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배우 김문혁

방미선

<p class="ql-block">3월 8일 늦은 오후,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김문혁 배우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먼길을 떠났다는 애달픈 소식을 접했다.</p> <p class="ql-block">고 김문혁 배우 </p><p class="ql-block">(1966. 8. 6 ~ 2024. 3.8)</p> <p class="ql-block">연기력이 한창 물이오른 40대 중반에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졌던 문혁이가 14년간의 간거한 투병생활에 종지부를 찎고 그토록 사랑했던 무대와 관객들의 곁을 떠나갔다. 이젠 모든 아픔과 힘듦을 훌훌 털어버렸으니 먼 길을 떠나는 걸음이 가벼우리라 생각되면서도 아까운 배우의 때이른 요절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릿해졌다....</p> <p class="ql-block">1. 김문혁 배우와 나</p><p class="ql-block">김문혁 배우를 알게 된 건 1992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최인호 연출가와 내가 신진배우 모집 차 길림예술학원연변분원 연기전공 졸업생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 중 퍽 나이들어 보이는 학생이 바로 김문혁이였다. 선생님의 소개로 문혁이가 네번이나 시험을 보고서야 음악학부에 입학했었는데 후에 전공을 연기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나는 "시험락제생"으로서의 동병상련 “同病相怜” 마음이 생겨 그때로부터 저으기 문혁이를 주시하게 되었다. </p> <p class="ql-block">그 후 연길시조선족구연단의 공연무대에서 문혁이가 펼치는 소품연기를 보면서 그에게 잠재된 천부적인 재능, 즉 연기순간에 보여지는 톡톡 튀는 생동감과 그 생동감이 연기 매 순간순간 끊기지않고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특징을 발견했다. 비록 희극소품에서 보여졌지만 그것은 연기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보귀한 재부이고 쟝르의 구분이 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우수한 종자였다. 그때 나는 그런 보귀한 종자를 품은 문혁이가 노력을 아끼지않는다면 반드시 훌륭한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p> <p class="ql-block">어느 연출가나 중요한 드라마나 연극, 혹은 소품을 만들때면 자연히 극중 주인공이거나 주요역할 적임자로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있는데 나도 텔레비죤 련속극 "백설화"와 "샘"의 연출을 맡았을 때 주인공역으로 제일 먼저 생각나는 배우가 바로 김문혁였다. 1994년에 촬영한 드라마 "백설화" 에 출연하기 전에 문혁이는 드라마 연기를 펼친 적은 없고 주로 희극소품연기로 관객들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연기우량종자를 품은 문혁에 대한 믿음으로 별 고민없이 정극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그를 선정하였고 이어 1996년에 촬영한 드라마 "샘"의 주인공으로 역시 문혁이를 택했는데 이 두편의 드라마에서 그는 주인공 아버지역을 기대 이상으로 출중하게 창조했다. 이렇게 문혁이와 나는 한 직장에 같이 있은 적도 없고 사적으로 막역지우도 아니지만 각자 자신의 예술생애에서 각별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작품, 즉 텔레비죤 드라마 "백설화" 와 "샘" 에서 연출가와 주인공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으로 오랜시간 특별한 우정을 이어왔다.</p> <p class="ql-block">2. 문혁이가 들려준 이야기</p><p class="ql-block">드라마를 함께 만들면서 나는 문혁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론 자연스럽게, 많이는 내가 의도적으로 이야기 화두를 던졌는데 그것은 연출가로서 연기계발과 효율적인 연출진행을 위해 배우를 잘 알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p><p class="ql-block">문혁이가 들려준 이야기가 아직도 귀가에 쟁쟁히 울린다.</p> <p class="ql-block">유전인소 때문인지 문혁이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예술에 흥취가 많았다. 아버지는 작곡가이지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해서 집에 워낙 여러가지 책들이 많아 문혁이는 언제든지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사는 집이 바로 예술학교동네다 보니 매일 보고 듣는 게 노래와 악기소리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책 읽기는 문론 음악에도 마음이 쏠려 한때 예술학원의 기량높은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크라넷과 색스폰도 배우고 손풍금도 쳤고 또 미술공부도 좀 했는데 크면서 흥취가 점차 독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p> <p class="ql-block">텔레비죤 현속극 “사랑의 품” 한장면 (1994년)</p> 책을 읽으면서 문혁이는 책 속의 많고 많은 이야기와 각양각색 주인공들의 형상에 깊이 감동하고 감탄하면서 멋진 글을 써내는 작가에 대한 존경과 숭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였다. 나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좋은 책을 써내는 훌륭한 작가로 될 수 있을까? 작가의 꿈이 서서히 가슴속 깊은 곳에 싹이 트면서부터 고중생이였던 문혁이는 리과공부는 뒤전으로 팽개치고 꿈을 이루기위해 애쓴답시고 문학서적 읽기에만 전념했다. <p class="ql-block">청춘의 혈액은 마술사란 말이 틀림없는 것 같다. 얼마지나지 않아 문혁의 당찬 꿈이 마술처럼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책 속 이야기에 감동하던데로부터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언제가부터는 그 관심이 또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연극이나 드라마에 대한 관심으로 이전되면서 극중 주인공 인물로 신명나게 연기를 펼치기 싶은 다른 한 색광스러운 꿈을 품게 되였다. 말하자면 배우로 되고 싶었다.</p> <p class="ql-block">텔레비죤 현속극 “사랑의 품” 한장면 (1994년)</p> 배우로 되고픈 욕망은 돌연 쓰나미의 기세로 문혁이를 덮쳤다. 강렬한 욕망의 사촉하에 문과에만 열중하고 그 외 모든 학업을 페했다. 자리에 누워도 배우 꿈, 과당시간에도 배우 꿈에 빠지다 보니 리과성적이 일락천장, 천길나락으로 떨어지자 문혁이는 아예 고중을 중퇴해버렸다. 그리고 배우 꿈 실현을 향한 첫 걸음으로 예술학교 응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로임으로 버텨가는 생활이라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아무것도 안하면서 공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밥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벽돌공장에서 운반공으로도 뛰였고, 석탄을 차에 싣고 부리우는 막일도 했고, 삼륜차로 작은 식당이나 편리점에 물건을 날라다주기도 했다. 암튼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대로 다했다. 아무리 어지럽고 힘들어도 꿈을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모든걸 극복할 수 있었고 아무리 괴롭고 자존이 상하는 일이라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는데.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넘기 힘든 언덕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고중시기에 놓쳐버린 수리화였다. <p class="ql-block">텔레비죤 련속극 "샘" 주인공 부부, 김문혁 장련옥. <span style="font-size: 18px;">극본 리광수, 연출 방미선, 1996년</span></p> 문혁이는 련속 삼년 예술학원에 응시해서 전공은 쉽게 합격되였는데 수학, 물리, 화학시험에 통과되지 못해 세번이나 미끄러졌다. 세번째 불합격 통지를 받고는 시험을 보느라 훌쩍 지내버린 3년이 너무 아깝고 여기저기 고된 막일에 부대낀 3년 세월이 너무 억울해서 미칠지경이 되자 아무데라도 화풀이를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 어느날, 밤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예술학원 청사를 빙빙 돌다가 음악학부주임 사무실의 유리창을 묘준해 힘껫 돌팔매를 날렸다. 와자짝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박살났다. 그러고도 성차지않아 캄캄한 예술학원마당의 한 복판에 두 다리를 떡 벋히고 서서 "예술학원인데 전공이 합격되면 입학시킬게지, 수리화는 무슨 개떡같은 수리화!" 하고 목이 터지라 소리 질렀다. 그제야 숨통이 좀 열리는 듯 했는데 한편으로는 겁이 더럭 났다. <p class="ql-block">문론 곧 사실이 탄로나서 예술학원 보위과에 불리워갔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라 다시 퍼담지도 못하고 퍼담을 생각도 없는지라 어떤 처분이 떨어질지 운명을 그냥 하늘에 맡겨버렀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 한바탕 호된 꾸지람만 듣고 무사히 풀려났다. 알고보니 예술학원 지도부에서 문혁이가 저지른 사건이 엄중하고 영향이 안좋지만, 그러나 애가 얼마나 예술을 사랑하면 세번이나 시험을 봤겠는가, 얼마나 예술학교에 붙고 싶었으면 이런 일까지 저질렀겠냐고 넓고 깊은 마음으로 착하게 처분했다는 게였다. 눈물이 찔끔났다. 문론 교수아버지의 덕목 덕을 많이 입은 건 더 해석이 필요없고, 그런데 그 뒤 예술학원에 김교수가 "괴물" 아들을 두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문혁이는 뿔난 아버지를 꽤 오래동안 슬슬 피해 다니는 곤혹을 치뤘다.</p> <p class="ql-block">텔레비죤 련속극 "샘" 주인공네 식구들 (1996.6)</p> 이듬해 문혁이는 또다시 시험장에 들어섰다. 배짱이 두둑하다고 해야 할지, 얼굴이 두껍다고 해야 할지, 네번째로 맞은 시험은 문혁에게 있어서 이젠 리상이나 꿈을 떠나서 어쩌면 사활을 건 전투였다. 그번 시험장에서 문혁이는 죽고살기로 여러가지 방법을 다해 요행 문화과 시험을 통과하여 끝내 음악교육학부에 입학했고 그리고 한달 후 운좋게 그해 마침 새로 설립된 연극학부로 적을 옮겼다. <p class="ql-block">텔레비죤 련속극 "샘" 한 장면 </p> <p class="ql-block">마침내 배우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 길을 걸으면서 문혁이는 속으로 몇십번, 몇백번을 윽별렀다고 했다. 천번만번 자기와 굳게 약속했다고 했다. 시험으로 흘러보낸 4년을 꼭 되찾고 이제 맞이하는 세월을 곱배기로 살겠다고.......</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문혁이는 해냈다. 문혁이는 자기와의 약속을 굳건히 지켰다. </p> <p class="ql-block">1992년 예술학원을 졸업해서부터 2010년까지 문혁이는 70여부의 소품을 무대와 텔레베젼 화면에 선보였고 3부의 텔레비죤 드라마에서 주인공역을 멋지게 창조했으며 또한 70여부의 소품 중 자체로 창작, 연출, 출연한 작품이 40여부를 헤아린다. 그는 또한 부지런히 신나고 정열적인 연기창조로 조선족의 "웃음의 별" 영예와 함께 수많은 팬을 가진 진정한 배우로 성장했다. </p> <p class="ql-block">텔레비죤 련속극 "샘" 삼륜차로 로모를 병원에 호송하는 주인공 아빠 (1996.6)</p> <p class="ql-block">사실 문혁이가 "아깝게", "억울하게" 흘러보낸 4년은 되려 그가 훌륭한 배우로 성장하는데 큰 보탬을 한 보약같은 시간들이라고 할 수있다. 그가 읽은 수많은 책들이 그의 기억의 창고에 빼곡히, 두텁게 축적되여 예술창조의 자양분으로 발효되였고 그가 비지땀을 휘뿌린 벽돌공장과 석탁무지, 그리고 삼륜차는 그야말로 그를 "웃음의 별"로 탄생시킨 걸죽한 밑거름이였다. </p> <p class="ql-block">어릴적부터 책에 매달려 책과 씨름했던 세월이 있었기에 극본을 마주하면 곧바로 추억의 창고에서 생생한 인물형상의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었고 자체로도 당당하게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음은 물론, 또한 젊음의 고통에 반죽되고 눈물로 적신 각가지 생활체험은 그의 인물형상창조에 단비와 이슬로 되어 그를 소품세계의 "웃음의 꽃"으로 활짝 필 수 있게 했다.</p> <p class="ql-block">텔레비죤 극 “샘” 에서 능란하게 삼륜차를 다루는 배우 문혁이</p> <p class="ql-block">텔레비죤드라마 "샘"을 찍을 때 내가 "주인공이 삼륜차를 몰줄 알아야 되는데 촬영하기 전에 문혁이가 우선 삼륜차운전을 잘 배워야겠다"고 했더니 "삼륜차운전말입니까? 삼륜차몰기라면 내가 선수지요" 하고는 기막히다는 듯 헉헉 웃으면서 그때 바로 위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p> <p class="ql-block">3. 소품 "딱꿍"과 두꺼운 혀</p><p class="ql-block">나는 문혁이와 단 한번 소품을 함께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2002년 텔레비죤 문예야회에서 출연된 "딱꿍"이다. 원래는 예술학원 연기전공 학생들의 련습용이였는데 배우를 잘 선택하면 뭔가 좀 될것 같아서 문혁이를 불렀다. 전화를 받자 곧 달려온 문혁이와 당시 예술학원 학생이였던 애엄마 역과 함께 예술학원의 내 사무실에서 대사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문혁이가 좀 이상했다. </p> 소품 제목이 "딱꿍"이고 대사 전반에 딱꿍이란 대사가 쫘악 깔려서 처음부터 "딱꿍"소리를 챙챙하게 내야 되는데 문혁의 발음에서 "딱꿍" 소리가 들리지않았다. 귀를 강구어 자세히 들어도 딱꿍소리가 잘 들리지않자 대사맞춤을 중지하고 문혁이더러 "딱꿍"소리를 크게 내보라고 했다. 그런데 맙시사! 챙챙한 "딱꿍" 소리는 커녕 목소리가 점점 더 흐지부지하더니 나중에는 헛기침같은 소리밖에 나오지않았다. <p class="ql-block">  "안되겠어요. 딱꿍 소리가 전혀 안들리네. 웬일이지?" 하면서 내가 문혁의 손에서 작품을 도로 가져오니 문혁이가 다급히 작품을 도로 앗아가며 헤헤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방도, (方导演)내 원래 혀가 이렇게 두껍습니다. 보세요" 그러면서 문혁이가 나를 향해 혀를 쑥 내밀어 보였다. "어이구, 쓸데없이 혀타령은 무슨 혀타령" 나도 허구픈 웃음을 짓자 문혁이가 정색해서 말했다. "사실은 내 혀가 정말 기뚝차게 두껍습니다. 혀가 두꺼운 바람에 내 발음을 똑똑하게 하느라고 여태껏 얼마나 고생했는지 압니까? 예술학교 때 연기공부를 하면서 내절로 딱 발견했는데...그래서 보통 소품작품을 본 후 혀를 구부려야 하는 대사는 어느 작품이나 나절로 다른 대사로 살짝 수정합니다. 이건 정말 비밀인데... 그런데 오늘 요놈 "딱꿍" 탓에 내 비밀이 방도한테 딱 들켜버렸습니다." 그제야 내가 문혁이더러 입을 벌려 혀를 다시 내밀어보라 하고 자세히 보니 문혁의 혀가 확실히 좀 두꺼워보였다. 그래서 문혁이더러 혀를 입 천장에 대보라고 했더니 에크! 혀가 너무 두꺼운 탓에 아무리 애써도 입천장에 닿이지않고 겨우 앞이 안쪽에까지 닿았다. 내가 하도 어이없어 박장대소하며 "소품 대왕의 혀가 원래 잔페인걸 몰랐네. 비밀은 꼭 지키겠으니 문혁이 이번 소품"딱꿍"은 그만둡시다. 다른 배우를 찾겠어요" 라고 했더니 "안됩니다. 비밀도 지켜야 되고 소품도 내가 해야 됩니다!"하면서 생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내가 "딱꿍"이 별로 큰 작품도 아닌데 그럼 그런대로 해보라고 하니 아무리 작은 작품이라도 배우란 이름에 걸맞게 성의를 다해야 하고 더구나 관객들에게 꼭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딱꿍" 소리가 들리지않는 "딱꿍"을 정성다해 열심히 연습했다. </p> <p class="ql-block">소품 "딱꿍" 김문혁 장평 2022</p> 요즘 위쳇에 오른 "김문혁 선생님의 출연한 재미있는 소품 10편 모음" 중에 있는 "딱꿍"을 다시 보노라니 그때 그 일이 어제 일인듯 새삼스럽다. 그리고 " '딱꿍' 소리를 방도의 요구대로 챙챙하게 내지못해도 꼭 방도를 실망시키지 않게 역할을 잘 소화하겠습니다" 고 정색해서 말하던 문혁의 모습도 눈앞에 삼삼거린다. <p class="ql-block">4. 택시 요금에 얽힌 우정</p><p class="ql-block">2019년 겨울의 어느 하루, 전주비빔밥 집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택시를 타려고 나섰는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빈 택시가 없어서 배우들과의 연습약속을 어길가봐 속이 바질바질 탔다. 한참을 기다리는데 문득 택시 한대가 속도를 멈추며 나한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야 탈수 있나보다 했는데 찬찬히 보니 운전수 조수석에 역시 손님이 앉았기에 나는 또 락심하고 큰길로 눈길을 돌렸다.</p> <p class="ql-block">그런데 그 택시가 내 옆에 멈춰선 후 "방도, 방도" 하는 어눌한 소리가 들리기에 머리를 보려 보니 조수석의 손님 문혁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빨리 나더러 뒤쪽에 앉으라고 손시늉을 하자 오랜만에 본 문혁이가 반갑기도 하고 또 시간 때문에 몹시 안달을 떨던지라 나는 제꺽 뒤자리에 앉으면서 인사를 나눈 후 어디로 가는가고 물었다. 문혁이도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침 맞으러 간다고 하면서 역시 나보고 어디로 가는가고 물어왔다. 음력설야회 프로 연습하러 텔레비죤방송국에 간다는 말에 옅은 한숨을 뱉어내는 문혁의 애처로운 얼굴이 그의 뒤모습을 통해서 짜릿하게 안겨왔다. 내가 얼른 문혁이가 많이 나아져서 참 보기좋네. 택시를 잡지못해 애탔는데 이렇게 만나서 정말 너무 반갑고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이 택시가 벌써 연변병원 동문 부근에 다달았다. 택시가 멈춰서자 이 부근의 진료소에서 침을 맞는다고 하면서 문혁이가 꼬깃꼬깃 접은 돈 20원을 운전수에게 건넸다.</p> <p class="ql-block">내가 급히 허리를 굽혀 운전수 손에 놓인 돈을 주어서 문혁의 손에 쥐어주었더니 돈을 받고는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운전수에게 빨리 떠나라고 손짓하는 한편 그 돈을 다시 택시창안으로 뿌려넣었다. 눈물이 팍 쏟아졌다. 나는 터져나오려는 흐느낌을 애써 참으면서 차창 밖으로 머리를 한껏 내밀어 휘우뚱거리며 저만치 걸어가는 문혁이를 뒤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택시기사가 중어로 "두분 친한 사이인가 봅니다. 손님은 어디로 가시죠" 하면서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택시가 곧 텔레비죤방송국에 닿자 내가 손짓으로 여기라고 하자 운전수가 거스름 돈 3원을 내밀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더는 참지못하고 그대로 내려서 골목길에 달려가 주저앉아 크게크게 흐느꼈다.....</p> <p class="ql-block">”배우는 인기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p> <p class="ql-block">하늘나라에 가서도 문혁이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 또다시 작품도 만들고 무대에도 서고 드라마에도 얼굴을 내비치고, 그리고 그의 곁에 또다시 열정적인 팬들이 수두룩히 모일 것 같다...</p> <p class="ql-block">이게 바로 내가 아는 배우 김문혁이다. </p> <p class="ql-block">방미선 상해에서 2024년 3월 18일</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