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荣能的美篇

金荣能

<p class="ql-block">  시사랑 반백년 그 비하인드스토리를 헤쳐본다</p><p class="ql-block"> -김영능시인을 만나다</p><p class="ql-block"> 한영남</p><p class="ql-block">ㅡ 시는 고백이고 일기입니다. 련애편지도 시로 써서 보냈거든요. 그걸 꽁꽁 참 오래 보관했었는데 그만 분실하고 말았네요. 지금도 뒤지면 시가 꽤 나올텐데…</p><p class="ql-block">ㅡ 시는 저의 삶의 지팽이입니다. 인생의 황혼을 삿대질할 수 있는 꽤 멋진 연장이기도 합니다…</p><p class="ql-block">ㅡ 삶의 굽이마다에 힘들고 지칠 때 시가 없었더라면 제가 어떻게 그 파란만장한 고개들을 넘어왔을가요?</p><p class="ql-block">이렇게 중얼거리며 시인은 오늘도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시길을 정겨운 눈매로 바라본다. 그의 훤칠한 이마로 시땀이 철철 흐른다.</p><p class="ql-block"> 술과 시</p><p class="ql-block">대개 시인들은 술을 즐긴다. 특히 김영능시인의 경우 그야말로 술을 떠난 삶이란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치 애주가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도 오바이트하거나 그러는 법이 없고 마지막까지 말짱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다.</p><p class="ql-block">가만있자. 그러니까 김영능시인과의 첫 만남이 언제였더라. 그래 맞다! 필자가 연변인민출판사 &lt;별나라&gt;편집부에서 편집으로 있을 때였지.</p><p class="ql-block">그 무렵 필자는 비록 초빙일망정 연변인민출판사에 출근한다는 호기를 뽐내며 약간 거들먹거리고 있었다.</p><p class="ql-block">어느 날 이마가 훌렁 벗어진 50대의 신사 한분이 편집부로 찾아왔다. 자기가 쓴 개인시집을 출판해줄 수 없냐는 부탁차 찾아온 것이였다.</p><p class="ql-block">통성명을 거쳐서야 김영능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고 그날 점심으로 우리는 술을 마주하고 앉았다. 시인은 술흥을 시흥으로 돋굴 줄 아는 분이였다. 그것은 대뜸 필자를 심쿵하게 만들었다.</p><p class="ql-block">옳거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시인인게지!</p><p class="ql-block">그렇게 나이를 잊은 우리의 &lt;시련애&gt;는 시작되였다!</p><p class="ql-block">그뒤 시집출판건으로 수차 편집부를 방문한 시인은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것이였다.</p><p class="ql-block">ㅡ 한번 영남이네 집에 가서 술 마셔보자구!</p><p class="ql-block">같은 생각 중이였던 필자가 마다할리 없었다. 우리는 곧 택시를 잡아타고 그 유명한 7선 종점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필자의 코구멍만한 세집이 있었던 것이다.</p><p class="ql-block">상점에 들렸다. 맥주는 물론 상자들이라야 제맛이다. 마른 명태를 빼놓을 수야 없지.</p><p class="ql-block">그리고 다른 무엇무엇을 더 주문하려는 필자를 시인은 단호하게 막아나섰다.</p><p class="ql-block">ㅡ 술은 안주가 많으면 술맛이 나지 않아!</p><p class="ql-block">역시 필자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있었다.</p><p class="ql-block">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술과 시의 릴레이!</p><p class="ql-block">우리는 술 한모금에 시 한수를 읊으며 밖에서야 날이 저물든 자정이 깊어가든 아랑곳하지 않았다.</p><p class="ql-block">삼태성이 앵돌아지고 밤은 바야흐로 깊어갔지만 우리의 술은 끝나지 않았고 시흥은 점점 도도해지고 있었다.</p><p class="ql-block">마침내 밖에서 닭이 홰를 치고(그 무렵 연길 7선 종점에는 대부분 단층집이였고 닭개돼지를 치는 집들도 많았음) 두부장사의 싸구려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p><p class="ql-block">ㅡ 영남이는 출근해야 하니 우리 잠시라도 눈 붙이자. 그리고 아침에 시간 되면 출근해. 난 좀 더 자다가 나절로 알아서 갈테니…</p><p class="ql-block">그랬는데 결국 내가 해가 서발이나 떠서 깨나보니 시인은 가고 없었다. 지난 밤 내가 부득부득 우기며 상점에서 외상으로 술을 가져온 것을 본 시인은 돈 200원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떠났다.</p><p class="ql-block">그리고 우리는 각종 문학행사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고 우리의 &lt;시련애&gt;는 깊어만 갔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사랑과 시</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김영능시인은 깊은 사랑을 가진 분이다. 그의 략력에서 한 줄 옮겨온다.</p><p class="ql-block">길림성 훈춘시 영안촌 태생(1946년 3월 24일). 다년간 공장광산 등 기업에 근무. 선후로 훈춘시민족복장공장, 훈춘시전자계기공장 당위서기 겸 공장장 력임.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시집 &lt;별에 부치는 노래&gt; 등 4권. 동시집 &lt;하늘학교&gt; 등 3권 출간. 동포문학 시부문 대상 등 다수 수상.</p><p class="ql-block">시인은 어려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9남매 중 맏이로 태여나 엄한 부모님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초중을 전교에서 유일한 최우등생으로 졸업했으나 가정난으로 고중진학을 포기한 시인은 농사일을 하게 된다. 그 무렵을 추억하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p><p class="ql-block">ㅡ 헐벗음은 참을 수 있었으나 배고픔은 견디기가 어려웠어요. 보자기에 책을 꿍져안고 학교를 오갔는데 공책과 연필은 대부분 애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얻어쓰군 했지요. 소학교를 졸업할 때는 입성이 맞갖지 않아서 옆집 동생벌되는 애의 옷을 빌려입었는데 옷이 작아 단추도 제대로 채우지 못했고 팔소매도 반팔처럼 짧았어요.</p><p class="ql-block">영안촌에서 생산소대 정치대장, 촌대대위원, 민병련장 등을 력임하면서 유망한 청년간부로 발돋음했고 공사와 대대의 추천으로 길림사범대학에 입학하게 되였는데 외국에 친척이 있다는 리유로 대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시인은 그야말로 평생 울 눈물을 펑펑 다 쏟아야 했다.</p><p class="ql-block">1971년 훈춘금광 로동자모집에 응해 합격되였고 선후로 훈춘금광, 조양천야금지질탐사대, 조양천중학교, 조양천농기수리공장, 훈춘종이공장, 훈춘시민족복장공장, 훈춘시전자계기공장 등 단위들을 전전하면서 로동자, 교원, 과장, 공장장, 당지부서기 등 직을 맡고 청춘의 정열을 불태웠다.</p><p class="ql-block">개혁개방이 시작되자 시인은 훈춘이라는 지리적우세를 충분히 발휘, 국제무역에 뛰여든다. 그는 안해의 목걸이와 반지 등을 저당잡혀 1만 9천원이라는 종자돈을 마련해가지고 조선, 로씨야의 특산품들을 중국의 시작으로 날라오고 중국의 특산품들을 조선이나 로씨야의 시장에 널어놓군 했다. 초창기에는 렬악한 환경으로 적응이 어려웠고 그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p><p class="ql-block">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비들을 넘나들면서 시인의 가슴속에서는 사랑만이 움트고 자라나 무성한 시나무로 우거지게 된다.</p><p class="ql-block">마침내 시인은 55세되던 해인 2001년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p><p class="ql-block">ㅡ 김영능의 시는 진실한 생활속에서 온 것으로서 거기에는 아무런 가식도, 구김살도 없이 소박하면서도 정서가 은은하여 그속에 시인의 진정이 담긴, 사랑으로 넘치는 마음의 향기가 그윽히 흐른다.(전국권 평론가)</p><p class="ql-block">ㅡ 김영능은 성실하고 도리와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면목도 모르는 위급한 환자에게 선뜻 팔을 내밀어 수혈도 해주는가 하면 산골물에 뛰여들어 생사를 다투는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했고 불 붙는 액화가스통에 다가가 솜옷으로 덮어 불을 끄고 더 큰 사고를 막기도 했다. (김동진시인)</p><p class="ql-block">ㅡ 협회 여러 행사에 해마다 후원금을 보내주고 생활고를 겪는 시인들을 도와 시집까지 내주는 분이다. (연변시인협회 전병칠회장)</p><p class="ql-block">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의 시가 어찌 독자들을 울고 웃기지 않을 수 있으랴.</p><p class="ql-block">편편 주옥은 아니로되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독자들의 호평을 받는 시인의 시는 언제나 아픈 사람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부드러운 손길이기도 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예리한 수술칼이기도 하다.</p><p class="ql-block"> 반세기를 훌쩍 뛰여 넘은</p><p class="ql-block"> 55년전 낫과 망치 붉은기 아래</p><p class="ql-block"> 인생의 행로를 다짐한 적 없었다면</p><p class="ql-block"> 세월의 소용돌이 겪어 내였을가</p><p class="ql-block"> 세상의 돌개바람 이겨 내였을가</p><p class="ql-block"> 거울속 내 삶의 모양새는</p><p class="ql-block"> 또 다른 어떤 양상이 였을가</p><p class="ql-block">ㅡ 서정서사시 &lt;빠알간 자화상&gt; 일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시와 시</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김영능시인한테서 시를 빼면 무엇이 남을가.</p><p class="ql-block">필자는 단호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김영능시인한테서 시를 빼도 시만 남는다고.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안개 타고 남천문에 올라서니</p><p class="ql-block">중천문 삭도 은하수 쪽배런가 </p><p class="ql-block">가파른 벼랑사이 곧게 뻗은 돌층계</p><p class="ql-block">하늘 오르는 신선길 아닌가</p><p class="ql-block">천궁에서 내려보낸 사다리 틀림없다</p><p class="ql-block">달빛 밟고 옥황정에 올라서니</p><p class="ql-block">오강의 도끼소리 귀전에 들리는듯</p><p class="ql-block">상아가 담가놓은 계화주 향기 짙어</p><p class="ql-block">발돋음 손들어 월궁문 두드리려니</p><p class="ql-block">이웃집 견우직녀 꿀잠 깰가 두려워라</p><p class="ql-block">이른아침 일광정에 올라서니</p><p class="ql-block">빌밑의 구름 불바다같은데</p><p class="ql-block">당승이 속태우던 서천길목 예 아닌가</p><p class="ql-block">떠오르는 붉은해 천도복숭아</p><p class="ql-block">손대성 나타나면 한번 겨루어보련다 </p><p class="ql-block"> ㅡ &lt;태산에 올라&gt;</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한밤에 함박눈 내리네</p><p class="ql-block">한맻인 할머니 언 눈물</p><p class="ql-block">한세상 하얗게 덮었네</p><p class="ql-block">한생</p><p class="ql-block">한번 가면</p><p class="ql-block">한이라고</p><p class="ql-block">한심한 시집살이</p><p class="ql-block">한평생 보내고</p><p class="ql-block">한숨만 남았다고</p><p class="ql-block">한많은 세월</p><p class="ql-block">한가슴 설움</p><p class="ql-block">한아름 안아서</p><p class="ql-block">한겨울</p><p class="ql-block">한탄을</p><p class="ql-block">한꺼번에 쏟아놓네</p><p class="ql-block"> ㅡ &lt;함박눈&gt;</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흙모래</p><p class="ql-block">바위틈새</p><p class="ql-block">암흑을 헤집는다</p><p class="ql-block">줄기를 바로 세우고</p><p class="ql-block">우듬지 높이 쳐들고</p><p class="ql-block">이파리 푸르게 살찌우려고</p><p class="ql-block">시린 시절</p><p class="ql-block">아픈 세월</p><p class="ql-block">검은 세상 다 참는다</p><p class="ql-block"> ㅡ &lt;뿌리&gt;</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자, 이제 번거롭게 례를 들지 말자. 우리는 상기 시들에서도 시인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거니와 시인의 푸근한 인성과 예리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p><p class="ql-block">시는 령혼의 발로이고 시인의 감성과 리성의 결과물이며 시인의 인생경력에 대한 개괄인 까닭이다.</p><p class="ql-block">나이를 접어두고 호형호제하기로 한 것이 어언 20여년이 된다. 수년전에 김영능시인 등 훈춘문인들의 요청을 받고 안해와 아들까지 동반하여 훈춘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김영능시인은 70세의 홀홀치 않은 년세에도 직접 핸들을 잡고 필자의 온집시구들을 자가용에 앉혀 방천, 단교, 산딸기농장 등 곳곳을 구경시켜주었고 맛있는 음식들을 사주었다. 물론 술이 빠질리 없었다.</p><p class="ql-block">후에 연변에 가서 문필회에 참가했을 때 필자가 몸이 상해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 것을 본 시인은 아쉬운 표정을 가무리지 못했다.</p><p class="ql-block">시를 빼도 시밖에 남지 않는 시인, 늦깎이로 시작한 시에 미쳐 인생황혼을 시불로 황황 불태우는 시인, 김영능시인에게는 시선물이 가장 좋은 선물이리라. 그리하여 즉흥으로 시 한 수 적어 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한다.</p><p class="ql-block">락조를 꺾어 詩지팽이로 삼았소</p><p class="ql-block">구름너머 꿈을 詩연으로 날리오</p><p class="ql-block">낚시에도 詩가 걸려나오면 얼마나 흐뭇하겠소</p><p class="ql-block">서늘한 바람 한 점 詩가 되여준다면</p><p class="ql-block">평생 여한이 없으리</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도라지 2022년4기에 등재</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