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동행

金明姬

<h3>  "雄纠纠气昻昻, 跨过鴨绿江“ </h3><h3> 격정스러운 이 명곡을 들으면 사람들은 머리에 단동을 떠올릴것이다.</h3><h3> 올 추석은 이 노래를 따라 변강의 도시이며 " 영웅의 도시 "라고 불리우는 료녕성 단동으로 울 님과 함께 배낭여행을 떠났다.</h3> <h3>  단동역 출구 서쪽켠에는 조선방향을 향해 우호적인 손길을 보내고 있는 모택동동지의 커다란 동상을 바라볼수 있어 처음부터 마음이 격동되였다.</h3> <h3>  </h3> <h3>  단동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압록강 대교와 압록강 断桥이다. </h3><h3> 압록강 대교는 조선과 중국이 무역통로로서 새로 지은 다리이다. 조선과 중국의 무역량이 제일 많은 곳이란다.</h3><h3> 우리가 도착한날 밤 가을비가 잔잔히 내렸지만커다란 화물차가 신의주에서 중국해관쪽으로 련속 들어오고 있었다.</h3> <h3>  낮에는 철로 만든 대교에 불과하지만 밤에는 붉은색, 남색, 노란색으로 더 멋지고 관광객이 더 많았다.</h3><h3> 압록강 공원에는 불빛이 령롱했지만 마주켠 신의주시에서는 전등 몇개 켜지 않아 까막나라였다.</h3> <h3>  断桥는 일제가 만들었고 미국 비행기가 항미원조때 폭격해 다리가 끊어졌다. 조선측은 그대로 방치해두고 중국측쪽은 다시 보수해서 유람지로 사용하고 있다. 다리우에서 천천히 걷다보면 압록강수면이 비교적 맑져 보였다. 낮에는 건너편 신의주 시내 높은 건축물이 환히 내다 보였다.</h3> <h3>  断桥와 마주하고 있는 팽덕회 동지와 지원군전사들이 조선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외에도 압록강 공원에는 항미원조때 공군전사, 노 젖어 압록강으로 건너는 지원군전사 동상들이 여러군데 있었다.</h3><h3> 압록강공원을 구경오는 대부분이 조선을 바라보기 위한 유람객이였다.공원길옆에는 조선상품이며 한복을 세주는 작은 난전들이 많았다.</h3> <h3>  압록강 대교 서쪽에는 조선,한국 상품들을 파는 큰 상가가 많았다.들어가보니 일상용품, 식품, 술,담배, 금장식품, 복장들이 많았다.</h3><h3> 생각보다 금 장식구가 싸고 좋았다. 황금함량이 30%밖에 안되는 조선팔찌가 이뻐서 기념으로 하나 샀다.</h3> <h3>  조선사람들이 경영하는 식당도 꽤 있었다.</h3><h3> 평양랭면 두 그릇, 가재미무침 한접시, 대동강 맥주 한병을 주문했다.</h3><h3> 평양랭면 한사발 25원, 대동강 맥주 한병이 30원 ....생각보다 맥주가 좀 비쌌다.</h3><h3> 날씬하고 이쁘장한 조선처녀애들의 상냥한 목소리와 이 식당을 찾아온 조선족들의 웃음소리속에서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h3> <h3>  " 압록강"이란 뜻은 강물의 색갈이 숫오리 대가리 색갈처럼 푸스름하다고 지은것이라고 한다.</h3><h3> 아래에 압록강을 따라 조선과 잇닿은 上河口풍경구를 소개하려 한다.</h3> <h3>  유람뻐스를 타고 약 한시간쯤 되여 이곳에 도착했다.</h3><h3> 上河口 유람지에는 세개 볼거리가 있었다.</h3><h3> 첫번째 볼거리는 소형렬차타고 두개곳에 대한 홍색관광을 하는것이다.</h3><h3> </h3> <h3>  소형렬차타고 가는 연도에서 한창 제철인 빨간볼 복숭아, 가시돋힌 밤송이며 빨갛게 익어가는 대추들을 보았다.</h3><h3> 그리고 “刘老根“촬영기지라는 마을도 스쳐지났다.</h3> <h3>  소형렬차가 도착한 곳은 조선과 잇닿은 중국국문이라는 곳이다.</h3><h3> 이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항미원조때 큰 역활을 했다는 낡은 철길다리가 보였다. 건너다 보면 조선의 어느 한 농촌마을이 환히 보였다.</h3><h3> 조선의 생활수준이 아직도 중국의 60-70년대 와 비슷하다는 가이드의 소개를 듣고 마음이 저도모르게 서글퍼났다.</h3><h3> 언제면 잘살수 있는지? 저 건너편에서 살고 있는 작은 할아버지와 그친척들이 생각나 기분이 우울해났다.</h3><h3> </h3> <h3>  중국국문 출입구에서 내려오면 항미원조기념 철도전람관과 잇닿아 있었다.</h3><h3> 전람관에는 항미원조와 금방 본 철길에 대한 소개가 상세히 적혀있었다.</h3> <h3>  상감령 전역에서 희생된 황계광 사적을 다시 읽노라니 눈시울이 붉어졌다.</h3> <h3>  항미원조기념 철도전람관에서 영웅들의 사적을 다 듣고 소형 렬차타고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기차에서 내리니 마주켠에 항미원조때 지휘부를 모방한 작은집이 있었다.</h3><h3> 들어가보니 그때 사용했던 반공용품이며 총들이 전시되여 있었다.</h3><h3> 나도 통신원마냥 그때 사용했던 전화를 걸어보며 감각을 찾아본다.</h3> <h3>  上河口에서 두번째 볼거리는 조선처녀애들의 공연을 보는것이다.</h3><h3> 그 처녀애들이 “我爱你中国“등 중국의 명곡련창을 부를때 주체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h3><h3> 그외에도 흥겨운 춤과 악기절목들은 매우 정채롭고 수준이 높았다.</h3><h3> 공연장면을 사진찍거나 록화하는것을 금지하여여기에 대하여서는 략한다.</h3> <h3>  세번째 볼거리는 유람선타고 조선주위를 한고패 도는것이다.</h3><h3> 배우에서 조선측을 바라보면 공장이며 노젖어 가는 어민들이 한눈에 보였다. 앞으로 조선이 경제발전을 할거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압록강변을 배타고 반시간 다녔다.</h3> <h3>  上河口에서 돌아오는 길에 단동의 력사를 전시하는 전람관에 들렸다. </h3><h3> 전람관의 대부분 문물은 일본에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것이란다.</h3><h3> </h3> <h3>  단동에서 발굴한 고대 석기로부터 녀진족력사, 갑오중일 전쟁, 등세창동상 , 조선의 놋, 은 수저와 그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물들이 전시되였다.</h3> <h3>  단동역에서 선로뻐스를 타고 5원만 내면 호산장성에 갈수 있다.</h3><h3> 만리장성의 동단. 시작점이라는것에 마음이 동해 이곳으로 왔다.</h3><h3> 이 장성은 본래 흙으로 되였던것을 후에 보수하여 새로 만든것이다. 주요하게 조선과 변경을 사이두고 쌓은것이다.</h3> <h3>  장성에 오르기전에 조선과 잇닿은 변경인 一步跨에 발길을 돌렸다.</h3><h3> 돌비석에 새겨진대로 한발자국만 내디디면 조선에 건너갈수 있는 곳이다.</h3> <h3>  조선을 지척에 두고 내다보니 그쪽은 옥수수농장이였다. 중국의 옥수수들보다 약간 키가 작은 옥수수들이 가을바람에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이런 옥수수라도 많이 수확하여 지척에 있는 그분들이 배불리 자시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았다.</h3> <h3>  산을 바라보면 호산장성의 끝자락이 보일들말듯하다. </h3><h3> 신들레를 단단히 동여매고 님과 둘이서 장성에 오르기 시작했다.북경의 만리장성만큼 호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결심만 크면 올라갈만한것 같았다.</h3> <h3>  가파른 곳이 몇곳 있었지만 사내대장부 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정상에 오를수 있었다.</h3> <h3>  바쁜 숨 돌려세우고 정상에 올라 조선쪽을 내려다보니 실은 하나의 작은 섬으로 된 농촌마을이였다.</h3> <h3>  장성에 올랐으니 나도 女汉子.</h3> <h3>  어느한 곳을 유람하면 그 지방의 특색요리 맛을 봐야죠.</h3><h3> 단동에서 제일 유명한 미식거리는 安东老街라고 한다.</h3><h3> 단동이란 지명전에 안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동이라고 부를때부터 이곳은 미식거리였고 상인들이 집거한 곳이였다.</h3> <h3>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니 마치 영화속에 들어온것 같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도대체 어떤곳인지 먼저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h3><h3> 실내안인데 사면이 작은길로 뻗어있었다. 길옆마다 작은매장이 있었다. 보지 못했던것 음식종류들이 많았다. 매장이 큰것은 그 뒤에 먹는곳이 따로 있었다.</h3> <h3>  조선족 복장을 한 체격이 츨츨한 두 할멈들이 물동이를 이고 붐비는 사람속을 누비고 있었다.도대체 무슨사람들인지? 어째 저러고 다니는지 알수 없지만 그걸 알아갈 겨를이 없었다.</h3> <h3>  그 와중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만담을 듣고있었다.</h3> <h3>  풍성한 먹거리속에서 단동의 10대 대표적인 두가지에 속하는 辣炒蚬子, 炒叉子를 먹어보기로 했다.</h3><h3> </h3> <h3>  압록강 맥주에 곁들여 시식해보니 맛이 좋았다.모래도 씹히지 않고 맵쌀한 맛이였다.차즈라는것은 알고보니 옥수수국수 볶음이였다.</h3> <h3>  로천매장에서 파는 양뼈꼬치도 맛보았다. 고소하고 뼈도 씹을수 있어 맛있었다.</h3> <h3>  软枣猕猴桃</h3> <h3>  단동의 10대 대표적인 음식가운데는 밤, </h3><h3>软枣, 복숭아가 포함되는가 하면 조선 랭면, 찰떡도 포함되였다.</h3> <h3>  조선과 변경하고 있는 단동이여서 우리민족 음식이 여기서 많이 환영받고 그만큼 중국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에 나는 저으기 긍지감을 느꼈다.</h3> <h3>  제일 마지막으로 가본 곳은 锦江山公园이다. 금붕어 노니는 련못을 지나 도보로 숲이 우거진 시원한 길을 따라 단동시내와 조선이 내려다보는 곳에 올라가보았다. </h3><h3> 시내인구가 120만 된다는 단동은 해맑은 가을하늘아래에서 한창 륭성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다.</h3><h3> 그 힘을 입어 조선도 무역이 더 활발히 잘 되고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는 바이다.</h3><h3> </h3><h3> </h3> <h3>  가을해빛이 쨍쨍한 단동시가지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유람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봤다.</h3><h3> 행복이란 제발로 우리한테 찾아오는것이 아니라 제나름으로 창조하기에 달렸다. 매일마다 반복되는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시간의 여유 , 경제조건의 여유가 있다면 자유로운 유람을 떠나는것이 좋다.유람에서 보고들은 새로운것이 많을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 커지고 그만큼 생활에 대한 희망도 커진다.</h3><h3> 유람중 수없이 많은 인파속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바로 소중한 내 가족이며 그것이 진정한 행복한 삶이라는것을 알게 된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