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고향 동창모임

小草(谢绝私聊)

<p class="ql-block">  이글을 삼가 나의 고향 하마탕 동창들께 드린다 </p> <p class="ql-block">  나의 고향은 길림성왕청현 하마탕이다. </p> <p class="ql-block">  나는 소학교, 중학교를 모두하마탕에서 다녔다. </p><p class="ql-block">문화혁명영향으로 1967년에 소학교를 졸업해야 했 는데 1년후인 1968년 여름에 소학교를 졸업하고1970년 12월에 중학교를 졸업 하였다. </p><p class="ql-block">당시 (독서 무용론) 의 피해로 중학교를 졸업할때 우리반 학생수는 27명이였는데 녀학생은 6명이었다.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당시 길림성의 특수 정책 [四个面向]의 락실로 10명의 동창이 학교와 공장으로</p><p class="ql-block">가게 되였는데 이들은 당시 그시대의</p><p class="ql-block">행운아들이였다. 이외의 대부분 동창들은 농촌에서 청소년시기를 보내고 농촌에서 출가성가하였다. 이들은 학교와 공장에 분배받은 돌창들에 비해 많은 고생과 고난을 겪었다. </p><p class="ql-block">지금 도리켜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p> <p class="ql-block">이번 모임은 일박2일로 되였는데 각자가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연길모두모아 4A급 풍경구에 모이기로 하였다. </p><p class="ql-block">그날 (대부분의 동창들 연변에 거주) 연길, 룡정, 조양천, 안도, 고향하마탕, 그리고 왕청동창들 옷단장곱게하고 목적지에도착하였다. 그중에는 멀리 천진에서 달려온 동창 주재련이도 있었다. </p><p class="ql-block">동창들은 반가운 마음을 억제할수 없어 서로 서로 뜨겁게 포옹하고 악수를 나누면서 그동안의 보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표달하였다.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농촌에 있던 동창들은 운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신근한 로동과 피타는 노력으로 농촌의 새건설에 힘을 바쳤다. </p><p class="ql-block">그들 중에는 영광스럽게 참군하여 군의로 성장한 동창, 월남 자위 반격전에 참가 하여 조국의 안전을 위해 부상을 입은 동창, 자습하여 대학에 입학해. 기술을 배워 고향에 돌아가 청춘을 빛낸 동창들. </p><p class="ql-block">개혁개방후 자신의 피와 땀으로 창업에서 성공한 동창들…………</p><p class="ql-block">비록 공부는 많이 못했어도 동창들은 </p><p class="ql-block">기 죽지 않고 각분야에서 자신의 빛과 </p><p class="ql-block">열을 발휘하였다. </p><p class="ql-block">동창중 여러 명은 영광스러운 중국 공산당 당원이다. </p><p class="ql-block">세월은 흘러 어느덧 우리가 하마탕 에서 공부하던 그시절이 50여년이나 훌쩍 지났다. </p><p class="ql-block">고향이 그립고 동창생들이 그리운 때가 되였다. </p><p class="ql-block">바로 이런 시기에 연길에 있는 동창생들의 주도로 되는 50년 만의 고향 동창 모임이 2021, 7, 3일에 이루어 졌다. </p> <p class="ql-block">  여기서 특히 말하고 말하고 싶은건</p><p class="ql-block">우리모임장소는 국가 4A급 풍경구인 【梦都美】스키장인데 겨울엔 스키, 여름에는 수영과 휴가를 할 수 있는 리상적이고 고품격의휴가 장소이다. </p><p class="ql-block">이 풍경구를 건설한 분——리성일동사장분의</p><p class="ql-block"> 고향이 하마탕이라고 한다. 그날 비록</p><p class="ql-block">그분을 뵙지 못했지만 그분의 배려로 우린 환경과 조건이 우월한 장소에서 모임을 갖게 되는 영광을 갖게 되였다.그분은 </p><p class="ql-block">회사의 주요관리 인원을 파견하여 우리의활동에 커다란 편리와 혜택을 주었다. </p><p class="ql-block">그분은 우릴 마치 친인처럼 친절하고 살뜰하게 대해 주어 우리마음을 한결 더 즐겁게 해 주었다. </p><p class="ql-block">우린 이번 모임을 위해 흰색의 티셔츠를 주문했는데 앞가슴에【HMT50ZN】이</p><p class="ql-block">란 글자를 새겨 이번 모임을 기념하였다. </p><p class="ql-block">그리고 녀동창들은 조선족 민족 복장을 갖춰 입고 분위기를 더 한층 업그레이드 </p><p class="ql-block">하였다. </p><p class="ql-block">우린 그분의 안내 하에 환경이 아름다운 곳을 다니며 기념 사진을 찍었는데 그 분위기 시종 화기 애애하고 웃음꽃으로 넘쳤다. 동창들은 아마 누구나 그때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p><p class="ql-block">이어 풍성한 음식으로 차려진 점심 식사 시간이였는데 모두들 기분이 따봉이였다. </p><p class="ql-block">점심 식사가 끝난 후 오락유희가펼쳐졌다. 네개소조로 나뉘여 윷놀이를하였는데 그즐거움은 더 이를데 없었다. </p><p class="ql-block">저녁 식사는 우리 분위기를 고조에로 이끌어 갔다. 모두 잔을 들어 만남을 노래하고 또 한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였다. </p><p class="ql-block">모두들 흥을 참지 못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밤가는 줄 몰랐다. </p><p class="ql-block">호텔엔 우리뿐이 아니고 다른 손님들도</p><p class="ql-block">투숙하고 있어 우린 밖에 나와서 춤추며 </p><p class="ql-block">흥을 계속 돋구었다. </p><p class="ql-block">이튿날 아침, 우린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p><p class="ql-block">아쉬운 리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이번 모임의 여운은 식을 줄 모르고 微信群을 통해 더 짙어만 갔다. </p><p class="ql-block"> 이렇게 소식은 한국에 있는 동창들 한테도 전해졌다. 이리하여 한국에 있는 동창들도 국내에 있는 동창들과 같이 서로의그리운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p><p class="ql-block">이를 계기로 우린 또 한 번의 동창모임을 </p><p class="ql-block">조직하였는데 또 연길에 있는 동창 들이 </p><p class="ql-block">많은 노력을 하였다. </p><p class="ql-block"> 이리하여 3개월이. 지난 2021, 10, 10</p><p class="ql-block">우리 고향 동창들의 두번째 모임이 이루어졌다. </p><p class="ql-block">이번 모임 장소는 아름다운 모두모아산기슭 古村山庄에서. 진행되였다. </p><p class="ql-block">이번 모임엔 지난 번 참가한 동창들외</p><p class="ql-block">또 새로운 동창들이 동참하여 더욱 이채를 돋구었다. </p><p class="ql-block">한 동창은 내가 55년만에 만나보는 소학교시절의 동창이였다. </p><p class="ql-block">우린 또 기념 사진을 찍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으며 한참 북적이였다. </p><p class="ql-block">이번 모임엔 몸이 좀 불편해. 지난 모임에 참가 못 했던 동창도 참가해서 반가움이</p><p class="ql-block">배로 컸다. </p><p class="ql-block"> 더욱이 이번 모임은 한국에 있는 동창</p><p class="ql-block">여섯분이 영상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p><p class="ql-block">기쁨을 나누었는데 동창모두의 기분은 </p><p class="ql-block">말 할 수 없이 흥분되였다. </p><p class="ql-block">우린 잔을 들어 건배하고 흥에 겨워 춤추고 노래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p><p class="ql-block">그날 난 얼마나 흥분 되였는지 어떻게 </p><p class="ql-block">집으로 돌아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p><p class="ql-block"> 여기서 난 나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준 왕청동창들께 감사를 드린다. </p><p class="ql-block"> 그리고 두번의 모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연길동창들께 다시 한 번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p><p class="ql-block"> 두번의 동창모임은 우리 고향 동창 들의 우정을 한층 깊게 하였고 동창 간의 리해도 더깊게 하였다. </p><p class="ql-block"> 동창들아, 동창들아. 그리운 동창들아, </p><p class="ql-block">우리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하자!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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