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사랑에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배우 ㅡ 김동현

방미선

인물로 보는 조선족연극 (12) <p class="ql-block">굳이 인터뷰 할 필요도, 타인을 통해 더 깊이 료해할 필요도 없이 그저 본 그대로, 느낌 그대로 쓰면 그만인 배우 김동현은 내 평생의 연극동인이자 동갑내기 친구다.</p> <p class="ql-block">2005년 화룡 숭선향 하향공연을 가서 </p> <p class="ql-block">오늘, 우리 두 사람 모두 인생 고래희의 높은 언덕에 올라섰다. 우리가 함께 사랑하고 몸 담궜던 연극예술은 이젠 아득히 멀어지고 공간적으로도 그와 나는 남북으로 수만 수천리 상거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미세할지라도 김동현 배우의 연기행적에 대한 주목을 시종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것은 조선족연극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되는 김동현 배우의 연기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의 무대활동을 통해 조선족연극의 동향의 진상을 얼마간 통찰할수 있기 때문이다. </p> <p class="ql-block">내 마음이야 여하하던 조선족연극은 이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 어귀를 서성거리고 연극배우 김동현의 연극무대도 점점 그와 멀어져간다. 하지만 그가 연극예술을 위해 몸과 마음을 불태우며 사랑과 열정을 쏟던 모습들은 지금도 내 머리속에서 영화필름처럼 감돈다.</p> <p class="ql-block">2016년 1월 16일 연변텔레비죤음력설 야회 촬영을 마치고 용정 해란강극장에서 김동현과 필자</p> <p class="ql-block">1. "넙덕이" 동현이</p><p class="ql-block">동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일이 생각난다. </p><p class="ql-block">금방 연변문공단에 입단했을 때니까 아득히 1971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해 함께 연변문공단에 뽑혀 온 짜개바지친구 정숙이와 (후에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2중창 가수, 작고) 같이 5.1절 휴가 차 집으로 가겠다는 말씀을 드리려 연극대의 김수룡 대장님 집에 찾아갔다. 집앞에 이르러 정숙이와 내가 서로 네가 노크하라면서 쭈볏거리는데 저쪽으로부터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둘러멘 남학생 두명이 우리를 힐끔거리면서 다가오더니 김수룡 대장네 집으로 쑥 들어갔다. 인차 거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너네 집 앞에 어떤 간나 둘이 서있더라", "뭐이라구? 어떤 간나들이..?" 덜커덕 문이 열리더니 역시 모자를 머리에 대수 얹은 내복바람의 남학생이 곱지않은 눈길로 우리를 찔 흘겨보더니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정숙이와 나는 동시에 입을 딱 벌렸다가 다시 혀를 홀랑 내밀었다. 어쩜, 누구지?.....얼굴이 어쩜 저렇게도 넓을까....말똥이 구을러가는 걸 봐도 우스워 할 한창나이라 우린 별게 다 우스워 배를 그러안고 꺄르르대다가 청가 맡으러 갔다는 것도 잊고 숙소로 돌아와 방금 본 넙덕얼굴에 대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p> <p class="ql-block">세월이 한참 흐른 후 1977년, 나는 그날의 "넙덕이"를 극단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연극배우를 지망해 시험 두번만에 합격했다는 김동현, 내 머리속에 그날 우리를 찔 째려보던 그 화면이 떠오르자 저도모르게 크윽~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는데 "넙덕이"도 날 알아봤는지 눈을 쭝긋거리면서 킥킥거렸다. 그렇게 우리는 극단에서 같은 배우로 만났고 그 후 동현이는 계속 배우로, 나는 연출가의 길을 걸으면서 족히 30여년의 연극인생을 함께 했다.</p> <p class="ql-block">2019년 연변텔레비죤 음력설야회 촬영을 앞두고 연극동인들과 함께, 왼쪽으로부터 리옥희 김동현 원용란 방미선</p> <p class="ql-block">2. 몸과 마음으로 "돌쇠"가 되여</p><p class="ql-block">아버지가 연극연출가여서 어려서부터 연극마당에서 놀고 연극무대를 지켜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동현이는 신인이지만 처음부터 연극에 나처럼 그렇게 까막눈은 아니였다. 하긴 어릴때 아버지가 공연하러 가신 날이면 연극구경하러 천방백계로 극장에 새여들어갔는데 어떤 때는 아버지가 저녁을 잡수시고 간줄 뻔히 알면서도 밥곽을 나무막대기에 꿰여 들고 아버지한테 밥을 나른다며 극장문지기를 어물쩍하게 얼려넘기고 또 어떤 때엔 극장에 계시는 아버지한테 꼭 일러드릴 아주 급한 일이있다면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사정해서 극장문지기를 슬쩍 얼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연극을 좋아하면서 눈에 보아둔 것도 많지만 워낙 유머쟁이 동현이는 평소 몸에 배인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몸짓, 언어들로 극적 천성을 남김없이 드러냈고 그 끼를 바탕으로 입단 초기 별부담없이 단역으로 뛸수있었을 뿐만아니라 이듬해에는 장막연극 "장백의 아들" 에서 "호랑이" 역할창조로 표연상까지 받아안았다.</p> <p class="ql-block">장막연극 "장백의 아들" 황봉룡 작, 허동활 김수룡 연출, 김동현 호랑이 역 (중간 탈을 쓴 배우)1978.1</p> <p class="ql-block">그런데 1980년 2월 조선고전명작 "성황당" 공연을 앞두고 동현이가 맡은 극중 "돌쇠" 역할 연기창조가 탐탁지않아 련습에 그만 제동이 결려버렸다. 자신의 연극적 끼와 흥만을 믿고 두루두루 시간을 보내던 동현이는 련습장에서 담당연출가가 아무리 계발해도 그 말씀이 머리에 전혀 들어오지않았고 상대역들은 풀풀 그저 한숨만 내뿜었다. 자기 때문에 련습 흐름이 중단되자 동현이는 처음으로 연극배우로서의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연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날도 연습에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속이 타 번지는데 허동활 연출님이 슬그머니 동현의 곁으로 다가와서 귀속말을 했다. 저녁에 잠시 집에 왔다가라고.</p> <p class="ql-block">저녁밥술을 뜨는둥 마는둥하고 동현이는 허동활 연출님 댁으로 향했다. 연출님이 집에서 "성황당" 극본을 펼쳐놓고 동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해오더니 이번에 뭐가 그리 문젠데?" 연출님의 따뜻한 손길이 축 처진 어깨에 닿자 동현이는 대뜸 온하루의 련습을 망친게 죄송하기도 하고 또 내일 련습장에 들어설 일이 막막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동현이는 "돌쇠"역할의 대사를 몇번이나 곱씹어 읽어보고 잘 외웠는데 련습장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극속에 들어갈 수 없어서 정말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소연하듯이 말씀드렸다. 그런 동현이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시지않고 연출님은 그냥 극본을 이리저리 번지면서 <span style="font-size: 18px;">돌쇠 역은 극중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span>돌쇠 역이 무대에 등장하기 전에 극에 어떤 이야기들이 흘렀는지? 돌쇠 역의 성격은 어떤지? 돌쇠 역이 극에서 왜 필요한지 등등에 대해 동현이한테 물어오셨다. </p> <p class="ql-block">동현이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실은 극본을 통채로 읽어보지도 않았고 다만 돌쇠 역이 등장하는 장면의 대사만 좔좔 외우고 련습에 임했던 것이다. 연출님께서는 "배우는 연기를 하기 전에 반드시 극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으면서 극본속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의 최고임무가 무엇인지, 역할의 성격은 도대체 어떤 류형인지, 자기역할의 동작과 대사에 드러난 의미와 속에 감춰진 의미는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라고 하시면서 원로배우들의 연기창조의 좋은 경험도 많이 들려주셨다. 그날 허연출님의 말씀 가운데 “배우는 극중의 인물, 다시말하면 ‘성황당’중의 ‘돌쇠’ 인물형상을 머리속으로 생각하여 흉내내지말고 진정 몸과 마음으로 ‘돌쇠’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왔다. </p><p class="ql-block">동현이는 귀에 쏙 들어온 허연출님의 말씀을 나름 “무대우에서 자신이 형상한 인물이 가진 진실, 그 인물이 보여주는 매력을 보여주는 게 바로 배우다“라고 어물쩍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배우로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다.</p> 그후 "성황당" 연극에서 동현이는 진정 "돌쇠"가 되어 어물쩍한 연기를 보였고 "돌쇠" 는 동현이가 창조한 역할 중 중요한 대표적 형상으로 남았으며 그것은 또한 동현의 연기생애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되였다. <p class="ql-block">훗날, 동현이는 그날 저녁 허동활 연출님의 가르치심이 자신의 연기생활에서 가장 잊혀지지않는 일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옳바른 연기창조의 길로 이끌어주신 허동활 연출님께 평생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연기전문교육을 받지못하고 한낱 끼와 흥을 믿고 무대에 나타나던 뜨내기연기자 동현에게 있어서 그것은 실로 한차례의 의미심장한 연기수업이였고 동현이로 하여금 연기생활에서 실망으로부터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p> 돌쇠연기 창조를 통해 처음으로 연기의 단맛을 톡톡히 보게 된 김동현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연극에서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가리지않고 연기창조에 알심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극단의 동료들은 어릴때부터 심한 개구쟁이로 소문나고 연기보다 놀이에 매료되던 동현이가 엉뎅이를 걸상에 딱 붙히고 골똘히 극본을 읽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연기문제가 풀리지않는 날엔 남들이 퇴근한 연습장에서 맺힌 매듧을 찾기에 골몰하는 동현이를 자주 볼수 있었다. <p class="ql-block">3. "주정뱅이"로부터 "신닦이 외팔아빠"로</p><p class="ql-block">공든 탑이 무너지랴, 동현의 연기가 눈에 띄게 향상하고 차츰 익어가기 시작하더니 어느날엔가 마침내 큰 작탄을 터치우고야 말았다.</p> 1991년 11월에 펼쳐진 전주 소품콩클에서 동현이가 표연한 소품 "주정뱅이 사위"는 전문가들과 동료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는 "주정뱅이" 연기표연으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연기1등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날 필자도 극장에서 관람객으로 동현이의 연기를 직접 보았는데 그의 주정뱅이 연기모습이 지금까지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연출공부를 한답시고 전국 이곳저곳 다니면서 무대공연도 많이 보았고 지금은 또 텔레비죤을 통해서도 극중 배우들이 가끔 술을 마시고 펼치는 술주정연기를 보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동현이처럼 그런 신통방통 술주정 연기는 보지못했다. <p class="ql-block">소품 "주정뱅이 사위" 허강일 작, 최인호 연출 (왼쪽 김동현) 1991.11</p> 동현이의 "주정뱅이" 형상창조는 그번 소품콩클에서 우연히 선보인게 아니다. 일찍 1986년 장막연극 "청춘소야곡"에서 처음으로 "주정뱅이"역할을 맡은 후 1989년 또다시 장막희극 "요란한 사랑"에서 일반 주정뱅이를 훨씬 릉가하는 "알콜중독"자 역할을 맡게 되였다. 첫 "주정뱅이"역할 연기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연극에서 요구하는 형상의 높이에는 이르지못했다고 느낀 동현이는 두번째 "주정뱅이" 연기를 반드시 잘 해내리라 마음먹었다. <p class="ql-block">장막경희극 "청춘소야곡" 김훈 작, 리동철 연출, 1985.9 주정뱅이 수일 역 김동현 (오른쪽 세번째)</p> "요란한 사랑" 연극중의 "알콜중독자" 주정뱅이 역을 잘 형상하기 위하여 동현이는 길가에서 주정뱅이를 만나면 가던 길도 마다하고 따라다녔고 어떤 땐 온종일 식당에 죽치고 앉아 술취한 사람들의 거동을 관찰하였다. 또 세번이나 일부러 정신병원에 찾아가 알콜중독으로 입원한 환자들을 관찰하였는데 한번은 사지가 축~ 늘어져 맥을 못추던 한 환자가 호사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알콜에 적신 솜을 훔쳐 짜먹더니 순간, 만병통치약이라도 쓴듯 흥분하면서 얼굴표정이 돌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또 한번은 눈가장자리에 눈곱이 말라붙은 얼굴에 웃음을 게발리고 손을 후들후들 떨면서 빈손으로 빈 술잔의 빈 술을 마시고나서 입을 쩝쩝 다시며 사뭇 만족된 웃음을 짓는 알콜환자도 발견하게 되였다. 그는 알콜중독자의 행위를 잘 살펴보았을뿐더러 그들의 심리변화를 세심히 관찰하는데 신경을 모았다. 환자가 멍한 눈길로 이곳저곳을 더듬다가 알콜솜을 발견한 순간, 그리고 알콜솜의 알콜을 입에 짜넣을 그때의 한없는 만족감을 뿜는 눈빛을 통해 환자의 점층적으로 변화되는 내심세계를 느꼈고 빈 술잔에 담긴 빈 술을 마시기 전과 마신 후의 환자의 행위를 통해 알콜환자의 술에 대한 걷잡을수 없는 욕망과 망상만족의 내심적인 변화를 층차있게 감지할수 있었다. <p class="ql-block">그후 장막연극 "요란한 사랑" 에서 동현이가 맡은 주정뱅이역할은 무대에 나서자마자 관객들에게 곧바로 "무서운 주정뱅이" 라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삐닥이 쓴 모자, 대수 걸친 웃옷, 눈 가장자리에 꾀죄죄하게 말라붙은 눈곱, 벌건 코, 이따금 슴벅거리는 눈, 게트림까지 하는 "알콜환자"가 무대에 나타나자 관중들은 술냄새가 관중석까지 풍겨오는듯해서 저저마다 코를 싸쥐였고 "알콜환자"가 손에 잔을 들고 비틀 걸음을 내딛자 주정뱅이가 또 당금 엎어질듯 싶어서 저도모르게 어구구하면서 두손을 내밀어 바쳐주려고까지 하였다. 암튼 극중에 주정뱅이가 등장할 때마다 극장이 떠나갈듯이 박수소리가 오래동안 그치지 않았고 지어 어떤 사람들은 무대뒤에 찾아와 그가 정말로 술을 마시고 무대에 오른것이 아닌가고 묻기까지 하였다. 오죽하면 원로연극인들도 동현이의 "주정뱅이" 연기를 조선족연극의 "원자탄"이라고 했을까!</p> <p class="ql-block">장막경희극 "요란한 사랑" 리광수 작, 전득주 연출, 1988.9 알콜중독자 역 김동현 (오른쪽 두번째)</p> <p class="ql-block">동현이의 연기는 "주정뱅이"실력에 그치지않았고 장막연극 "사랑의 품"의 주인공인 용우역할 창조에서 그는 자신의 연기 절정을 보여주었다. </p> <p class="ql-block">근 20년 가까운 배우생활에서 "주정뱅이"를 포함한 희극연기로 연기력을 표현해 왔던 탓에 동현이는 저도모르게 희극연기에 국한되면서 자기가 정극연기에는 별로 소질이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정극 "사랑의 품"의 주인공인 용우역할이 맡겨졌을 때 그는 강력히 거부하였다. 마침 작가도 "사랑의 품" 연극의 "주정뱅이" 역할을 동현이로 점찍었고 동현이자신도 자기는 무조건 "주정뱅이" 역할이 차려진다고 생각했다. </p> <p class="ql-block">당시 연출을 맡았던 내 생각은 달랐다. 극의 중심에 서서 전반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용우역할의 극중 작용은 거대했고 용우인물에게 반드시 가장 소박하고 진실한 연기가 절실하게 필요되였는데 연출가로서 나는 동현이가 무조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술주정뱅"이 등 역할을 출중하게 완성하는 과정에 동현이가 연기창조에 임하는 출발점과 창조태도를 관찰하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탄성이 강하고 소박하면서 깊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가식없는 동현배우의 연기에 대한 나의 드팀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몇차례의 부딪침과 소통을 거쳐 동현이는 마침내 장막극의 주인공역을 맡는데 동의했고 결국 동현이는 내 믿음 이상으로 주인공역할을 훌륭하게 완성하였다. </p> <p class="ql-block">장막연극 "사랑의 품" 리광수 작, 방미선 연출, 1994.6 주인공 아빠 역</p> "사랑의 품"에서 주인공 용우역을 맡은 후 동현이는 극본이 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고 장애자인 용우의 매 하나의 무대동작을 통해 인물의 최고임무와 인물의 내심세계를 파헤치면서 인물창조에 진력했다. 연극 중에 한쪽 팔이 없는 용우가 거리에서 주어온 여자애의 병치료를 위해 신닦이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작가는 신닦이 걸레 한쪽 끝을 오른손에, 다른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닦음으로써 주인공형상의 높이를 보여주려 했다. 연출인 나도 이 장면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생각밖에 동현이는 극작가의 무대제시와 연출가의 의도에 이의를 표시하였다. 그는 솜내복의 밑둥을 통채로 잘라서 둥근 모양의 신닦이 걸레를 만들어 한쪽은 오른손에, 다른 한쪽은 왼쪽발에 끼여서 구두를 닦는 무대동작을 설계하고 저녁 내내 그 동작을 련습한 후 이튿날 련습장에서 표연하였다. 동현이가 설계한 무대동작은 그 움직임이 작가의 무대제시나 연출가의 요구보다 오히려 인물형상에 썩 잘 부합되였을뿐만아니라 또 극정에도 너무 잘 어울렸다. 동현의 세련된 신닦이동작에서 관객들은 장애자이지만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않고 맞받아 나아가는 주인공용우의 사랑으로 충만된 풍부한 내심세계를 볼 수있었고 지어는 미적향수까지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하면서도 인물의 성격과 형상창조에 딱 맞는 신닦이동작으로 동현이는 공연때마다 장내가 떠나갈듯 우렁찬 박수를 이끌어냈음은 물론 북경 "수도극장"의 공연에서 한족연극전문가들도 감탄을 금치못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p class="ql-block">"사랑의 품" 연극 중 외팔 장애자 역할로 구두를 닦는 장면 연기 </p> 연극에 대한 불같은 사랑과 연기에 대한 끝임없는 탐구로 동현이는 "요란한 사랑"극의 "주정뱅이" 연기에 이어 "사랑의 품"의 "신닦이외팔아빠"로 연극무대에서 또 하나의 신화를 이루어냈다. 동현이에게 있어서 "주정뱅이"와 "신닦이 외팔아빠"역할의 완성은 비단 한 역할에서 또 다른 한 역할의 자연적인 과도와 축적이 아니라 희극배우로부터 정극배우로의 성공적인 변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정확한 연기관으로 희극과 정극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나면서 연변, 나아가서는 수도의 무대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명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장막연극 "사랑의 품" 북경 "首都剧场”에서 94전국연극교류공연 참가, 1994, 11,7~8 북경 "首都剧场”에서 "사랑의 품" 공연을 관람하시는 조남기 상장, 리덕수 부장과 수도의 연극전문가들 공연을 끝내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 주인공 용우와 백설이 (김동현과 최아정) <p class="ql-block">북경의 首都剧场에서 공연을 마치고</p> 공연 뒤 무대에 오르셔서 배우들을 격려하시는 리덕수 부장과 기타 령도들 4. 무대꼭대기에 "꺼꾸로 매달린" 동현이<div><br>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동북삼성은 조선족연극의 근거지이다. 조선족관객들에게 연극을 보여주기 위해 순회공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장막연극, 특히는 고전연극을 순회공연하는 경우, 무대장치에 수요되는 걸림대, 막, 조명기구, 세트, 복장, 소품, 분장도구 등 짐이 트럭으로 두차 혹은 세차까지 될때도 있다. 이때 연극인들은 비단 연기자만이 아닌 짐실이군이요. 무대장치 일군이요, 세트조립의 기술자이기도 하다.<br></div> <p class="ql-block">타고난 손재간도 있지만 언제나 제일 힘든 일, 제일 위험한 일에 앞장서는 동현이는 무대장치 일에 없어서는 안되는 선줄군이다. 그래서 무대장치를 할 때면 그는 늘 극장꼭대기에 "꺼꾸로 매달려"야 했는데 그 덕분에 두번이나 큰 코 쳤다.</p> 한번은 흑룡강의 밀산극장에서 고전연극 "심청전"을 공연할 때였다. 2000여명을 수납하는 극장이여서 무대가 널직하다보니 높이도 특별히 높았는데 뒷막을 걸기 위해서는 반드시 꼭대기에 올라가서 걸림대를 걸어야 했다. 그날도 동현이가 그 일을 맡아서 무대꼭대기에 올라가 조신하여 건늠대를 딛는데 건늠대가 하도 낡은 탓에 탁 꺽이면서 동현이는 15메터나 되는 꼭대기에서 꺼꾸로 무대에 떨어졌다. 하도 측막을 이미 걸었기에 측막에 부딪치면서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상상도 못할 큰 사고가 일어날번 했다. 문론 밀산의 공연무대에 오르지못하고 병원신세를 져야했지만 그러나 그후에도 동현이의 "꺼꾸로 달리기"는 계속되였다. <p class="ql-block">무대세팅을 위해 사다리위에 선 김동현</p> 연길시 공인구락부에서 장막연극 "사랑의 품" 첫 공연할 때였다. 2막을 끝내고 3막을 바로 시작하려는데 앞막이 중간쯤 올라가더니 더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그 자리에 떡 멈추었다. 극장 기술일군들이 총 동원되여 사고원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부산을 떨며 달아다녔지만 한시간이 되도록 막은 요지부동이였고 1100여명 관객들과 무대 위의 20여명의 배우, 무대일군들도 갈팡질팡 어쩔줄을 몰라했다. <p class="ql-block">바로 그때 동현이가 나섰다. 외팔장애자 역할 때문에 묶었던 팔의 노끈을 활활 풀어버리고 웃옷을 확 벗어내친 채 맨 몸 바람으로 천청의 가장 높은 곳까지 기여올라가 꺼꾸로 매달려서 이리저리 관찰했다. 나중에 앞막의 두 가닥의 바줄이 서로 비틀려져 있음을 발견하고는 두손의 장갑을 홱 벗어 팽개치고 젖먹던 힘까지 내서 맨손으로 당기고 비틀고 또 비틀어 풀어낸 후 아래를 향해 막을 올려보라고 소리질렀다. 막이 움찔거리더니 드디여 매끄럽게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면서 정상으로 회복되자 극장에 환성이 터지고 연극은 3막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p> <p class="ql-block">장막연극 "사랑의 품"의 공연은 그날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뒤 련속 100여회 공연 후 북경 연극콩클에까지 참가하여 연극분야의 전국 최고상 "문화극목상"까지 받게 되였다.</p> <p class="ql-block">첫 공연 그날, 만약 동현이가 어두운 극장 꼭대기에 기여올라가서 거미줄 세레를 받고 온몸이 긇혀 피를 줄줄 흘리면서 꺼꾸로 매달려 바줄을 풀어내리지 않았다면, 만약 공연이 중단되여 2막에서 끝나버리고 말았다면 연극"사랑의 품"은 아마도 운명을 달리 했을거라고 나는 단언한다. </p> 50년의 긴긴 세월 무대에서, 스타지오에서, 촬영기 앞에서, 장막극이든, 단막극이든, 소품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가리지않고 이게 바로 생의 마지막 무대, 이게 바로 마지막 촬영이라는 생각 하나로 연기에 몸과 마음을 불태운 배우 김동현, 그는 자기의 연극생애에서 30여부의 장막극 중 중요한 역과 주인공 역을 형상했고 50여부의 소품과 5부의 영화 및 텔레비죤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선배연극인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명실공히 조선족연극 배우 중견으로 자리매김하였다.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김동현 1980년대 장막극 공연 연보</p> <p class="ql-block">장막연극 "눈속에 핀 꽃" 박응조 작 허동활 연출, 김동현 황달선 역 1980.12</p> 장막연극 "산귀신" 황봉룡 작, 원주삼 연출, 김동현 유격대원 역 (오른쪽 첫번째) 1982.3 장막연극 "해란강반에 봄이 왔네" 최정연 작, 리동철 연출, 김동현 철수 역 (오른쪽 첫번째) 1992.4 번역극 "장해적" 원주삼 연출, 김동현 화삼 역 (왼쪽) 1983,4 번역극 "삼동이의 울음과 웃음" 원주삼 연출, 김동현 삼동 역 1984.3 장막연극 "잘가거라 꽃사슴아" 황봉룡 작, 허동활 연출. 김동현 주동길 역 (오른쪽 두번째) 1984.9 장막연극 "9번 새각시" 한원국 작, 리동철 연출, 김동현 렴동길 역 오른쪽 첫번째 1985.8 장막경희극 "청춘소야곡" 김훈 작, 리동철 연출, 김동현 수일 역 (왼쪽 첫번째) 1985.9 번역극 "졸업전야" 리동철 연출, 김동현 초중학생 역 (오른쪽 첫번째) 1986.5 번역극 "그 처녀가 찾는 사나이" 전득주 연출, 김동현 리옥 역 (오른쪽 첫번째) 1986.10 장막희극 "처녀들 안녕히" 한원국 작, 전득주 연출, 김동현 광수 역 1988.5 장막연극 "그 총각과 택시아가씨" 한원국 작, 전득주 연출, 김동현 철수 역 (왼쪽) 1987.7 6막경희극 "요란한 사랑" 리광수 작, 전득주 연출, 김동현 성화 역 (앞쪽) 1988.9 김동현 1990년대 장막극 공연 연보 번역극 "청춘블렉댄스" 리영근 연출, 김동현 차과장 역 1990.3 아동극 "영웅소년 뢰녕" 리동철 작, 연출, 김동현 학생 역 (왼쪽 두번째) 1990.2 <p class="ql-block">장막희극 "털없는 개" 리종훈 김웅걸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덕수 역 (오른쪽 첫번째) 1991.3</p> <p class="ql-block">장막연극 "사랑의 품" 리광수 작, 방미선 연출, 김동현 용우 역 1994.6</p> 장막연극 "헤톨부대" 리광수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호박 역, (오른쪽 첫번째) 1996.12 장막연극 "과부골목" 허련순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강경태 역 (뒤쪽) 1997.8 <p class="ql-block">장막희극 "금개구리" 김영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김복덕 역 1999.9</p> <p class="ql-block">김동현 2000년 새시기 장막극 공연 연보</p><p class="ql-block"><br></p> 장막연극 "하얀꽃" 리광수 작, 방미선 연출, 김동현 상록 역 (왼쪽 첫번째) 2001.6 뮤지컬 "샘" 리광수 작, 방미선 연출, 김동현 학수 역 (중간) 2003.6 소품 "사위감점고" 리영근 작, 김동현 방귀도 역 (왼쪽 첫번째) 1990.5 소품 "주정뱅이 사위" 허강일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주정뱅이 역 (왼쪽 첫번째) 1992.2 소품 "경계선" 김정권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오른쪽 첫번째) 2002.12 소품 "비상시기" 김학송 작, 방미선 연출. 김동현 2003.9 소품 "심각한 검토서" 리영근 작 연출, 김동현 1991.3 소품 "침묵전쟁" 김정권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2001.3 텔레비죤드라마 "사랑의 품" 리광수 작, 방미선 연출, 김동현 철학 역 1995.5 텔레비죤드라마 "하얀꽃" 리광수 작, 방미선 연출, 상록 역 김동현 2001.3 영화 "언덕" 마을장년으로 출연 음악극 "두만강" 방미선 작 연출, 김동현 두만강 지킴이 역2015.8 70년의 삶, 50여년의 연극인생! 동현이의 삶은 연극과 질퍽하게 반죽되여있다.<br><br>배우 김동현에게“주정뱅이 역할이 딱 어울린다“, ”외팔 장애인이 딱 어울린다“, 혹은 ”소품연기에 딱 어울린다“ 등 평가는 이제 뒤골목의 이야기이다. 남보다 더 잘생기지도 않은 ”넙덕이“ , 체격이 훤칠하고 목소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는 연극무대에서 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배역들을 하나하나 성공시켜 진정한 배우로 거듭났다. 인생을 연극과 함께 하고 연극속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김동현, 어설픈 배우로부터 점차 진실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연기스타일을 구축하면서 작은 역일지라도 내실있게, 반면역이라도 인상깊게, 특별한 역할은 개성있게, 주인공 역할은 중후하고 질감있게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연극예술에 대한 불같은 열정과 진실한 애정이다. <p class="ql-block">장막희극 "털없는 개" 리종훈 김웅걸 작, 최인호 연출, 김동현 덕수 역 1991.3</p> <p class="ql-block">연극사랑에 몸과 마음을 불태우는 영원한 배우-김동현</p> <p class="ql-block">상해에서 방미선 </p><p class="ql-block">2024년 1월 15일</p> <p class="ql-block">부분 사진을 제공한 김학송 선생께 감사드린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