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장편소설 (连载1)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현대의 영웅</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미하일 레르몬또브[로씨야]</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또브(Mikhail Yur'evich Lermontov) 로씨야 시인, 소설가/출생 -사망; (1814.10.15 , 모스크바~ 1841.7.27)/ 주요저서 《도망자》(1838), 뽀에마《믜쯔리》(1839) , 뽀에마《악마》, 장편소설《현대의 영웅》(1839~1840) 등이 있다./〈시인의 죽음〉이 화가 되어 깝까즈로 추방당한 뒤, 황족에 대한 불경 등으로 궁정에서 꾸민 결투로 죽었다.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차 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자의 서문.................................1</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제1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벨라 ..............................................2</p><p class="ql-block">막심 막씨믜치...............................69</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제2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뻬쵸린의 수기................................86</p><p class="ql-block">서문................................................86</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따마니.............................................89</p><p class="ql-block">공작아가씨 메리..........................111</p><p class="ql-block">운명론자......................................248</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176, 79, 187);"> </span></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자의 서문</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모든 서적에 있어서 서문은 최초의 것인 동시에 최후의 것이다. 그 서문은 때로는 작품의 목적의 설명으로 되며 때로는 비평에 대한 변명으로 되며 답변으로도 된다. 그러나 대개 독자들에게는 도의적인 목적과 지상에 대한 비난에 대하여서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문을 읽지 않는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특히 우리 독서계에 있어서 그러하니 유감천만이다. 우리 대중이 우화의 결말에서 교훈의 말을 보지 못한다면 그 우화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만치 그는 유치하며 단순하다 할 것이다. 그들은 해학의 뜻을 알아맞히지 못하며 아이로니를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교양이 부족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들 대중은 점잖은 사회와 품격이 높은 서적가운데에서는 노골적인 욕설이 차지할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며 또한 그렇기때문에 현대의 교양은 훨씬 예리하면서도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못지 않게 치명적인 무기 즉 야유의 의복을 입혀가지고서 피할길 없는 확실한 타격을 가할수 있는 무기를 발명하였다는것을 알지 못한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 대중은 마치 호상 적의를 품은 두 나라의 궁정에 속하는 두사람의 외교관의 대화를 엿듣고나서 그들이 제각기 호상간의 우의를 위해 자기의 정부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시골뜨기와도 흡사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 책은 극히 최근에 몇몇 독자들과 지어는 잡지들로부터도 문자 그대로 혹평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의 영웅》과 같은 비도덕적인 인간을 그들의 모범으로 내세웠다 하여 아주 진정으로 분개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작자가 자기의 초상화와 또 자기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린것이라고 매우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진부하고 가엾은 농담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로씨야에서는 필시 이와 같은 무지몽매만은 제껴놓고 기타의 모든 것만이 갱신되도록 만들어진 모양이다. 매혹적인 이야기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것까지도 우리 나라에서는 어느 한 개인을 모욕하려고 시도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친애하는 나의 독자들이여! 《현대의 영웅》이 초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어느 한 사람의 초상화인 것이 아니라 우리 전체 세대의 결함이 그 최고도로 발전된 형태에서 그려진 초상화인 것이다. 당신들은 나에게 향하여 인간이란 그렇게까지 추악해질수는 없다고 다시금 말할 것이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말하노니 ㅡ 만약 당신들이 모든 비극적, 낭만적인 악한들의 존재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무슨 까닭에 당신들은 뻬쵸린의 현실성을 의심하는가? 만일 당신들이 훨씬 더 무섭고 추악한 허구를 사랑해본 일이 있다면 무슨 까닭에 이 성격이 허구라 할지라도 당신들의 동정을 자아내지 못할 리유가 있겠는가? 결국 당신들이 바라는 이상으로 보다 큰 진실이 그속에 담겨져있기때문이 아닐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당신들은 도덕이란것이 그것때문에 훼손된다고 말하려는가? 용서하시라, 인간은 벌써 상당히 달콤한 것을 먹어왔다. 그들은 그것때문에 위장이 상할 지경으로 되었다. 그렇기때문에 인제 그들에게는 신랄한 진실인 쓰디쓴 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당신들은 이 책의 저자가 인간의 결함을 시정하는 사람으로 되고저 하는 그런 거만한 공상을 일시적으로 가지고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신이여, 부디 그러한 무지에서는 벗어나게 하여주옵소서! 다만 나로서는 내가 이해하는 한도에서 또 내가 당신들이 불행하게도 자주 보게 되는 그러한 현대인을 묘사하는것이 무조건 유쾌하였기 때문이다. 질병이 지적된것만 해도 충분하지 않는가? 그것을 여하히 치료할것인가는 귀신이 아닌 내가 어찌 알수 있단 말인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제 1 부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벨 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역마차를 타고 찌플리쓰에서 떠났다. 나의 마차에 실은 짐이라면 그리 크지 않은 여행용 트렁크 하나 뿐이었는데 그 속에는 그루지야 여행기가 반나마 들어 있었다. 당신들을 위하여서는 그 여행기의 대부분이 잃어진 것이 다행한 일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 트렁크나마 나머지 물건들과 함께 온전한 채로 수중에 있다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내가 꼬이샤우르 계곡에 들어서자 태양은 벌써 눈 덮인 산맥 저편에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오쎄트 사람인 마부는 어두워지기 전에 꼬이샤우르 산봉우리까지 올라가려고 연송 말을 때려 몰았고 목청을 돋구어 노래를 불렀다. 이 계곡은 참으로 훌륭한 곳이다! 산악의 어디를 보든지 발 붙일 수 없이 험악하고 파릇파릇한 댕댕이 덩굴이 엉키고 방울버들이 덩이덩이 덮인 불그스레한 바위들, 사태에 씻기고 씻긴 누런 낭떠러지들 그리고 저편에는 높이높이 황금색 빛이 물든 눈더미들이 있고 밑으로는 안개 자욱한 컴컴한 골짜기로부터 요란하게 흘러내리는 벽계수와 합쳐진 아라그바 강물이 은실마냥 유유히 내뻗어 뱀의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꼬이샤우르 산밑에 다달으자 우리들은 주막집 곁에서 마차를 멈추었다. 여기에는 그루지야 사람과 산악민이 20 명 가량이나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근방에는 한 무리의 낙타상대들이 숙박하려고 머물러 있었다. 나는 나의 마차를 이 저주할 산정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몇 마리의 황소를 세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 하면 벌써 가을이여서 살얼음이 깔렸었고 또 거기다가 이 산길은 약 2 웨르쓰따나 되기 때문이었다. 하는수없이 나는 여섯 짝의 황소와 몇 명의 오쎄트 사람을 고용하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나의 트렁크를 걸머졌고 다른 사람들은 거의 꼭 같은 소리들 만을 지르면서 황소들을 떠밀어주기 시작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나의 마차 뒤로 네 짝의 황소가 또 다른 마차를 끌어오고 있었는데 그 마차에는 짐을 잔뜩 실었건만 마치 빈 마차를 끌 듯이 가볍게 끌고 왔다. 이와 같은 사태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 마차 주인은 마차 뒤에서 은으로 장식한 조그마한 까바르다 파이프를 뻑뻑 빨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 사나이는 견장 없는 장교복에 체르께쓰식 털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50 가량 되어보였다. 그의 거무스레한 얼굴빛은 그가 벌써 오래전부터 자깝까즈의 태양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말하여주고 있었으며 연령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희끗희끗한 수염이 그의 탐탁한 걸음걸이와 건장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수그려 인사했다. 그랬더니 그는 말없이 답례를 하고 담배연기를 한 덩어리 크게 내뿜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이 아마 동행이 된 것 같군요?”</p><p class="ql-block">그는 말없이 다시금 머리를 끄덕이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p><p class="ql-block">“쓰따르보뽈리로 가시지 않습니까?”</p><p class="ql-block">“바로 그렇습니다... 국가 물품을 가지고 갑니다.”</p><p class="ql-block">“공연히 묻는 것 같습니다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당신의 무거운 마차를 네 짝의 소가 수월히 끄는데 나의 텅 빈 마차를 여섯 짝의 황소가 오쎄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가까스로 끌고 있으니 말이요?”</p><p class="ql-block">그는 혼자 빙그레 웃고나서 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보매 당신은 깝까즈에 처음 오시는 모양이군요?”</p><p class="ql-block">“1 년 쯤 됩니다.”하고 나는 대답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랬더니 그는 재차 빙그레 웃었다.</p><p class="ql-block">“그래 대체 무슨 영문입니까?”</p><p class="ql-block">“아니지요. 그야 당연하지요. 이 아시아인들은 무서운 악당들이니까요! 저놈들이 큰소리로 아우성치는 것을 당신은 소를 모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저놈들이 웨치는 소리야 뭣이 뭣인지 알 리가 없지만 그래도 소들 만은 바로 그것을 아니까요. 가령 당신이 스무 짝의 소를 메운다쳐도 저놈들이 저런 소리로 웨치는 한 절대로 소는 움직이지 않을 겝니다... 무서운 사기군들이요! 허나 어쩌는 수 없어요... 그놈들은 여행가들에게서 어떻하면 돈을 뜯어낼가 그것만 궁리하고 있으니까요... 모두 그 사기군들의 버릇을 들여놓았거든요! 글쎄 두고 보십시오. 놈들이 당신에게 또 술값까지 달랠터니. 나는 저런 놈들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나를 속이지야 못하지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럼 당신은 퍽 오래전부터 이 지방에서 근무하고 계십니까?”</p><p class="ql-block">“그렇지요. 나는 벌써 알렉쎄이 뻬뜨로위치의 시대부터 근무하고 있습니다."</p><p class="ql-block">하고 그는 의기양양해서 대답하였다. “그분이 국경 수비대에서 오셨을 때 나는 육군 소위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휘하에서 일할 때에 산악민 토벌의 공적으로 두 차례나 승급했지요.”하고 그는 부언하였다.“그런데 지금은? ...”</p><p class="ql-block">“현재는 제3 상비대대에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례이지만 당신은? ...”</p><p class="ql-block">나는 그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우리들은 나란히 서서 묵묵히 걸었다. 산정에서 우리들은 눈을 발견하였다. 태양이 기울어지자 곧 밤은 대개 남쪽에서 흔히 보지만 사이를 두지 않고 낮의 뒤를 연이었다. 그러나 길은 백설의 반사로 하여 분간할 수 있었다. 길이 인제는 그리 험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올리막이었다. 나는 트렁크를 마차에 올려놓도록 분부하고 소를 말과 바꾸어 메우게 하고나서 발 밑에 보이는 계곡에 마지막 일별을 던졌다. 그러나 파도처럼 골짜기로부터 떠오르는 짙은 안개가 계곡을 완전히 덮어버려 그 곳으로부터는 아무런 소리 하나 우리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오쎄트 사람들은 웅성대며 나를 둘러싸고 술값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2등 대위가 어찌나 무섭게 그들에게 고함을 질렀던지 그들은 삽시에 산산이 도망쳐버렸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참으로 고약한 놈들이지요!”하고 그는 말하였다. “로어로는 빵이란 말조차 못하면서도 ‘장교 나으리 술값을 좀!’이것 만은 외우고 있으니까요. 나는 따따르들이 그 놈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술군은 아니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역관까지는 아직 1 웨르쓰따나 남아 있었다. 사위는 모기의 앵앵대는 소리를 듣고 그 날아가는 방향을 알아낼 수 있으리 만큼 고요하였다. 왼쪽에는 깊은 골짜기가 가물거리고 그 건너편과 우리들 앞에는 층층이 쌓인 백설에 덮인 주름잡힌 듯한 검푸른 산정이 아직 일몰의 마지막 여광을 남기고 있는 희끔한 지평선 위에 뚜렷이 떠올라 있었다.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어쩐지 그 별들이 우리 나라의 북방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높이 보였다. 길 양쪽에는 거뭇거뭇한 발가숭이 암석들이 돌출해 있었고 여기저기 눈속으로부터는 숲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으나 말라버린 나무잎 하나 살랑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쥐 죽은 듯한 고요한 대자연 속에서 피로한 역마의 푸르럭거리는 코소리와 로씨아식 방울소리의 고르지 않은 음향을 듣는 것은 어쩐지 유쾌하였다.</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나는 말하였다. 2등 대위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우리들의 바로 맞은 편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을 손가락으로 나에게 가리켰다.</p><p class="ql-block">“그래 저게 어떻단 말씀입니까?”하고 나는 물었다.</p><p class="ql-block">“굳고라 산입니다.”</p><p class="ql-block">“그래 저것이 어때요?”</p><p class="ql-block">“보십시오. 어떻게 연기가 오르고 있는가 말입니다.”</p><p class="ql-block">사실 굳고라 산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굳고라의 허리에는 가볍게 유동하는 구름이 감돌고 있었고 절정에는 흑운이 걸려 있어 그것은 검은 하늘에 묻은 반점같이 보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벌써 우리들은 역관과 그 역관을 둘러싸고 있는 오막살이의 지붕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 앞에는 반가운 등불이 반짝였다. 그 때에 축축한 찬바람이 불어 골짜기는 수선거리기 시작하였고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내가 외투를 어깨에 걸치자마자 눈이 내렸다. 나는 경의를 표하면서 2등 대위를 바라보았다.</p><p class="ql-block">“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지 않으면 안되겠는걸.”하고 그는 서운한 듯이 말하였다. “눈보라가 이렇게 일어서는 도저히 산을 넘어갈 수 없겠지. 그래 여보게, 크레스또와야 산에 눈사태가 있었나?”하고 그는 마부에게 물었다.</p><p class="ql-block">“없었습죠, 나리님.”하고 오쎄트 사람인 마부는 대답하였다. “그러나 많이 올 것 같습니다요. 많이”</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역관에는 여객들을 위한 방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연기 서린 오막살이가 숙박소로 배정되었다. 나는 나의 길손에게 차를 한잔 같이 마시자고 권했다. 그것은 내가 주철로 만든 차 주전자를 가지고 있었을 뿐더러 또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까브까즈 여행에 있어 유일한 위안이였기 때문이다.</p><p class="ql-block">오막살이는 왼쪽이 바위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질벅질벅하고 미끄러운 삼단으로 된 층계가 그 문앞에 나 있었다. 나는 손으로 더듬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암소와 마주(이 지방 사람들의 외양간은 현관을 대신하고 있다.)쳤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쪽에서 양이 메험메험 울고 있는가 하면 저쪽에서 개가 으르렁대고 있어서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옳은 지 갈바를 몰랐다. 다행히도 옆에 희미한 불빛이 새여나와 문과 비슷한 다른 짬 사이를 찾는데 나는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 곳에서는 매우 흥미있는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지붕이 두 개의 그슬린 기둥에 의하여 지탱되어 있는 넓은 오막살이는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방의 한 가운데에서는 땅바닥에 피운 화토불이 연송 우지적거리고 있었고 그 연기는 지붕에 있는 틈 사이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에 짓눌려 짙은 연막을 삥 둘러쳤기 때문에 얼마동안 나는 무엇 하나 분간하지 못하였다. 화토불 곁에는 두 노파와 많은 어린애들과 빼빼 마른 그루지야 사람 하나가 앉아 있었는데 모두 람루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하는수없이 우리들도 화토불 앞에 자리를 잡고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자 곧 차주전자가 기분좋게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였다.</p><p class="ql-block">“가엾은 사람들입니다!”하고 나는 멍청한 낯으로 묵묵히 우리들을 뚫어지도록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더러운 주인들을 가리키면서 2등 대위에게 말했다.</p><p class="ql-block">“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지요!”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내 말을 믿으시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또 교육도 줄래야 줄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래도 까바르다인들과 체첸인들은 비록 도적놈들이고 거지들이지만 그 대신 대단한 놈들입니다. 그러나 이곳 놈들은 무기에 대한 호기심조차 없습니다. 쓸모있는 단검을 찬 놈 하나도 찾아볼 수 없거든요. 참으로 오쎄트놈들이죠!”</p><p class="ql-block">“그래 체치냐에서 오래 계셨습니까?...”</p><p class="ql-block">“그렇지요. 약 10 년 동안 내가 중대를 인솔하고 그 지방의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으니까요. 까멘늬브로드 근방에서 말입니다. 알고 계시겠지요?”</p><p class="ql-block">“듣기는 했습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사실 우리들은 그 악당들에게 싫증이 났어요. 지금은 고맙게도 어느 정도 온순해졌지만 이전에는 보루에서 백 발자욱 떨어지기가 무섭게 털보인 악귀들이 숨어서 기회를 노리군 했지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멍하니 있기만 하면 금시 포승줄이 목에 날아들어오든가, 탄알이 뒤통수에 날아들군 했답니다. 상당히 담이 큰 놈들이였지요...”</p><p class="ql-block">“그럼 당신도 퍽 기이한 사건들에 부딪쳤겠군요?”하고 나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물었다.“왜 겪지 않았겠습니까! 겪었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하여 그는 왼편 코수염을 잡아당기며 머리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 사나이에게서 그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은 욕망--- 모든 여행가들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욕망이 강하게 북받쳐올랐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는 동안에 차가 끓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여행용 컵을 두 개 꺼내여 차를 부어 그 중 한잔을 그의 앞에 놓았다. 그는 차를 한모금 마시더니 “그렇지요, 겪었지요!”하고 혼자말을 하듯이 말했다. 이 감탄의 부르짖음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나는 늙은 깝까즈 사람들이 씩둑씩둑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매우 드문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것은 그들 중에는 약 5 년 간이나 중대와 함께 어떤 궁벽한 곳에 주둔하여 있기 때문에 그 5 년 간을 누구에게서도 “안녕하십니까”하는 인사 한마디 받아보지 못하고 지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하사관들은 “건강을 축하함”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런데 한편 하고싶은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어쩄든 주위에는 호기심을 끄는 야만인들이 있어서 매일처럼 위험한 일이 발생되고 기괴한 사건들이 벌어지기 떄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어쩐지 나는 이 지방의 사정에 대하여 쓴 책이 적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라무술을 좀 하지 않으시렵니까?”하고 나는 상대방에게 말했다. “저에게 찌플리쓰에서 가져온 흰술이 한병 있는데 하여튼 요즘은 추운 때니까요.”</p><p class="ql-block">“아니올시다. 감사합니다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p><p class="ql-block">“왜 또 그러십니까?”</p><p class="ql-block">“사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스스로 맹세를 했습니다. 내가 아직 육군 소위였을 때 일인데 한번은 우리들이 영 술에 곤드라진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비상소집이 있었습니다. 그래 우리들은 흥겹게 비칠대며 대열 앞에 나갔지요. 그랬더니 경을 칠 때인지라 알렉쎄이 뻬뜨로위치가 그걸 알아차리였으니 어찌겠소. 그가 어떻게나 골을 냈던지! 하마트면 군사 재판에 넘어갈 번했지요. 아, 참말---게다가 1 년 내내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지내지 않으면 안되는 곳에서 지내는 데다가 술까지 마시고 보면 아주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이 되고마니까요!”</p><p class="ql-block">이런 이야기를 듣자 나는 거의나 희망을 잃고 말았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선 체르께쓰 사람이고 보면”하고 그는 계속하였다. “혼례식에서나 장례식 석상에서 부자술(술의 일종)을 마시기만 하면 다짜고짜로 칼부림이 벌어진답니다. 한번은 나도 겨우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귀순한 토호의 집에 손님으로 초청을 받고 갔을 때 생긴 일입니다.”</p><p class="ql-block"> “어쨰서 그런 일이 생겼어요?”</p><p class="ql-block">“일은 이렇게 됐지요...”그는 파이프에 담배를 가득 담아 한모금 빨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럼 들어보십시오. 그때 나는 쪠레끄 강 건너편 요새에서 중대와 함께 주둔하고 있었지요. 이것은 벌써 5 년 전에 있은 일입니다.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한번은 양식 수송대가 도착하였는데 그 수송대에 나이 한 스물댓 쯤 되어보이는 청년 장교가 있었어요. 그는 정복을 차려입고 내 앞에 출두하여 나의 요새에서 복무할 명령을 받고 왔다는 것을 말하더군요. 그는 매우 몸맵시가 나고 얼굴이 흰 청년이였는데 그 젊은이가 깝까즈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짐작할 수 있으리만큼 새로운 군복을 입고 있었어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마 당신은 틀림없이’하고 내가 그에게 물었지요. ‘로씨아로부터 이곳으로 이동되었겠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2등 대위님’하고 그가 대답하더군요. 그래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지요. ‘매우 반갑습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당신에게는 좀 적적할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우리들은 친구로 지냅시다. 그리고 제발 나를 간단히 막씸 막씨믜치로 불러주시오. 그리고 제발 대체 이 복장은 무엇때문입니까? 내게는 아무때나 보통 입는 의복을 입고 오시오’ 이리하여 그에게는 주택이 배당되어 요새에서 생활하게 되었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래 그의 성함이 무엇인가요?”하고 나는 막씸 막씨믜치에게 물었다.</p><p class="ql-block">“그를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 뻬쵸린이라고 불렀어요. 매우 훌륭한 사나이였었지요.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다만 좀 변태이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비가 오거나 춥거나 간에 온종일 사냥만 하고 다녔으니까 말이지요. 모두들 꽁꽁 얼고 피곤해 해도 그 사나이 만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거든요. 그러는가 하면 그 이튿날에는 자기 방에 들어앉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감기에 걸렸노라고 엄살을 쓰고 창문이 덜컹거리기만 해도 놀라 창백해지군 했지요. 그러나 한번은 내 눈앞에서 빈 주먹으로 멧돼지에게 덤벼든 때가 있었답니다. 몇 시간을 두고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도 어찌하여 말문이 열리면 창자가 끊어지리 만큼 웃기는 때도 있었구요. 그렇지요. 참으로 기묘한 사나이였지요. 게다가 상당한 재산을 가진 사람같이 생각되더군요-- 그 사나이는 여러 가지 값진 물건들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래 그 사나이와 오래동안 같이 지냈습니까?”하고 나는 재차 물었다.</p><p class="ql-block">“그렇지요. 약 1 년 가량 되지요. 그러나 그해는 내게는 도무지 잊어지지 않었습니다. 그 사나이는 참으로 많은 걱정을 내게다 끼쳤거든요. 허나 그것 때문에 나무리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세상에는 태여날 때부터 각양의 이상한 사건들과 부딪칠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든요!”</p><p class="ql-block">“이상한 사건들이라구요?”하고 나는 그의 컵에다 차를 부으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웨쳤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로 그것을 이제부터 이야기해 봅시다. 요새로부터 약 6 웨르쓰따 가량 떨어진 곳에 귀순한 어떤 토호가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인 15 세 가량 되는 소년이 자주 우리를 찾아오군 했답니다. 하여튼 이러저러한 구실을 붙여가지고 매일처럼 찾아왔거든요. 그래 우리들도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와 함께 그 소년의 응석을 받아주군 했답니다. 무섭게 대담한 놈이여서 말을 타고 내달리면서 모자를 집어올리는 것이라든가 소총으로 사격을 하는 것이라든가 하여간 무엇을 시켜도 민첩하게 해내군 했어요. 그런데 그에게 꼭 한가지 좋지 않은 점이 있었는데 금전에 대해서 무서운 욕심쟁이였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농담으로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가 만약에 아버지의 가축 중에서 가장 좋은 염소를 훔쳐오면 체르보넷쯔(3 루불리 금화)를 주겠노라고 약속하였더랍니다. 그러나 어찌되였겠소? 바로 그 다음날 밤 염소의 뿔을 쥐고 한마리 끌어오지 않았겠소. 어떻게 되어 우리들이 그를 놀려주면 그의 눈은 무섭게도 충혈되어 다짜고짜 칼에 손을 대군 했답니다. ‘얘! 아자마트 주의하지 않으면 네 모가지가 날아나겠다.’하고 내가 그에게 말했지요. ‘네 대가리가 없어지고 말테니!’</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어느 날 늙은 토호 자신이 우리들을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해 찾아왔더군요. 그의 맏딸을 출가시킨다는 것이였답니다. 우리들이 그와 친한 사이가 되고보니 비록 그가 따따르 사람이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 우리들은 떠나갔지요. 촌락에 들어서자 우리들은 높은 소리로 짖어대는 개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여성들은 우리를 보자 모두 숨어버려서 우리들이 겨우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몇몇의 여성들은 고운 편이 아니였어요. ‘나는 체르께스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보다 좋은 상상을 했었는데’하고 그리고리 알렉싼드르우치가 내게 말하더군요. ‘잠간만 참게’하고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지요. 내게는 나로의 생각이 있었으니깐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토호의 집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답니다. 아시겠지만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혼례식에 누구나 할 것없이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는 습관이 있답니다. 우리들은 매우 좋은 접대를 받으며 객실에 안내되었지요. 그러나 나는 만일의 경우를 염려하여 우리들의 말을 매여두는 곳을 잊지 않고 알아두었습니다.”</p><p class="ql-block">“그들의 혼인잔치는 어떻게 합니까?”하고 나는 2등 대위에게 물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뭐 별다른 것이야 없지요. 처음에 먼저 승려가 코란경 중에서 무엇인가를 신랑, 신부에게 읽어줍니다. 그리고 젊은 부부를 비롯하여 그의 일가친척들에게 선물 증정이 끝나면 이번에는 먹고 부자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말타기가 시작되고 그리고 항상 기름투성이가 된 람루한 누더기를 입은 어떤 사내 하나가 비루 먹은 절름발이 말을 타고 뽐을 내며 수선을 떨면서 엄숙한 좌석을 웃기지요. 그리고 밤이 되면 객실에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무도회가 시작됩니다. 가엾은 늙은이는 무어라고 불렀는 지는 잊어버렸지만 우리의 발라라이까와 비슷한 일종의 3 현악기를 튕기고 처녀들과 젊은이들은 서로 마주 향해 두 줄을 짓고 손벽을 치며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자 한 처녀와 한 사내가 가운데로 나와서 서로 생각나는 대로 시구를 길게 빼 읊으면 모두 목소리를 합하여 따라 부르지요. 나는 뻬쵸린과 함께 귀빈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열여섯 살 쯤 되어보이는 주인의 막내딸이 그에게 달려와서 노래를 부르지 않겠어요. 어떻게 말했으면 좋을는지? 말하자면 인사라할지...”</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까?”</p><p class="ql-block">“그렇죠. 확실히 이런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우리의 젊은 기사들은 아름답고 그들의 외투엔 은장식을 하였건만 젊은 로씨아의 장교는 그들보다 아름답고 그의 전포는 황금의 통줄, 그는 그들 가운데에서는 백양나무 같으나 우리들의 정원에서는 자랄 수도 없거니와 꽃 필 수도 없어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뻬쵸린이 일어나 그 여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손을 이마와 가슴에 대고 그 여자에게 답변을 해달라고 내게 부탁하더군요. 그래 나는 그들의 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대답을 통역해주었지요.그 여자가 우리들로부터 물러서자 나는 그리고리 알렉싼드르로위치에게 속삭였지요--- ‘그래, 어떻소, 저 여자는?’‘대단한 미인인걸요---’하고 그가 대답하더군요--- ‘이름을 무어라고 불러요?’--- ‘벨라라고 부르지요’하고 내가 대답했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사실 그 여자는 미인이었습니다.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키에 사슴의 눈과 같이 새까만 눈동자는 사람의 심정을 울리는 듯 했거든요. 뻬쵸린은 사색에 잠기어 그 여자로부터 눈초리를 떼지 않았는데 그 여자도 역시 그에게 자주 곁눈질을 하더군요. 그러나 아름다운 토호의 딸에게 황홀해진 자는 다만 뻬쵸린만이 아니였어요--- 방 한구석으로부터 까딱도 않는 불덩이 같은 두 눈이 그 여자를 지키고 있었답니다. 나는 그 쪽에 주의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게 벌써 전부터 안면이 있는 까즈비치였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는 귀순했다고도 말할 수 없고 귀순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사나이였지요. 비록 못된 짓을 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일은 한번도 없지만 그에게는 어쨌든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는 종종 우리들의 요새에 양을 끌고 와서 눅게 팔고 가군 했는데 절대로 값을 깎지는 못하게 굴었답니다--- 일단 말을 꺼낸 이상 어떻게 해서든지 받아내고야마는 성미여서 죽는 한이 있어도 양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놈으로 말하면 아브레끄 사람과 함께 꾸바니를 넘나들기를 좋아한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었는데 사실 그의 외모로 보면 도적놈과 별 다른게 없었거든요. 작달막한 키에 여위고 어깨가 쩍 벌어진게...그리고 참 어떻게도 민첩한지 악마같았지요. 반외투는 언제나 찢어가지고 더덕더덕 기운 것을 입고 다니면서도 무기는 죄다 은장식을 하였거든요. 그 위에 그의 말은 전 까바르다에 소문난 것으로서 사실 그 이상의 말을 찾는다는 것은 좀 생각하기 힘든 정도였어요. 말이나 탈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것없이 모두 그 말을 부러워했다는 사실이 까닭없는 것이 아닙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모두 그 말을 훔쳐내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성공들은 못했지요. 지금도 그 말을 보는 것 같습니다---송진처럼 반질반질한 검정말이었는데 다리는 현악기의 줄처럼 늘씬하고 눈은 벨라의 눈보다도 못하지 않게 아름다울 정도였지요. 참 어떻게도 세찼던지! 50 웨르쓰따 쯤은 단숨에 달리는데다 참 길을 어떻게나 잘 들였던지 개처럼 주인 뒤를 따라다녔거든요. 게다가 주인의 목소리까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그는 언제나 말을 잡아매지 않군 했답니다. 사실 도적질엔 이상적인 말이었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루 그날 밤 까즈비치의 얼굴에는 여느 때보다 더 침울한 빛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반외투 밑에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지요--- ‘저 갑옷은 심상치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놈이 틀림없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군.’</p><p class="ql-block">“방안에 앉아 있기가 답답하였기 때문에 나는 소풍할셈으로 밖으로 나갔지요. 밤기운이 온 산을 덮고 안개가 골짜기에 떠돌기 시작하더군요.“이때 어쩐지 내게는 우리 말이 매여있는 처마밑으로 가서 사료가 있는가 없는가 보고싶은 생각이 떠오르겠지요. 매사에 주의하는 것이 상책이야 하는 생각이 든데다가 나 역시 좋은 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벌써 몇몇 까바르다 사람들이 제길할 그 놈의 말 좋기도 하군, 참 좋은데 하면서 부러운 듯이 바라다본 때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노라니 문득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겠지요. 목소리 하나는 곧 알 수 있었어요---바로 그 집주인의 아들인 장난꾸러기 아자마트였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은 간혹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거든요. ‘저런 곳에서 대체 무슨 공론들을 하고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담을 의지하고 쭈그리고 앉아서 한마디의 말도 놓칠세라 귀를 솔깃하게 기울였답니다. 그런데 때때로 방안으로부터 여러 사람들의 노래소리와 말소리의 뒤숭숭한 소음이 울려나와 내게 아주 흥미있는 회화를 삼켜버리군 하더군요.“‘자네 말은 참 좋아!’하고 아자마트가 말하겠지요. ‘만약 내가 이집 주인이 되고 3백 필의 말무리를 가지고 있다면 자네 준마를 위해서는 절반을 내줘도 좋겠는데. 응, 까즈비치!’“‘아하! 까즈비치구나!’하고 나는 생각했지요. 그러자 갑옷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암! 그렇고말고’하고 까즈비치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말하겠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 ‘까바르다를 시시콜콜이 찾아봐야 이런 말은 없을 게다. 한번은 쪠레끄강 저쪽에서 아브레크 사람들과 함께 로씨아 사람들의 말무리를 훔치러 떠났던 일이 있었지. 그런데 우리들이 들켜서 제각기 사방으로 뺑소니를 치는데 내 뒤를 네 놈의 까자크가 추격해 오지 않았겠나. 글쎄, 내 뒤에서는 이교도들의 아우성소리가 들려오지 앞에서는 깊은 수림이 있지. 나는 말안장 위에 납작 엎드려 내 운명을 아라--신에게 맡겼지.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채찍으로 그 말을 모욕했네. 그랬더니 말이 새처럼 나무가지 사이를 헤치고 날더군. 뾰죽뾰죽한 가시가 의복을 막 찢지 느릅나무 마른가지는 내 얼굴을 찰싹찰싹 후려갈기지 그래도 내 말은 나무그루터기를 뛰여넘고 가슴으로 숲을 헤쳐가거든. 차라리 수림 기슭에서 말을 버리고 걸어서 수림 속에 숨어버렸던 편이 나을는지 모르나 그놈과 떨어질 생각이 들지 않더군--허나 예언자는 나를 도와줬어. 몇 방의 총알이 내 머리 위를 윙윙 지나가더군. 그러자 벌써 말에서 내린 까자크들이 추격해오는 기미가 난단 말이지...</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갑자기 내 앞에는 깊은 골짜기가 나타났지. 내 말이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곧 넘어뛰거든. 건너쪽 기슭에서 그만 뒷발을 헛짚어 말은 앞발만 짚고 매달려 늘어졌지. 나는 말고삐를 집어던지고 골짜기로 몸을 던졌네. 이게 내 말을 살린 셈이야. 말은 껑충 뛰여올랐지. 까자크들은 이걸 모두 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날 찾아내려 오지는 않더군. 그놈들은 아마 틀림없이 내가 상처를 입고 죽은 줄로만 생각한 모양이야. 나는 놈들이 내 말을 붙잡아보겠다고 따라가는 말발굽소리를 들었네. 나의 마음은 여간만 괴롭지 않았네. 나는 계곡을 기여올라가 숲에서 엿보고 있지 않았겠나--- 수림은 그곳에서 끝났는데 몇 놈의 까자크들이 그곳으로부터 벌판으로 막 내달리고 있거든. 그런데 내 까라교즈(눈이 새까만 말)는 그놈들의 바로 앞으로 뛰여나갔다네. 한참이나 그놈들은 따라다니더니 그 중 한 놈은 두 번이나 말 목에 투승을 걸어채는 게야. 나는 몸을 떨면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지.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다 잠시후에 눈을 뜨고보니--- 어떻겠는가, 내 까라교즈는 꼬리를 휘저으며 바람처럼 자유롭게 날고있단 말이지. 그런데 이방 사람들은 멀리 뒤떨어져 기진맥진한 말을 타고 줄을 지어 광야를 내달리고 있거든. 나는 맹세해! 이건 사실이야, 참말이야! 그날 밤 나는 늦도록 그 계곡에 쭈크리고 앉아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말이지, 아자마트! 어떻게 생각해? 어둠 속에서 계곡의 변두리를 내달리는 말발굽소리가 들리지 않았겠나. 코김을 힝힝대며 울기도 하며 말발굽으로 땅을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단 말이야. 나는 곧 그것이 까라교즈의 소리임을 알았지. 그게 정말 까라교즈였어. 내 친구였어! ... 그때로부터 우리는 헤여진 적이라고는 없단 말일세.</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고는 그 말에 대고 갖은 친절한 말을 해가며 손으로 그 기름진 목덜미를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지요.</p><p class="ql-block">“ ‘만약 내게 말 천 마리만 있다면’하고 아자마트가 말하더군요. ‘자네의 그 까라교즈를 위해서라면 그것 다라도 주겠네.’</p><p class="ql-block">“ ‘그래도 난 싫다.’하고 까즈비치는 무뚝뚝하게 말하더군요.</p><p class="ql-block">“ ‘제발 좀 내 말을 들어주. 까즈비치!’하고 아자마트가 빌붙으며 말하겠지요.</p><p class="ql-block">‘자네는 참 좋은 사람이야. 용감한 기사고.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로씨아 사람을 무서워해서 날 산으로 보내지 않아. 내게 자네 말을 양도해줘. 그러면 자네 부탁을 죄다 들어줄테니. 자네를 위해서라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제일 좋은 총이건 군도이건 자네 소원대로 훔쳐다 주겠어--- 아버지의 군도는 보도이었기에 칼을 손에 대기만 해도 저절로 살 속으로 먹어들어가. 자네가 입고 있는 갑옷 쯤은 문제가 아니지.’“</p><p class="ql-block">까즈비치는 잠잠히 있더군요.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처음 자네 말을 본 때부터’하고 아자마트가 말을 계속하였지요. ‘저 말이 자네를 태우고 코구멍을 벌름거리며 빙빙 돌고 뛰고 말발굽에서 불꽃이 튀고 하는 걸 본 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그 무슨 알 수 없는 것이 생겼어. 그리고 그 후에는 모든 것이 내게는 귀찮아졌어---아버지의 제일 좋은 말을 멸시하게 됐고 그런 말을 타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창피해서 영 속이 타는구먼. 아주 우울해져. 그래 진종일 바위에 앉아 있군 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내 마음 속에 나타나는 건 그 멋진 걸음걸이와 등허리가 미끈하고 화살처럼 곧은 자네 말이었어. 그 말은 그 또렷또렷한 눈초리로 내 눈을 바라보지. 마치 그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이! 까즈비치! 자네가 만약 그 말을 내게 팔지 않는다면 난 죽어버릴테야!’하고 아자마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겠지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가 울기 시작한 귀신 같은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런데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은 아자마트는 지독한 응석받이 소년이여서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흘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p><p class="ql-block">“그런데 그 눈물에 대한 대답으로 그 어떤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습니다.</p><p class="ql-block">“ ‘내 청을 들어주!’하고 아자마트는 똑똑한 소리로 말하더군요. ‘난 인제 아무런 짓이라도 하겠어. 하고말고. 어때. 내 누나를 훔져다줄가? 누나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러. 수를 놓은 재간이야 더 말할 게 없지! 그런 여편네는 토이기 왕에게도 없을 거야... 그래 어때? 내일 밤 나를 강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에서 기다려줘. 나는 누나와 함께 이웃마을로 가는 도중에 옆을 지나갈테니--- 그렇게 되면 누나는 자네 것이 될 거야. 그래 벨라가 자네 말만 못하단 말이야?’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오래오래 까즈비치는 묵묵히 있더군요. 그러나 드디어 대답 대신에 그날 옛날 노래를 낮은 목소리로 부르기 시작하겠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우리의 마을에는 미인이 많고</p><p class="ql-block">그들의 눈동자는 밤 하늘의 별이라오.</p><p class="ql-block">달콤하게 그들을 귀여워하는 것도 좋건만</p><p class="ql-block">마음대로 지내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네. 황금은 네 사람의 계집을 사도</p><p class="ql-block">날쌘 말에게야 어림도 없지. </p><p class="ql-block">말은 초원의 바람에도 지지 않고 </p><p class="ql-block">말은 변절도 기만도 안 한다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아자마트는 쓸데없이 그의 찬동을 바라고 울며 그를 달래보기도 하고 맹세도 하더군요. 그러나 드디어 까즈비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말을 중단시키겠지요.“ ‘뒈져라, 미친 자식 같으니! 내 말을 타고 어디를 싸다닐 테냐? 세 발자국도 못가서 말에서 떨어져 바위돌에 뒤통수나 쳐 박는게 예상사일 테다.’“ “나를!’하고 아자마트가 걷잡을 수 없이 소리치겠지요. 그러자 애들용 단검이 갑옷에 부딪치는 쇳소리가 울리고 억센 팔이 그를 떠밀치자 그는 아아!하고 담이 흔들리리 만큼 담밑에 가 쓰러지더군요. “옳지, 일은 재미있게 되는 걸!’하고 나는 생각했지요. 그래 나는 급히 외양간으로 달려가 우리의 말에 자갈을 물리고 뒷마당으로 끌고나갔고 2 분 후에 집에서는 벌써 무서운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사태는 바로 그렇게 되었던 것이지요---아자마트가 찢어진 반외투를 입은 채 까즈비치가 나를 죽이려고 했어! 하며 그 쪽으로 뛰어들어가자 모든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서 총을 쥐었지요---이리하여 소동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아우성소리, 소음 총소리가 뒤섞였지요. 그러나 까즈비치는 벌써 말 위에 올라앉자 칼을 휘두르면서 악마처럼 거리의 군중 속에 뺑소니를 쳤습니다. ‘남의 주연석상에서 술에 취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네’하고 나는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의 손을 쥐고 그에게 말했지요. ‘될 수 있는대로 속히 물러서는 게 좋지 않겠나?’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좀 더 기다려 봅시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나는 지.’“ ‘그야 물론 좋지 않게 끝날 것이지. 이 아시아 사람들에겐 그게 결정적이라네. 부자술이 돌기만 하면 피비린내 나는 학살 소동이 벌어지니까!’우리들은 말을 잡아타고 집으로 달려왔습니다.”“그래 까즈비치는 어떻게 됐어요?”하고 나는 성급히 2등 대위에게 물었다.“그런 사람이 어떻게 될 게 뭡니까!”하고 그는 차를 쪽 들이마시면서 대답하였다. “살짝 뺑소니쳐버렸지요!”“다친 데는 없어요?”하고 나는 물었다.“그야 알 재간이 없지요! 도적놈들이란 불사신이거든요! 나는 어느 전투에선가 이런 것까지 보았어요. 총검에 전신이 채구멍처럼 찔리우고도 여전히 칼을 휘둘러대는 그런 놈을 말이죠.”하고 2등 대위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에 발을 구르고 말을 계속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아무래도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망령에 들렸던가봐요. 요새에 돌아오자 나는 담 뒤에 숨어서 엿듣던 것을 죄다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에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가 히죽 웃겠지요--- 참 교활한 사나이였으니까요! 그리고는 혼자서 무슨 딴 궁리를 했었더란 말입니다.”“어떤 일인지, 얘기하십시오!”“그러니 어쩔 수 없군요. 시작한 말이니 얘기를 계속하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흘 가량 지나서 아자마트가 요새에 찾아왔어요.예전대로 그는 아무 때나 맛있는 것을 잘 내는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한테 들렸더군요. 그때 나도 바로 그 곳에 있던 참입니다. 말에 대한 이야기가 벌어지자 뻬쵸린은 까즈비치의 말을 무턱대고 칭찬하기 시작하였답니다--- 그 민첩한 동작, 아름다움--- 꼭 사슴이야. 요컨대 그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런 말은 온 세상을 찾아봐야 있을 리가 없지 하며 말이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따따르 소년의 눈에 갑자기 광채가 돌더군요. 그러나 뻬쵸린은 그런 것 쯤은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한 척 하겠지요. 내가 말문을 딴데로 돌렸더니 그가 또 까즈비치의 말로 이야기를 되돌리지 않겠어요. 그때부터 아자마트가 찾아올 때마다 꼭 같은 이야기가 계속되군 하였답니다. 이렇게 해서 세 주일이 지나는 사이에 아자마트가 마치 사랑에 고민하는 작중 인물같이 낯이 창백해지고 여위어지는 것이 내게도 뚜렷하게 알리더군요. 참 이상하지 않아요?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나는 후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지만 결국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가 그를 미칠 정도로까지 속을 태우게 했던 것이였어요. 어느 날 그가 소년에게 말하기를 ‘야! 아자마트! 네가 그 말이 꼭 마음에 들겠지. 그런데 자기 뒤통수를 못보듯이 그 말을 볼 수가 없군 그래! 어때, 그 말을 네게 주는 사람에게 대체 너는 뭣을 주겠니? ...”“ ‘아무거고 소원된다는 건 죄다’하고 아자마트가 대답하겠지요.“ ‘그렇다면 내가 네게 말을 얻어줄 테다. 그러나 조건이 있어야 해! ...꼭 수행하겠다고 맹세만 한다면...’“ ‘맹세하지요... 당신도 맹세해야지요!’“ ‘좋다! 맹세하지. 너도 틀림없이 그 말을 가지게 돼. 그 대신 너는 내게 벨라 누나를 주지 않으면 안된다. 응---까라교즈는 내가 주는 납채야. 이 장사는 네게는 손해는 없을 게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자마트는 잠잠해 있더군요. “ ‘싫으냐? 그럼 마음대로 해! 나는 그래도 너를 사내자식으로 보았는데. 역시 어린애구나---네가 말을 탄다는 건 아직 이르다...</p><p class="ql-block">’“아자마트는 불끈 성을 내더군요.“</p><p class="ql-block">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하고 그가 말하겠지요. “ </p><p class="ql-block">‘그래 아버지는 아무데도 말을 타고 나가지 않는단 말이냐?’“</p><p class="ql-block"> ‘그렇기도 한데...’</p><p class="ql-block">“ ‘그럼 승낙하겠니?’“ </p><p class="ql-block">‘좋소.’하고 아자마트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지며 중얼거리겠지요. ‘그러면 대체 언제요?’“ ‘까즈비치가 이곳으로 오면 곧 해보자. 그자가 양 열 마리 쯤 끌고 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밖의 일은 내가 담당할 테니. 글쎄 보기만 해! 아자마트!’ </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렇게 그들은 그 일을 약속하였답니다... 사실인 즉 좋지 못한 일이지요! 나는 후에 그것을 뻬쵸린에게 말하였답니다. 그랬더니 그는 다만 이렇게 내게 대답하잖아요. ‘하여튼 이 지방의 풍습에 따라 나는 그 여자의 남편이 되기 때문에 미개한 체르께쓰의 여인으로서는 나와 같은 훌륭한 남편을 가진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 수 없지. 그리고 까즈비치야 도적이니까 응당히 징벌해야 할 게고. 이런단 말이지요. 자 생각해보아요...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었겠어요? ... 그러나 당시에 나는 그들의 음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요.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런데 하루는 까즈비치가 달려와서 양과 꿀이 소용되지 않는가 하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나는 다음날 가져오라고 말했죠. “아자마트!’하고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가 말하더군요. ‘내일 까라교즈는 내 수중에 들어와. 만약에 오늘밤 중으로 벨라가 여기 오지 않는다면 넌 그 말을 볼 수는 없을 거야...’</p><p class="ql-block">“ ‘좋아요!’하고 아자마트는 말하자 촌락으로 돌아갔습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저녁 때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도 무장을 하고 요새를 떠나갔구요. 그들이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나는 몰랐지만 하여튼 밤이 매우 깊어서야 그들이 돌아왔더군요. 그리고 보초병은 아자마트의 말안장 위에 손발이 묶이우고 벨로 머리를 싼 여자가 가로 실려있는 것을 보았답니다.”</p><p class="ql-block">“그래 말은?”하고 나는 2등 대위에게 물었다.</p><p class="ql-block">“이제 곧 얘기하지요. 그 다음날 아침 일찌기 까즈비치는 팔려고 열 마리의 양을 몰고 왔더군요. 그는 말을 담 곁에다 매여놓고 내 방으로 들어왔어요. 나는 그에게 차를 대접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비록 도적놈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내 친구였거든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잡담을 시작하였지요... 그런데 갑자기 까즈비치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낯색이 변하거든요---그리고는 창문가로 다가서지 않겠어요. 허나 불행하게도 그 창문은 뒷마당으로 향하고 있었답니다. </p><p class="ql-block">“왜 그러우?”하고 내가 물었지요.</p><p class="ql-block">“내 말이! ... 말이!”하고 그는 온몸을 떨면서 말하잖아요.</p><p class="ql-block">“사실 나도 말발굽소리를 듣기는 했어요. ‘아마 틀림없이 어떤 까자크가 말을 타고 온 게로군...’</p><p class="ql-block">“ ‘아니! 아아 글렀군, 글렀군!’하고 그가 웨치자 표범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답니다. 껑충껑충 두 발자욱에 그는 벌써 마당에 나가 있었지요. 요새의 문 곁에서 보초병이 총으로 길을 막았지만 그는 총을 넘어뛰어 길가로 달려갔답니다... 먼 곳에서 먼지가 오르고 있었지요---아자마트가 용감한 까라교즈를 타고 달리는 것이였어요.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뛰여가면서 까즈비치는 총집에서 총을 끄집어내어 사격을 하더군요. 잠시동안 헛방이 아닌가를 확인할 때까지 그는 옴짝달짝하지 않더군요. 그리고는 이를 갈며 총을 돌맹이에 내동댕이쳐 산산이 조각을 낸 다음 땅바닥을 벌벌 기면서 어린애처럼 엉엉 통곡을 하겠지요... 그의 곁에는 요새로부터 사람들이 모여왔지요---그는 아무에게도 주의를 돌리지 않았어요. 그들은 잠시 서서 뒤서너 마디 말을 건넨 후 모두 되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병사에게 명령하여 양값을 그의 곁에다 놓도록 시켰어요. 그러나 그는 그런 것에는 손도 대지 않고 죽은 사람처럼 쓰러진 채 있었답니다. 좀 거짓말 같은 이야기지만 그는 그날밤 늦도록, 아니 온 밤을 그대로 뒹굴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야 비로소 요새에 돌아와 말도적놈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기 시작하겠지요. 아자마트가 말고삐를 풀어 잡아타고 달아난 것을 본 보초병이야 숨길 필요가 없었지요. 그 이름을 알자 까자비치는 눈을 흡뜨더니 아자마트의 부친이 사는 촌락으로 막 달려가더군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그 아범은 어찌되었어요?”</p><p class="ql-block">“그래 시끄럽게 됐지요. 까즈비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답니다. 그는 거의 엿새 동안이나 어딘 가에 가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자마트가 누나를 끌고나올 수가 있었겠어요?</p><p class="ql-block">“그런데 아범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딸도, 아들도 집에 없었지요. 참 교활한 소년이었죠---그러니 들키기만 하면 자기 모가지가 붙어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때로부터 사라지고 말았답니다---</p><p class="ql-block">아마 아브레크 도당광이나 휩쓸려 쪠레끄나 꾸바니 쯤에서 호방한 일생을 끝맺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나가야 하는 길이였으니까요!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사실 진심을 말한다면 나도 이 이상 더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답니다. 나는 체르께쓰의 여자를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가 끼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곧 견장을 달고 칼을 차고 그에게로 갔습니다.“그는 첫번째 방의 침대 위에서 한 손을 뒤통수에다 대고 다른 한 손에는 불이 꺼진 파이프를 쥐고 딩굴고 있더군요. 두번째 방으로 통하는 문에는 자물쇠가 잠겨있더군요. 나는 이 모든 것을 즉시로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기침을 하기도 하고 발뒤축으로 문턱을 쿵쿵 울리기도 해보였지요. 그런데도 그는 못들은 척하거든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 ‘어, 소위!’하고 나는 될 수 있는 한 위엄있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가 여기 찾아온 줄을 모르겠나?’“ ‘아! 안녕하슈. 막씸 막씨믜치! 담배나 피우시지요!’하고 그는 일어나지도 않고 대답하더군요.“ ‘실례지만 나는 막씸 막씨믜치가 아닐세---나는 2등 대위네.’“ ‘매한가지지요. 차나 마시지요? 아, 만약 당신이 내 심정을 알아주신다면’“ ‘나는 죄다 알고 있네.’하고 나는 침대 곁에 다가서서 대답하였답니다.“ ‘그럼 더욱 좋습니다-- 나 역시 지금 말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이보게, 소위. 자네 한가지 잘못했네. 거기 대해서는 내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만두슈! 무엇이 잘못이란 말씀이요? 우리들은 오래전부터 서로 툭 터놓고 지내온 사이가 아니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 ‘농담마세! 자네 칼을 꺼내놓게!’“ ‘미찌까’칼을! ...”“미찌까가 칼을 가져왔습니다.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고나서 나는 그의 침대에 앉아서 이렇게 말했지요---“ ‘글쎄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 자백하게. 좋지 않다는 걸’“ ‘무엇이 좋지 않단 말씀이요?’“ ‘자네가 벨라를 훔쳐냈다는 것이지 뭣이겠나... 그놈의 아자마트도 교활한 놈이었어! 자, 자백하게’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답니다.“ ‘허지만 그 여자가 내 마음에 든다면 어찔 테요?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이런 질문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십니까? ... 나는 아연해졌지요. 그러나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에 만약에 그의 아버지가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면 돌려주어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지요.“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지요!’“ ‘그러나 그는 벨라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거네.’“ ‘어떻게 안단 말이요?’“나는 또다시 뻥해졌답니다. ‘좀 들어봐요. 막씸 막씨믜치!’하며 뻬쵸린은 몸을 일으키고 말하더군요. ‘당신은 착한 분이지요--- 그런데 만약 그 야만인에게 딸을 돌려준다면 그 놈은 기어코 죽이든가 팔아버릴 겝니다. 그러니 이미 저지른 일이니 만큼 애써 일을 파괴할 필요가 어디 있소. 벨라를 내게 남겨두시오. 그리고 제 칼은 당신에게...’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하여간 내게 그 여자를 보여주게’하고 내가 말하였지요.“ ‘벨라는 이 문 저쪽에 있습니다. 나 자신도 오늘은 그 여자를 볼 수가 없었어요---벨을 뒤집어쓰고 한쪽 구석에 앉아서 말도 않지만 바라다보지도 않지요. 산양처럼 오돌오돌 떨기만 하고. 나는 식모를 하나 채용했는데 이 식모가 따따르 말을 알기에 앞으로 벨라의 시중을 하며 벨라가 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하게 끔 되어있답니다.’하고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자기 할 말을 다 하더군요. 나는 이것도 승낙하고 말았답니다. 당신같으면 어떻게 하라고 하겠어요? 세상에는 이와 같이 그런 사람의 말을 듣고는 동의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사람들이 있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어떻게 되었습니까?”하고 나는 막씸 막씨믜치에게 물었다. “그는 그 여자를 길들여놓았는지요. 아니면 그 여자는 갇혀서 집생각 때문에 수척해지고 말았는지요?”“그가 무엇때문에 집생각을 하겠어요? 요새로부터도 촌락에서 보이는 바로 그 산봉우리들이 보인답니다---그리고 이 지방의 야만인들에게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으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후에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매일처럼 무엇인가 그 여자에게 선물을 주었답니다. 처음 며칠 동안 그 여자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거만하게도 선물을 거절했었지요. 그리하여 그 선물은 죄다 그 여주인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지요. 그러니 그 여인은 더욱 감언리설을 늘어놓았지요. 아아! 선물! 아낙네들이란 화려한 꽃천을 위해서는 아무 일이나 다 하지요! ... 아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하여튼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오래동안 그 여자와 옥신각신하였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는 동안에 따따르말을 배우게 됐고 그 여자도 역시 우리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 여자는 처음에는 이마너머로 곁눈질을 하면서 조금씩조금씩 그를 바라보는데 익숙해졌지요. 그러나 항상 슬픈 듯이 자기들의 노래를 나직이 부르군 하였답니다. 그래 옆방에서 그 여자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까지 슬퍼지군 하는 때가 종종 있군 했어요. 그 중에서도 한 광경을 나는 언제까지나 잊을 수가 없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어느 날 나는 지나가던 참에 창문으로 들여다보았지요. 벨라는 고개를 숙이고 뻬치까 위에 만든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그 여자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나의 천사여!’하고 그가 말하더군요.“ ‘당신은 조만간 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쯤이야 알고 있겠지. 그런데 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요? 그럼 체첸 사람들 가운데 누굴 사랑하는 게나 아니오? 만약 그렇다면 내 곧 집으로 돌려보내줄 테요.’그 여자는 겨우 알아볼 정도로 몸을 떨고는 고개를 흔들었지요. ‘그렇잖으면’하고 그가 계속 말했지요. ‘그렇게도 내가 미운가요?’ 그 여자는 호 탄식을 하였답니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렇지 않으면 종교 때문에 나를 사랑할 수 없단 말이요?’ 그 여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잠잠해 있었어요. ‘날 꼭 믿어주우. 신은 어떤 민족에게나 동일한 것이오. 그러니 만약에 신이 나에게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용서해주신다면 어째서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소?’---그 여자는 이 새로운 생각에 감동된 듯이 뚫어지게 그를 바라다보는 거지요. 그 여자의 눈동자에는 의혹과 믿으려고 하는 희망의 빛이 떠올랐습니다. 참 어떻게나 매력에 찬 눈동자였던지! 그것은 마치도 두 덩이의 숯불처럼 번쩍이었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내 말을 듣소. 사랑하는, 귀여운 벨라!’하고 뻬쵸린은 계속하겠지요. ‘당신은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알고 있지.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것이든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당신이 행복해지기만을 바랄 뿐이오. 만약에 당신이 다시금 슬퍼한다면 나는 죽어버릴 테야. 자 말해봐. 자 어서 말해. 명랑하게 되어주지?’--- 그 여자는 그 까만 눈을 그에게서 떼지 않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방긋 웃고나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자기를 키스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 여자는 수집어하며 가볍게 밀어내면서 그저 이런 말만 반복하겠지요--- ‘제발, 제발, 안됩니다. 안돼요.’ 그가 계속 집요하게 굴자 그 여자는 오돌오돌 떨며 울더군요.</p><p class="ql-block">“ ‘나는 당신의 포로예요’하고 그 여자가 말하겠지요. ‘나는 당신의 노예예요. 물론 당신은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그리고는 또 눈물을 흘리였지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주먹으로 자기의 이마를 치고는 옆방으로 뛰여나갔답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지요. 그는 팔짱을 끼고 침울한 얼굴로 방안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자네 어찌되었는가?’하고 나는 그에게 말했지요. ‘여자가 아니라 악마요!’하고 그가 대답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맹세합니다. 그 여자는 오래지 않아 내 것이 된다는 것을...’나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내기를 할가요?’하고 그가 말하겠지요. ‘일주일 동안이면!’ ‘좋소’ 우리들은 서로 약속을 하고 헤여졌답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다음날 그는 곧 여러 가지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 급사를 끼즐랴르에 파견하여 세기조차 힘들 만큼 여러 가지 페르샤의 직물들을 사왔답니다.</p><p class="ql-block">“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막씸 막씨믜치!’하고 그는 내게 선물을 보여주면서 말하더군요. ‘아시아의 미인은 이런 포화를 견뎌낼 수 있을가요?’</p><p class="ql-block">“ ‘자네는 체르께쓰의 여인을 알지 못하네그려’하고 내가 대답했지요. ‘아시아의 여인들은 그루지야나 깝까즈의 따따르 여인들과는 판판 다르다네. 판판 다르지. 이들에겐 이들의 주의가 있고 교육도 다른 방법으로 받거든’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미소하고 회파람으로 행진곡을 부르더군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결과는 내가 옳은 것으로 되었답니다---선물은 반의 효과 밖에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더 삽삽해졌고 더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그것 뿐이었지요.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 수단을 써보려고 결심하였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어느 날 아침에 그는 말에 안장을 준비시키고 체르께쓰식으로 복장을 차려입고 무장을 갖춘 다음 그 여자의 방으로 들어갔답니다. ‘벨라!’하고 그가 말을 꺼냈지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나 사랑하고 있는지 알겠지요. 나는 당신이 나라는 인간을 알게만 된다면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유인하였던거요.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았소. 그럼 안녕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죄다 당신이 가져도 좋소. 아버지한테 돌아가고싶으면 돌아가오. 당신은 자유로운 몸이요. 나는 당신에게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죠. 잘 있어요. 나는 떠나려오. 어디로 가겠는지? 나도 알 수 없소! 아유, 오래지 않아 나는 탄알을 맞든지 칼에 찔려 쓰러질거요. 그때면 나를 생각하여 부디 용서해주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는 얼굴을 돌리고 그 여자에게 이별의 손을 내밀었지요, 하지만 그 여자는 손을 쥐려고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지요, 나는 문밖에 서 있었기 때문에 문틈으로 그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요, 이렇게 되고보니 그 여자가 가엾게 생각되더군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빛이 그 여자의 귀여운 얼굴을 덮어쌌습니다! 대답이 없으니까 뻬쵸린은 몇 발자욱 문가를 거닐겠지요.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요--- 그런데 말하기 쑥스럽습니다만 나는 그가 농담으로 말한 것을 사실 실행하지나 않을가 하고 생각하였답니다. 좀 그런 냄새가 풍기는 사나이였거든요. 참 그 속을 누가 알겠어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그가 문고리에 손을 대자 그 여자는 벌떡 일어나 울며 그의 목에 달려붙겠지요---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나 역시 문밖에 서서 울었답니다. 뭐 정작 운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 어리석은 일이지요...”2등 대위는 잠시 묵묵하였다.“그렇지요. 사실을 말한다면”하고 그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하였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여자에게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 게면쩍게 생각되더군요.”“그래 두 사람의 행복은 오래 계속되였는가요?”하고 나는 물었다.“그렇지요. 그 여자 자신이 우리들에게 고백한 바에 의하면 뻬쵸린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늘 그를 꿈에 보았더랍니다. 그리고 그이보다 강한 인상을 준 남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흥, 그건 좀 싱거운데!”하고 나는 불의에 웨쳤다. 사실 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기대하고 있었으므로 불시에 나의 기대가 어그러진 것 같았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래 그 여자의 부친은 자기 딸이 당신네 요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가요?”하고 나는 말을 계속하였다.“의심은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3 일 후에 우리들은 늙은이가 살해당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정은 이러하지요...”나의 호기심은 또다시 일어났다. “여기서 특히 말해두어야 할 것은 아자마트가 부친의 승낙 밑에 자기 말을 훔친 것으로 까즈비치가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나는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마을에서 3 웨르쓰따 가량 떨어진 노상에 매복하고 있었답니다. 늙은이는 딸을 찾아갔다가 헛길을 걷고 돌아오던 길이였지요. 토호들은 그이보다 앞섰었고---그것은 저녁 때의 일입니다--- 늙은이는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말을 몰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까즈비치는 고양이처럼 숲속에서 뛰쳐나와 뒤로부터 그의 말에 올라타고 단도로 일격을 가하여 그를 땅 위에 쓰러눕히고는 고삐를 잡자 달아났습니다. 몇몇 토호들은 이런 광경을 산등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곧 뒤를 추격했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놈은 말을 뺏긴 분풀이로 복수를 한 셈이군요.”하고 나는 상대편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말했다.“물론 그들의 관습에 의한다면”하고 2등 대위는 말하였다. “그는 아주 정당합니다.”나는 여기서 우연하게도 그들 사이에서 살게 된 우리 로씨아 사람들이 그 지방 주민들의 풍습에 수월하게 젖고마는 능력을 보고 어이가 없어 놀랐다. 나는 이 특성이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인지 또는 칭찬을 받아야 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믿기 힘든 신축성의 존재와, 그리고 그것이 부득이하다든가 혹은 근절하기 불가능한 경우에는 악이라도 허용하는 명백한 상식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는 사이에 어느 덧 차를 다 마셨다. 벌써 오래전에 마차에 매운 말들은 눈 위에서 떨고 있었다. 서쪽 하늘의 해쓱한 달은 벌써 먼 산봉우리에 찢어진 카텐 조각처럼 걸려 있는 검정 구름 속으로 잦아들려 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주막에서 떠났다. 나의 동행자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날은 개이고 우리들에게 고요한 아침을 약속하였다. 춤추는양 별들은 끝없는 하늘가에서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고 있었지만 동이 훤히 트기 시작하여 아침 노을이 처녀와 같이 깨끗한 백설에 덮인 험악한 산봉우리들을 서서히 비치면서 암자색 하늘에 퍼짐에 따라 별들은 하나씩하나씩 사라지고 말았다. 오른편에서도 왼편에서도 어둑컴컴한 신비로운 심연이 꺼매지고 있었고 안개는 사리를 지으며 뱀처럼 굼실거리기도 하면서 아침이 닥쳐오는 것을 느끼고 놀라는 듯 저쪽 절벽의 균렬을 따라 서서히 기여올랐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하늘도 대지도 모든 것이 고요하였다. 마치 아침의 기도를 드리는 순간에 사람의 마음이 고요한 것과도 같이, 다만 가끔 동쪽으로부터 찬바람이 불어와 서리발에 덮인 말의 갈기를 일으켜세울 뿐이였다. 우리들은 출발하였다. 다섯 필의 여윈 말이 우리들의 짐마차를 끌고 굳고라 산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언덕받이를 간신히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뒤를 도보로 따라가면서 말들이 기진맥진하여 질 때마다 마차바퀴 밑에 돌을 괴여주군 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 길은 마치 하늘로 통한 것 같았다. 왜냐 하면 시야가 미치는 한 그 길은 높이높이 마지막에는 굳고라의 절정에서 먹을 것을 노리는 수리개처럼 어제 저녁부터 걸려 있던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눈은 우리들의 발밑에서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냈고 공기는 숨이 차도록 희박해졌기 때문에 피는 시시각각으로 머리로 치밀어 올라왔다... 그러나 그 어떤 기쁜 감정이 나의 모든 혈관에 퍼지여 자신이 속세를 벗어나 드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 어쩐지 상쾌하였다---참으로 어린애와도 같은 감정인 것이다. 물론 그것도 그렇겠지만 사회의 약속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자연에 접근함에 따라 인간은 어느덧 어린애처럼 되는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기왕에 갖고 있던 모든 것은 영혼으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영혼은 새로이 언제인가 있었던 것으로 또한 어느 때인가에는 다시금 기어코 있게 될 그런 것으로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이 적막한 산속을 헤매이면서 오래오래 그 이상한 형상들을 유심히 바라다보며 그 계곡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해 본 경험을 가진 그런 사람들은 물론 이 매혹적인 광경을 묘사하고, 말하고, 전하려는 나의 희망을 이해할 것이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마침내 우리들은 굳고라의 산마루에 올라서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산마루에는 회색 구름이 걸려 있었고 그 구름의 냉냉한 숨결은 닥쳐올 눈보라를 예고하여 우리들을 위협하였다. 그러나 동쪽 하늘을 바라다보니 모든 것이 너무나도 밝게 그리고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기에 우리들 즉 나도 2등 대위도 전혀 그것은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 2등 대위도 역시---단순한 심리적 상태에서는 자연의 미라든가 웅대함에 대한 감정은 우리들의 감격한 이야기군의 말과 문장보다는 백배나 강력하며 생생한 것이기 때문이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당신들은 이와 같은 웅대한 경치에 완전히 익숙해졌겠지요?”하고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p><p class="ql-block">“그렇지요. 탄알이 윙윙대는 소리, 결국 무의식적인 마음의 동요를 감추는 것까지에도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p><p class="ql-block">“그것 뿐이겠습니까. 나는 더 굉장한 것을 들었습니다. 어떤 늙은 투사들에게는 그와 같은 음악이 도리어 유쾌하게까지도 울린다는 것입니다.”</p><p class="ql-block">“물론 구태여 말한다면 유쾌하게도 들리겠지요. 그것은 아마 심장이 여느 때보다 더 세차게 고동친다는 이유에서겠지요. 그것은 그렇다 하고 저걸 보십시오.”하고 그는 동쪽을 가리키며 말을 보탰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사실 이와 같은 경치를 금후 과연 그 어디에서 또다시 볼 수 있을 것인지--- 우리들의 눈밑에는 고이샤우르 계곡이 마치 두 줄기의 은실 같은 아라그바 강과 또 다른 강에 횡단되여 놓여 있었고 푸르스레한 안개는 따뜻한 아침 해빛을 피하여 인접한 골짜기를 따라 그 계곡으로 흐르고 있었다.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눈에 덮이고 수목에 싸인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첩첩히 련이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두 개의 바위와도 같이 서로 엇비슷하였다. 그리고 그 적설은 연분홍색으로 밝고 기분좋게 빛나고 있어서 그 곳에 영원히 남아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까지도 떠올랐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태양은 익숙한 눈이 아니라면 도저히 매지구름과 구별해낼 수 없는 검푸른 산 저쪽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태양에는 피와도 같은 줄기가 띠여 있었는데 나의 친구는 그것에다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아까 내가 당신에게 말씀드렸지요.”하고 그는 웨쳤다. “오늘 폭풍우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바삐 서둘러야 할 겝니다. 그렇지 않다가는 크레스또와야 산에서 겪게 될 것 같군요. 출발!”하고 그는 마부에게 웨쳤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마차 바퀴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동기 대신에 쇠고리를 동여감고 말고삐를 붙들면서 우리들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오른편에는 절벽이 있었고 왼편에는 마치 제비둥지처럼 보이는 오쎄트인의 촌락이 깊은 계곡 밑바닥에 있었다. 때때로 어떤 급사는 아닌 밤중에 두 대의 마차가 비켜나갈 수도 없는 이 길을 일 년에 열 번이나 그 휘우뚱거리는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지나간다는 것을 생각하자 나는 소름이 끼쳤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의 마부들 중의 한 사람은 로씨아의 야로쓸라브 지방의 백성이였고 한 사람은 오쎄트 사람이었다. 오쎄트 사람은 미리부터 느린 고삐끈을 벗겨놓고는 매우 주의깊은 태도로 자갈을 바싹 틀어쥐고 끌고갔지만 우리의 이춘풍이 같은 로씨아 사람은 마부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다. 내가 그에게 “내 트렁크를 위해서라도 좀 주의해주시게. 그것 때문에 저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긴 싫으웨.”하고 주의를 주었으나 그는 그저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염려 맙소. 나리님! 하나님이 내려보시는 뎁쇼. 뭐, 딴 사람들 만큼이야 가닿을 수 있겠죠. 초행길도 아닌 뎁쇼!”--- 사실 그는 옳았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가닿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곳에 하여튼 무사하게 도착하였다. 생각컨대 만약 모든 사람들이 좀 더 고려를 돌린다면 생명은 이런 것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심려를 돌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었을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당신들이 혹은 벨라에 대한 이야기의 결말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지나 않는지? --- 그러나 나는 첫째로 이야기를 꾸며 쓰는 것이 아니라 여행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2등 대위가 실지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는 그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끔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제 잠시 기다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몇 페지를 번지든지 마음대로 하여도 좋지만 나는 그것을 권고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크레스또브 산을 넘는 여행은 당신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리하여 우리들은 굳고라에서 체르또와야(악마)계곡으로 내려왔다...얼마나 낭만적인 명칭인가! 이 명칭만으로도 당신들은 벌써 접근할 수 없는 암석에 둘러싸인 악마의 소굴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것과는 다르다. 체르또와야 계곡이라는 명칭은 “체르따(경계선)”라는 말에서 온 것이지 “쵸르뜨(악마)”라는 말에서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이 어느 한때 그루지야의 국경선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계곡은 싸라또브나 땀보브 그리고 기타 우리 조국의 정든 고장들을 매우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눈무더기로 온통 덮여 있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저것이 크레스또브입니다!”하고 2등 대위는 나에게 우리들이 체르또와야 계곡에 내려왔을 때 눈에 덮인 언덕을 손질하면서 말하였다. 그 꼭대기에 있는 돌로 만든 십자가는 꺼멓게 보였고 그 곁으로는 겨우 알아차릴 수 있는 통로가 나 있었다. 그것은 산길이 눈에 덮였을 때 통행하는 길이었다. 우리들의 마부는 눈사태가 아직은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 말을 쓰다듬어주면서 우리들을 그 길로 끌고 갔다. 굽인돌이에서 우리들은 다섯 명 가량의 오쎄트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겠노라고 말하고 마차 바퀴에 달려붙어 고함을 지르면서 우리들의 마차를 끌기도 하고 밀기도 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길은 참으로 위험한 길이였다. 오른편, 우리들의 머리 위에는 한점의 바람만 불어도 곧 계곡에로 무너져 떨어질 것 같이 보이는 눈더미가 걸려 있었고 좁은 길은 여기저기 눈에 덮인데다 그 눈이 또한 어떤 곳에서는 발밑에서 무너지고 어떤 곳은 태양의 광선과 밤의 추위로 하여 얼어붙어서 우리들 자신도 간신히 발걸음을 옮길 지경이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말들은 때때로 넘어졌다---왼편에는 깊은 계곡이 입을 벌리고 그 밑에서는 벽계수가 때로는 얼음장 밑에 숨고 때로는 거뭇거뭇한 바위를 넘어뛰어 거품을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두 시간이나 걸려 우리들은 겨우 크레스또브 산을 우회할 수 있었다--- 2 웨르쓰따의 길에 두 시간 걸린 셈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러는 동안에 비를 담은 구름이 낮게 드리우더니 우박과 눈이 떨어졌다. 바람은 계곡에 불어들며 쏠로웨이 라조이보니크의 피리처럼 휘휘대고 우르렁거렸다. 그리고 돌로 만든 십자가는 삽시간에 동쪽으로부터 파도처럼 점차로 그 농도와 밀도를 가하면서 몰려온 안개에 덮여싸이고 말았다... 겸하여 말한다면 이 십자가에 관하여서는 뾰뜨르 1세가 깝까즈를 통과할 때에 세웠다고 하는 기묘한,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전설이 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첫째로 뾰뜨르은 다계쓰딴까지만 행차한 일이 있을 뿐이고, 둘째로 십자가에는 “1824년 예르몰로브 장군의 명으로 이를 건립함”이라고 큰 글자로 씌여 있다. 그러나 전설은 이런 비명에도 불구하고 매우 깊이 뿌리를 뻗기고 있기 때문에 사실 우리들은 어느 것을 믿어야 옳은 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비명이라는 것을 믿는 것에 그리 익숙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역관 꼬비에까지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또한 얼음에 덮인 바위와 미끄러지기 쉬운 눈길을 약 5 웨르쓰따 가량이나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였다. 말들은 피로하였고 우리들은 추위에 떨었다. 눈보라는 시시각각으로 세차져서 마치 우리들의 고향인 북방에서처럼 으르렁댔다. 다만 그 거칠은 울음소리만이 더욱 슬펐고 더욱 침울할 뿐이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추방당한 바람이여, 너도”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네 광활하고 자유로운 황야를 생각하고 슬피 우는 것이로구나. 거기에는 차디찬 날개 쭉지를 뻗칠 장소가 있다. 그러나 여기는 자기의 철장을 저주하면서 짓쫓는 독수리처럼 너에게는 기막히고 답답하겠구나.”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이것 참, 일은 글러졌는 걸!”하고 2등 대위는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디를 보든 지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안개와 눈, 자칫하면 심연 속에 굴러떨어지든가 깊은 수림 속에서 헤매게 될 겝니다. 그리고 좀 더 밑으로 내려가면 바이다라 강물이 불어 도저히 도하할 수 없겠군요. 아, 이것이 내게 있어서의 아시아랍니다! 사람도 강물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거든요.”마부들은 웨치며 욕설을 퍼부으면서 말을 채찍질하였으나 아주 센 말들은 힝힝대며 채찍 설교에도 불구하고 좀체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나리님”하고 드디어 한 사람이 말하였다--- “오늘은 도저히 꼬비 역관까지는 도착할 수 없겠습니다요.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왼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가요? 저기 언덕받이에 무엇인가 꺼먼게 보이시죠--- 저게 틀림없는 주막이지요. 눈보라가 일면 통행인들이 언제나 저곳에서 쉬시거든요. 그들은 술값만 주신다면 안내해드린다고 합지요.”하고 그는 오쎄트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아네, 여보게,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아네. 알아!”하고 2등 대위는 말하였다--- “이 악당들이 술값을 뜯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구실이라도 붙여낸단 말입니다.”</p><p class="ql-block">“그렇지만”하고 나는 말하였다. “저들이 없었더면 우리들은 더 애를 먹었을 겝니다.”</p><p class="ql-block">“말두 마슈, 말두 마슈.”하고 2등 대위는 중얼거렸다. “저따위 안내자들은 --- 저놈들은 어디서 구실을 붙일 것인가를 냄새를 맡고 안답니다. 제놈들 없이는 길도 못 찾을 줄 알거든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이리하여 우리들은 길을 왼쪽으로 돌아 많은 곤난을 겪은 후에야 겨우 납작한 돌과 둥근 돌로 집을 짓고 역시 같은 돌로 담을 둘러쌓은 두 채로 된 초라한 산막집에 도착하였다. 누데기를 입은 주인들이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나는 후에 가서야 알았지만 눈보라를 만난 여행객들을 수용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그들에게 정부는 돈과 식량을 주었던 것이다--- “인제야 안심이 되는군!”하고 나는 화토불 곁에 자리를 잡고 말하였다. “그럼 인제는 벨라에 대한 이야기를 끝까지 해주시겠지요. 나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어째 그렇게 생각하십니까?”하고 2등 대위는 교활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나에게 물었다.</p><p class="ql-block">“그야 사물의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이니까요--- 발단이 이상하게 된 것은 결말도 이상하게 되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p><p class="ql-block">“참 잘 알아맞쳤습니다...”</p><p class="ql-block">“나도 기쁘군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당신은 기뻐하지만 나는 사실인즉 그걸 생각할 때마다 슬퍼집니다. 그 여자는 참 좋은 처녀였어요. 그 벨라라고 하는 처녀말이요! 나는 드디어는 그 처녀에게 자기의 딸을 대하는 것처럼 낯익게 되였지요. 그리고 그 여자도 나를 사랑하였답니다. 여기서 당신에게 말해두어야 할 것은 나에게는 가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에 대하여서는 벌써 12 년 동안이나 아무런 소식도 모르고 있으며 처를 얻는다는 것도 이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인제는 벌써 보시다싶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귀여워해줄 수 있는 상대를 발견했다고 기뻐했지요. 그 여자는 우리들에게 때떄로 노래도 불러주고 레즈긴까 춤도 추어보였답니다... 참 어떻게도 잘 추었던지! 나는 로씨아의 여러 지방의 귀족 따님들도 보았고 한번은 벌써 20 년 전의 일이였지만 모스크바에서 귀족들의 무도회에 참석한 일도 있었지만 비기지도 못합니다! 전혀 달랐지요! ...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그 여자를 인형처럼 단장을 시키고 곱게곱게 하여주면서 귀여워하였기 때문에 그 여자는 우리들한테 온 이후로는 놀랄 만치 아름다와졌지요. 얼굴과 손에서는 해볕에 탄 것이 벗어져 나가고 볼에는 붉은 색이 떠돌고요... 그리고 상당히 쾌활해져서 그 장난꾸러기가 나를 항상 놀려대군 하였답니다... 주여! 그 여자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당신들이 그의 아버지의 사망에 대해 말했을 때 그 여자는 어떠했는가요?”</p><p class="ql-block">“우리들은 오래동안 그 여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가 자기의 새로운 처지에 익숙하게 될 때까지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들이 그 말을 하자 그 여자는 이틀이나 울었지만 그 후에는 잊어버리고 말았답니다. </p><p class="ql-block">“약 4 개월 동안 그 이상 더 바랄 수 없을 정도로 만사는 잘 되어나갔지요...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확실히 내가 벌써 이야기했지만 몹시 사냥을 즐겼습니다, 이전에는 자주 멧돼지와 산양을 잡으러 수림으로 가고싶어했지만 이렇게 된 이후로는 요새의 뚝 밖으로 한 발자욱이나 나갔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얼핏 보니 그는 또 생각에 잠겨 뒷짐을 지고 방안을 왔다갔다하고 있잖겠어요. 그러는가 하면 또 슬며시 사냥을 나가서는 내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 때도 있었지요. 한 번, 두 번 되풀이되더니 차차 도수가 잦아졌답니다... ‘일은 글러졌는 걸’하고 나는 생각하였지요--- ‘틀림없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군!’</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어느 날 아침에 내가 그들을 찾아갔지요. 그때의 일은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벨라는 검은 명주 웃옷을 입고 놀랄 만치 창백한 슬픈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뻬쵸린은?’하고 내가 물었지요. “ ‘사냥하러 나가셨어요.’“ ‘오늘 나갔는가?’“그 여자는 말하기가 고통스러웠던지 잠잠해 있더군요. “ ‘아니, 어제부터요.’하고 드디어 그 여자는 한숨을 짓고 말하겠지요. “ ‘그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나?’“ ‘나는 어제 온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하고 그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더군요. ‘그래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 만을 생각했어요. 사나운 멧돼지에게 물리지나 않았는지 혹은 체첸 사람이 산으로 끌고가지나 않았는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러나 아니예요. 벌써 그이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저는 알았어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사실 그보다 더 좋잖은 일을 생각해낼 수는 없을 테지!’ 그 여자는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잔뜩 머리를 쳐들고 눈물을 훔치고나서 이런 말을 계속하겠지요. ‘만약 그이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이에게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도록 방해하겠어요? 저는 그이더러 어떻게 하여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만약 이런 일이 계속 되면 저는 혼자 가버리겠어요. 저는 그이의 노예가 아닌 걸요--- 저도 귀족의 딸이예요.’“나는 그 여자를 타이르기 시작했답니다--- ‘글쎄 벨라! 그러나 그이도 역시 그렇게 치마자락에 꿰여맨 것처럼 언제나 여기에만 가만히 앉아있을 수야 없지 않아. 그이는 아직 젊어서 맹수의 뒤를 쫓아다니길 좋아하거든--- 이따금 나가기도 하지만 곧 돌아오군 하는데 만약 그렇게 수심만 띠고 있다면 오히려 더 빨리 그에게 싫증을 일으키게 되잖아.’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요. 참말 그래요!’하고 그 여자는 대답하더군요. ‘인제부터 저는 쾌활해지겠어요.’그리고는 깔깔 웃어대며 자기의 조그만 북을 들고 내 옆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 뛰놀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어요--- 그 여자는 다시금 침대 위에 쓰러져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야 말았답니다. “내가 대체 그 여자에게 어떻게 하여주었으면 좋았을지? 아시겠어요. 나는 그 때까지 여성을 대하여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그 여자를 위로해줄 것인가 하고 온갖 지혜를 다 짜내보려고 했지요. 그러나 좀체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잠시 우리들을 그저 묵묵히 있었지요... 참 어떻다 형언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이었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드디어 나는 그 여자에게 말을 건늬였지요---‘담장 위로 산보하러 나가지 않겠나, 어때? 날씨도 좋은데!’--- 그것은 9월의 일이었습니다. 아주 맑게 개인 서늘한 날씨였지요. 산봉우리들은 손금 보이듯 똑똑히 보였습니다. 우리들은 나와서 요새의 담장 위를 말없이 거닐었지요. 얼마 후에 그 여자가 잔디밭 위에 앉더군요. 그래 나도 그 여자의 곁에 앉았지요. 정말 생각만하여도 우습지요---나는 그 여자의 뒤를 마치 유모와도 같이 따라다녔으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의 요새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담장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참으로 장관이였답니다. 한편으로는 광활한 초원이 몇 개의 골짜기로 구분되면서 먼 산봉우리에까지 계속되는 수림기슭에까지 잇닿아 있구요. 그리고 그 곳에 산재해 있는 촌락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말떼들이 한가로이 밀려다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시냇물이 흐르고 깝까즈산맥의 본줄기와 합치는 차들, 많은 고지들을 덮은 자욱한 관목 수림은 이 시냇물에 잇닿아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보루의 한 구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양쪽의 경치를 죄다 바라볼 수 있었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수림속으로부터 웬 사람이 회색말을 타고나와 점점 가까이 오더니 드디어 강 건너편에 우리들로부터 백 싸줸 가량이나 떨어진 곳에 이르러서는 미친 사람처럼 자기의 말을 빙빙 돌리기 시작하겠지요. 대체 무슨 일일가? ... ‘저것 봐, 벨라’하고 내가 말했지요. ‘벨라는 젊은이의 눈이니까, 저 말탄자가 대체 누군가---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찾아왔담? ...’“그 여자는 이윽히 바라보다가 웨치겠지요. ‘아, 저건 까즈비치예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 ‘에익! 그 도적놈인가! 그래 우리를 조롱해보려고 찾아왔단 말인가?’---유심히 바라보니 틀림없는 까즈비치거든요--- 검은 낯색에 예전과 꼭 같은 떨어진 의복을 입은 더러운 풍모의 ---- ‘저 말은 우리 아버지 것이예요.’하고 벨라는 내 손을 끌어쥐고 말했지요. 그 여자는 나뭇잎처럼 떨면서 눈을 번쩍거렸습니다--- ‘그렇지,!’하고 나는 생각했지요. ‘귀여운 네 몸뚱이 속에서도 도적놈의 혈기는 잠자지 않고 있구나!’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 ‘여기로 좀 오게’하고 나는 보초병에게 말했지요--- ‘총을 잘 재워가지고 저 젊은 놈을 쏘아넘기게. 한 루블리 은화를 줄 테니’ --- ‘알겠습니다. 대위님! 헌데 그 놈이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는 않습니다’ --- ‘섯! 하고 호령을 쳐!’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지요. ‘어이! 여보게!’하고 보초병이 그에게 손을 흔들면서 웨치더군요--- ‘잠간 기다리게. 어째서 그렇게 승냥이 새끼처럼 뱅뱅 돌기만 하는거야?’---그러자 까즈비치는 정말 멈춰서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더군요. ---틀림없이 누구인가가 자기에게 말을 건늰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죠--- 그러지 않을 수가 있나요! ...바로 이때에 우리 척탄병이 발사하였지요...쾅!...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그러나 빗맞았습니다. 화약이 약통 속에서 터졌을 뿐입니다. 까즈비치가 말을 쿡 찌르자 말은 옆으로 한번 껑충 뛰어 물러섰습니다. 그는 등자를 짚고 일어서서 알지못할 말로 무엇이라고 웨치며 채찍으로 위협을 하는 시늉을 하더니 도망쳐버렸지요. “ ‘그래 창피하지 않는가!’하고 내가 보초병에게 말했지요.“ ‘대위님, 그놈은 이제 죽으러 갔습니다’하고 그가 대답하였지요. ‘저런 저주받을 놈들은 당장에는 죽지 않는 것입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15 분 쯤 지난 후에 뻬쵸린이 사냥에서 돌아왔습니다. 벨라는 그의 목에 매달렸습니다. 오래동안 집을 떠난데 대해서는 한마디 불평도 나무람도 없이 말이죠... 도리어 내가 그에게 성을 냈답니다. ‘좀 생각해보게.’하고 내가 말했지요. ‘방금 강 건너편에 까즈비치가 왔었다네. 그래서 우리들이 그에게다 사격을 했지, 자네도 언젠가 그 놈과 마주치게 될 걸세. 이곳 산악민들은 복수심이 강한 놈들이니까. 자네는 자네가 아자마트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그 놈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 놈이 방금 벨라를 알아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내기를 해도 좋네. 1 년 전만 해도 그 놈이 벨라를 몹시 좋아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네--- 그놈 자신이 내게 말했으니까. 만약 상당한 몸값을 장만했더라면 기어코 구혼을 했을 것일세...’</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자 뻬쵸린은 생각에 잠기더군요--- ‘과연 그렇소’하고 그가 대답하였지요. ‘그럼 더 주의를 해야 되겠구려... 벨라! 앞으로 절대로 요새의 담장 위에는 나가지 마오.’</p><p class="ql-block">“그날 저녁에 나는 그와 오래동안 의논을 했습니다--- 내게는 그가 이 가엾은 처녀에 대한 마음이 변하였다는 것이 참으로 괘씸하게 생각되더군요. 그는 반나절이나 사냥하러 나가서 지내는가 하면 그의 태도가 냉정해지고 그 여자에 대한 애정이 식고 그래서 그 여자는 눈에 뜨이게 쇠약해지고 얼굴이 해쓱해져서 그렇게도 이글이글하던 커다란 눈이 빛을 잃고 말았거든요.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무얼 그리 한숨만 쉬고 있어? 벨라! 슬퍼해?’하고 내가 자주 묻군 하였지요. ‘아니예요’, ‘뭘 하고싶은 게 없어?’ ‘없어요!’, ‘아마 부모 생각을 하고 있는가보군?’, ‘제게는 부모도 없어요.’이와 같이 며칠 동안이나 ‘그래요’혹은 ‘아니예요’라는 대답 이외에는 그 여자에게서는 아무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답니다.</p><p class="ql-block">“그리하여 나는 바로 이 사실에 대해서도 그에게 말했지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자 들어봐요, 막씸 막씨믜치¡’하고 그가 대답하겠지요. ‘내게는 내게 불리한 성벽이 있어요. 교육이 나를 이와 같이 만들었는지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창조하였는지---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만약에 내가 다른 사람의 불행의 원인으로 된 경우에는 나 자신도 그에 못지 않게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등의 위안으로 되지 못하죠. 다만 사실이 그렇단 뿐입니다. 최초의 청춘시대, 겨우 부모의 감시로부터 벗어져나온 그 순간부터 나는 금전으로 얻을 수 있는 정도의 만족이라는 만족은 죄다 미친듯이 향락하지 시작하였지요. 물론 그와 같은 만족은 곧 싫증이 났구요. 그후 나는 사교계에 나갔었지만 사교계에서도 역시 싫증이 나고 말았지요. 나는 사교계의 미인들을 연모도 하고 또 그들의 사랑도 받아보았지만 그들의 사랑도 다만 나의 공상과 자존심을 자극하였을 뿐 마음은 여전히 공허한 채로 남았었거든요...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그래 나는 독서와 연구를 시작했지요--- 그러나 학문도 역시 내게 권태감을 일으키더군요. 나는 명예라든가, 행복이라든가 하는 것은 학문과는 조금도 인연이 없다는 것을 알았죠. 왜냐 하면 가장 행복한 인간은---무지한 사람이며 명예는 요행임에 불과하기 때문인 걸요. 그리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다만 요령이 있는 인간이 되면 그뿐이니까요. 이렇게 되고 보니 적적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곧 나는 깝까즈에 전임을 하게 되였구요--- 이때가 바로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나는 체첸 사람들의 탄환 밑에서는 적적함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렇지도 않더군요. 1 개월 후에 나는 그 탄환의 윙윙대는 소리와 죽음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도 완전히 익어져서 사실인즉 모기에 도리어 더 주의를 돌리게 되었으니 말이요. 그리하여 나는 이전보다도 더 적적함을 느끼게 되었지요. 왜냐 하면 나는 거의 마지막 희망까지도 잃었기 때문입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내가 벨라를 자기의 집에서 보고 처음으로 그 여자를 무릎 위에 앉히고 그 까만 머리칼에 키스를 하였을 때, 바보인 나는 그 여자야말로 자비심이 많은 운명의 손이 내게 보낸 천사라고 생각했군요... 나는 또다시 실수한 셈이지요--- 미개한 여자의 사랑은 고귀한 여자의 사랑에 비하여 조금도 나은 것이 아니였어요. 일방의 무지와 소박성도 타방의 애교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권태감을 일으킵니다. 만약 원한다면 말하겠지만 나는 아직도 그 여자를 사랑은 하고 있어요. 나는 그 여자가 허용해 준 매우 달콤한 몇 순간 때문에 그 여자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 여자를 위해서는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나는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이 적적할 뿐입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내가 바보인지 악당인지는 모르겠으나 나 역시 때로는 그 여자 이상으로 매우 동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내게 있어서 영혼은 사회로 말미암아 파괴되었고 사상은 불안해졌으며 마음은 만족을 모르는 것으로 되고 말았어요. 내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불만입니다. 슬픔에 대해서도 나는 기쁨에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월하게 익숙해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나의 생활은 매일 공허해집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여행이라는 방도가 있을 뿐입니다. 기회가 닥쳐오는대로 나는 출발할 예정입니다. 다만 유럽에로는 가지 않겠어요. 오! 주여! 구원하시옵소서! 나는 아메리카로 가겠습니다. 아라비야에로, 인도로 가겠습니다. 아마 어디인가 도중에서 죽고말 겝니다. 적어도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은 이 마지막 위안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입니다.’---이와 같이 그는 오래동안 말하였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의 말은 한마디한마디 나의 기억속에 박히였지요. 왜냐 하면 25 세의 청년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또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지요... 참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어때요, 얘기 좀 하시지요.”하고 2등 대위는 나에게 향하여 말을 계속하였다.“당신도 아마 수도에서 지내신 모양인 것 같은데, 그것도 최근에---그래 대체 그쪽의 청년들이 모두가 다 이런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같은 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 중에는 확실히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그러나 환멸은 모든 유행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상부로부터 일어나 하부로 내려가서 하부에 속한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에는 누구보다도 많이 그리고 사실로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은 그 불행을 결함인 것처럼 은페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 등으로 대답하였다--- 2등 대위는 이와 같은 미묘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머리를 흔들고 교활하게 웃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권태의 유행이라는 것은 아마 프랑스 사람들이 가져온 것이겠지요?”</p><p class="ql-block">“아닙니다, 영국 사람들입니다.”</p><p class="ql-block">“하하! 그렇습니까! ...”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과연 그들은 어느 때나 유명한 술군들이였으니까요!...”</p><p class="ql-block">나는 여기서 무심중 바이론은 술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언한 모스크바의 귀부인에 대하여 회상하였다. 그러나 2등 대위의 비방은 그것에 비하면 퍽 용서할 점이 있다. 그는 물론 자신이 술을 억제하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음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고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까즈비치는 그후 더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온 것은 보통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좋지 못한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뻬쵸린이 내게 멧돼지 사냥을 함께 가자고 권하더군요. 그래도 나는 오래동안 거절했지요---대체 멧돼지같은 괴물이 내게 있어서 무엇이란 말이요!---그러나 그는 드디어 나를 끌어내고 말았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다섯 명 가량 되는 병졸들과 함께 아침 일찌기 출발하였습니다. 열 시까지 갈밭 사이와 수림 속을 해맸지만 들짐승을 못 만났지요. ‘여보게,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은가?’하고 내가 말하지 않았겠어요. ‘무엇때문에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야? 뻔하지 않은가. 오늘 같은 불운한 날에 말이지!’그러나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무더움과 피로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이는 돌아가려고 하지 않겠지요... 말하자면 이런 인간은 한번 마음 먹으면 담이 무너져라 하고 떠밀치는 그러한 인간이었으니까요. 틀림없이 어렸을 때 귀엽게 자라난 것 같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겨우 오정이 되어서야 그 저주로운 멧돼지를 한 마리 찾아냈지요. 빵! 빵! 그러나 헛방을 놓았지요. 갈밭 속으로 도망쳐버렸답니다... 참 불운한 날이였어요!... 그리하여 우리들은 잠시동안 휴식하고나서 집으로 돌아섰습니다. “우리들은 말고삐를 늦추고 말없이 나란히 하여 말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벌써 거의 요새 근처에까지 왔습니다. 다만 수림때문에 그것이 보이진 않았지만 갑자기 총성이 울려왔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지요. 동일한 의문이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총소리가 난 방향으로 급속히 말을 몰았지요... 보니 성벽 위에 병사들이 모여서 벌판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어떤 사나이가 앞을 보지도 않고 열심히 말을 내몰며 그 말안장 위에서 무엇인가 흰 것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어떤 체첸 사람에게도 지지 않는 소리를 내여 웨쳤습니다. 그리고 총을 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말이 막 내달리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다행히도 재미를 못 본 사냥의 덕택으로 우리들의 말은 지치지는 않았지요. 그 말들은 안장 밑에서 빠져나갈 듯이 전속력을 다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달릴수록 더욱더 목표에 접근해 갔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나는 까즈비치임을 알아보았지만 다만 그가 자기 앞에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만은 분간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나는 뻬쵸린과 나란히 달리며 이렇게 웨쳤지요---’저 놈이 까즈비치네그려!...’그는 나를 바라다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말에 채찍질하였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드디어 우리들은 착탄거리에까지 그를 따라잡았지요. 까즈비치의 말이 피로해서 그랬는지 혹은 우리들의 말보다 나빠서 그랬든지 어쨌든 그가 갖은 노력을 다 하는 것 같았으나 그 말은 시원하게 앞으로 내달리지를 못하더군요. 생각컨대 이때에 그 놈은 자기의 까라교즈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보니까 뻬쵸린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총을 겨누거든요. ‘쏘지 말게!’하고 나는 그에게 웨쳤습니다. ‘탄알을 귀중하게 여기게, 이대로도 곧 그를 따라 잡을 수 있으니’ 그런데 젊은이란! 언제나 성미가 급해 격하기 쉽거든요... 빵! 하고 사격소리가 울리자마자 탄알은 말의 다리를 맞쳤습니다. 말은 격분하여 열 발자욱이나 더 뛰어나가다가 돌에 걸려 무릎을 꿇고 쓰러졌습니다. 까즈비치는 번개처럼 말에서 뛰어내렸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바로 그때 우리들은 그가 면사포로 둘러싼 여자를 두 팔로 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게 벨라였어요... 가엾은 벨라! ---</p><p class="ql-block">그는 무엇인가 알지 못할 말을 우리들에게 향하여 웨치고나서 그 여자를 단도로 찔러버렸습니다...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었죠. 나는 내 차례라고 생각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발사하였습니다. 탄알은 확실히 그의 어깨쭉지에 맞았어요. 왜냐 하면 그가 갑자기 손을 내려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기가 사라졌을 때 보니 땅 위에는 부상당한 말과 그 곁에는 벨라가 쓰러져 있었을 뿐입니다. 까즈비치는 총을 내던지고 수림을 따라 고양이처럼 절벽을 기여올라갔던 것입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는 그를 쏘아 거기서 떨어뜨리려고 하였지만 장탄이 돼 있지 않았단 말입니다! 우리들은 말에서 내려 벨라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가엾은 벨라는 땅 위에 쓰러져 있었고 상처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지요... 참 고약한 악당이였어요. 그래도 심장이라도 쿡 찔렀더면 하여튼 간에 단번에 숨을 끊었을 것인데 잔등을 찔렀으니... 참 도적놈 같은 칼질을 하고 도망쳐버렸으니까요! 그 여자는 의식을 잃었지요. 우리들은 면사포를 찢어 될 수 있는대로 꼼꼼히 상처를 동여맸습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뻬쵸린은 헛되게 그 여자의 냉냉한 입술에 키스를 하더군요. 그러나 아무런 것도 그 여자의 의식을 차리게 할 수는 없었어요. 뻬쵸린이 말에 올라타자 나는 그 여자를 땅에서 부둥켜안아 겨우 그의 말안장에 올려놓았지요. 그가 그 여자를 한손으로 붙들고 우리들은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몇 분 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는 내게 말하겠지요. ‘어때요, 막씸 마씨믜치! 도저히 생전에는 데리고 갈 수 없을 것 같지요.’ “글쎄!’하고 내가 말했지요.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우리들은 말을 전속력으로 내달렸습니다. 요새의 문 곁에서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아주 주의를 하여가며 부상자를 뻬쵸린의 방에 운반하고 의사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지요. 의사는 비록 술에 취하기는 하였지만 곧 달려와서 상처를 보고 이렇게 말하잖아요. 하루 이상은 더 살 수 없다고.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오진이었습니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그래 살았습니까?”하고 나는 2등 대위의 손을 쥐고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p><p class="ql-block">“아니지요.”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의사는 다만 그 여자가 이틀을 더 살았다는 점에서 오진이었답니다.”</p><p class="ql-block">“그런데 까즈비치가 대체 어떻게 그 여자를 훔쳐냈는 지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p><p class="ql-block">“그것은 이러합니다--- 뻬쵸린이 금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가 요새에서 강가로 나갔답니다. 매우 무더운 날이였기 때문에 그 여자는 바위 위에 앉아서 강물에다 다리를 잠그고 있었거든요.</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바로 이때 까즈비치가 살금살금 기여와서 그 여자를 붙잡아 입을 틀어막은 후 수림속으로 끌고 갔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말을 잡아타고 도망쳐버렸지요! 그때에야 그 여자는 겨우 웨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초병들이 놀라 사격을 했지만 빗맞았고 이때 바로 우리들이 당도했던 겝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무엇때문에 까즈비치는 그 여자를 훔쳐가려고 생각했는지요?”</p><p class="ql-block">“무엇때문에냐고요, 그야 말할 게 있나요. 이 지방의 체르께쓰인들은 유명한 도적놈들이여서 흩어져있는 것을 훔치지 않고서는 가만 있지를 못하는 성미니까요. 필요야 있든 없든 손에 닥치는 대로 죄다 훔친답니다. 이 점에서만은 그들을 좀 관대히 보아줘야 될 겝니다! 그 후에 또 그놈은 벌써 오래전부터 그 여자가 맘에 들었으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벨라는 죽었습니까?”</p><p class="ql-block">“죽었습니다. 오래동안 고통을 당했지요. 자연 우리들 역시 그 여자와 함께 고통은 당했지만, 밤 열 시 경에 그 여자는 의식을 회복하였답니다. 우리들은 침대 곁에 앉아있었지요. 그 여자는 눈을 뜨자 뻬쵸린을 부르기 시작하더군요. ‘내 여기 있잖아, 당신의 바로 옆에. 나의 귀여운 벨라!’하고 그는 그 여자의 손을 잡고 대답하겠지요. ‘저는 인제 마지막이예요!’하고 그 여자가 말했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우리들은 그 여자를 위로해주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리고는 의사가 틀림없이 꼭 고쳐줄 것을 약속하였다고 말했지요. 그러나 그 여자는 머리를 흔들며 담을 향해 돌아눕겠지요. 그 여자는 죽고싶지 않았던 모양이예요!...그날 밤 그 여자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답니다. 그 여자의 머리는 불덩이 같았어요. 때때로 열병환자같이 전신에 오한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여자는 아버지와 동생에 대하여 두서없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그 여자는 산에, 집으로 돌아가고싶었던 모양이예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리고 또 그 여자는 뻬쵸린에 대해서도 말하더군요. 그 여자는 그를 여러가지 사랑스러운 말로 부르기도 하고 그의 냉정한 사랑에 대하여 그를 질책도 하였습니다. 그는 묵묵히 두손으로 싸쥔 머리를 내리드리우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동안에도 그의 속눈썹에서 맺혀지는 한방울의 눈물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가 울 수 없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억제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나로 말한다면 나는 일생을 두고 이 이상 더 가엾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아침녘에야 헛소리가 멎었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이나 그 여자는 꼼짝 안하고 창백한 낯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호흡마저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쇠약해졌지요. 그후 그 여자는 약간 차도가 있었어요. 그 여자는 말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그 화제가 무엇이였다고 생각하시오? 그와 같은 생각은 다만 빈사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서나 나타나는 것이지요! ... 그 여자는 자기가 기독교도가 아니기 때문에 죽어 저세에 가도 자기의 영혼은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의 영혼과 만날 수가 없고 천국에서는 다른 여자가 그의 동무로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탄하였습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나에게는 문득 죽기 전에 그 여자에게 세례를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하였지요. 그 여자는 결심하지 못한 낯으로 나를 바라다볼뿐 오래동안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하더군요. 드디어 그 여자는 대답하겠지요. 자기는 이 세상에 태여날 때부터의 신앙 그대로 죽겠노라고. 이와 같이 하여 하루해가 지나갔습니다. 그 하루동안에 그 여자가 어떻게나 변하였는지! 해쓱한 볼은 폭 꺼져들어가고 눈은 보다 더 커다랗게 되고 입술은 불타는 것 같았지요. 그 여자는 마치도 그 가슴속에 뻘겋게 달은 쇠가 놓여있는 것처럼 내부의 열을 느끼고 있었답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다음날 밤이 닥쳐왔지요. 우리들은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그 여자의 침대로부터 잠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눈으로 보기에도 무서우리만큼 심히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였지만 그 고통이 진정되기 시작하자 자기는 훨씬 나아졌다는 것을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에게 확신시키려고 애를 썼고 가서 자라고 그에게 권고하면서 그의 손에 키스까지 하였답니다. 그러면서 그의 손을 자기의 손에서 놓아주지를 않더군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아침녘에, 그 여자는 임종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몸부림을 치며 붕대를 잡아찢었기 때문에 피는 또다시 흘렀답니다. 상처에 붕대를 감자 그 여자는 잠시동안 진정되어 뻬쵸린에게 자기를 키스하여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그 여자의 머리를 베개에서 쳐들어 그 여자의 냉냉한 입술에 자기의 입술을 갖다대였습니다. 그 여자는 떨리는 두손으로 그의 목을 세차게 끌어안았습니다. 마치 이 키스로 그에게 자기의 영혼을 넘겨주려고나 하는 듯이... 그러나 그 여자는 죽었기에 말이지 만약 살아서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의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여자는 어떻게 되였겠어요? 그것은 조만간에 생길 일이였으니까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다음날 반나절을 의사가 더운물 찜질과 혼합제로 그 여자를 아무리 괴롭게 하여도 그 여자는 말없이 아주 온순하게 있었습니다. ‘좀 생각해주어요!’하고 나는 의사에게 말했지요. ‘당신 자신이 그 여자를 기어코 죽고말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째 그렇게 자꾸만 처치를 하는 거요?’ ‘하여튼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요. 막씸 막씨믜치!’하고 그가 대답하더군요. ‘양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지요’ 양심이라고 참 말을 잘했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오정이 지나서부터 그 여자는 목이 말라 안타까와 하기 시작하더군요. 우리들은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밖은 방안보다도 더 무더웠습니다. 침대 곁에다 얼음을 놓아보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나는 그 참을 수 없어하는 갈증이 바로 죽음이 멀지 않다는 징후임을 알고 그것을 뻬쵸린에게 말하였답니다. ‘무--ㄹ! 무--ㄹ!’하고 그 여자는 병상에서 일어나 째지는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는 천쪼각처럼 창백해가지고 컵에 물을 부어 그 여자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두손으로 눈을 가리우고 기도를 드리노라고 중얼대기 시작하였지요.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러나 어떤 말이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나는 병원이나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퍽 많이 보아왔지만 그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전혀 달랐지요! ... 그리고 사실을 말씀드리면 그때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죽기 전에 한번도 나를 생각해주지는 않았답니다. 나는 마치 그의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그 여자를 사랑하였었는데... 그러나 하느님은 그 여자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허긴, 정직하게 말해서 나란 인간이 그가 죽기 전에 생각날 만한 그런 정도의 인간이었을가요?</p><p class="ql-block">“물을 마시자 그 여자는 좀 편해진 것 같더니만 3 분이 지나자 죽고말았습니다. 입술에 거울을 대여보아도 ---거울은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 나는 뻬쵸린을 밖으로 끌어내여 둘이서 요새의 성벽위로 올라갔습니다. 오래동안 우리들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뒤짐을 쥔 채로 나란히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특별한 기색조차 나타나지 않더군요. 그리하여 나는 그것이 괘씸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만약 그의 처지에 있었다고 한다면 슬픔으로 하여 죽어버렸을 것입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드디어 그는 그늘진 땅 위에 앉아서 지팽이의 끝으로 무엇인가 모래위에 쓰기 시작하더군요. 나는 의리상 그를 위로해주려고 말을 시작하였지요. 그는 머리를 쳐들고 웃는단 말입니다... 이 웃음소리를 듣자 나는 오싹 소름이 끼쳤습니다... 나는 관을 주문하러 떠났습니다. </p><p class="ql-block">“사실 말이지 나는 마음의 설음을 풀기 위해 이 일에 자진하여나섰지요. 나는 비단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그 여자의 관을 싸고 그리고리 알렉싼드로위치 역시 그 여자를 위해 사들였던 체르께쓰의 은장식품으로 그 관을 장식하였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 다음날 아침 일찌기 우리들은 그 여자를 요새 저편의 강가에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앉아있었던 바로 그 장소 곁에 묻었습니다. 지금 그 여자의 묘지 곁에는 흰 아카시야와 말오줌나무의 총림이 우거져 있습니다. 나는 십자가를 세워주고싶었지만 어쩐지 무안한 마음이 들어 그만두었습니다---하여튼 그 여자는 기독교도가 아니였으니까요...”</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그래 뻬쵸린은 어떻게 됐습니까?”하고 나는 물었다.</p><p class="ql-block">“뻬쵸린은 오래동안 건강이 좋지 못하여 초췌해졌습니다. 가엾은 사나이지요.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들은 벨라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그에게는 불유쾌하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때문에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있었겠어요? ---3 개월이 지난 후 그는 E연대에로 전근 명령을 받았지요. 그는 그루지야로 가버리고 말았는데 그 이후로는 한번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그러나 나는 한번 누구인가에게서 그가 로씨아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군단 명령에는 그런 것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더우기 우리들에게까지는 보도가 퍽 늦어 오기는 하지만.”</p><p class="ql-block">여기에서 그는 여러 가지 보도들을 1 년이나 늦게 알게 되는 것이 불유쾌하다는 것에 관하여 길다란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아마 그것으로 구슬픈 회상을 지워버리려고 한 것 같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나는 그의 말을 막지도 않았고 귀담아듣지도 않았다.한 시간 후에 출발할 가능성이 생겼다. 눈보라는 잔잔해지고 하늘은 개여서 우리들은 출발하였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서 나는 무심중 또다시 벨라와 뻬쵸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p><p class="ql-block">“그래 그후 당신은 까즈비치가 어떻게 됐는지 듣지 못했습니까?”하고 나는 물었다.</p><p class="ql-block">“까즈비치? 사실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쇄브쑤그의 우익 진지에 까즈비치라고 하는 대담한 사람이 있는데 항상 진홍색 상의를 입고 우리들의 총탄 밑을 유유히 말을 타고 다니며 탄알이 가까이 윙하고 지나가면 은근히 머리를 수그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나이가 바로 그 사람인지! ...”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꼬비에서 나는 막씸 막씨믜치와 작별하였다. 나는 우편 마차를 탔었지만 그는 무거운 짐 때문에 나의 뒤를 따라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들은 또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는 않았었으나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만약 독자들이 듣고저 원한다면 그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참으로 훌륭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독자들, 막씸 막씨믜치는 존경을 받을 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겠는지? ... 만약에 독자들이 그것을 인정한다면 나의 이 지나치게 길어진 이야기가 충분한 보답을 받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rgb(176, 79, 187);"> (连載 2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span></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