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忆过去的我的家祖…

美人松(拒私聊)

<p class="ql-block">늘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아버지: (尊敬的父亲)</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76, 79, 187); font-size: 20px;"> 문화혁명기간 아버지는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로 늘 투쟁을 맞았고 홍위병들은 하루건너씩 우리집 수색하고 뭐든 가져갔습니다.. 하여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한 옛날 사진이 하나도 없어 유감입니다. 문화혁명기간에 엄마는 병환으로 돌아가시니 아쉽게도 엄마사진 없습니다. 막내딸인 내가 철이들땐 이미 아버지는 계모를 모시고 뇌경색 병으로 앓고 있을때 였습니다.</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  큰언니 결혼식할때 언니와 형부께서 할아버지 모시고 찍은사진 용케도 큰언니한테 있었습니다. 그때 난 애기였답니다.ㅎㅎㅎ</span></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 大姐和爷爷。</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내가 농촌에 있을때 사진사를 모시고 병환에 계시는 아버지와 착한 계모를 모시고 우리집 텃밭과배나무 배경으로 남긴 유일한 사진입니다.(父母和我)</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큰언니와 큰형부 약혼사진. 농촌마을에서 우리집 자식들 모두 출중하게 대학 전문학교 필업하고 도시에서 일하셨다 합니다. 큰언니와 큰형부는 학교필업후 연태시 외사반공실에서 번역등 사업하시다 지금까지 연태에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大姐和姐夫)</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둘쨔언와 형부: 이분들도 吉林冶金电器化学学校동창생으로 연분맺고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二姐和姐夫)</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76, 79, 187); font-size: 20px;">우리집에서 독자아들로 왕자님처럼 받들려 성장한. 오빠와 형님입니다. 이분들도 延边医学院필업생으로 医学院,延边医院에서 활약하시다가 퇴직하고 즐거운 만년을 보내고 있습니다.</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76, 79, 187); font-size: 20px;"> 오빠는 의학원 부원장, 연변병원원장직을 하였습니다.(哥哥和瘦子)</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세째언니와 형부. 이분들은 평생 교육사업에 종사하시다가 퇴직하고 즐거운 만년을 보내고 있습니다.(三姐和姐夫)</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76, 79, 187); font-size: 20px;">네째 언니와 나.(四姐和我)</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큰집 두오빠와 울 언니와 오빠..</span></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76, 79, 187); font-size: 20px;">큰집 큰오빠를 보니 많은 사연이 떠오릅니다. 남보다 많히 앞은 몸이였지만 그누구보다 다뜻한 마음갖고 있었습니다. 한마을에서 살았는데 늘 우리집 일까지 구석구석 챙겨주고 도와주고 저를 많히 관심하여 줬습니다. 생각하면 마음찡해 납니다.</span></p> <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0px; color: rgb(176, 79, 187);">아쉽게도 네째언니와 나의 부부간의 사진 못찾았네요.</span></p> <p class="ql-block">아버지. </p><p class="ql-block">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 105세생일이자 父亲节여서인지 아버지 생각 사뭇치네요. </p><p class="ql-block"> 60십이 넘어도 아버지 생각이 늘 납니다. 키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얼굴이며, 몸매는 보기 좋은 점잖은 분이였습니다. 특히 눈은 부리부리 한것이 부드러운가 하면서 엄숙하였습니다. 또한 동네서나 집안에서 어럽고 존경받는 분이였습니다</p><p class="ql-block"> 나의 기억에 아버지는 농촌 사업에 열중하면서도 자식교육에도 힘을 많히 주신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여 우리 여섯자매중 다섯명이 대학 중등전문학교를 자기 실력으로 갔습니다. </p><p class="ql-block"> 아버지는 울 6남매중 막둥인 저를 제일 예뻐 한것 같았습니다. 이뻐하는것을 안 나는 응석도 많히 부리면서 아버지를 한없이 좋아하고 존경하고 아버지한테 잘 배우려고 노력도 많히 했습니다. 아버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어려서부터 일에 재주가 없는 나는 봄이면 친구들과 산나물 들나물 캐러갔어도 개들보다 절반도 못 캐 왔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대견해 하시면서 나를 칭찬하고 내가 캐온 나물 별미라며 맛나게 드셨습니다. 하여 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모습이 좋아서 숙제늘 완성한후 야산에가 달래, 민들레,세투리 등등 캐여왔습니다. </p><p class="ql-block">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 년대에 유식한 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건강은 어릴적부터 잘 지켜야한다고 했습니다. 하여 배부리 먹으면 되는 세월이라 자고로부터 옷 못입은거는 알아도 배곯은것은 누구도 모른다 한다면서 어디가나 하루세끼는 꼭 챙겨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여서인지 전 지금까지 먹는것에 소홀히 하지 않고 음식문화를 아주 중시합니다.</p><p class="ql-block"><span style="color: rgb(1, 1, 1); font-size: 20px;"> 학교에서 좋은 성적표를 갖고오면 아버지 얼굴엔 웃음이 환하였습니다. 소도 글 읽은 사람앞에서 머리 숙이니 열심히 공부해야한다고 타일렀습니다. 이것이 동력이 되여서 나는 공부에 게으르지는 않았으며, 책읽이도 좋아했습니다. 하여 오늘날까지 지혜롭게도 살아온것 같습니다.아버지는 그옛날 가난한 분이였지만 앞으로 생활 용품을 살때에는 특히 피부에 와닫는 비누,치약,화장품등은 꼭 좋은걸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현실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하여 생활용품 살때마다 각별히 신경써서 건강에는 해롭지 않는가를 중시합니다. 이와같이 현명하고 유식한 아버지는 늘 나의 삶에 등불이였습니다.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러운 분이였습니다. 나의 아버지여서 고마웠습니다. 허나 늦둥이 자식이라 평생 가족을 위하여 분투하시다가 병환으로 오랜세월 지낸 아버지에게 별루 효도 못한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마음 아프기도하고 먹먹하기도 합니다. </span></p><p class="ql-block"> 아버지 사랑합니다! </p><p class="ql-block"><span style="font-size: 22px;"> 2020년5월22일.새벽.</spa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