半个世纪的牵手

红日

<p class="ql-block"><b>여러분 안녕하십니까 ?</b></p><p class="ql-block"><b>오늘은 고된 세상살이를 헤쳐나와 자식들을 보람있게 키워 가정의 만복을 한몸에 지니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결혼 50주년 날입니다.</b></p><p class="ql-block"><b>이 뜻깊은 금혼의 날에 대련의 친구들과 한자리를 같이 하고 해변의 도시에서 만난 우리 민족의 즐거움과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웃고 떠들고 춤추고 술잔을 부딛히며 살아온 19년을 회고 하였습니다.</b></p><p class="ql-block"><b>인생살이 반 세기를 거치면서 파란곡절도 많았지만 행복속에 뭍혀사는 오늘 언제 그랬냐 싶게 꽃길만 보입니다.</b></p><p class="ql-block"><b>앞으로 우리 가족을 더 살뜰히 보듬으며 보람있게 남은 인생을 엮어 갈것입니다.</b></p><p class="ql-block"><b>文字编辑:崔范珠</b></p><p class="ql-block"><b>2022.6.4</b></p> <p class="ql-block"><b>人们赞颂真爱常用情比金坚作比,两人能携手共度五十载,可谓真正的情比金坚。五十年的婚姻被称为金婚!</b></p> <p class="ql-block"><b>如花似玉美娇娘,玉树临风俊俏郎。</b></p> <p class="ql-block"><b>半世纪牵手,养儿育女, 柴米油盐 ,五十年同心建设小家庭。风雨同舟、相濡以沫,共同品尝人生的坎坷与艰辛,一起感受生活的快乐和温暖。</b></p> <p class="ql-block"><b>今天,也正是这美好的一天,子孙满堂,天伦之乐,同祝这值得纪念的日子。</b></p> <p class="ql-block"><b>多年的亲朋好友应崔范珠夫妇邀请,在御竹楼共度二位金婚纪念日。让我们为赢得半个世纪的恩爱夫妻举杯、祝福,祝福二位老人健康长寿、幸福永远!</b></p> <p class="ql-block"><b>盛宴中大家歌声连连,将欢乐的气氛推向高潮!</b></p> <p class="ql-block"><b>崔范珠夫妇精彩表演</b></p> <p class="ql-block"><b>金胜福老师表演</b></p> <p class="ql-block"><b>好邻居朴在春夫妇表演</b></p> <p class="ql-block"><b>尹明浩夫妇 金明花夫妇表演</b></p> <p class="ql-block"><b>权伍仙夫妇 金玉善夫妇 朴钟允 李云光表演</b></p> <p class="ql-block"><b>朴松月 安英淑夫妇 表演</b></p> <p class="ql-block"><b>李善红夫妇表演</b></p> <p class="ql-block"><b>交杯美酒喝下肚,幸福生活一起走。手挽手、杯碰杯,愿你们真爱长相守!</b></p> <p class="ql-block"><b>大合唱 指挥:朴钟允</b></p> <p class="ql-block"><b>出镜人:</b></p><p class="ql-block"><b>崔范珠 金明姬 尹明镐 吴任顺 </b></p><p class="ql-block"><b>黄太瑞 权伍善 安英淑 老 玉 </b></p><p class="ql-block"><b>王春锦 朴钟允 朴在春 俞玉善 </b></p><p class="ql-block"><b>金卢甲 金玉善 严宝䝨 金明花 </b></p><p class="ql-block"><b>朴松月 崔 彪 李善红 金胜福 </b></p><p class="ql-block"><b>李云光 共21人</b></p><p class="ql-block"><b>摄 影:红 日</b></p> <p class="ql-block">🌸🐾🌿🌸⁀⋱‿🌸🐾🌿🌸⁀⋱‿🌸🐾</p> <p class="ql-block"><b>崔范珠先生才华横溢,热爱生活。他选送的文章多次在辽宁朝鲜文汇报和辽宁省朝鲜族老年世界上发布。愿他的晚年生活更加丰富多彩,在慢慢变老的路上与快乐相伴。</b></p><p class="ql-block"><b>下面请欣赏两篇佳作</b></p> <p class="ql-block"><b>  코바늘에 깃든 이야기</b></p><p class="ql-block"><b> —최 범수</b></p><p class="ql-block"><b>갓 결혼하고 첫 딸애를 본 나는 마냥 즐거워 늘 행복속에 잠겨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출근하였다. 금방 걸음마를 탈가말가하는 여자애는그렇게도 귀엽기만 했다.</b></p><p class="ql-block"><b>집에 척 들어서면 아버지 얼굴을 아는지라 수영선수마냥 온힘을 다해 마구 기여오군 하였다.</b></p><p class="ql-block"><b> 어느날 점심,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니 막 기여오던 딸애는 엄마품에 안겨 슬피슬피 울고있었다.안해는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 못하여 어찌 할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애타게 나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였다.아이를 보니 코구멍에 콩알이 들어가퍼져 있었는데 콩알이 들어간 코구멍은 부어나 충혈이 되여 있었고 다른 한 코구멍은 밀리여 구멍이 좁아져 숨쉬기가 가빠했다..아이는 다만 입으로만 숨을 쉬며 울어대고 있었다.나는 다짜고짜로 왜 대대 병원에는 가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맨발의사 (문화대혁명 시기 의사증이 없이 병보는 의사 ) 는 아이가 어려서 콩알을 다칠수가 없다며 공사병원으로 가라고 하여 집으로 되 돌아왔다고 하며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b></p><p class="ql-block"><b> 당시 생산대에서는 수분이 많은 콩들을 집집마다 나누어주어 구들에 말려 생산대에 바쳤다.다 말린 콩은 생산대에 바쳤으나 구들에 한두알씩 남은 콩알들이 있었나 보다 .기여 다니며 놀던 딸애가 콩알을 입에 넣는다는것이 코구멍으로 넣은것 같았다..</b></p><p class="ql-block"><b> 나도 조급해 났다.오후에는 출근해야 하지 공사병원은 20여리 떨어져 있지 하여 나는 머리를 굴려 나절로 치료해 보려고 작심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콩알은 이미 퍼졌기에 무엇으로 찔러도 뚫을수가 있었다.하지만 콩알을 빼내려면 걸리는것이 있어야 빼낼수가 있었다. 《돼지도 급하면 담장을 뛰여 넘는다.》고 나도 급한 김에 맨발의사가 되여 나절로 빼보려고 하였다.</b></p><p class="ql-block"><b> 이때 머리속에 알맞춤한 공구가 떠올랐다.당시 처녀들은 시집가기 전에 꼭 이불보를 마련해야 했다.젊은 새각시들 집에는 대부분 코바늘이 있었다.그 코바늘로 봉황새도 떠넣고 모란꽃,제비,공작새,비둘기---많은 도안을 떠넣고 정연이 쌓아얹은 여러가지 모분단이불 칠색단 담요들우에 씌워 놓는다.그속에서 새각시의 깔끔한 솜씨와 됨됨이를 읽을수 있었다.나는 여기저기를 뒤적여 코바늘을 찾아냈다.나는 한 손으로 애의 코 웃쪽을 꼭 눌러 콩알이 더는 코안으로 밀려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 손으로 코바늘을 잡고 천천히 콩알을 찔렀다.다음 살짝 비틀어 코바늘의 코가 콩알에 걸치게 하고 살그머니 당겼더니 콩알이 순한 양처럼 살살 따라 나왔다.</b></p><p class="ql-block"><b> 콩알이 빠져나오니 막혔던 코가 시원히 열렸다.코에 들어간 콩알을 코바늘로 빼내고 나니 콕콕 쏘아대던 나의 머리도 시원해 났다.안해의 눈에도 기쁜 나머지 방울방울 이슬이 맺히더니 나를 대견스레 바라보았다.신강의 아반티가 따로 없다.나는 득의양양하여 맛있게 점심밥을 치르고 출근길에 올랐다.</b></p><p class="ql-block"><b> 아기자기한 가족사랑이 나더러 코바늘을 생각하게 했고 코바늘이 있었기에 딸애의 고통을 풀수 있었다는것을 심심히 느끼게 하였다.</b></p><p class="ql-block"><b>2022년2월 7일 료녕조선문보 출간</b></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노루발족 손잡이</b></p><p class="ql-block"><b> —최 범수</b></p><p class="ql-block"><b>얼마전 대련개발구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 갔었다. 부자들만 모여사는 아파트 단지는 창공을 찌르는 아파트들이 즐비차게 세워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 아파트에 사는 친구집에 도착한후 친구는 열쇠를 출입문에 꽂고 손잡이에 달린 비밀번호를 눌러서야 출입문이 열리였다. “우리집 출입문의 손잡이는 특제품이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우리 집에 들어올수 없소” 친구가 나를 술상에 안내하면서 자랑스레 하는 말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산해진미를 보면서도 나는 군침이 돌지 않았다. 착잡한 생각이 머리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손잡이는 약방의 감초처럼 우리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다.자건거 손잡이 ,전기밥솔 손잡이,운동기재 손잡이 ...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쓸수 있고 인간에게 더불어 살라고 남녀로소 때묻은 손도 받아들이는 손잡이가 어쩌면 이렇게 변해가고 있단말인가? 고급으로 만든 친구집의 침실 손잡이를 물끄러 바라보노라니 지난세기 50년대 나의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우리집 노루발족 손잡이가 새삼스레 머리속에 떠오른다.</b></p><p class="ql-block"><b>지난 세기 50년대 나는 동년시절을 길림성 왕청현 동림촌에서 보냈다. 그때 우리 초가집 손잡이는 원래 대장간에서 만든 동그란 쇠고리 손잡이였는데 불편할때가 많았다. 추운 겨울 녀성들이 얼음 구멍을 내고 빨래를 한후 젖은 손으로 쇠고리 손잡이를 잡으면 자석에 쇠붙이가 달라 붙듯이 젖은 손이 손잡이에 달라 붙었고 우리 조무래기들이 바깥에서 눈싸움을 하고 젖은 손으로 집으로 들어갈때 손이 쇠고랑이 손잡이에 붙어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피면하기 위하여 할아버지는 포수들 한테 가서 노루 발족을 얻어다 문에 달아 놓았다. 누루발족은 보드라운 털이 감싸고 있어 쥐기만 하면 아주 부드럽고 따뜻한 감을 주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노루 발족 손잡이를 잡아도 달라 붙지 않았다. 집집마다 생활이 구차해도 밤에 잘때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 어느집 앵두가 먼저 익으면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풋풋한 인정을 나누던 그 시절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느티나무아래에 모여서 오이랭국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더위를 가시였고 겨울철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우리집에 모여 앉아 화로불에서 구워낸 감자를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할아버지가 구수하게 엮어내는 “심청전”,”춘향전”,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시절 부드럽고 따뜻한 노루발족 손잡이는 언제 한번 상을 찌그린적 없었다. 하여 마을의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예 “노루말족집”이라고 친절히 불렀다.</b></p><p class="ql-block"><b>강산이 일곱번 변하는 사이 , 고향의 허슬한 초가집은 고래등 같은 벽돌기와집으로 변하였고 맨발 바람으로 헝겊뽈 차던 흙길은 자동차 ,승영차들이 씽씽달리는 아스팔트길로 탈바꿈했다.10여년전 시골에서 살던 내가 대련으로 이사올때 입던옷 ,덮던 이불과 손때 묻은 책들은 모두 가져왔지만 고향의 노루 발족 손잡이만은 가져오지 못했다.</b></p><p class="ql-block"><b>카드 한장으로 온 세상을 돌아 다니고 인정이 날이 갈수록 매말라 가는 현실은 나의 마음을 괴롭혔다. 고향은 피붙이에 비유한 사람이 있다. 못난 것이라고 쥐여박고 욱박지르다가도 왈칵 끌어 안고 울고 싶은 정의 끈적끈적한 응어리 맺힘이 마치 피붙이와 같다는 것이다.60년전 내가 살던 초가집 지붕엔 잡초가 무성하고 녹이 쓴 자물쇠가 문을 지켜선 그 곁에 바짝 메마른 노루발족 손잡이는 서러워 흐느끼지만 나의 마음속에서 여울치는 노루발족 손잡이의 그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은 오늘도 나의 등을 밀어 주고 있지않는가 . 나는 헝클어진 생각의 실머리를 바로잡고 내가 살아가는 “손잡이”를 찾기 시작했다. 생각을 바꾸면 방향이 서게 되고 방향이 곧바르면 행동이 따르는 법이다. 나는 문구장의 손잡이를 잡았다. 문구운동을 잘 치든 못치든 서로 웃고 떠들면서 정을 나누고 자유활동에 편리하고 신체단련에 유익하여 그야 말로 “꿩먹고 알먹는” 로인들의 체육운동이다. 점심때가 되면 우리 동료들은 저마다 챙겨온 도시락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우의를 돈독히 한다.</b></p><p class="ql-block"><b>두번재로 잡은 손잡이는 대련 조선족 문학회 오성문학방의 손잡이다. 40여년 교육사업에서 갈고 닦은 지혜와 경험이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수많은 동료들이 뜨거운 손길로 나의 작품을 다듬어 주어 지난해에 4편의 수필과 시조,가사를 간행물에 발표했고 금년에도 나의 생활수기 “코바늘에 깃든 이야기”,”나의 생명을 구해준 담임선생님 ” 이 료녕신문과 흑룡강 신문에 발표 되였다.</b></p><p class="ql-block"><b>무정한 세월은 나의 청춘을 빼앗아 가도 고향의 노루발족 손잡이가 나에게 남겨준 “부드럽고 따뜻한게 ” 살라는 인생의 가르침은 오늘도 쉼없이 앞으로 나가도록 등을 밀어주고 있다.</b></p><p class="ql-block"><b>辽宁省朝鲜族老年世界书刊第六期出版</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