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 <span style="font-size:22px;">작자 / 전 영실</span></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수필</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그때 그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가? /전영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반세기를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 가운데는 잠간이나마 스치면서 살아온 분들도 있는데 어쩐지 불편하면서도 잊혀지지 않고 아련히 떠오르는 사람이 몇명 있다. 사람이 살면서 가끔은 남에게 피해를 줄 때도 있고 가끔은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그전날 용서 못했던 일도 좀더 여유를 가지고 너그러이 받아주는가 보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2009년, 나는 퇴직한 후 제2인생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헤매다가 어벌뚝지 크게 식당을 경영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새 순이 돋는 3월, 일군 15명을 초빙하고 630여평 되는 널직한 식당을 경영하기시작했다. 식당을 경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내보내고 또 고용하고 내보내기를 반복했다. 주방장, 료리사, 랭면료리사, 복무원… 그 때도 지금처럼 조선족 일군을 구하기가 엄청 힘들어서 대부분 한족 일군들을 고용했다. 짧은 1년 10개월 동안 나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울고 떠들면서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때 우리 식당에서 일하던 복무원들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 나와 안 좋은 추억을 쌓은 분들의 얼굴이 이상하리 만치 더 또렷이 떠오른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도적’이 ‘뢰봉’으로</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어느 날 저녁, 한 복무원이 나를 슬쩍 건드리며 벽에 걸려있는 쑈왕(小王)의 가방을 가리키는 것이였다. 어둑컴컴한 곳에 걸려있는 가방을 보니 오전 출근할 때는 납작했는데 퇴근할 때가 되니 닭똥집처럼 불룩하게 배가 불러있었다. 온종일 그녀가 한번도 식당문 밖으로 나간 적 없는데 가방이 불룩할 리 없었다. 미심쩍었지만 남의 가방을 함부로 들출 수는 없었다. 하여 나는 그녀를 조용히 불러 가방 안의 물건을 보자고 하였다. 그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여서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당장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모양이였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의 쪼로로기를 열자 가방 안에서 맛내기며 생강이며 마늘이며 숟가락이며 저가락 등등 물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지 않아도 주방의 물건이 날이 갈수록 없어진다는 소문에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제 눈으로 직접 눈앞의 ‘도적’을 보고 나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그녀는 연신 사죄하고 또 사죄했다. 생활이 하도 구차하여 손을 댔다고 이실직고했다. 나는 쑈왕이 속으로 괘씸했지만 처음이고 한번이기에 용서하기로 마음 먹고 좋게 타일러서 집으로 보냈다. “제 버릇 개 주랴”고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그녀를 의심의 눈길로 보았다. 그녀가 하도 식당주방에서 거두매를 잘하기에 잘라버리지는 않았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어느 초여름 저녁, 그녀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여 슬그머니 그녀를 미행했더니 그녀는 퇴근할 때 자기 집 방향으로 가지 않고 식당 뒤울안으로 에돌아가는 것이였다. 날도 어스름하자 그녀는 황망히 우리가 버린 석탄재 무지에 가더니 주위를 슬쩍 살피고는 부랴부랴 석탄재 무지를 파헤치는 것이였다. 검은색 비닐주머니가 나왔다. 그녀가 그 비닐주머니를 다급히 가방에 넣으려고 할 때 내가 소리쳤다.“또 무얼 훔쳤나?”그녀는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내가 다짜고짜로 그 비닐주머니를 와다닥 빼앗아 펼쳐보니 적어도 두근 이상 잘될 소고기덩이였다. 너무 격분해서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그 달의 로임을 일전도 주지 않고 당장 내보내고 싶었다. 대부금을 백만원이나 맡아서 아글타글 장사하는데 이렇게 담이 크게 도적질하다니… 내가 자기 감정을 통제하기 힘들어 단도직입적으로 “너 왜 이래? 벌써 몇번째인데… 파출소에 가야 하겠다!”라고 하니 그녀는 무릎을 꿇고 울면서 통사정하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사실은 이러하였다. 그녀의 아들애가 그 날 따라 학교에서 축구시합이 있었는데 저녁에 소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아침에 저녁에 소고기를 사가기로 아들과 약속했지만(애 아빠는 사망한 지 여러해 됨.) 그만 식당에서 일하다보니 이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퇴근할 때에야 생각난 그녀는 소고기를 사려고 해도 시장이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아들애한테 소탕을 먹이고 싶은 일념으로 그녀는 식당의 랭장고에서 소고기 한덩이를 슬쩍 꺼냈던 것이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그녀의 사정을 듣는 순간 나는 코마루가 찡해나면서 동정심이 생겼다. 나는 주방 랭장고에서 서너근 되는 소고기 한덩이를 더 꺼내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보고 이 일을 비밀로 지켜줄 테니 이후엔 곤난한 일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말하라고 하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다른 복무원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언제나 맨나중에 퇴근했다. 나는 그녀가 세집비를 내는 날자를 알고는 월급도 앞당겨주기도 했고 식당에 색다른 음식이 있으면 아들을 주라고 그녀한테 보내기도 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어느 흐린 날 아침, 물건구입을 한 나는 갓 사온 몇십근 되는 소고기와 소뼈를 가마에 넣고 육수를 하느라고 불을 붙였는데 날씨가 흐려서인지 부엌아궁이에서 연기가 빠져나왔다. 주방 안에 매캐한 연기가 자우룩하자 료리사는 바깥 구새통목에 가서 개자리를 열고 불을 지폈다. 구새통목에서는 검은 기름기가 녹아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구새에 불이 달렸다. ‘불이 나면 큰일이다! 식당 1, 2, 3, 4층은 물론이고 또 한아빠트에 있는 주민들에게도 큰 대형사고가 날 판이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방에 들어가 소래에 물을 담아 들고 달려나왔다. 그 때, 주방에 있던 쑈왕은 자기가 입던 옷을 벗어 물에 적시고는 부리나케 바깥으로 달려나가서 구새통에 적신 옷을 덮었다. 쑈왕의 지혜로 한차례 대형사고는 그렇게 피면되였다. 검게 그을린 얼굴, 불꽃에 덴 손등, 흠뻑 젖은 몸매를 본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미녀로 보였다. 그후부터 그녀는 화장실 청소, 창고 정리, 식당 유리 닦기 등등 시키지 않은 일까지 수걱수걱 했다. 또 식당에서 핸드폰, 가방, 돈지갑 등을 여러번이나 주어서 임자를 찾아주어 그녀는 우리 식당의 ‘뢰봉’으로 칭찬이 자자했다. 그녀는 내가 식당을 그만둘 때까지 우리 식당에서 열심히 일했다. 물론 나도 그녀한테 로임을 올려주었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덕은 쌓은 대로</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금방 식당을 도맡은 후 나는 한 믿음직한 랭면료리사 아줌마 한분과 2년 이상 계약을 맺고 그 아줌마가 랭면 만드는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연수를 보냈다. 워낙 일솜씨가 잽싼 그녀는 인츰 랭면기술을 배워와서 우리 집 랭면료리사로 솜씨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 아줌마 솜씨 덕분인지 우리 집 랭면 맛은 그 주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약 1년이 넘었을가, 어느 봄날의 이른아침, 그 아줌마가 새벽 일찍 울상이 되여 찾아왔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로바이(老板), 내 얼굴 봅소. 내 엊저녁 한잠도 못 잤으꾸마. 어째 풍이 올 것 같으꾸마…”쿨쩍거리면서 입이 비뚤어져 겨우 말하는 것을 본 나는 그녀의 병이 일반 병 같지 않았다. 남편은 “앓는 사람이 병치료부터 해야지…” 하면서 계약과 상관 없이 그녀를 보냈다. 헌데 어쩐지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그런데 이튿날 저녁, 한 복무원이 나한테 길 남쪽 국수집에 어서 가보라는 것이였다. 달려가 보니 글쎄 풍이 왔다던 그 아줌마가 그 랭면집 주방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지 않는가? 기가 막혔다! 연기해도 분수가 있지, 하루 만에 직장을 바꾸다니?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우리가 돈을 내여 랭면기술 공부를 시켰더니 어데 가서 써먹는단 말인가? 렴치도 없지…’ 나는 너무 억이 막혀 한바탕 싸우려고 하는데 남편이 나의 팔을 끄잡아당기는 것이였다. 나는 분을 가까스로 참으며 밖으로 나왔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여보, 너무 그러지 마오. 그 아줌마도 말 못할 고초가 있어서 그랬겠지…”월급날이 돌아오자 나는 남편을 보고 계약(그 달에 보름 일했음.)에 따라 그 아줌마의 로임을 주지 말자고 했다. “그녀도 살자고 그랬겠지. 그 동안 우리 집에서 열심히 일해준 것을 고려해서 한달 월급을 다 주기요.”라고 하는 것이였다. 그 일 때문에 나는 남편과 한바탕 다투었다. 남편이 전화했는지 그녀는 민망해하면서 로임을 가지러 왔다. 나는 괘씸한 대로 한마디 좋지 않은 소리를 한 후 로임은 그대로 주었다. 식당의 다른 복무원들도 국수아줌마가 철면피하다고 수군거렸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그후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운명의 조화인가?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하늘처럼 밑던 남편이 뜻밖에 백혈병에 걸려 우리는 부랴부랴 식당일을 거두고 천진혈액병원으로 떠나게 되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역전 플래트홈에는 친척들, 남편 단위 사람들과 부대전우들 백여명이 우리를 환송하러 나왔다. 그 때 인파를 헤가르며 “영실이, 영실이!” 하면서 한 아줌마가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왔다. 다름 아닌 국수아줌마였다. 어데서 소식을 들었는지 그 아줌마가 역전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쥐더니 “너무 적소. 내 마음이니 받아주오!”라고 하면서 돈 천원을 나의 손에 쥐여주는 것이였다. 남편도 나도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행주를 부엌아궁이에…</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행주는 식당의 위생청결과 직접 련결되여있다. 그릇, 칼도마, 칼, 숟가락, 저가락… 등등을 깨끗하게 닦는 도구로서 온갖 병균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막아주는 첫번째 수호신이라 할 수 있다. 하여 나는 늘 소다를 넣어 행주를 삶은 후 해빛에 새하얗게 바래워서 쓰군 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어느 날, 내가 물건을 사러 시장에 간 사이에 카운터의 녀복무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행주를 시장가격보다 많이 싸게 한보따리(200개)나 샀다고 자랑 삼아 말하는 것이였다. 마침 시장에서 행주를 사려고 했던 참이라 마침 잘되였다고 생각되여서 부랴부랴 식당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행주보따리부터 들춰보았다. 눈덩이처럼 하얀 행주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이 제법 정갈해보였다.</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그런데 저녁에 행주를 쓰자고 보니까 어쩐지 소독약냄새가 진하게 났다. 꺼림직한 느낌이 들어 다시 코를 킁킁거리며 자세히 맡아보니 확실히 인체에 해가 있는 소독약으로 표백한 것이였다. 순 새것이면 왜 표백하겠는가? 이건 완전히 사우나에서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수건을 소독약으로 표백해서 헐값으로 팔아먹은 것이다. 이런 행주로 어찌 우리 식당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수저와 그릇을 닦을 수 있단 말인가?</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이튿날 아침, 마음을 정리하고 집을 나서니 아침의 태양이 류달리 눈부셨다.식당문에 들어서자 나는 행주보따리부터 꺼내 부엌아궁이에 와다닥 집어넣었다. 마음속에 덕지덕지 앉은 천년 묵은 때를 지운듯 그렇게 마음이 개운할 수가 없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세월이 류수라더니 식당을 경영했던 지도 이미 십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우리 집 식당에서 일한 쑈왕, 국수 아줌마, 카운터 아가씨…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내가 그녀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들도 혹시 나를 기억하고 있을는지?</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span class="ql-cursor"></span> 2020 청년생활 제5기 / 계림문화상 응모작</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