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 해변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云龙

<h3><br></h3><h3> </h3><h3> 높다란 구릉에 자리잡은 위해시 람천호텔(藍天賓館) 5층 객실에서 큰 유리창을 통해 내다본 경치는 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였다. 시원히 펼쳐진 쪽빛 바다, 저 멀리 해안선을 둘러싸고 면면히 이어간 흰바위산줄기,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붉고 푸른 지붕을 떠인 여러 형태의 아기자기한 건축물들...이 모든 것에 한결 아름다움을 업그레이드시킨 색채가 있었으니 바로 이미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양이 발하는 연한 주황빛이였다. 이른바 석양빛이였다. 오늘 저녁부터 사나흘간 이곳에서 있게 되는 대학입학 40주년 기념모임과도 참 잘 어울리는 색채란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열심히 사진 몇장을 찍었다.</h3><h3> 창밖 경치에 취해 창문에 바짝 붙어 서있노라니 동창들이 하나 둘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당장 달려내려가 맞이할수도 있었겠으나 잠시후 있을 모임식장에서의 단체상봉의 짜릿함을 되도록 상승시키기 위해 꾹 참고 방에 틀어박혀 위챗 모멘트에 '고요한 위해 바다가에 바야흐로 광란의 밤이 온양된다'는 식의 시시껄렁한 멘트를 올리며 시간을 보냈다.</h3><h3> 이번 동기모임은 2015년 봄 소주, 항주, 소흥 등을 도는 '력사적인 남방순회'가 있은후 4년만에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상봉이다. </h3><h3> 드디여 행사장에 나타난 동기들은 마치 어제 방금 헤여졌다 만난 것 마냥 스스럼 없이 얼싸안고 돌아갔는데 모두들 외모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였다. 정원 28명가운데 3분의 2인 18명이 모였는데 역시 감동적이고 모임의 '격'을 높인 것은 영국, 미국, 일본, 한국 듣 해외파들의 대거 참여였다. 매번 이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우리의 동기모임도 글로벌이란 '시대적 조류'와도 어긋나지 않게 '품위'를 지켜가고 있다. 학창시절에는 '북경시 3호반급'이였고 후에는 교수, 작가, 사업가 등 인재들을 대거 배출한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 79반급, 감히 '명품'반급이라 자처하고 자호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나는 졸업전이나 졸업후나 일관되게 유지해온 동기들간의 각별한 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h3><h3> 이날 연회는 두상으로 나뉘여 앉게 되였는데 퇴직 전후를 기준으로 획분했다. 삽시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퇴직한 사람들은 저쪽 상을 향해 어른대접 해달라고 호소했고 저쪽에서는 이 쪽을 향해 '로인'들과는 같이 안논다고 '젊은' 티를 팍팍 냈다. 한동안 이러고 장난쓰며 시끌벅쩍이였지만 좀 잠잠해지자 서글픈 마음이 확 밀려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나이가 60살 전후에 이르렀다. 그러니 이번 모임을 일러 79급 집단회갑식이라 해도 큰 어페는 없을듯 싶었다. </h3><h3> 그래서였던가, 이날 밤 파티는 시종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리지적인 가운데 알게 모르게 열정이 슴베여 있었고 또 화끈함가운데 절제가 결핍되지 않았다. 행사 집행자 금자씨가 신경 써 마련한 65도짜리 빼갈도 춘선씨가 영국에서 공수해온 고급위스키도 특히 재국씨가 동기들의 사진까지 상표에 박아넣어 특별 제작한 와인도 내가 낮에 위챗 모멘트에 운운한 '광란'의 밤만은 연출해내지 못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미 광란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였으며 요란법석보다는 은은하게 자신을 표현함이 체질에 맞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파티가 끝나고 늦은 밤 함께 호젓한 해변을 거닐면서는 그래도 래일 밤은 광란은 아니더라도 보다 진한 불씨가 타올랐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도 없지는 않았다. 딱히 연석에서만 아니고 그러한 불씨를 살려 이후의 삶에 있어서도 어떤 새로운 일의 시작이 되였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h3><h3> 이튿날은 위해시 대표적 관광명소로 꼽히는 류공도(刘公岛)를 돌아보게 되였다. 류공도는 백여년전 청나라 함대 북양수사(北洋水師)의 기지로 이곳에 갑오전쟁진렬관이 건설되여있었다. 국치민욕의 력사를 보여주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이날 내가 받은 쇼크는 따로 있었다. 류공도 티켓을 보니 정상적인 표값이 180원인데 반해 60살부터는 로인우대를 받아 31원에 불과했다. 나의 티켓에 적혀있는 할인 가격을 들여다보고 있을라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h3><h3> 류공도 방문을 마치고 오후에는 쪽빛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해수욕장을 찾아 수영도 하고 각종 유희도 놀며 힐링의 한때를 즐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짙어지는 석양빛에 해변 백사장도 우리도 곱게 물들어갔으며 유희는 고조에로 치달았다. 윷놀이를 비롯해 평소에는 유치하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던 놀이였지만 모두가 '로인네들' 답지 않게 승벽심에 이글거려 돌아가는 품이 이때는 모두가 영락없이 유치원생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세월은 흘렀어도 이처럼 동심은 살아 숨쉬고 있었고 이는 또한 우리가 이후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해갈수 있는 동력이기도 할 것이다. </h3><h3> 유희를 마치고 이 뜻깊은 순간을 남기기 위해 석양을 마주하여 줄 느런히 늘어선 79급 동기들, 갓 대학에 입학하던 때의 젊고 탱탱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편안하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그토록 멋져보였고 가슴 뭉클할수가 없었다. 이날 위해의 해변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인 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일경으로 작용했기때문이리라! </h3><h3> 이날 단체연회가 파한후 막 호텔방에 들어서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방룡남씨로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광란'하러 가니 빨리 내려오라고 했다. '유혹'에 못이겨 내려가보니 재직파(60후)들이 남녀 비례까지 맞추어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 패들'에 짝지지 않겠노라 호기를 뽑은 탓이였던가, 이날 밤도 나는 결국 '광'기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남의 부축을 받으며 포로병 같은 몰골로 호텔로 돌아오는 맥빠진 꼴만 보이고말았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리, 지나면 이 또한 두고 되새김질할 소중한 추억거리로 남을 것이니.</h3><h3> 세번째 날은 산경치가 일품인 계곡으로 향했다. 위해가 바다만 아름다운줄 알았더니 이런 깊은 계곡이 있을줄이야! </h3><h3> 이번에 보니 이번 동기모임의 총 집행관 김금자씨의 준비성은 철저했고 행동성은 과단했으며 봉사성은 친절했다. 이날 계곡에서의 활동을 위해서도 그가 음식이며 돗자리며 준비물들을 주도세밀하게 고려하여 챙긴 까닭에 우리는 참으로 편하고도 유쾌한 한때를 보낼수 있었다. 며칠째 그가 동창들을 위해 분주히 뛰여다니는 모습을 보며 멋지단 인상이 강하게 들어 한번은 식사때 참 멋있다고 했더니 녀자보고 아름답다도 아니고 멋있다가 뭐냐고 불만스러워했지만 이번 동기모임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를 나는 멋있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학창시절 단아하고 녀성스러운 인상이 강했다면 이번에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세련되고 어딘가 은근히 카리스마를 풍기였다. 다년간 령도사업을 하며 몸에 배인 기질일 것이다. 아무튼 친절한 금자씨 덕분에 많은 동기들이 떠나간 다음에도 우리 몇몇은 남아서 위해의 숨은 경치들을 더 볼수 있어 행복했었고 아세아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며졌다는 골프장에 들려서는 사진만 몇장 찍었을뿐인데 마치 귀족이 된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h3><h3> 3박4일, 일부는 4박5일 일정의 위해 동기모임은 수많은 웃음과 이야기와 추억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4년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동기들은 미국으로, 영국으로, 한국으로, 국내 여러 도시로 륙속 떠났다. 다음은 국내를 떠나 국외로 진출하여 동기모임을 갖자고 갈피를 잡았는데 그러러면 지금부터 각자가 체력보강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며 서로서로 격려를 하며 동기들은 떠나갔다.</h3><h3> 이번에 왔던 동기들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이번에 오지 못한 동기들까지 더 보태지는 그런 둥그런 다음회 동기모임을 기대해본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