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끝자락에 서있는 또 다른 바람

꽃향기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수필]</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b style="font-size:22px;">바람의 끝자락에 서있는 또 다른 바람</b></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글/ 전 영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어머니는 또 병원 신세를 지게 되였다. 한번 입원하면 열흘넘기는 일은 늘 있는 일이다. 일년새에 벌써 여섯번째의 입원이다. 그러다보니 병원출입이 마치 내집 나들듯 익숙하고 편해졌다. 병원에 대한 익숙함이 좋은 일일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할수도 없다. 병원이 아니였으면 어머니는 벌써 황천길 속으로 몸을 숨긴지도 오랬을 것이니깐.</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어느덧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두고 형제들은 서로 자기집에 모셔간다고 각론을 벌렸다. 어머니는 둘째 딸인 나와 함께 살고싶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이미 마음을 굳힌지 오래된 듯 싶었다.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심 기뻤다. 다른 자식들을 모두 젖혀놓고 나를 선택했다는 것은 나를 신뢰하는 동시에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한것 같아서 무등 기뻤다. 이미 남편이 저세상으로 떠나가시고 혼자일 때라 어머니와 같이 있게된 것을 나는 일종의 위안으로 삼았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그러나 그 선택이 얼마나 막중하고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래 고혈압과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께서 업친데 덮친다고 중풍까지 오면서 몸져 눕게 되였다. 운신이 어렵다보니 대소변을 받아내고 머리를 감기고 모욕을 하고 지어 물 한모금 마셔도 나의 도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되였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나의 삶은 완벽하게 어머니가 지배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리에 누울때까지 자다가도 부르면 일어나야 한다. 나의 삶, 나를 위한 삶은 사라진지 오래된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존재하는것 같았다. 어머니는 &lt;내가 너를 낳지 않았더라면 어쩔번 했니?&gt; 하는 말을 마치 오래된 대중가요의 노래말처럼 외우군하셨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하여 태여난것인지도 모른다. 눈을 뜨면 어머니를 씻기고, 하루세끼 미음을 쓰고 과일 주슈를 만들고 약을 대접하고 그리고 대소변을 받아내고…그래도 끝이 나지 않는다. 발바닥이 가렵다, 잔등을 긁어라,물을 달라, 잠이 안 온다, 불켜라, 티비 보자…끝없는 잔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병원으로 그냥 기계처럼 움직인다. 그런 바쁜 시간속에 나의 시간이 있을수 없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부속품일 뿐이다. 딸은 어머니의 내장이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그저 어머니를 숨쉬게 하는 허파인지도 모른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어머니의 몸은 똑 같은것 같았지만 사실 하루하루 나빠만 갔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여주던 것이 요즘은 아예 코에 관즈를 꼽고 주사기로 미음을 주입한다. 가끔씩 관즈에 주사기로 미음을 주입하다가 코안의 실핏줄을 건드려 피가 흐르기도 하는데 그럴때면 어머니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처절하게 고통을 호소한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애처로워 참아 눈뜨고 볼수 없다. 이렇게 사는게 과연 사는것일가? 나는 어머니만큼이나 처절하게 하루에도 수십번을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살아있지만 죽은 목숨이나 같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차라리 돌아가시는 것이 나을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을 자책하면서 미안해서 눈물을 흘린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누워만 계시다보니 욕창이 생길가봐 하루에도 수십번씩 돌려눕히고 자주 씻겨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루 삼시를 믹스기를 돌려 미음을 써 병원으로 나른다. 요즘은 간병인의 밥까지 나른다. 숨이 턱밑까지 치달아 올라 헐떡일때면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lt;헌독이 새독을 친다&gt;는 옛말을 부지중 떠올린다. 물론 나도 륙십을 넘었으니 헌독이지 새독은 아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우리는 헌독끼리 누가 먼저 죽는가 줄다리기를 하는것 같기도 하고 누가 더 오래 사는지 내기를 하는것 같아 씁쓸하다. 어머니가 뜽금없이 하염없는 눈빛으로 나를 똟어지게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럴때면 가슴 한구석이 덜컹 내려앉는다. 행여 나의 마음이 들키지나 않았나 싶어서였다.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에게 너무 큰바람이였을 것이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오랜 침묵을 깨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lt;영실아! 난 좀 더 살고 싶다.&gt;</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90의 어머니께서는 산것 같지 않다며 더 살고 싶어하셨다. 아프지만 않는다면, 스스로 식사만이라도 할수 있다면 백세를 더 살아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 식사하며 겨우 겨우 연명하는 이 고통스러운 삶도 삶이라고 어머니는 죽기를 거부했다. 나를 간절하게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그 눈빛이 당신때문에 지치고 피페해가는 딸을 안타까워서가 아닌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당신의 욕망을 딸이 알아채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였음을 나는 알게되였다. 어머니의 눈빛속의 뜻을 리해하게 되면서 그럴때면 나는 .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절실이 감지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어머니는 이삼일간씩 물도 넘기지 못하고 가끔씩 호흡곤난을 겪기도 하였다. 순간순간이 마지막일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나는 떨었다. 하지만 거의 운명직전까지 갔다가도 산소호흡기를 달고 며칠 닝게르 주사를 맞으면 어머니는 기적적으로 다시 소생했다. 그런 일이 일상이 되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제일 먼저 어머니가 숨을 쉬나 코밑에 손을 대보는 버릇이 생겼다. 숨을 쉬고 있으면 다음 순으로 요자리밑에 손을 넣어본다. 어머니께서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기때문이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그날 아침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어보고 나서 이불밑에 손을 넣었다. 축축하고 냄새가 났다. 엄마가 큰일을 하셨네, 하면서 내가 바지를 벗기려하자 어머니께서 두손으로 바지춤을 꽉 거머쥐고 나를 노려보았다. 매번 일을 저지른 뒤 나타나는 엄마의 반사적인 행동이다. 바지를 벗기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도저히 어머니의 손을 떼여낼수 없다. 코로 겨우 미음을 주입받는 신세에 어디서 그런 우악스러운 힘이 나오는지 종잡을수 없다. 지어 바지를 벗기려는 나의 손을 꼬집기도 한다. 나는 어머니의 이런 행동을 리해할수 없다. 왜 뒤를 보고도 숨기려고 하는지, 그런 어머니가 한심스럽고 화가 치밀어 강박적으로 바지를 벗기려는 가격한 행동을 하군 한다.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내 손을 죽어라고 마구 쳐낸다. 결사적으로 벗기려는자와 벗지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버티는 자의 신경전은 살벌하여 짜장 전쟁이나 다름없다. 그럴때 보면 우리는 모녀가 아니라 원쑤지간처럼 한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한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밤에 자지 않고 간호하다가 보면 때론낮에 졸음이 쏟아진다. 어머니가 점적주사를 꼽은지 반시간도 채 안되여 나는 . 잠결에 몸위에 뭔가 날아오는 듯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어머니께서 담요를 나에게 던져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던져준 담요를 덮고 오랜만에 달게 잠을 잤다. 그리고 깨여나 보니 엄마는 자고 있는 나한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물론 부채를 부치기는 하지만 바람이 전혀 전달되지 못했다. 기운이 없어 그냥 부채질을 하는 흉내만 내고 있었을 뿐이다. 기억도, 언어도, 기력도 모두 잃어가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갑골문처럼 껍질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모양이다. 아기처럼 삶의 모든것을 나에게 의지해 연명하면서도 어머니는 나에게 어머니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한 문학 선배가 나에게 &lt;남편 백혈병 때문에 몇년을 고생하더니 엄마 병시발을 드느라 고생하고 있으니 너무 안타깝다&gt;며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드리고 자기 삶을 살라며 남자를 소개해주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그것이 나의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남자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어떤 형식으로든 이런 힘든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 인생이 이제 얼마나 남았을가 계산 해본다. 때로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면 어떨가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어도 &lt;양로원은 철창없는 감옥이라며 죽어도 가고 싶지 않다&gt;는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고 과연 내가 행복할수 있을가, 자신이 없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남들은 나를 “효녀요, 21세기 심청이요”하면서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지만 나는 효녀도 21세기 심청도 아니다. 그저 나를 있게 해준 나의 어머니여서 내가 끝까지 책임지고자 할 뿐이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어머니는 나만 없으면 사달이 생긴다. 입원한지 일주일만에 겨우 틈을 타서 샤와를 하려고 집에 막 들어서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때는 바로 0시 45분 분명 엄마가 깊이 잠든 것들 보고 잠간 왔다가 가려한 것인데 호사가 급하게 호출하는 바람에 나는 벗으려던 신을 허둥지둥 다시 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호흡마저 미약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이틀만에야 겨우 눈을 떴다. 그리고 철없는 아이처럼 끊임없이 “영실아. 영실아” 부르면서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엄마는 왜 나만 없으면 사달이 생겨?”</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나의 말에 어머니는 대뜸 그러셨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너도 어릴적에 그랬어. 나만 없으면 아팠지.”</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인생은 참 공짜가 없는 모양이다. 어릴적에 어머니가 없으면 내가 살수 없었듯이 지금 어머니는 내가 없으면 살수 없다. 서로 역활이 바뀌였을 뿐이고 나는 어머니가 나에게 베풀었던 사랑을 돌려드리고 있을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하면 거리가 멀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아홉살적에 나는 골질괴사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어쩌다 바깥구경을 하려해도 엄마 등에 업혀야 만 가능했다. 다른 애들이 학교에 갈 때면 혼자서 멍하니 집에 있어야 했던 나는 바깥 세상이 얼마나 그리웠는 지 모른다. 나의 세상은 작은 공간의 집안이 전부였다. 그렇게 4년을 누워 앓았다. 그 세월 어머니는 한순간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픈 자식을 등에 없고 유명하다는 의사들을 찾아다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5년만에 나는 지팽이를 짚고 일어설 수 있게 되였고 차츰 홀로 걸을 수 있게 되였고 꿈에도 그리던 학교에도 가게 되였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 죽음과 삶을 향한 바람의 끝에서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상호간의 파괴는 낯설고 애매하고 황당하기도 하지만 한편 인간 내면의 영원한 평화를 다시 찾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터득해가고 있다.</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요즘은 어머니때문에 내가 산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나는 좀더 일찍 깨여나고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에 더 열심히 움직이고 부지런히 산다. 어머니때문에 매일 눈을 뜨고 어머니때문에 게으름을 피우지 못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계셔서 나는 아직도 어린 자식이다. 매일매일 어머니를 곁에 두고 어머니라 부를수 있어서 나는 행복한 자식이다. 오늘도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리유를 찾아간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이제,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것이다. 바람이 조용히 멎을때까지 그 끝에서 또 다른 바람으로 어머니를 편안하게 보내드릴 것이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22px;">2019. 6월 도라지 총 237</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