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北游—벽우의 도서관(副本)

花仙

<h3>  돈황으로 가는 길은 무연한 고비사막이였다. 황량, 풍사, 엄한, 혹서등의 딱지가 붙어 있는 불모지.이 시각에 이 불모지는 조용히 대서북의 짙푸른 하늘아래 따뜻하고 든든한 가슴처럼 펼쳐져 있었다.</h3><h3> 나는 돈황이 수천년 적어온 거작을 읽을줄 모르고 오랜세월 모래바람이 조각해낸 신비한 얼굴을 알아 볼 줄 모른다. 하지만 돈황은 고비여울과 대서북의 비단길의 요지이며 일망무제한 황막우에 2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세계불교문화예술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어 중화대지와 지어는 온세계의 마음이 쏠리는 곳임을 알고 있다.</h3><h3> 소개에 의하면 366년에 장씨라는 고승이 이곳에 자리잡고 첫 요동을 개척해서부터 14개나라와 몇개의 조대가 바뀌는동안 내용이 풍부하고 규모가 웅대한 석굴군이 되였었다. 하여 늘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만중일치가 되여 불경을 읽는 장면은 아주 장관이였는데 머고쿠의 상공에 메아리치면서 명사산까지 합쳐 인간의 장엄한 교향악으로 되였고 이 비단길우의 찬란한 명주 돈황은 영혼의 록주였다고 한다.</h3><h3> 그후 명조때에 황페했다가 청조때에 우연히 장서동(藏书洞)이 발견되면서 안에 헤아릴수없이 많은 4~10 세기의 경서 문서 그리고 보귀한 문물들로 하여 다시 주목을 받게 되였다. 하지만 무능하고 부패했던 시기에 외국 침략자들의 4~5차되는 략탈로 거의 털리웠고 또 다시 500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관계하는 사람이 없어서 무정한 모래바람에 파뭇겨 페허가 되였었다.</h3><h3> 1943년.3월에 불란서에 가서 미술을 전공하던 常书鸿 이라는 분이 빠리의 낡은 책 가게에서 우연히 6권으로된 (돈황도)를 발견하고 놀란 나머지 즉시 귀국하여 梁思成교수 ,徐悲鸿 대사 등 여러사람들의 고무하에 돈황예술 연구소를 세우고 지금까지 78년동안 상상할 수 없는 난관을 돌파하고 응급성 보호기로부터 과학적 보호기 더 나가서 예방성 보호까지 침식을 잃고 일생을 다 바쳐가며 돈황의 벽화를 살려내였다고 한다.</h3><h3> 신기하고 기적적인 2천년전의 벽화와 곧 만나게 된다. </h3><h3> </h3><h3><br></h3><h3> </h3> <p class="ql-block">  머고쿠의 출입구는 새로지은 모래산처럼보이는 굉장히 웅대한 건물이였다 .고도로현대화한 수자화전시중심이라고 하였다.</p> <h3>  매표구</h3> <h3>  이 현대화한 수자화전시중심은 "머고쿠의 딸"로 불리우는 樊錦诗원장이 58년간 머고쿠에서 벽화와 하나로 되여 벽화의 환생을 위하여 분투하는중 벽화의 회복은 늦고 유람객들의 수요는 급속히 증가되는 현실에 근거하여 2003년부터 현대화설비를 리용하여 움직이는 벽화를 만들려고 수백명의 연구원들이 4년을 고심분투한 끝에 2014년부터 20분동안에 유람객들에게 보여줄수있게 되였다고 한다.</h3> <h3>  전시중심 입구 .중국원 총건축사 崔愷원사를 위수로한 건축사들이 설계한 고비사막과 하나로 어울려진 이 현대화한 건물은 톡특한 돈황의 특색을 갖고있다. </h3><h3> </h3> <h3>  망망한 고비사막중의 흐르는 모래언덕 같고 야단지모의 거대한 암석 같기도 하며 근천년의 명장성 같기도 하고 머구쿠벽화중의 비천의 채색띠 같기도 하여 온 건물이 강렬한 류동감을 나타낸다.</h3> <p class="ql-block">  전시중심에는 球幕전시관이 있었는데 주위와 천정이 온통 하나의 막으로 되여 있어 립체감이 강하고 사람이 그속에 들어간듯한 감이 난다 .일층에서는 돈황의 력사를 이야기하는 영화를 돌리고 이층에서는 머고쿠의 벽화들을 생동하게 재현시켜 주었다.</p><p class="ql-block"> </p> <p class="ql-block"> 2천년전의 머고쿠는 명사산우의 동방의 루부궁이라고 한다 .외국 사람들은 흔히 "동방의 머고쿠를 보면 전세계의 고대문명을 본것과 같다. "고하며 서방 문학가들도 돈황의 벽화를 벽우의 도서관이라고 한다.</p><p class="ql-block"> 해설원을 따라 석굴에 들어가는 순간 진감을 한다.네 벽들과 천정에는 어데라 없이 빈틈이 없이 채색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수천만가지 아름다운 꽃무늬 ,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불교의 이야기들 ,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살아 움직이는 듯한 벽화들은 그렇게 오랜 옛날에 사람이 그렸다고 믿기엔 너무나도 어려웠다. </p> <p class="ql-block">  근 2천년의 력사를 갖고 있는 머고쿠는 명조때 황페해졌고 청조때 우연히 藏书洞이 발견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였으나 장서동안의 경서 문서와 문물들은 외래렬강들이 몇차례 거쳐 약탈해가고 얼마 남지 않게 되였다. 그뒤로 근 500여년 버려져 모래바람에 거의 뭍혀 가던 머고쿠는 1943년 은인을 만나게 되였다. </p> <h3>  A급문표를 사면 8개 석굴을 참관할수 있었다. 머고쿠 안내원의 해설을 들으며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굴내의 벽화들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리느라면 몇천년동안 고비사막에서 고독을 이겨낸 벽화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고 세월이 조각해낸 면모도 찾아 볼수 있었다.</h3><h3> (문물을 보호하기 위해 촬영이 금지되여 있기에 아래의 부분 벽화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겨 왔다.)</h3> <p class="ql-block">  비천(飞天)은 머고쿠의 명함장이고 돈황벽화 예술의 전용명사이다. 머고쿠의 근 500개 석굴안에 비천의 모습은 4500여폭이나 그려져 있다. </p><p class="ql-block"> 불교중의 天歌神과 天乐神의 화신인데 천가신은 천궁을 날아다니면서 꽃을 뿌리거나 보물을 공급하고 천락신은 불궁에서 주악 가무등을 하는 한쌍의 부부였는데 후에 하나로 합쳐져 비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p><p class="ql-block"> 비천은 주악도 하고 온몸에 향기도 풍기는 아름다운 보살로서 풍부하고 다채롭고 생동하게 표현된 민족예술의 눈부신 형상이다 . 천신들이 가볍고 투명한 띠를 휘날리며 온하늘에 날아 다니면서 춤추는 우미한 형상을 보면 곧 돈황 머고쿠의 예술을 상기하게 된다.</p><p class="ql-block"> </p> <p class="ql-block">  거리에 세워진 비천의 조각상.</p><p class="ql-block"> 머고쿠의 동굴안에서 아름답고 수효를 헤아릴수 없이 날아예는 비천들을 보면서 몇천년전 조상들이 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절감하게 되며 그 꿈이 후날에 하나하나 현실로 되였음에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지금 흔한 교통공구인 비행기나 더우기 사람을 싣고 우주로 향한 우주비행선 등등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꿈이였는데.</p> <h3>  反弹琵琶。일종 머고쿠에 그려져있는 무용동작의 조형인데 상규를 돌파하는 사유와 행위를 가르킨다고 하였다. 이조각상은 돈황시내의 거리중심에 세워져있는데 돈황의 지표라고 했다.</h3> <h3>  "9색사슴경도"는 머고쿠의 가장 아름다운 벽화중의 하나이다. 그림은 북위시기에 그린 그림인데 사람은 정직하고 선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h3><h3> 어느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살린 9색 사슴은 그 사람과 서로 만난일을 비밀로 하기로 약속 했었다. 그후 그 사람은 높은 상금의 유혹에 빠져 배은망덕하게도 사슴을 죽이려고 왕의 군사들을 데리고 사슴 잡으러 온다.</h3><h3> 9색 사슴은 구해준 사람의 비렬한 소행에눈물을 흘리며 왕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고 감동된 왕은 누구도 사슴을 다치지못하도록 명을 내렸으며 그사람은 그 자리에서 온몸이 헐어 썩은 냄새를 풍기며 죽어 버렸다고 한다.</h3><h3> 아름다운 구색사슴은 천년을 고독하게 망망한 고비사막에서 견뎌내고 끝내 세상사람들께 예술사에서 가장 진귀한 한페지를 남겨 놓았다.</h3> <h3> 이 벽화의 사진 색갈은 지금 석굴에 남아있는 색갈 그대로이다. 그 먼 옛날 어떻게 이렇게 오래도록 변치않는 색갈을 만들수 있었을가? 그들의 지혜와 예술성에 세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h3> <h3>  몇천년이 지난 오늘 머고쿠의 벽화는 보석마냥 찬란한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값진 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다. </h3><h3> 벽화중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꽃무늬들과 전설을 담은 그림들은 머고쿠의 석굴에서 뛰쳐나와 세계무대로 날아올라 중국의 유구한 문화 예술을 자랑하고 있다 .</h3><h3><br></h3><h3> 천불동의 도안 . 언제보아도 자애롭게 미소하고 있는 이 불상을 중국의 모나리자라고도 한다.</h3> <h3>  벽화 비천과 꽃무늬 </h3> <h3> </h3><h3> </h3><h3> 설계사 웅영에 의하여 세계의 명모들은 돈황의 벽화를 한 몸에 입고 무대에서 그 우아함과 아름다움으로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h3><h3> </h3><h3> 령혼의 록주 돈황의 문화와 예술은 세월이 갈수록 찬란한 빛을 낼것이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