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 달마다 보름이 되면 나는 둥근 달님을 바라 보며 《엄마야!》,《누나야!》하고 조용히 불러 본다.</p><p class="ql-block"> 내가 엄마 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나 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사람은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는 문옥순ㅡㅡ문여사 인데 올해 73세 이고 나보다 15년 이나 연상인 나의 누님 이시다.</p><p class="ql-block"> 비록 보름달 처럼 환한 얼굴은 아니지만 이 세상을 떠나시기전 누님은 아무리 바빠도 보름에 한번씩은 꼭꼭 안부 전화를 걸어 오셨다.그래서 보름달을 보면 누님생각이 절로 나는것 같다.</p><p class="ql-block"> 누님은 늘 나만 보면《우리 아들이 너와 다섯살 차이 밖에 안 나니 넌 나를 엄마라고 불러도 돼》하고 입버릇 처럼 외우셨다.</p><p class="ql-block"> 내가《싫어!엄마 라고 하면 늙어보여! 난 문 여사라 할거야!》하면 누나는</p><p class="ql-block"> 《이런 바보 어디 있나?누가 내 엄마 되 주겠다고 하면 나는 석달 열흘 춤추겠다야!》하며 고운 눈 흘기시군 하였다.</p><p class="ql-block"> 8남매 맨 막내로서 조실부모한 나는 실은 마음속으로 큰 누나인 문여사를 언녕 《엄마》로 인정 하고 있었다.</p><p class="ql-block"> 그러나 앞에선 농담으로 계속 《 문여사》라 부르는데 습관이 되여버렸다.</p><p class="ql-block"> 문여사는 어렸을때 너무 총명 하여 《신동》이라 불리 웠다.하지만 팔남매 맏이인 그는 아버지가 병환에 누워 계시니 가정 부담이 너무 심하여 아쉽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포기 하고 고중을 채 졸업 하지 못하고 중퇴 하여 농민이 되고 말았다.</p><p class="ql-block"> 농촌에서도 남자들이 하는 온갖 무거운 노동을 다 하면서 촌 문예 선전대에 편입 되여 골간으로 활약 하였다.</p><p class="ql-block"> 그러다가 소학교 민영교사로 추천 받아 장장 11년을 교사사업 하며 여러차례 우수교사로 표창 까지 받았다.</p><p class="ql-block"> 문여사는 결혼 하여 자식 셋을 낳아 키우면서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푼돈도 쪼개 쓰며 무더운 삼복철에 아이스크림 하나 수박 한 쪼각 안 사먹으면서 아글타글 모아서 내가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 하는 그날 까지 다달이 나에게 소비돈을 꼬박꼬박 부쳐 주었다.</p><p class="ql-block"> 내가 사업에 참가 해서 중병으로 드러 누웠을때 에는 하나 밖에 없는 온 집안의 희망을 걸머 지고 있는 부림소를 팔아 나의 치료비용을 대 주었고 내가 놀러 가면 어린 자식들을 밖에 놀러 내보내고 토종 닭곰을 해 먹이군 했다.</p><p class="ql-block"> 내가 뇌경색 으로 쓰러졌을때 에는 가정의 모든것을 제쳐놓고 열 몇시간이나 차 멀미 하는 몸으로 달려와 꼬박 한 달간 대소변 받아내고 밥 떠 먹여 주며 간병 했다.후에 안 일 이지만 자식들이 보내준 좋은 약들을 친구 한테서 선물 받은거 라며 거짓말로 얼려서 모두 나에게 보내 왔다.</p><p class="ql-block"> (나에게 보내온 좋은 약들을 만약 당신이 드셨더라면 당신은 아직 한 남자의 남편,삼남매의 친절한 엄마로, 여러 손군 들의 친절한 할머니로, 한 가정의세대주로 지금도 행복한 삶 살고 있을텐데)하는 생각이 무시로 갈마 들고 나 때문에 이 세상 떠난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어 2년이 다 되여오는 이 시각 까지 내 가슴은 칼로 도려 내는듯이 못 견디게 아프다.</p><p class="ql-block"> 문옥순 ㅡ문여사: 이젠 장난 농담 집어 치우고 정색 해서 《엄마》라 부를게요.</p><p class="ql-block"> 《엄마,다시 내 곁에 돌아와 줘요.동생 아닌 아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p> <p class="ql-block">2022년 4월 21일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의 우수작품</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