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장편소설(連載 3)</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현대의 영웅」</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미하일 레르몬또브[로씨야]</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차 례</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저자의 서문.................................1</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제1부</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벨라 ............................................2</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막심 막씨믜치.............................69</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제2부 <뻬쵸린의 수기>................86</span></p><p class="ql-block"></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서문........................................ ....86</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1. 따마니............................. ........89</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2. 공작아가씨 메리......................111</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3. 운명론자............................... ..248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57, 181, 74);"> 제2부 <뻬쵸린의 수기></span></p><p class="ql-block"></p><p class="ql-block"></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공작아가씨 메리」(1)</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5월 11일</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제 나는 뺘찌고르스크에 도착하여 거리의 맨끝 마슈크 산 기슭의 제일 높은 곳에 세집을 얻었다. 지대가 높아 소나기라도 내릴 때에는 구름이 나의 지붕에까지 내려올 것 같았다. 오늘도 아침 다섯 시에 창문을 열었더니 소박한 조그만 정원에 핀 꽃향기가 나의 방안에 차고넘쳤다. 지금 한창 꽃피는 벗나무 가지들이 나의 창문을 엿보며 때때로 바람이 그 하얀 꽃잎을 나의 책상 위에 뿌리였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의 집에서 보는 3 면의 경치는 매우 훌륭하였다---서쪽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련달린 베쉬뚜 산이 털이 부르르한 페르샤의 모자처럼 우뚝 솟아있어 그 쪽의 지평선을 모조리 뒤덮었으며 동쪽의 풍경 역시 더욱 좋았다 ---안하에는 깨끗하고 산뜻한 도시가 아물거렸고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터에서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저편 쪽에는 마치 원형 극장인양 첩첩한 푸른 산봉우리들이 자욱한 안개에 덮여 있었고 지평선 저쪽에는 까즈베크 산에서 시작되여 두 개의 봉을 이룬 엘리보루쓰 산에서 끝나는 산줄기들이 은빛 눈에 덮인 채 련이어 있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러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상쾌하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기쁜 감정이 나의 모든 혈관 속에 충만되었다. 공기는 어린애의 키스처럼 깨끗하고 신선하였다. 태양은 쨍쨍히 빛났고 하늘은 푸르다--- 이 이상 또 무엇이 필요하랴? 하는 생각이 앞선다. 무엇때문에 정열이니, 희망이니, 비애니 하는 따위가 요구될 것인가? ... 그러나 벌써 시간이 되었다. 인제는 엘리자배따 온천으로 가보자--- 매일 아침 목욕하는 손님들이 전부 거기에 모인다니.</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도시의 중심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가로수 길을 걸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천천히 산으로 올라가는 기력 없는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대다수는 초원에서 온 지주들의 가족이었다. 그것은 그 남편들의 다 해진 구식 외투와 그들의 안해와 딸들의 멋없이 화려한 옷차림으로 수이 알아낼 수 있었다. 보기에 그들은 목욕하기를 즐겨하는 젊은이들과는 이미 낯을 익힌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간의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뻬쩨르부르그식의 외투는 그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였지만 군인 견장을 보자 그들은 멸시하는 듯이 얼굴을 돌리였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지방 관헌들의 녀편네들, 말하자면 온천의 여주인들은 퍽 애교가 있다. 그 부인들은 손잡이가 달린 안경을 가지고 있으며 군복에 대하여서는 그리 주목을 돌리지 않는다. 이러한 부인들은 깝까즈에서 지내면서 번호 달린 단추 밑에 간직한 열렬한 마음을 그리고 하얀 군모 밑에서 교양 있는 두뇌를 찾아내는데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부인들은 매우 상냥하며 어디까지나 싹싹하였다! 이 여성들의 숭배자는 해마다 새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었는데 바로 이점에 아마 그 여자들의 꾸준한 애교의 비밀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엘리자베따 온천으로 가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는 한무리의 문관과 무관들을 따라잡았다. 내가 후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그들은 바로 온천의 효력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특수한 계층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마신다---그러나 약수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그리 산보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나가던 참에 들릴 뿐이다. 그들은 그저 놀면서 적적하다고 불평을 말한다. 그들은 멋쟁이들이다--- 유황천에 노끈 달린 컾을 넣으면서도 그들은 아주 문화인다운 태도를 취한다. 문관들은 담청색 넥타이를 매고 무관들은 양복 깃으로부터 카라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들은 지방의 가옥에 대하여 매우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자기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수도의 귀족들의 객실을 생각하며 한탄을 한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드디어 온천에 도착하였다 ... 그 근처의 광장에는 목욕통 위를 붉은 지붕으로 한 조그만한 집이 있고 그보다 좀 떨어진 곳에는 비가 내릴 때에 산보하는 복도가 있었다. 창백하고 우울한 낯으로 몇몇 부상당한 장교들이 쌍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벤취 위에 앉아 있었다. 몇몇 부인들은 약수의 효력을 기대하면서 빠른 걸음걸이로 광장을 여기저기 거닐고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여자들 가운데는 아름다운 얼굴이 두 셋은 있었다. 마슈크 산의 경사면을 덮은 포도넝쿨의 가로수 길가에는 여자들의 화려한 모자들이 알른거렸다. 그것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여자인 듯싶었다. 왜냐 하면 그러한 모자 곁에서 나는 틀림없이 군모가 아니면 보기 흉한 둥근 모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올러쓰의 행금』이라고 하는 정자가 있는 험한 절벽 위에는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엘리보구쓰 쪽으로 망원경을 돌리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연주창을 치료하려고 온 자기의 생도들을 동반한 두 사람의 가정교사가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숨이 가쁘기에 나는 산 한쪽 끝에서 발길을 멈추고는 어떤 집 모퉁이에 몸을 의지하고 그림과 같은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때 갑자기 나의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뻬쵸린! 언제 여기 왔는가?”뒤를 돌아다보니 그루쉬니쯔끼였다! 우리들은 서로 포옹하였다. 나는 그를 전투 부대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총알에 다리를 부상당하여 나보다 일주일 전에 온천에 와 있었던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는 사관 후보생이다. 그는 군무에 들어선지 불과 일 년밖에 안 되지만 사치를 부리는 묘한 버릇이 있어 두터운 군인 만또를 걸치고 있었다. 그에게는 병사의 게오르기 십자 훈장이 있었다. 그의 신체는 좋았고 낯색은 까무스레하며 머리칼은 까맸다. 그는 겨우 스물한 살밖에 안되였지만 겉보기에는 스물다섯이 되어 보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말할 때에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연방 왼손으로 수염을 비틀어댔다. 왜냐 하면 오른손으로는 송엽장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빠른 말로 허식적인 언사를 던진다. 그는 생활의 모든 경우에 대하여 준비된 미사려구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아름답다는 것 쯤에는 감동도 되지 않으며 비범한 감정, 고상한 정열, 특수한 고민에 그럴 듯이 푹 젖어든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다. 효력을 발생케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들의 기쁨인 것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들은 지방의 낭만적인 여성들에게서 정신없이 사랑을 받는다. 나이를 먹으면 그들은 온순한 지주로 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주정뱅이로 될 것이며 때로는 양쪽으로 다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때때로 선량한 소질을 다분히 엿볼 수 있지만 시적인 요소는 조금도 없다. 그루쉬니쯔끼의 취미는 세리후를 외우듯이 말하는 것이다. 그는 회화가 평상적 개념의 범주를 벗어나자마자 당신들에게 말을 던진다. 나는 그와 논쟁을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는 당신들의 반박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당신들이 말문을 닫자 시시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얼핏 듣기에는 당신들이 말한 것과 그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다만 그 자신의 말의 연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는 매우 예민하다. 그의 경구는 때때로 사람의 감흥을 일으킨다. 그러나 결코 정확하지도 않으며 신랄하지도 않다. 그는 그 어느 누구도 한마디로 자극을 줄 수가 없다. 그는 인간을 알지 못하며 그 약점을 알지 못한다. 왜냐 하면 일생동안 자기 자신에만 골몰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되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자주 자기는 평범한 생활을 위하여 창조된 인간인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신비로운 고민을 할 숙명을 지니고 태여난 사람이라고 사람들에게 설득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자기 자신까지도 그것을 믿게 되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하여 그것 때문에 그는 자랑스럽게 그 두터운 병사의 만또를 입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우리들이 표면상으로는 가장 친근한 사이 기는 하였지만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루쉬니쯔끼는 대단한 용사라고들 말한다. 나는 전쟁 마당에서 그를 보았다.---그는 칼을 휘두르며 함성을 지르며 눈을 감고 돌진하였다. 이것은 로씨아 사람의 용감성과는 좀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언제이고 틀림없이 좁은 길에서 충돌할 것이며 그 결과 우리들 중의 어느 한 사람이 불행하게 될 것 같이 생각된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의 깝까즈 출장은 역시 그의 낭만적인 광신의 소산인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그가 그의 부친의 마을에서 출발하기 전날 밤에 침울한 표정으로 근처의 아름다운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리라고, 그는 단순히 근무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찾아간다고. 왜냐 하면 ... 여기서 그는 틀림없이 한 손으로 눈을 가리우고 다음과 같이 말을 계속하였을 것이다 --- “아니올시다. 당신(혹은 그대)은 이것을 알아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순결한 영혼이 전율할 것입니다! 대체 무엇때문에? 당신에게 있어서 내가 무엇이겠습니까? 내 말을 알겠습니까? ...”등등.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는 자기가 깝까즈 연대를 지원한 원인은 그와 하늘 사이의 영원한 비밀로 남을 것이라고 나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 비극적인 만또를 벗어던지기만 하면 그루쉬니쯔끼는 매우 온순하고 재미있는 사나이다. 나에게는 그를 여성 앞에 세워놓고 보는 것이 흥미있으리라고 생각된다--- 틀림없이 그는 매우 노력할 것이니까.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옛 친구로 만났다. 나는 그에게 온천 생활의 모습과 주의를 돌려야 할 사람들에 대하여 물었다.</p><p class="ql-block">“우리들은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고 있다네.”하고 그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매일 아침 약수를 마시는 사람들은 그저 환자들 같아 기력이 없고 저녁마다 술이나 마시는 측들은 모든 건강한 사람들처럼 염증이 난다네. 여성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리 위안도 되지 않지. 그들은 트럼프를 놀지, 복장도 볼 것 없고 게다가 형편없는 프랑스 말들을 하거든! 금년에는 모스크바로부터 리고브쓰끼 공작 부인이 딸을 데리고 와 있네만 나는 그들과는 안면이 없네. 내 병사용 만또는 기피의 표징과도 같은 거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동정은 회사와도 같이 고통스럽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로 이 때 온천을 향하여 우리의 곁을 두 부인이 지나갔다. 한 사람은 상당한 년령의 여자였고 또 한 사람은 젊고 가냘픈 여자였다. 그 여자들의 얼굴은 모자에 가리워 나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 다 훌륭한 취미가 그러하게끔 시키는 그 엄격한 규정대로 필요없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분장을 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는 가슴을 터친 진주색 의복을 입고 있었고 가벼운 명주 목도리가 그 여자의 날씬한 목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갈색 구두는 매우 귀엽게 그 여자의 가느다란 발뒤축에 착 달라붙어 있어서 미의 신비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그저 놀라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그 여자의 경쾌한 그러나 고상한 걸음걸이는 그 어떤 처녀다운, 어떻다고 규정하기도 곤난했지만 보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여자가 우리의 곁을 지나갔을 때 그 여자로부터는 흔히 사랑스러운 여성의 편지에서 풍기는 바로 그 형언할 수 없는 향기가 풍겨나왔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이가 바로 리고브쓰끼 공작 부인이야.” 하고 그루쉬니쯔끼는 말하였다. “함께 가는 처녀가 저 여자의 딸 메리고, 저 여자는 자기 딸을 영국식으로 그렇게 부르거든. 저들이 여기 온지는 사흘 밖에 안된다네.”</p><p class="ql-block">“그런데 자네는 벌써 그 이름까지 알고 있네그려!”</p><p class="ql-block">“아아, 나는 그저 우연히 들었지.”하고 그는 좀 낯색을 붉히면서 대답하였다. “사실인즉 나는 그들과는 알고싶지 않으이, 저런 거만한 귀족들은 우리같은 군인을 마치 야만인같이 보고 있거든. 우선 그들에게 있어서는 번호 달린 모자 밑에 지혜가 있건 없건 두터운 만또 밑에 심장이 있건 없건 그것이 문제로 될게 아니니까!”</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오, 가엾은 만또여!”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런데 저 신사는 대체 누군가, 저 여자들 곁에 가서 겸손하게 컾을 내주군 하는 저 신사말일세?”</p><p class="ql-block">“아! 저이는 모스크바의 멋쟁이 아례비치라네. 저이는 도박군이야. 그건 그 푸른 조끼에 둘둘 감겨있는 커다란 금줄로 쉬이 알아낼 수 있지. 그리고 저 굵은 지팽이는 어때, 틀림없이 로빈손 크루소의 것이 아닌가. 그 위에 또 저 수염, 이발한 꼬락서니 틀림없는 농부 꼴일세.”</p><p class="ql-block">“자네는 온갖 인류에 대해 분개를 하네그려!”</p><p class="ql-block">“그러나 분개할 만한 점이 있지 않는가...”</p><p class="ql-block">“아! 그래?”</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때 부인들은 온천에서 물러나서 우리들과 나란히 서게 되였다. 그루쉬니쯔끼는 송엽장의 도움을 받아 연극적인 자세를 하고 큰소리로 나에게 프랑스어로 이렇게 대답하였다.“여보게, 나는 인간을 모욕하지 않기 위하여 인간을 증오하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너무나도 진절머리나는 희극으로 될 것이니.”아름다운 아가씨는 뒤돌아보고 호기심에 찬 눈초리를 오래도록 웅변가에게 던지었다. 그 시선은 매우 막연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조소는 아니었다. 이것을 본 나는 충심으로 그를 축복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 공작 아가씨 메리는 대단한 미인인데.”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눈이 마치 비로도 같군그래, 틀림없는 비로도야. 나는 자네가 저 여자의 눈에 대해서 말할 때는 이런 표현을 애용할 걸 충고하네. 아래 위 살 눈섭은 눈동자에 햇빛이 비치지 못할만큼 기네그려. 나는 저런 광택없는 눈을 좋아하네. 감촉되는 맛이 부드럽거든. 마치 사람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이 ... 하여튼 저 여자의 얼굴에 있는 건 죄다 좋은 것만 같구먼 ... 그런데 저 여자의 이가 희던가? 그게 아주 중대한 문제네! 자네의 그 멋있는 말에 대해서 저 여자가 미소를 띠우지 않았다는 것은 유감이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자네는 미인을 가지고 영국의 말이나 대하 듯이 말하네그려.”하고 그루쉬니쯔끼는 분개하여 말하였다.</p><p class="ql-block">“친구여.”하고 나는 그의 말투를 일부러 흉내내면서 대답하였다. </p><p class="ql-block">“나는 여성을 사랑하지 않기 위하여 여성들을 경멸하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너무나도 우스운 통속극으로 될 것이니.”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몸을 돌이켜 그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약 30 분 동안 포도넝쿨 우거진 가로수 길과 석회암 위와 그것들 사이에 드리워 있는 총림 속을 산보하였다. 무더워졌기에 나는 바삐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유황천 곁을 지나갈 때 나는 그 그늘 밑에서 숨을 돌리려고 지붕이 있는 랑하 곁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이것은 나에게 매우 흥미있는 무대의 목격자로 될 기회를 주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등장 인물들은 다음과 같은 상태에 있었다. 공작 부인은 모스크바의 멋쟁이와 함께 지붕이 있는 랑하의 벤취에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은 어쩐지 심중한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작 아가씨는 아마도 마지막 컵을 들이마신 모양인 듯 생각에 잠겨 약수터를 거닐고 있었다. 그루쉬니쯔끼는 약수터 바로 곁에 서 있었다. 광장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가까이 접근하여 랑하 한쪽 구석에 몸을 감추었다. 그때 그루쉬니쯔끼는 자기의 컵을 모래 위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집으려고 열심히 몸을 굽히었다. 그러나 아픈 다리가 그 것을 방해하였다. 아, 가엾은 자여! 그가 아무리 송엽장에 몸을 의지하고 애를 써도 모든 것이 무익하였다. 그의 다양한 표정의 얼굴에는 고통이 나타나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공작 아가씨 메리는 이 모든 것을 나보다도 더 잘 보고 있었다. 참새보다도 가볍게 그 여자는 그의 곁에 달려가서 허리를 굽히고 컵을 집어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우아한 태도로 그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몹시 얼굴을 붉히고 랑하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기의 어머니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음을 확인하고 곧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루쉬니쯔끼가 그 여자에게 감사의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벌써 그 여자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몇 분 후에 그 여자는 모친과 또 한 멋쟁이 사나이와 함께 랑하로부터 나왔는데 그루쉬니쯔끼의 곁을 지나갈 때에는 아주 시침을 뚝 따고 돌아보지도 않았고 그가 열렬한 시선으로 오래동안 산에서 내려가 보리수 우거진 가로수길 저편에 자취를 감출 때까지 자기를 바래고 있는 것에도 주의를 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의 모자는 또다시 거리 저쪽에서 알른거렸다. 그 여자는 뺘찌고르스크의 훌륭한 한 주택의 대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여자의 뒤를 이어 공작 부인이 들어가며 대문 곁에서 라예비치와 작별을 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가엾은 열정가인 사관 후보생은 나의 존재를 알아보았다.</p><p class="ql-block">“자네 봤나?” 하고 그는 억세게 나의 손을 쥐고 말하였다.</p><p class="ql-block">“그 여자는 참말 천사야!”</p><p class="ql-block">“어째서?”하고 나는 매우 질박한 낯으로 물었다.</p><p class="ql-block">“그럼 자넨 못봤나?”</p><p class="ql-block">“아니, 봤네. 그 여자가 자네 컵을 집어주는 걸. 그러나 만약 그 곳에 파수 서는 사람이 있었더라도 역시 메리와 같은 행동을 취했을 거네. 술값이나 얻어볼가 하고, 그것도 아주 빨리 말이지. 그러나 그 여자에게는 자네가 가엾게 생각되었다는 것은 알만하네. 자네가 부상당한 다리를 움직였을 때 영 무섭게 얼굴을 찌프렸으니까...”</p><p class="ql-block">“그러면 자네는 심령의 얼굴에서 빛나던 순간의 그 여자를 바라보면서 조금도 감동되지 않았단 말인가? ...”</p><p class="ql-block">“그렇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거짓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성내게 만들고싶었다. 나에게는 덮어놓고 반대해 보고싶은 타고난 정열이 있다. 나의 일생은 다만 감정이거나 이성에 대한 슬프고 불행한 모순 당착의 연쇄에 불과하였다. 열정가의 존재는 나를 얼음장 같은 냉냉한 것으로 덮어 싸버린다. 그리하여 나는 기력없는 냉담한 사람과 자주 교제한다면 내가 열렬한 공상가로 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순간에 불유쾌하지만 그러나 예외 그 감정이 가볍게 나의 마음을 스쳐지나갔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감정이야말로 질투인 것이다. 나는 감히 “질투”라고 말한다. 왜냐 하면 나는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하는데 익숙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자기의 부질없는 주목을 이끌던 아름다운 여성이 돌연히 자기의 눈앞에서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로 면식이 없는 다른 사나이를 우대하는 것을 보고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그러한 젊은 사나이 (물론 사교계에서 생활하며 자기의 이기심을 편중시하는데 습관된 사나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와 나는 묵묵히 산을 내려가서 가로수 길을 따라 우리의 미인이 자태를 감춘 집의 창문 곁을 지나갔다. 그 여자는 창문 곁에 앉아 있었다. 그루쉬니쯔끼는 나의 손을 잡아당겨 그 여자에게, 여성에 대하여서는 그리 효력이 없는 그 막연한 부드러운 시선을 던졌다. 나는 그 여자에게 안경을 돌리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가 그의 신선을 받고 미소하였다는 것과 또한 나의 염치없는 안경이 농담이 아니라 사실로 그 여자를 성내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실지 깝까즈의 일개 장교가 감히 모스크바의 공작의 딸에게 대하여 안경을 돌린다고 하는 대담한 행동이 어찌 허용될 수 있겠는가?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5월 13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오늘은 아침녘에 의사가 찾아왔다. 그는 베르네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로씨아 사람이다. 허나 무엇이 그리 놀라운가? 나는 이와노브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이는 독일 사람이었다.베르네르는 많은 점에서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거의 모든 의사들이 그러한 것처럼 회의론자이며 유물론자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농담이 아니라 진정한 시인이다. 자기의 일생동안에 두 줄의 시도 쓴 적은 없지만 사실 평소의 그 말하는 품으로 보아 시인 임에 틀림없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는 시체의 혈관을 연구하 듯이 인간 심정의 산 금선을 낱낱이 연구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는 자기의 지식을 이용할 줄 모른다. 마치 때때로 우수한 해부학자가 열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처럼! 언제나 베르네르는 자기의 환자들을 슬그머니 조소하였다. 그러나 나는 한번 임종을 고하는 병사를 위하여 그가 우는 것을 보았다 ... 그는 구차하였다. 그리고 백만 장자로 될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금전 때문에는 한걸음도 쓸데없는 걸음을 내디디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 번은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친구에게보다도 적수에게 은혜를 베풀어줄 것이라고, 왜냐 하면 증오는 다만 적수의 관대성에 의하여서만 강해지는 것이고 친구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자선을 팔아먹는 것이 되고말기 때문이라고 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의 말은 독살스러웠다. 그의 경국의 간판 밑에서는 선량한 사람이면서도 보잘 것 없는 바보라는 평판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의 경쟁자인 질투심 많은 온천 의사들은 그가 자신의 환자들을 만화처럼 본다는 소문을 펼치었다. 그리하여 환자들은 매우 분노하여 거의 전부가 그를 거절하였다. 그의 친구들 즉 깝까즈에서 근무하고 있는 매우 훌륭한 사람들은 그의 추락된 신용을 회복시켜주려고 노력하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의 용모는 한 번 얼핏 보아서는 불쾌한 인상을 주지만 보는 눈이 불규칙한 그의 외모 가운데서 세련되고 고상한 영혼의 흔적을 알아보는데 익숙해 짐에 따라 후에는 마음에 들게 되는 그런 얼굴 중의 하나였다. 여성들이 이와 같은 사람들을 정신없이 연모할 때에는 그 보기싫은 용모가 아주 신선하며 장미색을 띤 엔디미온의 미와도 바꾸려고 하지 않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때의 여성들의 태도는 지당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여자들은 정신적 미를 알아보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까닭에 아마도 베르네르와 같은 그러한 사람들이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여성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베르네르는 키가 작달막하고 여윈데다가 어린애처럼 약하였다. 그의 한 쪽 다리는 바이론처럼 다른 다리보다 짧았다. 동체에 비하여 그의 머리는 크게 보였고 머리를 바투 깎았기 때문에 뚜렷하게 눈에 띠우는 울뚝불뚝한 그의 두개골은 상반되는 경향의 기묘한 혼합으로 말미암아 골상학자를 놀라게 하였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조그마한 까만 눈은 항상 두리번거리면서 상대편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의 복장에서는 취미와 청결성이 확연히 눈에 띠었고 그의 여윈, 피줄 투성이의 조그마한 손은 연한 황색 장갑 속에서 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의 외투와 넥타이와 조끼는 항상 검은 색갈의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그를 메피스뜨페레쓰라고 별명을 지어붙렀다. 그는 이 별명에 대하여 성을 내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는 하였지만 사실인 즉 그것은 그의 자존심을 북돋아주었다. 우리들은 곧 호상 이해하고 친구로 되었다. 왜냐 하면 나는 교우에 대해서는 재능이 없는 사나이니까,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두 친구가 있다면 두 사람이 서로 그것을 자각하지는 못한다 해도 어떻든 한 사람은 항상 다른 한 사람의 노예로 되는 법이다. 그런데 나는 노예로는 될 수 없으며 또한 이런 경우에 명령한다는 것도 귀찮은 일인 것이다. 왜냐 하면 그와 동시에 기만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며 그 외에 나에게는 종이 있고 금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친구로 되었다. 나는 젊은이들 여럿이 웅성대던 S댁에서 베르네르를 만났었는데 그 야회가 끝날 무렵에 담화는 철학적 형이상학적 경향으로 흘렀고 모든 사람들은 신념에 대하여 자기의 부동한 신념들을 고집하였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나로 말하면 단 하나 확신하고 있는 것이 있소......”하고 의사가 말하였다.</p><p class="ql-block">“그것이 무엇인데요?”하고 나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사람의 의견을 알고싶어 물었다.</p><p class="ql-block">“그것은”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내가 조만간 어떤 아름다운 아침에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p><p class="ql-block">“나의 확신은 당신보다 더 풍부하군요.”하고 나는 말하였다. “내게는 그 밖에 또 하나의 신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 어떤 불유쾌한 저녁에 태여난 불행을 가졌다는 것입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모든 사람들은 우리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을 한다고들 하였지만 사실 그들 중 누구 하나 그 이상 더 현명한 말을 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부터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서로 알아보았다. 우리들은 자주 왕래하였고 둘이서 매우 심중하게 추상적 문제들에 관하여 토론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호상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말문을 닫지 않았다. 그런 때에 우리들은 씨세로의 말에 있는 로마의 예언자처럼 뜻있는 듯이 서로 눈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리하여 실컷 웃고난 후에 우리들은 야회에 만족하며 작별하군 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베르네르가 나의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천정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두 팔을 뒤통수에 받치고 쏘파에 누워 있었다. 그는 안락 의자에 앉아 단장을 구석에 세워놓고 기지개를 하였다. 그리고는 바깥 날이 무더워졌다고 말하였다. 나는 파리 성화에 견딜 수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우리들은 잠시 묵묵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런데 저, 의사선생.”하고 내가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세상에 바보가 없었더라면 참으로 적적해 견딜 수가 없었으리라는 것을 인정하시는 지요... 좀 보십시오. 우리들은 둘이 다 현명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미리부터 모든 것에 대하여 끝없이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의논하려고들 하지 않지요. 우리들은 호상 품고 있는 사상을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이야깁니다. 우리들은 세 겹으로 된 막을 꿰뚫고 우리들의 감정의 핵심을 봅니다. 슬픈 것이 우리들에게는 가소로우며 가소로운 것이 슬프거든요. 사실을 말하면 대체로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서는 모든 것에 대하여 매우 냉정합니다. 그러니까 감정과 사상의 교환은 우리들 사이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호상 알고저 하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방법 뿐입니다.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발 하나 새로운 것을 말해주시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오래동안 이야기하기에 피로해진 나는 눈을 감고 하품을 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고나서 대답하였다. </p><p class="ql-block">“당신의 걷잡을 수 없는 이야기 속에도 하여튼 하나의 사상이 있군요.” </p><p class="ql-block">“두 개가 있지요!”하고 나는 대답하였다.</p><p class="ql-block">“그러면 당신이 하나를 말씀하시지요. 다음에 내가 다른 하나를 얘기할테니까요.”</p><p class="ql-block">“좋습니다. 말씀하시오!”하고 나는 의연히 천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당신은 온천객들 중의 어느 누구인가에 대해서 보다 상세한 것을 알고 싶어하지요. 나는 벌써 당신이 누구를 머리 속에 두고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저쪽에서 벌써 당신에 관한 것을 물어왔으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의사선생! 우리들은 인제 이야기 할 아무것도 없나 보군요. 우리들은 서로 마음 속을 빤히 알고 있잖습니까.”</p><p class="ql-block">“그럼 또 하나는......”</p><p class="ql-block">“다음 생각은 이런 겝니다. 아무런 말이고 간에 당신에게 이야기를 시키고 싶었지요. 첫째로 듣는 편이 힘이 안들고 둘째로는 말에 실수할 리가 없고 셋째로는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수 있고 넷째로는 당신과 같은 현명한 사람들은 이야기하는 이보다 듣는 편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문제에 들어가 봅시다. 리고브쓰끼 공작 부인은 내게 대해 당신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던가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당신은 그것이 공작 부인이고 공작 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요? ...”</p><p class="ql-block">“확신하지요.”</p><p class="ql-block">“어째서요?”</p><p class="ql-block">“왜냐 하면 공작 아가씨는 그루쉬니쯔끼에 대해 물어왔을 것이기 때문이지요.”</p><p class="ql-block">“당신은 참 천재군요. 공작 아가씨는 그 병사 만또를 입은 젊은이는 결투 때문에 병사로 강직당했을 것이 틀림없다고 하던데요...”</p><p class="ql-block">“나는 당신이 그 여자를 그 유쾌한 환상 속에 남겨두었으면 합니다......”</p><p class="ql-block">“물론이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야기가 재미있게 됐군요!”하고 나는 기뻐 웨쳤다. “이제 같이 이 희곡을 풀어봅시다. 확실히 운명은 내가 적적해 하지 않게 끔 배려를 돌릴 겝니다.”“내가 예상하기에는”하고 의사는 말하였다. “가엾은 그루쉬니쯔끼는 당신의 희생물로 될 것 같습니다...”“계속하시지요. 의사선생...”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공작 부인은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그 부인에게 틀림없이 뻬쩨르부르그의 어느 사교계에서 당신을 보셨을 게라고 말하고 ... 당신의 이름을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가 그 여자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 당신의 사건은 그 곳에서 대단한 소동을 일으킨 것 같더군요... 공작 부인은 당신의 사건에 대해 세상의 평판에 자기 의견을 보태여 말하기 시작하겠지요... 딸은 호기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구요. 그 여자의 상상 속에서 당신은 새로운 재미있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되여버렸죠... 나는 공작 부인이 쓸데없는 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반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게 진정한 우정이지요!”하고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고 말하였다. 의사는 진정한 마음으로 내 손을 쥐고 말을 계속하였다.“소원이라면 소개하지요...”</p><p class="ql-block">“당치 않은 말씀입니다!”하고 나는 손벽을 치고 말하였다. “대체 주인공이란 소개를 받는 것이 아니지요? 주인공들이란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자기의 애인을 구원하는 경우 이외에는 나타나는 것이 아니랍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면 당신은 참말로 공작 아가씨를 어떻게 해 보실 셈입니까?”</p><p class="ql-block">“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의사선생, 드디어 나의 승리이군요.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이 일은 그러나 나를 슬프게 하는데요.”하고 나는 잠시 침묵하고나서 말을 계속하였다.</p><p class="ql-block"> “나는 어떤 때이건 절대로 나 자신이 자기 비밀을 밝히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비밀을 사람들이 풀게 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왜냐 하면 이와 같이 하면 항상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부정할 수가 있단 말입니다. 그것은 그렇다 하고 당신은 내게 그 모녀를 묘사하여 보여주어야 할 겝니다. 대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첫째로 공작 부인은 사십오 세의 부인입니다.”하고 베르네르는 대답하였다. </p><p class="ql-block">“그 여자의 위는 훌륭하지만 혈액이 좋지 않아요. 양쪽 볼에는 붉은 반점이 있구요. 자기 생애의 후반생을 모스크바에서 평안히 지냈는데 그 동안에 매우 뚱뚱해졌답니다. 그 여자는 유혹적인 일화를 좋아해서 딸이 방에 없을 때에는 곧잘 상스러운 말을 하지요. 그 여자는 내게 자기의 딸은 비둘기처럼 순결하다고 합니다만 그게 내게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나는 아무에게도 절대로 딴말을 하지 않을 터이니 걱정 말라고 그 여자에게 대답하고 싶었을 지경이었지요. 공작 부인은 풍습을 치료하러 이 곳에 와 있지만 딸은 무슨 치료를 하러 왔는지 알 도리가 없군요.</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두 분 다 매일 두 잔씩 유황수를 마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목욕을 하라고 일러두었지요. 공작 부인은 남에게 명령하는 일에는 익지 못한 것 같아요. 그 여자는 바이론의 작품을 영어로 읽고 대수를 아는 딸의 두뇌와 지식에 감탄하고 있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처녀들이 무슨 학문을 닦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야 좋은 현상이지요. 참말! 이즈음의 남자들은 대개 그리 친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애교를 부린다는 것은 현명한 부인들에게 있어서는 견디기 곤난할 겝니다. 공작 부인은 젊은이들을 아주 좋아합니다만 공작 아가씨는 그들을 어떤 멸시감을 가지고 대한답니다. 모스크바적 습관이지요. 모스크바에서는 여자들이 사십 대의 한창 분별심이 강한 여성으로써 교육을 받고 있으니까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면 당신은 모스크바에 계셨습니까? 의사선생.”</p><p class="ql-block">“그렇지요. 나는 그 곳에서 약간의 임상 경험을 얻었습니다.”</p><p class="ql-block">“말씀을 계속하시지요.”</p><p class="ql-block">“할 말이 있습니까, 나는 죄다 얘기한 것 같은데 ... 아! 또 하나 있군요. 공작 아가씨는 감정이라든가 정열이라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 여자는 한 해 겨울을 뻬쩨르브르그에서 지냈는데 그 곳의, 특히 사교계에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고 합디다. 아마 그리 환대를 받지 못한가 봐요.”</p><p class="ql-block">“오늘 그 댁에서 또 누구 딴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습니까?”</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째요, 부관 한 사람과 착 달라붙는 군복을 입은 근위 장교와 자기 남편이 공작 부인의 친척이라고 하는 최근에 도착한 그 어떤 부인이 있었지요. 그 여자는 상당한 미인이였지만 심한 병자 같아 보이더군요... 혹시 약수터에서 그 여자를 만나지나 않았는지요? 중키에 금발이고 선이 뚜렷한 얼굴의 부인인데 얼굴 빛이 페병 환자같아요. 오른편 볼에 검은 기미가 있는 그 여자의 얼굴은 그 표정이 풍부하다는 한 가지로 나를 놀라게 하더군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기미가 있다구요!”하고 나는 중얼대었다. “혹시?” 의사는 나를 바라보고 손을 나의 가슴에 대고 의기양양하여 말하였다. “당신은 알고 있는 게로구먼요.” ...나의 심장은 확실히 여느 때보다는 세차게 고동쳤다.</p><p class="ql-block">“이번에는 당신이 승리를 자랑할 차례인가 봅니다!”하고 나는 말하였다. “다만 나는 당신에게 희망을 겁니다. 나를 거역하면 안 됩니다. 나는 아직 그 여자를 보지 못하였지만 당신의 말씀으로 보아 그 모습 가운데는 예전에 내가 사랑한 일이 있는 어떤 여성이 집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 내 말은 그 여자에게 한마디도 하지 말아주십시오. 만약에 그 여자가 물어보거든 제발 내게 대해서는 좋지 않게만 말해주십시오.”</p><p class="ql-block">“좋습니다!”하고 베르네르는 어깨를 흠칫하고 말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가 다녀가자 무서운 비애가 나의 가슴을 압박하였다. 우리들을 깝까즈에서 다시금 만나게 한 것은 운명의 장난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가 나를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일부러 이곳에 찾아 왔는지? ... 우리들은 어떤 모양으로 만나게 될 것인가? ... 그런데 과연 그 여자인지? ...나의 예감은 한 번도 나를 기만한 일이라고는 없다. 세상에는 나와 같이 그렇게 과거의 지배를 받기 쉬운 인간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지나간 슬픔이거나 기쁨의 모든 기억은 병적으로 나의 마음을 때려 나의 마음에 항상 동일한 반향을 일쿠어 놓는다 ... 나는 어리석게 창조된 사람이다. 아무런 것도 잊지를 못한다, 아무런 것도!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식후 여섯 시 경에 나는 가로수 길로 나갔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작 부인은 공작 아가씨와 함께 제각기 아첨을 하려고 드는 젊은 패들에게 둘러싸여 벤취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다른 벤취에 자리를 잡고 낯익은 용기병 장교 두 사람을 멈추어 놓고 그들에게 이말저말 시작하였다. 그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웃어대는 것을 보아 우스웠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호기심이 공작 아가씨를 둘러싸고 있던 몇몇 사람들 나에게로 끌어왔다. 점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여자를 버리고 우리들의 편에 가담하였다. 나는 말을 중단하지 않았다. 나의 일화는 아연해지리만큼 기지가 풍부하였고 통행인들에게 퍼붓는 나의 조소는 그 독자성으로 광포할 지경으로 신랄하였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이와 같이 나는 해가 저물 때까지 사람들을 계속 흥겹게 하였다. 공작 아가씨는 여러 번 다리 저는 한 늙은이와 함께 자기 어머니의 팔을 끼고 나의 곁을 지나갔다. 여러 번 그 여자의 시선은 나에게 떨어지면서 무관심한 체 하려고 애를 쓰며 괘씸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 사람이 당신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하고 그 여자는 예의를 생각하고 자기에게 돌아간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p><p class="ql-block">“틀림없이 매우 재미 있는 이야기였겠지요. 전투 시의 자기의 공훈담 같은?" </p><p class="ql-block">그 여자는 그것을 아마도 나를 구슬려주려는 듯이 매우 큰 소리로 말하였다. </p><p class="ql-block">“흥!”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당신은 정말 노하였구려, 귀여운 공작 아가씨, 잠간만 더 기다리지요, 또 무엇이 있을테니!”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는 맹수처럼 그 여자의 뒤를 노리며 그 여자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그가 내일 틀림없이 누구에게이고 공작 부인을 소개하여달라고 부탁할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여자는 아주 반가와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여자는 매우 적적해 하니까.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5월 16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틀 동안에 나의 일은 놀랍게 진척되었다. 공작 아가씨는 몹시 나를 미워하고 있다. 나에게는 벌써 나에게 관한 매우 신랄한 그러나 동시에 매우 유혹적인 경구 두서너 귀가 들려왔다. 그 여자의 견지에서 보면 상류 사교에 익숙할 뿐더러 뻬쩨르부르그에 있는 자기 사촌 언니들이며 숙모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던 내가 자기의 면식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매일 가로수 길가의 약수터 곁에서 만났다. 나는 그 여자의 숭배자들인 화려한 부관들과 창백한 모스크바 사람들과 기타 사람들을 그 여자로부터 떼여내기 위하여 전력을 다 한다. 그리하여 나는 거의 항상 그것에 성공하였다. 나는 평시 손님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 나의 집은 매일 손님들로 가득 들어차며 오찬도 하고 만찬도 하며 놀기도 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나의 샴팡주는 그 여자의 지남철과 같은 눈초리의 힘을 정복한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제 나는 첼라호브의 상점에서 그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굉장한 페르샤 양탄자를 사려고 하였다. 공작 아가씨는 자기의 어머니에게 돈을 아끼지 말라고 조르고 있었다. 왜냐 하면 그 양탄자야말로 자기의 방을 얼마나 훌륭히 장식할는지 모를 것이였으니까! ... 나는 40 루블리나 더 주고 그 양탄자를 사버리고말았다. 이것 때문에 나는 가장 매력이 있는 광분에 번쩍이는 시선의 복수를 받았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식사 때 쯤 하여 나는 이 양탄자에 덮인 나의 체르께쓰 말을 일부러 그 여자의 창문 앞으로 끌고 지나가도록 명령하였다. </p><p class="ql-block">이 때에 베르네르가 그들의 집에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이 연극의 효과는 매우 극적인 것이였었다는 것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공작 아가씨는 나에게 대하여 선전포고하려 하였고 나는 벌써 두 사람의 부관이 그 여자의 앞에서는 나에게 대하여 매우 서먹서먹하게 인사를 하면서도 매일처럼 내 집으로 식사를 하러 오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는 이상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뒤짐을 지고 다니지만 누구를 만나도 알아차리지를 못한다. 그의 다리는 갑자기 좋아졌다. 약간 다리를 절 뿐이다. 그는 공작 부인과의 담화에 참여하며 공작 아가씨에게 어떻든 인사를 할 기회를 발견하였다. 그 여자는 그다지 사람을 가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왜냐 하면 그 후부터 그의 인사에 대하여 가장 귀여운 미소로 대하였기 때문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자네는 결정적으로 리고브쓰끼 모녀와 안면을 가지고 싶지 않는가?”하고 그는 어제 나에게 말하였다.</p><p class="ql-block">“그렇네, 결정적으로.”</p><p class="ql-block">“잘 생각해 보게! 그 집은 이 온천에서 제일 기분 좋은 집이라네! 이 곳의 좋은 사람들은 죄다...”</p><p class="ql-block">“여보게! 나는 이 곳 사람들이 아니고서라도 벌써 싫증이 났다네. 그래 자네는 때때로 그 집에 가나?”</p><p class="ql-block">“아직 못 갔었네. 나는 공작 아가씨와 두 번밖에 말을 못했네. 그 뿐이야.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이 괜찮지만 집으로까지 달려간다는 건 어쩐지 마음이 서먹서먹하네... 만약에 내가 견장이나마 달고 있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니, 뭐라고. 자네는 지금 그대로가 퍽 좋네! 자네는 자네의 유리한 처지를 이용할 줄을 모르네그려... 그 자네 병사 만또는 감수성이 풍부한 뭇처녀들의 눈에는 자네를 영웅이나 수난자로 만들어 보일걸세.”</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는 만족하여 미소하였다.</p><p class="ql-block">“쓸데없는 말 말게!”하고 그는 말하였다.</p><p class="ql-block">“나는 믿네.”하고 나는 계속하였다. “공작 아가씨가 벌써 자네를 연모하고 있다는 걸.”</p><p class="ql-block">그는 귀밑까지 빨개가지고 코를 벌름거렸다.오, 자만이여! 너는 아르키메데쓰가 지구를 굴리려고 한 그 지레대로구나!...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자네는 농담만 하네그려!”하고 그는 노한 듯한 낯으로 말하였다. </p><p class="ql-block">“첫째, 그 여자는 아직 날 잘 모른다네...”</p><p class="ql-block">“여자들이란 그저 자기가 잘 모르는 걸 더 사랑하는 거라네.”</p><p class="ql-block">“그래도 나는 그 여자의 마음에 들도록 해 보겠다는 야심은 조금도 없네. 나는 다만 기분 좋은 그 가정과 친근해졌으면 하는 생각 뿐일세. 그리고 만약에 내가 그 어떤 딴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매우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게 가령 자네들 같다면, 즉 자네들 뻬쩨르부르그의 승리자들이라면 문제는 또 다르지. 그저 바라만 봐도 여성들이 녹아버리고만다네... 그런데 뻬쵸린, 자네는 알고 있나, 공작 아가씨가 자네 말을 했다는 걸?”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뭐? 그 여자가 벌써 자네에게 내 말을 하던가?...”</p><p class="ql-block">“그리 기뻐는 말게. 나는 우연히 약수터에서 그 여자와 말을 하기 시작했다네. 그런데 세 마디째 말이 이렇거든 -- ‘저 수심을 띠고 다니는 그 분은 대체 누군가요? 그, 당신과 같이 계시던...’그 여자는 낯을 붉히고 그 말을 말하려고는 하지 않았네. ‘그 날의 일을 말씀하실 필요는 없지요.’하고 내가 그 여자에게 대답했지. ‘그 말은 영원히 나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니까요...’하고. 자네, 뻬쵸린! 나는 자네를 축복하지는 않겠네. 자네는 그 여자에게는 평판이 좋지 않데 그려... 사실 유감이야, 왜냐 하면 메리는 매우 귀여운 여성이니까 말이지!...”</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꼭 말해두어야 할 말이 있다. 그것은 그루쉬니쯔끼라는 사나이는 아직 그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만약 그 여자가 다행히도 자기의 마음에 든 때면 나의 메리라든가 나의 쏘피아라든가 하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p><p class="ql-block">나는 심각한 낯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p><p class="ql-block">“그렇네. 그 여자는 나쁘지는 않네... 그러나 주의를 해야 하네. 그루쉬니쯔끼! 로씨아 처녀들의 대부분은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정신적 연애로 만 양육되어 있다네. 그런데 정신적 연애하는 건 가장 불안한 사랑이거든. 그 공작 아가씨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여성의 하나인 것 같더군.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만약에 그 여자가 자네 곁에 앉아서 계속 2 분을 참지 못해 적적해 한다면 그제는 결정적으로 파멸일세. 자네의 침묵은 그 여자의 호기심에 자극을 줘야 하네. 아마 자네 말은 결코 그 여자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할 걸세. 자네는 매 분마다 그 여자에게 자극을 줘야 하네. 그 여자는 열 번 쯤은 공공연히 자네를 위해 여론을 멸시하고는 그것을 희생이라고 말할 걸세. 그리고는 그 대가로 자네를 괴롭힐거네. 그리고는 간단히 인제는 자네와 같은 사람을 참을 수가 없다고 말할게거든. 만약에 자네가 그 여자에게 대한 권리를 얻지 못한다면 그 여자의 첫 번째의 키스는 한다 해도 두 번째 키스에 대한 권리는 자네에게 주지는 않을 걸세. 그 여자는 자네와 실컷 좋을 대로 논 후 2 년쯤 지나서는 어머니의 뜻을 순종해서 바보같은 사나이와 결혼을 하겠지. 그리고 자기는 불행하며 자기는 단 한 사람만을 즉 자네를 사랑하였지만 하늘이 자기와 그 사람과 결합시키지 않았다고 자기 자신을 설복하려 할 걸세. 왜냐 하면 그 사람은 병사 만또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비록 그 두터운 회색 만또 밑에서는 열렬하고 고귀한 마음이 고동치고 있기는 했지만... 이와 같이 그 여자는 생각하게 될거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고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심 웃고 두 번이나 미소를 띠웠지만 다행히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가 이전보다 더 쉽사리 사람을 믿는 것으로 보아 확실하다. 지어 그는 이 지방에서 만드는 새까만 상안이 박힌 반지까지 끼고 있었다---그것이 나에게는 수상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자세히 보았더니 반지 안쪽에다 깨알 같은 글자로 메리라는 이름이 새겨 있었고 그와 나란히 하여 그 여자의 예의 그 컵을 집어준 날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나는 나의 이 발견을 숨기었다. 나는 그에게 고백을 강요하고싶지는 않다. 나는 그 자신이 나를 그의 신뢰자로 선택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나도 역시 유쾌할 것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오늘 나는 늦게 일어났다. 약수터로 갔으나 벌써 아무도 없었다. 무더워졌다. 희고 폭신해 보이는 구름이 소나기를 예고하면서 눈 덮인 산맥으로부터 대단한 속도로 움직여 왔다. 마슈크 산마루는 꺼진 홰불마냥 연기를 뿜고 있었고 그의 주변에서는 자기의 진로를 저지당하여 가시 많은 풀 숲에 걸린 것과도 같은 회색 구름장들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공기에는 전기 기운이 스며 있었다. 나는 동굴로 뻗은 포도넝쿨 우거진 가로수 길을 깊숙이 들어갔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슬펐다. 나는 의사가 나에게 말한 볼에 기미가 있다고 하는 젊은 여자를 생각하였다... 무엇때문에 그 여자가 이곳에 왔을가? 그런데 과연 그 여자일가? 그리고 왜 나는 그것을 그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가? 왜 나는 바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가? 볼에 기미가 있는 여자가 과연 드물단 말인가?--- 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나는 동굴 앞에까지 갔다. 보니 그 원 천정의 서늘한 그늘 속 돌로 만든 벤취 위에 밀짚 모자를 쓴 한 여성이 검을 숄을 드리우고 머리를 기운없이 수그린 채 앉아 있었다. 모자가 그 여자의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의 공상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생각하면서 돌아서려 하였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로 그 때 그 여자는 나를 바라보았다.</p><p class="ql-block">“웨라!”하고 나는 불의에 웨쳤다.</p><p class="ql-block">그 여자는 깜짝 놀라 창백해졌다.</p><p class="ql-block">“저는 당신이 이곳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하고 그 여자는 말하였다.나는 그 여자의 곁에 앉아 그 여자의 손을 잡았다. 벌써 오래동안 망각되었던 전율이 이 가련한 목소리의 음향을 따라 나의 혈관을 뚫고 흘렀다. 그 여자는 깊고 고요한 눈으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는 불신과 일종의 비난과도 같은 것이 떠오르고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퍽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구려!”하고 나는 말하였다.</p><p class="ql-block">“그래요, 모두 퍽 변했어요!”</p><p class="ql-block">“그렇다보니 인젠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지요...”</p><p class="ql-block">“저는 결혼했어요!...”하고 그 여자는 말하였다.</p><p class="ql-block">“또? 그러나 몇 해 전에도 역시 그런 이유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p><p class="ql-block">그 여자는 자기의 손을 나의 손에서 잡아뽑았다. 그 여자의 볼이 붉어졌다.</p><p class="ql-block">“당신은 둘째 번 남편을 사랑하고 있을 테죠?...”</p><p class="ql-block">그 여자는 대답을 않고 외면하였다.</p><p class="ql-block">“그렇찮으면 그 사나이가 대단한 질투쟁이가 아니오?”</p><p class="ql-block">말이 없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어때요? 그 사람은 젊고 아름답고 또 아주 돈이 많겠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지요...” </p><p class="ql-block">나는 그 여자를 보고 놀랐다. 그 여자의 얼굴에는 심각한 절망이 떠올라 눈에는 눈물까지 번쩍이었다.</p><p class="ql-block">“제발 말씀해 주세요.”하고 그 여자는 속삭이었다.</p><p class="ql-block"> “당신은 저를 괴롭게 하는 것이 그렇게도 유쾌하세요? 저는 당신을 증오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우리들이 처음으로 알게 된 그날부터 당신은 제게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주시지 않았어요...” </p><p class="ql-block">그 여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여자는 내게 몸을 의지하고 나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p><p class="ql-block">“아마도”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바로 나를 사랑하였을 테지. 기쁨이야 잊어지기도 하지만 슬픔이란 절대로 잊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그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오래동안 포옹한 채 있었다. 드디여 우리들의 입술이 접근하여 뜨겁고 황홀해지는 키스로 녹아버렸다. 그 여자의 손은 얼음장처럼 싸늘하였고 머리는 불덩어리 같았다. 이리하여 우리들 사이에서는 지면상으로는 아무런 의의도 가지지 못하며 반복할 수도 없고 기억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그러한 회화 중의 하나가 시작되었다. 이런 경우에는 이태리의 오페라에 있어서처럼 음성의 의의가 어구의 의의를 변경도 하고 보충도 하는 것이니까.</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여자는 내가 건늠길에서 얼핏 본 일이 있는 그 절름발이 늙은이인 자기 남편과 내가 안면을 가지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자식들 때문에 그 사나이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돈 많은 그 사나이는 류마치쓰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그 사나이에게 대해서는 한마디의 조롱조차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를 아버지를 대하는 듯이 존경은 하고 있다. 그러나 남편으로서는 기만하게 될 것이다... 대개 인간의 마음이란 기묘한 것이지만 여성의 마음이란 특히 각별한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웨라의 남편 쎄묜 와씰리예위치는 리고브쓰끼 공작 부인의 먼 친척간이다. 나는 지금 그 부인과 이웃에서 살고 있다. 웨라는 종종 공작 부인 댁에 드나든다. 나는 그 여자에게 리고브쓰끼 일가의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는 것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그 여자로부터 방향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공작 아가씨에게 접근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와 같은 나의 계획은 조금치도 파괴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유쾌한 날이 닥쳐올 것이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유쾌한 날! 그렇다, 나는 벌써 단순히 행복 만을 추구한다든가 그 누구인가를 아주 열렬히 사랑하고 싶은 충격을 받는다든가 하는 그런 정신 생활의 한 시기를 지내온 사람이다. 지금 나는 다만 사랑을 받을 것만 원한다. 그것도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지어 나는 자기에게는 하나의 부단한 애착심 만으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엾은 심적 관습이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한가지 것이 항상 나에게는 이상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사랑하는 여성의 노예로 된 적이 없다. 도리어 나는 항상 그들의 의지와 마음에 대하여 하등의 노력도 하지 않지만 극복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지는 데 젖어버렸다. 그것은 무엇때문일가?--- 내가 아직까지 아무것도 그리 존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일가? 혹은 내가 여성들의 수중으로부터 시시각각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그들이 두려워하였기 때문일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강한 유기체의 자력과도 같은 영향에 의해서일가? 혹은 다만 내가 지금까지 확고한 성격을 가진 여성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서일가?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여기서 확실히 나라는 인간은 확고한 성격을 가진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성격은 여성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이 난다.---한번, 꼭 한번 나는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을 사랑한 적이 있다.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여성을 ... 우리들은 적수로써 갈라졌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그 여자를 5 년 만 늦게 만났더라면 우리들은 달리 헤어졌을 지도 모른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웨라는 앓고 있다. 비록 자신은 그것을 자백하지는 않지만 병은 매우 심하다. 나는 웨라가 페병이 아니면 피에브 랑뜨라고 하는, 로씨아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로씨아 말로는 명칭조차 없는 병이나 아닌가 하고 두려워한다.우리가 동굴 속에 있을 때 뢰우가 쏟아져 30 분이나 공연히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여자는 나에게 진실을 말하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한 내가 그 여자와 이별한 이후 다른 여성을 사랑하였는지 어쨌는지를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 여자는 다시금 나를 종전처럼 순진하게 신임해 주었다. 그러니 나 역시 그 여자를 기만할 수 없다. 그 여자는 이 세상에서 내가 기만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여성이다. 나는 우리들이 곧 또다시, 영원히 이별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은 상이한 길을 걸어 무덤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에 대한 회상은 나의 마음 속에 신성한 것으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계속 그 여자에게 반복하여 말했다. 그 여자는 입으로는 반대의 것을 말하면서도 나를 신임하고 있었다.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드디어 우리들은 헤어졌다. 나는 그 여자의 모자가 관목 수림과 바위 저편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동안 그 여자의 뒤를 눈주어 보았다. 나의 심장은 마치 첫 번째 이별 후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병적으로 졸아들었다. 오, 내가 그 얼마나 이 감정을 기뻐하였던가! 이것은 과연 그 환희의 선풍과 함께 청춘이 나에게 다시금 돌아오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다만 그의 일별의 눈초리, 기념을 위한 마지막 선물일 따름인가? ...그러나 일견하여 내가 아직 어린애와도 같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얼굴빛은 비록 창백하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사지는 날씬하여 균형이 잡혔고 숱이 많은 머리칼은 굽실굽실하고 눈은 이글이글 번쩍이며 피는 끓고 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말을 타고 초원으로 내달렸다. 나는 무성한 숲 속으로 황야의 바람을 안고 기운찬 말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나는 탐욕스럽게 향기로운 공기를 마시고 시시각각으로 더욱더 명료해지는 물체의 막연한 윤곽을 포착하려고 노력하면서 푸른 먼 곳을 유심히 쏘아본다. 그러면 어떠한 슬픔이 마음 속에 가로 놓여 있든지 어떤 불안이 생각을 괴롭히고 있든지 모든 것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리고 만다. 마음은 가벼워지고 육체의 피로는 정신의 불안을 극복한다. 그리고 이곳 남쪽 햇볕을 받아 번쩍이는 울창한 산을 보나 푸른 하늘을 보나 혹은 바위로부터 바위에로 뛰어넘는 벽계수의 흐름소리를 들으나 잊혀지지 않던 그 여성의 눈초리가 이 때만은 사라진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망루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있던 까자크들은 아무런 필요와 목적도 없이 말을 타고 도는 나를 보고 오래동안 이 수수께끼에 머리를 썩였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 하면 복장으로 보아 나를 틀림없이 체르께쓰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니까. 사실 내가 체르께쓰 복장을 하고 말을 타면 신통히도 까바르다 사람들처럼 보인다고 사람들은 말하군 하였다. 그리고 사실 이 고상한 군복을 입으면 나는 매우 그럴 듯 해진다. 쓸데없는 모르라고는 하나도 없고 소박하게 만든 값진 무기에다가 모자의 모피도 그다지 길지도 짧지도 않다. 무릎을 덮어 가리우는 의복의 단추와 뒤축 높은 구두는 보기 좋게 꼭 들어맞다. 상의는 희고 체르께쓰 복은 진한 갈색이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오래동안 산악민들의 승마법을 연구하였다. 깝까즈식 승마법에 대한 나의 기술이 인정을 받는 것만큼 나의 자존심을 북돋아주는 것이라고는 또 없다. 나는 네 필의 말을 가지고 있다. 한 필은 자기용이고 세 필은 친구들용이다. 그것은 혼자서 초원을 쓸쓸히 달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만족하며 나의 말을 타지만 절대로 나와 함께는 타려고 하지 않는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내가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벌써 오후 여섯 시였다. 나의 말도 피로해 하였다. 나는 뺘찌고르스크로부터 온천객들이 자주 교외 산보를 가는 독일 사람들의 이주지에로 통하는 길로 나섰다. 길은 관목림 사이를 구불구불 돌아 시내물이 높은 풀숲 그늘 속을 소란히 흘러내리는 조그마한 골짜기로 내려가면서 나 있었다. 주변에는 원형 극장처럼 베쉬뚜, 즈메이나야, 줼레니야 산들의 푸른 봉우리들이 솟아올라 있었다. 이 지방의 말도 발까라고 하는 그런 계곡 중의 하나로 내려가면서 나는 말에 물을 먹이려고 멈추어 섰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때에 소란스레 떠들며 길을 내려오는 화려한 한 무리의 승마군들이 나타났다. 부인들은 까만 빛과 하늘색 승마복을 입고 있었고 기사들은 체르께쓰와 니줴고로드 식을 혼용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맨 선두에서 그루쉬니쯔끼가 공작 아가씨 메리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오고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온천에 와 있는 부인들은 아직도 백주에 체르께쓰인의 습격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인지 그루쉬니쯔끼는 병사용 만또 위에 칼과 두 자루의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의 이와 같은 용감한 차림은 매우 우스웠다. 높다란 숲이 그들로부터 나를 숨겨주었지만 그 사이로 하여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을 뿐아니라 그들의 얼굴의 표정으로 주고 받는 이야기가 감상적인 이야기들이라는 것까지 추측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들은 내림받이에로 접근하였다. 그루쉬니쯔끼는 공작 아가씨의 말고삐를 잡았다. 그리고 그 때에 나는 그들의 담화의 끝말을 엿들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면 당신은 일생동안 깝까즈에 남아 계시고싶단 말씀이세요?”하고 공작 아가씨는 말하였다.</p><p class="ql-block">“나에게 있어서 로씨야가 무엇이겠습니까?”하고 그 여자의 기사는 대답하였다. </p><p class="ql-block">“그 로씨야는 수천의 사람들이 나보다 부유하다고 해서 나를 멸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라입니다. 거기에 비하여 이 곳은 --- 이 곳에서는 이 두터운 외투도 당신과 가까이 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으니까요...”</p><p class="ql-block">“그렇지 않지요...”하고 공작 아가씨는 낯을 붉히고 말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의 얼굴에는 만족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는 계속하였다.“여기에서의 내 생활은 야만인들의 탄알 밑에서 그저 소란하게 어느새 지나는지 알 수없이 빨리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하느님이 나에게 해마다 하나의 아름다운 여성의 시선을 보내주시기만 한다면... 그때와 같은 그런 시선을...”이 때에 그들은 나와 평행이 되는 곳까지 달려왔다. 나는 말을 채찍으로 후려갈겨 숲 속으로부터 달려나왔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이구머니, 체르께쓰 사람이! ...”하고 공작 아가씨는 놀라 웨쳤다.그 여자의 오해를 완전히 풀어주기 위하여 나는 머리를 좀 수그리고 프랑스 말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p><p class="ql-block">“놀라지 마십시오. 아가씨, 나는 당신의 기사보다도 위험하지는 않습니다.”</p><p class="ql-block">그 여자는 당황하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가?--- 자기의 오해 때문에일가? 그렇지 않으면 나의 대답이 그 여자에게 후안무치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에일가? 나는 두 번째의 추측이 정당한 것으로 될 것을 바랐다. 그루쉬니쯔끼는 나에게 불안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밤 늦게 다시 말하면 열한 시 경에 나는 보리수 자욱한 건늠길로 산보를 떠났다. 도시는 잠자고 있었다. 다만 몇몇 창문에 등불이 반짝거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삼 면으로 마슈크 산의 지맥의 암석들이 꺼멓게 우뚝 솟아 있었고 마슈크 산봉우리에는 불길한 구름장이 걸려 있었다. 달은 동쪽 하늘에 떠올랐다. 멀리에는 눈에 덮인 산봉우리들이 은으로 만든 술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보초병들이 웨치는 소리는 밤에 흘러내리는 온천수의 소음과 뒤섞여 들렸다. 때때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짐수레의 찌걱대는 소리와 구슬픈 따따르 인의 노래 소리와 함께 울렸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벤취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친근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자기의 사상을 토로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그런데 누구와?...“지금 웨라는 무엇을 하고 있을가?”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 그 여자와 손을 쥘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어떤 비싼 값이라도 지불할 터인데.”갑자기 나는 빠르고 고르지 못한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확실히 그루쉬니쯔끼... 과연 그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디서 오는가?”</p><p class="ql-block">“리고브쓰끼 공작 부인 댁에서 오네.”하고 그는 매우 거만한 태도로 말하였다. </p><p class="ql-block">“메리의 노래는 참 좋더군!...”</p><p class="ql-block">“자네 알고 있나?”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기를 해도 좋네만 아가씨는 자네가 사관 후보생이라는 걸 알지 못하고 있다네. 그 여자는 자네를 책벌 때문에 강직된 사람으로 알고 있거든...”</p><p class="ql-block">“그럴지도 모르지! 그까짓 건 내게 문제가 아니네!...”하고 그는 허심하게 말하였다.</p><p class="ql-block">“아니 나도 그저 말해봤을 따름이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자네가 오늘 그 여자를 노엽게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나? 그 여자는 그런 건 들어본 일도 없는 무례한 짓이라고 말하네. 나는 자네라는 인간은 훌륭한 교양 있는 사람이고 사교계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여자를 모욕하려고 하는 그런 생각은 가질 리가 만무하다고 하여 겨우 그 여자를 납득시켰다네. 그런데 그 여자는 자네 시선이 불손하니까 자네가 틀림없이 매우 거만한 사람일 거라고 말하데.”</p><p class="ql-block">“그 여자 말이 옳네...그런데 자네는 그 여자에게 편을 들고싶지는 않은가?”</p><p class="ql-block">“유감이네만 아직 내게는 그런 권리가 없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오! 이자가 벌써 희망을 가지고 있군그래...’하고 나는 생각했다.</p><p class="ql-block">“그렇지만 자네를 위해서는 좋지 않네.”하고 그루쉬니쯔끼는 계속하였다. </p><p class="ql-block">“인제는 벌써 자네가 그네들과 교제를 가진다는 것이 곤난할걸세---참으로 유감인데! 내가 알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그 집이 가장 유쾌한 집들 중의 하나거든...”</p><p class="ql-block">나는 속으로 은근히 웃음을 지었다.</p><p class="ql-block">“지금 내게 가장 유쾌한 집은 나 자신의 집이라네.”하고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말하고는 돌아오려고 일어섰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고백하게나, 자네는 후회를 하고 있지? ...”</p><p class="ql-block">“미친 소리 작작하게? 만약에 내가 그걸 원한다면 내일 저녁에라도 당장 공작 부인을 찾아갈걸세...”</p><p class="ql-block">“두구 보세...”</p><p class="ql-block">“내 자네 만족을 위해 공작 아가씨를 뒤쫓아다니며 말을 붙여보겠네...”</p><p class="ql-block">“그러게, 그 여자가 자네와 말하고 싶다면...”</p><p class="ql-block">“나는 다만 자네 말이 그 여자를 싫증내게 할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네...잘 가게...”</p><p class="ql-block">“난 좀 더 거닐겠네, 어쩐지 오늘 밤은 잠들 것 같지 않구먼... 그래 자네 차라리 음식점으로 가지 않겠나. 거기서는 트럼프를 논다네...내게는 오늘 밤 강한 자극이 필요하네...”</p><p class="ql-block">“제발 돈이나 잃고 오게...”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5월 21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약 일주일이 경과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리고브쓰끼 일가의 사람들과 친근해지지 못하였다. 나는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그루쉬니쯔끼는 어디를 가든지 간에 그림자처럼 공작 아가씨의 뒤를 따라다닌다. 그들의 담화는 한이 없다. 대체 언제 그는 그 여자의 싫증을 받게 될 것인가? ...공작 부인은 그것에 대하여 별로 주의를 돌리고 있지 않다. 왜냐 하면 그는 사위의 후보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세상의 어머니들의 논리인 것이다! 나는 두서너 번 부드러운 눈초리를 감촉하였다. ---인제는 그것을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안될 때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제 처음으로 웨라가 약수터에 나타났다... 그 여자는 우리가 동굴 속에서 만난 이래, 한 번도 집에서 나오지를 않았었다. 우리들은 동시에 컵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몸을 굽히면서 그 여자는 나에게 속삭였다.“당신은 리고브쓰끼 일가의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려고 원하시지 않지요! ... 우리들은 그 곳에서라면 만날 수 있겠는데요...”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질책이다...우울한 일이다! 허나 나는 그것을 받아 마땅하다...</p><p class="ql-block">바로 됐군. 내일 음식점의 홀에서는 누구나 할 것없이 요청할 수 있는 무도회가 있으니 한번 공작 아가씨와 마주르까를 춰보자.</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5월 22일</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식당의 홀은 고상한 집회의 홀로 변하였다. 아홉 시에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작 부인은 아가씨와 함께 맨 나중에 나타났다. 많은 부인들은 질투와 악의에 찬 눈초리로 공작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왜냐 하면 공작 아가씨 메리는 별난 취미의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방의 귀부인으로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은 질투심을 감추고 그 여자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하는 수 없지 않는가?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여성들의 회합이 있는 그 곳에는 곧 상 하 두 개의 그루빠가 생긴다. 창문 곁 한무리의 사람들 가운데는 그루쉬니쯔끼가 서 있었다. 그는 얼굴을 창문에 대고 자기의 여신으로부터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여자는 그의 곁은 지나가면서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에게 머리를 끄떡였다. 그는 태양처럼 빛났다...무도는 파란 무도로써 시작되었고 그 다음에는 왈쯔가 시작되었다. 박차소리가 울리었고 치마자락이 펄럭이며 감돌았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장미색 새털로 장식한 어떤 뚱뚱한 부인의 뒤에 서 있었다. 그 여자의 징그러운 옷차림은 고래 수염을 넣어 치마 허리를 불룩하게 만들던 시대를 상기시켰고 터실터실한 피부의 얼룩은 얼굴에 검은 아름다운 반점이 찍힌 호박 식의 베르를 썼던 행복한 시기를 회상시켰다. 그 여자의 목에 있는 제일 큰 사마귀는 목걸이의 금단추로 감춰져 있었다. 그 여자는 자기의 상대편인 용기병 대위에게 말하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 리고브쓰끼 공작 아가씨는 정말 참을 수 없는 처녀이군요! 좀 생각해보아요. 나를 떠밀치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게다가 뒤를 돌아보며 안경으로 날 바라보질 않겠어요? ... 참을 수가 없군요! 어쩄다고 저렇게 건방져요? 한번 본을 보여줘야 되겠어요...”</p><p class="ql-block">“그런게야 문제 없지요!”하고 충실한 대위는 대답을 하고 다른 방으로 가버렸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곧 공작 아가씨에게로 달려가서 안면 없는 귀부인들과 춤추는 것이 용허되여 있는 이 지방의 자유로운 풍습을 이용하여 그 여자에게 왈쯔를 요청하였다.</p><p class="ql-block">그 여자는 치밀어오르는 미소를 억제하고 자기의 승리를 겨우 감출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일부러 아주 빨리 아주 무관심한 지어 엄격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여자는 꺼리낌없이 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약간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리하여 우리들은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 이상 더 육감적이고 날씬한 허리를 알지 못한다! 그 여자의 신선한 호흡은 나의 얼굴을 스쳤고 왈쯔의 선풍 속에서 흩어진 머리칼은 가끔 나의 불타는 듯한 뺨을 스치군 하였다...나는 세 바퀴나 돌며 계속 춤을 추었다. (그 여자는 놀라우리 만큼 훌륭히 춤을 춘다) 그 여자는 숨이 가빠했고 눈은 어렴풋이 흐렸으며 반이나 벌린 귀여운 입술은 겨우 프랑스어로 “고맙습니다”하고 속삭일 수 있었을 따름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몇 분 동안 침묵을 지킨 뒤에 나는 매우 공손한 얼굴로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p><p class="ql-block">“아가씨! 나는 내가 당신을 알기 전에 벌써 불행하게도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당신은 나를 불손하다고 말씀하셨다는데...그것이 참말인가요?”</p><p class="ql-block">“당신은 지금 제게 그 의견을 확인시키려고 그러세요?”하고 그 여자는 야유가 어린 얼굴로 나에게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 찡긴 얼굴은 변하기 쉬운 그 여자의 용모에 매우 어울렸다.</p><p class="ql-block">“만약 내가 그 어떤 것으로라도 당신을 모욕하리 만큼 불손하게 대했었다면, 다시 당신에게 용서를 바라는, 더욱 분에 넘친 불손한 태도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사실 나는 당신이 내게 대하여 오해하고 계신다는 것을 당신에게 증명 하고싶어 못 견딜 지경입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것은 당신에게는 좀 곤난하실거예요...”</p><p class="ql-block">“어째서요?”</p><p class="ql-block">“어째서냐고요, 당신이 저의 집에 오시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무도회도 그리 빈번히 있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p><p class="ql-block">“이것은”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들의 문이 나에게는 영원히 닫혀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로군.’</p><p class="ql-block">“아가씨”하고 나는 약간 불만한 태도로 말하였다. “당신은 회개하는 죄인을 배척하지 말지어다라는 말씀을 아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그 죄인은 절망하여 더욱 두 배의 죄행을 저지르게 될는 지도 모를 겁니다... 그 때에는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 속삭임은 나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하였고 따라서 하던 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나로부터 몇 발자욱 안 되는 곳에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서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조금 전에 귀여운 아가씨에 대하여 적의 있는 의도를 표명한 용기병 대위가 섞여 있었다. 그는 특히 어쩐지 매우 만족스러운 태도로 손을 비벼대고 웃기도 하며 친구들과 눈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히 그들 중으로부터 연미복을 입은 뻘건 수염이 긴 신사가 나타나더니 비칠거리는 발걸음을 바로 아가씨에게로 돌렸다. 그는 매우 취해 있었다. 그리고는 당황해하는 아가씨 앞에 머물러 서서 뒤짐을 짓고 그 어렴풋한 회색 눈으로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목갈린 높은 어조로 말하기 시작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에헴...그런데 말이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에게 마주르까를 요청합니다...”</p><p class="ql-block">“무슨 일인지요?”하고 그 여자는 애원하는 듯한 시선을 주변에 던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아아! 슬프게도 그 여자의 어머니는 먼 곳에 있었고 그 여자가 알고 있는 남자라고는 한 사람도 곁에 없었다. 어떤 부관 하나는 확실히 그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으나 사건에 참견하지 않으려고 사람들 뒤에 숨어버렸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면?”하고 술에 취한 신사는 그를 신호로 고무해주고 있던 용기병 대위에게 눈짓을 하고 말하였다. </p><p class="ql-block">“무슨 꺼리낌이 있는 게로군요?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당신에게 마주르까를 요청할 영예를 가집니다. 당신은 혹시 내가 취한 줄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 단연 그렇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확신시킬 수 있습니다...”</p><p class="ql-block">나는 그 여자가 공포와 분노로 하여 기절할 것 같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취한 신사에게 다가서서 매우 세차게 그의 팔을 틀어쥐였다. 그리고 그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물러설 것을 요구하였다. </p><p class="ql-block">“왜냐 하면”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벌써 오래 전에 나와 마주르까를 약속하였기 때문입니다.”</p><p class="ql-block">“흠, 하는 수 없군!... 다음 번에!”하고 그는 웃으면서 말하고 창피해 하는 친구들에게로 물러갔다. 그들은 곧 그를 딴 방으로 끌고갔다.나는 어떻다 형언할 수 없는 깊고 은근한 시선으로 던지는 감사의 보답을 받았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공작 아가씨는 자기 어머니에게로 달려가서 죄다 빠짐없이 이야기하였다. 그 여자의 어머니는 나를 군중 속에서 찾아 사의를 표하였다. 그 여자는 나에게 나의 어머니를 알고 있다는 것, 반 타스나 되는 나의 숙모들과도 친근하다는 것을 말하였다.</p><p class="ql-block">“저는 우리들이 이때도록 당신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여 못 견디겠어요.”하고 여자는 부언하였다. </p><p class="ql-block">“그러나 이것은 당신 한 분의 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셔요. 왜냐 하면 당신은 지나치게 모든 사람을 피하시니까 말이지요. 저는 우리 객실의 공기가 당신의 우울증을 쫓아내 주었으면 해요... 그렇지 않아요?”</p><p class="ql-block">나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런 경우에 대처하여 준비해 두어야 하는 말 중의 하나를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까드릴 춤은 너무나도 오래동안 계속되었다.드디어 악대 쪽으로부터 무용곡이 울려 나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공작 아가씨와 나란히 앉았다.나는 술에 취한 그 신사에 대하여서도 이전의 나의 행동에 대하여서도 또한 그루쉬니쯔끼에 대하여서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 불쾌했던 장면이 그 여자에게 준 인상은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그 여자의 귀여운 얼굴은 생신해졌다. 그 여자는 매우 귀엽게 농담을 하였다. 그 여자의 말은 경구를 토로하고저 일부러 기도하는 것이 아니였으나 기지가 풍부하며 생생하고 자유로왔다. 그 여자의 관찰에는 가끔 식한 것이 있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매우 착잡한 말투로 그 여자가 퍽 오래 전부터 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 여자는 머리를 수그리고 약간 낯을 붉히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당신은 이상한 분이예요!”하고 그 여자는 잠시 후에 자기의 비로도와 같은 눈을 나에게 치켜올리고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띠우며 말하였다.</p><p class="ql-block">“나는 당신과 가깝게 지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하고 나는 계속하였다. “왜냐 하면 너무나 많은 숭배자의 무리가 당신을 둘러싸고 있었거든요. 그래 나 같은 것은 그 무리 속에서 완전히 존재가 없어질가봐 두려웠습니다.”</p><p class="ql-block">“당신은 공연히 두려워하셨어요! 그들은 모두가 다 답답해 견디지 못할 사람들인 걸요...”</p><p class="ql-block">“모두! 아니 정말 모두 다 그렇단 말씀이시오?”</p><p class="ql-block">그 여자는 무엇을 회상해내려는 듯한 기색을 보이면서 나를 응시하였다. 그리고는 다시금 낯을 붉히고 드디어 “모두요!”하고 결정적으로 말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제 친구인 그루쉬니쯔끼도 말입니까?”</p><p class="ql-block">“아니, 그이가 당신의 친구이세요?”하고 그 여자는 약간 의심이 든다는 듯이 말하였다.</p><p class="ql-block">“그렇습니다.”</p><p class="ql-block">“물론 그이는 답답한 사람들 축에는 속하지 않아요...”</p><p class="ql-block">“그러나 불행한 사람들 속에는 끼우겠지요.”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p><p class="ql-block">“물론이예요! 그것이 당신에게는 우습단 말씀이예요? 저는 당신이 그이의 위치에 계셨으면 해요...”</p><p class="ql-block">“뭣이라구요? 나도 한 때에는 사관 후보생이였습니다. 그리고 참말 그 때가 내 일생의 가장 좋은 시절이였지요!”</p><p class="ql-block">“아니, 그럼 그이가 후보생이예요?...”하고 그 여자는 잽싸게 말하고는 다음과 같이 부언하였다.“그런데 저는 또 ----”</p><p class="ql-block">“어떻게 생각하고 계셨어요?...”</p><p class="ql-block">“아무렇게도 아니예요! ... 저 부인은 누구예요?”</p><p class="ql-block">그리하여 화제는 방향이 바뀌어 다시는 그 화제로 되돌아가지 않았다.</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드디어 마주르까는 끝이 나고 우리들은 헤어졌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부인들은 마차를 타고 헤어져 갔다...나는 저녁 참에 베르네르를 만났다.</p><p class="ql-block">“아하!”하고 그는 말하였다. “참, 당신이야말로! 그런데 당신은 그 여자를 꼭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는 때 이외에는 공작 아가씨와 면식을 안 가지기로 돼 있지 않았소.”</p><p class="ql-block">“그런데 나는 그 이상의 것을 했거든요.”하고 나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기절한 그 여자를 무도장에서 구원하였는 걸요.”</p><p class="ql-block">“그건 또 어떻게요? 이야기하십쇼!”</p><p class="ql-block">“어디 알아맞쳐 보십시오,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잘 알아맞히지 않습니까!”</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5월 23일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녁 일곱 시 경에 나는 가로수 길을 산보하였다. 그루쉬니쯔끼는 멀리서 나를 보고 내게로 접근하여 왔다. 그 어떤 우습광스러운 환희가 그의 눈에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세차게 나의 손을 쥐고 비극적인 목소리로 말하였다.</p><p class="ql-block">“뻬쵸린, 나는 자네가 감사하네... 자네는 내 말을 이해하겠나?”</p><p class="ql-block">“천만에, 허나 어쨌든 감사를 받을 만한 일이 없나보네.”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왜냐 하면 나의 양심에는 그 어떤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억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어째서? 그럼 어제는? 자네는 벌써 잊었나? ... 메리가 죄다 내게 말해주었네...”</p><p class="ql-block">“그래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럼 자네들 사이에서는 벌써 모든게 공통하다는 말인가? 감사까지도? ...”</p><p class="ql-block">“아니, 이것봐”하고 그루쉬니쯔끼는 매우 엄숙하게 말하였다. “자네가 만일 내 친구라면 제발 나의 사랑을 우롱하지 말아주게...알겠나, 보다싶이 나는 그 여자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네... 그리고 나는 그 여자 역시 나를 사랑해 주리라는 희망을 가지네... 그런데 자네에게 한 가지 청이 있네---자네는 오늘 저녁 그 여자 집에 가겠지, 가거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관찰할 걸 약속해주게. 나는 자네가 이 방면에서의 경험자라는 걸 알고 있네. 자네는 나보다 여성을 잘 알고 있거든...</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여성! 여성! 그 누가 그들을 이해하겠는가 말이야? 그들의 미소는 그들이 시선과 상반되지, 또 그들은 말로는 약속하고 오라고 부르면서 그들의 음성은 떠밀쳐내거든... 그들은 때로는 우리들의 가장 심오한 사상까지도 이해하고 추측하지만 때로는 매우 명백한 암시조차 이해하지 못한단 말일세... 지금 그 공작 아가씨가 그렇다네.--- 어제는 그 여자의 눈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정열로 불 탔는데 오늘은 해쓱하고 냉냉하거든...”</p><p class="ql-block">“그게 필경 약물의 효력이 나타난 결과인가 보네.” 하고 나는 대답하였다.</p><p class="ql-block">“자네는 아무거나 덮어놓고 나쁜 면만 보네그려... 물질주의자!”하고 그는 멸시하듯이 부언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물질 자체를 변경시켜보세.”하고 이 쓸데도 없는 재담에 자족한 그는 다시 유쾌해졌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여덟 시를 조금 지나서 우리들은 함께 공작 부인을 방문하였다. </p><p class="ql-block">웨라의 창문 곁을 지나가면서 나는 창문 곁에 섰는 그 여자를 보았다. 우리들은 서로 번개와 같은 짧은 시선을 던졌다. 그 여자도 우리들의 뒤를 따라 곧 리고브쓰끼 일가의 객실로 들어왔다. 공작 부인은 자기의 친척 여자라고 하며 그 여자에게 나를 소개하였다. 우리들은 차를 마셨다. 손님들은 많았다. 이야기는 공통한 것이었다. 나는 공작 부인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썼고 농담을 하여 몇 번이나 그 여자를 진정으로 웃겼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공작 아가씨 역시 여러 번 웃음을 띠우려고 하는 듯 하였으나 자기가 취하려는 행동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하여 자신을 억제하였다. 그 여자는 시무룩 하고 있는 것이 자기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 듯 싶었는데 혹시 그것은 틀림이 아닐는 지도 모른다. 그루쉬니쯔끼는 나의 쾌활성이 그 여자에게 전염되지 않은 것을 매우 반갑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차를 마시자 모두 광실로 들어갔다.“당신은 내가 순종하니까 만족하겠지요. 웨라?”하고 나는 그 여자의 곁을 지나가면서 말하였다.그 여자는 사랑과 감사에 충만된 시선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이 시선에 익숙되었다. 그러나 그 어느 한 때에는 그 시선이 나의 행복을 이룩한 때도 있었다. 공작 부인은 딸을 피아노에 앉히였다. 모두 그 여자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간청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혼잡을 이용하여 무슨 우리 두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다는 웨라와 함께 창문가로 물러나왔다... 그런데 이야기란 무의미한 것이었다.그런데 그 성난듯한 빛나는 한 토막의 시선으로 내가 추측한 바에 의하면 나의 무관심한 태도가 공작 아가씨에게는 괘씸해 보였던 것 같았다... 오! 나는 비록 그 소리없는 말, 의미심장하며 간절하고 강력한 그 시선의 뜻을 너무나도 잘 요해한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여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 여자의 성대는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유심히 듣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그루쉬니쯔끼는 그 여자와 마주서서 피아노 위에 팔굽을 짚고 그 여자를 눈으로 탐욕스럽게 바라보면서 프랑스어로 연송 “매혹적인데! 참 아름다운걸!”하고 중얼대고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저...”하고 웨라는 나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이 제 남편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싫지만 공작 부인에게는 어쨌든 꼭 마음에 들도록 해주기를 바라요. 그런 것 쯤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거예요. ---당신은 하고저 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는 분이시죠. 우리들은 이 곳 밖에는 만날 수 없잖아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여기서 만?”그 여자는 낯을 붉히고 말을 계속하였다.“당신은 제가 당신의 노예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저는 한 번도 당신을 거역한 일이 없어요... 그래 저는 이것 때문에 벌을 받을 것이예요. 왜냐 하면 당신은 틀림없이 제게서 싫증이 나실 것 아네요! 그러나 저는 적어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예요. ---이것은 당신도 잘 아실 거예요! ...아! 저는 당신에게 부탁해요.--- 제발 저를 종전처럼 공허한 의혹과 가상적인 냉정한 태도로 괴롭히지 말아주어요. 저는 아마 오래지 않아 죽을는 지 몰라요. 저는 제가 날마다 쇠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렇다고 저는 미래의 생활을 생각할 수도 없어요. 저는 다만 당신 한 분만을 생각해요... 당신들 남자들은 눈짓과 악수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그러나 저는, 당신에게 맹세하지만 저는 당신의 음성만 들어도 매우 열렬한 키스와도 바꾸지 못할 만한 그런 깊고도 이상한 행복이 느껴져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는 사이에 공작 아가씨 메리는 노래를 멈추었다. 찬사는 그 여자의 주변을 싸고돌았다. 나는 맨 나중에 그 여자의 곁으로 걸어가서 그 여자의 발성에 대하여 어떤 매우 불손한 말을 하였다.그 여자는 아래 입술을 비쭉 내밀고 얼굴을 찌프렸다. 그리고는 매우 비꼬는 듯이 인사를 하였다.</p><p class="ql-block">“제게는 그 말씀이”하고 그 여자는 말하였다. “참 언변이 좋으시군요. 당신은 노래를 조금도 들어주시지 않았었지요. 그러나 당신은 아마 음악을 좋아하시지 않으시는가 보군요?...”</p><p class="ql-block">“천만에... 식사 후에는 각별하답니다.”</p><p class="ql-block">“그루쉬니쯔끼는 당신의 취미가 매우 산문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옳아요... 저는 당신이 음악을 호식객의 견지에서 감상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당신은 또 오해를 하십니다. 나는 결코 미식가가 아닙니다. 나의 위장은 대단히 나쁩니다. 하지만 식사 후의 음악은 졸음을 청해오거든요. 게다가 식사 후의 취침은 몸에 좋구요. 그러니까 나는 음악을 의학적 입장에서 좋아하는 셈이지요. 하지만 반대로 저녁의 음악은 나의 신경을 너무나도 자극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게 쾌활해집니다. 그런데 이렇거나 저렇거나 슬퍼한다든가 기뻐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을 때에는 좀 괴롭지요. 게다가 모임석상에서 슬퍼한다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고 지나치게 기뻐한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고 해서...”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여자는 끝까지 듣지 않고 내게서 달아나 그루쉬니쯔끼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감상적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p><p class="ql-block">그러나 공작 아가씨는 그의 말에 주의를 돌리고 듣고 있는 듯이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은 그의 현명한 문구에 대하여 매우 산만하게 엉뚱하게 대답을 하고 있는 듯이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왜냐 하면 그루쉬니쯔끼가 가끔 그 여자의 불안한 시선 속에 떠오르는 마음 속의 동요의 원인을 추측하려고 애를 쓰면서 놀란 듯이 그 여자를 쳐다보기 때문이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나는 당신의 마음 속을 들어다 보았습니다. 귀여운 공작 아가씨! 주의하십쇼. 당신은 나에게 바로 그와 마찬가지의 것으로 복수하려고 하시지요. 그리고 나의 자존심을 손상하려고 하시지요. 허나 당신으로서는 성공하시지 못할 겝니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선전을 포고하신다면 나는 용서하지 않을 터이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야회가 계속되는 동안에 나는 여러번 의식적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참견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 여자가 너무나도 냉냉하게 나의 말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화를 낸 체하고 드디어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공작 아가씨는 기뻐 날뛰었다. 그루쉬니쯔끼도 역시 같이 기뻐하였다. 실컷 기뻐해라. 나의 친구들이여! 서둘러라... 어쨌든 오래 자랑할 수는 없을 터이니!...그래 어쩌면 좋을가? 나에게는 예감이 있다... 여성과 면식을 가지게 될 때 나는 항상 틀림없이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맞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야회의 나머지 시간을 나는 웨라의 곁에서 보냈고 실컷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대체 무엇때문에 그 여자는 나를 이렇게까지도 사랑하는 지 참으로 알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여자만이 나의 온갖 사소한 약점과 어리석은 정열을 완전히 이해하는 단 하나의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 과연 악이란 것은 그렇게도 유혹적인 것일가?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나는 그루쉬니쯔끼와 함께 그 집에서 나왔다. 거리에서 그는 나의 팔을 잡고 오래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 말하였다. </p><p class="ql-block">“그래 어떻게 됐소?”</p><p class="ql-block">“자네는 바보야.”하고 나는 그에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참고 어깨를 으쓱했을 뿐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176, 79, 187);"> (连载 4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