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class="ql-block"> 친구도 만날겸 , 명산도 구경할겸 겸사겸사 설레는 마음으로 떠났던 여행이다. </p><p class="ql-block"> 복건성의 남평시에 자리한 무이산은 세계문화와 자연 쌍중유산이며 5A급 풍경구이다. 무이산은 황산의 기묘함과 계림의 수려함, 태산의 웅장함과 화산의 험준함, 그리고 서호의 아름다움까지 한몸에 지녔다고 절찬을 받는 명산이라고 한다.</p><p class="ql-block"> 4월 14일 저녁 6시반에 무이산에 내려야 할 비행기가 날씨 때문에 못내리고 온주에 내렸다가 다시 무이산으로 오느라고 저녁 열한시가 다 되여서야 호텔에 도착 하였다. </p><p class="ql-block"> 불원천리 찾아온 친구들을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너무 늦어서 참아야 했다.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이튿날 아침이 되여서야 호텔식당에서 우린 서로 만났다. 만남의 기쁨은 어제저녁 오는 길에서의 신고와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 버렸다.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될 여행계획을 짜면서 기대와 흥분에 들떠 있었다.</p> <p class="ql-block"> 우리는 먼저 무이산의 제일봉 천유봉을 찾아 가기로 하였다.</p><p class="ql-block"> 천유봉으로 찾아가는 길은 신록이 뒤덮힌 청신하고 아름다운 길이였다 걸음마다 봄향기가 물씬물씬 풍기는 길.</p><p class="ql-block"> 우린 그립던 이야기에 꽃피우며 대 나무숲사이의 소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갑자기 눈앞에 깍아찌른듯한 벼랑,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다. 바로 천유봉이란다. 천유봉앞에는 넓다란 잔디밭이 펼쳐졌고 또 그 앞에는 맑고 푸른 구곡계가 산봉우리들 사이를 감돌아 흐르고 있었다. 천유봉의 좌쪽에는 백메터가 넘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고 우쪽에는 이름모를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데 강건너 저 편에는 또 관모산이 넘겨다 보고 있다. 매 한차례의 숨을 쉴때마다 감동하게 되는 곳 ,참말로 산좋고 물좋고 경치좋은 유람지였다.</p> <p class="ql-block"> 여행객들을 실은 떼목들이 바위밑을 유유히 떠다니는 장면을 보느라면 깍아찌른 듯한 저 벼랑은 얼마나 높은가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p> <p class="ql-block"> 무이산은 남송시기의 철학가 주희의 고향이라고 하였다. 천유봉 기슭에는 주희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고 푸른 나무숲속에 주희가 꾸렸었다는 사당이 여전히 보존되여 있었다. 천유봉은 물론 무이산의 높고 낮은 바위들에 남겨진 문인들의 글씨들은 부지기수였고 이런 흔적들로 하여 무이산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알려졌으리라.</p> <p class="ql-block"> 천유봉 정상을 향해 등산이 시작되였다 .올때만 해도 망설이던 곳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등산을 어쩌겠느냐 하는 나의 물음에 "올라야지!" 하는 로바이의 단호한 대답은 우리 마음에 열정을 불러 일으켰다. 우린 모두 오르기로 결정 하였다 . 은근히 걱정이 되면서도 무척이나 기뻤다. 워낙 산을 좋아하고 등산을 즐기는 나였으니까! 오르기만 하면 될거야! </p><p class="ql-block"> 천유봉을 오르지 않으면 무이산은 온둥만둥. 천유봉은 해발 408메터밖에 안되지만 가파롭고 험하여 젊은이들도 중간에서 되돌아 내려 온다는 2천여메터나되는 계단길이였다.</p> <p class="ql-block"> 천유봉 중턱에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서 시원한 바람에 땀도 들이고 숨도 돌리고 사위를 둘러 보노라면 무이산을 한품에 안은듯, 세상을 다 차지한듯 어쩐지 내가 무척 장하고 자랑스워졌다. 우리는 쉬면서 사가지고 온 닭다리요 소시지요 빵들을 먹었다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먹고 쉬고 했으니 계속 올라가야지 . 하지만 로차이네는 더 오르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긴 아픈다리를 끌고 여기까지 올라 온것만해도 대단하였다. 아쉬운대로 그들 부부는 돌아서 내려가기로 하고 우리끼리 다시 톺아</p><p class="ql-block">오르기 시작했다.</p> <p class="ql-block"> 참말로 장난이 아니였다. 이제부터는 더 가파르고 험했다. 한손으로 란간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층계를 짚고 네발 걸음을 했고 신경은 고도로 긴장하여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그저 올라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층한층 꾸준히 오르기만 했다. 아,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중도에 돌아 갔구나. 하지만 아직은 견딜 수 있어! 두층도 생각말고 그저 눈앞의 한층만 보면서 부지런히 쉼없이 끝날때까지 옮겨 디디는것이 나의 등산 비결였다.</p> <p class="ql-block"> 드디여 층계가 끝났다. 끝내 정상에 올랐다. 숨을 돌릴새도 없이 산아래를 둘러보니 들쑹날쑹 높낮이가 다른 뭇산들이 제나름대로 솟아 있었고 요리조리 봉우리사이를 뚫고 구불구불 흐르는 옥띠같은 구곡계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산이면 산마다 다 이름이 있었다 .기억할수도 없었지만 기억할 념도 하지 않았다. 모르면 뭐라나? 웅장한 그 모습만은 기억에 남을건데.</p> <p class="ql-block"> 개선장군이 된 느낌이다. 이젠 다 찌그러진 병꾸러기인줄로 락심했었는데. 이렇게 아직 싱싱할 줄이야! 어깨가 으쓱해났다.그래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을 해야지!</p> <p class="ql-block"> 그때 그 시절의 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우리 넷</p> <p class="ql-block"> 풍경구의 소로는 신록이 우거져 산뜻하고 청신한 그냥 걷고만 싶은 아름다운 길</p> <p class="ql-block"> 저녁에는 금주의 생일 술 한잔씩 마시고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날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p> <p class="ql-block"> 一线天은 흔히 볼수 있는 풍경구여서 모두 볼가말가하며 심드렁 하였다. 하지만 오후에 대나무떼목 타기까지 시간이 많은지라 보기로 하였다. 알고 보니 중국에서는 으뜸가는 一线天이라고 하였다.</p><p class="ql-block"> 一线天은 거대한 암석이 동서로 쭉 째여지면서 생겨 난것인데 참으로 기묘하다 . 거대한 절벽밑에 입구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캄캄하고 좁아졌다. 어쩌면 벽이 이렇게 반반하고 곧고 깊게 쪼개여졌을가? 총길이는 176메터. 높이는 50메터이고 제일 좁은곳은 30cm여서 좀 실하거나 짐을 메고는 도무지 지날수 없이 비좁은 곳이다 . </p><p class="ql-block"> 안의 계단은 때로는 가파르고 때로는 물이 줄줄 흘러 미끄러워서 여행객들은 때로는 길이 막혀 서서 기다리는 수도 있었다. 이렇게 막히는 현상들이 수시로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모두들 또 “堵车” 했다며 웃어댔다.ㅣ</p><p class="ql-block"> 늘 발밑을 조심하다가 혹시 머리를 쳐들어 보면 실오리 같이 가는 하늘이 보일 뿐이였다. 얼마를 갔는지 눈앞이차츰 훤해지더니 동굴 어귀가 나타났다. 동굴을 벗어나니 눈부신 넓은 하늘이 맞아주었다.</p><p class="ql-block"> 처음엔 한오리의 광명을 주지만 포기하지 않고 용감히 도전하면 찬란한 하늘을 맞는 것이 一线天인가봐!</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무이산의 옥띠 구곡계(九曲溪)를 유람하게 된다. 그것도 대나무떼목을 타고 말이다. 한시간 반이나 유람하면서 량안의 멋진 산들의 검열을 받게 된다. 천기예보에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하여 내일로 미룰번 했던 유람이다. 표를 사는것도 문제였다. 一线天에서 나와 관광차를 타고 곧바로 부두로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근식당의 복무원한테 끌리웠다. 유람표를 사줄테니 식당에 들어와서 점심을 먹으란다. 아직 좀 일찍 한것 같았으나 표를 사준다고 하니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무이산의 음식은 거개가 다 우리입에 맞았다. 특색있는 갖가지 버섯채와 참대순으로 반든 반찬이 제일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표도 사가지고 왔다. 참 일이 슬슬 풀리였다.</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어제는 천유봉에 올라 구곡계의 푸른 물을 내려다 보았었는데 오늘은 구곡계에서 떼목을 타고 산들을 올려다 보게 되였다.</p><p class="ql-block"> 구곡계량안은 전형적인 단하지모(丹霞地貌)여서 절벽이 가파르고 산세가 험준하였다.</p><p class="ql-block"> 습윤한 기후와 우량한 생태환경은 봉우리마다 푸르고 무성했으며 붉은 색과 푸른 물이 보기드문 자연산수의 경관을 이루었다.</p><p class="ql-block"> 떼목을 타고 봉우리들을 흠상할수 있는 산수의 풍경은 가는 곳마다 절경이였다.</p> <p class="ql-block"> 떼목을 타고 굽이굽이 </p><p class="ql-block"> 아홉굽이를 도느라니.</p><p class="ql-block"> 산은 천산이요 물은 만수라.</p><p class="ql-block"> 물은 산을 휘감아 돌고 </p><p class="ql-block"> 산은 또 물길을 막으며 </p><p class="ql-block"> 서로 의지하고 서로 제약하며 </p><p class="ql-block"> 정답게 하나로 어울려 </p><p class="ql-block"> 한폭의 풍경이 되는구나.</p><p class="ql-block"> </p> <p class="ql-block"> 옥녀봉 . 옥으로 다듬은 듯 매끈하고 아릿다운 몸매를 가진 이 봉우리는 무이산의 명함장이기도 하다. </p><p class="ql-block"> 옥녀봉과 대왕봉은 강하나를 사이두고 서로 마주보면서 애처로운 사랑이야기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p><p class="ql-block"> 옛날 늘 홍수가 범람하고 맹수가 욱실거려 백성들이 살기 어렵던 이 곳에 대왕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도랑을 파서 지금의 구곡계를 만들고 파낸 흙과 돌은 량안의 산과 바위로 되였다. 그로부터 백성들은 편히 살게 되였다고 한다.</p><p class="ql-block"> 하늘의 옥녀가 구름을 타고 놀러다니다가 무이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구곡계변에 자리 잡았고 대왕을 알게 되였으며 떨어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다.</p><p class="ql-block"> 돌아오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거역한 탓에 마술에 걸려 이렇게 강을 사이두고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바위산으로 굳어졌다는 처절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p> <p class="ql-block"> 대왕봉은 옥녀봉과 마주하고 있는 해발 530메터나 되는 웅장하고 멋진 바위산이다.비록 험준하고 등산하기 어려운 산이지만 길이라곤 없던 그 옛날에도 유명한 여행가 서하객(徐霞客)은 올랐었다는 봉우리다.</p> <p class="ql-block"> 거대한 물줄기는 날에 날마다 </p><p class="ql-block">산체를 깍아내기도 하고 잘라내기도 하며 골짜기로 쪼개내기도 한다.</p><p class="ql-block"> 연하면서도 강한 물의 힘 그 누가 당할 수 있으리.</p> <p class="ql-block"> 구곡계표류가 끝나면 떼목에서 내려 푸른 숲속에 자리한 무이궁에 이른다.</p><p class="ql-block"> 무이궁은 당천보 년간(742_755)에 지어졌으며 무이산에서 가장 오랜 궁전으로 근 천여년의 력사를 갖고.있다고 하였다 . 후에 중우관 (仲佑观)을 꾸리고 남송의 사인 辛弃疾, 시인 陆游, 그리고 주희 등이 주관했었다고 한다 .무이궁에는 지금도 주희의 기념관이 있었다.</p><p class="ql-block"> 문앞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두그루있었는데 송대에 심어진것으로 800~900년의 수령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p> <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 이거리는 남북향으로 된 300메터나 되는 모방한 송나라거리다. 길 량켠의 건물들은 모두 송나라의 건축 풍격이라 하였다.</p> <p class="ql-block"> 天游峰이 무이산의 정문이라면</p><p class="ql-block">虎啸岩은 무이산의 청수한 후원이라하겠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8경이 있었다. </p><p class="ql-block"> 해발 540메터지만 올라가는 돌층계는 좁고 가파롭고 위태로워 호한파라고 불렀다. 어떤곳은 경사도가 칠팔십도라고 한다. 주위의 경치가 아름다워도 곁눈을 팔다가는 자칫하면 굴러 떨어질수 있는 길이였다. 호한이 아니면 오를수 없는 길이였다.그래서 무릎이 좀 불편한 세 사람은 직접 옆에 있는 옥녀봉 풍경구로 먼저 가서 놀기로 하고 우리셋은 虎啸岩에 도전하기로 하였다.</p><p class="ql-block"> </p><p class="ql-block"> </p> <p class="ql-block"> 나는 앞에서 먼저 기여 올랐다. 어찌나 가파로운지 허리만 펴면 뒤로 번져질것 갔았다. 나는 "허리를 바싹 구부리고 명심하라" 고 뒤에 따라오는 분들께 잔소리를 연속 해댔다. 그러면서도 좀 괜찮은 곳에 이르면 사진찍어 주기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셋은 서로 고무격려하면서 끝내는 또 한번 정상에 올랐다. 우리셋은 여전히 그제날의 로고삼 동창이였다. 우린 또 한번 호한이 되였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정상에 올라 앞을 바라보느라면 가슴이 확 트인다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만 갖쳐있던 끔찍히 갑갑하고 우울했던 나날들을 훨훨 뿌려 던졌다. 날것만 같았다. 일망무제한 구릉, 천태만상의 봉우리들이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멋을 부리고 있었다.</p><p class="ql-block"> 문득 입을 크게 벌리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곰과 같은 바위가 보였다. 그게 바로 호랑이가 울부짖는 바위라고 하였다. 입 처럼 보이는건 바람굴(风洞)이라고 하는데 바람이 부는 날이면 바람이 그 굴속을 감돌면서 딱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이 바위산도 그래서 얻어진 이름이였다.</p> <p class="ql-block"> 가슴이 뿌듯했다. 집에서의 생각처럼 이젠 다 됐다고 락심할것 없다 .나는 괜히 당당해졌다. 우린 불로송! </p> <p class="ql-block">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定命桥가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만들어진 외나무 다리였는데 다리밑은 깊이를 가늠할수 없이 쪼개진 바위 틈새가 시꺼멓게 입을 벌리고 있었고 옆의 돌벽에는 붉은 색으로 "定命桥”라고 씌여 있었다. 세인들은 이 다리를 불계를 건너는 선교(仙桥)라 불렀다고 했다.</p><p class="ql-block"> 근래에 여행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콩크리트로.좁은 다리와 쇠사슬로 란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 란간을 잡고 알수 없는 심연을 내려다 볼수 있었다.</p><p class="ql-block"> 심연은 아슬아슬하고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깊은 곳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벼랑에는 이끼가 덮혔고 잡초들이 무성하였다.</p> <p class="ql-block"> 이 다리에서 사진을 찍으면 명을 정하는건가? 여기서 소원을 빌어볼가? 백살까지 ? 아니면 이백살 ? 우리는 익살을 부리다가 결국은 "명은 하늘이 정한건데 뭐! 하느님께 복종하지 !" 하면서 기념 사진을 남겼다.</p> <p class="ql-block"> 虎啸岩은 돌아오는 길이 참 절경이였다. 어쩌면 조물주가 이렇게 거대한 바위들을 제마음대로 깎아 놓기도 하고 반듯이 세워놓기도 하고 비스듬히 눕혀 놓기도 했을가? 한차례 지진? 천지개벽? 아니면 수천억년의 세월속에 풍화? 어쨌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짐작조차 할수 없는 걸작들이였다. 그저 자연의 경의로움만을 느낄 뿐이였다. </p> <p class="ql-block"> 대 자연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묘소한가!</p> <p class="ql-block"> 비스틈이 경사진 거대한 바위 아래 비바람을 피해서 사람들이 살았음을 지금도 맑은 샘솟는 이 우물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우물이 흘러내려 고인곳에는 손을 씻으면 병이 싹 가셔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물론 우리도 병이 다 가셔지길 바라면서 그 물에 주저없이 손을 씻고 계속 산을 내렸다. </p> <p class="ql-block"> 길가에는 수시로 차밭을 볼수 있었다. 무이산은 열발자국에 차밭이 하나씩 있다는 말이 있다. 무이산의 농사란 바로 차농사뿐이라고 했다.그래서 무이산의 차 大红袍는 아홉번을 우려내도 원래의 진짜맛 계화향을 잃지 않으며 그 맛이 극히 담담하여 "차중의 왕"이라는 계관을 땄고 해내외에 명성을 날리고 있다고 하였다.</p> <p class="ql-block"> 옥녀봉 풍경구는 옥녀봉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강가의 모래톱이였다. 여기에 서면 옥녀봉과 대왕봉을 바라보며 그들의 애절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 볼수도 있었다. 옥녀봉 기슭을 감돌아 흐르는 비취빛 물결도 혼을 빼앗았지만 물속에서 자유롭게 무리지어 헤염쳐 다니는 물고기떼들이 눈길을 빼앗았다. </p><p class="ql-block"> 우리는 강변에서 사온 음식들을 먹으면서 누군가 옛날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고추장 넣고 부연 강물을 퍼넣어 끓여 먹던 맛도 좋고 재미도 좋던 즐거운 나날을 떠 올렸다. 참 그랬다. 강물이 맑던 흐리던 다 맛있었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그 맛. 아무리 고급 요리라도 그 맛만은 따를 수가 없다 .오염이 뭔지 모르던 그 시절이 또 그리워 났다.</p> <p class="ql-block"> 수렴동 . 무엇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끌렸었는지? 수호전에서 손오공의 고향이 수렴동이여서일가? 우리는 大红袍풍경구를 뒤로 하고 수렴동으로 떠났다. </p><p class="ql-block"> 딱딱하고 차들이 분주히 오가는 길을 따라 한참이나 갔으나 절반도 안된다고 한다. 미칠 지경이다.</p><p class="ql-block"> 돌아오는 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볼것 없다는 말에 셋은 물러 앉았으나 우리셋은 또 끝을 보기로 하였다. 밋밋한 올리막을 한참 가다가 또 돌계단을 360개 올라야 한다는 갈림길에 들어섰다. 한사람이 돌아 오면서 우릴 보고 또 그 말이다. 물이 없어 볼것 없이니 올라 가지 말라고. </p><p class="ql-block"> 여기까지 왔다가 어찌 그만 두랴! 우리셋의 생각은 똑 같았다. 기실 수렴동은 굉장히 크고 좀 우묵하게 패인 거대한 바위였다 . 반사경처럼 생긴 기막히게 웅장한 바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생한 보람을 느낄수 있었다.</p><p class="ql-block"> 과연 폭포라고는 가는비처럼 떨어졌고 간혹 바람에 흩날리여 좀 큰비가 되여 내렸다. 그렇든 말든 우리는 물이 많을 때 이 수렴동은 참 장관일것임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묘함과 웅장함을 느낄수 있었다.</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물이 많아 폭포가 쏟아 질 때면 지동치는 물소리가 메아리쳐 온 무이산에 울려 펴질거구 천길 폭포는 폭넓은 카텐처럼 이 웅장한 바위에 면사를 씌워 줄것이다.그때면 이 수렴동을 얼마나 수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울가!우린 너 한마디 나 한마디 섞어가며 수렴동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그려보았다.</p> <p class="ql-block"> 아쉽게도 여행은 끝났다. 눈도 귀도 마음도 푹취했던 나날이였다.</p><p class="ql-block"> 무이산은 붉은색 자갈바위로 이루어진 구릉이였다. 무이산의 아름다움은 비할바없이 웅위롭고 소탈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붉은 산바위, 그리고 수려하고 그윽하고 평온한 시내물 ,온산과 온 골짜기를 메우는 푸른숲과 대나무들, 그중에서도 옥녀봉 천유봉과 대왕봉은 무수한 단하군봉(丹霞群峰)들중 무이산수의 정화였다.</p><p class="ql-block"> 무이산의 수려함은 내 마음을 정화 하여 주었고 무이산의 험준함은 나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다 . 이번 여행에서 무이산의 정기를 선물로 받았으니 새로운 시작에 도전해야지!</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