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우리가 어릴 때는 놀이공원이 따로 없었다. 애들이 모이면 그 어디든 바로 놀이공원으로 변해버릴 수 있는 신기한 시절이었다.</p> <p class="ql-block">가장 유행시간이 길고 또 미친듯이 중독됐던 놀이는 당연히 고무줄뛰기었다.</p><p class="ql-block">일단 최상품 고무줄은 자전거 타이어 안쪽에 부착된 고무를 가늘고 길게 잘라서 만든거었다. 누가 이런 고무줄을 갖고 있는다면 완전 아이들한테 떠받들려 다녔다. 잘 보여야 고무줄 뛰기에 끼워주니깐</p><p class="ql-block">그 다음으로 괜찮은 재료는 내복바지 허리에 넣는 넓은 고무줄을 사서 길게 연결해 만든 고무줄이었다. 그런데 타이어로 만든 고무줄에 비해 너무 가늘었고 또 흰부분이 쉽게 때를 타는 단점이 있었다.</p><p class="ql-block">제일 허접한 것은 머리를 묶는 노란색 고무줄을 하나씩 이어서 만든 고무줄이었다. 가늘고 쉽게 끊겨져서 최악의 고무줄이었다.</p><p class="ql-block">가장 신기했던것은 인터넷도 없는 시대, 전국에 똑같이 보급된 고무줄 뛰기 동요와 방법이었다.</p><p class="ql-block">동요는 글로 적혀 있는게 아니라 구두로 전파되다보니, 그 때 어린나이에도 일부 구절은 이해 불가하다고 수상쩍어 하면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p><p class="ql-block">이를테면 동존서 게임이 있었는데 우리는 구두로 이렇게 불렀다. “董存瑞,十八岁,参加了革命游击队,炸掉吧,牺牲了,光荣的任务完成了” 문제는 “炸掉吧” 에 있었다. 왜 다른 사람을 폭파시키라고 권유하지? 계속 의문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이 보급된 후 “炸碉堡” 인데 잘못 전달받아 틀리게 불렀음을 알았다.</p><p class="ql-block">그리고도 유명한 동요들이 많았다. </p><p class="ql-block">“小皮球架脚踢,马莲开花二十一,二五六、二五七、二八二九三十一,三五六、三五七、三八三九、四十一、四五六、四五七、 四八四九、五十一 ,五五六、五五七、五八五九、六十一, 六五六、六五七、六八六九、七十一 ,七五六、七五七、七八七九、八十一,八五六、 八五七、八八八九、九十一, 九五六、九五七、九八九九、一百一 。”</p><p class="ql-block">여기서 “架脚踢”도 오늘 인터넷 검색하면서 정확한 독법을 알았다. 구두로 전달돼서 정확히 뭔지 몰라서 “ji gan jiang” 하면서 얼버무려서 대충 발음했던 같다. </p><p class="ql-block">동요치고는 전부 불규칙 숫자로 조합돼서 좀 이상하기도 했다. 최근에 马兰이라는 핵무기 개발 기지에서 기술을 암호화해서 퍼뜨렸다는 설들이 돌고 있다. 진가여부는 모르지만 뭔가 수상한거만 사실이다. </p><p class="ql-block">门前大桥下 游过一群鸭</p><p class="ql-block">快来快来数一数 二四六七八</p><p class="ql-block">이 동요도 숫자를 24678로 세고 있어서 뭔가 의심해볼 필요는 있다. 동요라고 숫자를 막 잡은건지 이유가 있는건지 세월이 지나가면 밝혀지겠지</p> <p class="ql-block">좀 더 어렸을 때 많이 놀았던 게임은 跳房子이었다.</p><p class="ql-block">우리집은 현간부 가족단지에 위치한 제일 길 옆 집이었고 두 집 건너 옛 최현장네 가족이 살고 있었다. 최현장은 나이에 비해서 일찍 세상을 떠났고 현장 부인이 성가하지 않은 둘째 아들과 막내 아들, 그리고 큰 딸네 맏이, 즉 외손녀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 집 외손녀는 김현화라고 나보다 두살 위었고 동년시기 가장 친한 베프었다.</p><p class="ql-block">우리가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놀았던게 跳房子었다. 엄마 학교에서 분필 꽁다리 얻어다 길바닥에 9층을 그린다. 그리고 제기를 1층에 던지고 외발로 1층을 건너뛰어 그 다음층을 차례로 간다. 그리고 돌아 올 때 제기를 줍고 다시 그 층을 건너뛰어 밖으로 나오면 한 주기 미션은 완성이다. 그렇게 한층씩 차례대로 먼저 다 따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p><p class="ql-block">나와 현화는 둘 다 몸치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같이 놀기에는 정말 찰떡 궁합이었다. 서로 위기의식 없이 부담 안 갖고 놀 수 있었으니깐.</p> <p class="ql-block">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소뼈다귀 받기 게임이 유행되었다. 牛ga la라고 일컬었는데 지금도 그 두 글자에 해당되는 한자가 뭔지 모르겠다.</p><p class="ql-block">소 관절뼈(?)네개와 제기로 노는 게임이다. 먼저 소 뼈를 뿌리면 형태 각양하게 분포된다. 그러면 제기를 공중에 뿌린 후 손으로 소 뼈 하나를 눕히고 제기를 받는다. 그렇게 하나씩 소 뼈를 눕힌 후 마지막에 제기를 공중에 던지고 소 뼈 네개를 거머쥔뒤 떨어지는 제기를 받으면 이기는 게임이다.</p><p class="ql-block">나는 발런스도 떨어지고 손이 작아서 뼈 네개를 한번에 쥐는거에 자주 실패하군 했었다. 학교에서 받은 좌절감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시간은 방과후 현화랑 같이 노는 시간이다. 상처가 싹 다 치유되고 자존감이 다시 살아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p><p class="ql-block">모든 집에서 다 소 뼈를 구할 수 있는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시절 누군가 소 뼈를 갖고 있으면 애들이 주변에 자동적으로 모이는 대단한 존재었다. </p><p class="ql-block">그리고 당연히 대체품들도 나타났었다. 나와 현화의 대체품은 군기(军旗)었다ㅋ 불규칙적인 소 뼈보다는 납작한 군기가 눕히고 뒤집기에는 오히려 더 좋았다. </p><p class="ql-block">조건이 없어도 만들어서 노는 아이들… 아이들이 놀음에 대한 열정은 객관 조건으로 막을 수 있는게 아니었다.</p> <p class="ql-block">수업시간 사이 10분씩 쉬는 시간이 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운동장에 나와서 신나게 게임을 놀고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줄뛰기었다.</p><p class="ql-block">두 사람이 줄을 흔들고 다른 사람들은 한쪽에서 동요를 부르면서 뛰어 들어간다. 동요는 중국어, 한국어 두가지 버전 다 불렀었다.</p><p class="ql-block">摇一摇二摇三上까지 부르면 줄에 뛰어들어가야 했다. 一二转大圈 하면 줄뛰기를 뛰면서 한바퀴 돌아야 했고 三四腿劈开하면 노래에 맞추어 다리를 벌려야 했으며 五六手点地하면 손으로 땅을 한번 닿아야 했다. 그 뒤에는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데 한명이 더 들어가서 악수도 하고 동요에서 请出去까지 부르면 줄에서 나갔어야 했다.</p><p class="ql-block">한국말 버전도 있었다. “손님이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 반갑습니다…” 일부만 생각나는데 암튼 노래 내용에 따라 동작을 하면서 단체로 하는 놀이었는데 쉬는 시간이 너무 짧아 항상 아쉬운 마음을 품고 교실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p> <p class="ql-block">쉬는 시간에 “뱀꼬리게임”이라는 것도 했는데 이건 우리 지역 특색 게임 아닌가 싶다.</p><p class="ql-block">땅바닥에 나뭇가지로 동그라미를 잔뜩 그린다. 동그라미 사이에는 가는 통로를 그려 연결시킨다.</p><p class="ql-block">두 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하는데 진공편과 방어편으로 나뉜다. 진공편은 제일 처음 동그라미에 모두 들어가 서있고 방어편은 모두 가는 목으로 그린 통로밖에서 지키고 있다. 방어편은 진공편이 동그라미안에 있을 때는 건드릴 수 없고 통로를 지나갈 때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 진공편의 미션은 모든 동그라미를 순조롭게 통과하여 제일 마지막 동그라미에 도착하면 “우라~”하고 웨치는 것이다. 우라는 러시아어로 “만세”라는 뜻인데 변방지역이라 이런 게임이 만들어졌나보다. 지나가기 위해 미친듯한 속도로 뛰는 자와 막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 써서 지나가는자를 밖으로 당기는 자들로 치열했다. </p> <p class="ql-block">동서남북풍으로 그날 점괘 보는 게임도 있었다. 종이를 접어 네칸을 만들고, 각각 동서남북을 쓴다. 그리고 안쪽에는 원하는 결과들을 쓴다. </p><p class="ql-block">상대방이 “서쪽 두번” “남쪽 네번” 이런 식으로 요구를 제출하면 점 보는 사람이 요구대로 움직인다음 멈춰섰을 때 안쪽에 쓴 글을 읽으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이다. </p> <p class="ql-block">뜨개 뜨기도 여자애들이 즐겨 노는 게임이었다. 털실을 묶어 동그란 환을 만든 뒤 양손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든다. 상대방은 손으로 떠서 다른 형태로 옮겨가야 하며 풀리면 실패한 거로 치는 게임이었다</p> <p class="ql-block">이 외에도 놀거리들이 참 많았다. 유리알 치기, 카드로 집 짓기, 딱지, 썰매타기… </p><p class="ql-block">돈을 안 쓰고 놀 수 있는 것도 이렇게 많다는 점, 그리고 돈 안 써도 그 즐거움은 비싼 랜드 가는거나 똑같다거… 이런 점이 참 경이롭다.</p><p class="ql-block">역시 우리 시대는 황금시대였어!라는 감동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