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돌아보니 …

南春爱(初升的太阳)大连

<p class="ql-block">  오늘은 토끼해의 첫날이다. 인생길 60년 걸어걸어 오늘부터 원점에서 새시작을 하게 된다. 이 의미깊은 날을 맞아 빨강옷을 입고 미소로 거울 앞에 섰다.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는 동심을 살짝!</p> <p class="ql-block">  홍조에 스스로 행복감 만끽하는 이 마음! 마음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만들어 밖으로 표출시키고 다시 업그레이드된 기분속에 도취되여 본다. 아름답다.</p> <p class="ql-block">  2022년은 많고 많은 일과 사건들에 겹겹히 에워싸였댔다. 그것을 헤치고 나오는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한 한해! 남이 봤을 때는 아픔이나 암흑을 광명으로 만들어 잘살아왔으니 어쩜 괜찮은 사람인가보다. 자화자찬이 다 나쁘지는 않다.</p> <p class="ql-block">  사람의 인생은 만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서도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정직하고 바른 마음을 조금도 굽히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대단한것이다.&nbsp; 사실 한해전 새해의 시작인 2022년 1월 1일에 이미 이러한 마음의 시작을 열었다. 원피스를 차려입고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면 올 한해에도 잘 걸을 수 있을거야 라고 혼자 스스로를 타일렀다.&nbsp;</p> <p class="ql-block">  2월에는 59세 생일맞이로 검정치포사진 한장으로 남겼다. 이 순간을 위해 치포를 빌려오던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일년이란 세월이 갔다. 세월에는 날개가 달려있어서 쉼없이 날아 앞으로 달리고 있다. 2월 말에는 대련조선족문학회의 재무비서 인수인계식이 따랐다.</p> <p class="ql-block">  3월에는 룡대두날, 3.8여인의 날을 맞이하였다. 룡대두날과 3.8에는 마침 수업이 있는 날이라 연구실거울앞에 섰었다. 단체로는 대련조선족문학회 3.8절맞이행사를 한 기억이다. 전원이 한복을 입고 편을 갈라 모야를 부르며 윷놀이를 하면서 전통문화에 잔치상을 차렸다</p> <p class="ql-block">  4월은 봄기운이 대통하는 한달이라 자연과 많이 만났던 기억이다. 4월 5일 청명연휴를 계기로 해서 4월 11일은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닫지 않은 바다로, 4월 15일은 숲속에서 만난 야생보라색제갈량꽃에 매료되여 집으로까지 꺾어와 사진을 남기면서 환희에 빠졌던 시간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nbsp;</p> <p class="ql-block">  이어서 4월 24일은 몇몇이 대흑산진달래 꽃구경을 갔던 기억이 좋다. 하얀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진달래바다에 뛰어들때의 그 느낌은 무엇으로 형언하랴!&nbsp;</p><p class="ql-block"> 자연의 정기에 충전을 하였으니 이제는 자연이 깃든 그림전시회가 기다린다. 4월 27일에는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의 흔적과 생활의 모습들을 다분히 담은 미술작품들을 마음껏 흔상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환상적이다. 삶은 가꾸어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잊지 않고 작은 기쁨조각들을 선사해 주는가보다.&nbsp;</p> <p class="ql-block">  5월은 자연의 기가 가장 성한 한달이지만 졸업논문 지도에 잡혀서 자연과 만날 시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꽃점에 핀 꽃들을 집에 옮겨 와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차림을 하고 찰칵 한컷을 하여 기념을 하였다.</p> <p class="ql-block">  6월초에 학생들의 졸업논문 답변이 끝나 분위기전환용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중인데 농공민주당단체행사가 문앞에 섰다. 무조건으로 달려가 대오에 섰다. 몸에 차곡차곡 싸인 피곤기를 한번에 털어내는 좋은 기회이다. 해방전쟁시기에 총포를 생산했던 무기공장 유적지참관하고 그 역사를 들었다. 이어서 금주 앵두장원으로 갔다. 6월의 자연은 매력그자체였다. 힘을 쌓았으니 이젠 계획했던 대련조선족 문학회행사를 해야 했다. 먼저 6월 19일의 수필교류 및 김치체험이다. 그다음 6월 29일은 시가교류 및 쑥떡 체험이다. 사는 것은 움직인다는 뜻임을 감득한 한달이다.&nbsp;</p> <p class="ql-block">  7월초에는 담당 과목들의 학기말 시험이다. 마친 그날로 친정 엄마 뵈러 내몽골 고향집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여전하시다. 거동을 밀차에 의지하여 보내고 계셨고 전담 보모와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엄마와 같이 한 나날은 한주밖에 안되지만 그리움은 풀었다. 엄마가 있는 아이는 세상에 제일 행복하다는 말은 꼬마에게만 해당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부랴부랴 갔다가 직장 생활에 복귀하여서 학과 박사후 여선생의 결혼상에 앉을수 있어 다행스럽다.</p> <p class="ql-block">  8월 복철에 들어서는 사람을 만날까봐 눈치를 보며 살면서 땀과 함께 하면서 살아야 했다. 졸업논문과 관련된 열개 파일들을 다 정리하여 봉투에 넣는 작업이 남아 연구실에 갔다가 몸을 겨우 가린 원피스바람으로 8월더위를 남겼다. 이 원피스는 집안용이라 시원하고 편한 특점이 있지만 예쁘지는 않다. 그런대로 사진에는 예쁘게 나와줘서 고맙다. 팔월의 중순에는 년초에 있은 북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계획했던 대련조선족문학회 제2차 문학상 시상식을 거행했다. 수필상 시가상 두 부문이다. 계기가 2월 4일에 있은 북경동계올림픽 체육대회라 시상식 장소를 대련서교골프장으로 정했다. 많은 문인들에게는 새로 만나는 삶의 한 장이었다.</p> <p class="ql-block">  9월에는 3일이 되는 날에 남편과 같이 반날시간을 내여 쇼요완 해변도로를 달렸다. 길가에 우거진 녹음과 야생화가 눈길을 끌어 기억에 남겼다. 9월의 셋째주에 학생들이 학교에 개학등교를 하기에 교사들은 반드시 핵산을 받아야 했다. 핵산받으러학교에 갔는데 캠퍼스에는 산사열매가 무르익고 있었다. 나무아지가 휘여질 정도로 주렁져서 빨갛게 익었다.&nbsp;</p><p class="ql-block">셋째주 주말은 복철의 마감이 보여서 마음놓고 직장 친구와 같이 대흑산에서 금주로 향한 한적한 시골길을 네시간이나 걸었다. 도중에 대자 호박장사도 보고 시골의 고추와 박을 길가 좌판에 놓고 파는 장면도 보면서 어렸을때 엄마와 고추보따리를 이고 시장에다 팔고 그 돈으로 새끼돼지를 사가지고 안고 마을버스로 집에 온 일이 생각키웠다. 즐거움이 백배 되었다.</p> <p class="ql-block">  국경절 연휴가 없었다. 9월의 세번째 주에 학생들이 학교에 다 입주를 했으니 선생이 없는 학교에 국경연휴 한주동안 학생들을 캠퍼스에 그냥 둘수가 없다. 그래서 국경연휴에 휴식이 없다는 학교정신에 쫓아 평소와 같이 수업을 나갔다. 그날이 10월 3일이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한컷 했다. 5일동안 약진정신으로 10월 8일의 개학식과 신입생환영만회를 위한 합창준비를 하였다. 그 전날에 리허설을 하였는데 노래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아 체하면서 같이 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사는데는 무리가 없다는걸 이렇게 알았다. 이튿날 정식 공연을 위해 좀더 노력해야 겠다.&nbsp;</p> <p class="ql-block">학교수업 두주만인 10월 14일에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연구실 책정리에 땀을 좀 흘린후 외대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복도로 나오니 학교 건물안은 이미 텅비여있었다. 연구실에서 의복을 갈아입고 동영상강의에 필요한 참고서적을 다 챙겨들고 주차장을 향했다. 나는 학교를 떠나오기전에 텅빈 캠퍼스에서도 그 기억을 남겼다.&nbsp;</p><p class="ql-block">10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한가지 해냈다. 전혀 눈치 봄이 없이 5년간 지고 가던 무거운 짐을 가볍게 결단력있게 내려놓았다. 5년동안 희생과 헌신을 하여 키우고 성장시킨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해와 박수가 안 따라가는 헌신은 무의미한것임을 알았기때문이다. 3개월전의 일을 지금 적고 있지만 그 일로 하여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한생을 두고 함께 할수 있는 좋은 친구를 여러이 얻었고 인생의 배움을 얻었고 인식의 각성을 얻었다. 이는 마흔두살에 대학원공부건으로 해외 유학을 선택하여 인생전환점을 만든것에 비견할수 있는 호사이다.&nbsp;</p> <p class="ql-block">11월 20일경에 학교에서는 다시 정상교실수업에로 들어갔다. 이날 역시도 기억에 두어야 했다. 그래서 종강하는 과목들이 나올때 기념을 역시 남겨두었다. 2022년 12월은 잊을 수 없는 달이다. 엄마를 보내드린 달이다. 코로나 양성환자에서 음성으로 정상인으로 되돌아왔다. 통과의례다. 21일쯤에는 학교에 나가 학기말 사무를 볼수 있었다. 호사는 순간! 27일 오전 엄마의 후사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91세 고령이라 매일 걱정을 했지만 엄마가 정말 돌아가리라고는 생각해본적 없다. 비행기가 기차도 없다. 28일 밤10시에야 엄마가 계시는 곳에 도착했으나 외지인이 출입이 막혔다. 이튿날에 겨우 엄마방에 갈수 있었다.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셨고 링게르를 팽생 싫어했지만 먼곳에 사는 자식들을 기다리기 위해 어제는 링게르를 맞겠다고 하셨단다. 그 덕에 엄마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고운눈을 뜨셨다. 나는 엄마의 예전 부탁대로 처리해둔 모든 일들에 대해 일일이 말씀드렸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하시며 안심을 보이셨다. 오래 있으면 안되니 빨리 가라고 하여 엄마한테 두시간밖에 못 머물고 나왔다. 오후 세시에 다시 갔더니 사장님은 할 수 없는지 문을 열어주고 아침처럼 소독을 시켜줬다.</p><p class="ql-block">엄마는 오전에 비해 생명이 미약했다. 아무리 엄마 당신의 귀에 대고 딸이 왔다고 말씀드려도 눈을 못 뜨셨다. 이제 생명은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nbsp;</p><p class="ql-block">엄마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 손에 의해 우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 손힘을 다 쓰시고 엄마는 가셨다. 조용히 가셨다.</p><p class="ql-block">어릴때 엄마가 속속하며 우리에게 옷을 입혀줄때 처럼 나도 엄마의 몸을 깨끗이 닦고나서 엄마에게 속속하며 수의를 갈아입혔다. 그리고 엄마를 안았다. 엄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엄마, 나중나중에 우리 형제들 엄마찾아 갈것이오니 먼저 가셔서 좋은 곳 자리잡고 잘 계셔요!</p> <p class="ql-block">  2022년 한해동안을 돌아보니 사람이 사는 것은 일상에 지나지 않는거 같다. 직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하는 일이나 자유시간이 나서 행해보는 즐거운 일이나 부득이에 의해 용감해지는 일이나 생명의 마지막을 맞는 모든 것은 인간 모두에게 차려지는 일상사일뿐이다. 이 일상사에는 희노애락이 구석구석 스며있어 두려울수도 있겠지만 마음준비 한가지만 잘 되어있는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그치게 된다. 삶은 이런 것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삶이 그러하니 모든 것은 과정일뿐이다. 그러니 거치고 온 일에 연연하지 말자!&nbsp;</p><p class="ql-block">토끼해! 립춘이 두번이 있어 복찬 한해! 그믐날부터 마음다듬기 연습이다. 실천의 가장 중요한 일환으로 샤워하고 마음드는 옷으로 갈아입고 헤어스타일을 스스로 설계한 후 거울앞사진을 한장 남긴다. 환희에 찰랑이는 사진속 여자 멋진데가 보인다. 토끼해 맞는 기쁨에 풍덩 빠져나보자!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nbs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