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川之旅*阿坝藏族羌族自治州 理县 桃坪羌寨》동티벳 도평강채(羌族建筑艺术活化石、神秘的东方古堡/동방의 신비한 보루)

秦居

<p class="ql-block">桃坪羌寨,位于理县杂谷脑河畔桃坪乡。羌寨距离理县城区40公里,汶川城区16公里,成都139公里,是国家级重点文物保护单位,九黄线旅游圈的重要景区。桃坪羌寨是世界上保存最完整的尚有人居住的碉楼与民居融为一体建筑群,享有“天然空调”美名。其完善的地下水网、四通八达的通道和碉楼合一的迷宫式建筑艺术,被中外学者誉为“羌族建筑艺术活化石”、“神秘的东方古堡”。《来源百度百科》</p> <p class="ql-block">소수민족 강족 왕국 도평강채(桃坪羌寨) 성도에서 도강언과 문천(汶川)을 지나 리현(理县) 도평향 도평촌 위치해있다. 성도에서 약 160km 강족(<span style="font-size:18px;">羌</span>族)은 중국 사천성 위주로 약 20여 만명이 살고있다. 현 위치 거주시기는 약 2,000년이 넘고, 현재 가옥도 1,000년이 넘는 3~4층 돌집이다. 가옥과 가옥이 겹겹이 붙어서 건축하였고 보편적으로 2층에 내실을 꾸였고 1층에서 2~4층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사다리나 통나무에 홈을파 디디고 오르내리게 하였고, 오르내리는 계단은 윗층에서 잡아올리게 만들었다. 가옥과 가옥의 골목길은 미로처럼 만들었고, 집집마다 수로가 흐르고 동네 곳곳에 수십미터의 망루를 설치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하여 감시역활을 수행했다. 집집마다 돌집벽은 배흘림으로 만들어서 밖에서 벽을타고 오르는 것을 어렵게 하였고 돌과돌은 유황을 접착하여 쌓아올렸다. 농사는 산자락에 수수를 비롯 조 또는 옥수수 위주로 농사짓고, 옥상은 평탄하여 농작물을 건조하고 매달거나 쌓아두는 장소로 이용한다. 산자락 험하고 비탈진곳에 동네를 형성하고 동네 중앙에 광장을 만들어 잔치나 큰행사를 치른다. 강족(羌族)의 막걸리 맛은 한국의 막걸리 맛과 흡사하고, 만드는 비법도 얼추 비슷하다.</p> <p class="ql-block">중국의 사진명소 100개 중 가장 아름다운 축조물 도평<span style="font-size:18px;">강채</span>(桃坪羌寨)는 동양의 신비로운 성을 방불케 하는 건물로 지어져 있다. 대표적인 강족의 건물이 모인 강족마을 강채이다.</p> <p class="ql-block">桃坪羌寨以古堡为中心筑成了放射状的8个出口,出口连着甬道构成路网,本寨人进退自如,外人如入迷宫。寨房相连相通,外墙用卵石、片石相混建构,斑驳有致,寨中巷道纵横,有的寨房建有低矮的围墙。民居内房间宽阔、梁柱纵横,一般有二至三层,上面作为住房,下面设牛羊圈舍或堆放农具,屋内房顶常垒有一“小塔”,供奉羌人的白石神(一块卵状白色石头)。堡内的地下供水系统也是独一无二的,从高山上引来的泉水,经暗沟流至每家每户,不仅可以调节室内温度,作消防设施,而且一旦有战事,还是避免敌人断水和逃生的暗道。《来源百度百科》</p> <p class="ql-block">기원전 111년에 축조되어 2천여년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평강채는 강족의 건축문화와 예술이 세계적으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마을로 "강족 건축물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부른다.</p> <p class="ql-block">2천여년의 세월속에서 완강하게 살아 남아 세인의 주목을 받는 도평강채는 산세에 의지해 조성되어 있다. 높은 산의 품에 안긴듯 한 강족의 마을에는 돌을 쌓아 축조한 옛스러운 건물들이 운치를 돋운다.</p> <p class="ql-block">멀리서 마을을 바라보면 황갈색의 돌집이 가파른 산자락에 산재해 첩첩함을 자랑하고 건물의 사이사이에는 키 높은 망루가 웅장한 기세와 특이한 풍격을 보여준다.</p> <p class="ql-block">강족은 왜 11월에 새해를 맞이할까? 먼저 강족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강족은 중국에서도 오래된 민족 중 하나다. 기원전 주나라 때부터 사서에 등장했고, 고촉(古蜀)문명을 일으켰던 주역이다.강족의 달력은 한족이나 티베트인과 전혀 다르다. 강족은 기원전부터 태양력의 일종인 강력(羌曆)을 사용했다. 강력은 한 해를 10개월로 나눠, 한 달은 36.5일로 쳐서 산출했다. 10월을 세수로 정해 10월 1일을 새해 첫날(羌曆年)로 삼았다. 그 뒤 한족의 영향을 받아 음력 10월 1일과 같아지게 됐다.</p> <p class="ql-block">새해 첫날 아침 강족은 집안의 가장높은 곳인 자택 옥상에 올라 제사를 지낸다. 숭배 대상은 흰돌이다. 힌돌 숭배는 고대 샤머니즘 사상에서 비롯됐다. 강족은 자연의 각기 다른 사물을 마을마다 신으로 모신다.</p> <p class="ql-block">처음에는 감숙(甘肃)성 동부부터 민강(岷江)중류까지 폭넓게 살았으리라 추정된다.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민족 규모가 줄어들었다. 기원전후에는 일부가 중국 서북부를 호령했던 흉노에 복속했고, 다른 일부는 한족 왕조에 귀부했다. 물론 오호십육국시대는 후진을 건국했고, 일파인 탕구트족은 서하를 세워 흥성하기도 했다.</p> <p class="ql-block">하지만 얼마 안 되어 급팽창한 티베트에게 복속되어 지내야 했다. 송대부터는 한족 왕조와 티베트의 접경지대에 터전을 잡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p> <p class="ql-block">그 덕분에 강족은 지금까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게 됐다. 중국에서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이름이 그대로 남아있는 소수민족은 몇 안 된다. 게다가 강족은 오호십육국에 등장하는 유일한 소수민족이다.</p> <p class="ql-block">리현(理县)은 마오(茂)현, 원촨(汶川)과 더불어 강족에 가장 많이 몰려 사는 곳이다. 강족마을에 들어서면 1~2층으로 지어진 돌집과 10~30m에 달하는 조루(碉楼)가 찾는 이를 반긴다.</p> <p class="ql-block">돌집을 지은 이유는 간단하다. 해발이 높은데다 토양이 척박하여 나무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족은 돌을 기본으로 쌓고 흙으로 틈새를 메운 뒤, 나무를 장식으로 해서 건축했다.</p> <p class="ql-block">도평강채의 민속풍토 역시 농후하고 다양하다. 강족의 음식문화, 강족의 자수, 강족의 노래와 춤은 도평강채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강족의 역사와 민속문화속으로 이끌어 간다.</p> <p class="ql-block">적재적소에 높게 위치한 조루는 일종의 망루이자 도피처의 용도로 지었다. 한족과 티베트인이 워낙 자주 침입하다 보니 조루를 세워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던 것이다. 다만 돌집이나 조루는 쓰촨성 서부에 사는 티베트인 마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돌집이나 조루가 강족의 독자적인 문화라고 단정할 수 없다.</p> <p class="ql-block">강족마을에 들어서면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자갈이나 납작한 돌을 섞어 건물의 외벽을 쌓았다. 일부 건물은 주변에 낮은 담을 둘러 고대 강족인의 생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p> <p class="ql-block">든든하면서도 옛스러운 이런 건물은 설계도도 없이 줄같은 것을 긋지도 않고 축조되었으나 구조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튀어나온 모서리가 날카로워 정교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보여준다.</p> <p class="ql-block">얼핏보면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산재한 듯 하지만 산자락의 모든 건물들이 단숨에 지어지기라도 한 듯 조화롭고 완정한 일체를 이루면서 세계 건축사상 일대 경관을 형성한다.</p> <p class="ql-block">강족 고유의 민족특징을 완벽하게 보전한 도평강채는 산을 등에 업고 물을 마주하고 있는데 방향은 남북향, 건물배치가 아주 엄밀하다. 도평에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이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높낮이가 다르고 소박하면서도 신비한 강족의 고대 민가들이다. 이런 건물들은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높낮이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p> <p class="ql-block">높은데서 낮은데로, 꼬불꼬불 뻗어간 길이 마치 미궁을 방불케 한다. 도평강채는 말 그대로 보루이다.</p> <p class="ql-block">높고 낮은 건물과 건물사이에는 꼬불꼬불한 도로가 펼쳐져 있는데 모든 도로의 지하에는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파고 위에 청석을 깔고 흙을 펴서 도로를 조성하였다.</p> <p class="ql-block">도평강채에서 강족의 음식을 빼놓을수 없다. 마을에서 임의로 강족의 집에 들어가면 주인들은 열정적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강족의 훈제육과 고사리 등 음식을 만들고 청과주를 내온다.</p> <p class="ql-block">맛있는 강족의 음식을 먹은 뒤에는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강족의 자수를 배우거나 자수품을 기념품으로 사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족은 예로부터 처녀가 자수를 모르면 무시를 당하고 시집을 가기 힘들어 강족의 자수공예가 천여년동안 지속되어 오고 있다.</p> <p class="ql-block">강족마을은 오늘날까지도 유구한 풍속을 지켜온다. 자자손손 이 곳에서 살아오는 강족은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씨를 뿌리고 달이 뜨면 집으로 돌아와 수확을 기다린다.</p> <p class="ql-block">강족의 풍속을 직접 보고 강족의 유구한 역사를 피부로 느끼며 신비로운 강족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활활 타오르는 우들불을 둘러싸고 촌민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원초적이면서도 즐거운 삶을 즐길수 있다.</p> <p class="ql-block">강족마을을 사진작품으로 만들려면 강족 건물에 숙박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것도 하루 이릍이 아닌 연속 며칠동안 묵으면서 주인과 함께 생활하면 좋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질 것이다.</p> <p class="ql-block">학자들은 도평강채를 동방의 고성이라 불렀다. 방어성 보루로서 이 지하수도망을 통하여 성거주민들의 물공급문제를 해결하였고, 동시에는 옛강족의 비상통로이며, 지하수망의 너비는 약50~60cm, 높이는80cm로서 한사람이 기어갈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하수망은 매거주 지역의 밑으로 지나감으로서 손색없이 '친환경에이컨"되었다, 이는 실내 온도를 조절할뿐아니라, 공기를 맑게하고 방화예방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p> <p class="ql-block">도로의 일정한 구간마다 청석위에 흙을 펴지 않아 돌만 들면 물을 사용할수 있게 만들었다. 편리하면서도 보안성이 강한 이런 물길은 마을의 모든 건물을 경유하여 생활용수로 사용되며 유사시에는 엄청난 생존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한다.</p> <p class="ql-block">최고의 건물인 망루는 도평강채의 대표건물인데 건물의 주 용도가 방어이다. 여기저기 위치한 망루는 하늘에 치솟은 보검같이 구름속에 솟아 있어 강한 시각적 충격을 안겨준다. 강족이 모여사는 곳에는 그 어디든지 모두 한 구간에 하나씩 이런 망루가 있어서 수백리를 뻗은 강족의 마을들을 서로 연결해 준다. 오늘날에 와서 이런 망루는 강족문화의 대표로 부상했다.</p> <p class="ql-block">2천여년전에 축조된 이런 망루는 진흙과 돌을 자재로 했는데 수학과 기하학, 역학의 지식을 한몸에 모은 이런 건물은 찬란했던 강족의 어젯날을 잘 말해준다.</p> <p class="ql-block">망루는 전망성이 좋아서 초소역할을 한다. 따라서 9층으로 된 망루에는 층마다 사격용 구멍이 조성되고 옥상에는 소식전달용으로 사용되는 구멍이 조성되어 있다.</p> <p class="ql-block">마을 사람들은 출입이 자유로운데 외부인은 현지인의 안내가 없이 마을에 진입했다가는 미궁같은 마을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인 점도 강족마을의 일대 명물이다.</p> <p class="ql-block">꼬불꼬불하게 펼쳐진 신비로운 도로망과 미궁같은 지하의 물길, 높고 낮은 건물의 불규칙적인 옥상이 지상과 지하, 공중 세 공간으로 조성된 입체 도로망과 방어시스템을 형성한 것이다.</p> <p class="ql-block">망루 또한 "조루"라고도 부르며, 전체 강족구역 에서 오직 도평강채만이 거주물과 조루가 하나로 되어 이곳의 거주민들은 이를 장방이라고도 부른다, 2000여 년전의 "후한서"에 이미 기재되어 있다, 망루의 높이는 일반적으로 20~30미터이고, 가장 낮은것도 10m이상이다, 강족에 대하어 말한다면 망루가 없이는 마을이 이루어질수 없다고 한다, 역사상에서 도평가채에는 6개의 조루가 있고,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은 오직 3채뿐이며 모두 9층이며, 높이는30미터로 되어 있다</p> <p class="ql-block">돌과 흙으로 쌓은 이런 건물들은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지진에도 끄떡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건물과 건물사이에는 좁고 아늑한 골목이 조성되어 있는데 골목위에도 가끔 건물을 지어 그 속에 들어서면 미궁에 들어선듯 쉽게 길을 잃는다.</p> <p class="ql-block">도평강채는 동서남북 네 방향에 네 개의 문을 두던 전통적인 도시의 건축양식을 타파하고 마을 중심의 가장 높은 망루를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8개의 출구를 설치했으며 이 8개의 출구는 또 13갈래의 골목과 함께 편리한 도로망을 형성한다.</p> <p class="ql-block">강족의 강한 생명력은 아마도 네가지 정도의 원인이 있는 것같다.</p> <p class="ql-block">첫째, 강족은 종족이 아주 많고, 분포가 광범위하다.</p> <p class="ql-block">둘째, 강족은 풍속이 특이하고, 종족번성이 창성했다(그들의 습속은....부친이 없어지면 계모를 처로 삼는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받아들였다)</p> <p class="ql-block">셋째, 강족의 무리는 아주 넒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고, 분산해서 거주했다. </p> <p class="ql-block">넷째, 강족은 춥고 힘든 곳에 살아서 상대적으로 폐쇄적이었다.</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18px;">아마 동탁도 이들과의 친분으로 출사를 하였었고 한동안 권력을 유지할수 있었던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span>강족(羌族)은 2000년이란 긴세월 속에서도 강족마을의 전통을 이어오며 오늘날까지도 유구한 풍속을 지켜온 민족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중국 역사속으로 다녀오는 시간이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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