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이번 美篇을 제작한 의도</p><p class="ql-block">부모님은 원래 7남매을 낳으셨는데 지금4남매 만 남았다.세월이 흘러4대가 되니 부모님 한가족으로부터 지금 15가족으로 46명이란 거대한 대가족이 형성되였다.하여 나는 4남매의 맞이로서 우리 대가정의 성원을 性名으로 족보를 구성하였고 다음은 46명의 사진으로 일일이 매가정을 소개하였다.</p><p class="ql-block">이렇게하면 호상친척방문은 자주못해도 사진으러나마 자주보다나면 매가족의 대체적인 륜곽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서 친척지간 호상 문안인사라도 하며 살자는목적이였다.지금까지 모두가 문안인사를 잘하고 살지만 앞으로는 더욱 정겹게 문안인사를 더잘하리라 굳게 믿는다.</p><p class="ql-block">첫번째. 性名으로보는 친척관계</p> <p class="ql-block">이 옛날 가족사진과 아버지 사진 한장 몇장의 엄마사진은 큰 남동생이 지금까지 고이고이 소중하게 보관한 덕분에 이나이 되도록 부모님의 사진을 볼수있으니 큰 남동생에대힌 고마움을 다시 표시한다.</p><p class="ql-block">동생 정말고맙다 이런 사진이 없었다면 부모님 얼굴도 희미한 기억속으로 떠나버릴텐데 다행히 사진이 남겨져서........엄마옆에 선이는나 올해81세 아버지옆에 큰남동생 금년77세</p> <p class="ql-block">우의 사진 은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찍은 ...</p> <p class="ql-block">아버지는 1914년 (甲寅해 범띠) 12월3일에 출생해서 1992년 8월12일 78세로 삶을마쳤다.</p><p class="ql-block">아버지는 밤 야학을 통해 한글과 汉字을 배워서 내가어릴때 한자를 배워 준적이있다.생활에서 좀 한가하던가 기분이 좋을땐 한국가요 나 소리를부르군했었다.</p><p class="ql-block">아버지의 일생에서 큰공헌이라면 먼 옛날吉昌살때 전염병이돌때 큰집작은집南北캉에 거주했는데 우리집 식구만 살았는 사실</p><p class="ql-block">그리고 자식만은 공부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길창을 떠나 명성으로이사한일 그때이사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보통농민으로 고단한 인생을 살았을것이라고....그런데 아버지생전엔 왜 몰랐을까? 철없이 보낸 지난시절 너무도원망스럽고 아버지 정말 미안합니다.</p> <p class="ql-block">어머니는 1916년(병진년 용띠)정월13일 출생해서 2010년 12월14일 아침6시05분 94세로 삶을 마챴다.</p><p class="ql-block">어머니는 자상하지는 않았지만 총명하고 매우 부지런한 분이였다 고향이 전라북도 남원인지라 음식솜씨만은 특유한 재간을가지고 있어 동네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아직도 어릴때 엄마가 해주던 각종 엿. 각가지 강정 .유과 등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음식 뿐아니라 생산대 각종 일터에서도 상일꾼으로 소문이 났다.</p><p class="ql-block">내가 어릴때 항상듣던 엄마의말씀《 내가죽을래야 죽을시간이 없고 먹을래야 먹을시간이 없다.》 이말의 참뜻을 내가결혼하고 애들엄마가 되여서야 알았으니 말이다.</p> <p class="ql-block">오른쪽 풍경사진은 명성진에서 조직한 단동 유람에서 남긴것으로 안다.</p> <p class="ql-block">어머니는 평생에 든든한 두 아들을 두어 항상 기뻐하셨다.</p> <p class="ql-block">어머니 세상뜨는해</p> <p class="ql-block">내가 한국생할4년반 을 마치고 2002 년5월에와서 장춘새아파트 집도 구경시킬겸 또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효도을할 생각으로 잠시 엄마를 모 셨다</p> <p class="ql-block">이사진은 1990년도 엄마와 큰동생댁이 처음으로 한국방문 할때 외가집 친척들에게 줄려고 남긴사진</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4남매중 맞이 가족🍒🍒🍒🍒</p> <p class="ql-block">시부모님의 간절한 소원과 부탁으로 아들아들 바래다가 어느듯 5남매를 두었다.</p><p class="ql-block">오남매가족이 다모이면 17명이다 어릴때 키울땐 고생을 좀 했을망정 지금에 와서생각하면 (고생끝에 락이 온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자식들의 효도로 만년의 행복을 느끼면서 건강하게 잘살고있다.</p> <p class="ql-block">애들키우고 공부시키랴.대식구 삼림하랴.학교공작하랴 눈코뜰새없이 사느라고 다섯애 성장과정.기념사진은 중시를하지 않아 사진몇장밖에 없다.그나마 정순 정애 둘이찍은사진은 큰남동생이 손수 옷을 찿아입히고 머리까지 치장해서 사진관까지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없었다면....동생은 누나의 실제생활을 잘알고 무엇이나 도와주려는 동생의 기특한 마음은 마음속으로 깊이알고있으나 한번도 고맙다고 말한적이 없었어 죽을때가 되여서야 철이드는모양이야 언제한번 만나면 지난세월 이야기도하고 싶은데....</p> <p class="ql-block">2019년 섣달 그믐날 저녁식사중</p> <p class="ql-block">2020년 정월 초하루날 아침 </p> <p class="ql-block">❤️❤️❤️❤️❤️정순가족❤️❤️❤️❤️❤️</p> <p class="ql-block">❤️❤️❤️❤️❤️정애가족❤️❤️❤️❤️❤️</p> <p class="ql-block">필업 하던날을 기념하여</p> <p class="ql-block">2017년도 외손녀 吉林省文料 장원으로 청화대학 입학을 축하하여...</p> <p class="ql-block"> ❤️❤️❤️❤️❤️정화가족❤️❤️❤️❤️❤️</p> <p class="ql-block">영국 류학을 떠나기전... </p><p class="ql-block">.</p> <p class="ql-block"> ❤️❤️❤️ ❤️❤️ 국화가족 ❤️❤️❤️❤️❤️</p> <p class="ql-block">길림지구 중소학 双语 경연에서..</p> <p class="ql-block">❤️❤️❤️❤️❤️아들가족❤️❤️❤️❤️❤️</p> <p class="ql-block">2019년 8월3일부터 9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개최한 세계 음악 무용 경연대회에서 피파연주 은상 수여.</p> <p class="ql-block"> 🍒🍒🍒🍒 큰 남동생가족🍒🍒🍒🍒</p> <p class="ql-block">중국에서 한창 한국드라마 열풍이 돌때 남동생이 엄마의 심리를 알고서 인차 한국드라마를 시청하도록 친이 설치하고 저녁이면 온집식구 모여앉아 드라마를보군한다.(큰남동생 동생댁 춘영.엄마.)</p> <p class="ql-block">큰 남동생 생일에 가서 남긴 사진</p> <p class="ql-block"> 🌺🌺 춘영가족🌺🌺</p><p class="ql-block">코로나로 마음되로 다닐수없어 사진을 전달못했습니다. 많은 량해바랍니다.</p> <p class="ql-block"> 🌺🌺 춘길가족🌺🌺</p> <p class="ql-block">🍒🍒🍒🍒작은 남동생 가족🍒🍒🍒🍒</p> <p class="ql-block"> 🌹🌹🌹 수영이 가족🌹🌹🌹</p> <p class="ql-block">수영이 결혼사진 처음보는데 고모가 없는것보니 내가 한국있을때구나. 참 이사진보니 큰집 형님도 계시고 엄마 그리고 많은 친척을 볼수있어 좋구나</p> <p class="ql-block">2018년( 12월27일부터 2019년 1월 3일까지) 광주에 살고있는 친정질녀 수영이가큰엄마내외분 .큰고모내외분을 초대해서갔는데 대련질녀 . 한국에서 동생댁 일본에사는조카질부등 대식구가 모여서 일생에서잊지못할 제미나는 추억을 남겼다</p><p class="ql-block">지금생각해보니 그 모임이 감회가 깊고 또 수영이 그때 수고가 정말 많았다고 다시 말한다 그덕에 심수구경도.오씨가족여행도 잘했어 고맙다 수영이 실랑도.....</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0px;"> 🌷🌷🌷 미영이 가족🌷🌷🌷</span></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매년 설이되면 대련에 사는 미영이는 쌍둥이들이 친척들에게 설문안인사를 하게끔 시킨다 이 점에서 미영이 참 돋보인다. 인사법도 어릴때부터 습관되야야지 다 커서는 쑥스러워 아예인사도 하지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p> <p class="ql-block">2017년9월29일부터 10월5일까지 대련여행에서</p> <p class="ql-block">이사진 미영의 집앞에서</p> <p class="ql-block"> 🌷🌷🌷 성길의 가족🌷🌷🌷</p> <p class="ql-block">🍒🍒🍒🍒녀동생 기족🍒🍒🍒🍒</p> <p class="ql-block">🍎🍎주성이 가족🍎🍎</p> <p class="ql-block">민정이 加由。</p> <p class="ql-block"> 🍎🍎 주남이 가족🍎🍎</p> <p class="ql-block">민지야? 아빠가 제일이지?</p> <p class="ql-block">美篇을 제작후 나의 소감</p><p class="ql-block"> 첫째 .부모로부터 사남매가족 그 후대까</p><p class="ql-block"> 이혼이 없이 모두 금쪽같은 자식을두</p><p class="ql-block"> 고 행복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다</p><p class="ql-block"> 시 보았고</p><p class="ql-block"> 둘째.인생삶의 긴로정을 경과하면서 지 </p><p class="ql-block"> 금까지 큰 사고없이 무사히 살아온 모</p><p class="ql-block"> 습을 보니 한없이 기뻤고</p><p class="ql-block">세째. 모두가 제때에 결혼해서 홀몸이 아닌</p><p class="ql-block"> 부부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으니 </p><p class="ql-block">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p><p class="ql-block">네째 .젊은후대들 모두가 자기를 낳아주신</p><p class="ql-block"> 부모가 살아 계신다는것 이 얼마나 </p><p class="ql-block"> 가슴 뿌듯한가 모든부모 적게 많게 자</p><p class="ql-block"> 식도와 주지않는부모 어디있었는가?</p><p class="ql-block"> 노래가사에 있듯이《있을때 잘해 후회</p><p class="ql-block"> 하지 말고 》후대들 부모께 효도란 돈들</p><p class="ql-block"> 지않는 말 말한마디도 따뜻하고 기쁨</p><p class="ql-block"> 을주는말이 없을까 자주문안도 드리면</p><p class="ql-block"> 서 살아간다면 이것이 곧효도가 아닐까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소용 ... </p><p class="ql-block">이상4가지를 생각하면 우리모두가 복받았고 삶에서 성공한인생이라고 떳떳이 말하고싶다.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계란.사과도 마음데로못먹던시절에 비하면 지금은상부자중의 상 부자다 그러기에</p><p class="ql-block">더 바란다면 건강한신체 이복저복해도 건강이 최대복이라고 생각한다.우리사남매 가족은 이미 황혼길에 선만큼 멋진 노인으로 늙어갈것이며</p><p class="ql-block">젊은후대들은 남은인생에서 부모께 효도하면서 행복한 가정생활 더욱 빛내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매일 웃는 일만있기를바라면서 영원히 잘 살길 바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2022년 6월 20일</p><p class="ql-block"> 美篇制作 오영자.(나의 신분 누나이자 언니 이모이자 고모 어머니이자 할머니 그것도외할머니 친할머니 또 큰엄마 여기다 항상 大字만달고 사는 높은신분을 가진분이랍니다.하ㅡ하ㅡ하)</p><p class="ql-block"><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