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마흔번째 교사절을 맞이한다. 재직중인 대학교 인사처에서 교육에 몸담은 시간이 어떻게 되냐고 물어왔다. 1985년 첫 교사절 경축을 맞이했던 것과 1984년부터 교직에 몸담은 일, 그리고 한번도 딴데다 눈길을 줘 본적 없이 오직 교육자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해서도 좀은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p><p class="ql-block">나이로 말하면 나는 스무한살에 교육의 장에 몸을 담은 것이다. 세월은 어느새 스무한살 꽃처녀인 나를 62세 주름투성이 노인 교사로 승진시켰다. 43원 박봉 월급쟁이로 시작하여 변혁의 시대를 몇 번이나 걸쳤고 41년간 분필가루를 누적하였으니 집채만큼은 클 것이다. 먹을알 없어 비리비리한 직업으로 이름난 교사가 이젠 꽤나 두툼한 월급 봉투를 받아들수 있고 그만하면 먹고 살만하게 되었다. </p><p class="ql-block"> 이 모두가 중국공산당의 은덕을 입음이다. 현재 퇴직을 한지 2년이 가까워오는 동안 삶의 연장이 녹쓸새 없이 계속 갈며 재직을 이어가고 있는데, 받고 있는 퇴직금은 남에게 말하기 미안하리만큼이다. 당과 조국에 참으로 감사하다. 가끔은 생각의 좌판 가운데 서서 살아온 세상을 빙빙 돌며 스스로를 구경한다. 어디에 내 놓아도 티도 안 나는 소박둥이다. 그런데...... 아마 배움의 사다리를 높여높여 떨어질까봐 걱정이 되는 곳까지를 올라가 보려고 주먹을 쥔 일개 인간의 끈질김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아님 수없이 많은 이 나라 기둥감들을 품느라 고생한데 대한 박수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런가! 세상 일에 정의 내리는 어리석음은 피하고 가야 하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제좋은 생각에 빠져 흥건히 고여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기쁨을 함씬 느낀다. 그런데 이런 자화자찬의 그물을 훌쩍 벗어버리고 잠깐 뒤로 몸을 돌려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 보니 정말 상심이다. 지금 40번째 교사절까지 맞이하는 내가 한 것이, 해놓은 것이 뭔지, 이루어놓은 것이 어떤 것인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가슴에 칭칭 감겨드는 찰떡 기억들도 없다. 한심하다, 나는 그저 세월의 깊은 궁리에 힘 주고 정 주고 청춘 주고 노력 주고 ... 다 준, 그래서 이제는 남은 것이 뭔지를 생각도 못해내는 나이 듬직한, 지금도 세월에 더 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신나는 노여사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던 기억은 하고 가는 내 삶의 방식으로 애 졸이던 터에 내 마음을 대신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대용물이 생긴듯 하여 교직생활 41년세월에 꽃송이를 드리고 싶어진다. </p><p class="ql-block">사진이다! 교직생활 41년 세월, 교사절 40번째까지 맞는 이 사람에겐 끄터머리나 될까말까한 간들간들 연한 기록물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동그라미를 먹는거 보다는 낫지 않은가! 천지만물 모든 것에 감사함을 품고 자연의 품위를 닮으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내 아름다운 삶의 기록에 한페지를 더 열어가는 길에 사진 기억이 있어 고맙다. 내 삶의 영혼을 채워 준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들에 고맙다. 사랑한다! </p> <p class="ql-block">아침 수업 마치고 마흔번째 교사절맞이 행사에서</p> <p class="ql-block">서른 아홉번째 교사절도 아침 수업 마치고 연구실로 가는 길에서 …</p> <p class="ql-block">2008년 새 교직의 시작을 기념하여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