. 2010년 10월 북경영화학원은 개교 60주년을 경축해 “우수 졸업생” 칭호 수여식을 가졌는데 나는 당대 유명 영화감독인 장예모(张艺谋), 전개가(陈凯歌), 배우 당국강(唐国强)등과 함께 “우수 졸업생” 칭호를 수여받았다. </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