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어느 허물어진 담벽 아래에서 따뜻한 팔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번만이라도 누구에게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구월은 추위를 잘도 타는 나에게 옷을 주겠다면서 닳은 문턱을 억지로 넘어서게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수염조차 허연 내가 고울수는 없겠지만 태양마저 늙어가는 이 마당에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조용히 앞으로 기여가면 어떨가요. 가노라면 죽든지 살든지 결판이 나겠지요. 아니, 결국 이생이 끝나고 저생이 시작되겠지요. 구월은 우리한테 익숙했던 모든 것이 성숙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성숙을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고 우리를 속인 그 아름다운 노래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지금 알게 된 사실입니다. 가을이 아무리 찬란하여도 결국 겨울을 맞이하는 천륜이고 보면 믿음만이 그 깊은 늪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희망의 가련한 지푸라기일 것을. 가을은 아침 저녁에만 머물고 낮은 아직 여름인데, 가끔 위안을 해봅니다. 그러니 참 고운 하늘이 고맙게 펼쳐집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