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 우리 엄마</h3> <h3> 해마다 어머니절과 엄마생신날이 다가올때면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환한 이마아래 시원스럽게 생긴 오관, 작지만 맵시있는 몸매를 소유한 엄마가 고향집에서 이곳저곳에서 모여온 자식들을 반겨웃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엄마의 일손을 도와드리지 못한 일로 엄마한테 잘해드리지 못한 자책감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br> 1926년 음력 9월 16일에 이 세상에 오신 엄마는 학교문전에 가본적이 없지만 살림을 하나 생산대일을 하나 재치있고 지혜롭게 하여 동네사람들을 탐복시켰고 마음이 넓어 옆사람들과 옴니암니 캐지 않았고 화목하게 지냈다.</h3> <h3> 엄마는 살림을 알뜰히 하였다. 50년대중반에 엄마는 재료를 모았다가 동네 목수를 통해 식장을 해놓았다.식장우에는 큰소래를 세쌍 맞엎어 얹어놓고 식장안에는 철철이 로동모범에 당선되여 타온 크고작은 소래를 어떤것은 맞엎어서 어떤것들은 안에 있는 꽃무늬가 보이게 세워서 얹어놓았다.엄마는 아침을 하면서 식장,가마,장독들을 깨끗이 날마다 닦군하였다. 엄마의 손길을 받아 가마,식장,장독들이 항상 알른알른하였다.</h3> <h3>엄마는 손재간이 뛰여났다. 뜨개질도 잘했고 바느질도 너무 잘했다. 엄마는 집식구들은 물론 동네사람들의 옷도 몸에 딱딱 맞게 반듯하게 지었다.바지,적삼,중산복,한복을 절로 재단하고 재봉하였다.엄마는 시집가는 새각시들의 한복과 이부저리를 얼마나 많이 해줬는지 모른다. <br> 동네 잔치집의 과줄과 기타 음식을 할때면 엄마가 빠진적이 없었고 하향오는 간부들의 때도 엄마가 우리 집에서 십년도 넘게 했었다.<br></h3> <h3>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서 지식을 장악하여 좋은 직업을 가지게 하려고 쉴새없이 가마니를 짜고 닭치기,돼지치기를 하여 돈을 모았다. 문화대혁명때문에 나와 동생들은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엄마는 학교에서 밀어낼때까지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br> 엄마는 나이가 들게 된후 우리를 보고 "큰언니말을 잘듣고 큰언니를 받들어야 된다. 우리 살면 몇해를 살겠니? 우리 없으면 큰언니 부모맞잡이다"고 부탁했다.돌이켜보면 엄마말씀이 틀린데가 없다. 언니가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해주고 사랑했는지 계림향에 소문이 자자했다. </h3> <h3> 우리는 엄마가 아버지와 싸우는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엄마는 저녁마다 아버지의 고무신을 씻어서 물이 찌게 세워놓았고 며칠에 한번씩 아버지를 목욕시켰다.</h3> <h3> 엄마는 할머니와 낯을 붉힌적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몸져 누우셨을 때 엄마가 거의 일년을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냈지만 응당 할일이라고 생각했고 이부자리도 항상 깨끗하게 씻어드렸다.1969.5.7일에 할머니께서 세상뜨시니 동네 사람들앞에서 "막내를 아홉살까지 곱게 키워놓고 세상뜨셨소. 이제 보니 내가 잘한것이 하나도 없소"라고 말했다.</h3> <h3> 엄마는 마음이 넓고 음식도 맛있게 했다.엄마가 만든 물김치를 먹으면 시원하고 쨍해나는게 천하별미였다.육촌 형제들은 엄마가 한 물김치를 특별히 즐겨했다. 육촌 형제들은 대사때는 물론, 평소에도 자주 우리 집에 놀러왔다.영근오빠는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살았댔다.</h3> <h3> 삼촌의 사업에 지장이 될가봐 부모님께서는 딱 한번 삼촌집을 다녀오셨다 삼촌네는 새옷을 해드렸고 많은 선물들을 드렸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을 했다.동네 사람들은 엄마를 복있는 사람이라며 부러워했다.</h3> <h3> 친정식구들이 그리워도 집을 떠날수 없던 그 세월에 엄마는 항상 친정식구들을 외웠댔다.71년도에 우리 집은 해림에 이사갔다. 엄마는 친정식구들을 날마다 볼수 있게 되였다. 배홍걸오빠의 덕분에 영호는 참군을 하였고 나는 정식교원이 되였다. 엄마는 또 친정식구들의 옷을 해준다 이불을 해준다 쉴새없이 일을 찾아했다.</h3> <h3> 엄마는 자신이 손수 지은 비로도 한복을 입고 남부럽지 않게 키운 6남매의 축복속에서 음악가 삼촌의 축복속에서 친척들과 동네 분들의 축복속에서 환갑상을 받았다. 엄마는 "내 옥이 시집가는걸 볼가?! 이제 내한테 남은 일은 아버지를 잘 돌보는것뿐이다."라고 자신의 희망과 사명을 토로했다.</h3> <h3> 세상일을 누가 알랴! 한번도 누워서 앓은적이없던 엄마가 1991년 6월 7일에 66세의 인생을 끝마칠줄을.청천벽력이다! 엄마는 옥이 시집가는것도 못보고 아버지 앞서 세상을 떠나셨다.엄마는 맏아들과 막내딸의 통곡속에서 고향집을 영영 떠나가셨다! <br>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지도 만 30년이 다가온다. 이를 악물고 우리 6남매를 곱게 키우신 우리 엄마,엄마의 인생은 평범하지 않으셨다!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할머니로서의 책임을 훌륭하게 감당하신 위대한 여성이다! <br> 옛날부터 착하면 복을 받는다고 했다.착하신 우리 엄마, 고생도 고통도 없는 천국에서 <br>천년만년 만복을 받으세요! 우리 6남매 두손을 모아 빌고 또 빕니다!!!<br> <br><br> <br> <br> <br> <br> <br> <br> <br> </h3> <h3> 2021.5.9. (어머니절에) <br> <br> 둘째딸 안복신</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