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드메뇨? (방천마을답사기 2)

雁南飞Y

<p><b> 7월 7일 일요일, 우리 친구들은 연변1중 선배님들과 함께 드라이브식유람을 떠났습니다. 우리를 태운 회색승용차는 珲乌고속도로를 따라 동으로 동으로 질주했습니다.</b></p> <p><b> 승용차에서의 우리 친구들. </b></p> <p><b> 그렇게 맨먼저 도착한 곳이 바로 훈춘입니다.</b></p> <p><b> 여기서 동행 한분 더 모시고 우린 다시 차에 올라 계속 달리고 달려 대판령을 지나 소판령마을에 이르렀습니다.</b></p> <p><b> 소판령마을은 우리 동행중 한분이 태여난 고향이랍니다. 몇호 안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아주 아담했습니다.</b></p> <p><b> 또다시 달리고 달려 권하교두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우린 기념으로 사진 몇장 찍고 또다시 차에 올랐습니다.</b></p> <p><b>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차는 또 멈춰섰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어드메죠?</b></p> <p><b> 여기가 바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마주보고있는 중조변경이랍니다. 저기 저 강건너편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살던 나라라 합니다. </b></p> <p><b> 철조망너머로 우리 조상들이 살길을 찾아 쪽박차고 건너왔다는 두만강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맘 몹시 무겁습니다.</b></p> <p><b> 우린 쉼없이 흐르는 두만강을 뒤에 두고 우리 조상들이 살던 나라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남겼습니다.</b></p> <p><b> 드디여 우린 오늘의 유람 첫코스ㅡ양관평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일행입니다.</b></p> <p><b> 함께 동행한 건공소학교선배이자 연변1중선배님들. </b></p> <p><b>  함께 동행한 강태원서기의 둘째아드님.</b></p> <p><b> 우리 연변1중 동창친구들.</b></p> <p><b> 사구공원에 잠간 들려...</b></p> <p><b> 까츄샤동상아래에서.</b></p> <h3> </h3> <p><b> 1938년에 일어난 장고봉사건에서 쏘련변방군은 일본군과의 피어린 투쟁을 거쳐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승리를 거둔 변방군인들을 노래하기 위해 쏘련의 저명한 시인 이사꼽스끼(伊萨柯夫斯基)가 가사를 쓰고 작곡가 브라운셰어(布朗介尔)가 곡을 붙여 "까츄샤"노래를 지었습니다. "까츄샤"는 아름다운 처녀라는 뜻입니다. 노래가사는 대체로 사랑하는 원동변방군인들에게 아름다운 애정을 드린다는것입니다. 까츄샤동상은 이를 기념하여 세워진것이구요. </b></p> <p><b> 우린 달리고 서고 또 달리고 하면서 드디여 동방의 제일 첫동네 방천마을입구에 이르렀습니다. </b></p> <p><b> 그런데 5월 24일 우리가 첫 답사를 왔을 때에 반겨맞던 그 마을비석과 돌조각상은 오간데 없고</b></p> <p><b> 새롭게 세운 마을비석과 동상이 우릴 반겨맞았습니다.</b></p> <h3>  </h3> <p><b> 오늘도 예나다름없이 어서오라 반겨맞는 천하대장군과 지하녀장군.</b></p> <p><b> 밤낮을 모르고 마을을 굳건히 지키고있는 돌하르방과 함께.</b></p> <p><b>  그립던 방천마을이여, 안녕! </b></p> <p><b> 1968년부터 1980년까지 방천마을에 하향하여 변강건설과 변강보위에 청춘을 바친 상해, 료녕, 장춘, 훈춘의 52명 지식청년들을 기리여 집체호 옛터에 세워진 돌비석 앞에서. </b></p> <p><b> 지식청년들한테 전쟁준비동원보고를 하고있는 강태원서기.</b></p> <p><b> 당년에 방천대대에 하향한 상해지식청년 손위평.</b></p> <p><b>당년에 소판령대대에 하향한 상해지식청년들. </b></p> <p><b> 이 김치움은 우리가 알고있는 그런 보통김치움이 아니랍니다. 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큰 동굴인지 모를 정도랍니다. </b></p> <p><b> 흥분으로 하여 환호하며 거리에서 활개치는 우리 일행.</b></p> <p><b> 한 주민호 문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열정적으로 반겨맞는 집주인의 안내로 우린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b></p> <p><b> 마침 집주인과 우리를 안내하신 분은 어렷을적부터 방천마을에서 함께 자란 사이고 또 친척간이랍니다. </b></p> <p><b> 맘씨 후한 집주인은 마당에서 푸르싱싱 자라고있는 무공해마늘을 맘껏 뽑아 점심에 고추장에 찍어 자시라 합니다.</b></p> <p><b> 우린 "고맙습니다 " 인사하기 바쁘게 몇웅큼 뽑아 쁨프물에 씻어 챙겼습니다. </b></p> <p><b> 나라에서 한채에 50만원씩 투자해 지은 살림집구경을 하려고 집안에 들어섰습니다. 기둥도, 대들보도 통홍송으로 되여있어 우리일행은 입을 모아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 집주인의 알뜰한 솜씨로 집안은 아주 정갈하게 꾸며져있었습니다 </b></p> <p><b> 70평좌우의 살림집은 아래웃방이 있고 건너편에 작은 침실 하나가 더 곁딸렸으며 집안에 위생실까지 있었습니다. 구들도 전기장판으로 난방이 돼있어 아주 편리하다고 집주인은 말했습니다. </b></p> <p><b> 살림집들이 늘어선 마을을 뒤에 두고 호수가로.</b></p> <p><b> 호수중앙에 팔각으로 날듯이 솟아있는 "태원각"입니다. 이 태원각은 60년대초 조남기대장의 지시에 의해 방천마을을 다시 일떠세운 강태원서기를 기리여 이 마을주민들이 돈을 모금하여 세운것이랍니다. 각의 이름도 강태원서기의 이름으로 명명하여 "태원각"이라 하였답니다. </b></p> <p><b> 아버지이름으로 명명된 "태원각"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서있는 강태원서기의 둘째아드님.</b></p> <p><b> 아버지이름으로 세워진 "태원각"에 올라 추억에 잠겨있는 강태원서기의 둘째아드님.</b></p> <p><b> "태원각"에 올라 사면팔방 둘러보니 "태원각"을 둘러싼 거울같은 호수와 더불어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 옛날 이태백이 달빛아래서 술마시며 시흥에 취해있었다는 그 취각 저리 비켜라 합니다. </b></p><p><br></p> <p><b> "태원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중, 로 두 장고봉산이 한눈에 안겨옵니다. </b></p> <p><b> 머리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니 변방초소 뒤산이 한눈에 안겨옵니다. 쏘련과 관계가 긴장했던 그 나날 싸이렌소리만 나면 며칠이고 옷입은채로 대기해있었다던 방공호가 있는 그 산 말입니다. </b></p> <p><b> 다시 몸을 돌려 남쪽을 바라보니 호수건너 방천마을일각이 한눈에 안겨옵니다.</b></p> <p><b> 서쪽을 바라보니 사구공원으로 넘어가는 뉘연한 언덕이 멀리 바라보입니다. 지금은 사구공원과 이어지는 공원이 한창 시공중에 있었습니다. </b></p> <p><b> 사면이 호수에 둘러져있고 그 호수너머로 동서북 삼면이 산에 둘러싸여있고 남쪽 한면이 방천마을과 함께 앞에 두만강이 탁 트인 이렇듯 의미있는 "태원각"에서 시원히 불어오는 호수바람 맞으며 우린 만남의 파티를 가졌습니다. 방천마을주민의 터밭에서 뽑아온 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먹는걸 잊지 않으면서. </b></p> <p><b> 정말 뜻깊은 날이였습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오래오래 이대로 "태원각"에서 즐기고싶었습니다.</b></p> <p><b> 우린 파티를 마무리짓고 두만강가로 나왔습니다.</b></p> <p><b> 두만강을 가로지른 로씨아ㅡ조선 철교입니다.</b></p> <p><b> 망루에서 바라본 로씨아 하싼진마을입니다.</b></p> <p><b> 그속에서 너무나도 기묘하게 이뤄진 금삼각!</b></p> <p><b> 저 두만강에서 질주하는 유람모터정!</b></p> <p><b> 너무나도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신비한 곳입니다. </b></p> <p><b>조국의 동대문이여, </b></p><p><b> 력사에 길이 빛날 방천이여! </b></p><p><b> 그대의 래일 더더욱 벅차길 기대하면서...</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