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h3><h3>왜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가?</h3><h3> </h3><h3><br></h3><h3>이관희</h3><h3>(본지발행인 ‧ 시인 ‧ 문학평론가)</h3><h3> </h3><h3><br></h3><h3>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산문집’ 혹은 ‘에세이집’이라고 하는 첫 번째 뜻은 시인일 경우 이것은 시작품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고, 소설가의 경우 이것은 소설작품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두 번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시, 소설 같은 창작 작품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h3><h3>그렇다면 왜 <수필집>이라고 하지는 않는가? <수필>은 산문⋅에세이와는 다른 창작문학이기 때문일까? <산문집>을 펴낸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왜 <수필집>이라고 하지 않고 <산문집>이라고 하였느냐? 수필은 시, 소설 같은 창작문학이기 때문이냐?”라고 물었다면 면전에서 무식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현장을 피하지 않았을까?</h3><h3>그가 적당히 얼버무리고 피한 이유가 정말로 나를 무식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면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예술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써 놓고 <수필집>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드러난 것이 아닐까?</h3><h3>금호 편집 자료 중에 <수필집> 책명이 붙은 것은 유경환 시인의 나무호미 한 권뿐이다.(1998) 다른 책들은 모두 다 <산문집> 아니면 <에세이집>이다. 이것은 분명 어떤 문학적 의미가 있는 현상일 것이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대답 속에 ‘수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있을 것이고, 1백년 ‘신변잡기 수필’ 문제 해결 방안도 있을 것이다.</h3><h3>隨筆을 ‘수필’이라고 하는 사람은 오직 <수필가>들 뿐이다. 이렇게 되면 벌써 대답은 나온 셈이다. 수필가만 빼놓고 대한민국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수필은 그들이 쓰는 산문․에세이가 아니라는 뜻이다.</h3><h3>그렇다면 저들은 <수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h3><h3>내가 읽은 수십 권의 문학이론서들이 논의하고 있는 隨筆론(?) 요점은 몇 가지가 안 된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 ‘작가가 경험한 것을 진솔하게 쓰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 필요 없다.’ 등 열 손가락에 셀 수 있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빠지지 않고 책마다 반복하고 있는 것이 ‘시, 소설 등 창작문학에는 일정한 창작형식이 있는 데 수필에는 없다’는 것이다.</h3><h3>그렇다면 내가 읽은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쓴 산문⋅에세이에도 <창작․창작적 형식>이 없는가? 없다면 그것은 <수필>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시인, 소설가들의 산문이 <창작형식>이나 <창작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인, 소설가들이 그들의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 경우의 <창작․창작적 형식>은 시, 소설과 같은 형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산문으로서의 <창작․창작적 형식>을 의미한다.</h3><h3>금호 특집은 이 점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고자 편집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필자가 선정한 산문⋅에세이 작품 한 편 한 편에 조연현 교수가 말한 <창작적 형식>이나 백철 교수가 말한 <순문학적 수필 형식>, 윤오영 선생이 말한 <시⋅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의 장르’로서의 형식>, 그리고 공정호 교수가 말한 <고도로 진화한 현대수필에세이 형식>이 있다면 시인, 소설가들이 그들의 산문⋅에세이를 ‘隨筆’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백철 교수가 수필에세이의 개념이 에세이에 있다고 말하고, 찰스 램의 수필에세이을 ‘순문학적 수필’이라고 하였으나 지난 1세기 대한민국 隨筆론(?)은 전혀 이를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조연현 교수가 ‘수필에세이은 창작적 변화가 용인되는 문학’이라고 하였으나 여전히 隨筆계는 귀를 막았다. 이어서 같은 수필가 동료인 윤오영 선생마저 ‘찰스 램의 수필에 이르러 비로소 수필도 시, 소설 같은 문학 장르를 이루게 되었다’고 하였으나 저들 수필가들은 동료 수필가의 이론조차 묵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 공정호 교수의 ‘에세이 진화론’을 받아들이겠는가?</h3><h3>금호 특집에 대한 결론부터 말한다면, 필자는 자신의 조사․연구 결과를 말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시대의 뛰어난 소설가 중 한 분이신 김 훈 작가가 그 대답을 이미 해 주었기 때문이다.(본문 김훈 작 <여자 4> 참고 -91쪽)</h3><h3>김 훈 작가의 대답을 여기에 옮겨 본다.</h3><h3> </h3><h3>소설은 이 책에 나오는 글들보다는 분량 면에서 휠씬 길고 또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결합되어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인 반면 수필은 대부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을 적어 나가는 신변잡기적인 성격을 갖는다.</h3><h3>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그러한 신변잡기적인 글들보다는 좀 더 질서 있고 다양한 가치판단을 적어 나가고 있는 것들에 주안점을 두어 선별하였다.</h3><h3>([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김훈 ․ 안도현)</h3><h3>본 특집을 통해서 김 훈 작가의 결론과 함께 필자가 내린 총 결론은 <‘수필隨筆’이라는 이름은 지난 현대문학 1세기 동안 신변잡기․잡문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산문․에세이집>을 <수필집>이라고 부르지 않는 최종 이유라고 필자는 보았다.</h3><h3>필자가 금호 특집을 편집하게 된 것은 이태동 교수의 수필론을 소개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먼저 이태동 교수의 수필에세이론부터 소개하고자 한다.</h3><h3> </h3><h3>(편집실 주 : 본서는 창작에세이 비평 전문서다. 문학비평 관행에 따라 작가에게 사전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이 점 작가와 출판사의 양해를 구하며 감사를 표한다.)</h3> <h3>이태동 교수의 수필에세이론</h3><h3> </h3><h3>이관희</h3><h3>(본지발행인 ‧ 시인 ‧ 문학평론가)</h3><h3> </h3><h3>편집 주 1 : 본 문건에서 이태동 교수가 사용하는 ‘수필’이라는 이름은 ‘에세이’의 우리말 이름을 의미한다. ‘붓 가는 대로’, 즉 ‘신변잡기’ 隨筆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근거는 이태동 교수의 다음 말에 있다. “우리 문단에서 ‘에세이’란 말은 수필이란 말로 번역되어”, “수필이란 16세기 프랑스의 미셀 몽테뉴가 만들어 발전시켜 온 장르이다.”(아래 문건 「소재의 선택과 생략」) “수필을 영문으로 나타내는 ‘에세이’라는 말”,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기 쉬운’ 장르로 잘못 이해하고”([한국수필의 미학] 이태동 –서문에서)</h3><h3> </h3><h3>편집 주 2 : 본고에서 <수필>은 에세이의 우리말 이름을 의미하고, <隨筆>은 에세이와 관계없는 ‘붓 가는 대로 隨筆’을 의미한다.</h3><h3> </h3><h3>필자가 隨筆문제(‘신변잡기’)에 정면충돌한 후 14년 동안 조사 공부한 결과 중에서 빠트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현상 하나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 문학학자, 문학평론가들이 ‘전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隨筆’이라는 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우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학학자, 문학평론가들이 隨筆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여기서 말하는 <문학학자>, <문학평론가>는 수필계의 수필 學(?)이나 수필평론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통 문학학문을 의미한다. 隨筆은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라는 것이 개념이다. ‘붓 가는 대로’ 개념에는 정당한 <수필學>이 있을 수 없다.)</h3><h3>산문은 문학의 밭이다. 시, 소설, 희곡 등 창작문학이 처음부터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희곡이 된 것이 아니다. 일상 언어에서 시작되지 않은 시, 소설이 있는가? 문학은 일상 언어가 문학이 된 것이다. 일상 언어의 문장형태는 산문이다.</h3><h3>‘隨筆’이라는 일반산문의 한 형태가 무려 1세기 동안이나 ‘신변잡기’ 지탄을 받으며 진행되어 오고 있는데도 문학학자로서, 문학평론가로서 이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 금호 특집 주제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예술가는 왜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h3><h3>이태동 교수는 수필에세이문학에 실제로 관심을 두고 隨筆계와 교류도 하고 수필관련 저술활동도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문학학자, 문학평론가 중 한 분이시다.(참고로, 필자는 이태동 교수와 대면한 일도 없고, 전화 한 통화 한 일도 없다. 이태동 교수에 관한 정보는 발표된 수필관련 저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h3><h3>그 동안 필자는 隨筆계 안에서 부딪친 隨筆문제에 관한 자료조사와 그 결과를 발표하는 일에 쫓겨서 문학학계의 수필에세이론을 소개 할 틈을 얻지 못하였다. 이 점 창작에세이 독자들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늦게나마 이태동 교수의 수필론과 수필에세이작품을 소개하게 된 것을 크게 기쁘게 생각한다.</h3><h3>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태동 교수의 수필론은 「소재의 선택과 생략」이다. 계간수필 2005년 가을 호에 게재된 작품이다. <수필 아카데미 제7회 강좌 요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h3><h3>(참고 :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발표된 문건이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을 펴기 훨씬 전이다. 창작에세이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수필의 현대문한 이론화 운동>은 외롭기만 한 운동이 아니라는 뜻이다.)</h3><h3>먼저 본문을 여기에 소개한다. 공부 목적의 소개이므로 필요한 부분에 밑줄 및 굵은 글씨체 표기를 하고. ①원문자 번호도 붙이고자 한다. 이 점 저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h3><h3> </h3><h3>소재의 선택과 생략 / 이태동</h3><h3> </h3><h3>①서구에서의 ‘에세이’는 시, 소설, 희곡과 같은 ‘뚜렷한 창작 형식’ 이외의 산문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②그러나 우리 문단에서 ‘에세이’란 말은 수필이란 말로 번역되어 심변心邊적인 수상隨想으로 한정시켜 ‘붓 가는 대로 쓰는’ 산문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수필가들이 쓰는 산문은 엄격한 의미의 에세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수상(familiar essay)’에 해당된다고 말 할 수 있다.</h3><h3>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③수필이란 16세기 프랑스의 미셀 몽테뉴가 만들어 발전시켜 온 장르이다. 그는 나이가 37세가 되었을 때 공직을 버리고 소위 몽테뉴의 성관城館 4층 서재로 들어가 수상록을 집필했다. 이 책의 서문에 씌어진 ‘나 자신이 나의 책의 재료이다’라는 말이 시사 하듯이 그의 글은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는 기본적인 태도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그는 인간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무한한 책임감, 자부심과 존엄성, 그리고 자연 가운데서 보다 근원적인 것을 탐색하고 거기에서 진실과 도덕성을 발견하려고 했다.</h3><h3>④그러나 에세이는 앞에서 언급한 다른 창작의 장르처럼 ‘유기적이 아니고’ 단편적이며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미의 직접성’을 갖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수필은 사물이나 특정한 대상對象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와 명상을 나타내는 단편적인 글이다. ⑤그러나 그것은 흰빛에서 다양한 색채를 발견하듯이 일상적인 삶이나 사소한 것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 내지는 도덕성’을 찾아서 계시啓示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h3><h3>⑥그래서 수필은 몽테뉴 경우처럼 ‘자기와의 대화’ 즉, 명상을 통한 철학적인 발견이나 혹은 사소한 경험에서 위대한 진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일상적인 신변잡기身邊雜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도덕적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h3><h3>영문학의 경우, 수필(개인적 에세이)의 대가大家인 찰스 램은 조용한 가운데서 회상한 어린 시절의 순수한 경험과 감정을 소재로 해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⑦그의 작품 ‘오래된 도자기’가 고전으로 평가되는 것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잃어버린 가난’의 소중한 경험을 ‘시정詩情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것은 힘들지만, 그것은 힘겹게 성취한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가를 어린 시절의 경험과 풍요로운 어른이 느끼는 경험과 비교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유년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의 경험이 미숙한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세속에 때 묻거나 시간에 녹슬지 않는 순수하고 진실 된 경험이다. 또 램이 「꿈 – 어린이 : 몽상」이란 수필에서, 유년 시절에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젊은 시절에 탁월한 무희舞姬였던 할머니가 암癌이라는 가장 무서운 병에 걸려 고통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그 병은 강인한 그녀의 정신력을 끝까지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쓴 것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것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지나칠 수 있는 삶의 풍경에서 발견한 치열한 인간정신이 나타내는 위대한 도덕성 때문이다. ⑧이렇게 수필이 문학작품으로 승화하려면 일상적인 담론이나 감상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앙드레 지드의 수상록 제목이 시사 하듯이 ‘지상地上의 양식糧食’이 되어야만 한다.</h3><h3>물론 일상적인 삶이나 풍경 속에서 진주와도 같이 숨어 있는 진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수필을 쓰는 사람은 이러한 숨은 진실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수상집 섬을 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h3> <h3>⑨‘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은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들에게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와 비슷한 계시가 제공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h3><h3> </h3><h3>그래서 훌륭한 수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쉽게 그리고 많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⑩남다른 통찰력으로써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 수필을 쓰기 위한 ⑪소재의 선택이란 깊은 도덕적인 의미와 진실이 담겨 있는 숨은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값진 진실의 발견 없이 피상적인 사실이나 감상적인 느낌은 결코 아무런 지적인 감동을 주지 못한다.</h3><h3>⑫그러나 훌륭한 소재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잘 끌질된 언어’와 ‘엄격한 절제’ 및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시각을 주관적으로 나타낸 단편적인 글인 수필이 훌륭한 문학작품이 되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쉽게 쓴 글이 되지 말아야만 한다.</h3><h3>⑬많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아무런 비평적인 계획’이 없어도 연필 끝에서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T.S. 엘리엇이 말하듯이 글을 쓰기 전에 ‘명확한 소재의 선택’과 ‘치밀한 구성’을 위한 ‘계획’이 없으면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수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⑭아무리 사소한 것을 소재로 하더라도 ‘선택적’이여야만 하고, ‘시적인 생략’과 ‘유기적인 구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⑮문학작품은 무질서하고 혼돈된 현실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질서와 목적이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⑯물론 수필은 ‘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극적인 장치가 없는 산문散文이지만 그것은 ‘상상력으로 만든 질서’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비전과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h3><h3>문학작품은 교훈적인 글과는 거리가 멀지만 삶의 양식이 될 수 있는 생활의 철학이나 도덕적인 진실이 있어야만 한다. ⑰그러나 수필은 어디까지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또 그 문맥 속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쓰여지지 않고 삶의 진실이 짙게 묻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현실을 왜곡해서도 안 되지만 진실이 없는 일상적인 경험을 나열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소중한 진실이 그 속에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일상적인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그것이 묻혀버린다.</h3><h3>⑱그래서 필요에 따라서 핵심적인 주제와 관계가 없는 경험은 ‘과감하게 생략’해야만 된다. 이것뿐만 아니라,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선택된 경험도 치밀한 질서 속에 절제된 언어’로서 엮어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탁월한 구성과 다듬어진 언어로 표현된 ‘경험’ 하나 하나는 ‘주제’를 반영시키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여기서 일상적인 경험을 사용하더라도 이를테면 ⑲‘낯설게 하기’를 시도해야만 한다. ‘예술은 관습적인 기호 체계를 낯설게 만들고 파괴시켜서 언어의 물질적 과정 자체를 두드러지게 하여 우리의 지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하겠다.</h3><h3>(<소재의 선택과 생략> 이태동 [계간수필] 2005 가을)</h3><h3> </h3><h3>이태동 교수의 「소재의 선택과 생략」을 읽은 필자의 느낌은 ‘대한민국 국어교과서에 피천득의 <수필(隨筆)> 대신 이 작품이 게재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이 국어교과서에 게재된 것이 반세기 전 일이다. 피천득은 ‘隨筆은 플롯도 필요 없고,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태동 교수는 <‘잘 끌질된 언어’와 ‘엄격한 절제’ 및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피천득의 플롯 무용론은 어느 문학이론서에도 없는 말이다. 그러나 이태동 교수의 에세이론은 정통 현대문학 이론이다. 만약에 이태동 교수의 이 글이 국어교과서에 게재 되었다면 오늘의 隨筆은 벌써 ‘신변잡기’에서 벗어나 시, 소설, 희곡과 어께를 나란히 겨루는, 찰스 램의 뒤를 잇는 ‘순문학적 수필(백철)’이 되었을 것이다.</h3><h3>대한민국 문학학계에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학문체계가 잡힌 수필에세이론은 전무하다.(지난해에 발간한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이 부족한 대로 최초로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에세이 이론서다.)</h3><h3>「소재의 선택과 생략」은 4쪽 분량의 소론 형식의 글이다. <수필 아카데미 제7회 강좌 요지>라는 부제 그대로 강좌 내용을 요약한 글이다. 그럼에도 현대문학 이론에서 말하는 문예창작론과 에세이 개념, 에세이 작법론 까지 핵심이론을 다 갖추고 있다.</h3><h3>본서 [창작에세이–창작산문 작품과 작법] 기본 편집 방침은 현대문학 학문(이론)에 근거한 에세이문학 공부⋅연구(비평)에 있다. 이태동 교수의 수필에세이론을 소개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소재의 선택과 생략」 본문 중 중요 요점이라고 생각되는 점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인용해 온 본문 앞에 ①, ②로 구분표시를 하고자 한다.</h3><h3> </h3><h3>에세이에 대한 장르적 해석 ① 서구에서의 ‘에세이’는 시, 소설, 희곡과 같은 ‘뚜렷한 창작 형식’ 이외의 산문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h3><h3> </h3><h3>이 말은 에세이수필는 시, 소설, 희곡 같은 창작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문학이라는 뜻이다. 창작에세이 작가, 학도들에게는 필자가 수 없이 되풀이 한 말이기 때문에 귀에 익은 말이겠지만 隨筆가들에게는 이관희라는 사람의 隨筆 폄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태동 교수도 隨筆을 폄훼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이태동 교수는 영문학자이시다. 그의 에세이론이 잘못되었다면 영문학이 잘못된 것이고, 대한민국의 문학학문이 잘못된 것이다.</h3><h3>隨筆가들은 ‘문학이면 그냥 문학이지 문학에 무슨 창작문학 따로 있고, 일산산문문학 따로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隨筆은 전혀 학문(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글쓰기가 아니라는 증거다.(이 사실은 필자가 지난 14년 동안 직접 수필가들과 부딪치고 가르치면서 확인한 사실이다.)</h3><h3>隨筆이 학문에 근거한 글쓰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창작에세이-작품과 작법] 21권호부터 23권호까지 필자가 시도하였던 문과대학교수 隨筆평론가 일곱 분(강돈묵 박양근 신재기 안성수 여세주 유한근 허상문)에게 질문하였던 ‘수필창작’ ‘창작수필’ 용어사용의 학문적 근거 공개토론 요청 실패 전후에서 드러난 그대로다. 일반 隨筆가들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들조차 隨筆(혹은 에세이)이 시, 소설, 같은 창작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문학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일곱 분 중에서 유일하게 답변을 보내온 박양근 교수의 답변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다.</h3><h3>필자의 질문은 <본래부터 창작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문학이던 수필(에세이)이 ‘언제부터’ ‘어떻게’ ‘어떠한’ 창작문학이 되었는지요? 실제 작품을 예로 들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박양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변을 보내왔다.</h3> <h3>창작문학과 일반산문문학은 상호 반대개념이 아니다.</h3><h3>수필을 창작산문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문학이라고 정의하는 자체가 모순이다.</h3><h3>이 말은 隨筆도 시, 소설 같은 창작문학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태동 교수는 분명하게 <‘에세이’는 시, 소설, 희곡과 같은 ‘뚜렷한 창작 형식’ 이외의 산문을 총칭하는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h3><h3>‘붓 가는 대로 수필’은 현대문학 이론의 <에세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隨筆’이 ‘창작문학’이라는 다른 어떤 학문적 근거는 있는가? 그 어디에도 없다. 고전수필의 대표적 개념은 ‘잡문’이다.</h3><h3>수필에세이이 ‘수필창작’ ‘창작수필’ 용어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문학의 진화론을 말해야 된다. 또한 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를 말하려면 반드시 찰스 램을 말해야 된다. 찰스 램을 말하려면 반드시 창작론에 근거한 작품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h3><h3>그러나 박양근 교수 외 6인 문과대학 교수들과 隨筆계의 수필 론에는 ‘문학 진화론’도 없고, 창작론에 근거한 작품분석도 없다.</h3><h3> </h3><h3>에세이에 대한 장르적 해석 ②그러나 우리 문단에서 ‘에세이’란 말은 수필이란 말로 번역되어 심변心邊적인 수상隨想으로 한정시켜 ‘붓 가는 대로 쓰는’ 산문을 의미한다.</h3><h3> </h3><h3>이태동 교수의 이 말은 ‘붓 가는 대로 隨筆’은 에세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隨筆’이라는 것의 비학문성을 지적한 말이다. 몽테뉴가 언제 에세이 개념을 ‘붓 가는 대로’라고 하였단 말인가?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야 어떻게 ‘붓 가는 대로’가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가?</h3><h3> </h3><h3>에세이에 대한 장르적 해석 ③수필이란 16세기 프랑스의 미셀 몽테뉴가 만들어 발전시켜 온 장르이다.</h3><h3> </h3><h3>이태동 교수는 우리말 ‘수필’의 본래 뜻은 몽테뉴의 <에세이>를 의미하고, 그 외의 다른 뜻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h3><h3> </h3><h3>에세이에 대한 장르적 해석④그러나 에세이는 앞에서 언급한 다른 창작의 장르처럼 ‘유기적이 아니고’ 단편적이며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미의 직접성’을 갖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h3><h3> </h3><h3>에세이, 즉 ‘수필’의 장르적 구분에 관한 이태동 교수의 이 말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수필은 ‘유기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문학개론서 한 권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창작문학의 특징을 나타낼 때 쓰는 비유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에세이가 유기적이 아니라는 말은 에세이는 시, 소설 같은 창작문학이 아니라는 뜻이다.</h3><h3>‘가설적인 성격’, ‘주관적인 견해와 명상’ 등은 조연현 교수가 몰톤의 에세이론을 소개하면서 말한 ‘이미 있는 것에 관한 토의 양식의 문학’으로서의 일반산문문학인 수필에세이에 대한 해석과 연관되는 견해다. 이에 대해서는 김영덕 교수의 다음과 같은 명쾌한 해석이 있다.</h3><h3> </h3><h3>문학을 창조적인 것 creation art 과 해석적인 것 interpretation art 으로 나누어 생각한다면 시‧소설‧희곡은 전자에, 그리고 평론‧수필 등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reporting, 그 느낌을 밝혀주고 revelation, 잘못된 사실을 올바르게 고쳐주고 revision 하는 소위 3 R이 에세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事實에 대한 풀이’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문학개론 김영덕)</h3><h3> </h3><h3>아리스토텔레스이래 ‘事實’을 적어놓고 ‘창작문학’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문과대학 교수 隨筆평론가들 뿐일 것이다. 문과대학 교수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글을 읽은 지 30년도 더 된다. 오늘날의 교수 중에는 <창작>과 <산문> 용어조차 구분 못하는 교수들도 있다는 사실은 필자가 직접 확인한 일이다. 김영덕 교수의 ‘창조적인 것’과 ‘해석적인 것’은 이태동 교수의 ‘뚜렷한 창작 형식’과 ‘의미의 직접성’을 설명해 준다.</h3><h3> </h3><h3>에세이에 대한 장르적 해석 ⑰그러나 수필은 어디까지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또 그 문맥 속에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쓰여지지 않고 삶의 진실이 짙게 묻어 있어야만 한다.</h3> <h3>‘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직접 작품의 제재로 삼는 에세이 문학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 소설, 희곡은 ‘사실의 소재’를 직접 작품의 제재로 삼지 않는다. ‘사실의 소재’에서 얻은 ‘허구적 창작발상’을 소재로 상상적‧허구적 세계를 창작한다. 그러므로 수필에세이이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말은 수필에세이은 허구를 창작하는 시, 소설, 희곡 같은 창작문학이 아닌 이미 있는 사실에 대한 사실적 토의양식의 일반산문문학이라는 뜻이다.(조연현․김영덕)</h3><h3>이상과 같은 에세이에 대한 장르적 해석에 이어서 이태동 교수는 에세이의 기본 속성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h3><h3> </h3><h3>에세이의 기본 속성 ⑥그래서 수필은 몽테뉴 경우처럼 ‘자기와의 대화’ 즉, 명상을 통한 철학적인 발견이나 혹은 사소한 경험에서 위대한 진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일상적인 신변잡기身邊雜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도덕적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h3><h3> </h3><h3><에세이>는 다양한 일반산문 양식들 가운데서 몽테뉴에 의하여 창시된 문학이라는 사실은 지구촌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또한 몽테뉴가 ‘무슨 글’을 ‘어떻게’ 쓰기 위해서 <에세이>라는 양식의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 작법에 관해서도 소상하게 알려져 있다. 그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속성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는 것이고, 그 작법은 서문에 말한 대로 ‘성실한 태도(정신)’와 책 이름 <essai>의 뜻 ‘실험적 작법의 글’이라는 것이다.</essai></h3><h3>에세이가 말하는 <나>는 시, 소설, 희곡 같은 허구적 인물로서의 ‘나’가 아니다. 에세이는 <나>라는 <사실 존재>에 관한 탐색의 글이기 때문에 ‘나’에 관한 도덕적 고뇌의 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신변잡기’ 비난을 들어 온 隨筆은 ‘나’에 관한 도덕적 고뇌의 글들이었는가? 그런데도 1백 년 동안이나 ‘신변잡기’ 비난을 듣고 있는가?</h3><h3>이태동 교수는 에세이는 ‘자기와의 대화’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기와의 대화’를 백철 교수는 대우성(對偶性)의 문학이라고 하였고, 조연현 교수는 ‘토의 문학’이라고 하였다. ‘隨筆’은 자기와의 대화를 어떻게 하기에 ‘신변잡기’ 소리를 1 백 년 동안 듣고 있는가? 문학에서 말하는 자기와의 대화는 혼자 중얼대는 소리가 아니다. 隨筆은 독자는 없고 수필가만 3천 5백이 넘는다. 독자가 없다는 것은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는 뜻이다.</h3><h3> </h3><h3>에세이의 기본 속성 ⑧이렇게 수필이 문학작품으로 승화하려면 일상적인 담론이나 감상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앙드레 지드의 수상록 제목이 시사 하듯이 ‘지상地上의 양식糧食’이 되어야만 한다.</h3><h3> </h3><h3>이태동 교수는 수필은 <‘지상地上의 양식糧食’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양식이 ‘신변잡기’란 말이냐? 저 서릿발 같은 조선의 명문장이 ‘붓 가는 대로’ 되었느냐?</h3><h3>이태동 교수는 분명하게 에세이는 ‘나 자신을 알기 위한 자신과의 대화’ 문학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명상의 문학이며,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문학이라고 말하고 있다.</h3><h3>에세이의 장르적 해석과 그 속성에 이어서 이태동 교수는 수필에세이 작법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기술하고 있다.</h3><h3> </h3><h3>에세이 작법 ⑤그러나 그것은 흰빛에서 다양한 색채를 발견하듯이 일상적인 삶이나 사소한 것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 내지는 도덕성’을 찾아서 계시啓示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h3><h3> </h3><h3>에세이 작법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것은 <일상적인 삶이나 사소한 것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 내지는 도덕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 <사소한 것>이란 작가의 경험, 즉 ‘사실의 소재’를 의미한다. 일반인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삶의 경험 속에서 ‘진실과 도덕성’을 발견하는 것이 에세이 작법이라는 것이다.</h3><h3> </h3><h3>에세이 작법 ⑦그의 작품 ‘오래된 도자기’가 고전으로 평가되는 것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잃어버린 가난’의 소중한 경험을 ‘시정詩情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h3><h3> </h3><h3>몽테뉴로부터 찰스 램에 이르기까지는 242년의 장구한 시차가 있다. 문학이 아니라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본성이다. 오죽하면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였겠는가. 강산도 10년이면 변하는데 인간의 정신문화 바탕인 문학이 무려 사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아무 변화도 없을 수 있는가? 공정호 교수가 분명하게 짚어주고 있는 대로 몽테뉴의 에세이는 찰스 램을 만나면서 ‘고도로 진화한 현대수필’의 면모를 보여주게 되었다.(영미 희곡‧수필 평론 공정호 외)</h3><h3>에세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진화)하였는가? 이태동 교수는 분명하게 ‘시정詩情적으로’ 진화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공정호 교수도 같은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h3> <h3>20세기에 들어서면서 informal essay는 더욱 짧고, 가볍고, 밝게 되는 동시에, 빠르고 암시적인 가운데 그 개인적인 성격이 짙어가고 있다. 집필자의 변덕 ‧ 기분 ‧ 감정 등이 직접 친밀하게 반영되는 점은 抒情詩를 방불케 한다.(공정호 동상)</h3><h3> </h3><h3>필자는 지난 14년 동안 ‘붓 가는 대로 수필계’에 쏟아져 나온 隨筆론과 隨筆 작법서를 고서점까지 뒤져가며 샅샅이 조사하였지만 그 어느 隨筆론이나 隨筆 작법서에도 에세이수필의 창작문학쪽으로 진화를 말하는 논설이 없었다. 저들은 백철교수나 조연현 교수 그 밖에 필자가 소개하는 대한민국 문학학자 그 누구의 이름도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백철 교수는 ‘순문학적 수필’이라고 말하였고, 조연현 교수는 ‘창작적 변화’라고 말하였으며, 윤오영 선생은 ‘비로소 시, 소설 같은 문학 장르’라고 말하였고, 공정호 교수는 ‘20세기 들어서면서 抒情詩를 방불케 고도로 진화한 현대 에세이’라고 분명하게 에세이수필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들 학자들에 이어 이태동 교수도 ‘시정詩情적’이라는 말로 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를 재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隨筆계는 이태동 교수의 현대문학 이론도 행사용 강연만 시키고 隨筆론에 적용하지 않고 있다.</h3><h3> </h3><h3>에세이 작법 ⑨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은 위대한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두 번’일 수 있다.</h3><h3> </h3><h3>문학이란 의미 있는 감동의 예술이다. 수필계의 隨筆론은 ‘작가가 경험한 대로 진솔하게 쓰는 것’이라고 한다. 隨筆집 한 권에 대개 4,50편의 작품이 게재 된다. 한 인간의 생애 동안에 ‘작가가 경험한 고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몇 번이나 있을 수 있을까? 필자의 경우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험한 대로 진솔하게 써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만한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싶다.</h3><h3>이태동 교수는 분명하게 <⑩남다른 통찰력으로써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⑪소재의 선택이란 깊은 도덕적인 의미와 진실이 담겨 있는 숨은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보편적인 값진 진실의 발견 없이 피상적인 사실이나 감상적인 느낌은 결코 아무런 지적인 감동을 주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덕적 진실을 발견 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고 엄히 경계하고 있다. 隨筆가들의 ‘신변잡기’는 ‘보편적인 값진 진실’을 발견하고 쓴 글들인가?</h3><h3> </h3><h3>에세이 작법 ⑫그러나 훌륭한 소재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잘 끌질된 언어’와 ‘엄격한 절제’ 및 ‘치밀한 구성’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시각을 주관적으로 나타낸 단편적인 글인 수필이 훌륭한 문학작품이 되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쉽게 쓴 글이 되지 말아야만 한다.</h3><h3> </h3><h3>‘잘 끌질된 언어’는 연마하여 준비된 문장력을 의미하고, ‘엄격한 절제’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인지 작가로서 작품 제작에 임하는 기본 태도를 의미하며, 치밀한 구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론 이래 2천 수백 년 동안 발전하여 온 문예창작 기본 작법인 구성(플롯)을 의미한다. ⑱그래서 필요에 따라서 핵심적인 주제와 관계가 없는 경험은 ‘과감하게 생략’해야만 된다. 이것뿐만 아니라, 주제를 구체화하기 위한 ‘선택된 경험도 치밀한 질서 속에 절제된 언어’로서 엮어가야만 한다.</h3><h3>그러나 지난 현대문학 1백 년 동안 隨筆론(?)은 학문적(현대문학) 근거가 없는 저마다의 개인적 주장뿐이었다. 그럼에도 隨筆교실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분란하게 통일되어 왔으니 그것은 ‘첨삭’이라는 것이다. 隨筆은 1백 년 동안 ‘문장첨삭’이라는 한 우물만 파 왔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명문장의 샘물이 터졌는가? 아니다. ‘신변잡기’에 이어 ‘隨筆도 문학이냐?’는 조롱만 솟아났을 뿐이다. 왜 隨筆은 무려 1백 년 동안이나 ‘문장첨삭’ 한 우물만 팠는데도 명문장은 안 나오고 ‘隨筆도 문학이냐?’는 조롱만 나왔는가?</h3><h3>그 까닭은 <⑬많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아무런 비평적인 계획’이 없어도 연필 끝에서 글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태동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T.S. 엘리엇이 말하듯이 글을 쓰기 전에 ‘명확한 소재의 선택’과 ‘치밀한 구성’을 위한 ‘계획’이 없으면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수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라는 것이다. 隨筆은 지난 1세기 동안 구성, 즉 <창작․창작적>이 빠진 ‘작문첨삭’만 하여왔던 것이다. ‘수필의 대부’ 피천득 선생이 말한 그대로 ‘플롯이 필요 없는,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되는 글’ 즉 ‘붓 가는 대로’, ‘써지는 대로’ 써 왔던 것이다.</h3><h3>문학에 구성되지 않은 명문장이란 있을 수 없다. 문학문장은 <문학적으로 창조된 문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조연현)</h3><h3> </h3><h3>에세이 작법 ⑭아무리 사소한 것을 소재로 하더라도 ‘선택적’이여야만 하고, ‘시적인 생략’과 ‘유기적인 구성’이 필요하다.</h3><h3> </h3><h3>소재는 ‘선택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문학이란 ‘의도적으로 잘 쓰려고 한’ 작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⑮문학작품은 무질서하고 혼돈된 현실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상상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질서와 목적이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h3><h3>여기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에세이 작법은 에세이는 시, 소설 같은 창작문학이 아니지만 여전히 ‘상상력’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⑯물론 수필은 ‘픽션’이 아니기 때문에 극적인 장치가 없는 산문散文이지만 그것은 ‘상상력으로 만든 질서’가 있어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비전과 아름다운 삶의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h3><h3>콜리지(Coleridge)는 상상력을 제1상상력과 제2상상력으로 나누어 보았다고 한다. ‘제1상상력은 인간이 어떤 대상이나 세계를 인식하는 기본적인 지각능력을 말하고, 제2상상력은 대상을 재구성하고 부분과 부분을 통합하는 의식적인 상상력을 뜻한다.’는 것이다.([시창작 이론과 실제] 오세영 외 81쪽 이숭원-문학평론가 서울여대 교수)</h3><h3>이태동 교수가 말하는 상상력은 먼저 제1상상력을 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필은 픽션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h3><h3>그러나 찰스 램의 수필작법을 詩情的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태동 교수가 수필의 ‘창작적 변화(진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h3><h3>문장의 종류에는 설명문, 논증문, 묘사문, 서사문 등 네 가지가 있다. 창작문학 문장은 일반산문 문장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문장의 종류 네 가지 중에서 일반산문이 주로 사용하는 문장은 설명문과 논증문이다. 그러나 창작문학이 주로 사용하는 문장은 묘사문과 서사문이다. 묘사문은 대상을 상상적으로 변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h3><h3> </h3><h3>①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h3><h3>②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치고 있다.</h3><h3>③빗방울이 유리창에 날벌레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 궁글고 홈이 지고 한다.(문장강의 문덕수)</h3><h3> </h3><h3>①번, <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의 <적시고 있다.>가 ‘있는 그대로’ 쓴 과학적 사실 기술이냐? 우리는 무심코 ‘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고 말도 하고 글도 쓴다. 그러나 그것은 ‘물에 젖은 듯 하다’는 오래된 직유법이 일상어로 굳어진 것이다. 유리창은 종이나 옷처럼 ‘물에 젖은’ 상태가 될 수 없다. 물이 묻어날 뿐이다. 그러나 서술자는 유리창이 마치 종이가 빗물에 젓듯 한다는 <주관적 느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유는 상상적 표현이다.</h3><h3>②번, <빗방울이 유리창에 부딪치고 있다.>의 <부딪치고>는 <의지적 행동>이다. 새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일은 종종 있다. 빗방울이 의지적 행동으로 날아다니는 새란 말이냐? 서술자는 세차게 내리는 비 모양이 마치 새가 유리창에 날아와 부딪치는 것 같다는 <주관적 느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비유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비유는 상상적 표현이다.</h3><h3>③번, <빗방울이 유리창에 날벌레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그르 궁글고 홈이 지고 한다.>는 이것이 ‘隨筆’이라면 더 지독한 거짓말이 된다. <빗방울이 날벌레처럼 매달리>다니? 빗방울이 빗속에 날아다니는 무슨 새로운 종류의 날벌레란 말이냐?</h3><h3><隨筆은 ‘있는 그대로’ 쓰는 글>이라고 주장하는 한 ‘隨筆은 샛빨간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문학은 <거짓말>이 아니다. 문예창작은 진실을 말하기 위한 예술적 방법이다. 몽테뉴의 에세이가 242년 후에 태어난 찰스 램을 만나 <창작․창작적> 에세이로 변화(진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문학문장의 이 같은 ‘창조(상상)적 변화’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隨筆은 지난 1백 년 동안 전혀 이 같은 현대문학 이론을 쳐다도 안 보고 김광섭의 ‘붓 가는 대로’와 피천득의 ‘플롯이 필요 없는 글’을 금과옥조로 삼아왔다.</h3> <h3>에세이 작법 ⑲‘낯설게 하기’를 시도해야만 한다.</h3><h3> </h3><h3>끝으로 이태동 교수는 에세이 작법으로 ‘낯설게 하기’를 권하고 있다. ‘낯설게 하기’는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 말한 것이지만 그 뿌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론에 있다. ‘낯설게 하기’는 <이것>을 [저것]으로 발견하는 창조적 플롯의 기본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태동 교수의 문예작법론은 <詩學>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h3><h3>이태동 교수는 일반산문문학으로서의 수필에세이론에서 시작하여 찰스 램을 만나 <시정(詩情)이 넘치는> 창작․창작적 에세이로 변하고 있는 에세이의 진화론을 펴고 있다. 이태동 교수의 수필에세이론은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현대문학 이론과 원천 차단된 대한민국에만 있는 돌연변이 ‘신변잡기’ 隨筆론이 아니다.</h3><h3> </h3><h3>이상에서 소개한 이태동 교수의 수필에세이론이 찰스 램의 <창작창작․창작적> 에세이론 임을 확인 할 수 있는 자료로 다음과 같은 문건을 더 소개하고자 한다.</h3><h3>[계간수필] 2006 여름호에 천관우의 「西部」라는 작품에 대한 지상 <합평> 자료가 게재 되었다. 합평 참석회원은 사회 유경환 외에 고봉진 김소경 최병호 정진권 구양근 오경자 김진식 이태동 신현복 송규호 변해명 박영자 고임순 김시헌 유혜자 정목일 정선모 이응백 허세욱 김태길 등 20인이다.</h3><h3>합평 대상 작품 「西部」 전문은 다음과 같다.</h3><h3> </h3><h3>西部 –천관우</h3><h3> </h3><h3>얼마 전에 서대문 밖, 고양군과 거의 접경되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새로 지은 후생주택 촌이다. 원체가 게을러 이런 집을 얻어드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마침 시골에서 이사를 해야 하는 R형이 이 마을로 가겠다기에 그러면 나도 따라가 볼까 하는 생각을 겨우 갖게 된 것이다.</h3><h3>멀다. 무악재를 넘어 또 고개를 몇인가 넘어, 버스에서 내려서도 논가의 길을 7,8 분 걸어 들어간다. 바로 이웃이 된 R형네 꼬마가 ‘서울로 이사 간다더니 여기도 시골 아닙니까’ 하고 불평을 늘어놓더라는 말을 듣고 그럴 게라고 생각했다.</h3><h3>그러나 남향의 이 마을을 둘러싼 산들이 그만하면 울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은 나무들이 들어섰고, 남쪽으로 탁 트인 들의 누런 물결이 탐스러웠다. 그리고 우선 마당에서 쳐다보는 하늘이 한두 평이나 될까 말까 하던 것이 여기서는 들 너머 머언 산까지 몇 천 평은 될, 넓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것이 시원스러웠다.</h3><h3>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는 좀 서글펐다. 그날로 방에 도배를 하고 부엌에 시멘트를 바르고 전등을 달고 수도꼭지를 끼워놓고 나니까, 그제서야 약간은 사람 사는 곳 같아졌지만 이제부터 손길이 가야 할 데가 얼른 헤아려보아도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을 알게 되자 ‘사람 살던 데를 들어야지 새 집은 힘이 들 걸’ 하던 친구의 충고가 새삼스러웠다.</h3><h3>새 집에 들던 날 밤에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뭐 대단한 집이라고 큰 걱정할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를 살아도 내 사는 집이라서 그랬던지 아주 걱정이 안 되는 도리는 없었다. 이튿날 아침, 옆 산의 큰 암벽에 어제까지 없던 큰 폭포가 생긴 것이 신기로웠다. 고르지 못한 마당 여기저기에서 물구덩이가 생겼다.</h3><h3>며칠 아침을 새겨 마당을 고르고 배추씨 무씨를 뿌렸다. 철이 늦어 나오기나 할까 했더니 며칠 안에 파랗게 돋아나왔다. 아쉬운 대로 산 밑에 핀 코스모스 몇 그루 옮겨다가 마당가에 심어놓았다.</h3><h3>그럭저럭 며칠이 지나니까 집집마다 마당이 그럴듯하게 꾸며져 갔다. 좀 일찍 이사 온 집에서는 화초의 덩굴이 벽을 기어 올라갔고 여기저기서 담을 쌓아 하나씩 둘씩 구획이 되어갔다. 담을 쌓고 대문을 달아야 문패를 붙이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료품에 잡화를 겸한 가게가 하나 있더니 며칠 안 되어서 연탄가게가 생기고, 쌀가게가 생기고, 잡화가게가 또 하나 생겼다.</h3><h3>이렇게 마을이 짜여가는 동안에 답답한 일들도 생겼다. 쓰레기를 처치하는 일이라든가, 시민증을 고치는 일이라든가, 도대체 누구에게 말을 붙여야 좋을지 모를 일들이 생겼다. 미국 서부에 개척 당시에는 이럴 때 어떻게 했는지 잘 알 수는 없으나, 이 마을의 경우 하루는 통문이 돌았다. 며칟날 몇 시에 어린이놀이터에서 통장을 뽑을 테니 나오라는 것이었다. 어린이놀이터는 이 마을을 설계할 때부터 만들어놓은 넓은 터다.</h3><h3>먼저 이사 온 집들은 대개 서로들 짐작을 하는 모양인지 그 중의 어떤 이가 통장으로 뽑혔다. 그러고 나서 마을이 몇 반으로 나뉘고 반마다 반장이 뽑힌 것은 불과 며칠 동안에 쾌속으로 진행이 되었다. 동적부(洞籍簿) 용지가 배부되고 곧 동세를 무는 떳떳한 동민의 한 사람이 된 것은 물론이다.</h3><h3>미국 서부라니 말인데, 이 마을은 아직까지는 보안관 같은 것이 필요가 없이 지냈다. 도둑이 들어와 봐야 가져 갈 것이나 있나 하고 웃었지만, 또 담이 없는 동안은 앞집이 뒷집이요, 뒷집이 옆집이라 도둑이 들어오기도 어려웠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집집마다 길 가까운 창에는 창살들이 늘어갔고, 우리가 동적(洞籍)에 오른 얼마 후 경관이 호구조사를 하러 왔다.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도 마을의 보안을 해 주는 수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h3><h3>아침이 좀 늦고 저녁도 좀 늦은 직장이라, 버스에서 내리면 호젓한 논가의 밤길을 걷게 되는 것도 일과다. 보안등이라 한다던가, 띄엄띄엄 길을 비춰주는 가로등이 한 줄로 죽 서서 집집마다 환히 전등을 켠 마을까지 데려다준다. 군데군데 파란 전등을 켠 집도 멀리서부터 보인다.</h3><h3>밤하늘에 내가 제일 알아보기 쉬운 것은 북두칠성이다. 얼마 전까지도 나지막한 언덕 위에 누워 있더니, 요즘은 그것조차 반 넘어 가리우고 말았다. 김장철이 가까워 온 것이다.</h3><h3>마당에 돋아났던 무 배추는 더러 어린 것을 솎아 먹기도 했지만 몇 포기를 남기고는 모두 제물에 시들어버렸다. 내년에는 거름도 하고 가꾸기도 해야 하겠다. 그 때쯤 되면 이 마을이 좀 더 훤해 보일 것도 같다. 이웃집에서는 줄장미를 심겠다고 하고, 또 다른 이웃에서는 등나무를 심겠다 한다. 그렇게 되면 게으른 나도 무엇인가 심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h3><h3>멀디 멀다던 이 마을도 하루 한 번을 내왕하기 두 달 남짓에 그리 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도 되었다. 아침마다 문안을 향해 들어가는 길 ― 차가 숨 가쁘게 무악재마루를 올라서면 문득 안하(眼下)에 독립문과 감영(監營) 앞으로 뚫리는 큰 길과 그 멀리 대개는 안개가 서리는 서울의 한구석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상쾌하기도 하고, 그 맛을 보자면 되도록 운전대 근처에 자리를 잡아야 된다는 요령도 터득했다. 서울의 서부가 정이 들어간다는 것일까.</h3><h3>비가 쏟아지면 큰 폭포가 생기는 그 암벽 근처를 어느 날 아침에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 계곡의 조그만 물줄기를 따라 솥을 걸어서 꺼멓게 그을은 돌무더기가 보이고 철없는 친구들이 흔히 바위에 적어놓은 무명의 성명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었다. 북한산 서쪽 끝 줄기, 여기는 탑승객들이 찾아오는 골짜기였던 것이다.</h3><h3>그 마을에 내가 살고 있다. 아무리 먼 곳이 아니라고 마음을 먹어본들 별수가 없이 먼 서부인가보다.</h3><h3>(천관우 <西部> 전문)</h3><h3>서구 개척지 같은 인상이 드는 한적한 신흥주택개발지역으로 이사한 후 자리 잡기까지 과정을 언론인답게 조리 있게 쓴 글이다. ‘隨筆’이라는 글이 이처럼 ‘있었던 일’을 ‘조리 있게’ 쓰는 것으로 만족하는 글이라면 잘 쓴 隨筆이라고 할 수 있다.</h3><h3>그러나 문학 독자들, 그들이 문학이 무엇인지 아는 독자들이라면 종결 문장, “아무리 먼 곳이 아니라고 마음을 먹어본들 별수가 없이 먼 서부인가보다.”를 읽었을 때 여전히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인에는 두 종류의 문인이 있다. 하나는 문학 독자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다. ‘자기가 좋아서 문학을 한다’는 말은 독자를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독자가 없는 문인이란 탄생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학뿐만이 아니고 모든 예술은 감상자를 위해서 태어난다. 독자 없는 훌륭한 작가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작가는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독창적’ 작품을 창작해야 된다는 데에 예술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隨筆은 지난 1백 년 동안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독창적 글을 썼기 때문에 독자에게 버림받았는가?</h3><h3>사회자(유경환)는 “<서부>는 ‘문학작품으로서의 수필’로 보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합평토론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태동 교수와 오경자 선생을 제외한 나머지 참석 隨筆가들은 무엇이라고 든 좋은 점 한 두 가지를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 작품에 문학성이 없다고 하는데 약간 화가’ 난다고도 하였다. 隨筆가들의 발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h3> <h3>고봉진 : ‘서부’의 문장에서도 물론 그런 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h3><h3>김소경 : 제목이 좋습니다.</h3><h3>정진권 : 환경이 하나씩 정리되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h3><h3>구양근 : 이 작품은 현대 수준에 가까이 있는 좋은 문학적인 수필이라고 봅니다.</h3><h3>오경자 : 글쎄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편집자 주 : ‘서부’ 작품 배경인 연신내 근처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는 뜻)</h3><h3>김진식 : ‘평범한 인간’을 그려낸 것에 의미를 두어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h3><h3>신현복 :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박하며 인간적 냄새가 나는 글이에요.</h3><h3>송규호 : 이 작품이 수필이라고 했을 때에 외적인 생활, 환경 등등은 너무도 친절하게 잘 나타나 있어요.</h3><h3>변해명 : 울타리에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별도 쳐다보고 하면서 일상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h3><h3>박영자 : 저는 이 작품에 문학성이 없다고 하는데 약간 화가 나네요.</h3><h3>고임순 : 마치 제가 그 시절 거기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h3><h3>김시헌 : 제목에 매력을 느꼈습니다.</h3><h3>유혜자 : 실감나는 묘사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읽을수록 친근하고 잔잔한 감동이 생겨났어요.</h3><h3>정목일 : 그 당시의 상황을 잘 그렸고, 수필로서도 잘 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h3><h3>정선모 : 이 작품은 서술과 묘사가 조화된 경수필이며 작가의 체험이 잘 드러난 수필입니다.</h3><h3>이응백 : 여유롭고 소박한 글이에요.</h3><h3>허세욱 : 작품 선정에 대하여 사실 저는 읽고 감동했습니다.</h3><h3>김태길 : 내가 본 인상으로는 기가 세고 자존심이 천정부지로 높은 분입니다. 그런데 수필을 쓸 때는 그런 점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좋더군요.</h3><h3> </h3><h3>19인 수필가 중에서 오경자 선생 한 분만 빼 놓고 전원이 ‘무엇이라고 든’ 긍정적인 점 한 가지씩을 말 하였다. 그러나 이태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딱 부러지게 ‘아니다’라고 비평하였다.</h3><h3> </h3><h3>이태동 : 저는 이것이 문학이 아니고, 여적이나 편지글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봅니다. 문학이라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문학입니다. 역사학자의 잡문을 연구하러 온 것이 아니지요. 사실 이분을 존경하고 특히 붓글씨도 좋지만, 순수한 문학 가치가 있는 것을 토론해야 한국 문학 수필의 격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름이 없는 수필가라도 좋은 수필을 찾아야 합니다. 문학적으로 별로 가치가 없는 글을 가지고 자꾸 얘기하려니까 참 어렵네요.</h3><h3> </h3><h3>이태동 교수가 「西部」를 ‘문학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이유는 문학의 본질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h3><h3>놀라운 사실은 隨筆가들의 ‘무엇이라고 든 좋은 점’ 중에 이태동 교수가 지적한 문학의 본질에 관한 언급을 한 분은 한 분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 흥미 있는 일은 隨筆가들이 말한 좋은 점은 한 마디로 ‘문장이 좋다’는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마치 못 볼 것을 무심코 본 듯한 민망함이 느껴지지 않는가!</h3><h3>수필은 문장만 좋으면 되는가? 그렇다면 이태동 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항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h3><h3>“교수님, 문학이란 문장이 아닌가요? 문장만 좋으면 됐지 무슨 딴소리가 필요한가요?”</h3><h3>이태동 교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분명한 사실은 문과대학 교수이시고, 그 자신 수필에세이작품을 쓰고 있는 수필작가이며,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신 분이 <문장의 절대 중요성>을 모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문장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나머지 隨筆가 전원이 결과적으로 ‘문장이 좋기 때문에 隨筆 작품’이라고 평한 이 작품을 혼자서만 단호히 ‘문학적으로 별로 가치가 없는 글을 가지고 자꾸 얘기하려니까 참 어렵네요.’라고 혹평을 하였을까?</h3><h3>이태동 교수는 문장이 아닌 다른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학이라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야 합니다.’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h3><h3>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는 장면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하였다.(창세기 2:7)</h3><h3>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령’을 문학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가? 현대문학의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지구촌 문학 학자들이 동의하는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의 생령>을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이상섭 교수는 다음과 같이 詩學을 소개하고 있다.</h3><h3> </h3><h3>그런고로 플롯은 제일 원리이며, 비유적으로 말해서 비극의 영혼이라 할 수 있다.</h3><h3>플롯이 비극의, 문학의 목적이며 영혼이라면 그것이 없으면 문학도 없어진다는 말이니까 그 중요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문학이론의 역사적 전개 이상섭)</h3><h3> </h3><h3>‘플롯이 비극의, 즉 문학의 목적이며 영혼이라면 그것이 없으면 문학이 아니다’라는 말이 아닌가? ‘영혼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 같은 논리인 것이다.</h3><h3>놀라운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장’이야 말로 문학의 목적이며 영혼이라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플롯’이야말로 문학의 목적이며 영혼이라고 하였다. 김광섭과 피천득의 충실한 제자들인 隨筆가들에게는 엉뚱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대한민국 隨筆가들이 그렇게도 끔찍하게 여기는 ‘문장’은 곁으로 밀어놓고 ‘플롯’을 문학의 목적이며 영혼이라고 하였을까? 플롯이란 무엇인가?</h3><h3>플롯은 사건들의 배열이라고 하였다. 사건들의 배열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필연적(necessary)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h3><h3>그렇게 플롯을 만들어 놓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플롯의 결과는 개연성(蓋然性․probability․있을법한)에 있다고 하였다.(이상 이상섭 참조) 여기서 말하는 개연성이란 그 한 작품의 독창적 창작을 의미한다.</h3><h3>그렇다면 개연성을 창조하는 플롯의 실제인 필연성이란 무엇인가? E.M. 포스터는 이를 ‘인과율’이라고 대답해 주고 있다.(소설의 양상 E.M. 포스터 정병조 역)</h3><h3>이태동 교수가 말한 ‘‘문학이라면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야’ 문학이라는 뜻은 다름 아닌 ‘인과율’이었던 것이다.</h3> <h3>아이가 친구를 따라 잡으려고 뛰어가다 넘어졌다.(경쟁)</h3><h3>아이가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우려고 뛰어가다 넘어졌다.(욕심)</h3><h3>아이가 엄마를 보고 좋아서 뛰어가다 넘어졌다.(기쁨)</h3><h3> </h3><h3>세 이야기 다 ‘아이가 뛰어가다 넘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뛰어간’ 이유가 각기 다르다. 똑 같은 ‘넘어졌다’는 사건이 각기 다른 원인(필연․인과율)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된다.</h3><h3>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은 ‘행위의 모방’이라고 하였을 때 그 ‘행위’는 <인과율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행위의 인과율! 이것 없이 문학은 없다! 이것이 이태동 교수가 말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문학의 본질 그것이 아닌가?</h3><h3>인과율(因果律)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영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인과율)이야말로 문학의 목적이며 영혼이라고 하였던 것이다.</h3><h3>명문장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모든 명문장이 다 <플롯 인과율>을 창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양문학의 역사는 명문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촌에 동양의 명문장을 따라 올 명문장이 어디 또 있는가? 그런데 왜 한국은 서양이 주는 노벨문학상을 아직 한 번도 못 타고 있는가? 명문장이 부족해서인가? 창조 곧 플롯, 곧 문학의 영혼이 부족해서가 아닐까?</h3><h3>특별히 대한민국 隨筆은 ‘문장첨삭’이라는 것밖에 모르는 글쓰기를 무려 1세기 동안이나 하여 왔다. 그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지난 현대문학 1백 년 동안 전국의 수없이 많은 ‘隨筆교실’마다 마치 한 어미 뱃속에서 나온 친형제지간인 것처럼 오직 ‘문장첨삭’ 하나에만 매달려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隨筆은 노벨문학상은커녕 아직도 ‘신변잡기’ 비난을 듣고 있는가?</h3><h3>우리나라 문학예술 전반은 갑오경장(1894)을 기점으로 서구현대문예사조에 의한 창조적 문학예술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현대미술, 현대음악, 현대무용이라 부르고 문학도 고전문학과 구분하여 <현대문학>이라고 부른다.</h3><h3>그러나 오직 隨筆만이 여기서 스스로 제외되어 몽테뉴의 <성실한 정신(태도)의 실험적 작법의 글>이라는 개념을 선택하지 않고 엉뚱하기 짝이 없는 홍매(洪邁)의 ‘붓 가는 대로’를 개념으로 삼았다. 이것이 隨筆이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신변잡기’ 비난을 듣게 된 근본원인이다.</h3><h3>그럼에도 지난 1세기 동안 수필계는 이 같은 隨筆의 비문학성을 바로 잡고자 몸부림 친 흔적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들은 이 같은 수필의 비문학성은 외면한 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간의 소문대로 ‘신변잡기 신인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무 글이나 써서 돈 1백만 원만 들고 가면 신인추천을 해 준다는.</h3><h3>필자가 백철 교수의 <문학개론>을 가르친다고 하였더니 어느 隨筆가가 ‘그런 케케묵은 책을 무엇 때문에 배우느냐’고 하더란다. 백철 교수의 저서가 케케묵은 책이라면 2천 수백 년 전 <詩學>은 어떻게 되는가? 지금도 지구촌 문학 학자들은 <詩學>을 펴놓고 연구하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고 있다. 누가 隨筆계를 이토록 참혹한 무식의 집단으로 만들어 놓았는가? ‘창작’이 무엇이고, ‘일반산문’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隨筆계 지도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지 않은가!</h3><h3>예수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하였다. 예수의 검은 다른 것이 아닌 ‘바른말’이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이여!’ 바른 말의 결과가 십자가가 되었다. 십자가는 세상의 구원이다.</h3><h3>4.19는 썩은 ‘자유당’을 향한 국민의 ‘바른말’이었다.</h3><h3>5.18은 악랄한 군부정치를 향한 국민의 ‘바른말’이었다.</h3><h3>‘촛불’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치거짓’을 향한 국민의 분노며 ‘바른말’이었다.</h3><h3>문학은 세상을 향한 ‘바른말’이다.</h3><h3>隨筆가들은 ‘붓 가는 대로’라는 ‘隨筆’ 한문자 뜻 유래가 다음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h3><h3> </h3><h3>豫習懶 讀書不多 意之所之 隨卽記錄 因其後先 無復詮次 故曰隨筆.</h3><h3>나는 게으른 탓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으나, 그때그때 뜻한 바가 있으면 앞뒤의 차례를 챙길 것도 없이 바로 바로 기록하여 놓은 것이기 때문에 隨筆이라 일컫게 되었다.(문학개설 장백일 홍석형 공저 탐구당 260쪽)</h3><h3> </h3><h3>이 말은 ‘隨筆’이라는 이름을 처음 쓰기 시작하였다는 홍매(洪邁 1123∼1202)라는 사람이 <容齋隨筆> 서문에서 직접 한 말이다. 즉 홍매 자신이 ‘붓 가는 대로’란 <앞뒤의 차례를 챙길 것도 없이’ + 바로 바로 기록>이라는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h3><h3><현대문학 이론>의 문학은 플롯을 목적이자 영혼으로 여기는 문학이다.(아리스토텔레스) 플롯의 기본은 ‘앞뒤를 창조적으로 배열’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뒤의 차례를 챙길 것도 없’다니 말이 되느냐? 그렇다면 동양의 명문장은 ‘앞뒤의 차례를 챙길 것도 없이 + 바로 바로 기록’해도 된다는 것이냐? <앞뒤의 차례를 챙길 것도 없이>는 서구문학에서는 말도 안 되고, 동양의 저 지엄한 명문장론(體裁)에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반문명, 반문장론이다. 그런데도 ‘붓 가는 대로’ 글을 쓰겠다는 것이냐? ‘신변잡기’란 바로 ‘앞뒤의 차례를 챙길 것도 없이 + 바로 바로 기록’한 글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정신들이 있은 사람들이냐?</h3><h3>隨筆(본래 뜻 : ‘붓 가는 대로’)이 현대문학 초창기에 아차 실수하여 <현대문학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참고 : 143쪽)만이라도 되었다면 ‘소설小說’(본래 뜻 : ‘시정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만큼 아름다울 수도 있었던 이름이었다. 그러나 지난 1세기 동안 ‘붓 가는 대로 수필인’들은 隨筆이라는 이름을 <신변잡기·잡문의 ‘대명사’>로 만들어왔다.</h3><h3>소설가들은 ‘시정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라는 본래 뜻은 버리고 ‘소설’이라는 이름만 채용 할 줄 아는 창조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隨筆가들은 ‘붓 가는 대로’라는 반문명, 반문학적 뜻을 그들의 글쓰기 정신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h3><h3>이태동 교수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신변잡기 隨筆가’가 아니다. 이태동 교수는 위에서 살펴 본 그의 수필에세이론에 나타나 있는 대로 몽테뉴와 찰스 램의 뒤를 잇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학 계보학에 근거한 현대문학 학자이고, 평론가이고, 에세이스트이다.</h3><h3>서두에서 말한 대로 반세기 전에 피천득의 <수필> 대신 이태동 교수의 <소재의 선택과 생략>이 교과서에 게재 되었더라면 대한민국 隨筆은 진즉에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창작․창작적 에세이수필>로 변화하였을 것이다. 아쉽고 분한 일이다.</h3><h3> </h3><h3><이태동></h3><h3>미국 캐롤라이나(채플힐) 대학원 영문과 졸업</h3><h3>서울대학교 인문대 영문과 박사학위</h3><h3>미국 하버드대학 엔칭연구소 초빙연구원</h3><h3>스탠퍼드 및 듀크대학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h3><h3>서강대 영문과 교수</h3><h3>문학사상 평론으로 등단</h3> <h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h3><h3> </h3><h3>안톤 슈낙 (1892∼1973)</h3><h3> </h3><h3>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h3><h3>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h3><h3>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내 너를 사랑하노라……”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h3><h3>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h3><h3>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 가를 왔다 갔다 하는 그 동물의 번쩍이는 눈,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h3><h3>횔덜린(1770∼1843 독일 서정시인)의 시, 아이헨도르프(1788∼1857 독일 낭만파 민요시인)의 가곡.</h3><h3>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를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h3><h3>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제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老木)이었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h3><h3>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 밤, 누구인가 모래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h3><h3>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h3><h3>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제씨(諸氏)의 강연 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h3><h3>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h3><h3>하고 많은 날도 도회(都會)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h3><h3>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h3><h3>초행의 낯 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 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h3><h3>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찍이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h3><h3>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 G현.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 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滿月)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루트 함순’(1859∼1952 노르웨이 작가. 1920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난, 방랑, 노동이 그의 작품의 주제다)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h3><h3><br></h3><h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차경아 옮김)</h3> <h3>|작법공부|</h3><h3>인터넷 자료 검색을 해 보니 교과서에 실렸었다는 김진섭 선생의 번역본도 있고, 새 번역본도 있다. 필자는 김진섭 선생 번역본으로 공부하였으므로 애정이 더 가지만 ‘初秋의 陽光’ 같은 한문 투가 이제는 낯이 설다. 그래서 새 번역을 텍스트로 삼기로 했다. 차경아 선생께 감사드린다.</h3><h3>필자가 이 작품에서 공부해 보고 싶은 것은 이 한편의 <산문>이 무엇을 어떻게 썼기에 평생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 있는가에 있다. 필자와 같은 연배(70대 후반) 독자는 모두 필자의 이 같은 평생 ‘감동’에 동의 할 것이다. 자료 검색을 하다 보니 어떤 분은 詩처럼 외우고 다녔다는 분도 있다.</h3><h3>이 작품은 분명 운문의 시가 아닌 <산문에세이>이다. 그런데 시처럼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나는 隨筆을 시처럼 외우고 다녔다는 말은 들어 본 일이 없다. 그런 공상 조차 해 본 일 없다.</h3><h3>필자가 이 작품을 작법공부(비평) 대상 작품으로 선정하게 된 것은 금호 특집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산문․에세이를 왜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이 한 편의 ‘산문’은 무엇이기에 어떤 사람은 시처럼 외우고 다닐 정도로 감동 먹고, 저 수많은 ‘隨筆’들은 무엇이기에 무려 1백 년 동안 ‘신변잡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가?</h3><h3> </h3><h3>1. 이 작품은 <산문의 시> 작품이다.</h3><h3>시詩가 시인의 감정․정서를 노래한 것이듯 <문학 산문>은 작가의 감정․정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글이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많은 한국 사람에게 평생의 감동이 되고 있는 문학적 이유가 바로 <감정․정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h3><h3>이 작품은 분명 ‘산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작품의 문학적 감동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h3><h3>산문, 즉 에세이는 본래부터 창작문학이 아닌 일반산문문학으로 태어난 문학양식이다. 그러므로 에세이 작품에서는 <창작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에세이는 <창작 감동> 대신 설득하고, 깨닫게 하고, 인식하게 한다. 술에 취하기 위해서는 술을 마셔야 되듯 ‘창작 감동’에 취하기 위해서는 <산문>이 아닌 시나 소설 같은 <창작 작품>을 읽어야 된다.</h3><h3>그런데 이 작품은 분명 산문에세이인데 거의 모든 필자 연배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평생 창작 감동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문학 학문적 대답이 있는가? 필자는 평생 문학을 읽어 왔지만 <산문의 창조적 감동>에 대한 문학 학문적 대답을 찾아보지 못하였다. 할 수 없이 필자 자신이 그 원인을 찾아 이론화 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2017)이다.</h3><h3>필자가 찾아낸 대답은 몽테뉴 에세이의 진화현상에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심지어 태양도 수명이 있다고 한다. 수명이 있다는 것은 날마다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날마다 어제의 태양과 다른 오늘의 햇볕을 쬐는 것이다.</h3><h3>몽테뉴의 에세이는 태어날 때는 <개념으로 개념을 말하는 토의 양식의 비창작 일반산문 양식>으로 태어났지만 그로부터 242년 후에 태어난 찰스 램에 이르렀을 때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이것이 지구촌 문학 학자들의 에세이에 대한 학설이다. 이를 문학의 진화현상이라고 한다.</h3><h3>이 같은 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데서부터 시작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이론이다. 이에 의하면 이 작품은 <산문형식으로 쓴 새로운 양식의 詩문학>이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많은 독자들에게 <창작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h3><h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것들’은 ‘슬픔’이라는 <동일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반복 서술 형식>을 말 해 준다. ‘것’은 한 문장 단위의 ‘것’일 수도 있고, 한 문단 단위의 ‘것’일 수도 있다.</h3><h3>왜 ‘그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언질은 없다. 마치 시詩가 직관적 언어를 토설하듯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고만 서술하고 있다. 즉 이 작품은 詩가 직관적 詩語를 운문으로 토설하듯 직관적 시어를 산문형식으로 토설하고 있는 새로운 양식의 詩 작품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새로운 양식의 詩를 <산문의 시>라고 해석한다.</h3><h3>이 작품에서 말하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항목 하나하나는 산문형식으로 된 詩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詩語가 바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이다. 그것은 필자가 소년시절부터 경험하여 온 그대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단 한 줄의 詩語다.</h3><h3>필자는 평생 문학에 몸을 담아왔지만 이 작품을 시詩 작품이라고 비평한 글은 읽어보지 못하였다. 당연한 일이다. 산문을 시詩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문장 형식으로서의 운문과 산문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가 될 수 있고, 두 번째는 시의 본질과 산문의 본질을 구분 못하는 무지가 될 수도 있다.</h3><h3>이 같은 무지 오해 소지를 잘 알면서도 필자는 이 작품에 대한 비평 결론을 <산문의 시詩>라는 새로운 양식 詩 작품이라고 하였다. <산문의 시詩> 개념의 본질적 근거가 무엇인가?</h3><h3>그 근거는 필자는 모든 예술은 시에서 발원하여 미술도 되고, 음악도 되었으며, 문학의 경우는 서사시도 되고, 소설도 되고, 희곡도 되었다고 배웠고, 실제로 평생 문학과 살아 보니 그것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 문학예술에 몸담아 온 필자에게는 시 아닌 소설 없고, 시 아닌 연극, 영화 없고, 시 아닌 노래, 그림이 없었다.</h3><h3>두 번째는 앞서 말한 대로 예술은 시대와 사람을 따라 변하고 진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운문형식으로만 표현하던 시대는 19세기 <산문시> 등장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h3><h3>산문도 시일 수 있다는 뜻은 문장형식은 산문이지만 내용은 詩라는 뜻이다. 이것이 <산문시>라는 이름의 뜻이다.</h3><h3>이를 산문 쪽에서 말하면 ‘산문으로도 詩를 창작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h3><h3><산문시>의 산문은 세상이 다 아는 대로 <완전한 산문>은 아니다. 산문시는 산문형식을 빌려 쓴 운문 시, 즉 운문 시의 산문적 변형일 뿐이다. <산문시>는 여전히 전통 운문시 문학인 것이다.</h3><h3>그러나 <산문의 시>는 시 쪽에서 산문 쪽으로 변화(진화)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산문 쪽에서 시 쪽으로 진화한 새로운 양식의 <산문형식의 시 문학>이다.</h3><h3>‘산문시’의 출현은 <산문의 시> 탄생을 예고 해 주는 사건이었다. <산문시>와 <산문의 시>는 다르다. <산문시>는 운문시의 산문적 변형이고, <산문의 시>는 <완전한 산문>의 시적 변형이다. 문학은 끊임없이 진화한다.</h3><h3>필자는 이 같은 사실을 찰스 램의 ‘순문학적 수필’(백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 손에 의하여 창작된 작품들을 조사해 본 결과 부정할 수 없는 문학현실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 같은 새로운 양식의 문학을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h3><h3> </h3><h3>2. 隨筆은 <문학화 작업>을 하지 않는 글쓰기다.</h3><h3>소설로 대표되는 서사문학은 까마득한 시대의 <일리아드>까지 많은 독자들이 감동한다. 그 감동은 말 할 것도 없이 <창작 감동>이다. 그러나 산문에세이은 앞서 말한 대로 본질상 <창작 감동>이 있을 수 없는 일반산문문학이다.</h3><h3>그러나 일반산문의 대표적 양식으로 일컬어지는 에세이의 경우 찰스 램을 만난 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창작․창작적 에세이>로 변하여 왔고 지금도 변화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찰스 램 양식의 <창작․창작적 에세이> 작품에서는 <창작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되지 않는가? 그 같은 창작 감동의 대표적 작품이 찰스 램의 <꿈속의 아이들>이다.</h3><h3>필자의 이 같은 논리가 학문적임이 검증된다면, 왜 隨筆은 지난 현대문학 1세기 동안 처음부터 ‘신변잡기’ 비난을 듣고 있는가, 왜 몽테뉴의 빼어난 일반산문으로서의 칭찬도 못 듣고, 찰스 램의 창작 감동도 주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이 밝혀질 것이다.</h3> <h3>우리나라에 에세이가 수입된 이래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에세이 문학에는 몽테뉴와 그의 뒤를 잇는 진정한 의미의 에세이스트는 현재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隨筆회원 3천 5백에 비해서 실로 몇 명 안 된다 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隨筆가들은 거의 에세이를 안 쓴다. 안 쓰는 것일까, 못 쓰는 것일까?</h3><h3>隨筆가들은 에세이를 안 쓰면서 무엇을 쓰고 있는가? 찰스 램 양식의 창작․창작적 에세이를 쓰고 있는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바로 ‘신변잡기’라는 세평의 뜻이 아닌가.</h3><h3>일반산문문학의 대표적 양식인 <에세이>는 지금도 온 지구촌 문학 독자뿐 아니라 일반 인문학 독자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누가 감히 몽테뉴의 에세이를 향해서 ‘신변잡기’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隨筆은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신변잡기’ 비난을 듣기 시작해서 무려 1백 년 동안이나 ‘신변잡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 14년 동안 필자가 그 이유를 찾아 조사해 본 결과 隨筆의 ‘붓 가는 대로’ 때문 외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h3><h3>2018년 오늘 현재의 隨筆은 사실상 ‘隨筆가들끼리만 돌려보는 글’이 되어 있다. 금호 특집으로 엮고 있는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의 산문․에세이는 隨筆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불티나게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隨筆은 서점에 진열조차 되지 못한다. 그 문학적 이유는 隨筆은 처음부터 <작가의 감정․정서에 대한 문학화 작업>을 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여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h3><h3><작가의 감정․정서에 대한 문학화 작업>이란 무슨 뜻인가? 책 한 권쯤 써야 될 듯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 좁은 잡지 편집 난에 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필자는 국어사전 낱말 뜻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우선 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h3><h3><문학>이라는 낱말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국어사전들 모두가 다 똑 같다고 할 수 있다.</h3><h3> </h3><h3>문학 : 정서·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문자로써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에센스국어사전)</h3><h3> </h3><h3>필자는 가장 훌륭한 문학이론서는 국어사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그렇게 믿고 있는 국어사전은 <문학>이란 무엇이라고 말 해주고 있는가?</h3><h3>문학의 소재는 감정과 사상이라고 말해주고 있다.</h3><h3>그 감정과 사상을 어떻게(작법) 해야 문학이 된다고 말해 주고 있는가?</h3><h3>상상의 힘을 빌어서 + 문자 언어로 표현해야 된다고 말해 주고 있다.</h3><h3>놀랍게도 국어사전은 문학이라는 것의 내용과 작법까지 단 한 줄의 낱말풀이로 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h3><h3>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내용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감정·정서가 아닌가?</h3><h3>안톤 슈낙은 이 감정·정서를 어떻게 하였기에 반세기 전 소년시절에 가슴에 흔적을 남겼던 감동을 나이 70후반인 지금도 다시 불러일으키게 하는가? ‘있는 그대로 써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대로 써서’ 우리를 감동케 하는가?</h3><h3>아니다! 나이 먹은 후에 다시 읽어보아도 여전히 소년 시절에 읽었던 같은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까닭은 안톤 슈낙은 국어사전의 문학론대로 <상상적인 방법과 문학문장 방법>으로 우리를 그의 슬픔에 동참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h3><h3>국어사전이라는 필자가 믿는 가장 훌륭한 문학이론서가 말 해 주는 <문학화 작업>의 본질적 방법은 <상상적 방법>과 <문학문장 방법>에 있었던 것이다. 문학의 그 대표적 문학화 방법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작법인 <시적 직관의 산문적 토설>이었던 것이다. <시詩적>은 ‘상상’을 의미하고, <직관적 산문>은 문학문장을 의미한다.</h3><h3>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현상의 공통점이 이 같은 산문형식의 새로운 詩 창작 양식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를 <시的 발상의 산문的 형상화>라고 정리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 창작개념이다.</h3><h3> </h3><h3>3. 隨筆계에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隨筆론은 한 권도 없다.</h3><h3>지금까지 우리에게는 이 작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같은 <창작적 에세이> 작품을 비평할 이론적 근거가 없었다. 그 결과 단순히 ‘산문’ 혹은 ‘隨筆작품’이라고만 하여 왔다. 그것은 정확한 비평이 될 수 없다. 더구나 隨筆은 ‘붓 가는 대로 隨筆’을 의미한다. 이 작품을 <붓 가는 대로 隨筆>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안톤 슈낙이 ‘붓 가는 대로’ 글을 썼단 말이냐?</h3><h3>지난 1백 년 동안 隨筆계에 쏟아져 나온 隨筆론 중에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隨筆론은 단 한 권도 없다. 지난해에 발간한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은 隨筆론이 아니다.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에세이학 이론체계다.</h3><h3>隨筆계의 隨筆론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隨筆이라는 글에 대한 개인적 상식론에 얼마간의 교과서적 <문장론>과 <작문작법>을 섞어 쓴 글들이다. 저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붓 가는 대로’ 외에는 일체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이다. 저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현대문학>, 즉 우리 선배 문학 학자들이 받아들여 우리 문학으로 소화한 <우리의 현대문학 이론>을 전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의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수필에세이론>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것化한 현대문학 이론>을 수필작법에 적용할 수도 없었고, 가르칠 수도 없었던 것이다.</h3><h3>필자가 어떻게 저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확신 있게 말 할 수 있는가?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 말 할 수 있는 존재다. 저들의 책과 글에는 현대문학 이론이 전혀 없다. 저들이 현대문학 학문 공부를 안 했다는 이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무엇이겠는가?</h3><h3>만약에 隨筆계가 진즉에 <조침문> 한 편에 대한 현대문학 이론의 창작론에 근거한 작품분석만 하였더라도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론>을 펴낼 수 있었을 것이고, 隨筆은 진즉에 ‘상상적 방법’을 수필작법에 적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이름 없고 머릿수도 없는 빈약한 문학단체인 본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금호 143쪽 참조)</h3><h3>왜 隨筆은 무려 1백 년 동안이나 ‘신변잡기’ 비난을 들으면서도 ‘상상적 문학化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일까? 수필이 소재에 대한 <문학화> 작업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필자가 수 없이 되풀이 말 해 온 대로 수필가들은 그런 공부를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문학학문에 근거한 예술이다. 그러나 ‘붓 가는 대로 수필’에는 문학 학문이 없다. 그러니 수필가들이 어디서 <문학화 방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h3><h3>정주영은 미국의 포드와 똑 같은 자동차를 복사하지 않았다. 우리식의 자동차를 만들어서 <메이드인 코리아> 상표를 붙여서 외국에 팔고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현대문학 1백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 문학은 더 이상 서구현대문학 이론을 복사한 문학이 아니다. <우리 것化한 우리의 현대문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선배학자들이 서구현대문학을 받아들여 ‘어떻게 소화 하였는가’를 읽고 공부해야 된다. <우리 것化한 우리의 현대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백철을 읽어야 되고, 조연현을 읽어야 되고, 김영덕을 읽어야 되고, 김용직, 김준오, 홍문표, 외 수 많은 학자들…… 그리고 이상섭을 읽어야 된다.</h3><h3>지난 1세기 동안 백철과 이상섭은 쳐다도 안 보던 隨筆가들이 요즘 와서 소쇠르니, 움베르토 에코니 거론하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신변잡기’ 손가락질이나 받고 있는 처지에 소쇠르는 무엇이고, 움베르토 에코는 무엇이란 말인가?</h3><h3>필자가 그동안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창작에세이 론을 가지고 가르친 단 스무 명도 될까 말까한 창작에세이 작가들의 작품을 보라! 대한민국 어느 문학학자, 어느 문학평론가가 이 작품들을 가리켜 ‘신변잡기’라 할 수 있는가? ‘졸작’ 평은 들을 것이다. ‘신변잡기’와 ‘졸작’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졸작은 여전히 문학의 졸작이라는 뜻이고, ‘신변잡기’는 아예 문학이 아닌 잡문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그들의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고 부르겠는가?</h3><h3>필자가 이 작품을 이번 호 특집에 엮게 된 까닭은 위에서 지적한 점들 외에 <……것들> 형식의 작품에 대한 작법공부를 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 대상 작품으로 이 작품과 함께 이태동 교수의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그리고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을 선택하였다.</h3><h3>반세기 전 학창시절에 ‘감동’ 먹었던 작품을 나이 들어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감동 먹으면서도 한 편 그것이 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인지, 얼핏 수긍이 안 가는 점들도 눈에 띈다. 나이 탓일 것이다. 이태동 교수의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된 까닭은 안톤 슈낙의 ‘얼핏 수긍이 안 가는 슬픈 것’이 이태동 교수에게는 ‘기쁜 것’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h3> <h3>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h3><h3> </h3><h3>이태동</h3><h3>(문학평론가)</h3><h3> </h3><h3>수도원에 계시는 한 신부님이 언젠가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때까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내 마음에 너무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문 강가에 이르러 조용히 되돌아보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축복받은 행복의 조각 같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보다 기억 속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h3><h3>앞니 빠진 어린아이의 웃는 얼굴이 나를 기쁘게 했다. 가을날 수탉이 산촌 마을의 초가지붕 위에서 날개를 치며 길게 우는 소리를 낼 때, 신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는 자줏빛 새벽하늘을 보았을 때, 어린 시절 개울가로 나가 세수를 하려다 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을 때, 아침에 창밖으로 꽃이 피어 있는 정원과 새들이 지붕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수직으로 급강하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른 봄날 퇴락한 향교 앞뜰에 군락을 이룬 앙상한 나무 가지에 복사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새롭게 돋아난 잔디 위로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 우산과 라일락이 짙은 향기를 뿜으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무거운 겨울옷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은 후 대문 밖으로 나가 미풍을 안고 걸었을 때, 나는 삶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꼈다.</h3><h3>플라타너스가 있는 비 갠 4월의 거리, 잠결에 들려오는 밤비 오는 소리, 학교가 일찍 끝나는 토요일 하굣길, 논둑 기슭에 하얗게 핀 찔레꽃 냄새, 동구 앞 대장간에서 대낮의 정적을 깨트리는 망치 소리, 이름 없는 풀꽃들이 패랭이꽃과 무리지어 피어 있는 개울가 방죽 길, 숲 속의 빈터, 깊은 산속에서 발견한 푸른 도라지꽃, 묘지 옆 잔디에 누워 바라다본 하늘 위로 유유히 흘러가는 흰 구름이 나를 기쁘게 했다.</h3><h3>무더운 여름날 강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추워서 밖으로 나와 햇볕 아래에서 뜨거운 바위를 밟고 서 있을 때, 가을날 아침 밤나무 숲길을 걷다 이슬에 젖은 덤불 속에 떨어진 밤알들을 발견했을 때, 절벽을 타고 올라가 알을 낳은 새 둥지를 발견했을 때, 나는 황홀한 기쁨을 느낀다.</h3><h3>겨울날 썰매를 타고 눈 덮인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갈 때, 하늘을 향해 부챗살 모양으로 가지를 펼치고 서 있는 겨울나무 위로 새 떼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첫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을 때, 얼마나 즐겁고 경이로웠던가.</h3><h3>객지에 나가 계셨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셔서 어머니와 함께 오랫동안 앓고 있던 나를 등에 업고 D 시의 대학병원으로 갔을 때, 흰 가운을 입은 누님 같던 간호사가 별이 있는 밤 성당 위로 눈이 내린 겨울 풍경을 담은 먼 나라 크리스마스카드를 내게 주었을 때, 그것이 지닌 아름다운 경이로움 때문에 얼마나 행복하고 기뻤던가.</h3><h3>어른이 되어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한 후 건강을 회복해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 장미꽃이 마당 가득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눈 내리는 D 시 기차역에 내려 하숙집으로 걸어가는데 어느 라디오 가게에서 틀어놓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얼어붙은 거리에 울려 퍼질 때, 까맣게 잊었던 옛 친구를 기차역 군중 속에서 만났을 때, 어느 해 초겨울 먼 곳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어둠이 깔린 간이역에 내려 사랑하는 이가 플랫폼 전신주 아래 외투 깃을 세우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던가.</h3><h3>부케를 든 신부의 모습,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오페라 <라보엠> 중의 ‘어떤 갠 날’을 듣고 샤갈Marc Chagall의 그림 <소풍>과 <여자 곡마사>를 처음 보았을 때,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 아래서>와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의사 지바고≫를 읽었을 때,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잔디 깎을 때의 풀 냄새, 국화꽃 향기, 가을 뜨락에 핀 샐비어 꽃의 열병식, 축제일의 불꽃놀이, 바닷가 여관방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보낼 때 요람처럼 흔들리며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얼마나 좋았던가.</h3><h3>아카시아 숲이 있는 산기슭의 하얀 집으로 이사 와서 클래식 음악과 함께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을 때, 가을날 저녁 무렵 라일락 나뭇잎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흐뭇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가.</h3><h3>젊은 시절 나를 기쁘게 한 것이 어찌 이것뿐이랴.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한 아름 사 들고 서점 문을 나왔을 때 눈부셨던 대낮 햇빛, 석양 무렵 유서 깊은 듀크 대학 도서관을 나섰을 때 갑자기 고딕 건물 종탑의 은빛 종들이 광폭하게 흔들리며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던 소리, 곰팡내 나는 수십만 권의 책들이 꽂혀 있는 대학 도서관 서가를 지나는 순간 가난했지만 학문을 하겠다는 욕망을 불태웠을 때, 첫 강의실에서 보았던 순진무구한 어린 학생들의 빛나는 눈동자, 잉크 냄새 나는 저서를 처음 보았을 때, 첫 원고료를 받았을 때, 산정山頂에 올라 산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았을 때, 까닭 없이 사람을 괴롭히는 자와 대결해서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이겼을 때, 석양에 멀리서 갑자기 들려오는 나팔 소리, 그리그(Edvard Grieg)의 솔베이지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갈채 속에 끝난 음악회에 갔다 오며 걷던 포플러 길, 맑고 푸른 하늘에 흰 연기를 구름 띠처럼 남기고 사라지는 은빛 제트기, 날씨 좋은 날 광장의 분수에서 솟구치는 빛나는 물줄기,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둘기 떼의 날갯짓 소리, 어두운 겨울 광장의 불 켜진 크리스마스트리, 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수업, 이 모든 것 또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행복의 순간이다.</h3><h3><br></h3><h3>(이태동 산문집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h3> <h3>|작법공부|</h3><h3>시인, 작가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든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는 분명한 제목의 글이 아니라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소재로 삼아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다.</h3><h3>시, 소설 등 창작문학은 의미를 상상적․허구적으로 형상화하는 문학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이태동 교수의 이론대로 ‘의미의 직접성’, 김영덕 교수의 이론대로 ‘사실에 대한 풀이’ 그리고 조연현 교수의 이론대로 ‘사실에 대한 토의’ 양식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에세이스트는 직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혹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고 제목을 붙인 글 한 편 쯤 써 볼만 할 것이다.</h3><h3>필자는 앞서 읽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 그것이 왜 슬픈 것인지 얼핏 수긍이 안 가는 항목이 있다고 하였다. 비슷한 항목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서는 기쁜 일로 여겨진 점이 눈에 띈다. 무심코 넘어갈 수 없는 매우 흥미 있는 현상이다.</h3><h3>안톤 슈낙의 슬픔 - 옛 친구를 만났을 때,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h3><h3>이태동의 기쁨 - 까맣게 잊었던 옛 친구를 기차역 군중 속에서 만났을 때,</h3><h3> </h3><h3>옛 친구를 만났을 때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는 서글픈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우선 반가운 것이 보편적 감정․정서가 아닐까?</h3><h3>안톤 슈낙의 슬픔 -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소리.</h3><h3>이태동의 기쁨 - 어느 라디오 가게에서 틀어놓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얼어붙은 거리에 울려 퍼질 때</h3><h3> </h3><h3>우리나라 길거리와 버스, 택시 안의 무분별한 라디오소리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알맞게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라면, 특별히 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소리라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 보편적 감정․정서가 아닐까.</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h3><h3>이태동의 기쁨 - 신새벽에 일어나 먼동이 트는 자줏빛 새벽하늘을 보았을 때,</h3><h3>아침에 창밖으로 꽃이 피어 있는 정원과 새들이 지붕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수직으로 급강하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h3><h3> </h3><h3>아침의 정서는 보타 상쾌한 것이지 슬픈 것이 보편적 감정․정서는 아닐 것이다.</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수학 교과서.</h3><h3>이태동의 기쁨 - 읽고 싶었던 책들을 한 아름 사 들고 서점 문을 나왔을 때</h3><h3> </h3><h3>수학 교과서라면 필자도 그리 반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슬프기까지는……. 글 읽는 사람이라면 무슨 책이든 일단 반가운 것이 보편적 감성․정서가 아닐까.</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초행의 낯 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h3><h3>이태동의 기쁨 - 바닷가 여관방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보낼 때 요람처럼 흔들리며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얼마나 좋았던가.</h3><h3> </h3><h3>객창의 여수(旅愁)는 당연한 감정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즐거운 여수가 아닐까?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보편적 감정․정서일까?</h3><h3>안톤 슈낙의 슬픔 -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h3><h3>이태동의 기쁨 - 어린 시절 개울가로 나가 세수를 하려다 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을 때,</h3><h3> </h3><h3>어린 시절의 추억은 어쨌든 아름답고 그리운 것이 보편적 감정․정서다.</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h3><h3>이태동의 기쁨 - 고딕 건물 종탑의 은빛 종들이 광폭하게 흔들리며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던 소리,</h3><h3> </h3><h3>종소리가 슬픈 경우는 어떤 것일까? 필자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들은 우리 동네 교회당 종소리와 새 해를 맞는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 등 모두가 기쁜 종소리뿐이다.</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징소리.</h3><h3>이태동의 기쁨 - 석양에 멀리서 갑자기 들려오는 나팔 소리,</h3><h3> </h3><h3>안톤 슈낙의 징소리가 어떤 악기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픈 음악소리조차도 우리는 ‘아름다운 슬픈 감정’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닌가? 바이올린이나, 섹소폰, 혹은 피아노 소리도 아닌 ‘슬프게 들리는 징소리’는 어떤 악기의 징소리일까?</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h3><h3>이태동의 기쁨 - 가을날 수탉이 산촌 마을의 초가지붕 위에서 날개를 치며 길게 우는 소리를 낼 때,</h3><h3> </h3><h3>가을은 다른 계절보자 슬픈 감정이 많이 느껴지는 계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라는 것이 보편적 감성․정서가 아닐까.</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h3><h3>이태동의 기쁨 - 잠결에 들려오는 밤비 오는 소리,</h3><h3> </h3><h3>빗소리는 듣는 이의 처지에 따라 천의 감정․정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는 원시 농경시대부터 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다. 빗소리는 우선 반갑게 들리는 것이 우리 정서의 보편적 DNA일 것이다.</h3><h3> </h3><h3>안톤 슈낙의 슬픔 -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h3><h3>이태동의 기쁨 -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첫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을 때,</h3><h3> </h3><h3>하얀 눈송이가 슬프다니! 우리 한국 사람에게 흰 눈은 항상 기쁘게 생각되는 것이 보편적 감정․정서다.</h3><h3>필자가 안톤 슈낙의 ‘슬픔’과 이태동 교수의 ‘기쁨’ 몇 가지를 비교 하되 굳이 ‘보편적 감정․정서’에 엮어서 언급한 까닭은 모든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는 ‘보편적 가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태동 교수의 이론에도 ‘보편적인 진실 내지는 도덕성’을 거듭 언급하고 있다.</h3><h3>지난 14년 동안 필자의 발등에 떨어진 隨筆의 ‘신변잡기’ 불똥을 털어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발견한 ‘신변잡기 실체’는 보편적 가치를 찾고자 애쓴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느낀 그대로 표현하면, ‘어쨌든 글자 수만 채워서 隨筆잡지 두 세 페이지에 내 이름이 적힌 글이 게재되는 것이 목적의 전부 다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h3><h3>그렇다고 안톤 슈낙의 슬픔이 보편적 가치에 어긋난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피력한 대로 나이 먹은 후 읽어보니 그것이 왜 슬프게 느껴지는지 얼핏 의문이 드는 항목에서 그 동안 읽어 온 ‘隨筆’이 안고 있는 보편적 가치 결여 문제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을 뿐이다. 작품 감상은 독자마다 다르고, 젊었을 때와 노년이 다를 수 있다.</h3><h3>문학 청소년시절부터 종종 예술가의 기행, 혹은 기습에 관한 소문을 들어왔다. 이로 말미암아 혹 ‘예술이란 어딘가 괴팍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그들만의 관심사’라는 아주 잘못된 인식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h3><h3>예술가들에게 일면 괴팍한 일화가 종종 화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취화선>이라는 영화만 봐도 장승업은 평범한 성격의 사람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h3><h3>그러나 예술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창조행위이다. 문학론에서 종종 ‘문학은 구원이다’라는 논리를 발견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학의 구원은 물론 종교적 구원은 아니지만 추구하는 정신은 같은 샘의 물이다.</h3><h3>따라서 한 편의 작품이 보다 많은 독자에게 감정적, 정서적 구원의 감동이 되려면 보편적 가치에서 길을 떠나서 그 작가만의 독창성에 이르는 작품이 될 때일 것이다. 이것이 이태동 교수가 천관우의 「西部」를 ‘문학이 아니다’라고 비평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야’한다는 뜻이 아닐까.</h3><h3>그 같은 성과에 이른 문학작품을 한 알의 과일이라고 할 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보다 훨씬 잘 익은 과일로 감상된다는 사실은 독자들이 직접 작품을 읽어 보았으므로 비교 확인 되었을 것이다. 필자보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형식의 글을 써보라고 한다면 이만큼 섬세하고 다양한 기뻤던 일들을 내 기억의 창고에서 길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h3> <h3>문학을 사랑하고 즐기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어린 시절부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큰 정서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위에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짝을 이루게 된 것이 여간 행복하지 않다. 문학하는 즐거움은 먼저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있다. 창작의 즐거움은 작가만이 아는 즐거움이지만 작품 감상의 즐거움은 만인이 공유하는 즐거움이다.</h3><h3>이태동 교수는 <아름다운 우리 수필> 1과 2를 펴냈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이태동 교수가 편저한 <아름다운 우리 수필>의 수필은 ‘붓 가는 대로 隨筆’을 의미하는가? 당연히 아니다.</h3><h3>이태동 교수는 왜 ‘수필’을 ‘붓 가는 대로 隨筆’로 여기지 않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는 왜 <수필집>이라 하지 않고 <산문집>이라는 표기를 하였는가? 그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수필’이라고 할 때의 의미는 ‘붓 가는 대로 隨筆’을 의미하기 때문이다.</h3><h3>‘수필’이라는 이름이 <에세이>의 우리말 이름으로 여겨져 온 역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역사일 뿐 현실은 전혀 아니다. <에세이>와 <隨筆> 싸움에서 ‘붓 가는 대로 隨筆’이 이긴 것이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에세이>는 ‘머릿수’ 싸움에서 <隨筆>에 졌던 것이다. 그 방법은 가히 ‘인해전술’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隨筆은 아무나 쓸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고, 두 번째는 실제로 ‘아무나 글 한 편과 돈 백만 원만 들고 오면 신인상’을 준 것이 그 방법이었다.</h3><h3>이 같은 일은 지난 14년 동안 필자가 직접 겪고 확인한 일이다. 필자는 지난 14년 동안 ‘창작에세이를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 온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머릿수’를 퇴학시켰다. 문학 공부할 준비가 아직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도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등단 후에도 창작에세이 정신을 어길 시 회원제명을 해 버렸다. 그 결과 현재 남은 ‘머릿수’는 불과 수 명에 지나지 않는다.</h3><h3><에세이>는 창시자 몽테뉴가 말한 그대로 <성실한 태도(정신)의 실험적 작법>의 글이다. 에세이의 개념은 <성실(誠實)>인 것이다. ‘붓 가는 대로’와는 정 반대다.</h3><h3>隨筆계가 지난 1백 년 동안 <성실의 문학>을 지도하였다면 현재 한국문인협회 隨筆회원 수 3천 5백은커녕 겨우 몇 백 명이나 될까 말까 하였을 것이다. 그 대신 시, 소설, 희곡 등 창작문학과 함께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가 찾아낸 ‘隨筆’의 또 다른 어원에는 다음과 같은 문서가 있다.</h3><h3> </h3><h3>붓 가는 대로 기록한, 잡스런 이야기나 부스러기 말의 성질을 가리키는 문자를 칭하는 <필기>는 대략 송나라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필기문은 후세에 습관적으로 <수필>이라고 불렀는데, <수필>이라는 명칭은 남송의 홍매洪邁로부터 시작되었다.……그리하여 <수필>이란 명칭이 마침내 지금까지 계속해서 쓰이게 되었다.(중국고대문체개론 북경대학출판부 1990. 462쪽 - 산문의 원류 이병헌⋅권호 134쪽에서 재인용)</h3><h3> </h3><h3>‘붓 가는 대로 기록한’ 이라는 말뜻은 ‘붓 가는 대로’를 변명하는 자들의 근거 없는 억지주장대로 옛날 붓글씨 시대 붓이 나가는 최선의 예술적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잡스런 이야기나 부스러기 말의 성질을 가리키는 <필기문>’ 쓰기 방식이었던 것이다. 홍매가 ‘앞뒤 챙길 것도 없이’라고 한 말과 일치한다. 붓글씨를 ‘앞뒤 챙길 것도 없이’ 썼단 말이냐? 붓글씨가 잡스런 부스러기 이야기였단 말이냐?</h3><h3>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왜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하지 않는가? 이 세상에 자신의 글을 <신변잡기․잡문의 ‘대명사’>로 부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隨筆가들 말고 또 있겠는가?</h3> <h3>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h3><h3> </h3><h3>유안진</h3><h3>(시인)</h3><h3> </h3><h3>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h3><h3>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h3><h3>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h3><h3>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h3><h3>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희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걸.</h3><h3>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道)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聖賢)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h3><h3>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낸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h3><h3>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h3><h3>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h3><h3>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h3><h3>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h3><h3>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은 아기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리라.</h3><h3>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h3><h3>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h3><h3>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의 꽃을 사서 그에게 들려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 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h3><h3>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여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h3><h3>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h3><h3>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h3><h3><br></h3><h3>(유안진 외 詩情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h3> <h3>작법공부|</h3><h3>앞서 감상한 안톤 유낙의 ‘슬픔’과 이태동 교수의 ‘기쁨’은 작품 제목에 ‘……것들’ 형식을 직접 표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것들’ 형식을 내면으로 숨긴 형식이다. ‘……것들’ 형식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h3><h3>‘……것들’ 양식은 동일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해석의 반복구조 형식이다. 따라서 시적 직관 형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것들’은 본질상 詩다. 안톤 슈낙의 ‘슬픔’과 이태동 교수의 ‘기쁨’에서 확인한 그대로다.</h3><h3>지금까지는 이 같은 <완전한 산문 형식의 작품>을 詩라고 비평할 문학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필자 개인의 경우는 세상에 공표한 자신의 이론전개가 있으므로 이에 근거한 비평을 할 수 있다.(창작에세이학 원론 2017) 물론 필자의 이론이 일반화 되려면 역사(時間) 검증을 거친 후의 일이겠지만 저자인 필자 자신은 현재도 이에 근거한 비평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다.</h3><h3>앞서 언급한 대로 <동일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해석의 반복구조 형식>은 시적 직관 형식을 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직접 시 작품을 예로 들어보면 더 분명해 질 것이다. 동일 주제 반복구조 형식으로 대표적인 작품이 김동명의 <내 마음>일 것이다. 4연으로 된 <내 마음>의 각 연 첫 행 반복구조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h3><h3> </h3><h3>내 마음은 호수요</h3><h3>내 마음은 촛불이오</h3><h3>내 마음은 나그네요</h3><h3>내 마음은 낙엽이요</h3><h3> </h3><h3>자료를 찾아보니 新東門의 <비닐우산>이 눈에 띈다.</h3><h3> </h3><h3>비닐우산,</h3><h3>받고는 다녀도</h3><h3>바람 불면</h3><h3>이내 뒤집힌다.</h3><h3>(新東門 <비닐우산> 첫 연 일부)</h3><h3> </h3><h3>모두 5연으로 되어 있는 <비닐우산>의 매 연 첫 행마다 ‘비닐우산’이 반복된다.</h3><h3>‘芝蘭之交’ 뜻을 사전에 찾아보니 ‘벗 사이의 고상한 교제’라고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벗 사이의 고상한 교제를 꿈꾸며>라는 동일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해석을 <완전한 산문형식>으로 노래한 한 편의 아름다운 詩작품이다. 필자는 이 같은 새로운 양식의 詩를 <산문의 시>라고 해석한다. 필자가 이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는 용기(勇氣)는 <산문시>가 힘이 되어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 근본은 문학예술의 본질에 있다. 필자가 평생 사랑하고 공부해 온 예술의 본질은 詩(창조)에 있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그 시작이다.</h3><h3>우리는 이 작품을 감상하며 ‘세상에 어찌 이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인간관계가 있을 수 있으랴.’라는 탄식과 염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로 문학작품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를 꿈꾸며>라고 한 작품의 제목은 이것이 가능한 현실이 아닌 문학적 소망임을 말 해 주고 있다.</h3><h3>이 작품이 움직일 수 없는 詩 작품이라는 사실은 무엇보다 종결어가 분명하게 확증 해 주고 있다.</h3><h3>‘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h3><h3> </h3><h3>필자가 가지고 있는 [지란지교를 꿈꾸며] 대본은 1986년판이다. 초판이라고 되어 있다.</h3><h3>내가 아는 한 <문학평론가>들은 隨筆을 비평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줄로 안다. 한국문인협회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隨筆분과 회원이 근 4천명이나 되는 지금도 필자가 아는 한 단 한 사람의 <문학평론가>도 隨筆을 문학비평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줄로 안다. 지금도 그러하니 이 유명한 작품이 처음 나왔던 1986년 당시에 이 작품을 문학비평 대상으로 여긴 <문학평론가>가 있었을까?</h3><h3>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은 창작론에 근거한다. 창작론에서 한 발작쯤 벗어난 비평이 있다면 창작을 둘러싼 문학 일반론에 근거한 비평일 것이다. 직접 창작론에 근거한 비평이든 문학일반론에 근거한 비평이든 그 뿌리는 문예창작론에 있다.</h3><h3>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이 발표된 1986년에는 문학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비평하려고 해도 비평할 근거가 아직 없었다. 백철 교수가 1955년 판 <문학개론>에서 찰스 램의 수필을 ‘순문학적 수필’이라 하였고, 공정호 교수가 1964년에 펴낸 <영미 희곡․수필 평론>에서 수필의 진화론을 말하면서 ‘서정시’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였으며, 조연현 교수가 1973년에 펴낸 개고 <문학개론>에서 ‘수필은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되는 문학’이라고 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창작론에 근거한 수필에세이 비평을 하기에 부족한 것이었다.</h3><h3>무엇보다 ‘隨筆’이라는 이름과 <에세이>라는 이름의 학문적 구분이 서있지 안았다. 隨筆도 에세이이고, 에세이도 隨筆인 이론적 혼돈이 지난 1백년 隨筆시대였다. <수필시대>라는 말이나 이름은 <현대수필>이라는 말이나 이름처럼 전혀 학문적 근거가 없는 隨筆의 부끄러운 자화상인 것이다.</h3><h3>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의 근거가 창작론에 있는 것이라면 현재 隨筆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위 隨筆평론가(?)들의 ‘隨筆비평’은 무엇에 근거한 비평인가? 저들이 사용하는 ‘수필창작’ ‘창작수필’이라는 용어의 뜻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필자는 그들에게 직접 질문한 일이 있지만 정답은 듣지 못하였다.(금호 17쪽 참조)</h3><h3>문학비평이 종종 시비가 되는 까닭은 비평은 본질상 긍정(칭찬)과 부정(욕․나무람) 양면의 칼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h3><h3> </h3><h3>유안진 시인은 왜 산문․에세이를 ‘수필집’이라 하지 않고 <에세이집>이라 하였을까? 그 대답은 분명하지 않은가. 유안진 시인은 <산문형식 속에서> 詩를 창작하고 있기 때문이다.</h3><h3>隨筆은 詩(창작․문학)가 아니다. 세평 그대로 ‘신변잡기’일 뿐이다. 그러니 詩를 창작하는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그들의 <산문 에세이집>을 <수필집>이라고 부르겠는가?</h3> <h3>남자의 속성</h3><h3> </h3><h3>이향아</h3><h3>(시인)</h3><h3> </h3><h3>남자가 일 없이 빈둥거리면 여자가 그럴 때보다 더 암담해 보인다.</h3><h3>남자가 욕설을 할 때면 여자가 그럴 때보다 천박스럽게 보인다.</h3><h3>남자가 거짓말을 할 때면 여자가 그럴 때보다 더 불쌍하게 보인다.</h3><h3>남자의 웃음은 입술에어 나오는 것이 아니며, 허파에서 나와서도 안 되며 뱃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이라야 한다.</h3><h3>남자의 눈물은 일생에 한 번 혹은 두 번 보일 수도 있되, 그것은 전 생애를 짜낸 한 방울로도 족하다.</h3><h3>남자, 무한한 힘과 가능성의 상징.</h3><h3>누가 뭐라 해도 그 이름은 지배자이며 권력자이며 창조자이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베푸는 자이다.</h3><h3>천리(千里)를 함께 동행 하여도 두렵지 않은 믿음직스러운 남자가 여자 곁에 한 사람쯤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며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h3><h3>나는 남자다운 남자를 믿으며 존경하며 사랑한다.</h3><h3>바위처럼 단단하고 무쇠처럼 질기며 물처럼 담백(淡白)하고 산처럼 태연한 그 자세.</h3><h3>남자의 패기, 배짱, 용기와 힘은 우리 여자들이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에 있다.</h3><h3>우렁우렁한 음성과 소탈한 식성(食性)과 멀고도 입체적인 안목, 조직적이며 과학적인 사고(思考), 정확한 직관, 복잡하지 않은 그 심리적 구조, 든든하고 실팍한 골격, 일 속에 빠져 있을 때의 그 집념의 눈빛을 나는 사랑한다.</h3><h3>그러므로 나는 여권(女權)이니 여성해방이니 하는 단어에 대하여 약간의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h3><h3>해방이라는 말은 구속을 전제로 한 것임에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진정한 여권이란 여성의 가정, 사회, 국가, 남성과의 하아모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h3><h3>그러나 현실에서 우리 여자들이 신뢰하고 싶은 남자는 그 수가 지극히 적다.</h3><h3>남자다운 남자가 드물다.</h3><h3>동시에 여자와 대결하려고 하는 남자의 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h3><h3>여자에게 과중한 것을 요구하고 남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남자가 늘어 가고 있는 것이다.</h3><h3>이것은 남자 자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여자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h3><h3>흰 구두를 신은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내 개인적인 괴벽이라 치고, 얼근히 취하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무조건 깎아 내리는 남자, 허풍을 떨고 고성방가, 방뇨하는 남자, (이런 남자에겐 구슬픈 애교라도 있다고 보자) 말끝마다 남자, 남자하는 남자.</h3><h3>남자된 것이 큰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내세우는 남자는 못나 보인다.</h3><h3>그 잘 잘못은 여하 간에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도 여자가 사과할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하는 남자도 역시 못나 보인다.</h3><h3>여자를 폭력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남자는 곤란한 남자다.</h3><h3>그는 여자가 폭력에 눌려 미처 발설하지 못한 말의 홍수에 외롭게 표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h3><h3>자기 혼자만 유독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처럼 공치사하듯 이르는 남자는 지저분하다.</h3><h3>여자의 열두 가지 속성 중에서도 유독 모성만을 강조하여 밤늦게 돌아와서는 살림에 지친 여자의 연약한 무릎을 베고 자장가나 불러 주기를 요구하는 남자는 여자의 미소 뒤에 숨은 그윽한 동경의 불빛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h3><h3>밑도 터지고 위도 터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일의 산더미에 여자를 버려둔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h3><h3>때로는 소견머리 없고 미천한 존재이며 어쩔 수 없는 여자의 굴레에 몰아넣었다가도 필요에 따라서는 여자가 완전한 인간이기를 원한다.</h3><h3>친척의 생일에서부터 적금 부을 날, 각종 세금의 고지서 숫자와, 가위, 단추, 장도리, 못 그릇의 정확한 위치를 기억해야 하고 남편의 기분과 아이들의 숙제와 가족의 식성과 건강에 이르기까지 만전을 기하기를 요구한다.</h3><h3>여자는 여자 자신을 위해 하루도 온전히 살아보기 힘들다.</h3><h3>그러므로 정(情)에 인색하고 정을 담은 말 한 마디에도 인색한 남자는 여자를 서럽게 한다.</h3><h3>남자의 진실한 말 한 마디는 때때로 어떤 어리석은 여자를 한 달, 일 년, 혹은 한 평생을 외롭지 않게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h3><h3>나는 남자다운 고독을 안다. 북구(北歐)의 음악과도 같은 그의 근심, 온 천하를 안고 싶어 하는 그 가슴의 충동을…….</h3><h3>그러나 알 수 없다.</h3><h3>표박자(漂迫者)와 같은 그 편력을 알기는 힘든다. 여자의 평화를 뒤흔드는 그의 버릇을 이해할 수 없다.</h3><h3>(유안진 외 詩情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h3><h3>|작법공부|</h3><h3>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해석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굳이 <동일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해석 양식>을 하나의 형식으로 논하는 까닭은 우리가 논의하는 문학은 문법문장론이나 논리 문장론이 아니고 창작․창작적 문학예술 문장론이기 때문이다.</h3><h3>이 작품은 여성이 쓴 바람직한 남성상이다. 여성이 꿈꾸는 남성상이고, 여성이 바라는 배우자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처럼 ‘꿈’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또 하나의 ‘꿈꾸며’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h3><h3>이 작품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짜여 있다. 앞부분은 바람직한 남성상, 뒷부분은 부정적인 남성상이다. 그 가운데에 바람직한 여권, 여성해방 운동의 꿈이 끼워져 있다.</h3><h3>얼핏 보면 남성 찬양가 같지만 실은 그 반대다. 앞부분의 바람직한 남성상은 바램이며, 꿈일 뿐, 현실의 남성은 뒷부분의 ‘천박한’ 남성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남성 찬양가가 아니고 남성 반성문 촉구인 셈이다.</h3><h3>앞부분의 바람직한 남성상은 대부분의 여성들(특별히 한국 여성들)이 경험하지 못한 꿈같은 남성상일 것이다. 그러나 뒷부분의 남성상은 거의 모든 한국여성들이 평생 경험하며 살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문제는 앞부분의 바람직한 남성상은 아마도(특별히 ‘5천년 문화 민족’ 잠꼬대에서 깨어나지 못한 대한민국 남성문화에서는) 당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h3><h3>이 작품의 종결은 주제에 대한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은 것처럼 끝나고 있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남성상과 현실의 부정적 남성상을 나란히 병치해 놓은 구성법 자체를 통해서 강열한 메시지를 투영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작품의 메시지(주제)를 다음 문장에 있다고 보고 싶다.</h3><h3>그러므로 나는 여권(女權)이니 여성해방이니 하는 단어에 대하여 약간의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h3><h3>해방이라는 말은 구속을 전제로 한 것임에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진정한 여권이란 여성의 가정, 사회, 국가, 남성과의 하아모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h3><h3> </h3><h3>이 작품을 읽은 대부분의 남성 독자는 전반부의 긍정적인 남성상에서 어께에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를 읽을 때는 힘이 빠질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실상임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한국 남성이 여성에게 신용불량자가 된 역사는 작가가 지적한 대로 남녀 간의 ‘하아모니’를 잃어버린 데에 있다.</h3><h3>이 작품은 <지란지교를 꿈꾸며>와 함께 3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오늘 우리는 ‘미투’ 사건을 목도하고 있다. 대한민국 남성문화가 폭력적 일방통행에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남녀의 性이 서로를 찌르는 무기가 되고, 권력이 되고, 혈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남녀 간의 ‘하아모니’일 것이다.</h3><h3>이 작품은 매우 무거운 주제를 심플하게 읽힐 수 있는 방법으로 구성된 글이다. 그 같은 글 구조의 실체가 무엇일까? 백철 교수가 갈파한 에세이의 기본 구조 대우법(對偶法)에 있지 않을까. 대우법은 쉽게 예를 들면 두 짝 젓가락으로 콩 집어 올리기라고 할 수 있다. ‘신변잡기’란 외짝 젓가락으로 콩 집기다. 콩(문학․창조)을 제대로 집으려면 두 짝 젓가락을 사용해야 된다. 이것이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h3><h3>지난 1세기 동안 ‘수필’이라는 이름은 <신변잡기․잡문의 ‘대명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해결의 길, 해결방법은 오직, 많이 늦었지만, 후세대를 위해서라도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문학>으로 거듭 나는 것뿐이다.</h3> <h3>치맛자락은 간간하다</h3><h3> </h3><h3>이정록</h3><h3>(시인)</h3><h3> </h3><h3>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h3><h3>“뒤뜰 물앵두 다 익어서 우박처럼 쏟아지는디…….”</h3><h3>“죄송해요. 요번 주말도 이래저래 갈 데가 많네요.”</h3><h3>“그려. 허긴 여기 내려오는 기름 값이면 물앵두 한 가마니는 사먹을 텐디 뭐.”</h3><h3>잠시 가슴 한쪽에서 콩깍지 터지는 소리가 나고, 썰물이 싸하니 빠져나간다.</h3><h3>“늬덜 안 내려와도, 늬덜 대신 왼갖 새들이 우리 집 물앵두 먹으러 온다야.”</h3><h3>“새라뇨?”</h3><h3>“내가 작년에도 말혔잖여. 우리 동네 새들이 그렇게나 종류가 많은 줄 몰렀다. 종일 동네 할망구들하고 새 똥구멍 쳐다보며, 새소리 듣는 재미가 삼삼혀. 처음에는 거무죽죽한 새들만 오더니, 요즘엔 총천연색 새들이 날아와서 난리다. 아마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새가 되어서 오시는게벼.”</h3><h3>“이쁘겠어요?”</h3><h3>“새 키우기 이렇게 쉬운 줄 몰렀다. 새만 오면 좋은데, 쥐새끼도 와야.”</h3><h3>“동물원이구만요?”</h3><h3>“내려올 때 닭 사료 한 포대만 떼 와라.”</h3><h3>“닭도 쳐요?”</h3><h3>“아니, 앵두 다 지면 사료 줘야지.”</h3><h3>“어머니도 참.”</h3><h3>“기똥차게 잘 생긴 새 한 마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디, 꼭 돌아가신 니 아버지 같어.”</h3><h3>“아이고, 이제 전화 끊을 때가 됐고만요. 곧 내려갈게요.”</h3><h3>전화는 어느새 끊겨버렸다. 아버지라는 말에 아마도 목이 메어 수화기를 놓쳤을 것이다.</h3><h3>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얼마나 무거우셨을까?</h3><h3>끊임없는 병치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렸던 술상, 그리고 농사일은 뒷전이었던 나날들, 어머니는 그걸 다 받아 이셨다. 가슴에 고스란히 품고 다독이셨다.</h3><h3>난 그게 불만이었다. 내 나이 열 살 때, 아버지는 나에게 지게질을 가르치셨다. 숫돌에 낫을 벼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어찌 어린 고사리 손에 낫을 쥐어주고 술만 드실 수 있을까?</h3><h3>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가슴은 숯가마였을 것이다. 이른 나이에 아버지와 동생 셋을 잃고, 두 어머니를 섬겨야 했을 종손의 어께. 아버지는 지게를 지지 않아도 멍 가실 날이 없었으리라.</h3><h3>그렇다. 술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행복한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당신의 간간한 치마폭에 아버지의 아픔을 다 담고 다독인 것이다.</h3><h3>언젠가, 통화 중에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h3><h3>“아버지가 왜 텃밭 구석구석에다 과실수를 심어놨겄냐?”</h3><h3>“왜요?”</h3><h3>“빚이 많아서 그런 거여.”</h3><h3>“빚이라뇨?”</h3><h3>“마음 빚 말이여.”</h3><h3>“예?”</h3><h3>“니가 내 말뜻을 알겄냐? 농촌에서 일 안 하고 사는데 하루하루 빚 안 질 수 있겄냐?”</h3><h3>“…….”</h3><h3>“햇빛한테 빚지고, 냇물한테 빚지고, 풀한테 빚지고, 동네 사람 바쁜 손에게 빚지고……, 심지어 동네 꼬맹이들한테도 빚지고.”</h3><h3>“네.”</h3><h3>“당신이 떠나도 계속 열매를 맺을 거 아니냐. 그걸 누가 먹겄냐? 어미 혼자 먹으면 얼마나 먹겼냐? 다 나눠 먹으란 거지. 내려올래? 늬덜 자주 고향에 다녀가란 뜻도 있는 겨.”</h3><h3>어머니의 치맛자락은 간간하다. 도랑을 파며 뻘을 빠져나가는 썰물처럼 어머니의 치마는 주름져 있다.</h3><h3>저 치마가 간혹, 헤일처럼 뒤집혀 어머니의 얼굴을 덮치고 어머니의 눈물을 받아먹을 때가 있다.</h3><h3>앵두나무가, 바닥에 떨어진 무른 앵두를 굽어보듯 마음 붉어진다.</h3><h3><br></h3><h3>(이정록 산문집 [시인의 서랍])</h3> <h3>작법공부|</h3><h3>백철 교수가 말한 ‘순문학적 수필(문학개론)’이란 무슨 뜻이며 어떤 작품을 말하는가? 한국문학론은 백철 교수의 ‘순문학적 수필’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가?</h3><h3>백철 교수의 ‘순문학적 수필’은 찰스 램의 <창작․창작적> 수필을 가리키는 말이다. 찰스 램의 수필은 찰스 램 개인에게서 끝나고 말았는가? 아니다. 필자가 이정록 시인의 산문작품을 소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h3><h3>필자는 이정록 시인을 모른다. 필자보다 근 20년이나 젊은 시인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안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찰스 램 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론에 근거한 필자의 ‘창작에세이론’을 알 턱이 없을 것이다. 들어 본 일 조차 없을 것이다.</h3><h3>그런데 그의 산문집에서 선정한 이 한 편의 작품은 얼마나 놀라운가? 이 작품뿐만이 아니고 그의 산문집에 수록된 전체 작품이 다 창작‧창작적 작품들이다. 이관희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30년 이민에서 2004년에 귀국) 지난 14년 동안 세상을 향하여 “이것이 찰스 램의 뒤를 잇는 창작‧창작적 에세이수필이다.”라고 외쳐 온 바로 그 창작‧창작적 형식의 에세이 작품들인 것이다. 이 사실에 제일 먼저 놀라야 할 사람들은 필자의 <창작에세이 작법교실>에서 공부한 창작에세이 작가들일 것이다.</h3><h3>이정록 시인이 자신의 산문작품을 놓고 생전 들어 본 일도 없는 사람이 이런 식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들으면 시인이라서 욕은 할 줄 모르겠지만 실로 기절초풍하지 않을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관희라는 사람이 누구이기에 내가 그에게 작법을 배워서 글을 썼느니, 아니니 한단 말인가! (참 죄송하다.)</h3><h3>창작에세이 작가들은 반드시 이정록 시인의 산문집 시인의 서랍을 사서 읽어보고, 확인하고, 공부하가 바란다. 무엇을 확인하란 말인가? 그 동안 이관희가 가르친 ‘창작에세이’가 이관희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학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문학을 놓고 ‘이것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이다, 아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무지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문학은 어느 개인이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 주워가지듯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리며 변하여 새로운 모양으로 빚어져 나오는 것이 예술의 역사다.</h3><h3>이 작품의 원관념 소재는 어머니 이야기이다. 그냥 어머니가 아니고 평생 아버지라는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사신 어머니 이야기이다. 그런데 평생 머리에 이고 사신 아버지라는 짐이 무거웠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다. 그래서 어머니의 치맛자락은 간간하다고 하였을 것이다.</h3><h3>간간한 치맛자락으로 비유되는 어머니 이야기를 ‘앵두나무 이야기’로 풀어내고(형상화)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중심 작법이다. 앵두나무 이야기를 보조관념 소재로 삼은 데에는 아버지라는 인물상을 형상화해 주어야 한다는 2중의 목적이 깔려있을 것이다. 비록 어머니에게 머리에 이고 사신 짐 같은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종손으로서의 무거운 짐이 있었다는 따뜻한 이해와 사랑, 그리움이 어머니, 아들 양쪽 모두에게 있었던 것으로 그려내야(형상화) 하였기 때문이다.</h3><h3>그 동안 필자가 강의한 창작에세이 <기본 작법>에 의하면 이 작품의 제목은 <앵두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치맛자락은 간간하다>라고 하였다. 시인이 이 같은 제목을 잡은 첫 번째 이유는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필자는 짐작한다. 시인은 지금 본인이 그렇게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일반산문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산문형식의 詩를 짓고 있는 중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창작에세이 비평>이다. 창작에세이의 창작개념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정록 시인이 언제 필자의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라는 말을 들어나 보았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하게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 작품을 쓸 수 있었는가?</h3><h3>문학의 발생은 인간의 삶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특정 문학 장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예술은 인류의 삶의 앙금이 내려앉아서 형성되는 것이다.</h3><h3>시인이 시를 지으면서 바라보는 작품세계는 시적 상상력의 세계다. 어머니의 따뜻한 삶을 보듬고 있는 시인의 눈에 시인만이 발견할 수 있는 어머니 존재, 생애 전체가 한 폭의 치마폭에 감싸여 있는 어머니 상이 되었을 것이다.</h3><h3>필자는 이정록 시인의 이 작품을 읽으며 (금호에 편집된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너무나 행복하였다. 왜냐하면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필자의 <창작에세이> 이론을 소문조차 들은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분들이 너무나도 창작․창작적 산문(창작에세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 해 주는가? 바로 백철 교수, 조연현 교수, 공정호 교수, 윤오영 선생이 말하는 문학의 진화, 곧 몽테뉴 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를 말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창작에세이는 결코 이관희 개인이 만들어낸 문학이 아니다. 이관희는 에세이의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현상을 발견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h3><h3>隨筆가들은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는 이관희가 창안한 새로운 문학 장르가 아니라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h3><h3><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란 사실은 <隨筆의 문학 학문화>를 의미한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隨筆의 ‘문학 학문화’라니! 隨筆은 문학 학문에 근거한 글쓰기가 아니란 말인가?</h3><h3>그렇다. 隨筆은 문학 학문에 근거한 글쓰기가 아니다. 즉 隨筆은 문학이 아니다. 隨筆이 문학이 아닌 까닭은 첫째로 隨筆의 개념 ‘붓 가는 대로’는 천하 어디서도 문학이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한 설명은 책 한 권쯤 써야 겨우 설명이 될 텐데 실제로 필자는 ‘붓 가는 대로 폐기 운동’에서 비롯된 창작에세이론을 창작에세이학 원론이라는 580쪽 짜리 책으로 써냈다.(2017) 두 번째로 隨筆이 문학이 아닌 까닭은 문학은 처음부터 상상적‧허구적 세계를 창작하는 예술인데 隨筆은 ‘작가가 경험한 사실대로 써야 된다.’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쓴 글은 ‘일반산문문학’이라는 용어로 시인, 작가들이 말하는 창작문학과 구분한다. 그나마 수필가들은 일반산문으로서의 에세이도 쓰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창작문학은 일정한 창작형식을 창작하는 문학이다. 그러나 ‘隨筆’은 창작형식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네 번째로 隨筆이 문학이 아닌 까닭은 隨筆은 우리 고전수필의 맥을 있는 <현대수필>도 아니고, -고전수필의 개념이 ‘붓 가는 대로’란 말이냐?- 갑오개혁 이후 시작된 서구현대문예사조에 의한 <현대문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隨筆이 문학이 아닌 가장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 네 번째에 있다.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도 아니고,(참고 : 143쪽) 서구현대문예사조에 의한 문학도 아니라면 隨筆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화성에서 온 것인가, 금성에서 온 것인가? 隨筆은 현대문학 초창기부터 세상이 갈파(喝破)한 그대로 ‘신변잡기’ ‘잡문’일 뿐이다.</h3><h3>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지금 ‘수필’이라는 이름은 ‘신변잡기’ 대명사뿐만이 아니라 <문학적 집단무식 ‘대명사’>가 되었다.</h3><h3>해결방법은 하나뿐이다. 이제라도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수필 반성문>을 쓰는 것이다. 필자가 발행하고 있는 본지 [창작에세이–창작산문 작품과 작법]는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수필 반성문이다.</h3><h3>수필이라는 이름이 신변잡기 ‘대명사’ 일뿐만 아니라 문학적 무식의 ‘대명사’ 까지 되었다는 것은 비할 데 없는 부끄러움이다. 어찌 <수필가>라고 자신을 소개 할 수 있겠는가?</h3> <h3>그녀, 삶의 방식</h3><h3> </h3><h3>신경숙</h3><h3>(소설가)</h3><h3> </h3><h3>대학을 막 졸업하고 어느 출판사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 출판사 총무과에 미스 리라고 불리는, 그때 나보다 세 살 어린 여자가 있었다. 미스 리는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도 나이 어린 그 미스 리가 늘 언니 같았었다.</h3><h3>언니 같았었다고 해서 그녀가 나보다 키가 컸다든지, 그녀가 나를 챙겨주었다든지, 그녀가 누구나 알아보게 푸근한 인상이었다든지 해서가 아니다. 외려 그녀의 첫인상은 귀엽고 발랄한 것이었다. 그녀가 퇴근을 할 때 핸드백을 메고 구두를 신고 낮 동안은 뒤로 단정하게 묶어두었던 머리를 풀어 나풀거리게 하고서 계단을 내려갈 때 보면 영락없이 그저 예쁘기만 한 새침데기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선 아주 어른스런 생기가 넘쳐나 있었다.</h3><h3>나는 그 출판사에 꼬박 일 년을 근무했는데 그 일 년 동안 가장 친한 사람이 미스 리였다. 우연히 미스 리가 나와 같은 지방의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었으나 미스 리는 내 후배가 되는 셈이었으니까 곧 스스럼없이 말도 놓게 되었다. 거기다가 출근하는 길이 비슷해서 우리는 아침에 자주 지하철 안에서 만났고, 퇴근도 같이 하는 때가 자주 있었다. 미스 리의 이런저런 주변 얘기도 듣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미스 리라는 호칭을 거두고 이름을 불렀다.</h3><h3>거기서 일 년 동안 나는 그녀로부터 주변을 싱그럽게 만드는 힘 같은 걸 배웠다. 창밖으로 폭양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까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교정지를 들여다보느라 잔뜩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게 그녀가 언니, 하며 깜짝 놀래켰다. 내가 고개를 드니까 그녀가 손으로 창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웬일인가 거기 창에 커다란 돛단배 한 척과 갈매기 서너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영문을 몰라 그녀를 올려다보았더니 그녀 하는 말,</h3><h3>“내가 잡지책에서 오려서 붙였어. 어때? 시원하지?”</h3><h3>시원했다. 시원하고 시원했다.</h3><h3>어느 가을이었다.</h3><h3>출판사 가는 길은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도 십오 분쯤 걸어야 했었는데, 나는 자주 늦어서 자주 지하철역 앞에서 출판사까지 택시를 이용하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늦어서 택시를 타려는데 그녀가 서 있다. 나는 당연히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탔고 내가 택시비를 치렀다. 나는 혼자 타나 그녀랑 같이 타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날 같이 퇴근을 하는데 그녀가 지하철역 안의 서점으로 나를 이끈다. 제목은 잊었지만 그녀는 시집을 한 권 샀는데 그걸 나를 준다. 내가 왜? 하니까,</h3><h3>“택시를 타야 되는데 내가 부지런해서 어떻게어떻게 안 타게 될 때마다 시집을 한 권씩 샀는데 오늘은 언니가 택시비를 냈으니까 언니 사 주는 거야. 언니한테 뭔가 선물하고 싶기도 했는데 잘됐지 뭐.”</h3><h3>한다. 나는 그날 시집을 받아들며 그녀를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녀처럼 내가 아침에 게으름을 안 부려 택시를 안 탄 돈으로 시집을 샀으면 아마 책상에 쌓였을 거야, 생각하며. 아니다. 택시를 안탔다고 해도 그 돈으로 시집 살 생각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을 나였다.</h3><h3>그녀는 매사가 작으면 작은 대로 짜임이 있고 발견이 있었다. 귀엽고 발랄하면서 그녀의 얼굴에 무늬져 있던 삶에 대한 생기는 괜한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가짐 안에서 흘러나와 이루어진 것이었다.</h3><h3>무엇이든 그렇게 밝고 건전하게 지켜나가려는 그녀의 진짜 얘기는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는 데까지 이어졌다.</h3><h3>일 년 후에 나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출판사를 퇴사했지만 그녀와의 연락은 계속 이어졌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내가 그 출판사 앞을 지나게 되면 그녀를 불러내 차를 마시기도 했고, 그녀가 일요일 같은 때 나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나이에 세월을 이태쯤 더 보탰는데, 어느 날인가 그녀가 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좀 놀랐다. 그녀 주변에 한 남성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기는 했다. 내가 어른거리고 있다, 고 표현한 건 그녀가 그 남성에 대해 갖고 있는 마음이 늘 애매해서였다. 그녀는 늘, 글쎄요, 좋은 사람 같기는 한데, 나하고는 뭐가 좀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래왔던 것이다. 뭐가 안 맞는 거 같은가, 물으면 그는 모든 일에 별로 의욕이 없고, 지금까지 너무 어렵게 살아와서인지 벌써 뭔가에 지쳐서는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하고 하는 그런 일에 손을 놔버린 듯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 사람의 어려운 환경보다는 그 남성이 너무 일찍 알아버린 그 허무스런 분위기가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왔는데 그와 결혼을 한다니, 놀랄밖에. 그녀로부터 들은 결혼 결심의 내용은 이러했다.</h3><h3>그 남성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곰곰 생각 끝에 거절을 하면서 이젠 그만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뒤 근 한 달쯤 소식이 끊겼다고 했다. 처음엔 그렇다고 단박 그렇게 연락을 끊나, 싶어서 서운도 했으나 곧 어차피 결혼을 안 할 거라면 그럴 수밖에 없지 싶어 마음을 정리했는데, 한 달 지나 소식이 왔단다. 그때 이미 마음먹은바 단단해서 몇 번 약속을 거절했는데 어느 날 점심시간에 사무실로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눈도 있고 해서 그를 따라나섰는데 찻집에서 그 남성이 그러더란다.</h3><h3>지금까지는 무슨 일을 해도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무너지고 해서 뭐든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고. 그런데 너를 만나고난 뒤부터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고. 뭐든 다 열심히 하고 싶다고. 나는 이게 무슨 꽁트인가 싶어서,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단 말야? 했더니 그녀 하는 말,</h3><h3>“언니, 나 때문에 이 세상을 살고 싶다는 사람인데 어떻게 해요. 뭔가 좀 미진하긴 하지만 나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질 사람을 나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지는 않은걸요.”</h3><h3>그렇게 그녀는 그 남성과 결혼을 했다. 그녀의 선택 판단기준은 옳았다. 이제는 그녀의 남편이고, 그녀가 낳은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 사람은 그녀의 삶에 대한 생기에 물들어 그녀를 표 나게 사랑한다. 가끔 그녀 집에 가서 저녁을 같이 먹을 때면 문득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묘한 언니 같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겠곤 한다.</h3><h3>귀엽고 발랄하고 새침데기 같으면서도 그녀는 삶 속에 행복을 가져다 줄 게 무엇인지를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h3><h3>(신경숙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h3><h3>|작법공부|</h3><h3>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 필자가 오늘 대답하고 싶은 것은 ‘소설가는 이야기 거리가 있는 사람에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존재는 곧 이야기이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다 ‘문학 이야기 거리’로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란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문학(작품)이 될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는 사람이다.</h3><h3>이 작품은 ‘이야기 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유명 소설가가 쓴 산문작품이다. 소설가가 쓴 산문이므로 소설처럼 ‘이야기 거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을 소재로 삼았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h3><h3>‘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언니처럼 느껴지는 인물이다. 그녀에게는 주변을 싱그럽게 만드는 힘 같은 것이 있다. ‘화자’ 내가 낸 택시비 대신 시집 한 권을 사 주는 그녀. 결정적 ‘이야기 거리’는 결혼 상대 선택에 있었다. 처음에는 매사에 일찍 의욕을 상실한 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후에 그 남자가 찾아와 ‘너 때문에 살 의욕이 생겼다’고 하는 말에 결혼 승낙을 하게 된다. “나 때문에 이 세상을 살고 싶다는 사람인데 어떻게 해요.”가 그녀의 결혼 철학이었다.</h3><h3>이 작품은 왜 소설이 아니고 산문인가? 신경숙 작가가 이 작품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주제를 끝까지 객관적 서사로 형상화하는 소설 작법에 있지 않고 제목이 말 해 주는 ‘그녀 삶의 방식’ 곧 ‘그녀는 삶 속에 행복을 가져다 줄 게 무엇인지를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한 줄 에세이(산문)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h3><h3>에세이는 ‘사실에 대한 사실적 토의’ 양식의 문학이다.(조연현) ‘미스 리’는 사실의 인물이다. 작가가 그렇게 썼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이 작품이 산문작품임에도 ‘미지의 인물(허구적)’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학적 산문의 창작적 변화 현상>이다.</h3><h3><서사구성법>은 창작에세이의 대표적 양식 가운데 한 가지이다. 다음 쪽에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이어서 게재하게 된 까닭은 ‘문학적 산문’의 <문학(예술)적 변화(마술)> 현상에 관한 공부를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h3> <h3>완순이언니의 부츠</h3><h3> </h3><h3>신경숙</h3><h3>(소설가)</h3><h3> </h3><h3>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가끔 완순이언니 생각이 난다. 완순이언닌 내 고종사촌인데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그녀에겐 외가댁인 우리 집에 왔었다. 와서는 나흘이나 닷새쯤 우리 집에 묵고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간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였던 것 같다. 그녀가 여중을 졸업하고 도시로 떠난 후부터는 오지 않았었으니까.</h3><h3>어렸을 때 그녀가 내 집에 오면 내 마음은 잔뜩 흔들려서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그 흔들림을 설레임이라고 표현해도 많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설레임은 완순이언니를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완순이언니는 내게 최초로 나도 저와 같았으면 하는 선망을 알게 해준 사람이었던 것이다.</h3><h3>시골에 사는 사람 같지 않게 완순이언니의 살빛은 희었고 눈은 크고 검었다. 게다가 그녀는 잘 웃었다. 웃을 때마다 볼우물이 패었는데 오목한 그 자리가 얼마나 예쁘던지 나는 그녀가 내 집에 머무를 때면 곧잘 거울 앞에서 머리핀으로 내 볼도 쏙 들어가게 눌러보곤 했었다. 하지만 머리핀을 떼면 내 뺨은 다시 평평해져버리곤 했다. 내가 그녀를 보며 설레었던 것은 다만 이런 외형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니는 없이 위로 오빠들만 셋을 두고 있었던 나는 완순이언니에게서 오빠들과는 다른 섬세함을 봤던 것 같다. 완순이언니는 내 스웨터에 돋아난 보푸라기를 떼어주었고, 머리를 빗으로 빗겨 묶어주거나 땋아주었으며, 텃밭에 함께 가주었으며, 내 손을 또랑물에 깨끗이 닦아주곤 했었다. 특히 겨울이면 완순이언니는 튼 내 손에 크림을 바르고 문질러주었고, 심부름을 갔다가 뺨이 얼어 돌아오면 춥지? 하면서 언니의 따뜻한 두 손바닥을 내 뺨에 대주곤 했었다. 아랫목 자리도 내게 따뜻한 쪽을 내주었고, 언니의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친친 감아주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 늘 오빠들 위주로 분주했던 어머니 손길을 완순이언니에게서 느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불과 나이 터울이 아홉 살밖에 나지 않았는데도.</h3><h3>여름과 겨울이면 우리 집에 오던 완순이언니가 꽤 여러 해 우리 집에 오지 않고 난 뒤 어느 겨울이었다. 며칠째 눈이 계속 내려서 사방이 희디흰 그런 때였다. 어딘가를 쏘다니다가 들어와 보니 토방에 부츠가 한 켤레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그 신발을 부츠라고 자연스럽게 말하지만 그때는 그 신발의 이름을 몰랐었다. 참 특이하게 생긴 장화 같은 털신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구 신일까? 의아해하면서 큰방 문을 열었는데 아, 내 눈은 커다래졌다. 완순이언니가 아닌가. 언니 — 나는 정신없이 방으로 뛰어들어 완순이언니의 무릎 품에 얼굴을 묻었다.</h3><h3>눈이 내린 찬바람에 꽝꽝 얼어가고 있던 것같이 뭣 때문인지 늘 찬바람이 쿨렁이던 내 어린 마음을 몇 년 만에 보는 완순이언니의 얼굴은 싹 밀어내주었던 것이다. 언니는 도회지로 나가더니 처녀가 되어 있었다. 까만 머리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고, 긴 부츠만큼이나 긴 외투를 입고 있었으며 입술은 선명해져 있었고, 움직일 때마다 언니에게선 향기로운 로션냄새가 건너오기도 했다.</h3><h3>언니는 방울 달린 머리끈을 내게 선물로 주었는데 나는 그걸로 내 머리를 묶어보지는 못했다. 내 머리가 그 끝으로 장식을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상고머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 머리끈을 내 겨울스웨터의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서 내내 만지작거렸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내 머리는 자라날 테고 그때쯤엔 그걸 쓸 수 있으려니 생각하면서.</h3><h3>처녀가 되어서 우리 집을 방문한 완순이언니는 예전과 다른 데가 없었다. 여전히 내게 정겨웠다. 너, 정말 많이 컸구나, 완순이언닌 어머니를 도와 큰 솥에 물을 붓고 군불을 지피면서 내가 많이 컸다고 대견해했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군불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속으로만 대답했다.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처녀가 된 완순이언니는 훨씬 더 섬세해져 있었다. 나는 완순이언니가 봄이 되면 시집을 갈 거라는 걸 밤에 알았다. 낡은 스웨터에서 풀어놓은 털실을 반짇고리에서 찾아내 내 귀가 추워 보인다고 귀마개를 뜨고 있는 완순이언니에게 어머니는 가을에 밭에서 걷어 올린 목화솜으로 이불을 한 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완순이언니가 대바늘로 뜨는 건 내 귀마개인데 언니의 귀밑이 빨개졌다.</h3><h3>내일 가야 되냐? 완순이언니의 외숙인 어머니는 물었고 언니는 예! 라고 대답했다. 우리 집에 오면 며칠씩은 묵고 가서 그때도 그러려니 했던 나는 내일 가야 한다는 말에 완순이언니가 더운 물에 씻겨준 발가락이 움찔거렸다.</h3><h3>쌓여있던 눈 위로 밤새 흰 눈은 또 내려서 다음날 아침 세상은 눈 천지였다. 눈을 쓸어내고 있는 아버지와 오빠들 머리 위에도 눈이 수북했다. 나는 마루로 나와 계속 내리고 있는 눈을 구경하다가 마루 밑의 완순이언니 부츠를 보았다. 신발이 없으면 완순이언니가 못 떠나려니, 내 생각은 거기에 머물렀고 나는 언니의 부츠를 감나무 밑에 쌓여있는 눈 속에 아무도 몰래 묻어버렸다. 신발이 없으면 완순이언니가 하루쯤은 더 묵으리라, 했는데 신발을 찾는 온갖 소동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나중엔 내가 신발을 감나무 밑 눈 속에 묻어놨다고 말하고 싶기도 했으나 신발을 찾는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서 나는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시 신발을 눈 속에서 꺼내 마루 밑에 갖다놓을 생각만 했지 그토록 상황이 어렵게 될 줄은 짐작도 못 했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완순이언니가 준 방울 달린 머리끈만 닳아지도록 만지작거렸다.</h3><h3>그해 겨울도 끝이 있었는지? 그 푸진 눈이 녹고 봄은 왔었는지? 그 감나무 밑의 부츠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완순이언닌 결국 그 따뜻한 부츠 대신 어머니의 낡은 털신을 신고 내게서 멀어져갔다.</h3><h3>(신경숙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h3> <h3>작법공부|</h3><h3><문학적 산문>의 ‘문학(예술)적 변화’에 관해서 필자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작가가 쓴 ‘사실의 인물 이야기’가 독자에게도 ‘사실의 인물 이야기’로 읽히는가(감상)에 관한 이론적 대답이다.</h3><h3>이순신 장군에 관한 기록은 당연히 사실의 인물 이야기로 읽는다. 그러나 문학에서 말하는 산문은 역사 과학적 사실 기록이 아닌 문학적 서술, 즉 창조적 서술을 의미한다. ‘산문’은 시, 소설 같은 창작문학은 아니지만 여전히 <창작 문학의 산문>이다.</h3><h3>신경숙 작가의 두 편의 <산문> 작품을 통해서 독자인 우리들이 확인한 사실은 무엇인가? 앞선 작품 <그녀, 삶의 방식>과 <완순이언니의 부츠>는 작가가 쓴 대로 회사동료와 고종사촌언니라는 ‘사실의 인물 이야기’이다. 독자는 작가가 쓴 대로 두 인물을 이순신 장군 이야기와 같은 ‘역사적 사실 인물’로 인식하였는가? 아니면 <미지의 인물 이야기>로 ‘감상’하였는가?</h3><h3>필자는 중학시절부터 평생 문학을 읽어왔지만 이 같은 문제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는 이론을 본 일이 없다. 할 수 없이 필자 자신이 이 질문에 관한 이론 전개를 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이다.(2017)</h3><h3>필자는 너무나도 당연히 이 두 작품을 ‘미지의 인물 이야기’로 ‘감상’하였다. 이때 ‘미지의 인물’이란 소설적 허구 인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화 된 산문의 창조적 인물’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산문의 창작문학化 작용>에 대한 이론 전개를 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이다.</h3><h3>왜 필자는 신경숙이라는 너무도 유명한 작가가 쓴 ‘사실의 인물 이야기’를 <미지의 인물 이야기>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가? 필자에게는 신경숙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작품에는 서술하지 않은 그 당시 주변 인물들과 환경에 얽힌 온갖 사실들을 경험한 기억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첫 번째 대답이고, 두 번째는 <문학 산문>의 <창작문학化 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h3><h3>에세이는 기록성을 안고 태어난 문학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창작적 기법’의 옷을 입지 않으면 문학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늘날 몽테뉴 본래의 에세이는 거의 모든 기능이 사회문화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오늘 문학에서 논의하는 에세이는 찰스 램 이후 <창작․창작적>으로 변화(진화)한 에세이이다.</h3><h3>창작에세이의 창작 개념은 사실의 소재에 대한 <시的 발상의 산문的 형상화>이다. 시 창작과 소설 창작이 다르듯 창작에세이창작도 소설과도 다르고, 시 창작과도 다르다. <시的 발상의 산문的 형상화>의 ‘시的’과 ‘산문的’이 그것이다.</h3><h3>문학문장법은 <문학 이야기>에 필요한 부분, 단면, 혹은 조각만 남기고 나머지 ‘사실’들은 모두 아낌없이 잘라 버린다. 그러므로 ‘나무’를 소재로 썼을 경우 완성된 문학작품 속의 나무는 이미 ‘사실의 나무’가 아니다. 아무리 ‘隨筆은 사실대로 쓰는 글’이라 해도 독자에게는 팔 다리 다 잘려 나간 밑동만 보일 뿐이다.</h3><h3>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5천만이 함께 ‘역사적 경험’을 한 <역사적 인물>이다. 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을 대한민국 隨筆은 무려 1백 년 동안이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이 같은 ‘사실의 소재’의 ‘문학(예술)적 변화현상’을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 이론으로 해석하고 있다.(창작에세이학 원론)</h3><h3>작가가 아무리 회사동료 미스 리와 고종사촌언니 이야기라고 써도 독자에게는 역사적 사실 인물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독자는 작가의 사실의 인물을 ‘신경숙 작가처럼’ 경험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문학 산문> 작법은 ‘사실’이 아닌 ‘창조적 모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h3><h3><그녀, 삶의 방식>은 ‘사실의 인물’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나 때문에 세상을 살고 싶다는 사람인데 어떻게 해요.”라는 ‘미지의 창조적 인물’로 감상할 수밖에 없고, <완순이언니의 부츠>는 하루 밤만 더 머물기를 바란 ‘나’의 완순이언니에 대한 소녀적 동경과 애정이 부츠를 눈 속에 감추는 사건으로 번지게 되는 데서 ‘미지의 창조적 인물’ 이야기로 읽힐 수밖에 없다.</h3><h3>隨筆이 처음부터 ‘신변잡기’ 소리를 듣게 된 원인은 저들은 이 같은 <문학적 장치>, <문학化 작업>을 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겠는가?</h3><h3> </h3><h3>여담 : 연전에 있었던 신경숙 작가 표절 시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표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가는 없다. 모든 작가는 비의도적 표절에 노출되어 있다. 법(과학)적 판결 없는 표절시비는 상처만 남길 뿐이다. 나는 한 사람의 독자로 신경숙 작가가 상처를 털고 일어나 전보다 더 왕성한 창작을 해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h3> <h3>여자 4</h3><h3> </h3><h3>김 훈</h3><h3>(소설가)</h3><h3> </h3><h3>몸을 드러낸 여자들은 도시의 여름을 긴장시킨다. 탱크톱에 핫팬츠로, 강렬하게 몸매를 드러낸 여자가 저쪽에서 걸어올 때, 더위에 늘어진 거리는 문득 성적 활기를 회복한다. 노출이 대담한 여름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여자의 옷을 보고 있는지 몸을 보고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 혼란은 온갖 정의로운 담론들이 아우성치는 이 황폐한 도시에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나의, 그나마의 즐거움이다.</h3><h3>진보적 자유나 보수적 진실을 절규하는 신문 칼럼을 읽을 때가 아니라, 노출이 대담한 젊은 여자가 그의 젊은 애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나라의 미래에 안도감을 느낀다. 여름 여자들의 그 손바닥만 한 탱크톱과 핫팬츠, 그리고 그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 사이에서 나는 흔히 아득함을 느낀다.</h3><h3>여자들의 여름패션이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탱크톱의 긴장감과 해방감을 능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탱크톱은 하나의 자족한 세계를 이룩한 패션이다. 드러내기와 감추기 사이에서 탱크톱은 가장 긴장된 타협을 이루어낸다. 그래서 헐렁한 탱크톱과 꽉 끼는 탱크톱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유혹적인가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탱크톱은 감추려는 가슴 부분을 오히려 더 드러냄으로써, 드러난 어깨와 팔을 거꾸로 감추는 듯하다. 탱크톱이 이룩한 그 긴장된 타협이 드러내기와 감추기의 경계를 허물어내는 것이다.</h3><h3>탱크톱의 끈은 브래지어의 끈과 함께 여름 여자의 어깨 위로 나란히 나타난다. 아, 그 두 개의 끈 사이의 밀고 당김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 두 개의 끈은 전혀 계통이 다른 끈이다. 탱크톱의 어깨끈은 겉옷으로서의 공식성을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브래지어의 어깨끈은 그 최소한의 공식성을 벗어나고 만다. 흔히 브래지어의 어깨끈은 속옷의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 질감은 순결한 무방비의 질감이다. 그 두 개의 끈 사이의 문명적 거리는 멀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끈은 서로 모순되면서 닮아간다. 탱크톱의 어깨끈은 형태를 버리고 증발하려 하지만, 브래지어의 어깨끈은 형태를 갖추어 세상 밖으로 나오려한다. 여름 여자들의 어깨 위에서 그 두 개의 끈은 충격적 대조를 이루며 평화롭게 공존한다. 그 어깨 위에서 브래지어 끈이 한쪽으로 흘러내렸을 때 평화는 문득 깨어질 듯한데, 나는 이런 어깨는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h3><h3>올여름에는 탱크톱의 어깨 위로 브래지어 끈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명한 브래지어 끈이 나왔다고 여성잡지 패션광고에서 읽었다. 속옷 끈이 몰고 오는 연상 작용을 꺼려하는 새침한 속성이 여자들에게 남아 있는 모양인데, 뭐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h3><h3>탱크톱은 겨드랑이 살을 드러낸다. 살이 접혀서, 작은 고랑을 이루는 부위다. 메릴린 몬로는 이 부위의 살이 아름답게 접혀 있었다. 먼로는 죽어서 다 썩었겠지만, 후세의 여자들은 이 부위 살을 먼로 살이라고 부른다. 너무 두껍지만 않다면 먼로 살은 아름답고 에로틱하다. 먼로 살 주변에서 평화와 도발은 다르지 않다. 나는 그 모순 속에서의 긴장이 즐겁다. 더구나 지금은 찌는 여름인 것이다.</h3><h3>화장품 광고를 보았더니, 올여름에는 틴트tint라는 입술화장품이 나왔다. 이것은 장미에서 추출한 천연물감이다. 젊은 여자후배를 불러서 이 틴트를 실험해보게 했다. 틴트는 놀라운 화장품이었다. 립스틱이나 립글로스는 입술의 잔주름을 기름기로 덮어서 끈끈하게 번들거리는 공격성을 드러내지만 틴트는 그 주름들을 그대로 살려내면서 입술의 자연성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틴트의 아름다움은 그 헐거움과 그 빈약함에 있다. 잘 익은 수박을 식칼로 쪼개면 그 속에서 펼쳐지는 바다와 같은 선홍색은 천연의 색깔이다. 틴트는 그 수박의 식물성을 닮아 있었다. 립스틱과 립글로스는 바깥쪽을 지향하지만, 틴트는 입술과 미세하게 교섭하면서 입술의 안쪽을 지향하고 있었다. 립스틱과 틴트의 관계는 탱크톱과 브래지어 끈의 관계와 유사하다. 틴트의 유혹은 그 평화와 자연성에 있었다. 도발과 평화 사이를 밀고 당기면서, 여름 여자들의 노출과 화장은 스스로 긴장된 자리를 찾아간다.</h3><h3>나는 우리나라 여자들이 다들 예쁘고 다들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여자들의 성적 매력은 나라의 힘이고 겨레의 기쁨이다. 올여름 여자들의 노출이 너무 심하다고 텔레비전은 개탄하고 있지만, 너무 그러지들 말라. 곧 가을이 오면 여자들은 다시 옷을 입을 것이다. 좋은 것을 좀 내버려두라는 말이다.</h3><h3>(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h3><h3>|작법공부|</h3><h3>금호 특집 주제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왜 산문 ‧ 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은 필자가 할 필요 없다. 김 훈 작가가 이미 해 주었기 때문이다. 김 훈 작가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h3><h3> </h3><h3>"소설은 이 책에 나오는 글들보다는 분량 면에서 휠씬 길고 또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결합되어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인 반면 수필은 대부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을 적어 나가는 신변잡기적인 성격을 갖는다.</h3><h3>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그러한 신변잡기적인 글들보다는 좀 더 질서 있고 다양한 가치판단을 적어 나가고 있는 것들에 주안점을 두어 선별하였다."</h3><h3><br></h3><h3>([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김훈 ․ 안도현 -서문)</h3> <h3>필자는 <수필은 대부분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은 일들을 적어 나가는 신변잡기적인 성격을 갖는다.>에 백프로 동의한다. 신변잡기란 <질서 있>는 글도 아니고 <다양한 가치판단>의 글도 아니라는 비평에도 백프로 동의한다.</h3><h3>김 훈 작가는 소설과 산문 모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김 훈 작가의 ‘산문’과 수필가들의 ‘隨筆’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h3><h3>필자는 이 작품을 읽으며 ‘문학의 본질적 소재는 무엇인가’라는 해 묵은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국어사전은 문학의 소재를 정서와 사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서와 사상은 누구의 것인가? 사람의 정서․사상을 의미한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남자와 여자다. 남자와 여자란 무엇인가? 남성 性을 가진 존재와 여성 性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실제로 수많은 문학예술작품이 직접 성문제를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해도 남성 性을 가진 존재와 여성 性을 가진 존재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문학예술은 없다고 해도 조금도 과언이 아니다.</h3><h3>2018년은 ‘미투 사건의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 이 편집을 하고 있는 때는 6월 초순이다. 어제 그제 어느 SNS에 남자가 상의를 벗은 사진은 그대로 두고 여자가 벗은 사진은 삭제했다고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상의를 벗고 항의하여 해당 SNS가 사과하고 다시 여성 윗몸 탈의 사진을 복구하였다고 한다.</h3><h3>사람은 ‘풀 한 포기’와 ‘날아가는 새’에 대한 느낌을 각기 다르게 느끼는 존재다. 그렇지 않다면, 풀 한 포기나 새 한 마리나 그게 그것으로 느낀다면, 이 세상은 시체들의 무덤일 것이다.</h3><h3>남성들이 여성들의 노출패션에서 성적 충격은 느끼는 감정은 남성들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여성이 성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여성들이 의도적으로 창조하여 가진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그 같은 능력이 없다. 그것은 마치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꽃이 스스로 창조하여 가진 것이 아닌 것과 같다.</h3><h3>여성들이 뭇 남성들이 힐끗거리는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여름이 되기 무섭게 최후 요충지대만 남기고 옷을 벗어버리는 까닭은 여자들이 무처럼 바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남성들은 여름이 되어도 덥지 않은데 여성들만 유독 덥기 때문도 아니다. 태초부터 여성은 아름답게 창조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본인이 도덕과 종교와 페미니즘 철학으로 ‘의지적 통제’를 하지 않는 한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은 본능을 저항 할 수 없다.</h3><h3>이 원초적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문제를 바로 해결 할 수 있는 길은 영구히 찾지 못한 채 남녀 관계는 뜻하지 않은 대결구도로 치닫게 될 것이다. ‘미투’ 고발에서 칼끝에 찔린 것 같은 느낌을 안 느낀 남성이 있는가?</h3><h3>김 훈 작가는 ‘노출이 대담한 여름 여자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여자의 옷을 보고 있는지 몸을 보고 있는지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혼란이 ‘즐거움’이라고 한다.</h3><h3>남성들이 혼란을 즐겁게 느끼는 것은 관음증 때문이 아니다. 남성은 열 번 다시 태어나도 그 혼란을 즐거움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느낄 능력이 없다. 태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이다. 만약에 남성이 그렇게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면,(진화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다면…) 혼란을 즐겁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완전통제도 가능 하다면 인류는 원시 시대에서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훈 작가는 ‘노출이 대담한 젊은 여자가 그의 젊은 애인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활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나라의 미래에 안도감을 느낀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h3><h3>식욕은 아무리 왕성해도 파리 새끼 한 마리 생산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욕은 문지방 넘을 기운만 남았어도 아직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신비한 창조적 능력은 남성 자신이 만들어 가진 것도 아니고, 어머니인 여성이 창조한 것도 아니다. 태초부터 그렇게 창조된 것이다.(진화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진화된 것이다.) 그 누구도 신의 창조를 원천무효 시킬 수 없다.(진화론도 마찬가지다.)</h3><h3>性 문제가 마치 남성만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그것이야말로 性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다.</h3><h3>김 훈 작가는 젊은 여자들의 성적 매력은 나라의 힘이고 겨레의 기쁨이라고 한다. 이것이 性 문제 출발선이다. 여성의 성적매력은 인류생존의 원천이다. 여성의 성적매력이 모두 사라져버려서 상의를 벗든 하의 실종이 되든 본둥만둥하게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 당대나 다음 세대에서 인류는 멸종되고 말 것이다. 인간은 하고 싶지 않고, 즐겁지 않은 일은 본능적으로 피하는 존재다. 성교를 필요에 의하여 의무적으로 해야 된다면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났겠는가? (오!오! 인간이란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고! 자기 엄마 아빠가 ‘그 짓’을 아주 열심히 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한사코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구나!) 성적 매력과 성적 욕망, 즐거움을 나무라는 것은 반인륜적 무지다. 이 세상에 ‘그 짓’처럼 아름다운 행위는 없다. ‘그 짓’을 ‘그 짓’이라고 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 같은 어리석음이다.</h3><h3>길거리나 전철에서 젊은 남녀가 마치 한 몸으로 달라붙은 듯 뽀뽀도 하고 애무하는 모양을 나무라는 노인들이 있다. 우리 시대(70대 후반)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전철에서 정면밀착 뽀뽀를 할 수 있는 이 시대는 얼마나 개명한 시대인가. 길거리에서 손잡고 걷기조차 민망하였던 필자의 젊은 날은 얼마나 미개한 시대였는가. 이 세상에서 하루라도 속히 사라져야 할 눈이 있다면 ‘사랑하는 모양’을 불결하게 보는 눈일 것이다.</h3><h3>문화란 ‘어떻게 인간답게 가리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만약에 어떤 문화가 ‘최선의 인간답게’를 억압한다면 당연히 그 같은 문화는 배척해야 할 것이다.(중동 여성들은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여성탈의 사진 삭제에 대한 반라시위가 ‘인간답게’ 자체를 억압하는 데 대한 시위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h3><h3>만약에 우리 모두가 여성의 상의 탈의를 전철 안 젊은이들의 밀착 뽀뽀처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이 준비된다면…, 나는 그런 시대가 하루라도 속히 앞당겨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죽기 전에 이 아름다운 지구가 또다시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에덴동산이 회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오늘 2018년에는 아직 그런 눈(문화)이 준비되지 않았다.</h3><h3>필자는 본능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본능은 필요한 만큼 통제해야 되고, 통제 할 수도 있지만 본능 이 없는 생존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숙제는 본능에서부터 풀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다.</h3><h3>산문의 본질은 ‘사실에 대한 사실적 토의’에 있다.(조연현․김영덕) 이 작품의 첫 문장 “몸을 드러낸 여자들은 도시의 여름을 긴장시킨다.” 같은 문장은 隨筆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김 훈 작가의 산문작품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데 隨筆은 서점에서마저 내 버리는가?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필자가 발견한 사실은 隨筆은 전체 문장과 문장이 서로 받쳐주는 문학적 결속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문장만 가지고 명작이 될 수 있는 문학은 없다. 문학은 문장구성의 예술이다.</h3><h3>수필가들(수필가들 대부분이 여성이다)은 이 작품을 읽으며 여성이 아닌 남성이 여성의 속옷 브래지어 끈에 관하여 이 처럼 지독하도록(?) 치열하게 문화․창조적 접근을 하고 있는 글쓰기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 들까? 자신들은 생각조차 해 본이 없다는 사실에 어떤 느낌이 들까? 이것이 김훈 작가의 산문과 隨筆의 다른 점이다.</h3><h3>오늘의 김 훈이라는 작가는 ‘붓 가는 대로’ 되었는가? 올여름에는 틴트tint라는 새로운 입술화장품이 나왔는데 젊은 후배를 불러서 실험해보게 했다고 한다. 그냥 입술에 발라만 보게 한 것이 아니다. 김 훈 작가의 집요하고 예리한 관찰을 다시 읽어 보라! 여성의 겨드랑이 살을 ‘메릴린 먼로 살’이라고 한다고 한다. 김 훈 작가는 여성의 겨드랑이 살에 관한 자료까지 조사 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이것이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예술가들의 <산문․에세이>와 수필가들의 <隨筆>의 차이가 아닌가? 그러니 시인, 소설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겠는가?</h3><h3><문학․산문>의 힘은 무엇에 있는가? 모두가 점잖은 체 하는 위선의 세상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h3><h3>이태동 교수는 문학은 ‘누구나 다 느끼는데 표현되지 못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름이 되면 젊은 여자들의 벗은 몸이 무엇인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러나 누구나 다 느끼는 그 속의 비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나 쉽게 콕 집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을 콕 집어내는 것이 김 훈 작가 산문의 즐거움과 힘일 것이다.</h3> <h3>틀 니</h3><h3> </h3><h3>유경환</h3><h3>(1936∼2007 시인)</h3><h3> </h3><h3>어머니와 나, 이렇게 단둘만의 자리가 되자, 어머니는 오래 망설여 온 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h3><h3>“아범아, 거 건환이 친구의 치과의사 OOO가 있잖니? 하도 이가 아파 가서 알아봤더니 한 30만원 든다더구나.”</h3><h3>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에서 이 한마디가 얼마나 어렵게 나왔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h3><h3>참으로 오래간만에 어머니와 마주한 자리. 늦 나이에 밖에 나가 공부라고 한답시고 객지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그 옛날 내가 소년이었을 적처럼 마주한 자리였다.</h3><h3>건환이는 이민을 간 동생이다. 늘 우리 집에 놀러오던 동생의 친구가 치과의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이 동생 친구네 치과에 다니셨다. 그런데 오래 된 틀니가, 어머니 말대로 하면 ‘고장이 난 것’이다. 그래 다시 해 넣는 데 그런 돈이 든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 모르고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틀니 때문에 고생을 하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자식이 돌아온 지 몇 달 만에 기회를 보아 오다 넌지시 말을 꺼내신 것이다.</h3><h3>“제가 해 드릴께요.”</h3><h3>우선 이렇게 답했다. 좀처럼 자식 앞에서 돈 얘기는 안 꺼내는 어머니다. 그런데 어찌 대답이라도 시원스레 안 해드릴 수가 있겠는가.</h3><h3>어머니는 조금 부끄럼 타는 기색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고 나서, 어느 한 개만 갈 수 없어 아랫 틀니 전부를 새로 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셨다. 그게 목돈이 된다는 사연이다.</h3><h3>이게 지금부터 만 10년 전이다. 아마 지금 틀니를 하자면 한 3백만 원쯤 들지 않겠나 싶다.</h3><h3>어머니는 내 말 한마디를 믿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는 다시 틀니 값을 꺼내지 아니하셨다.(나 몰래 얼마나 내 눈치를 살피셨을까). 시원스러운 내 대답과는 달리, 나는 이 목돈을 선뜻 해드리지 못했다. 원고를 써서 목돈이 되면 드리려고 저금통장까지 따로 만들었지만 끝내 해드리지 못했다.</h3><h3>다달이 조금씩 월급에서 떼어 드리는 생활비 외에 따로 목돈 30만 원을 마련하기가 그때엔 그렇게도 힘들었을까?</h3><h3>약속을 넘긴 지 1년 만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지방 세미나에 갔다가 연락을 받고 밤새껏 달려왔으나, 이미 어머니의 영혼은 날아간 뒤였다.</h3><h3>그때 어머니는 만 여든이셨다.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가신 지 3년 뒤에 아버지도 같은 나이 여든으로 가셨다. 만일 어머니가 좀 더 사셨다면 아버지도 좀 더 사셨을 것이다.</h3><h3>어머니는 병상에 눕지도 않고 나다니시다가 어느 날 아침 누워 가셨다. 그렇게 갑작스레 가신 것은, 어머니의 틀니 때문인 지도 모른다. 제대로 잡수시지 못해 기진하여 가신 것으로밖에는 달리 풀이가 안 된다.</h3><h3>문상객들은 내게 호상이라고 위로의 말을 한마디씩 던졌으나 그러나 약속을 못 지킨 죄책감으로 속이 몹시 쓰렸다.</h3><h3>해가 바뀌고 바뀌어 어머니가 가신 지 10년이 된다. 10년 되는데도 아직 30만 원의 가슴앓이는 가슴 구석에 남아 때때로 도진다.</h3><h3>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이다. 큰아이가 유학을 떠나게 되어 동네 중국집에 모시고 가서 탕수육을 시켜 놓고 가족송별회를 연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가 탕수육을 오물오물 씹어 넘기는 것을 보고 조금 안심이 되어 그런대로 얼마쯤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h3><h3>지금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빚이라도 내어 바로 해드렸어야 옳았을 것이라고 소용없는 후회를 되씹지만 예나 지금이나 월급쟁이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로서는 만 10년 전 그 돈이 그리 가벼운 액수는 아니었나 싶다.</h3><h3>이제야 내가 이따금씩 치통을 앓으면서, 그때 들뜬 틀니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못 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 안쪽이 흥건히 젖어드는 걸 주체 못한다.</h3><h3>‘그게 정말 수월찮은 액수였나.’</h3><h3>“……언젠가 비 오는 날 어스름에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니 역촌동 네거리 약국 추녀 안에 자네 어머님이 혼자 서 계시지 않겠나……. 그래 왜 아들네 집이 지척인데 안 가시고 저기서 비를 피하시나 생각했었지…….”</h3><h3>동생 친구가 아닌 내 친구가 이 한마디를 무심코 내게 들려주었을 때 전기에 감전되듯 가슴이 뻐개지는 아픔을 느끼고 되돌아서 울고 말았다.</h3><h3>어머니는 아마 치통 때문에 내 집으로 오시다가 비를 만나 약국에서 피하셨으리라. 어느 아들네 집으로 갈까 망설이셨으리라. 아니면 돈 30만 원 이야기를 독촉하러 나섰다가 차마 발길이 안 떨어져 약국 추녀 밑에서 망설이셨으리라.</h3><h3>비 오는 날 저녁 어머니가 집에 오신 기억이 없다. 그러니 그냥 발길을 되돌리신 것이 확실하다. 크지도 아니한 키에 조심조심 내딛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으랴. 어느 날 아들이 ‘어머니, 이것 가지고 치과에 가셔요.’하고 돈뭉치를 내놓기만 기다리다, 끝내 그 소리를 못 듣고 가버리신 어머니.</h3><h3>어버이 살아 실제……라는 시조 한 수를 고등학교 은사 한 분이 써서 표구까지 해 주신 적이 있다. 그걸 받아 걸고서, ‘이게 왜 필요하랴’ 하고 자만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 10주기에 아직 가슴이 쓰린 것은 그 시조 한 수도 제대로 다 못 외웠기 때문이 아닌가.</h3><h3>비 오는 날이면 나는 치통을 앓는다. 뒤늦게 깨닫는 늦둥이의 불효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온 내 나름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새삼 어떤 회의가 깊어져 빗속에서 두리번거리듯 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이면 쑤시는 어금니 턱에 왼쪽 손을 올려 떠받치고, 어디 가까운 곳에 치과가 없는가 두리번거린다. 이런 꿈을 깨고 나면 내 나이를 짚어 보게 된다.</h3><h3>비 오는 날이면 치통을 앓고 싶어진다.</h3><h3>(유경환 수필집 [나무호미])</h3><h3>|작법공부|</h3><h3>작품 속 시간 현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년이 지난 때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시간 순서대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h3><h3>①고등학교 은사님의 어버이 살아 실제……라는 시조 표구.</h3><h3>②어머니가 틀니를 새로 해 넣는데 30만원 든다고 하셨다.</h3><h3>③내가 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h3><h3>④그러나 못해 드렸다.</h3><h3>⑤어느 날 약국 추녀 밑에 어머니가 혼자 서 계셨다.</h3><h3>⑥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큰아이 유학송별회 때 탕수육을 오물오물 드셨다.</h3><h3>⑦한 달 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h3><h3>⑧10년 지났지만 틀니를 못해드린 가슴앓이를 앓는다.</h3><h3>⑨비 오는 날이면 치통을 앓고 싶어진다.</h3><h3> </h3><h3>실제 작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사건)가 배열(구성․플롯)되었다.</h3><h3> </h3><h3>②어머니가 틀니를 새로 해 넣는데 30만원 든다고 하셨다.</h3><h3>③내가 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h3><h3>④그러나 못해 드렸다.</h3><h3>⑦한 달 후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h3><h3>⑧10년 지났지만 틀니를 못해드린 가슴앓이를 앓는다.</h3><h3>⑥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큰아이 유학송별회 때 탕수육을 오물오물 드셨다.</h3><h3>⑤어느 날 약국 추녀 밑에 어머니가 혼자 서 계셨다.</h3><h3>①고등학교 은사님의 어버이 살아 실제……라는 시조 표구.</h3><h3>⑨비 오는 날이면 치통을 앓고 싶어진다.</h3><h3> </h3><h3>문인들이 말하는 <문학>이라는 것에서 논의하는 <구성>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앞서 천관우의 <西部>에 대해 필자는 ‘언론인답게 조리 있게 쓴 글’이라고 하였다. 문인들이 말하는 문학(창작) 구성법이란 ‘조리 있게 쓰는 것’을 의미하는가?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학의 구성은 언론인이 ‘조리 있게’ 쓸 수 있는 그런 조리(條理)가 아니다.</h3><h3>언론인의 조리는 논리적 조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문학의 플롯(구성)은 창조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배열’은 논리적 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 배열을 의미한다.</h3><h3>생선토막을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배열하려면 <①머리 ②몸통 ③꼬리> 순서로 배열해야 된다. 그러나 창조적으로 배열 하려면 <②몸통 ①머리 ③꼬리> 혹은 <③꼬리 ②몸통 ①머리> 순서로 배열해야 된다.</h3><h3><①머리 ②몸통 ③꼬리> 순서는 사실이다. 일반산문은 사실의 문학이다.</h3><h3><②몸통 ①머리 ③꼬리> 혹은 <③꼬리 ②몸통 ①머리>는 사실이 아니다. 문예창작은 사실이 아닌 허구창작을 의미한다.</h3><h3>이 작품이 게재된 유경환의 나무호미는 금호 특집 작품집 중에서 유일하게 <산문집>이나 <에세이집>이라 하지 않고 <수필집>이라고 책제를 붙인 작품이다.</h3><h3>그러면 시인 유경환의 ‘수필’은 ‘신변잡기’를 의미하는가? 이 같은 필자의 의도적 질문에 유경환 시인의 작품 <틀니>는 무엇이라고 대답해 주는가? ‘아니다. 나는 창조적으로 구성된 작품이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해 주고 있지 않은가!</h3><h3>이 작품의 가장 결정적 창조 구성은,</h3><h3>⑤어느 날 약국 추녀 밑에 어머니가 혼자 서 계셨다.</h3><h3>①고등학교 은사님의 어버이 살아 실제……라는 시조 표구.</h3><h3>를 바로 ⑤번과 ①번 현재 자리에 배열한 점이다.</h3><h3>천관우의 <西部>에 대해 무엇이라고 든 긍정적인 평가를 한 수필가들의 평가는 한 마디로 집약하면 ‘문장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토론회 사회를 본 유경환 시인은 <‘서부’는 ‘문학작품으로서의 수필’로 보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고, 이태동 교수는 ‘문학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분들이 말하는 <문학>의 뜻은 무엇이며 隨筆가들이 말하는 <문장>은 무슨 뜻인가?</h3><h3>유경환 시인과 이태동 교수가 말하는 <문학>은 창조적으로 구성된 작품을 의미한다. 그러나 隨筆가들이 말하는 <문장>은 조리 있게 쓴 글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리 있게 쓰는 글의 절대조건은 주제에 대한 독창적인 깊은 이해와 해석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되면 일반산문에세이이 되고, 못되면 ‘신변잡기’로 떨어지는 것이다.</h3><h3>隨筆은 지난 현대문학 1세기 동안 그나마 ‘조리 있게’에도 미치지 못하는 글들이 절대 다수였기 때문에 지금도 ‘신변잡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h3> <h3>개살구</h3><h3> </h3><h3>함민복</h3><h3>(시인)</h3><h3> </h3><h3>그래 개살구였구나. 개살구 떨어지는 소리였구나. 양철지붕 위로 개살구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깬 나는 달력을 본다.</h3><h3>칠월 중순.</h3><h3>나는 집 뒤 우물곁에 있는 개살구나무를 꽃필 때 본 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h3><h3>“네 작은 형을 뱄을 때 6‧25가 터졌다. 원래네 집터에 살고 있었을 땐데 바깥마당 그 살구나무 너도 알지? 바람에 떨어진 살구 한 가마니를 주워 놓았었다. 그 신 살구 하나 먹어보지도 못하고 피난길에 올랐었다. 물정에 어두워 피난을 나간다는 게 마중을 나가 버렸다. 그쪽으로 인민군이 다가오고 있다기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피난 온 강원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이란 곡식은 다 먹어버렸더라.”</h3><h3>창에 비친 달빛이 밝다. 나는 댓돌을 내려서 안마당을 지나 양철 대문을 열고 바깥마당으로 나간다. 바깥마당에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고욤나무가 어둠 속에 어떻게 사라지는지, 어떻게 녹아드는지 몇 시간씩 방에 누워 꼼짝하지 않고 지켜본 적이 있다. 고욤나무 잔가지가 먼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몸통이 제일 나중에 눈앞에서 사라졌다.</h3><h3>시골동네 집들은 불빛 하나 없이 조용하다. 달은 바다 위에 휘영청 밝다. 달빛이 바닷물 위에 금빛 길을 깔아 놓았다. 저 길로 걸어가면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만날 것도 같다.</h3><h3>달을 보고 있으면 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도 달을 보며 내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았다. 어머니와 자식의 마음이 서로 마중 나가 만나는 장소 달을,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먹여 주는 달을 생각하며 나는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h3><h3> </h3><h3>저 달 장아찌 누가 박아 놓았나</h3><h3> </h3><h3>마중 마중 나오는 달 정거장</h3><h3>길이 있어</h3><h3>어머니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 산다</h3><h3>혼자 사는 달</h3><h3>시린 바다</h3><h3>저 달 장아찌 누가 박아 놓았나</h3><h3> </h3><h3>달을 보고 있는 중에도 개살구가 양철지붕 위로 떨어진다. 개살구나무가 제법 커 지붕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사위를 턱 투득 때린다. 그럴 때마다 살구나무 곁에 있는 오동나무의 코끼리 귀만 한 오동잎이 펄럭이고 뒷산으로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h3><h3>6‧25 때 살구가 익었다고 하는 데 왜 칠월중순에야 개살구가 떨어지는 걸까. 고향 충주 중원 땅과 강화도의 위도 차이일까. 아니면 꽃 피고 열매 맺는 시절이 그간 변한 것일까. 개살구와 참살구의 차이일까.</h3><h3>나는 새순처럼 새벽잠이 없다. 아마 새벽잠이 없는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습관 때문이리라.</h3><h3>새벽이 되면 아버지는 마른 짚에 입으로 물을 푸푸 뿜으며 윗목에서 삼태기나 맷방석 짜는 짚일을 했고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셨다. 나는 아랫목에서 이불을 드르르 감고 누워 청소년 소설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어머니도 듣고 계셨던지 걔네들 또 만나지 못하냐고 안타까워하시기도 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의 내용도 제목도 기억엔 없다. 남녀 주인공이 각각 타고 있는 기차가 서로 부딪혀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 하나가 기억될 뿐이다.</h3><h3>질화로에 묻어 둔 인두를 꺼내 인두 바닥에 침을 뱉어 동정을 다리는 누릿한 냄새가 방 안에 피기도 하던 그 시절,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 어머니가 읽은 얘기책 이야기도 들었는데 남정임이가 주인공인 ≪능라도≫란 책 줄거리가 재미있었다. 어머니가 허리를 펴며 들려주던 지난 얘기 한 토막이 떠오른다.</h3><h3>“인민군들이 후퇴하며 조합창고에 불을 질렀었다. 마을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불타지 않은 벼를 퍼 가기에 나도 한 가마니를 걸망으로 걸머메고 오다가, 지금 기와 공장이 있는 곳에서 소나무 가지로 방천을 막아 놓은 개울을 건너다가 뒤로 자빠졌다. 물에 젖어 볏가마니는 무거워 오지 어깻죽지는 빠지지 않지 여기서 죽는구나 싶어 발버둥 치다가 그만 그때 허리를 다쳤다.”</h3><h3>내가 살고 있는 집은 빨간 양철지붕을 얹은 안채, 파란 양철지붕을 인 행랑채, 흰 슬레이트를 올린 화장실로 되어 있다. 나는 이를 자금성, 청와대, 백악관이라고 부른다. 백악관 옆으로 허드레 물건을 저장하던 창고와 메워진 옛날 화장실이 있다. 이 화장실 벽에 밤이면 고욤나무 그림자가 서 있곤 했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채마 밭을 돌아 화장실을 갈 때마다 그 그림자를 벽에 그대로 본뜨고 싶은 맘이 들었다.</h3><h3>그림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림자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쓰기도 했다. 해바라기 작은 씨가 땅 속으로 들어가 커다란 해바라기 그림자를 캐 올리고 있다고 쓰기도 했으며, 죽음만이 실재하고 모든 살아가는 것들은 죽음의 그림자란 시를 쓰기도 했다. 요즘은 현재의 삶은 어릴 적 고향에서의 삶의 그림자 같다는 시를 써 보려 하고 있다.</h3><h3>나무가 흔들린다. 그림자도 흔들린다. 그림자가 흔들린다. 내 뒤편에 있는 나무도 흔들리나 보다. 그림자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는 그림자만 있다. 나는 고욤나무 그림자가 서 있는 벽으로 다가가 내 그림자를 일으켜 세우며 옛 기억 하나를 더듬는다.</h3><h3>고향을 떠나 청량리에 살 때다.</h3><h3>“내 한자로 된 목도장 못 봤냐?”</h3><h3>“어머니, 아무 도장이나 가져가셔도 투표하는 데 지장 없어요. 그거 제가 시골서 퇴거해 올 때 면사무소에 놓고 왔어요.”</h3><h3>“그 도장 찾아와야 한다. 6‧25 때 징용 나가 소식 없는 네 막내 외삼촌이 새겨 준 거다. 나는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꼭 그 도장을 가지고 투표장에 갔었다.”</h3><h3>대문을 잠근다. 방 안으로 따라 들어온 달빛과 그림자와 같이 눕는다. 개살구 떨어지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h3><h3>어머니 마음속에 외삼촌은 살구처럼 신 그림자였으리라.</h3><h3>(함민복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h3><h3>|작법공부|</h3><h3>필자는 이 작품을 <산문의 詩> 작품으로 읽었다. <산문>도 <에세이>도 아닌 詩 작품으로 읽었다는 뜻이다.</h3><h3>‘산문’은 에세이의 우리말 이름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 몽테뉴의 에세이인가? 전혀 아니다. 이 작품은 금호에 게재된 작품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형식이 다르다. 혹자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 할 것이다. 혹은 외삼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 할 수도 있을 것이다.</h3><h3>그러나 작품 전체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외삼촌 이야기는 종결문장에 딱 한 줄로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종류의 산문인가? 시인은 이 작품을 누구나 아무 의심 없이 알고 있는 산문 혹은 에세이 작품으로 썼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h3><h3>문학예술의 발전, 변화,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바로 이 작품 같은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양식의 문학예술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찰스 램에서 결정적 변화(진화)를 맞이한 에세이는 오늘 현재(2018) 찰스 램으로부터 다시 243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다. 찰스 램은 더 이상 아무 변화도 없이 243년 전 그 자리에 화석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다. 찰스 램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식의 창작․창작적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같은 작품 현상을 발견하여 이론화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2017)이다.</h3><h3>필자가 지난 1세기 현대문학 역사 가운데서 발견한 새로운 양식의 산문․에세이가 금호 특집으로 선정한 작품들 같은 형식의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 창작에세이 창작개념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 양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이 작품 같은 양식의 <시적 산문>이다. 그 최초 작품이 최남선의 <가을>이다.(1917) 이 작품 외에 금호에 게재한 김기림의 <길>이 <시적 산문>의 좋은 예제 작품이 될 것이다.</h3><h3>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그들의 산문․에세이에서 소설이나 희곡이 아닌 새로운 양식의 ‘미지의 인물 서사’를 창작하거나 이 작품 같은 완전한 산문형식의 詩를 창작하고 있다. 그러나 隨筆은 1세기 동안이나 ‘신변잡기’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니 시인, 소설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겠는가?</h3> <h3>사주오 두부장수</h3><h3> </h3><h3>최현배</h3><h3>(1894∼1970 국어학자)</h3><h3> </h3><h3>서울의 명물, 아니 진경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이 외는 소리이다. 조석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 또 남성(男聲)으로 혹은 여성(女聲)으로 제각기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 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들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이 없겠지마는,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이 외는 소리처럼 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는 것이다.</h3><h3>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30년 전의 일이다. 내가 시골서 백여 리를 걸어서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서 생전 처음 보는 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 관훈방 청석골 정 소사의 집이었다. 같이 온 동무도 있었거니와, 이 주인 집에 묵은 학생들은, 고향 친척도 있고 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는 날 당장에는 그리 설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 그 이튿날 이른 아침에 들창 밖에서 들려오는 각종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는 참으로 어린 시골내기의 귀에 찔려 놀라게 하였다.</h3><h3>“생선 비웃들˜¹ 사려오!”</h3><h3>“무우드렁 사려!”</h3><h3>“맛있는 새우젓 사오!”</h3><h3>어느 소리나 하나 귀에 익은 게 없다. 모두 신기 그것이다.</h3><h3>갓 온 시골내기는 먼저 온 영남 친구더러 그 외침의 뜻을 물으면서 서로 보고 웃었다.</h3><h3>이것은 다 지난 옛날이야기의 한 토막이거니와, 서울 거리의 도붓장수(行商)의 외치는 소리는 예나 이제나 별로 다름이 없이 아침마다 저녁마다 거리거리의 공기를 울려 난다.</h3><h3>나는 서울로 이사 온 뒤부터 열 해가 넘도록 이 행촌동에 살아온다. 우리 집이 이 동네로 이사 온 때로부터 행촌동 거리에는 아침저녁으로 여러 가지의 식료품 파는 도붓장수가 가지가지의 음색으로 가지가지의 어법으로 외치고 지나간다. 그 중에도 두부장수, 두부장수 중에도 한 두부장수가 있어 남다른 어법으로, 또 남다른 어조로 특색 있게 아침저녁으로 외치며 도부 친다. 여느 두부장수들은 ,</h3><h3>“두부 사려오!”</h3><h3>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특색 있는 한 두부장수는 반드시,</h3><h3>“두 ― 부, 사아주오!”</h3><h3>라고 외친다. 듣는 사람마다 이상히 여겨 불러서 사 준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 두 번 사 주다가 나중에는 아주 붙박이 단골이 되었다. 그래서 그 외침이 들리기만 하면, 아이들이,</h3><h3>“어머니! 사주오가 가아요!”</h3><h3>라고 두부 사기를 묻는 것이 버릇이 되다시피 하였다.</h3><h3>이 ‘사주오’는 거의 날마다 우리 집 문 앞에 지게를 받치고서, 두부 한 모, 두 모를 주고는 분필로 판장(板墻)에다 한 금, 두 금씩 긋고 가는 터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저 지나게 되는 때에는 그 두부장수 자신도 섭섭하려니와, ‘사주오’를 부르지 못하고 만 아이들의 마음은 더욱 섭섭한 느낌이 생기는 것이다.</h3><h3>‘사아 주오’라고까지 하는데, 그것 하나 못 사 주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양 같았다.</h3><h3>그래서 월말에는 그 판장에 그어 놓은 분필의 흔적을 따라 두부 값을 갚는데, 그 ‘사주오’는 거저로 두부를 한 모나 두 모를 더 주는 것이 상례였다. 더구나 세말 같은 때에는 더 많이 거저 주고 가는 것이었다.</h3><h3>그럴 적마다 그 두부를 받는 사람은 그만 두라 하고, 주는 장수는 들여가시라고 서로 세우는 것이 예사였다.</h3><h3>그러다가 어느 해 섣달 대목쯤 해서, 그 ‘사주오’ 두부장수가 그만 오지 아니하게 되었다. 대목이 다 되어도 종내 두부 값을 받으러 오지도 않았다. 그 두부 값을 못 갚은 우리 집에서는, 온 식구가 처음에는 이상히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걱정하기 시작하였다.</h3><h3>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앉으면,</h3><h3>“그 사주오가 왜 안 오는가?”</h3><h3>“아마도 그 찬바람 쐬면서 외치고 다니다가 감기가 들었는 게지.”</h3><h3>하고 서로 문답하는 것이 종종이었다. 그러면서도 얼마 지나면 설마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놓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사주오’ 두부장수는 정월이 가고, 2월이 다 가고, 봄철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도록 종내 그 특색 있는 외침의 소리를 행촌동 골목에 울리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또 드디어 해가 가도 우리 내외는 그 두부 값 갚지 못한 ‘사주오’ 두부장수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간간히 조용할 때에는 무슨 글티기˜²를 타서 그 ‘사주오’ 두부장수를 생각하는 것이었다.</h3><h3>“참, 그 두부장수가 그만 죽었는가 봐요?”</h3><h3>“글쎄요, 아마 그렇기에 도무지 오지 않는 게지요.”</h3><h3>이러한 문답이 우리 집의 밥상 물린 자리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두부 값을 못 갚으니 속에 꺼림하기도 하고, 그 두부장수가 그만 죽었는가 하니 가엽기도 하였다.</h3><h3>어느 날 저녁 저자였다. 내가 독립문 밖 푸성귀 장에서 배추를 사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그저 머리를 꾸벅하면서 목례를 하고 간다. 나는 머리로 그의 인사를 받았으나, 그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치지 못하였다.</h3><h3>나중에야 생각하니, 아무래도 그가 그 전에 죽었다고 행각하던 ‘사주오’ 두부장수인 것 같았다. 의복은 깨끗이 입었고, 그 누른 얼굴도 훨씬 부해졌지마는, 그 전형(典刑)이 ‘사주오’ 두부장수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오자마자 마누라를 보고 그 이야기를 하였다.</h3><h3>마누라는 나의 말을 듣고 그 두부장수가 살아 있다는 것, 더구나 우리 집 가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면서도 참내 믿기 어려워하였다. 그래서 이 ‘사주오’가 오랜만에 다시 우리 집 식구들의 화제가 되었으며, 나는 그 때에 그에게,</h3><h3>“당신이 두부 장수하던 이요?”</h3><h3>라고 다져 보지 못한 것만을 유감으로 생각하였다.</h3><h3>그 뒤에 여러 달이 지나서, 우리 마누라가 관동 갔다가 오더니, 자기가 그 두부장수를 만났다고 반가이 시원스럽게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그가 관동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분명히 그 ‘사주오’ 두부장수라, 어디 살며 무엇을 하고 사는가를 물으니, 그는 옛날부터 살아오던 관동에 여전히 사는데, 두부를 쑤어 도매만 하고 거리로 두부 치는 일은 바빠서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마누라가 왜 두부 값은 안 받으러 오는가 하니, 그는 다만 “예, 이제 받으러 가지요.” 하였다. 그래서 마누라는 오하고 여러 번 부탁하였다.</h3><h3>그러나 그 ‘사주오’는 종래 오지 아니하며, 우리도 아직 그 두부 값을 갚지 못하고 지낸다.</h3><h3>([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엮은이 김 훈 ‧ 안도현)</h3><h3>˜¹ 비웃 : 청어를 식료품으로 이르는 말.</h3><h3>˜² 글티기 : 사전에 안 나온다. 인터넷에도 안 나온다. 혹 오자일까.</h3><h3> </h3><h3>|작법공부|</h3><h3>이 작품은 ‘두부장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못 갚은 두부 값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두부장수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만약에 이 중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대답할 경우 맞는 대답일까? 두부장수 이야기라면 ‘사려!’ 하지 않고 ‘사주오!’라고 외치는 별난 두부장수 이야기가 될 것이고, 못 갚은 두부 값 이야기라면 받으러 오지 않아서 못 갚은 두부 값 사연이 될 것이며, 다시는 오지 않는 두부장수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 가족 이야기라면 별 걸 다 기다리는 가족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세 가지 모두 다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한 의미도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h3><h3>이 작품에는 ‘사주오’라고 외치는 두부장수 이야기도 있고, 못 갚은 두부 값 이야기도 있고, 두부장수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하찮은 이야기들인데도 오히려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감동이 있다.</h3><h3>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하는가? 그것은 ‘사주오’라고 별나게 외치는 두부장수 때문인가? 못 갚은 두부 값 때문인가? 한 동안 안 나타나는 두부장수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가족들 때문인가?</h3><h3>아, 그렇구나! ‘사주오’라고 별나게 외치는 두부장수와 갑자기 안 나타나는 두부장수를 기다리는 가족들과 못 갚은 두부 값 사이에 흐르는 정(情)! 바로 그것 때문이었던 것이다.</h3><h3>우리가 잃어버린 것, 살면서 날마다 품에 품었다가 금방 또 놓치고, 잃어버리고, 버리기도 하고, 버리고 나서 또 금방 아쉬워하는 그 정이라는 것. 아침마다 골목을 지나가던 두부장수와 사이에도 그런 정이 흐르고 있는 줄 몰랐던 바로 그 정 때문에 우리 독자들은 얼굴 한 번 본 일 없는 낯 선 두부장수 이야기에 이렇게 가슴이 뭉클하였던 것이다.</h3><h3>이것이 창작(詩)이 아니면 무엇인가? 최현배 선생께서 창작한 것은 ‘사주오’ 두부장수 이야기도 아니고, 두부 값을 못 갚은 이야기도 아니고, 두부장수를 기다리는 우리 가족이야기도 아니다. 그 모든 인간관계 속에 샘솟는 정(情), 곧 詩였던 것이다.</h3><h3>그런데 이 작품의 情은 詩 형식으로 창작한 情도 아니고, 소설형식으로 창작한 情도 아니다. 산문형식으로 창작한 情이다.</h3><h3>산문형식으로 정(詩)을 창작하다니? ‘산문․에세이’는 본래 창작문학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상한 대로 이 작품은 분명 詩를 창작하고 있다. 이 같은 ‘창작산문’에 관한 이론이 있는가? 그 대답을 규명해 본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이다.(2017)</h3><h3>문학이란 무엇인가? 情을 창조하는 것이 문학이다. 감동의 정, 의미 있는 감동의 정을 창조하는 것이 문학이다. 情을 창작하지 않는 시, 소설, 희곡, 동화는 없다. 창작에세이(창작산문)는 사물과 사이의 교감 정서를 창조하는 새로운 양식의 창작문학이다.</h3><h3>‘붓 가는 대로 隨筆’은 무엇을 창조하는가? 아무것도 창조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신변잡기’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시인, 소설가들이 산문‧에세이를 써 놓고 ‘수필’이라 부르겠는가?</h3><h3>막장드라마는 등장인물 대사 중에 “나는 물 뿌리고 뺨 때리는 막장드라마를 제일 싫어한다.”는 대화를 하면서도 또 물을 뿌린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막장’이 막장드라마의 작법이기 때문이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1백 년 동안 ‘신변잡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못 고치는 이유는 다른 것 아니다. ‘붓 가는 대로’가 隨筆 작법의 전부 다이기 때문인 것이다. 隨筆에 ‘붓 가는 대로’ 말고 문학다운 작법이 있으면 말 해 보라.</h3> <h3>길</h3><h3> </h3><h3>김기림</h3><h3>(시인 1908∼ ? )</h3><h3> </h3><h3>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h3><h3> </h3><h3>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h3><h3> </h3><h3>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h3><h3> </h3><h3>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 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h3><h3> </h3><h3>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 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h3><h3>([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엮은이 김 훈 ‧ 안도현)</h3><h3>|작법공부|</h3><h3>이 작품은 유종호 교수가 “김기림 전집 속에 있는 많은 시보다 훨씬 시 답다.”고 한 작품이다. “필자가 만약 20편으로 된 김기림 시선을 엮는다면 「길」을 수록할 것이다.”라고도 하였다.(문학이란 무엇인가 유종호)</h3><h3>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창작에세이의 창작개념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는 창작에세이는 본질상 詩인 동시에 소설로 대표되는 서사문학이기도 하다는 뜻이다.</h3><h3>만약에 창작에세이 작가들이 詩로도 등단하여 활동하게 된다면 앞으로 많은 창작에세이 작품이 같은 작가의 시집에 수록될 것이다. 또한 같은 작가의 시 작품 중 많은 작품들이 <창작에세이 작품집>에 수록되기도 할 것이다.</h3><h3>필자는 실제로 필자의 시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을 <창작에세이 작품집>에 수록하기도 하고, 필자의 소설집에 수록될 작품을 <창작에세이 작품>으로 발표하기도 한다.</h3><h3>창작에세이 작품은 시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다. 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동화일 수도 있고, 희곡일 수도 있다. 이것이 창작에세이만의 독특한 창작 개념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의 특징이다.</h3><h3>이 작품은 매 문단마다 한 줄 떼기 한 문장 구성법이 먼저 눈에 띈다. 마치 시의 한 연을 한 줄 떼기로 독립시킨 모양과 같다.</h3><h3>첫 번째 문단은 ‘소년시절’을 ‘어머니의 상여’ 이미지에 결부시킨다. 두 번째 문단은 ‘첫사랑’을 ‘잃어버린 조약돌’ 이미지에 결부시킨다. 세 번째 문단은 ‘나’를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는’ 이미지로 그린다. 네 번째 문단은 오랜 세월의 흐름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상징적으로 서술한다. 다섯 번째 마지막 문단은 앞선 ‘봄 여름 가을 겨울’보다 더 오랜 세월이 지났음을 할아버지도 그 시작을 모르신다는 동구 밖 늙은 버드나무에 빗대고, 그 빗댐으로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첫사랑 계집애’를 기다리는 ‘나’를 형상화한다.</h3><h3>산문시만큼 짧은 글이라 무심코 읽어 넘길 수 있는 이 글을 이렇게 문단별로 뜯어보니 어김없는 시적 구성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h3><h3>첫 번째 문단, ‘언덕길을 꼬부라져 돌아가는 어머니의 상여’가 있는 소년 시절은 아직 첫 사랑 ‘계집애’를 만나기 전 코흘리개 시절이었을 것이다.</h3><h3>어머니를 잃은 코흘리개 시절 위에 이루지 못한 ‘짝사랑 첫사랑’의 상처가 얹히게 된다.</h3><h3>봄 여름 가을 겨울 세월이 지나간다.</h3><h3>할아버지도 그 시작을 모르시는 동구 밖 늙은 버드나무만큼 더 많은 세월이 지난다.</h3><h3>그런데도 아직 나는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짝사랑 계집애’를 기다린다.</h3><h3>이렇게 살펴 본 대로 이 작품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구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시계 바늘과 그 아픈 사연’을 상징하지 않는가. 제목 <길>이 그것이다.</h3><h3>우리가 만약 이 ‘되돌릴 수 없는 삶의 시계 바늘과 그 아픔’을 詩가 아니라 한다면 무엇을 시라 할 것인가?</h3><h3>이 작품이 게재된 <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의 <작가 소개>를 보니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h3><h3>“<길>은 그 형식의 단아함 때문에 시인지 수필인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h3><h3>그 같은 ‘논란’을 현대문학 1백년 속에서 찾아낸 ‘시적 산문’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이끌어낸 이론으로 체계화 한 것이 필자의 창작에세이학 원론(2017)이다.</h3> <h3>시詩를 잃어버린 아이들</h3><h3> </h3><h3>권정생</h3><h3>(1937∼2007 아동문학가)</h3><h3> </h3><h3>옥이네가 살던 절안골 외딴 곳에는 고만고만한 초가집이 네 집이 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논밭에서 부지런히 농사지어 때 묻지 않고 착하게 살았다. 감자밥 보리밥이 그다지 싫지 않고 뭣이나 맛이 있고 따뜻했다. 옥이네 삼촌 내외만 빼놓고는 모두 삼대가 한 집에 사는 대가족이었다. 닭들이 울타리를 넘나들며 봄에는 어미닭이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고 개들이 텃밭을 뛰어다니고, 송아지도 함께 장난치며 다녔다. 감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들이 집 뒤꼍에서 무성히 자라고 맛있는 과일을 달아주었다. 십 리길이 넘는 장터에 장이 서면 아버지들은 올망졸망 장거리를 짊어지고 갔다. 해질녘이면 외딴집 아이들은 산모롱이까지 아버지 마중을 가서 갖가지 사온 물건들을 받아들고 깡충깡충 달려왔다. 이날 저녁은 모든 집에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나고 저녁상 앞에서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바깥세상 얘기에 정신이 팔린다. 호롱불 밑에서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는 저절로 정신이 홈빡 빠지게 마련이다. 날라리 약장수 이야기, 동동구리무 분장수 이야기, 야바위꾼 이야기, 장터에서 일어나는 얘기는 밤이 깊도록 들어도 재미가 있다.</h3><h3>봄이면 온산에 진달래꽃이 피고 여름엔 산나리꽃이 피었다. 이쪽저쪽 골짜기에 흐르는 물은 깨끗해서 그냥 퍼마시고 미역도 감았다. 가재도 잡고 버들치도 잡고 쟁개미도 잡았다. 가을엔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열리고 여름엔 눈이 내리고 노루랑 토끼들이 집 마당까지 먹을 것을 찾아 내려왔다.</h3><h3>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옛날얘기를 들려주고 움 속에 묻어둔 배추뿌리도 깎아먹고 날무도 깎아먹었다.</h3><h3>좀 가난하고 고달프기도 했지만 외딴집 마을은 동화처럼 아름다웠다.</h3><h3>그런데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이 절안골 외딴집들이 수난을 겪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그곳 아이들 말대로 하면 “대통령 아버지가 전깃불도 넣어주고 텔레비전도 넣어준댔어요.” 이렇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외딴집 아이들은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에 국민 학교만 마친 채 도회지의 공장으로 뿔뿔이 떠났다. 개울 건너편으로 자동차 길이 뚫리고 못골 옆에 난 데서 온 사람이 목장을 만들었다. 옥이네 삼촌도 도회지로 떠나고 탄광 갔던 인수네 아버지는 폐암으로 죽고 할머니만 남았다. 조용하던 골짜기가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 꿈같은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군사정권은 농촌을 이렇게 망가뜨렸다.</h3><h3>지금은 절안골 외딴집 네 집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대신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주변 논밭들이 높은 값에 팔려나가자 근방 마을 사람들도 하나 둘 객지로 떠났다. 수정처럼 깨끗하던 골짝 물은 구정물로 바뀌어 지고 버들치도 쟁개미도 가재도 모두 사라졌다. 이용가치가 없는 골짜기 따비밭이나 다락논들은 가꾸는 사람이 없어 쑥대밭이 되었다.</h3><h3>베틀가나 물레노래를 부르며 길쌈을 하던 할머니도 없고 논매기 노래와 밭매기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할아버지 아저씨도 없다. 장날이면 술 취한 장꾼을 골탕 먹인다는 톳제비(도깨비)도 어디론가 가버렸다.</h3><h3>외딴집 아이들은 뿔뿔이 헤어져 어디서 어느 기업체 사장님 밑에서 공장노동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더러는 원하지도 않는 어둔 뒷골목에서 타락해버린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아버지가 약속했던 꿈같은 행복은 이렇게 절안골 아이들의 운명을 바꿔버렸다.</h3><h3>농촌에 아이들이 없어 학교가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쨌든 타의든 자의든 젊은이는 농촌을 마다하고 떠나갔고 아이들도 끌려갔다. 왜 이래야만 되는 걸까?</h3><h3>오래 전에 여름 뒷산에 뻐꾸기도 울지 않고 꾀꼬리 소리도 듣기 어려워졌다. 산에는 새가 날아오지 않고 강물엔 물고기가 없고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노인들만 남아서도시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살균제, 제초제—제초제가 아니라 살균제—를 뿌려 가꾼 쌀과 고추와 양파와 온갖 채소를 만들어낸다.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죽을 날짜를 세면서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농촌이다.</h3><h3>아이들은 시인이라는데 그 아이들을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게 하는 슬픈 현실은 무엇 때문이며 누구 때문인가. 아이들이 시인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아이들을 시인이 되게 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새소리를 듣고 흰 구름을 보고, 별을 바라보며, 그리고 짐승들과 벌레들과 어울려 땀 흘리는 고통을 배우고 따뜻한 생명들과 살을 비비는 삶이 있어야 한다. 봄날의 비릿한 풋내와 작은 꽃들과 여름날의 소낙비와 무지개와 지루한 장마 비도 알아야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들판에서 일하는 삶의 현장도 배우고 고통의 대가로 얻어지는 가을의 풍성함, 겨울의 추위와 그 추위를 이겨내는 생명들의 힘찬 인내도 체험해야 한다. 시인은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h3><h3>삭막하다 못해 살벌해져 가는 오늘날의 도시환경은 ‘죽은 시인의 사회’ 그대로다. 일회용품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아이들도 그 기계가 되기도 하고 일회용 싸구려 상품이 되기도 한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책가방을 메고 똑같은 학교에 가서 똑같은 선생님께 똑 같은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똑같은 텔레비전에 똑같은 쇼를 구경하면서 크는 아이들은, 개성도 없고 하나같이 똑같다.</h3><h3>시를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죽은 인간으로 키워져 사고력도 행동도 획일적으로 되어버린다. 행여나 다른 아이와 다르게 될까봐 오히려 불안한 지경이다. 앞집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면 우리집 아이도 배워야 하고, 옆집 아이가 태권도를 하면 우리 아이도 태권도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에게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콘크리트로 된 똑 같은 집에 살며 친구보다 기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덩치만 크고 가슴은 그야말로 옹졸하기 그지없다.</h3><h3>가까운 친구를 사랑하기보다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평생 적으로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무슨 시심(詩心)을 키울 수 있겠는가. 자연에서 격리당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진정한 시인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구태여 몇 줄의 노래를 읊어내는 시인만이 시인이 아니다. 농촌의 농부들은 모두가 시인이다. 그들은 생명을 만드는 온갖 것을 몸과 마음을 쏟아 부어 키워내기 때문이다.</h3><h3>씨 한 톨 심어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마음, 어미닭이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기를 기다리는 마음, 보리 이삭이 패고 그 이삭이 알이 영글어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 이런 마음만이 건강하고 힘찬 시를 낳을 수 있다. 자연스런 것은 결국 자연 속에서 살아야만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만드는 것은 어쨌거나 만든 것이며 인위라는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h3><h3>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계에서 해방시키고 콘크리트 벽속에서 풀려나야 된다. 흙냄새 거름냄새 풀냄새를 맡게 하고 새들과 짐승들과 얘기를 하도록 하자. 괭이질을 하고 지게를 지며 땀 흘리는 농군이 되게 하자. 그래서 시인으로 살게 하자.</h3><h3>똑같은 것을 흉내만 내는 인간이 되어 일생을 시체로 살게 버려두는 건 죄악이다. 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아이들을 시인으로 키우고 생명 가진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h3><h3>살충제, 살균제, 살초제 같은 농약을 버리고, 두엄을 만들고 김을 매고 지게를 지는 튼튼한 농사꾼으로 크면, 강물도 살아나고 들판도 살아날 것이다. 물고기가 살고 새들도 날아오고 온갖 벌레들이 살아나면 도덕도 함께 살아난다. 도시의 물질문명과 기계 문명은 영혼을 망가뜨리고 온 몸뚱이의 기능마저 퇴화시킨다. 도시 아이들은 좌변기 말고는 똥도 못 눈다. 뜀박질은커녕 재대로 십 리길도 걷지 못한다. 장애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온갖 일을 기계에다 의존 않고는 못하는 게 지금 도시 사람들이지 않는가. 손으로 옷에 단추 하나 못 달면서 어머니 노릇한다는 건 말이 아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옷을 손수 만들어 입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제대로 어머니 노릇을 할 수 있다. 어머니가 기워준 옷을 입고 자란 아이는 사물을 보는 눈에 사랑이 담기기 마련이다. 기계적인 감각에서 손의 감각과 대자연의 감각으로 뻗어나가면 결국 하늘을 발견하고 그 속에 아이도 하늘이 된다. 겨울의 눈보라와 여름 비바람을 헤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인간만이 마음이 따뜻한 시인이 될 수 있다.</h3><h3><br></h3><h3>([중학생을 위한 산문 50선] 엮은이 김 훈 ‧ 안도현)</h3> <h3>작법공부|</h3><h3>이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 절안골 사람들은 가난하였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하게 살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h3><h3>두 번째 부분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후 절안골 사람들은 어떻게 황폐화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다.</h3><h3>세 번째 부분은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대답한다.</h3><h3>그러나 독자는 굳이 작가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기 전에는 절안골 사람들이 어떻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는가를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려주고, 새마을운동 이후 황폐한 절안골 사람 이야기도 논리로 설명하지 않고 눈에 선한 이야기로 들려주고,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너무도 절절한 이야기로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에 독자가 작가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 감동 먹기 때문이다.</h3><h3>논리적 전개를 아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정생 작가의 작법을 보라. 논리로 논리를 펴지 않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 “아이들이 없는 농촌은 죽은 농촌이 되었다.” 혹은 “왜 이래야만 되는 걸까?”라는 질문 형의 문장, “조용하던 골짜기가 그렇게 허물어져 가면서 꿈같은 행복을 약속했던 대통령들도 모두 가짜로 드러났다. 군사정권은 농촌을 이렇게 망가뜨렸다.” 같은 작가의 불같은 분노가 타오르는 문장을 섞어 넣고 다시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는 작법의 글을 쓰고 있다.</h3><h3>이것이 조연현 교수가 말한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 되는 현대수필에세이’의 <창작적 형식>이다.</h3><h3>이태동 교수는 “훌륭한 수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은 쉽게 그리고 많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⑩남다른 통찰력으로써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만 글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h3><h3>이 작품이야 말로 ‘생生의 이면이나 자연 가운데 숨어 있는 도덕적 진실을 발견’하는 작법의 작품이 아닌가. 필자가 사는 동네는 80년대 식 다가구 3층 벽돌집들이 아직 남아 있는 변두리 동네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다. 그 앞에는 어김없이, 얼굴 맞대고는 차마 할 수 없는 갖가지 저주들이 씌어져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자는 3대가 망한다.’는 문구도 본 일이 있다. 그런 모양들을 10년 넘게 보면서 ‘이 민족은 쓰레기 치울 방법조차 생각해 낼 줄 모르는 구나!’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h3><h3>1백 년 동안 ‘신변잡기’ 비난을 들어오고 있는 수필계 지도자들이야 말로 ‘쓰레기(신변잡기) 하나 치울 방법조차 생각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 나라 수필계 지도자들이 피천득의 <수필> 대신 권정생 작가의 <시를 잃어버린 아이들> 같은 작품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면 진즉에 ‘신변잡기’에서 벗어날 방법도 찾아내었을 것이다.</h3><h3>필자의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특별히 똑똑하게 태어나는 아이 가 있다는 말이 잘못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이 수많은 과학 연구 결과 밝혀지고 있다. 8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뛰어난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소설문단만 해도 젊은 여성작가들이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젊은 여성 소설가들은 타고나서 소설작가가 되었고 3천 5백여 수필가들은 그렇지 않아서 ‘신변잡기’ 작가가 되었는가? 아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현대문학 이론>을 선택하면 ‘신변잡기’에서 깨끗이 벗어날 수 있다.</h3> <h3>갇힌 사자獅子의 눈동자<br></h3><h3> </h3><h3>정현종</h3><h3>(시인)</h3><h3> </h3><h3>지금으로부터 한3년 전 일이다.(<지금으로부터>라는 말은 좀 우스운 감이 있으나 그냥 쓰기로 한다.) 하기는 말이 3년이지, 지난 3년을 정확히(!) 말하라고 한다면 <꿈만 같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꿈만 같다>는 말이 정확하다니! 이건 필경 필자가 역사의식이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저 신화적인 역사의식! 그러고 보면 실제 역사는 역사적이 아닌데 역사의식만 항상 역사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나마,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역사의식도 실지 역사가 허용되지 않으면 뜨내기나 다름없게 된다. 하기는 이 경우 뜨내기도 상팔자일 법하다.</h3><h3>얘기가 잠깐 빗나갔는데, 하여간 3년 전쯤 나는 어떤 농원의 사자우리에 가서 사자와 눈싸움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사자우리 속으로 통로를 만들어 철책을 사이에 두고 사자들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데가 있었다. 나는 스스로는 잘 설명 할 수 없는 충동에 따라, 사자와 눈을 맞춰보고 싶어져서, 얼굴을 철책에 바싹 대고 사자를 불렀다. 사자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서 두 앞다리를 들어 올려 철책을 턱 집고 직립(直立)해서는 나의 얼굴을 바싹 마주 댔다.</h3><h3>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처음 느낌은 사자가 나를 아주 맛있게 바라보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 서로 바라보는 동안 나는 갇혀있는 사자의 눈동자 속에서 아프리카의 밀림과 초원을 보았다. 다시 말하면 사자의 고향이며 살아야 할 곳인 밀림과 초원의 파노라마를 보았다. 그 광활한 밀림과 초원의 전개는 아주 선명했으며, 그래서 갇혀 있는 그의 눈동자는 그다지도 깊고 머나멀게 넓었다. 나는, 갇힌 맹수를 보면 늘 그렇듯이, 깊고 광활한 슬픔과도 같은 연민을 느꼈다.</h3><h3>그날 아마 사자도 내 눈 속에서, 내가 그의 눈 속에서 본 것과 똑 같은 광경을 보았음직하다. 사자의 눈동자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었을 테니까.</h3><h3>생각해 보면 사실 사람은 여러 가지에 갇혀서 산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흔히 자신을 가두는 우리가 된다. 우리는 마음 안팎의 여러 가지에 스스로 가두며 또 서로를 가두려고 한다.</h3><h3>그래서 장 그르니예라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인간들은 남이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 만물 중에서 오로지 나는 새에 대해 거의 열등감을 느끼는 심리적 동기도 위의 문맥과 상관이 있을 법하다.</h3><h3>그리고 앞에서 갇힌 사자의 눈동자 얘기를 했지만, 또한 <말(언어)의 눈동자>를 생각해 본다.(1981)</h3><h3>(정현종 –삶과 詩에 관한 에세이 [생명의 황홀])</h3><h3> </h3><h3>|작법 공부|</h3><h3>정현종 시인, 나에게 이 너무도 유명한 시인은,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틀림없이 든든하게 잠그고 나온 내 마음의 아랫도리 지퍼가 열렸다고 느닷없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시인이다. 이 짧은 한 편의 산문을 읽으며 필자는 똑 같은 경기를 느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산문이 아니고 詩작품이다.</h3><h3>그날 아마 사자도 내 눈 속에서, 내가 그의 눈 속에서 본 것과 똑 같은 광경을 보았음직하다. 사자의 눈동자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의 거울이었을 테니까.</h3><h3> </h3><h3>서두문장에서 <지금으로부터>라는 표현과 <꿈만 같다>는 표현에 대한 시인의 언어에 관한 걱정은 무엇을 말 해 주는가? 시인은 말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일상어는 말이 아닌 말도 무수히 사용한다. 그러나 詩에는 ‘말이 아닌 말의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산문의 기반은 일상어에 있다. 시인은 지금 운문이 아닌 산문을 쓰면서 산문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언어의 비언어성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종결어 ‘또한 <말(언어)의 눈동자>를 생각해 본다.’가 서두와 연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h3><h3>만약에 정현종 시인이 사자의 눈 속에서 아프리카 초원만 발견하고 말았다면, -그래도 ‘隨筆’보다는 훨씬 창조적인 글이었겠지만- 시적 창조 글까지는 못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창조’ 곧 <말(언어)의 눈동자>가 빠졌을 테니까. (죄송하다. 대 시인의 글을 ‘신변잡기’에 비하다니!)</h3><h3>이 짧은 한 편의 산문이 운문으로 쓸 것을 산문으로 형상화한 ‘시적 산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의 창조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사실은 사람은 여러 가지에 갇혀서 산다.” 이하의 문장이 아닐까? 시인은 우리에 갇혀 사는 자사의 눈 속에서 ‘여러 가지에 갇혀’ 사는 인간의 열린 지퍼를 발견하였던 것이다.</h3><h3>‘붓 가는 대로 隨筆’이 만약에 사자의 눈 속에서 아프리카라도 발견하는 글을 썼다면 처음부터 ‘신변잡기’ 혹평까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가지에 갇혀’ 사는 지퍼 속까지 발견 할 줄 아는 문학이 되었다면 오늘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완전 따돌림을 당하는 ‘왕따’가 되었겠는가?</h3> <h3>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개의 은유</h3><h3> </h3><h3>이어령</h3><h3>(문학평론가⋅에세이스트)</h3><h3> </h3><h3>어머니의 책</h3><h3> </h3><h3>나의 서재에는 수천, 수만 권의 책이 꽂혀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h3><h3>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다. 그것은 비유로서의 책이 아니다. 실제로 활자가 찍히고 손에 들어 펴볼 수도 있고, 읽고 나면 책꽂이에 꽂아둘 수도 있는 그런 책이다.</h3><h3>나는 글자를 알기도 전에 책을 먼저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은 소리 내어 읽어주시기도 했다.</h3><h3>특히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시간에 어머니는 소설책을 읽어주신다. 나는 아련한 한약 냄새 속에서 ≪암굴왕≫⋅≪무쇠탈≫⋅≪흑두건≫,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었다.</h3><h3>겨울에는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머니의 하얀 손과 하얀 책의 세계를 방문한다.</h3><h3>어머니와 책의 세계는 꼭 의사가 주사를 놓고 버리고 간 상자와 같은 것이었다. 주삿바늘은 늘 나를 두렵게 했지만, 그 주사약의 앰풀을 담았던 상자 속의 반짝이는 은지나 흰 종이솜은 포근하고 아름다웠다.</h3><h3>39도의 높은 신열 속으로 용해해 들어가는 신비한 표음문자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오는 신비한 모음의 울림소리를 듣는다.</h3><h3>조금 자라서 글자를 익히고 스스로 책을 읽게 되고 몽당연필로 무엇인가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도, 나에게는 언제나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책 한 권이 있었다.</h3><h3>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긴 근원적인 그 책 한 권은 지금도 나를 따라다닌다.</h3><h3>그 환상의 책은 60년 동안에 수천, 수만의 책이 되었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수십 권의 글을 쓰게 하였다.</h3><h3>빈약할망정 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자음과 모음을 갈라내 그 무게와 빛을 식별할 줄 아는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h3><h3>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h3><h3> </h3><h3>어머니와 나들이</h3><h3> </h3><h3>어머니는 최초의 외출, 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고, 그리고 고향을 떠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 집으로 돌아오고, 마을로 돌아오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법도 가르쳐주셨다.</h3><h3>그것이 우리말 가운데 가장 미묘하고 아름다운 ‘나들이’다. 나들이는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모순을 함께 싸버린 아름다운 우리말이다.</h3><h3>어머니는 나의 작은 손을 잡으신다. 그리고 보리밭 사잇길과 산모퉁이, 마차 길, 신작로, 이렇게 작은 길에서 점점 넓어지는 길로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나들이를 한다.</h3><h3>아버지가 서울에서 사 오신 작은 가죽 구두를 신고 흙을 밟으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 그것은 새 가죽이 구겨지는 구두 소리가 아니라 눈부신 이공간(異空間) 속으로 들어가는 내 작은 심장의 고동 소리였는지도 모른다.</h3><h3>길가에 있는 뱀풀을 처음 본 것도, 땅개비가 뛰는 것도, 하늘에 높이 떠서 원을 그리는 솔개도 모두 어머니의 등 너머로 본 풍경들이다. 나들이 하실 때의 어머니의 몸에서는 레몬⋅파파야나 박하분 냄새가 났다.</h3><h3>이 나들이의 절정은 십 리쯤 떨어진 외갓집을 찾아갈 때다. 그곳으로 가려면 장승이 서 있는 서낭당 고개를 넘어야 한다(여기가 바로 나의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바로 그 서낭당 고개다).</h3><h3>설화산 뒤편의 이 작은 분지에는 유난히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많았고 그 나무가 우거진 속에 외가가 있었다.</h3><h3>긴 돌담을 돌아 솟을대문과 십장생도가 그려진 어머니의 장롱 속 같은 안채로 들어가면 정말 믿기지 않도록 늙으신 외할머니가 살고 계셨다.</h3><h3>미숫가루라도 외가에서 먹는 것은 집의 것과는 다른 맛이 난다.</h3><h3>사랑채로 가는 일각 대문 너머로는 인기척이 없는 남새밭이 있었고, 한구석에는 양 모양을 조각한 이상한 석물들이 모여 있었다. 벽장 그림이나 벽지의 무늬도 다 달랐다.</h3><h3>어머니가 원주 원씨고 외할머니는 덕수 이씨라는 것. 어머니의 어머니가 외할머니라는 것, 그리고 여자들의 성은 서로 다른 것을 알게 된 것도 이 나들이에서 배운 것들이다.</h3><h3>외갓집은 공간만이 아니라 그 시간도 달랐다. 벽시계는 모양도, 시간마다 치는 종소리도 우리 집 시계와는 달랐다. 종소리는 깊은 우물물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를 냈고, 문자판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과 십이간지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h3><h3>어머니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이 외갓집은 기왓골의 이끼처럼 훨씬 오래된 시간으로, 이곳에 오면 어머니는 나처럼 작은 신발을 신은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h3><h3>왜냐하면 떠날 때가 되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서로 우신다. 외할머니는 긴 돌담을 돌아 우리가 서낭당 고개를 넘어갈 때까지 서 계시고, 뒤돌아보기만 하면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h3><h3>늦은 날에는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별들이 나오고, 이 나들이로 나의 장딴지에는 조금 알이 배고, 키는 한 치가 더 큰 것 같은 생각이 든다.</h3><h3>떠나는 것과 돌아오는 것, 만남과 헤어짐……. 번쩍이는 비늘을 세우고 먼 이국의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가 다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 떼처럼, 어머니는 나에게 떠나는 법과 돌아오는 법을 가르쳐주신다.</h3><h3>이제는 돌담도 다 무너지고 감나무도 잘리고 없는 빈 마당뿐인 외갓집인데도, 가죽 소리가 나는 작은 구두를 신고 나는 어머니를 따라 이따금 외갓집 나들이를 한다.</h3><h3> </h3><h3>어머니와 뒤주</h3><h3> </h3><h3>바깥 하늘이 눈부시게 개일 때일수록 대청마루는 어둡다. 그 그늘진 곳에 게목나무의 묵직한 뒤주가 있고, 그 위에는 모란꽃 무늬를 그린 청화백자 같은 것이 놓여 있다.</h3><h3>나보다 키가 커서 그 뒤주 속을 들여다보려면 까치발을 떼야만 한다. 네 기둥과 두꺼운 나무판자로 짜여진 뒤주 모양은 어머니가 안방에 앉아 계신 것처럼 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h3><h3>끼니때가 되면 이 뒤주에서 ‘수복강녕’ 이라고 손수 붓글씨로 쓰신 복 바가지로 어머니는 하얀 쌀을 퍼내신다. 대식구가 먹어야 하는 그 양식은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화수분 단지처럼 그 뒤주 속에서 어머니의 바가지 속으로 넘쳐 나온다. 많을 때에는 족히 30명이 넘는 식솔을 거느리시는 어머니는 이 뒤주처럼 묵직하고 당당하시다.</h3><h3>그러나 어머니는 밖에 나가실 때마다 끼니때가 아닌데도 꼭 뒤주 문을 여신다. 그리고는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다. 왜 그러시는지를 몰라 하루는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h3><h3>어머니는 말씀하셨다.</h3><h3>“쌀 위에 글씨를 써 놓으면 남들이 양식을 퍼내 갈 수가 없게 된단다. 글씨 자국이 지워질 테니 말이다. 양식이 아쉬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도와주어야지 훔쳐 가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양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란다. 뒤주를 자물쇠로 잠그면 남을 의심하는 것이니 그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고 집을 비우면 나쁜 짓을 할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도 나쁜 짓을 하게 되는 거지. 쌀을 퍼 간 사람보다 그런 틈을 준 사람이 더 죄를 짓는 거란다.”</h3><h3>어머니는 어렵게 사는 사람과 불쌍한 사람을 늘 돕고 후한 덕을 베풀어주시는 분으로 소문이 나신 분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뒤주처럼 대청 한복판에 떡 버티고 앉아 집안을 지키신다.</h3><h3>어머니는 어두운 대청마루에 신전처럼 자리하고 있는 뒤주다.</h3><h3> </h3><h3>어머니와 금계랍</h3><h3> </h3><h3>나는 막내였다. 늦게까지 어머니의 품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젖에 금계랍(金鷄蠟)을 바르셨다고 한다. 금계랍은 하루거리(학질)에 먹는 키니네다. 그 맛이 얼마나 쓴 것인지 나는 잘 안다.</h3><h3>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그것이 나에게는 금계랍의 맛일 것이다.</h3><h3>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 아픔을 겪어야 한다.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연결된 그 탯줄을 끊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h3><h3>어머니의 가슴에서 떨어져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금계랍의 맛을 맛보게 한다.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은 이런 고통을 자진해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h3><h3>두 살 터울인 윗형과 나는 많이 싸웠었다. 어머니는 어느 날 우리가 몹시 싸우는 것을 보고 끝내 회초리를 드셨다. 처음으로 호된 매를 맞게 된 것이다.</h3><h3>우리 형제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매를 맞고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때리다 말고 이렇게 소리치셨다.</h3><h3>“이 바보들아, 너희들은 남의 애들처럼, 그래, 도망칠 줄도 모르니.”</h3><h3>이 말에 용기를 얻어 바깥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어머니는 우리를 매질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셨던 것이다. 도망치기를 속으로 원하였던 것이다.</h3><h3>내가 금계랍의 쓴맛을 빨고 있을 때, 어머니는 그보다 몇 배나 더 쓴맛을 맛보고 계셨던 것이다.</h3><h3>어머니의 금계랍 맛은 어떤 꿀보다도 달다.</h3><h3> </h3><h3> 숙제를 해야 한다고 꾀를 부리고는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 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신병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 마지막인지 몰랐던 것이다.<br></h3><h3>나는 더러 산소에 갈 때 귤을 산다. 홍동백서에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 색깔이지만 제상에다가 귤을 고인다. 그리고 귤을 살 때마다 나는 귤 값이 너무나 싼 것에 대해서 절망을 한다. 분노를 한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놓고 가신 그 귤은 지폐 몇 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h3><h3>내 이제 어디에 가 그 귤을 구할 것이며, 내 이제 어디에 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수 있을까.</h3><h3> </h3> <h3>어머니와 귤</h3><h3> </h3><h3>수술을 받기 위해서 어머니는 서울로 가셨다. 이른바 대동아 전쟁이 한창 고비였던 때라 마취제도 변변히 없는 가운데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 경황에서도 어머니는 나에게 예쁜 필통과 귤을 보내주셨다.</h3><h3>필통은 입원 전에 손수 사신 것이지만 귤은 병문안 온 손님이 어렵게 구해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귀한 것이라고 머리맡에 놓고 보시다가 끝내 잡숫지를 않으시고 나에게 보내주신 것이다.</h3><h3>그 노란 귤과 거의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 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혀졌다.</h3><h3>서울로 떠나시던 마지막 날, 어머니는 나보고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열한 살이었으니까 이젠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정말 다리가 아프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막내라고 늘 걸려 하셨는데 그만큼 자란 것을 확인하고 싶으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내 손을 가까이 느끼시며 마지막 작별을 하려고 하신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h3><h3>왜 그랬던가. 나는 숙제를 해야 한다고 꾀를 부리고는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 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신병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 마지막인지 몰랐던 것이다.</h3><h3>나는 더러 산소에 갈 때 귤을 산다. 홍동백서에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 색깔이지만 제상에다가 귤을 고인다. 그리고 귤을 살 때마다 나는 귤 값이 너무나 싼 것에 대해서 절망을 한다. 분노를 한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놓고 가신 그 귤은 지폐 몇 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h3><h3>내 이제 어디에 가 그 귤을 구할 것이며, 내 이제 어디에 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수 있을까.</h3><h3> </h3><h3>어머니와 바다</h3><h3> </h3><h3>나는 열한 살에 어머니를 잃을 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림책이나 사진에서 본 바다 말고는 하얀 모래밭, 소금기 있는 해풍, 해안의 바위와 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한히 퍼진 푸른 수평선을 몸으로 체험해본 적이 없다.</h3><h3>그런데 분명히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 바다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다.</h3><h3>한자의 바다 해(海)는 어머니의 모(母)자가 들어 있다. 그리고 바다를 가리키는 불란서의 ‘메르’는 어머니를 뜻하는 ‘메르’와 똑 같다(mer와 mere의 차이밖에 없다). 그래서 불란서에는 어머니 속에 바다가 있고, 중국에는 바닷속에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h3><h3>바다는 넓고 깊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는 바다와 같다. 그리고 인류의 생명은 바다에서 탄생했다. 바다는 생명의 시원이며 최초의 인류를 잉태한 양수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생명의 발원이 된 모태는 태초의 바다인 것이다.</h3><h3>그러나 그만한 이유로, 그리고 그러한 관념적인 풀이로 내가 바다를 보기 전에 이미 바다를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어머니와 바다의 동질성은 보다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h3><h3>바다는 늘 나에게 살아 있는 죽음으로 다가온다. 바다는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생명력에 가득 차 있다. 어떤 짐승이 저렇게 강렬하게 숨 쉴 수 있고, 소리 칠 수 있고, 쉴 새 없이 생동할 수 있겠는가. 어떤 풀, 어떤 나무가 저렇게 늘 푸른빛으로 번지고 뻗쳐서 이 지상을 덮을 수 있을 것인가.</h3><h3>그러나 바다의 생명체는 가상현실일 뿐 실제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의 표면은 끝없이 변화하지만 결코 살아 있는 꽃처럼 꺾을 수는 없다.</h3><h3>파도는 말보다 힘차게 뛰지만, 그리고 그 부력으로 우리를 잔등이에 태울 수도 있지만, 그 푸른 말갈기를 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슬프게도 바다에는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하면서도 공허한 그 바다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h3><h3>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어 있는 것, 꽉 차 있으면서 텅 비어 있는 것, 이것이 바다의 역설이다.</h3><h3>돌아가신 어머니, 그러나 늘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시는 어머니,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가깝게 계신 어머니, 기쁠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자랑하는 어머니,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 아직도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어머니. 그러나 언제나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딱딱한 흙의 저편 밖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어머니, 이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 그 바다가 바로 나에게 있어서의 어머니인 것이다.</h3><h3>나는 오늘도 이 갈증의 바다 앞에 서 있다.</h3><h3><br></h3><h3>(이태동 엮음 [아름다운 우리 수필 1])</h3><h3><br></h3><h3></h3> <h3>작법 공부|</h3><h3>필자는 <창작에세이학> 이론 전개를 시작한 처음부터 에세이 문학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왔다. 첫 번째는 몽테뉴 본래의 <에세이>. 두 번째는 찰스 램에서 비롯된 <창작․창작적 에세이>. 세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되는, 우리식의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산문수필>.</h3><h3>이 중에서 <산문수필>은 우리 수필에세이문단이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문학을 하는 시대가 되면 <창작에세이>와 혼재하면서 창작비평을 하게 될 것이라고 되풀이 말해왔다.</h3><h3>문학 이론은 작품에 근거한다. 작품 자체에 근거하지 않은 문학이론이란 마치 건물 없는 건축이론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化> 시대가 되면 <산문수필>에 대해서도 창작비평을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게 된 이론적 근거는 <산문수필> 작품들에 있다. 그 동안 필자는 여러 편의 작품들을 <산문수필> 작품으로 분석하여왔다.</h3><h3>금호 특집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왜 산문 ․ 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가?>는 여러 가지로 편집자에게 큰 소득과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 중에서 이어령 선생의 이 작품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아래에서 언급하고 있는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 개념 외에도 ‘<산문수필>에 대한 창작론 비평을 할 수밖에 없는 이론적 근거로서의 작품’이라는 큰 수확도 함께 얻게 되었다.</h3><h3>에세이는 지구촌이 다 알고 있는 대로 ‘사실에 대한 사실 토의’ 양식의 문학이다. 즉 에세이는 창작문학이 아니다. 이어령 교수는 이 작품도 에세이로 썼을까? 물을 필요도 없이 선생께서는 수많은 선생의 에세이 작품 중 한 편으로 썼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실적인’, 차라리 글이라고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들로서 어머니를 향한 ‘너무나도 사실적인 정(情)의 고백서’일 것이다.</h3><h3>그렇다면 독자도 이 ‘너무나도 사실적인 아들의 어머니를 그리는 정의 이야기’를 ‘사실의 이야기’로 인식하는가? 대한민국 문학론은 이 질문에 대한 이론적 대답을 하고 있는가? 왜 못하고 있는가? 현대문학 역사가 자그마치 1세기를 넘었다. 그 위에 몽테뉴 에세이 역사도 근 5백년 세월이 가깝다. 몽테뉴의 에세이가 찰스 램을 만나 창작․창작적 모습을 보여준 후로도 243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이제는 <산문의 창작적 변화>에 대한 이론전개가 마땅히 있어야 되는 때가 아닌가?</h3><h3>독자는 냉정한 법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사정에 입각하여 작품을 읽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톨스토이가 어떤 성정을 가진 사람이든, 헤밍웨이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문학작품 그 자체를 감상할 뿐이다. 작품이 토의 양식으로 되어 있으면 토의 양식의 작품으로 인식하고, 작품이 창작적으로 되어 있으면 창작적으로 감상한다. 즉 독자는 작가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작법을 읽는 것이다.</h3><h3>이 작품은 분명 에세이 작품으로 쓰셨겠지만, 그러나 저 태산 같은 선생의 수많은 에세이 작품들과 같은가? 아니다.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작법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어령 선생은 아들로서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이 작품을 쓰셨겠지만, 그래서 부인할 데 없는 ‘사실의 이야기’일 것이지만 독자는 그렇게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h3><h3>만약에 독자가 이어령 선생과 똑 같은 아들의 심정으로 이 글을 인식해야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세상에 문학예술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독자는 이 글을 이어령 교수처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문학이 탄생하고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h3><h3>필자가 찰스 램에서 본격 발견되고 있는 창작․창작적 에세이 작품들에서 발견한 창작개념은 <시的 발상의 산문的 형상화>라는 것이다. ‘詩的 창작 발상’을 운문이 아닌 ‘산문的 형식으로 형상화’하는 문학양식이라는 뜻이다. 또한 ‘운문시’가 아닌 <산문의 시> 문학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的’이다. ‘詩的’과 ‘산문的 형식’에서 전통적 詩 그 자체도 아니고, 소설 그 자체도 아닌 창작에세이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형식들이 싹터 나오게 된다.</h3><h3>소설은 처음부터 허구화 된 서사 창작발상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창작에세이는 ‘사실의 소재에 대한 비유적 존재(시적 창작발상)’를 형상화한다. 이 같은 창작에세이의 작법개념을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라 한다.</h3><h3>어머니를 책에 빗대어(작법) 에세이를 쓰든, 바다에 빗대어(작법) 에세이를 쓰든 작가인 이어령 교수께는 여전히 사실의 어머니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어령 선생의 어머니를 이어령 선생처럼 경험한 일이 없는, 아들이 아닌 독자는 이어령 선생이 <비유적 존재로 형상화(작법)한 문학작품 속 인물 어머니>만 경험할 수 있다. 즉 독자는 <이어령 선생이 경험한 사실의 어머니>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 존재로 형상화(작법) 된 작품 속 인물 어머니>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이고, 이것이 예술이다. 이 같은 문학化 작용, 예술化 작용이 없다면 이 세상에 예술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h3><h3>이상섭 교수는 詩學을 해설하면서 “사실적으로 잘못된 모방이 예술적으로는 정당화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술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기에 그런 <마술>을 부릴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이상섭 교수가 말하는 ‘사실의 소재의 <마술> 같은 문학化․예술化 작용’이야말로 “영원한 미학의 수수께끼”일 것이다.([문학이론의 역사적 전개] 이상섭)</h3><h3>만약에 이어령 교수가 이 작품을 <비유적 어머니>로 형상화(작법)하지 않고, 선생의 수많은 에세이 작품들처럼 논리로 논리를 펴는 에세이 작법으로 썼다면 독자는 논리를 읽을 수 있을 뿐이므로 창조적 감동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하나같이 <비유로 형상화된 어머니>에 감동할 것이다.</h3><h3>김진우 교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적 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은유이다.’라고 하였다.(隱喩의 理解 金鎭宇)</h3><h3>문학의 ‘창조’란 본래 詩 창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詩 창작은 은유창작을 의미하는 것이다.</h3><h3>필자가 읽은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개의 은유>는 각기 다른 소제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한 편 한 편을 독립 작품으로 분리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각기 다른 은유를 창작하고 있다. 놀랍게도 여섯 편의 소제목이 창작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은유창작양식이 창작에세이의 대표적 창작양식 그대로다. 이를 창작에세이 창작양식대로 표기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h3><h3> </h3><h3>어머니는 책이다. : 책으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h3><h3>어머니는 나들이다. : 나들이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h3><h3>어머니는 뒤주다. : 뒤주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h3><h3>어머니는 금계랍이다. : 금계랍으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h3><h3>어머니는 귤이다. : 귤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h3><h3>어머니는 바다다. : 바다로 어머니를 형상화하고 있다.</h3><h3> </h3><h3>작가 자신처럼 ‘사실의 소재’를 경험한 일이 없는 독자에게 ‘어머니 그림’은 <미지의 허구적 어머니 그림>일 뿐이고, ‘어머니 노래’는 <미지의 허구적 어머니 노래>일 뿐이며, ‘어머니 이야기’는 <미지의 허구적 어머니 이야기>일 뿐이다. 이것이 예술의 “영원한 미학의 수수께끼”이다.</h3><h3>문학의 이 같은 창조적 변화(마술) 때문에 필자는 장차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化> 시대가 되면 <산문수필> 작품에 대해서도 창작비평을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 하였던 것이다. 금호에 게재된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신경숙 작가의 인물들, 유경환 시인의 어머니, 함민복 시인의 어머니, 최현배 선생의 두부장수도 마찬가지다. 독자에게는 이 모든 인물들이 <허구적 사실의 소재 인물 이야기>로 감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 ‘문학적 작용’이다.</h3><h3>작가는 <사실의 소재 이야기>를 썼지만 그 ‘작법으로 인하여’ 독자에게는 <허구적 사실의 소재 이야기>로 읽히게 되는 이 같은 문학化 작용에 근거하여 필자는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 개념을 이끌어내게 되었다.([창작에세이학 원론] 2017)</h3><h3>이 작품의 종결문단,</h3><h3> </h3><h3>“돌아가신 어머니, 그러나 늘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시는 어머니,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가깝게 계신 어머니, 기쁠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자랑하는 어머니, 슬플 때, 고통스러울 때 아직도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어머니. 그러나 언제나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딱딱한 흙의 저편 밖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어머니, 이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 그 바다가 바로 나에게 있어서의 어머니인 것이다.”</h3><h3> </h3><h3>몽테뉴 탄생으로부터 242년 후에 태어난 찰스 램에 이르러 에세이 문학이 분명하게 창작적 변화(진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는 사실은 필자가 수 없이 논의한 대로 지구촌 에세이 정론이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백철, 조연현, 공정호에 이어 수필가인 윤오영 선생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이어령 선생의 이 작품이야말로 에세이 문학의 ‘창작적 변화(진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는 필자가 지금까지 창작에세이 이론 전개를 하면서 설명해 온 <허구적 사실의 소재 형식>의 실체를 가장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말해 주는 개념이다. <현존하는 부재>야말로 <허구적 사실>이 아닌가.</h3><h3>이 작품을 창작에세이학 원론(2017.11)을 발간하기 전에 발견하지 못한 것은 큰 손실이다. 언젠가 수정․보완하게 될 경우 반드시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를 인용 편집할 것이다.</h3> <h3><연구논문 :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2)></h3><h3> </h3><h3>‘플롯 시간’에서 탄생한 의인체(體) 고전 수필</h3><h3> </h3><h3>오덕렬</h3><h3>(창작에세이 평론가)</h3><h3> </h3><h3>편집실 주 : 오덕렬 창작에세이평론가의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을 본격 연재하게 된 것은 역사적 사건이다. 필자는 지난 2004년 등단지 現代文學지로부터 ‘수필은 신변잡기’ 이유로 쫓겨난 후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를 외쳐왔다.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이론계발> 연구는 지난 1백 년 동안 아무도 한 일이 없는 미개척 분야다. 현하 수필계의 <隨筆>은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이 아니다. 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학문에 근거한 예술행위이다. 隨筆계에는 고전수필과 현대수필의 <‘맥을 잇는’ 學>이 없다. <學>이 없는데 어떻게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가? <學>이 없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세간의 세평대로 ‘신변잡기’일 뿐이다. 이제 오덕렬 창작에세이평론가에 의하여 현대문학 1백년 만에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이론계발> 연구를 전개하게 됨으로 <창작에세이>는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문학> +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을 겸비한 완전한 이론체계를 갖춘 문학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앞서 연재한 바 있는 서태수 선생의 <전통 율격미를 살린 현대수필 창작론>에 이어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론>이 본격 전개됨으로 <고전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의 學적 연구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h3><h3> </h3><h3> </h3><h3><대본></h3><h3>조침문 / 유씨 부인</h3><h3> </h3><h3>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에게 고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바늘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h3><h3>연전에 우리 시삼촌께옵서 동지상사 낙점을 무르와, 북경을 다녀오신 후에, 바늘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정과 원근 일가에게 보내고, 비복들도 쌈쌈이 낱낱이 나눠 주고, 그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 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연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질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요.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h3><h3>나의 신세 박명하여 슬하에 한 자녀 없고, 인명이 흉완하여 일찍 죽지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시름을 잊고 생애를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 통재라, 이는 귀신이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h3><h3>아깝다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 너는 미묘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에 명물이요, 철중의 쟁쟁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추호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능라와 비단에 난봉과 공작을 수놓을 제, 그 민첩하고 신기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의 미칠 바리요.</h3><h3>오호 통재라,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명을 거스를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 천은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파란을 놓아 곁고름에 채였으니, 부녀의 노리개라. 밥 먹을 적 만져 보고, 잠잘 적 만져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주렴이며, 겨울밤에 등잔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그를 때에, 겹실을 꿰었으니, 봉미를 두르는 듯, 땀땀이 떠갈 적에 수미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h3><h3>이생에 백 년 동거하렸더니,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을 깨쳐 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로도, 장생불사 못 하였네. 동네 장인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쏜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h3><h3>오호 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인이 유아이사라. 누를 한하며 누를 원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공교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ㅎ지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 년 고락과 일시 생사를 한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문교부: [인문계 고등 학교 국어 Ⅱ] 대한 교과서 주식 회사, 1974.)</h3><h3> </h3><h3><본론></h3><h3>갑오경장(1894) 이후 우리의 모든 예술은 서구의 문예사조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다른 장르의 문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수필만은 스스로 예외 되었다. ‘隨筆’의 뜻풀이인 ‘붓 가는 대로’를 수필의 이론인 양 믿었던 탓이다.</h3><h3>김광섭은 [隨筆文學 小考]([문학] 통권 1호, 1933.)에서 그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썼다.</h3><h3> </h3><h3>“수필이란 글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것이다.”</h3><h3>이렇게 말함으로써 ‘붓 가는 대로’가 수필의 이론인 양 굳어져 갔다. 다시 40여 년 뒤에 피천득의 작품 「수필」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수필은 ‘구성’이 필요 없는 글로 인식되었다.</h3><h3> </h3><h3>“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피천득: 珊瑚와 眞珠, 일조각, 1977.)</h3><h3>두 분의 수필에 대한 이런 생각을 후배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수필에 대한 연구가 깊지 않던 때라서 수필은 ‘붓 가는 대로’ ‘구성’도 없이 쓰는 글쯤으로 이해했던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 이래 문학 창작 론의 핵심은 구성론(플롯)에 있음에도 말이다.</h3><h3> </h3><h3>“호메로스는 플롯을 만들었기 때문에 시인이고, 엠페도클레스는 그 철학 사상을 단지 운문으로 서술한 까닭에 시인이 될 수 없다.”(이상섭 : 문학 이론의 역사적 전개)</h3><h3> </h3><h3>위에서 말하는 ‘시인(poet)’은 희랍어로서 무엇을 만드는 혹은 창조하는 사람의 뜻이다.(조연현)</h3><h3>본고에서는 「조침문」의 문학성(구성·창작성)을 고구(考究)하여 거기서 ‘수필도 문학이냐’고 비아냥거리는 우리 수필문학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h3><h3>「조침문(弔針文)」은 「제침문(祭針文)」이라고도 부른다. 지은이 유씨(俞氏) 부인에 대해서는 조선 순조(純祖)(재위 1800~1834)때 사람이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작품 제작 연대도 알 수 없다. 작품의 소재는 바늘[針]이요, 주제는 서두 문장의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에 들어 있다고 하겠다. 제목 「조침문」이 소재와 주제를 말하고 있다. 제목은 또한 바늘에 대하여 조상[弔]하고, 제사[祭]를 지내는 제문(祭文) 형식임을 말해주기도 한다. 제문은 죽은 사람에 대한 생전의 덕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일종의 의식문(儀式文)이다.</h3><h3>제문 형식인 이 작품에서 바늘은 무엇을 빗댄 것일까. 여태까지는 바늘이 부러진 것을 사람이 죽은 것에 빗댄 것으로 보고, 바늘을 의인화한 의인체 수필로 감상했다.</h3><h3>여기서 우리는 잠깐 ‘문학과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일이다. 즉 ‘남편의 죽음’과 ‘바늘의 부러짐’의 두 사건 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 하는 문제다. 남편이 죽고, 뒤에 바늘이 부러졌다면 ‘남편’을 ‘바늘’에 빗대어 말한 의물법 문장이 되었을 것이고, 반대로 바늘이 먼저 부러지고, 뒤에 남편이 죽었다면 바늘을 의인화했을 것이다. 먼저 일어난 사건에서 먼저 ‘창작 발상’이 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h3><h3>본문에서 보면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 년이라.” 했고, 또 “미망인 모씨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에게 고”한다고 하였다. 이런 문장만으로 보면 침자는 미망인의 남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의물법의 수필이 되고 만다.</h3><h3>여기서 의인법이냐 의물법이냐를 따지는 것은 두 비유법에 따라 작가(화자)의 심리나 의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료로선 바늘이 부러진 때나, 남편이 사망한 때나, 글을 썼던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추정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작품 분위기를 볼 때 조침문의 특징을 겉으로는 ‘바늘을 의인화’한 것이지만, ‘고규(孤閨)―외롭게 홀로 자는 부인의 잠자리를 이르는 말(우리말샘)―를 지키는 미망인이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라는 점으로 보면 내용적으로는 ‘남편을 의물화’한 수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h3><h3>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의물법(depersonification)은 사람을 동·식물이나 무생물에 빗대는 기교이다. 의인법(personification)의 반대다.(장하늘)</h3> <h3>의물법으로 보면 이 글에서 발견 되는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이점(利點)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시삼촌으로부터 바늘을 받은 것은 ‘연전’인데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 년’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얘기다. ‘연전’을 ‘몇 년 전’이라고 볼 것인가, 아니면, 확대 해석해서 ‘여러 해 전’이라고 할 것인가는 연구 과제라 하겠다. 남편을 의물화 했다면 자연히 27년은 미망인이 남편과 함께 지낸 세월을 말함이다. 남편이 죽었으니 제문을 썼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는 바늘이 부러져서 쓴 제문으로 되어 있다.</h3><h3>정진권 교수는 이 글의 내용은 남편을 그리는 사부사(思夫辭)라 했다. ‘사부사’라는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것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백 년 동거’니 ‘평생 동거지정’이니 ‘백 년 고락’이니 하는 말은 부부간에 쓰는 말이다.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을 깨쳐내는 듯 이윽도록 기색혼절하였다가’라든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 등은 심한 과장의 경우라 하겠다.</h3><h3>이 과장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바늘보다는 미망인이 남편을 생각하는 표현들이다. 이런 과장이 오히려 남편을 여읜 지어미의 심사가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과장은 오히려 죽은 남편을 마주한 여인의 절망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h3><h3>이 작품은 문장 형식이 소리 내어 읽기에 좋다. 보통 글과 다른 점이다. 제문 형식이기 때문이지만, 또 ‘여름 낮에 주렴이며, 겨울밤에 등잔’ 따위의 대구(對句)를 많이 썼고, 4음보의 가사체로 리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고, 글을 통하여 지은이의 인품을 생각해보면 명문가의 과수댁으로 바느질로 여생을 보낸 정숙한 부인임을 알 수 있다. 글에 능하고 고사에 유식하며, 무생물에서도 정을 느끼는 섬세함을 지녔다. 또한 남편을 잃은 과수댁으로 자녀가 없음에도 개가(改嫁)하지 않은 180여 년 전쯤의 옛 풍습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h3><h3>「조침문」이 창작 작품임을 이관희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창작 요건을 들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조침문」은 바늘을 의인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조침문」은 플롯화 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두 요소만으로도 창작 작품이 되기에 충분하다.</h3><h3>의인법·의물법은 현대문학 이론의 고급 기교 중의 하나이다. 이 두 비유법은 광범위한 창조적 언어 세계를 낳는 문예창작의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방법이다. 또한 플롯이란 현실의 자연적 시간 순서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을 소재(현실·역사)로 취해서 자연적 시간 순서를 깨뜨려 버리고 대신 인과율에 의한 사건들로 조직(창조적 배열)하는 ‘플롯 시간’을 의미한다.(아리스토텔레스: 詩學) 이렇게 플롯 작업을 거친 뒤에는 더 이상 현실에 있었던 일이 아닌 개연성(probable)의 세계로 변한다. 현대문학에서는 개연성을 상상적 허구라고 한다. 그래서 문학이란 허구의 세계인 것이다.(백철)</h3><h3>김동리 교수는 “우리에게 창작이란 고유한 개념이 없다.”고 했다. 고전문학에는 서구적 개념의 창작론이 없었는데 어떻게 유씨 부인은 창작품을 썼을까. 독자는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답은 문학의 기원설(起源說)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의 문학개론 등에서 보면 국문학의 발생을 원시종합예술에서 찾고 있다. ‘선민들의 제천의식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집단가무[Ballad dance]가 바로 원시종합예술’이라는 것이다.(김기동·박준규)</h3><h3>조침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h3><h3>단계</h3><h3>부터 ∼ 까지</h3><h3>내 용</h3><h3>발단</h3><h3>처음(유세차)∼영결하노라</h3><h3>바늘을 영결함</h3><h3>전개 ①</h3><h3>연전에∼섭섭하도다</h3><h3>바늘을 얻은 경위</h3><h3>전개 ②</h3><h3>사랑스럽고∼미워하심이로다</h3><h3>나의 신세</h3><h3>전개 ③</h3><h3>아깝다∼미칠√바리요</h3><h3>바늘의 형태와 기능을 일목요연하게 묘사</h3><h3>전개 ④</h3><h3>오호통재라, 자식에게∼무궁하다</h3><h3>나의 전후에 수응</h3><h3>위기(절정)</h3><h3>이생에∼꽂혔던 자리 없네</h3><h3>영결하게 된 사연</h3><h3>대단원</h3><h3>오호통재라,∼바늘이여(끝)</h3><h3>후세에 다시 만나기를 바람</h3><h3> </h3><h3>조침문의 실제 사건들은 위 표의 ‘단계’에 나타난 순서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뭉뚱그려 생각해 보면 ① 바늘을 손에 넣고, ② 바늘과 함께 지내다가, ③ 바늘이 부러지니, ④ 영결을 고하는 조침문을 쓰게 된다. 그런데 그런 순서로 되어 있지 않고 ‘구성 단계’ 즉, ‘<발단→ 전개 ①②③④→ 위기(절정)→ 대단원>’에 따라 빈틈없이 구성된 수필이다. 즉 ‘플롯 시간’(이관희: 창작에세이학 원론, 비유, 2017.)에 따라 썼기 때문에 창작 수필인 것이다.</h3><h3>「조침문」에는 뛰어난 표현 기교도 드러나 있다. 화자 자신의 모든 생활이 응축되어 극히 작은 바늘의 부러짐이 슬픔의 원천일 수 있다. 이 슬픔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포착, 바늘의 기능과 결부시켜 형상화함으로써 글 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다.</h3><h3>‘추호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에서는 바늘이 생동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비록 무심한 물질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요.’에서는 세세한 미물에서도 섬세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여성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오호통재라’나 ‘아깝다 바늘이여’는 돈호법이요, ‘자끈동 부러지니’나 ‘아야 아야’는 의성법이다.</h3><h3>장덕순 교수는 「조침문」의 문학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h3><h3>“일상적이고 신변적인 소재로서 자신의 외롭고도 쓸쓸한 생애와 그에서 비롯되는 일상적인 애정과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켜 이 글처럼 절절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 것 같지 않다. 평범한 모습의 바늘을 마치 살아 있는 듯 의인화하여 묘사한 부분은 작가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관찰력과 문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전수필의 사실적 문장의 한 표본을 이루고 있다.”(장덕순: 한국수필문학사, 박이정, 1995.)</h3><h3> </h3><h3>우리의 수필문학은 현대문학 이론을 수필 작법에 적용한 적이 없는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다. 그러므로 고전문학도 아니고, 현대문학도 아닌 이론 부재의 ‘서자문학’일 뿐이다. 한국 고전 수필의 맥을 잇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한국 현대 수필(창작에세이)과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이다.</h3><h3>타 장르보다 1세기 이상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고전 수필을 작품 분석·해석을 곁들인 수필 론을 개발하여 그 문학성을 현대에서 되살리자. 그리고 현대문학 이론을 수필 작법에 적용하자. 이 길만이 수필문학이 창작 문학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겠는가.</h3><h3> </h3><h3><오덕렬></h3><h3>1945. 광주광역시 출생</h3><h3><등단></h3><h3>방송문학상 수필 당선(1983)</h3><h3>한국수필 추천 완료(1990)</h3><h3>창작문예수필 평론 등단(2014)</h3><h3>창작문예수필 신인상(2015)</h3><h3><경력></h3><h3>2007. 모교 근무 중 光高문학관 개관</h3><h3>2007. 光高문학상백일장을 열어, 매년 5월에 광주·전남 중·고등학생들을</h3><h3>대상으로 실시</h3><h3>모교인 광주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교장)</h3><h3>광주광역시 문인협회장 역임</h3><h3>생오지문예창작대학 교수 역임</h3><h3><저서․작품집></h3><h3>수필집: 우리 한마음으로(공·1988) 복만동 이야기(1992)</h3><h3>고향의 오월(2001) 귀향(2008)</h3><h3>항꾸네 갑시다(아르코창작기금 수상·2013)</h3><h3>창작수필평론집: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2016)</h3><h3><수상></h3><h3><황조근정훈장> <광주문학상> <박용철문학상> 등</h3><h3><현재></h3><h3><光高문학관>․<光高문학상백일장> 운영위원장</h3><h3><창작에세이작가회> 회장</h3><h3><창작에세이 호남지회> 회장</h3><h3><창작에세이 호남지회> 교실 강사</h3><h3>한국창작에세이문인협회 2기 대표 지도자(현)</h3><h3><전라방언 문학 용례 사전> 편찬 위원장</h3> <h3><지상 작법 강의></h3><h3> </h3><h3>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h3><h3> </h3><h3>이관희</h3><h3>저녁 먹는 자리였다. 낙지볶음이 먹음직스럽다. 수저를 들기 전에,</h3><h3>“소주 한 잔 할까…….”</h3><h3>했더니 일행 중 한 사람이,</h3><h3>“선생님도 술 생각나실 때가 있으세요?”</h3><h3>그런다.</h3><h3>“글쎄, 나도 뜻밖이네. 그러니까 이 현상이 무슨 의미냐……,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그래 요놈이 범인이었던 거야. 요 먹음직스러운 낙지볶음. 술꾼 쳐놓고 요놈 앞에서 소주 한 잔 유혹에 안 넘어갈 자 있는가? 술꾼이 아닌 나도 소주 생각이 나는데……. 이게 바로 작법인 게야.”</h3><h3>“선생님 또 18번 나오시네요.”</h3><h3>그래서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간 호 지상 작법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h3><h3>결론부터 말하면 문예작법은 본능에서 시작된다.</h3><h3><이것>을 보면 [저것]이 생각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본능이다. 저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은 전혀 천재적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는 <모방본능>에 근거한 이론이다.</h3><h3>모방론뿐만 아니다. 문학개론서를 펼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것이 문학 발생설이다. 모방(模倣)본능설, 유희(遊戲)본능설, 흡인(吸引)본능설, 자기표현본능설 등 이 네 가지 기본 문학발생설 모두가 <본능설>에 근거한다.</h3><h3>오늘 이 짧은 <지상 작법강의>에서 다른 것은 다 옆으로 밀쳐두고 딱 한마디만 기억하도록 하자.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는 말이다.</h3><h3>문학 발생설이 모두 본능에 근거한다는 것은 ‘본능이 곧 작법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 해 준다.</h3><h3> </h3><h3>본능 : ①생물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동작이나 운동 ②동물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변화에 따라서 나타내는 통일적인 심신의 반응형식(에센스국어사전)</h3><h3> </h3><h3>이 낱말의 뜻에서 작법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는 말이다.</h3><h3>내가 지난 14년 동안 조사하고 실제 맞부딪치며 경험한 수필가들은 불행하게도 <현대문학> 공부를 할 기회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수필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 글이나 한 편 써 가지고 돈 백만 원만 들고 가면 신인 당선작으로 발표해 주었으니 문학을 學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h3><h3>그렇다 하더라도 그 수필가가 만약에 자신의 본능만이라도 일깨운다면 ‘신변잡기’는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 국어사전의 <본능> 낱말 뜻이다.</h3><h3>다시 한 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어사전을 들여다보자.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고 했다. 수필계 지도자들이 아무리 문학공부를 안 한 신인장사 장사꾼들이라 해도 그 밑에서 수필공부를 한 수필가가 본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도 적어도 ‘신변잡기’는 안 쓰게 된다는 뜻 아닌가? 금호에 작품이 게재된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함민복 시인의 어머니,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 이분들을 필자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정록 시인은 어머니 말을 그대로 詩로 썼다고 한다.</h3><h3>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모른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견물생심이 무슨 뜻인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h3><h3>【물건 <이것>을 보면 가지고 싶다 [저것] 생각이 난다】</h3><h3>이것이 바로 작법인 것이다.</h3><h3>수필가들도 <멋진 옷을 보면> [입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멋진 핸드백>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금은방 <반지를 보면> [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멋진 옷을 보면 입고 싶고, 멋진 핸드백을 보면 사고 싶고, 다이야반지를 보면 끼고 싶다면, 진정으로 그런 ‘견물생심’이 저절로 생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것>이라는 소재를 보고 [저것]이라는 다른 생각이 안 날 수 있는가?</h3><h3>더 이상 수필교실 선생이 가르쳐 준 일 없다고 하지 말라. 더 이상 문학이 어렵다는 말도 하지 말라. 예술창작의 기본은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본능대로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h3><h3>이 강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그날 술 마실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저녁식사를 할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낙지볶음>을 보자 저절로 [소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견물생심>의 본능에 의한 것이다. 바로【<이것>이라는 ‘낙지볶음’을 보자 [저것]이라는 ‘소주’】생각이 났던 것이다. 바로 창작에세이의 대표적 기본 작법인 소재에 대한 비유창작, <낙지볶음은 소주다>가 되지 않는가.(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소주는 낙지볶음이다>가 될 수도 있다.)</h3><h3>隨筆이 망한 까닭은 처음부터 <이것>만 썼기 때문이다.</h3><h3>‘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h3><h3>‘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h3><h3>‘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h3><h3>백날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라고 써도 문학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중얼거리면 ‘저 사람 미쳤나보다’ 한다. 실제로 <이것>만 썼더니 ‘신변잡기’라고 하지 않는가!</h3><h3>‘낙지볶음은 소주다’라고 써야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이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h3><h3><이것>만 쓰는 것은 문학(창작)도 아니고, 예술(창조)도 아니다.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하여 그 [저것]을 써야 비로소 문학도 되고 예술도 된다.</h3><h3>그런데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능만 발동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같은 본능설이 최초의 문학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인 것이다.</h3><h3>필자가 작법강의를 시작한 첫 시간부터 모든 예술의 기본 작법은【<이것>을 [저것]으로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한 말은 무슨 굉장한 이론 연구 결과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견물생심>의 본능론일 뿐이다.</h3><h3> </h3><h3>작법 : 소재 <이것> ‘낙지볶음’ ➜ 작품 [저것] ‘소주’</h3><h3> </h3><h3>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h3> <h3><편집후기></h3><h3>⊚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은 왜 산문·에세이를 ‘수필’이라 부르지 않는가?>를 특집으로 엮게 된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2015년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 운동> 선언식 행사와 지난 해 <최남선 [가을] 발표 백주년 기념행사>에 못지않은 큰 기쁨이고, 의미 있는 편집이다. 마침내 창작에세이(창작문예수필) 이론창안 작업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구나, 감격해도 좋을 만큼 기쁘다.</h3><h3>그 동안 수필가들의 작품 중에서 ‘문학의 진화 현상’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비평할 수 있는 작품만 선정해서 창작해설을 해 온 일은 어쩔 수 없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이제 시인, 소설가, 예술가들의 산문․에세이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그만큼 창작에세이학 이론 전개 작업이 성숙했다는 증거일 것이다.</h3><h3>편집자는 중학시절부터 시, 소설 등 창작문학을 읽는 즐거움으로 살아왔다. 생업 은퇴 후 미처 읽지 못한 작품을 읽으며 여생을 글 읽고 쓰는 즐거움으로 보낼 꿈을 안고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오자마자 생각지 않은 ‘신변잡기’에 발등이 찍혀 오히려 시, 소설을 더 읽지 못했다. 금호 편집을 하면서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그리던 옛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 너무나 즐거웠다. 저들 창작문인들,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예술가들이 나의 진정한 문우들이고, 내 문학의 진정한 동지들이다.</h3><h3>문학은 쓰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읽는 것이다. 예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글 읽는 소리라 하였다. 쓰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읽는 사람은 천천만만인 것이 문학이다. 그것이 정상적인 문학이고 그것이 진정한 문학의 본령이다. 그 동안 나는 독자는 없고 작가만 있는 해괴한 수렁에 빠져서 무슨 짓을 해 온 것일까.</h3><h3>⊚ 28호에 시작되었던 오덕렬 창작에세이평론가의 <고전수필의 맥을 잇은 현대수필> 연재를 본격 게재하게 된 것은 현대문학 1세기만에 최초로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일이다. 누군가 진즉에 이 일을 하였다면 隨筆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침문> 한 편에 대한 문학 학문적 해석만이라도 진즉에 되었다면 저 80년대 초 부끄럽기 짝이 없는 <허구도입 논쟁>이라는 세기적 희화(戲畫)는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h3><h3>⊚인생에 세 번 기회가 있다는 말은 기회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창작에세이 작법교실 안내> 중 <정기구독자 특강반>은 본지 창간 후 처음 시도 해 보는 기회다. 편집자 책상 위에는 아직 일 할 수 있을 때 꼭 마무리해야 할 일거리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언제까지 가르치는 일에만 시간을 쓸 수 없다. 이미 창작에세이 작법교실 2대 대표지도 선생으로 오덕렬 선생을 임명한 바 있다. 필자는 정규지도 외에 남은 ‘틈새지도’만 담당하고 있다. ‘틈새지도’도 시간조정을 잘 해야 꼭 해야 할 일거리들에 손을 댈 수 있다. 창작에세이학 이론을 창안한 사람에게 직접 작법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정기구독자 특강반>은 ‘회비환불보상’ 까지 있으니 많은 이용 바란다.</h3><h3>⊚ 본지는 창간당시부터 1인 편집으로 발간되고 있다. 다른 것은 다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오자’만은 해결방법이 없다. 참으로 ‘오자’는 살아있는 바퀴벌레다. 불 켜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다. 이 점 독자 여러분의 큰 아량을 바란다.</h3><h3>⊚ 금호 편집은 연일 계속되는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들으며 진행하였다. 편집내용도 가장 즐거운 편집이었고, 북미 정상회담 소식도 평생 목에 걸린 것이 이제 비로소 쑥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텅 비어있지 않은가? 이 일이 장차 어떻게 진행될지 실로 이런 때 밤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었구나! 제발 <세상에 발표하지 않은 ‘남북통일’이 숨어 있는 회담이었구나!> 라는 꿈같은 일이 실현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h3><h3>⊚ 월드컵 마지막 경기 독일전이 열리던 날 아침 신문에 <1% 그래도 믿는다> 제목의 경기응원 사진이 게재 되었다. 그날 저녁 세계최강 독일 팀을 2대 빵으로 물리쳤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16강 진출과 바꿀 수 없는 역사적 대승이다. 창작에세이도 <1% 가능성>을 믿고 시작하였다.</h3><h3>⊚ 올 여름은 예년보다 더 무덥겠다는 예보가 들린다. 건강한 여름 나시기 바란다.(L)</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