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발언고: </b></p><p><br></p><p><b></b></p><p><b>. . . . . . . .</b><b style="font-size: 20px;">저는 <<빚>>이 많은 사람</b></p><p><b>. . . ㅡ 연변인민출판사 후원금증정의식에서 </b></p><p><br></p><p><b> 홍용암</b></p><p><br></p><p><b> 존경하는 연변인민출판사 여러 영도선생님들과 <<별나라>> 편집부 편집선생님들,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여러 신문사, 잡지사, 방송국의 선배 작가, 기자 선생님들, 사업이 다망하심에도 이 좌석에 참석해주시니 고맙습니다! </b></p><p><b> 둘러보면 여기에 보이는 얼굴 얼굴마다가 거의 모두 제가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대부분 문학사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그토록 익숙하고 정다운 분들의 얼굴들입니다. 또 많은 분들이 옛날 어려웠던 저의 학생시절에 저의 성장을 관심해주시고 저의 문학재질을 꽃피워주기 위해 다함없는 배려와 사랑을 베풀어주셨던 잊지 못할 은사님들입니다. 이렇게 마주하고 서니 더더욱 감개가 무량합니다. </b></p><p><b> 생활의 핍박이랄까 어쩔 수 없이 어차피 정해진 숙명이랄까 지금은 여러 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모 기업의 동사장이 되어 문학과는 어딘가 거리가 상당히 멀고 전혀 갈래가 다른 현대기업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저에게도 전에 한때는 장차 커서 탁월한 민족의 시인으로 작가로 되려는 빠알갛고 파아랗고 노오란 꿈을 무르익히던 잊을 수 없는 달콤한 문학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b></p><p><b> 그런데 그 시절도 인젠 저에게서 한번 가면 두 번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강물처럼 영원히 흘러가버렸습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인 시골학생으로서 가난하고 어리숙하기는 하나 그래도 한번 정한 나만의 <<작은 천지>>인 이상의 길에서 그 어떤 역경에도 흔들림 없이 오로지 자신의 삶에 신조에 포부에 충실했고 꾸준했던 그 시절이 새삼스레 눈물 나게 그립습니다... </b></p><p><b> 돌이켜보면 여태껏 제가 살아온 인생길엔 꿈도 많았지만 파란곡절도 많았습니다. 집에서 8리 남짓 떨어진 이웃마을 초급중학교를 딴 애들은 모두 자전거를 타고 통학했지만 나만 혼자 쓸쓸히 논두렁 지름길을 가로질러 걸어서 다니던 그토록 어려운 가정형편, 하여 나이 조금 들어서부터 부득불 자립을 배워 절로 벌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너무나도 째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그래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아서 적극 분발하며 마침내 처녀작을 발표하였습니다. 이어 첫 시집이 출판되고 문단에 대번에 <<시동>>, <<문학신동>>으로 이름도 날렸었습니다. 수많은 영예의 꽃다발과 박수갈채와 사람들의 부러움이 가득 쏠린 눈길들 속에서 장차 커서 문학가로 되려는 결심도 더욱 굳게 다지면서... 그 멋에 오만가지 어려움도 용케 참고 이겨내며 부지런히 원고를 써서 원고료를 받는 한편 가정교사도 하고 방학기간 돈 벌수 있는 일이라 하면 아무 일거리들이라도 닥치는 대로 다 찾아 하면서 완강히 <<자립공부>>를 견지해나갔었습니다. </b></p><p><b> 그러나 하냥 순풍에 돛 단 배만이 아닌 생활엔 순식간 그 배를 뒤집는 사나운 격랑도 있는가 봅니다. 살기가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더니 가세가 더더욱 기울어져 단박 몰락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빚받이꾼들이 문턱이 닳도록 행패까지 부려가며 매일 우르르 쓸어드는데다가 단박 때시걱을 해먹을 쌀이 떨어지고 또 늙고 허약한 부모님마저 중병으로 몽땅 드러누웠으나 돈이 없어 약 한 첩 사서 올리지 못하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앉아있어야만 했던 그 때, 인젠 더는 그 무슨 낡아빠진 <<자립공부>>만이 아니라 부득불 고슴도치 외지듯 빚만 잔뜩 걸머진 이 무거운 가난뱅이 한 가정을 떠메고 부모를 부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참으로 막다른 골목 ㅡ 모든 것이 죄다 가난 탓이라고 개탄하고 뼈를 갉아내는 진통과 혹심한 고민 끝에 분연히 뛰쳐나와 빈- 주먹으로 장사의 길에 나섰습니다. </b></p><p><b> 여러분들은 혹시 지금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제 날 가난이 지겨워, 그 가난의 핍박에 배기다 못해 온통 운명에 대한 절망과 저주, 분노로 응어리진 가슴을 치면서 홱- 돌아서서 고개 한번 돌리지 않은 채 표연히 떠나가던 한 문학소년의 쓸쓸한 그 뒷그림자를... 그렇듯 차갑고 싸늘하던 그 시골소년이 오늘 다시 여러분들 앞에 돌아왔습니다. </b></p><p><b> 저는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저같이 인차 시들어 말라버릴 약초(弱草), 순간 빛났다가 스러질 별찌도 <<새싹>>, <<샛별>>이라고 특별히 관심을 돌리시며 크나큰 기대를 걸어주시고 또 그 성장, 발전을 위해 정성껏 심혈을 몰부어 주셨던 이 자리에 오신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중학생신문>>사, <<소년아동>>... 등 여러 편집부와 그 편집부의 여러 편집선생님들... 무엇보다도 저더러 커서 꼭 유망한 민족의 시인으로 작가로 되라고 항시 고무, 격려해주시고 이끌어주시며 그 문학재질을 활짝 꽃피워주기 위해 참으로 피타는 노력과 알심을 기울여주셨던 여러 편집선생님들에게 가장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항시 그 앞에 죄를 짓고 빚을 진 초라하고 가난한 마음입니다. 돈으로 진 <<빚>>은 얼마든지 갚을 수 있지만 이 마음의 <<빚>>은 저로서는 영원히 갚을 길이 없군요. </b></p><p><b> 그렇습니다. 저는 <<빚>>이 매우 많은 사람! 참으로 여러분들 앞에 너무너무 많은 <<빚>>을 진 사람입니다. 언제면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요...???!!! </b></p><p><b> 더욱이 저는 <<별나라>>에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별나라>>를 잊을 수 없습니다. <<별나라>>를 깊이깊이 사랑합니다! <<별나라>>에 그 어느 누구한테보다도 더욱 많은 <<빚>>을 졌으며 특별히 두터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b></p><p><b> 돌이켜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진저리나던 그 지지리도 어렵고 간고했던 고급중학 3학년시절, 대학시험을 이틀 앞두고 공교롭게도 급성맹장염으로 당장 수술대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때, 편집부의 경제상황이 그토록 간거하고 여러 편집선생님들의 가정살림형편이 그토록 넉넉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빠듯한 편집부의 활동경비와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그때 돈으로 300원이란 땀에 절은 성금을 보내어 저에게 따듯한 위문과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뻗쳐주셨던 연변인민출판사 <<별나라>>편집부와 그 편집부의 최문섭, 이태학, 허호범, 이천석, 허춘희 등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고마운 은사님들, 제가 어찌 하늘같은 그 은정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b></p><p><b> 언젠가는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여러분들 앞에 진 태산 같은 마음의 <<빚>>을 어찌 이 보잘것없는 물건과 돈으로 갚을 수가 있으랴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으로나마 다문 얼마간 ㅡ 그 100만분의 1이라도 여러분들에게 진 <<빚>>을 조금 갚고 미봉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저의 심정입니다. </b></p><p><b> 오늘 다시 여러분들과 한자리에 만난 이 시각, 이 자리를 빌어 당년에 다년간 문학소년으로서의 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크나큰 기대와 사랑과 배려를 주셨던 여러 은사님들께 가장 하고 싶고 삼가 올리고 싶은 말은 그저 머리를 깊숙이 숙여 오직 감사와 사죄와 용서뿐입니다. </b></p><p><b> 여러분, 못난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커서 유망한 민족의 시인으로 작가로 되라고 격려해주시던 여러 선생님들의 크나큰 기대와 그 심혈, 그 정성도 다 저버리고 생소한 <<상인>>으로 변해버린 오늘의 배은망덕한 저의 모습을 널리 용서해주십시오. 생활의 핍박과 불우한 운명의 조롱으로 그때는 부득불 그리할 수밖에 없었던 너무 일찍 상처 입은 저의 심령을 조금은 더러 이해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이 계속 저를 질책하고 타매하고 원망하시면 저의 마음은 더욱 괴롭습니다! </b></p> <p><b> 제 비록 지금은 문학과는 전혀 길이 다른 기업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자신이 한때는 문학을 열렬히 사랑했던 한 문학소년이었음을 항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 길에서 애써 저를 인도해주시던 여러 선생님들의 은정을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b></p><p><b> 최근 <<별나라>>잡지사 최문섭 주임으로부터 조건만 허락되면 응당은 해마다 한두 번씩은 진행하여야 할 우리 민족 아동문학연구회를 경제부족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제화, 정보화, 현대화시대에 다른 사무실에서는 거지반 구입한 컴퓨터설비를 유독 <<별나라>>편집부에서만은 자금난으로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 비록 힘은 약하지만 당년에 가장 어려웠던 저의 지난 학생시절 저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과 배려를 베풀어주셨던 <<별나라>>편집부에 586형 신형컴퓨터와 칼라프린터기를 증정함과 동시에 또 이제 매년 조직하게 될 아동문학연구회모임에 드는 전부의 비용을 해마다 수만 원씩 후원하기도 결정하였습니다. </b></p><p><b> 목전 저의 산하에 있는 몇 개 회사는 비록 일정한 규모와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보다 더욱 큰 확장과 발전, 도약을 꿈꾸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단히 계속 투자에 투자를 거듭해야 하는 발전도중의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 실제상황에 비추어 잠시는 이만큼밖에 후원해드리지 못합니다. 널리 양해를 바랍니다. 그러나 앞으로 저의 희사가 더욱 발전, 장대해지고 경제실력이 증강되면 <<별나라>>편집부의 사업에 더욱 많은 협조와 후원을 해드릴 것을 이 자리에서 굳게 약속합니다. </b></p><p><b> 장차 저는 돈을 벌어 힘이 자라는 한 우리 민족 문학사업발전을 위한 좋은 일들에 계속 적당히 후원하고 공헌하는 것으로써 당년에 저의 문학재질을 아껴주시고 키워주신 여러 선생님들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b></p><p><b> 앞으로 우리 민족 문학사업발전을 위한 성스러운 일터에서 열심히 사업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일정한 뒷심이 되어드리기 위해 더더욱 분발, 노력하겠습니다! </b></p><p><b> 여러분, 감사합니다! </b></p><p><br></p><p><b> 1998년 10월 16일, 연길에서. </b></p><p><b> 1998년 <<별나라>>잡지 6기에 발표. </b></p><p><br></p><p><b>.</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