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돌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p><p class="ql-block">최홍련</p><p class="ql-block"> 해살 좋은 날 나는 기분 좋게 강가를 거닐어본다. 찬란한 해살줄기를 가득 받아안은 강물은 무수한 은비늘을 번뜩이며 어디론가 자꾸 흘러간다. 아! 문득 시야로 유난히 빛나는 무언가가 들어온다. 바로 돌아였다. 가까이에 다가가보니 특이한 모양의 예쁜 돌아였다. 나는 두 손으로 돌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돌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속삭여주는듯 싶었다. 그동안 비바람과 눈보라의 세례를 받았을 테고 그 누군가의 발에도 짓밟혔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내 손 우에서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소곤거리는 것이다. </p><p class="ql-block"> 몇년전 연변가사협회에 가입하면서 나는 우연히 수석에 대해 들었고 그후 문인들과 함께 탐석에 나서게 되였다. 그러다 수석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나는 마침 수석에 조예가 깊은 김학송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였고 돌에 대한 관심이 사랑으로 변하면서 탐석은 어느덧 나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p><p class="ql-block"> 20여년간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사실 나한테 힐링을 할 수 있는 취미가 필요했다. </p><p class="ql-block"> 다행히 탐석에 심취하면서 나는 점차 건강과 더불어 활기를 되찾게 되였다. 또한 시나 가사를 창작할 때도 많은 영감을 얻었다. 탐석을 통해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았는데 그것이 그대로 문학창작에 밑거름이 되여주며 시너지효과를 이끌어냈다. 그렇게 창작한 시와 수필은 《흑룡강신문》,《연변문학》등 간행물에 발표되였고 내가 쓴 여러편 가사들 중 김기철 작곡으로 된 <당신의 사랑>은 동북3성 신작품평의에서 2등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모든 영예는 탐석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 탐석이 아니였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활기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p><p class="ql-block"> 탐석은 한번 빠지면 헤여나오지 못하는 블랙홀 같은 마법의 존재였다. 하여 2018년부터 나는 아예 옷가게를 직원들한테 맏기고 전문 탐석에 나섰다. 두만강류역인 신기동,삼합,개산툰 일대를 누비였고 가야하하류역에 속하는 하가촌, 하목단, 삼도구, 왕청의 마반산, 추송,십리평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후에는 윗챗’연변관상석그룹’ 멤버들과 함께 대흥구,대북구,계관 등지에 가서 여러가지 화산석도 탐석했다. 돌밭이 있는 곳이라면 귀가 솔깃해 어디든 찾아나섰다. 그렇게 탐석과 함께 해온 륙칠년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가버렸다. 몇년간의 탐석을 해오면서 ‘연변관상석그룹’의 왕청 멤버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는 일년에 한두번씩 모임을 가졌는데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좋은 수석을 구경했다. 그중 맘에 드는 수석이 있으면 한두점 사기도 하고 기증도 받았으며 또 수석에 대해 감정교류를 진행했다. </p><p class="ql-block"> 수석에는 두가지 연출이 있는데 하나는 좌대연출이고 하나는 수반연출이다. 처음에 나는 등갓(灯罩)에 모래를 담은 뒤 수석을 올려놓았는데 후에는 수반을 사서 연출하는 것까지 일일이 가르침 받았다. 매번 탐석에 갔다 오면 그 날 탐석한 돌을 연출해보고 예술품 표준으로 형,질,색이 구비되고 황금비례(20-40센치)를 갖춘 수석을 소장해두었다. 그렇게 수석을 연출,소장,연구,탐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많은 것을 개변하기 시작했다. </p><p class="ql-block"> 나는 큰마음을 먹고 줄곧 세 주었던 집을 새롭게 인테리해 석관으로 만들었다. 도로변 영업방을 석관으로 차린다는 자체는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허나 가고저 하는 방향이 명확해지니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게 되였다. 나는 내가 얻은 소중한 수석들을 나의 아지트-석관에 하나둘 진렬해가며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보람을 느꼈다. </p><p class="ql-block">2020년,연변수석문화협회에서 조직한 년말전시에서 나의 <학수연년>문양석이 동상을 수상하게 되였고 나 역시 연변수석문화협회 비서장으로 입명되였다. 이듬해 연변수석문화협회 몇명 회원들이 장백산조형예술문화협회연구원에 가입했으며 연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 우리의 수석이 당당하게 전시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였다. 그 때 내가 소장하고 있던 <공룡의 부활>이란 제명의 수석이 주목을 받으며 언론매체에 의해 많이 홍보되었다.참 뿌듯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p><p class="ql-block"> 수석을 연출하는 과정은 우리의 생활이나 사업과도 닮아있다. 단정하고 바른 연출은 그 수석 주인의 마음까지 보여준다. 수석의 매력에 빠지면서 나는 자존, 자애, 자률에 대해서도 더한층 배우게 되였다. 흔히들 수집한 돌을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이 보여진다고 한다. 말하자면 “돌이 곧 사람이요,사람이 곧 돌(人如石、石如人)”인 셈이다. </p><p class="ql-block">그러다 작년 가을, 나는 또 탐석에 나섰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이제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제법 괜찮은 수석을 발견할 수 있게 되였다. 또한 그동안 쏟아온 열정과 사랑이 빛을 발하는 순간도 만긱했다.</p><p class="ql-block">바로 대왕오석(大王乌石)과 해후하게 되였던 것이다. 이 수석은 뿔까지도 신통하게 제자리에 박혀있는 황소머리 모양이였다. 앉은 자세는 반듯하나 황소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오후 3시경에 왕청 대선 가야하에서 발견해 연길에 자리한 나의 석관에 운반해오고 보니 자정이 다되였다. 그만큼 운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p><p class="ql-block"> 내가 희귀한 수석을 얻었다는 소식에 여러 수석 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이 찾아왔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손님들이 찾아오며 나의 석관은 그야말로 문턱이 닳을 지경이였다. 모두들 혀를 끌끌 차며 대자연의 신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p><p class="ql-block"> 밤하늘에는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빛을 뿌린다. 고요함이 사뿐히 내려앉으면 살며시 돌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모두들 혀를 끌끌 차며 대자연의 신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p><p class="ql-block"> 이젠 나의 분신과도 같은 수석과 주저리주저리 내 삶을 이야기하며 또 새롭게 이어질 탐석의 날들을 기대해보며 아래 시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련다.</p><p class="ql-block"> 돌밭에 가면 </p><p class="ql-block"> 세상이 온통 돌천지이다 </p><p class="ql-block">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을 바라고</p><p class="ql-block"> 흘러만 가는 강물은 </p><p class="ql-block"> 상념을 싣고 흘러가서 좋다</p><p class="ql-block"> 생각 속에서 생각을 쫓고</p><p class="ql-block"> 생각 속에서 생각을 잊고</p><p class="ql-block"> 갈래갈래 길들을 더 양보하고</p><p class="ql-block"> 돌밭으로만 향하는 길</p><p class="ql-block"> 돌의 숨결에 고스란히 취한다</p><p class="ql-block"> 배낭 하나가 즐겁다</p><p class="ql-block"> 세상은 담지 못해도</p><p class="ql-block"> 돌 하나 담은 배낭이</p><p class="ql-block"> 세월처럼 무늬져 온다</p><p class="ql-block"> 문화시대 2024년 1월호에 발표</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