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사월아 사월아</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눈섭 언저리에서</p><p class="ql-block">사월이 속살거리면</p><p class="ql-block">짐짓 아지랑이 밀어내고</p><p class="ql-block">사월의 속살을 가만히 엿본다</p><p class="ql-block">만개한 정향꽃 향기에 얼마쯤 젖어보다가</p><p class="ql-block">가녀린 풀잎에 마음도 부벼본다</p><p class="ql-block">푸르디 푸른 하늘에서</p><p class="ql-block">흘러가는 세월을</p><p class="ql-block">잠간 멈추고</p><p class="ql-block">사월아 불러보면</p><p class="ql-block">이마전에서는</p><p class="ql-block">사월이 앵돌아지고</p><p class="ql-block">사월의 매끌거리는 잔등을 어루쓸며</p><p class="ql-block">어느 오후 입김으로</p><p class="ql-block">호오- 불어본다</p><p class="ql-block">사월아</p><p class="ql-block">사월아</p> <p class="ql-block">올래 새로 좌대 만들고 추가된 돌들 올렸습니다</p> <p class="ql-block">한영남 시묶음(연변문학 투고)</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산마다 익어가는 시간이 다르다(외 13수)</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똑같은 가을바람을 맞아도</p><p class="ql-block">똑같은 물녘</p><p class="ql-block">똑같은 하늘아래</p><p class="ql-block">산마다 익어가는 시간은 다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봄부터 가슴 부풀리며</p><p class="ql-block">가을가을 고대하던 산은</p><p class="ql-block">너무 오랜 기다림 끝에 짜증스레 익어가고</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심드렁해서</p><p class="ql-block">오겠으면 오고 가겠으면 가라는 식으로</p><p class="ql-block">코방귀나 픽픽거리던 산은</p><p class="ql-block">신기한듯 놀라웁게 바라보다가</p><p class="ql-block">쑥스러운듯 그러나 태연하게 익어간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하늘에 비스듬히 서있던 산은</p><p class="ql-block">계절의 흐름 따위에 관심조차 없고</p><p class="ql-block">땅에 납죽 엎드린 산은</p><p class="ql-block">언제봐도 오가는 계절을</p><p class="ql-block">황송하게 맞이하고 바래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산은 높아서 산이 아니고</p><p class="ql-block">낮아서 언덕이 아니듯이</p><p class="ql-block">고개를 탈아서 덜 익는 것이 아니고</p><p class="ql-block">기지개를 십리나 되게 펴서</p><p class="ql-block">시원하게 익는 것도 아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조상을 모신 산은 양지 바른 곳이라서</p><p class="ql-block">먼저 익고</p><p class="ql-block">오래 익는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버림 받은 산은 쓸쓸함을 못이겨</p><p class="ql-block">겨울까지 빨갛게 타기도 한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산마다 익어가는 시간이 다르듯</p><p class="ql-block">산마다 식어가는 시간도 다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바람개비</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바람은</p><p class="ql-block">종이를 네모로 접으면</p><p class="ql-block">그 속에 가만히 숨는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위질 몇번</p><p class="ql-block">나무꼬챙이에 달아주면</p><p class="ql-block">바람은</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씽하니 달려나와</p><p class="ql-block">신나게 패앵패앵</p><p class="ql-block">돌아간다</p><p class="ql-block"> </p> <p class="ql-block">머리를 깎이우며(외3수)</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머리가 더부룩했어</p><p class="ql-block">목덜미를 자꾸 간질이고</p><p class="ql-block">귀를 참월하게 덮어버리고</p><p class="ql-block">머리가 불편할 정도로 더부룩했어</p><p class="ql-block">미장원에 갔지</p><p class="ql-block">이쁘장한 아가씨가 물었어</p><p class="ql-block">어떻게 잘라드릴가요</p><p class="ql-block">뭐 아무렇게나 보기 좋게 두루</p><p class="ql-block">횡설수설하지 않아도 되는데</p><p class="ql-block">자꾸 말들이 잘려나갔어</p><p class="ql-block">가볍게 한숨 쉬고</p><p class="ql-block">잠자코 들이대고 있었지</p><p class="ql-block">근데 말이야</p><p class="ql-block">머리를 잘리우는데</p><p class="ql-block">아버지 머리카락이 날리겠지</p><p class="ql-block">검지는 않고 완전 멋진 은발도 아닌</p><p class="ql-block">그냥 희부우연 그런 회색빛 머리카락들이</p><p class="ql-block">맥없이 무릎에 툭툭 떨어지겠지</p><p class="ql-block">떨어졌다가 바닥에 뒹굴겠지</p><p class="ql-block">평생 스스로 머리 깎으신</p><p class="ql-block">내 아버지 허옇게 녹슨 머리카락</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트럼벳은 불지 않기로 했다</p><p class="ql-block">- 레핀과 그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에 부쳐</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사품치는 송화강기슭에서</p><p class="ql-block">바이올린의 새된 비명소리도</p><p class="ql-block">첼로의 배밑바닥 깊은 흐느낌도</p><p class="ql-block">파도의 날카로운 호령에 잠재워졌으니</p><p class="ql-block">이제</p><p class="ql-block">트럼벳은 불지 않기로 했다</p><p class="ql-block">아름다운 미풍에 하느작이는 태양도와</p><p class="ql-block">장엄한 파도파도파도파도의 송화강이 그만</p><p class="ql-block">서로 사타구니를 틀어박고 누워버린 이 기슭에서</p><p class="ql-block">우리는 수채화의 아련한 빛이거나</p><p class="ql-block">수묵화의 회색빛 살결은 찾지 말아야 한다</p><p class="ql-block"><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고 해도</p><p class="ql-block">저렇게 하염없는 태양도를 건너다보며</p><p class="ql-block"><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의</p><p class="ql-block">그 넉넉하면서도 시커먼</p><p class="ql-block">근육의 고함소리에 귀를 맡겨버려야 한다</p><p class="ql-block">글쎄 와봐라 파도여</p><p class="ql-block">어디 덤벼라 절망이여</p><p class="ql-block">아무래도 트럼벳은 불지 않는 것이 좋겠지</p><p class="ql-block">드럼으로도 부셔버리지 못하는 이 악장</p><p class="ql-block">외로운 하모니카는</p><p class="ql-block"><모스크바 교외의 밤>이나 흥얼거리라지</p><p class="ql-block">트럼벳은</p><p class="ql-block">전설의 트럼벳은</p><p class="ql-block">불지 말아야 한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살아가는 이야기</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한잔의 술과</p><p class="ql-block">한개비의 담배가</p><p class="ql-block">그렇게도 사치더란 말인가</p><p class="ql-block">세월의 뒤통수를 바라보며</p><p class="ql-block">갑갑답답함을 새기기에는</p><p class="ql-block">우리의 술이</p><p class="ql-block">우리의 담배가</p><p class="ql-block">너무 무색하고 있거늘</p><p class="ql-block">한잔의 술과</p><p class="ql-block">한개비의 담배가</p><p class="ql-block">과연 그렇게도 사치더란 말인가</p><p class="ql-block">황금의 웃음과는 너무 거리가 먼 우리들의 일상</p><p class="ql-block">부스러진 북어조각만치나</p><p class="ql-block">짓뭉개진 시래기먼지만치나</p><p class="ql-block">으깨여진 벌레먹은 사과조각만치나</p><p class="ql-block">값도 없고 쓰잘 데도 없는 우리들의 찝찔한 일상</p><p class="ql-block">소금만치 짜도 소금만치 쓸모는 없는 우리들의 못난 살이</p><p class="ql-block">초라한 행색을 서로 비웃으며</p><p class="ql-block">우리들이야</p><p class="ql-block">우리들에게야</p><p class="ql-block">딱 안성맞춤인 이</p><p class="ql-block">한잔의 술과</p><p class="ql-block">한개비의 담배가</p><p class="ql-block">그렇게도 사치더란 말이냐</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을이 끝날 무렵 우리는 금잔화 한송이로 떠나간 친구의 뒤모습을 그려보았다</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을이 추적추적 내리고있었다</p><p class="ql-block">솨아 세월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p><p class="ql-block">들길에서는</p><p class="ql-block">오랜만에 보는 가을꽃들이</p><p class="ql-block">모처럼 생글거리고있었다</p><p class="ql-block">금잔화 한송이는</p><p class="ql-block">어느날 떠나간 친구의</p><p class="ql-block">뒤잔등을 떠올려주리만치 아린 빛이였고</p><p class="ql-block">하늘은 넌짓이 높아만 갔다</p><p class="ql-block">가을빛이 서두름없이</p><p class="ql-block">짙어가는 가운데</p><p class="ql-block">훠이 생각이 깃을 치며 어디론가 날아가고</p><p class="ql-block">명상은 고요로이 침묵을 새기고있었다</p><p class="ql-block">눈물은 흔적없이 말라버리고</p><p class="ql-block">가을빛은 모질이도 모질이도 짙어갔다</p><p class="ql-block">뒤모습이 서글펐던 떠나간 친구를 떠올려주는 금잔화 한송이가 피여난 끝나가는 가을께에</p> <p class="ql-block">허참 그 량반</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허참 그 냥반 왜 그런다우</p><p class="ql-block">량반을 양반도 아닌 냥반이라고</p><p class="ql-block">또바기 또바기 발음하기 좋아하는 사람이</p><p class="ql-block">그래서 그 사람의 입을 통하면</p><p class="ql-block">다들 한냥 반밖에 안되는 물건으로</p><p class="ql-block">속절없이 되여버리곤 했는데</p><p class="ql-block">이 사람이 어느날 어느 술자리에서</p><p class="ql-block">심심풀이로 한 시인의 이름을 끄집어내서는</p><p class="ql-block">그 냥반 참 하며 또 한바탕 막 시작하려는데</p><p class="ql-block">일이 그리 될라니</p><p class="ql-block">공교롭게도 벨이 울리고</p><p class="ql-block">배달음식이 도착하고</p><p class="ql-block">무얼 이리 많이 시켰냐 어쩌냐 하며</p><p class="ql-block">부산을 떠는 바람에</p><p class="ql-block">그래서 냥반은 넘게씩 되는 그 배달음식에</p><p class="ql-block">냥반 이야기는 그만 쑥 눌리워</p><p class="ql-block">빈대처럼 납죽해지고</p><p class="ql-block">다시 꺼내기는 무엇해서</p><p class="ql-block">입속으로만 음음쩝쩝해버렸다</p><p class="ql-block">-허참 그 량반</p><p class="ql-block">오늘 일이 좀 꼬이는군</p><p class="ql-block">허허허허</p> <p class="ql-block">트럼벳은 불지 않기로 했다</p><p class="ql-block">- 레핀과 그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에 부쳐</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사품치는 송화강기슭에서</p><p class="ql-block">바이올린의 새된 비명소리도</p><p class="ql-block">첼로의 배밑바닥 깊은 흐느낌도</p><p class="ql-block">파도의 날카로운 호령에 잠재워졌으니</p><p class="ql-block">이제</p><p class="ql-block">트럼벳은 불지 않기로 했다</p><p class="ql-block">아름다운 미풍에 하느작이는 태양도와</p><p class="ql-block">장엄한 파도파도파도파도의 송화강이 그만</p><p class="ql-block">서로 사타구니를 틀어박고 누워버린 이 기슭에서</p><p class="ql-block">우리는 수채화의 아련한 빛이거나</p><p class="ql-block">수묵화의 재빛 살결은 찾지 말아야 한다</p><p class="ql-block"><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고 해도</p><p class="ql-block">저렇게 하염없는 태양도를 건너다보며</p><p class="ql-block"><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의</p><p class="ql-block">그 넉넉하면서도 시커먼</p><p class="ql-block">근육의 고함소리에 귀를 맡겨버려야 한다</p><p class="ql-block">글쎄 와봐라 파도여</p><p class="ql-block">어디 덤벼라 절망이여</p><p class="ql-block">아무래도 트럼벳은 불지 않는 것이 좋겠지</p><p class="ql-block">드럼으로도 부셔버리지 못하는 이 악장</p><p class="ql-block">외로운 하모니카는</p><p class="ql-block"><모스크바 교외의 밤>이나 흥얼거리라지</p><p class="ql-block">트럼벳은</p><p class="ql-block">전설의 트럼벳은</p><p class="ql-block">불지 말아야 한다</p><p class="ql-block">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은 레핀의 작품들임</p> <p class="ql-block">너와 나 사이에 봄이 가로놓여</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다지 그리운 사람인데</p><p class="ql-block">너와 나 사이에</p><p class="ql-block">봄이</p><p class="ql-block">가로누워 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도무지 건너뛸 수 없는</p><p class="ql-block">너와 나 사이의</p><p class="ql-block">이 봄</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 서로는</p><p class="ql-block">겨울처럼 차가운 사람도</p><p class="ql-block">여름처럼 뜨거운 사람도</p><p class="ql-block">아닌데</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너와 나 사이에</p><p class="ql-block">봄이 가로누워 있다</p><p class="ql-block">도무지 건너뛸 수 없는</p><p class="ql-block">화사한 이 봄</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 사이에</p><p class="ql-block">봄의 기지개가</p><p class="ql-block">향기롭고 있다</p> <p class="ql-block">봄이 바람으로 불어와</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봄이 바람으로 불어와</p><p class="ql-block">무더기 무더기 꽃으로 피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너를 향한 심장이 잉큼잉큼 뛰다가</p><p class="ql-block">어느새 세차게 콩을 볶고 있었고</p><p class="ql-block">그런 가슴을 어루쓰느라</p><p class="ql-block">나는 하늘 푸른 줄 잊어야 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달보드레한 사람아</p><p class="ql-block">시나브로 시나브로 멀어지는 사람아</p><p class="ql-block">또바기 또바기 사랑할 줄 알았더니</p><p class="ql-block">너는 두개의 심장을 지녔구나</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별이 함치르르 빛나면</p><p class="ql-block">봄꽃 꺾어 흔들어주려 했건만</p><p class="ql-block">거침없이 돌아선 너의 뒤모습에선</p><p class="ql-block">싸늘한 랭기가 사정없구나</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봄이 꽃으로 피였다가</p><p class="ql-block">바람에 불려 언덕을 넘는다</p> <p class="ql-block">봄이 되여 오신 님</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뿌리치며 가시더니</p><p class="ql-block">이 봄 봄비 되여 오신 줄</p><p class="ql-block">아무도 몰랐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다시는 안올래</p><p class="ql-block">한사코 가시더니</p><p class="ql-block">이 봄 봄꽃 되여 피신 줄</p><p class="ql-block">기어이 몰랐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정녕 </p><p class="ql-block">이제는 서로 </p><p class="ql-block">영영 남남으로 스치자더니</p><p class="ql-block">이 봄 봄뜻 되여 푸른 줄</p><p class="ql-block">까맣게 몰랐네</p> <p class="ql-block">돌</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한낱 돌 따위가</p><p class="ql-block">왜 저다지 멋져야 하는가</p><p class="ql-block">발길에 툭툭 차이고</p><p class="ql-block">아무렇게나 뒹굴고</p><p class="ql-block">그래야 그게 돌인데</p><p class="ql-block">무언가를 위해 고임돌이 되고</p><p class="ql-block">누군가를 위해 징검돌이 되고</p><p class="ql-block">촤락촤락 비에 얻어맞으며</p><p class="ql-block">모진 바람에 씻기우며</p><p class="ql-block">그러는게 돌인데</p><p class="ql-block">한낱 돌 따위가</p><p class="ql-block">왜 저다지 멋져야 하는건가</p><p class="ql-block">긴긴 세월 허리에 감고</p><p class="ql-block">깎이우고 닳고 부서지며</p><p class="ql-block">마침내 무늬져오는 저저 깊은 전설</p><p class="ql-block">몸통 속에 굽이쳐간 실피줄 하나로도</p><p class="ql-block">수십 수백 만년</p><p class="ql-block">고요히 갈앉은 자태로 견딘</p><p class="ql-block">억년의 파노라마</p><p class="ql-block">그런 돌 앞에</p><p class="ql-block">이제는 내가</p><p class="ql-block">받침대로 엎드려야겠다</p><p class="ql-block">팔만대장경 첫 구절을</p><p class="ql-block">목탁으로 두드려 드려야겠다</p> <p class="ql-block">늙은 술병의 이야기</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젊은 술을 가둔 늙은 술병은</p><p class="ql-block">비칠거리지도 않고 내게로 와 향기가 되였다</p><p class="ql-block">다독이지 마라</p><p class="ql-block">거들먹거리지도 마라</p><p class="ql-block">한잔의 술이 되어오기까지</p><p class="ql-block">늙은 술병은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p><p class="ql-block">속으로 속으로만 새겨야 했던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젊은 해병모에서 반짝이는 푸른 바다빛을</p><p class="ql-block">초농낀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며</p><p class="ql-block">늙은 해병은 먼 수평선 황혼을 응시한다</p><p class="ql-block">그의 뒤덜미에서 색바랜 해병끈이 술렁인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갓 생겨난 산호초는 싱싱하게 젊음을 뽐내며</p><p class="ql-block">늙은 바다에 안겨 황페한 세상을 비웃고 있었다</p><p class="ql-block">바람에 불려온 이슬덩이 같은 구름은</p><p class="ql-block">늙은 하늘을 자맥질하며 까르르를 쏟아내고 있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낄낄대지 마라</p><p class="ql-block">건방지지도 마라</p><p class="ql-block">늙었어도 바다처럼 하늘처럼</p><p class="ql-block">푸르게 빛날 자신이 없거든</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 늙은 술병은 오늘도</p><p class="ql-block">젊은 술 한모금을 위해</p><p class="ql-block">백발의 여유를 여유롭게 여민다</p> <p class="ql-block">수</p><p class="ql-block">석</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수석을</p><p class="ql-block">가만히 만지면</p><p class="ql-block">따스한 돌의 숨결 만져진다</p><p class="ql-block">소르소르 해살 머금고</p><p class="ql-block">남향 어느 언덕 자락 즈음</p><p class="ql-block">낮잠이나 자던 돌멩이 하나</p><p class="ql-block">언뜻 보기에도 </p><p class="ql-block">예사롭지 않은 기품이</p><p class="ql-block">모시한복 빳빳 차려입으신 </p><p class="ql-block">수염 하얀 할아버지 같으시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경건함을 담아</p><p class="ql-block">조용히 어루쓸면</p><p class="ql-block">맑은 돌의 향기 만져진다</p><p class="ql-block">차르차르 윤기 머금고</p><p class="ql-block">지금은 내 앞에 답숙 선</p><p class="ql-block">수</p><p class="ql-block">석</p><p class="ql-block">님</p> <p class="ql-block">가을을 다치지 마오</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을을 다치지 마오</p><p class="ql-block">가을은 나의 것이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저 누런 잎새에 여름향기 울고</p><p class="ql-block">뒤산 다람이 겨울나이 서두르고</p><p class="ql-block">멀어져가는 여름을 위해</p><p class="ql-block">베짱이가 슬픈 장송곡을 불러주는</p><p class="ql-block">그런 가을이 나는 좋습데</p><p class="ql-block">울긋불긋한 색상과는 상관없이</p><p class="ql-block">그저 좋습데</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을을 다치지 마오</p><p class="ql-block">가을은 나의 것이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만일 가을이 없다면 내가 어찌</p><p class="ql-block">익어가는 계절의 혼을 알고</p><p class="ql-block">높은 하늘 아래 알몸이 되여가는</p><p class="ql-block">나무의 겸손을 알겠소</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정말 가을 아니였던들</p><p class="ql-block">내가 무슨 시를 쓰고</p><p class="ql-block">성숙의 의미에 가슴도 적셔보고</p><p class="ql-block">그럴 수 있겠소</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가없이 넓은 하늘 아래</p><p class="ql-block">초록색이 식어가는 가을을 향해</p><p class="ql-block">이 풀떡이는 심장도</p><p class="ql-block">감히 두손으로 바쳐올릴 수 있는 나라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어느 화사한 계집애의 눈에는</p><p class="ql-block">쓸쓸해보여도 좋은 가을을</p><p class="ql-block">제발 다치지 말아주오</p><p class="ql-block">가을은</p><p class="ql-block">정말 나의 것이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아니 아니 내가 바로</p><p class="ql-block">가을사나인거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1995년 가을</p> <p class="ql-block">사월 그리움이 꽃으로 피거든</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청자빛하늘 아니라도 좋아</p><p class="ql-block">겨우내 웅크렸던 그리움이</p><p class="ql-block">마침내 투욱 꽃으로 터지거든</p><p class="ql-block">아름답게 흔들렸다고 전하여다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람이야 스쳐도</p><p class="ql-block">다시 올 날이 있겠지</p><p class="ql-block">사람이야 한번 가면</p><p class="ql-block">다시 볼지 말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기껏 오므렸던 사무친 그리움이</p><p class="ql-block">드디여 투욱 꽃으로 터지거든</p><p class="ql-block">잊지 않을 거라고 전하여다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가슴에 미처 심어주지 않아도</p><p class="ql-block">스스로 싹터 벙그는</p><p class="ql-block">아아 이 넘치는 사랑</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사월 사랑이 행여 투욱 꽃으로 터지거든</p><p class="ql-block">그날처럼 말없이</p><p class="ql-block">청자빛하늘만 바라볼 거라고 전하여다오</p> <p class="ql-block">콩서리</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사람들이</p><p class="ql-block">콩을 볶아 먹고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콩을 볶은 사람이 세줌을 가지고</p><p class="ql-block">불을 땐 사람이 두줌을 가지고</p><p class="ql-block">콩을 씻은 사람이 한줌을 가지고나니</p><p class="ql-block">콩을 가져온 사람의 몫이 없어졌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아니다아니다아니다</p><p class="ql-block">다시하자다시하자다시하자</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이번에는</p><p class="ql-block">콩을 가져온 사람이 세줌을 가지고</p><p class="ql-block">콩을 씻은 사람이 두줌을 가지고</p><p class="ql-block">불을 땐 사람이 한줌을 가지고나니</p><p class="ql-block">콩을 볶은 사람의 몫이 없어졌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틀렸다틀렸다틀렸다</p><p class="ql-block">다시하자다시하자다시하자</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그럼 제일 고생한 사람이 많이 가져라(고생은 나두 했다)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을 많이 주자(아래 사람을 사랑할 줄도 알아야지) 제일 힘 센 사람이 많이 가지기다(짐승처럼 그게 뭐니?) 지식이 많은 사람이 많이 가져야 한다 (되게 잘난체 하고있네) 무기명투표 거수가결로 하자(수분이 많다 불투명하다) 잘생긴 사람이 더 가지기다 키차례로 하자(억울하지 암 억울하구말구)</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할수없이 제일 원시적인 방법으로</p><p class="ql-block">콩을 가져온 사람이나 콩을 씻은 사람이나 불을 땐 사람이나 콩을 볶은 사람이나 똑같이</p><p class="ql-block">한줌 한줌 한줌 한줌 나누고보니 콩이 두줌 남았다</p><p class="ql-block">그것을 다시 반줌 반줌 반줌 반줌 나누어가지고 모두들 흡족해서 냠냠냠냠 거리는데</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콩볶이를 해먹자고 제의를 하고 콩을 가져까지 온 사람은 아무래도 뭔가 찜찜한게 솔직히 덜 좋았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사람들이</p><p class="ql-block">콩을 맛있게 볶아서</p><p class="ql-block">더럽게 나눠먹고있다</p> <p class="ql-block">한복</p><p class="ql-block"> 한영남</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선연한</p><p class="ql-block">빛 빛이 어우르고</p><p class="ql-block">부드런</p><p class="ql-block">선 선이 물결쳐라</p><p class="ql-block">잦은 휘모리인양</p><p class="ql-block">홋홋 경사지다가</p><p class="ql-block">진자주 태깔을 불러</p><p class="ql-block">가리마낸 옥결을 감싸라</p><p class="ql-block">조용히 입다문 웃단으로</p><p class="ql-block">더욱 가늘어진 하얀 목</p><p class="ql-block">스칠듯 노을치는 치마기슭으로</p><p class="ql-block">더욱 작아진 하얀 버선발</p><p class="ql-block">아아 내 누이의 고운 체취여</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림금산-해설</p><p class="ql-block">우리민족 녀성들이 자주 입는 한복을 썼는데요</p><p class="ql-block">한복입은 누님같은 여인의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운</p><p class="ql-block">모습을 아주 섬세하고 깔끔하게 묘사했습니다.</p><p class="ql-block">여기서 선의 물결, 웃단, 가늘어진 하얀 목, 스칠듯</p><p class="ql-block">노을치는 치마기슭, 작고 하얀 버선발, 누이의 고운 체취</p><p class="ql-block">등 시어와 시구들로 한복입은 우리 민족녀성의 단아한 모습을 속사하듯 생동하게 핍진하게 그려냈습니다. 가볍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깔끔한 묘사기법이 아주 돋보이는 훌륭한 시라고 봅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신금철- 다음은 시 “나는 물이다 내게 무슨 상처랴”를 함께 감상해보겟습니다</p> <p class="ql-block">복수초</p><p class="ql-block">한영남</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온통 하얀 눈빛이 싫어</p><p class="ql-block">치켜든 노란 사랑 하나</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릿한 이야기로</p><p class="ql-block">언저리 눈 녹이고</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가장 작은 미소로</p><p class="ql-block">먼저 봄을 알리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슬픈 추억을 날리는</p><p class="ql-block">영원한 사랑아</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복수초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 또는 <슬픈 추억>이라고 함.</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