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18px;"> 2024년 3월 19일 나와 막내동생은 팔십고령의 엄마를 모시고 큰동생의 요청으로 일본 려행을 떠났다. 다리가 휘청거려 휠체어신세를 지면서까지 려행을 떠나는 엄마에게는 무리였겠지만 우리 세자매에게는 오래동안 그려왔던 로망을 실현할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span></p> <p class="ql-block"> 미리 예약한 휠체어 서비스는 어디서든지 특권이 주어져 많은 편리를 주었다. 연길에서 반시간 연장된 비행은 인천공항에서의 일본행비행기 환승시간을 십분밖에 남기지 않고 도착하였다. 하지만 조바심도 잠시 비행기 출구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휠체어 안내원은 엄마를 모신 휠체어를 밀고 비상구를 리용으로 무난히 일본행비행기에 탑승할수 있었다. 떠나기전 휠체어 사용을 강력히 거부하던 엄마는 최상의 서비스에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p> <p class="ql-block"> 정확히 세시간후 우리는 딸애가 미리 만들어준 큐알코드덕분에 입국절차도 간단히 마무리하고 수화물 찾는곳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하지만 세상에 평탄한 길만 있는법은 아닌것 같았다. 몆바퀴씩 돌고도는 회전궤도에서 겨우 우리의 짐을 찾았을때 우리는 망연자실해졌다. 커다란 비닐봉다리를 씌운 캐리어는 스며내린 음식물 잔여물로 범벅이 되였다. 코를 찌르는 양념냄새는 하늘을 진동하고 동생은 챙겨넣은 물건들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나는 휴지로 씻어내느라 허둥대며 난리에 난리였다. </p> <p class="ql-block"> 우리는 겨우 캐리백을 대충 수습하고 미리 마중나온 동생 부부를 만났다. 그러나 고난은 끝이 아니였다. 아침부터 분주히 돌아친 탓인지 지쳐있던 엄마가 차멀미를 시작하였다. 두시간밖에 걸리지 않던 이동거리는 세시간으로 늘어났고 엄마는 완전히 쓰러지고 말았다.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곤욕을 치르고난 캐리백이 겉만 어지럽혀졌을뿐 물건들은 멀쩡하였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가방에서 흘러내린 음식물 잔여를 뒤집어 쓴것이였다. 정말 원흉을 찾아 배상을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였다. </p> <p class="ql-block"> 3월 20일 아침 늦잠을 푹 쉬고 난 엄마는 의외로 기력을 회복하여 우리가 동네 슈퍼로 간다고 하니 따라나섰다. 정말 당년의 강경했던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슈퍼에는 식품뿐만아니라 각가지 화초와 관상용 물고기들이 많고많아 물건을 사는것보다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여 엄마가 예전에 일본 왔을때면 제일 즐겨 찾던 곳이였다. . </p> <p class="ql-block"> 그날 오후 동생부부는 꽤나 먼곳에 있는 생선가게로 가서 풍성한 저녁거리를 구입하여 왔다. 초밥과 생선회는 엄마의 최애 음식들이다. 팔십넘긴 로인네가 와사비 간장이 입안을 거뿐하게 한다며 생선회의 쫄깃함까지 헤아릴수 있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일꺼다. 저녁상은 구척신장의 매부가 친히 주방에서 구부정하고 서서 생선들을 도톰하게 썰어 올렸다. 엄마는 “맛있또 맛있또”를 련발하며 즐겁게 식사를 하였다. 엄마의 ”천진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정말 일본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p> <p class="ql-block"> 3월21일 아침 우리셋은 엄마를 모시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동네 공원이라하지만 넓은 호수를 품고 자리잡은 공원에는 꽃과 새들 그리고 비둘기와 물오리 물고기가 많아 사진작가들의 명소이기도 하였다.오늘도 물길에 곱게 비낀 보라색 꽃을 배경으로 사진작가들이 통통 뛰고 나는 새들을 찍느라 야단이다. 하지만 엄마는 쌔—한 봄바람 때문인지 로고때문인지 거의 무표정이다. 가끔씩 뭉텅뭉텅 잘려나간 단편적인 기억으로 한 두마디만 건뉠뿐이다. 코끝이 찡 저려난다. </p> <p class="ql-block"> 호수가의 커다란 산수유나무는 좁쌀주머니를 뒤집어쓴듯 노랗게 꽃피여 있다. 그림같은 자연풍경때문에 엄마가 몹시 좋아하던곳이다. 하지만 오늘 엄마는 노루꼬리 기억으로 가담가담 한마디씩 건넬뿐 모든것을 귀찮아하신다. 그런 엄마가 안타까워 좀더 일찍 건강할때 이런 기회마련했었으면 좋을걸 후회막심이다.다시금 려행은 다리가 떨리때가아닌 가슴이 떨릴때 다녀야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페부에 닫는 순간순간이였다. </p> <p class="ql-block"> 3월 22일우리는 엄마를 모시고 드라이브도 할겸하고 三井아울렛 파크로 떠났다. 넓은 쇼핑몰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동생둘은 쇼핑에 골몰하고 나는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가끔씩 따스한 해빛을 찾아 잠깐 세워두고 곁눈질 쇼핑을 하였다. 점심까지 먹고나니 엄마는 확연히 지쳐있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차안으로 돌아와 둬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봄바람과 해빛에 지쳤는지 엄마는 말씀이 어눌해지기 시작하였다. 차에서 내릴때는 몸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되였다. 병이 다시 도지는것 아닌가고 또 한번 우리를 당황케 하였다. </p> <p class="ql-block"> 3월23일 동경에서 살고있는 외사촌동생 내외가 애들을 데리고 맥주며 과일 그리고 해산물을 가득 사왔다. 꿈틀대는 커다란 전복과 살아숨쉬는 대계를 사왔다. 엄마에 대한 그들의 아낌없는 성의였다. 간만에 일본에서 여덟명이나 모인 풍성한 저녁 파티가 열렸다. </p> <p class="ql-block"> 천진란만한 애들의 구김없는 웃음소리는 저녁만찬에 양념이 되여주고 가끔씩 튕겨나오는 힘들었던 일본에서의 홀로서기 이야기는 소금이 되여 눈물이 되였다.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하면서 애잔한 혈육의 정을 술 한잔에 담아 마이고 또 마셨다. 정말로 엄마를 모시고 마음껏 즐긴 저녁식사였다. </p> <p class="ql-block"> 3월 24일 우리셋은 휠체어에 엄마를 모시고 사십분거리에 있는 吉祥寺 ( 吉祥寺는東京都武蔵野市동쪽)쇼핑시장으로 향했다 .시장까지는 도보로 사십여분거리인데 조용한<span style="font-size:18px;"> 골목길을 요리조리 에돌며 집집마다 알뜰히 가꾸어 놓은 화초를 옅볼수있는 좋은 산책거리이다. 吉祥寺는 </span>교통이 편리하고 넓은 공원에는 숲과 호수가 매우 친환경적으로 이루어져 “동경에 있으면서 동경같지 않은 환경”으로 인기가 높은 관광지이다. 번화한 시장거리를 잠깐 돌고 일본 대표음식 우동을 점식으로 에때우고 나와 엄마는 집으로 향했다. 엄마를 휠체어에 밀고 단둘이 걷는길이 얼마나 즐거운지 나는 에돌고 에돌아 동생집 다음 전철역 上石神井까지 갔다. 엄마는 집을 찾아가지 못할까봐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p> <p class="ql-block"> 3월25일 동경의 날씨는 매일 흐렸다개였다 참말로 탐탁치 않은 날씨가 계속된다. 오늘도 아침부터 잔잔한 이슬비가 내린다. 우리는 며칠후에 가기로한 일박이일 장거리 려행을 위하여 이제부터 엄마의 장시간 동안의 바깥외출은 삼가하기로 하였다. 쇼핑중독인 막내동생은 큰 동생을 끌고 新宿로 갔다. 나는 엄마와 나란히 누워 독서에 빠졌다. 점심때쯤 비가 멎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동네슈퍼로 나왔다. 몇일전 보아두었던 길거리 나무에는 보라색 목란이 둔탁하게 피여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핀다는 갈색목란은 우아하기보다는 투박하기가 더 알맞았다. 아마도 찐한 갈색이 막 피여나는 꽃 뭉치를 감싸있어 그럴듯 싶었다 슈퍼에서는 엄마가 며칠동안 오매불망사겠다던 알로에 ( 피부과민을 고생하는 동생얼굴에 바르면 효험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엄마)구매에 성공했다. </p> <p class="ql-block">3월 26일 오늘도 기분 나쁘게 비오는 날씨다.곱게 핀 목란과 동백꽃보다도 사쿠라의 만개를 더 기다리는 엄마는 사쿠라 구경이 성차지 않아 한다. 어떻게 매일 꽃 피기를 앉아 기다리냐는 엄마의 푸념속에서 막내동생이 사촌동생이 애들 데리고 놀러온다고 开花馒头를 솜씨피웠다. 예상대로 开花馒头는 인기를 끌었다. 오늘도 사촌동생은 선물꾸러미 한아름 안고 왔다. 우리 세언니들이 난처할 정도이다. 큰 이모와 우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촌동생의 모든것이 대견스러움을 넘어 감동을 주고 있다. </p> <p class="ql-block">3월27일 오늘은 큰동생이 출근하는 날이다 길치인 막내동생은 사촌동생을 함께 쇼핑할 사촌동생을 목타게 기타려 오후 한시가 넘어서야 吉祥寺로 쇼핑을 나갔다. 막내동생의 쇼핑열정은 식을줄모른다. 젊음의 자랑이기도 하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지는 엄마를 모시고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모든것에 시무룩해진 엄마때문에 속상하다. </p> <p class="ql-block">3월28일 우리는 新宿로 전타타고 나왔다 동생둘은 쇼핑하러 가고 나와 엄마는 전차를 타고 新宿御园 으로 향했다. 옛날 황궁의 골프장이란다. 넓다란 공원은 황족들의 풍요로운 생활과 품위를 제대로 뽐내고 있냈다. 잘 가꾸어진 잔디와 사쿠라나무 솔나무들이 그림처럼 조합을 이룬 공원에는 세계각국의 유람객들로 붐빈다. 이곳저곳 사쿠라꽃과 동백꽃이 곱게 피여있다. 늦어진 절기때문에 이렇게라도 사쿠라를 구경할수있다는것이 행운인것 같다</p> <p class="ql-block"> 나는 활짝 핀 꽃을 배경으로 엄마와 사진을 남기고 싶어졌다. 사진 찍기를 강렬히 거부하는 엄마를 겨우 설득하여 서투른 일본말로 사진샤터를 부탁하여 한장 찍었더니 엄마는 사진효과에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간만에 추억으로 남을 좋은 사진을 건졌다. 이제부터는 둘이 같이 찍으면 찍겠다고까지 하였다. </p> <p class="ql-block"> 공원안에는 식물원이 있었다. 식물원에는 유람객이 많치않아 천천히 조용히 각가지 화초들을 실컷 구경할수 있었다 . 처음 만나보는 화초들을 엄마가 제대로 보지못하는것 같아 엄마엄마 하며 손가락질하며 가리킬수 있는 내가 너무 행복한것 같았다 . 십년전에 이렇게 한번 모시고 왔더라면 넷이 기쁨도 즐거움도 같이 할수있었는데 하던 동생의 말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콱 쏟아졌다. </p> <p class="ql-block"> 정각 한시반 우리는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늦은 점심은 여전히 엄마의 최애 초밥이였다. 오늘은 어제 저녁 사촌동생이 몰래 넣어두고 간 돈으로 감사히 점심 식사를 마쳤다 . 나는 시원한 생맥주 두잔이나 비웠다.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다. 엄마는 둘만 집으로 먼저 돌아오자하니 싫다고 한다. 쇼핑도 같이 다니겠다한다. 별수없이 우리는 대충 돌고 집으로 왔다. 저녁 메뉴는 불고기였다. 숙성시킨 소혀와 불고기용 소고기는 우리의 연변소고기와는 또다른 맛이였다. 특히 소혀는 별미였다. 매일매일이 만찬이니 살만 찐다. </p> <p class="ql-block"> 3월 29일 우리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원정려행을 떠났다. 아침부터 구질구질 비가 쏟아진다. 오후에야 맑아진다는 일기예보를 긴가민가 하면서 열시가 넘어서 출발하였다. 고속도로가 밀리여 길에서 긴긴 시간을 소비했다. 오후 한시쯤에찌뿌둥하던 하늘이 맑게 개였다. 목적지는 동경만을 품고 있는千葉県館山(たてやま)로 갔다. 장시간 이동에 지친 엄마를 모시고 조금 이른시간에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호텔방에 안내되였다. 넓고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거실과 침실에서는 넓은 동경만의 철썩이는 바다를 한눈에 볼수있었다. 낭만과 운치가 흐르는 호텔의 창가에 서서 오래도록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엄마와 세딸도 한 풍경이 되였다. 시간제로 예약되는 온천도 바다를 배경으로 우리넷만의 단독용이다. 인민페 오천여원 비싸다고 놀라기도 하였지만 이런 특급 향수를 누릴수있다는것 또한 억울하지 않았다. </p> <p class="ql-block"> 시원한 온천을 즐기고 우리는 이층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즐겼다. 넓은 식탁을 마주 앉은 우리는 일식요리에 일본청주한병과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순간에도 우리셋을 낳아주신 엄마와 아버지한테 너무 감사하였고 이런 자리까지 오게 한 큰 동생이 너무 고마웠다. 성치 않은 몸으로 온 하루 차를 몰고 오는 동생을 지켜야 봐야하는 하루였기에 서로가 너무 힘든하루였지만 잊지못할 하루였다. 늦었지만 오늘날까지 버텨오신 엄마에게 너무 감사한 하루였다. 저녁만찬후 침실에서 매실주를 거나하게 마이자던 약속은 물거품이 되였다. 모두 감동파도에 취하여 일찍 쓰러졌다. </p> <p class="ql-block"> 새벽 두시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정적을 깬다 .잠에서 일찍 깬 나는 우두커니 넓은 거실에 앉아 고요한 밤바다를 보고있다. 눈물이 흐르고 있다. 착잡한 생각에 걷잡을수 없이 내리는 눈물은 필경 기쁨의 눈물만은 아닌것 같다.좋은 여행 추억의 여행 행복한 여행은 옳은데 엄마와 걷는 산책길이 마냥 좋은것만 아니였다. 웃으면서도 코등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웃는것이 별일 아니인듯 많이 힘들었던 같다. 떠오르는 아침해가 그리워진다. </p> <p class="ql-block">3월 30일아침 우리는 예정된 아침 여덟시에 호텔2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금방 불이 꺼져 뜸을 들이고있는 작은 솥가마에서는 하야 쌀밥의 향기가 모락 모락 피여 오르고 있었다. 식욕을 자극한다. 이어 앙증맞은 그릇들에 담겨 줄줄이 나오는 각가지 음식들이 정말로 정성이 듬뿍 담긴 아침식사였다. 호텔의 모든것이 가격대와 정비례되여 잊지못할 소중한 추억을 선물로 남겨주었다. </p> <p class="ql-block"> 잠도 잘잤고 아침도 든든히 먹었으니 우리는 여유있는 출발을 하였다. 시원한 바다바람이 기분좋게 불어친다. 우리는 옷깃이 날리고 머리카락이 나붓기여도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포즈담기에 여념이 없다. 작정하고 늑장부리며 마지막 여행일정을 마음껏 즐긴다. </p> <p class="ql-block"> 사쿠라명소인 館山城에 들렸다. 아직도 사쿠라 꽃은 입을 벌리듯 말듯하는데 입구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문지기한테 휄체어 사용자가 있다하니 모든 사람이 걸어올라가는 산길도 선뜻 차를 사용하도록 한다. 정말 서비스는 사람을 감동시킨다. 전철을 타려고 하면 역무원이 차에 오를때와 내릴때로 걱정하여 친절을 베푸는가 하면어디가나 휄체어 주차장이 따로 있어 불편을 느낄수가 없다. </p> <p class="ql-block"> 동경만 해안선에서 우리는 태평양해안선에 있는 ろずまり명소로 향했다. 꽃은 거의 다 지였다. 농부산품 직매장이 있는 작은 가계에서 우리는 예쁜 해산물 덮밥을 시켜먹었다. 엄마에게 하나라도 더 구경시키고 맛 있는걸 골라 대접하려는 동생이 눈물나게 고맙다. 다만 동생의 허약한 신체와 얼굴 피부반응때문에 속상한다. 피곤한 운전도 지켜봐야만 하는 우리의 입장은 정말 곤난하였다. </p> <p class="ql-block"> 돌아오는길 꼭 들려야 한다는 명소—동경만 아쿠아라인에 오르기까지는 거의 한시간반 지연되여야 도착하였다. 쨍쨍하던 해빛은 시들어져 뿌연 바다만 보인다. 우리는 해면위에 5층으로 건설된 호화스러운 휴계실로 들어갔다. 바다의 다리위에 이런 건물이 우뚝 서있다는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석양이 물들인 서쪽하늘 구름속에서 후지산이 어렴붓이 보인다. </p> <p class="ql-block"> 우리는 휴계소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교통정체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8.6키로메터의 해저턴널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오르니 교통정체는 더 심해졌다. 엄마는 물론 우리도 몹시 지쳤다. 저녁 여덟시반에야 집에 도착하였다. 매부가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마운 밥상이였다. </p> <p class="ql-block">3월31일. 오늘도 피곤을 뒤로하고 우리는 吉祥寺로 왔다. 쇼핑마니아 막내동생은 계속 쇼핑하겠단다. 제대로 된 사쿠라꽃 구경을 하지못한 나와 엄마는 큰 동생을 따라 井の頭花園으로 왔다. 막 피기시작한 사쿠라나무아래에는 꽃놀이 나온 사람들로 북쩍이고 있다. 서로 다른 동아리사람들이였지만 빼꼭히 한팀처럼 앉아 즐기며 식사하는 사람들 웃음도 말소리도 가볍게 가볍게 하여 왁짜지껄하는 우리 중국사람들과는 너무 비교가 된다. </p> <p class="ql-block">활짝 핀 꽃나무를 배경으로 나는 엄마와 여러장의 명장면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찍기를 강력히 거절하던 엄마는 우리와 같이 찍는 사진을 받아주기 시작하였다. 한장이라도 엄마와의 사진을 더 남기려는 나와 쭈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지 않은 엄마와의 줄당기기는 막을 내렸다. 참 고마운 일이였다. </p> <p class="ql-block">4월1일 오늘은 일본에서의 마지막날이다. 엄마의 피곤을 풀어주려고 오늘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 우리는 생선마트로 잠깐 다녀왔다. 저녁에도 동생은 또 게와 회 초밥등을 풍성히 차렸다. 두주일 동안 우리는 하루에 한끼도 빠짐없이 회를 먹었다.때로는 두끼 연속 먹었지만 먹을수록 회와 초밥의 맛에 빠져들어갔다. 열심히 모셔준 동생부부에게 감사할 뿐이다. 두주일 동안 우리는 꽃을 찾아서 맛집을 찾아서 정말 많이 다녔다. 엄마의 지친 짜증섞인 투정도 자장가처럼 받아들이며 우리는 웃으면서도 코등이 시큰시큰하여 코맹맹이 소리도 하고 눈물이 핑 돌면서도 마음껏 웃으며 즐거운 추억을 남겼다. 그만큼 엄마와 함께하는 일분일초가 너무나도 소중했으니 말이다. </p> <p class="ql-block">4월 2일 아침 오늘은 일본을 떠나는 날이다. 날잠을 자고난 나는 새벽같이 엄마와 같이 걸었던 공원으로 왔다. 행복했지만 가슴 짜릿하게 걷던 우리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물길에 비껴있는듯하다 우리 모두가 힘들었지만 엄마생전에 즐거운 추억을 남길수있었기에 그래도 오기를 잘했다 위안하면서도 큰동생의 건강이 더 큰 근심으로 되여 마음을 짓누른다. 돌아오는길 龙嘉비행기장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힘들었지만 밤 열시 무사히 집에 도착하였다. 즐거웠던 이 모든 시간들이 먼 훗날에는 때로는 즐거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다가와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할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엄마생각에 어김없이 즐거울 것이고 또 엄마 생각에 어김없이 울먹일것이다. </p> <p class="ql-block"> 우리가 일본에서 돌아온후 5.1절을 계기로 4월 27일 일본에서 동생부부가 왔다. 그들은 시집과 친정의 모든 어르신들을 찾아뵈였다. 진짜로 효를 행한 걸음이였다. 덕분에 우리자매는 즐거운 려행의 여운을 즐길수 있는 기회를 또다시 가졌다. 정말로 보고보아도 웃고웃어도 끊없이 즐겁기만한 자매의 정이였다. </p> <p class="ql-block">5월 12일 동생은 일본으로 돌아갔다.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배웅대오가 이렇게 성대하느냐고 하면서 동생은 쑥스럽단다. 즐거운 나날에 대한 보답이였다. 다시한번 “피는 물보다 찐—하다”감동의 여운을 남기는 순간이였다. 제일 어린 승윤이까지 둘째맴매 배웅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참으로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것이다. 우리 모두 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잘 살아가자.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