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르몬또브 (Lermontov/莱蒙托夫) 의 文学 庭园

레르몬또브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단편소설&nbsp;&nbsp;</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국경 위의 집&nbsp;</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엘리아스 카네티[영국]</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엘리아스 카네티 (Elias Canetti)&nbsp;영국 작가.</p><p class="ql-block">출생-사망; 1905년 7월 25일, 불가리아 - 1994년 8월 14일</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주요저서; 《군중과 권력》, 《현혹(眩惑) Die Blendung》(1935) 등을 남겼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수상;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가 마악&nbsp; 식탁 앞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프록 코트를&nbsp; 입고, 머리에는 굴뚝 모자를 쓴 사람들 몇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섰다.&nbsp; "안녕하십니까. 우리는&nbsp; 국제기구 상부기관에서&nbsp; 왔습니다." 그들이 말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 예기치 않은 손님이 온다는 것은 우리에겐 좀&nbsp; 난처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의 땅이나 부쳐먹는 가난한 시골사람이니까.&nbsp; 그날 우리의 저녁 음식은 만두였고,&nbsp; 자루에다 짚을 넣은 우리의 이부자리는 벌써&nbsp; 땅바닥에 깔려 있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는 신사들에게 식사를 권했지만, 그들은 외교관의 예법이 그렇듯, 아주 정중하게 거절했다. "우리는 여기에 새로운 국경선을 제정하기 위해 파리에서 파견되어 왔습 니다. 어서 편히 드십시오. 우리는 국경선만 정하고 곧 가겠습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nbsp;"왜 바로 여기지요?" 우리가 물었다. "그런 거라면&nbsp; 마당 건너라든가 집 뒤로 긋지 않고요?"</p><p class="ql-block">"그럴 순 없지요." 그들이&nbsp; 말했다. "국경이란 개인의 편의를 따를 수&nbsp; 없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건 저 복도 한 가운데를&nbsp; 지나 이 식당을 양분할 수도 있는&nbsp; 겁니다. 그래서 조리대는 국경 이쪽, 식탁은 국경 저쪽이 될 수도 있는 거죠."</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마음대로들 하시구료. 담을 쌓는 것이 아니라&nbsp; 금을 긋는 것이라면 그게 무슨 대수겠소" 우리 장모님의 말씀이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들은 회의용으로 쓰기 위한 탁자 하나를 빌리자고 했다. 우리가 네모 난 탁자를 내주자 그들은 곤란한 얼굴을 했다. 회의용&nbsp; 탁자는 둥글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nbsp; 탁자가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들은 결국 톱을 좀 빌리자더니 탁자의 모서리를&nbsp; 잘라서 둥그르름한 모양이 되게 하고서야 자리를 잡았다. 결국 우리 탁자 하나만 작살이 난 것이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부엌으로 물러났다. 그들이 자리&nbsp; 잡은 거실에서는 흥분된&nbsp; 음성이 들려나오곤 했다. 한 번은 누군가가&nbsp; 울기도 했다. 외교관들은 간간이 달려나와&nbsp; 물 한 컵을 청해 마시고는 또&nbsp; 즉시 그리로 되돌아가곤 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졸음이 와서 자고 싶어했고, 집 안은 그을음 냄새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나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밤 한 시경이 되었을 때 그들의 토론은 결말을 보는 듯 싶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둘러 앉은 탁자를 반으로 가르면서 옷장 앞을 지나 창문 쪽으로&nbsp; 곧장 국경선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이것도 곧바로 결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할 경우엔 한쪽의 자연보고가&nbsp; 너무 크게 훼손을 입는다는 것이었다. 즉 이 경우엔&nbsp; 맛좋은 월귤나무 열매 술이 가득들어 있는 커다란 술통이 옷장 쪽으로 속하게 되는 것이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결국 새벽나절이 되었을 때야 그들은 일을 끝내고 물러갔다. 그러나 우리가 집 안에서 움직이는 데 크나큰&nbsp; 어려움은 없게 되었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즉 모든 식구에게 영구 통행증 같은 것이 발급된 것이다. 옷장에서 침대로 갈 때라든가, 또는 부엌 부뚜막에서 마루청으로 나갈 때 그 증명서만&nbsp; 제시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른과 동반한 아이들에겐&nbsp; 따로 검사를 하지 않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증명서 조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우리집엔 두 사람의 제복을 입은 관리가 파견되었다. 각기 국경 한쪽의 권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 회의가 있던 바로 그 다음 날에 파견되어 왔는데, 그런대로 봐줄 만한 사람들었었다. 한 가지 곤란한 점은 우리 음식을 죽자고 넘겨다&nbsp;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배가 출출해서 그러는 것인데 어쩌겠는가. 우리는 그들을 식사에 초대했다.&nbsp; 그럴 때 그들은 입으로는 예절 바르게&nbsp; 사양했지만, 한 번도 진짜로 안 먹고 물러나는 적은 없었다. 나중엔 빈 말로도 같이 먹자는 소리는 꺼내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고는 별일없이 지나갔다.&nbsp; 딱 한 번 이런&nbsp; 사건이 있었다. 밤에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국경선은 바로 내 옆을 지나고 있어서, 내 맞은 편의 옷장은 국경 저쪽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특별 야간 통행증'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잠이&nbsp; 깨서 무의식적으로 팔을 뻗었는데, 그 손에 장화를 신은 다리 한 짝이 잡혔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거 누구냐!" 내가 소리쳤다.</p><p class="ql-block">"쉬, 조용히 해! 세관원이 깨요." 누군가가 속삭였다. 나는 곧 이게 밀수꾼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경보를 울렸다. 곧 불이 켜지고, 아이들이 깨어났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내 손에 잡힌 것은 월귤나무&nbsp; 열매 술을 몰래 한 잔 따라 마시려던 한쪽 세관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뭐라고 한단 말인가. 나는 얼결에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장화를 신은 채 남의 침대를&nbsp; 넘어다니다니, 당신 미쳤소! 새로 빤 시트를 깐 것이 보이지도 않아요? 아무리&nbsp; 나라에서 나온 사람이라도&nbsp; 그렇지, 장화쯤은 벗을 줄 알아야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 양말이 더러워서..." 상대방은 이렇게&nbsp; 핑계를 대고 물러갔다. 나는&nbsp; 이 일로 그 이튿날&nbsp; 내내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어쨌든 저쪽은 권력을 가진 사람인데,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하고도 무사할 것인가 말이다. 결국 나는 그날&nbsp; 낮 남몰래 월귤나무 열매 술을 한 병 따라서 그의&nbsp; 책상 밑에 넣어 주고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국경은 우리 식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음식이 조리되는 부뚜막은 국경 저쪽이었고, 식탁이 놓여있는 곳은 국경의 이쪽이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물건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어야 한다. 심지어는 포크 같은 것에 대해서까지도. 그러나 일반적으로 먹는 식사에 대한 세율은&nbsp; 그리 높지가 않았다. 다만 별식에 해당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파이 같은 것에는 엄청난 세금이 붙었다. 그것도 양쪽에서. 그래서 파이같은 것을 먹어 본다는 것은 일찌감치 단념하고 말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양국의 관계는 그 국경책정회의 때&nbsp; 일치를 본 성명서에 의해 서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nbsp; 가끔 대표단의 위원들이 우리집에 찾아와서 묵고&nbsp; 가는 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소파 위에서 자거나 부엌 의자들을&nbsp; 한데 붙여 놓고 그 위에서 잤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는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날 저녁 음식은 후추를&nbsp; 친 쇠고기 스프였다. 이때 아내가 부탁을 해왔다. "여보, 초에 절인 오이 몇 개만 갖다 주세요."</p><p class="ql-block">그것은 마루방에 있는 통 속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컴컴한 마루방으로 나아갔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런데 그때 뭔가 발길에 채였다. 전에는 같은 자리에 아무 것도 없던 것을 아는 터라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성냥을 켜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엔 벙커가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이&nbsp; 아닌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갓 만들어진 벙커였다. 그 위엔 위장을 하느라고 초에 절인 오이 몇 개가&nbsp; 놓여 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nbsp; 평화시에 무슨 벙컬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들이 병정놀이를 하느라고 세워놓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때도 저녁 식사 때였는데, 나는 포크를 식탁 밑으로 떨어뜨렸다. 식탁보가 밑에까지 깊게 드리워 있어 굴러 떨어진 포크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결국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어두침침한 그곳에서 공병대의 마크를 단 어떤 육군 중위와 부딪 치고 말았다. 그는 납작 엎드린 채 쌍안경으로 식탁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다리 사이로 마루방 쪽을 살피고 있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의 철모에는 잎사귀 달린 나뭇가지가 위장으로 꽂혀 있었다. "쉬, 당신도 애국자라면 조용히 하시오!" 그가 내게 속삭였다.</p><p class="ql-block">"글세, 그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하고, 나직이 대꾸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집안에서 움직일 일이 너무 많구료.&nbsp; 이쪽에 갔다가는 곧 저쪽엘 또 가야하고, 그러니 당최 내가 어느 쪽에&nbsp; 속한 사람인지 알겠어야 말이지 원. 점심&nbsp; 먹고 낮잠 잘 때라면 나는 이쪽&nbsp; 소파에 눕곤 하니까. 그때라면 나는 분명&nbsp; 이쪽 편이 이기는 걸 바라지요. 그러나 밤에 자러 가기 전 발을 씻을 무렵에는, 그 장소가 저쪽인 만큼, 내가 있는 그쪽이 내 쪽으로 여겨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선 정말 훌륭한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 더럽게 어렵지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저 잠자코만 계시오!" 이렇게 말하고 중위는 내가 떨어뜨린 포크를 집어 주었다.</p><p class="ql-block">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계속해서 빈번히 발생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우리가 먹는 스프 그릇 속에선 양쪽에서 서로 설치한 소형 지뢰가 발견되는 판이었다. 특히 토마토 스프나 감자 스프를&nbsp; 먹을 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멀건 고기국을 먹을 때나 안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멀건 고기국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니까.</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이 해의 내 생일은 치르지 않을 셈이었다. 그런 모든 사건들 때문에 나는 좀 긴장이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양쪽에서 그런 우스꽝스러운 쇠붙이 망치를 집안 도처에다 설치해 놓은 것이어서 집안엔 당최 사람들을 초대해 들일 공간이 없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내&nbsp; 생일이 되기 이주일 전부터 생일 축하 카드들이 사방에서 와대니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그것도&nbsp;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그것들은 국경 양쪽에서 답지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을 놓치지 않고 찾아와서 축하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디서 날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게 되었는지 몰랐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고 생일날엔 정말 대집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모두가 전혀&nbsp; 낯선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만고만한 나이의 젊은 사람들이었고 옷차림도 두 패로 나뉘어 말쑥하니 동일했다. 그들은 아주 쾌활하게 집 안을 활보하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손님 접대를 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모자를 이리 주시지요?", "외투를 벗으실까요?"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그런 것을 거부했다. 감기에 걸릴까봐 싫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외투속과 모자 속엔 무엇을 감추었길래 그러는 것일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아직 상대편에 대해 적대감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까?</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담배를 사와야겠다고 하고 얼른 집을 빠져 나왔다. 어디 다른 데 일자리를 빨리 구하고 집을 얻어서 식구들을 데리고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찾아오기나 할는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끝)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