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동강난 시</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几年前的一个冬季,漫步延吉公园,看到的公园东北侧一角的诗碑。1950年创作的,记得小时候还学过这个歌,练手风琴时学会的吧。中国朝鲜族诗人,金礼三先生的一首交“고개길“的诗碑。</p><p class="ql-block"> 今上午,有空到延吉公园转了一圈,发现公园内诗碑好像翻新似的很新,详细一看(图二),好像又是之前的诗碑。翻出手机存储的相片一看(图一),原来是不一样的。</p><p class="ql-block"> 原诗碑朝鲜语的第二节,直接去掉。落款里的创作年度也没了。翻译成“山坡路”,原金先生创作的“고개길”韵味全没了。试着按曲调 휘파람 불며 ~唱着,唱着,唱不下去,唱不了。本来也唱不了。</p>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红色风暴里的金先生</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红卫兵小将이 김례삼보고 问하기를</p><p class="ql-block">“네가 <천도복숭아>를 썼는데 그 심보가 무어냐?우리의 사회주의 현실에 불만이 있어 희망을 천당에 둔 게 아니냐?”</p><p class="ql-block">“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p><p class="ql-block">그러자 키가 작달막한 조선족인 红卫兵이 일어서더니</p><p class="ql-block">“저놈이 어젯밤 모주석을 태워 죽이자고 했습니다.”</p><p class="ql-block">모두들 깜짝 놀란 모양 무슨 영문인지 몰라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p><p class="ql-block">“뭐라오? 모주석을 태워 죽이려 했다?”</p><p class="ql-block">그러자 그 학생红卫兵이 자초지종 사실을 ‘폭로’하였다.</p><p class="ql-block">사실은 이렇게 된 일이었다. 그 무렵 연 며칠 동안을 투쟁 받으면서 김례삼 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이었다. 红卫兵说到:“이 자식 花岗岩脑袋啊!”</p><p class="ql-block">하면서 백골이 그려진 한 미터짜리 종이고깔을 푹 씌워놓고 더 호되게 비판을 했었다. 밤에는 집에 돌려보내기는 하나 ‘홍위병’들이 온밤 밖에서 보초를 섰고 집안의 불도 못 끄게 하였다. 김례삼 씨는 억울하고 분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이 되어 억지로라도 눈을 좀 붙이려고 신문지로 电灯을 막아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택동이란 사람사진이 거기에 있었는데 墨印이 열을 더 받다보니 그 부분이 타게 되었다. 밖에서 이걸 본 ‘홍위병’들이 及时跑进去 그 신문을 떼 내였는데 이 일이 ‘造反派司令部’에 보고 되어 하나의 ‘엄중한 反革命’으로 되었던 것이다. </p><p class="ql-block">그 ‘홍위병’은 불에 괄아 구멍이 펑 뚫린 신문지를 내들고 흔들었다.大家看看!你们看!</p><p class="ql-block">그러자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p><p class="ql-block">“정말 죽일 놈이야!”“打倒反革命份子金礼三!”</p><p class="ql-block">우렁찬 조선말 구호소리가 또다시 장내를 뒤흔들었다.(지금은 조선말로 된 구호소리는 임내내기두 바쁜데~)</p><p class="ql-block">“저런 놈은 끌고 거리에 나갑시다!”</p><p class="ql-block">누군가가 이렇게 소리치자</p><p class="ql-block">“좋습니다. 거리로 끌고 갑시다.”</p><p class="ql-block">하고 호응하였다. 그 때만해도 ‘군중이 모든 것을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김례삼 씨는 거리(老州委前大道)로 끌려가게 되었다.(开了延边文人首次公开批斗先河) 투쟁대열이 기관문을 막 나서려는데 김례삼 씨가 便所로 좀 가게 해달라고 청을 들었다. 허락을 받은 례삼 씨는 들어가더니 반시간이 지나고 나오지를 않았다. 의아쩍게 생각한 ‘홍위병’들이 문을 떼고 들여다보니 그의 목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학생들이 연필을 깎는 쬐꼬만 손칼이 쥐여져있었다. 하도 앞이 캄캄하니 스스로 목숨을 끊자고 작심한 것이었다. ‘홍위병’들은 달려들어 그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붕대로 대수 목을 감아주고는 여전히 거리로 끌어내갔다. 이때 김례삼 씨의 얼굴색은 백지처럼 창백하였고 都走不了道了. 그래도 무정한 사람들은 양쪽에서 그의 팔은 끼고 거리를 나갔다.</p><p class="ql-block">북을 치며 구호를 부르며(能歌善舞嘛,敲锣打鼓的 ~)</p>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고농살이 리령감 춤췄다오</p><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김례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고농살이 리령감 춤췄다오부처같이 말 없던 고정한 령감50평생 처음으로 춤췄다오</p><p class="ql-block">삼수갑산 두메골 막치기에서화전민 그 설음 황소처럼 묵새기더니삼림간수 올빼미 눈 더는 피해 살수 없어살길 찾아 만주땅에 찾아왔건만</p><p class="ql-block">데릴사위 그 신세로 장가도 들어홑옷 바람 떠는 안해 손목 이끌고쪽바가지 등짐으로 살길 찾아두만강 건너선지 스물도 몇해만에</p><p class="ql-block">제나라 제땅도 없는 그 신세산도 설고 물도 설은 이국땅이라강건너 고국하늘 바라다보며남몰래 흘린 눈물 얼마였드뇨기박한 고농살이 딱한 신세라천근 같은 그 멍에에 눌러살던 몸지주놈 학대마저 기막혔는데</p><p class="ql-block">엎친데 또 덮친다고능구렝이 왕가놈 건드림피해 돌며 애태우던 그 안해마저원통해라 범이나 씹어갈 놈의만주사변 란시통에 잃은 뒤로는불쌍한 안해도 제 신세 기막혀</p><p class="ql-block">탁배기 한잔 술로 울화를 풀수 없던기막힌 그 신세를 팔자탈로만 알아오던황소같은 고역살이 50평생에 옳바른 토지개혁 향도로 하여옥답이 차려진 꿈만 같은 그 세월빈고농도 의젓이 허리 펼날 왔으니</p><p class="ql-block">얼씨구나 절씨구나 제 흥에 겨워고농살이 리령감도 덩실덩실50평생 처음으로 춤췄다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