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 4월20일 나는 애처럼 떨어지기 싫어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自驾游를 떠났다. 거의 이십일이 되는 긴 여정을 계획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엄마와는 십여일 걸릴거라고 얼버무리고 떠났다. 정말 미안한 려행으로 되였다. 아침부터 흐리터분한 날씨는 밤잠을 설친 나에게 졸음만 퍼붓는다. 졸다깨고 깨었다가는 졸고 수십번 오후 여섯시 우리는 葫芦岛의 绥中县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의 중국 중부를 가로질러 베일에 싸인 香格里拉를 목표로 하는 自驾游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h1> <h1> 오늘은 4월 22일 이틀동안 우리는 이천여공리를 뛰여 하남성 修武현에 도착했다. 아침일찍 焦作市에 있는 云台山으로 간다고 떠났지만 이슬비가 뽀얗게 내리면서 폭 흐리였다. 진짜 려행의 첫날인데 날씨가 말썽이다. 우려끝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오르기로 결심했다. </h1> <h1> 밤새내리던 비는 보슬비가 되여 꾸준히 내린다.云台山은 정말 이름 그대로 구름에 휩싸여 있다. 날씨와는 관계없이 사람도 많고 려행코스도 많다. 진짜로 상세히 구경하려면 사흘은 돌아야 되겠다. 우리는 云台山주봉은 포기하고 먼저 泉瀑峡를 선택했다. 아직은 결수기여서 물량이 매우 적었다. 하지만 기괴암석이 쭉 깔린 강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물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며 들뜬 우리의 마음을 적셔준다. </h1> <h1> 구름에 휩싸인 절벽은 한폭의 수채화를 방풀케한다. 보일듯 말듯 암석과 나무들이 흘러가는 구름속에 휩싸여 완연히 숨쉬는 동영상으로 된다.이곳엔 1700메터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계절성 폭포가 있단다. 그리고 다정한 련인처럼 두갈래로 나뉘여 내려오는 情人瀑布가 있는가 하면 두 마음이 하나로 합치여 내려오는 Y자형 폭포도 있다. 雨季에 는 더욱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리라는 상상에 다시 한번 오고싶은 곳이다. </h1> <h1> 다음은 潭瀑峡로 이동했다.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미니폭포들이 줄따라 이어진다. 폭포가 떨어진 곳에는 욕조같이 생긴 작은 연못(池)이 붉고 푸르고 연푸른 각양각색의 모양새로 자태를 뽐낸다. 우리도 보슬보슬 내리는 빗속에서 비옷을 입은 자태를 풍경으로 뽐냈다. </h1> <h1> 내려오면서 우리는 이곳의 또다른 절경红石谷에 들렸다 정말로 장관이다. 내려다보니 아찔해난다. 장백산협곡은 내려다 볼뿐이지만 이곳은 계곡밑으로 내려가서 다락길로 물길을 따라 에돌면서 마음껏 구경할수 있다. 우리는 년륜을 잊고 숨가쁜줄도 모르고 즐겁게 다녔다. </h1><h3><br></h3> <h1> 红石谷에는 진붉은 암벽들이 수십메터로 수직되여 있다.벼랑중턱에서 내려다보면 맑고 푸른 물이 소용돌이 치며 흐른다. 정말로 첨벙 다이빙을 즐기고 싶다. 나는 장가계를 못가보았지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곳의 경치는 정말로 금강산. 장가계보다 못지않다고 한다. 문표는 150원인데 이틀동안이 유효기란다. 볼거리에 비하면 문표는 싼 편이다. 하지만 서비스는 좀 엉망이다. </h1> <h1> 4월 23일 우리는 하남성 叶县에서 사천성 중경을 향해 떠났다. 일망무제한 밀밭을 지나고 호남성에 들어서니 험준한 산봉우리들이 나타났다. 산과 산사이는 산굴과 다리로 이어졌고 산골짜기마다에는 정교하게 가꾸어진 차잎밭이 올망졸망 산자락을 장식하였다. 수십여개의 다리를 건너고 굴을 지나니 청청 맑은 하늘이 보이고 누덕누덕 기름냄새가 배인 도심의 매캐한 공기는 간곳없고 청신한 산냄새와 풀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구수한 중초약 냄새가 아닌가고 착각할 지경이다. </h1> <h1> 저녁 일곱시 우리는 오십여개의 산굴을 질리게 달리여 중경시 巫山县에 도착하였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호텔을 찾아들어가보니 어떻게 이런데서 사람이 사는가 싶을정도로 어지러워 머리가 아찔할 정도이고 주변은 공정하는 차량들의 거친 소음이 속을 빡빡 긁는다. 우리는 지친 몸을 끌고 좀 더 좋은 곳을 찾아 헤매여 겨우 주숙 장소를 정했다. 환경이 천당인 셈이다. 이곳은 산구 도시로써 모든 건축물은 모두가 다락식으로 벼랑에 걸려져 있다. 비좁고 비좁은 골짜기에 어떻게 몆십층짜리 건물이 지어졌을까가 의심이 될 지경이다. </h1> <h1> 4월24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해돋이도 볼겸 아침시장도 볼겸 나갈려고하니 날이 밝지않는다. 겨우겨우 날밝기를 기다려 거리로 나가니 조깅하는 사람 몆을 내놓고는 조용한 새벽이다. 지저분한 장터에 여러가지 여름철 남새가 무질서하게 쌓여있다. 유독 쩔인 돼지고기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은것이 우리의 시장보다 좀 다른 풍경이다. 대충 장을 보고 호텔앞까지 오니 일곱시가 거의 된다. 우리고장에서는 구중천에 떠있을 태양이 겨우 빠금히 얼굴을 내민다. 나는 就地取材한 채소로 간단한 음식들을 만들었다. 집에서 가지고 온 짠지들이 거의 거덜이 난것이다. 이렇게 수시로 만들어 먹으면서 하는 려행도 재미인것같다. </h1> <h1> 간단한 아침식사후 우리는 장강 小三峡를려행코스로 잡았다 장강삼협은 重庆丰节县의 白帝城으로부터 시작하여 호남성의 宜昌市의 南津关까지 193공리이다. 삼협공정이 시작되기전 수려한 산천경개로 세계의 명승지로 손 꼽힐만큼 이름난 곳이 였다. 삼협공정이 완성된후 이곳의 수위는 원래의 60메터로부터 175메터까지 올라갔다. 100메터가 높아진것이다. 여름이면 홍수방지를 위하여 수문으로 물을 대량으로 방출하면서 장강삼협의 또다른 장관을 이룬단다 .수위의 백여메터 상승으로 삼협량안의 백만명 백성이 이주를 하였고 아름다운 경치의 60퍼센트가 물에 잠겼단다.그리고 유람선에서 화장실 람용으로 장강은 오염되여 가고있다. 먼 훗날 우리의 세대들에게 정말 잘한 일인지 우려된다. </h1> <h1> 小三峡는 유람선으로 네시간좌우 걸린단다. 小三峡의 첫협곡은 龙门峡이다. 이협곡은 우리인민페 십원짜리뒤면의 원판이지만 수위의 상승으로 원래의 진면모는 거의 찾아볼수 없다. 원래 협곡의 너비는 겨우 십여메터였지만 지금은 수십메터로 넓어져 여러개의 대형유람선이 마음대로 지나쳐 다닌다. 수위가 백메터 낮았을때의 진면모는 인민페 뒤면의 그림으로만 남았다. </h1> <h1> 小三峡의 두번째협곡 巴雾峡이다. 이협곡 량안에는 신선동도 있고 관음보살이 름름히 앉아있는 바위도 있고 선녀가 머리채 풀어 머리감는 바위도 있고 저팔계가 관음보살한테 불공드리는 바위도 있고 선녀가 강에 뽈을 던지는 바위도 있단다. 스피커에서 해설원이 열심히 설명하면서 잘 들어봐야 안다고 소리를 높여 해설하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귀울림과 유람객의 떠들석한 까마귀 울음소리가 한데 어울려 뭐가뭔지 정신이 없다. 정말 아름다운 경치에 유람객의 소질이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h1> <h1><br></h1> <p style="font-family: -webkit-standard; white-space: normal; -webkit-tap-highlight-color: rgba(26, 26, 26, 0.301961); -webkit-text-size-adjust: auto;"> 小三峡의 세번째협곡 滴翠峡에 도착했다. 절벽중간에 仿古栈道가 걸려있다. 옛날의栈道는 길이가 56公里로서 너비도 꽤나 넓어 车来马往할수있고 纤夫들도 나란히 짐을 메고 드나들수 있어서 내륙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단다. 세월의 흐름과 암석의 풍화작용으로 길이 좁아져 홍수가 지면 사용이 불가능해지자 광서14년에 다시 대공정을 하여 주요 교통요새로 되였단다. 2003년 400여메터의 仿古栈道를 시작했었는데 삼협공정으로 원래의 栈道는 물론 새로 시작한 仿古栈道까지 수위가 올라가면서 물에 잠겨버렸다. 2009년에 다시 시작하여 2010년 7월 2100메터의 仿古栈道를 완성하였다. 옛것을 훼멸해버리는 아쉬움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으려고 仿古를 만들었을거다.옛것도 가짜를 만들어 놓으니 정말 “가짜제조왕국”이라는 국제적 명성에 딱 걸맞는것 같다. </h3><p style="font-family: -webkit-standard; white-space: normal; -webkit-tap-highlight-color: rgba(26, 26, 26, 0.301961); -webkit-text-size-adjust: auto;">절벽밑에는 禹州시기의 유명한 검객 罗鹏과 周仕超이 검술중 罗鹏이 뒤통수공격을 하여 江湖에서 물의를 일으켜 숨어 살았다는 罗家塞가 있다. 곁에 있는 동굴에서는 가느다란 폭포가 튕겨나오고 있다. 수위가 백여메터 높여진 지금은 자세히 보지않으면 볼수없을만큼 가날프지만 예전에는 하늘에서 날아오는 물이라고 天泉飞雨라고 명명하였단다.옛것을 잃은 아픔이 느껴진다. </h3><p style="font-family: -webkit-standard; white-space: normal; -webkit-tap-highlight-color: rgba(26, 26, 26, 0.301961); -webkit-text-size-adjust: auto;"> </h3> <h1> 小小三峡는 물길이 좁고 수심이 깊어 거의 50메터란다. 우리는 작은 배로 갈아탔다. 5년전만해도 이곳은 빈곤현이였단다. 좁고 긴 협곡량켠에는 주민 9만명이 주거했었는데 외부와의 길이 열리면서 젊은이들이 외지로 빠져나가 지금은 3만명좌우의 로인들과 아이들만 남아있단다. 유람객이 밀려들면서 원래의 돌집은 정부의 지원으로 현대식 새집으로 바뀌였고 고속도로가 통하고 고속철도는 시공중이다. 력사깊은 토속민 생활이 결속되여 가고있지만 협곡량켠 절벽에는 이천년력사를 가지고있는 悬棺이 군데군데 있다. 옛인들은 고인을 높이 올려놓을수록 천당으로 가는 길이 가깝다고 다투어 가면서 높이 걸었단다. 어떻게 저 벼랑중턱에 걸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단다. </h1> <h1> 4월 25일 우리는 하남성. 호북성. 사천성을 걸쳐 귀주성의 황과수에 도착했다. 첩첩산봉을 이어놓은 백여개의 산굴과 다리를 질리도록 달렸다. 양고기뀀을 꿰듯이 산중턱을 가로 꿰찌른 동굴과 구름을 휘감으며 놓여진 다리는 정말로 천라만상이여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중화민족의 위대함의 상징이라할까 아니면 미련한 끈질김이 낳은 산물이라 할까 아무튼 깊은 인상을 남겼다. </h1> <h1> 4월 26일 우리는 귀주성 관광을 시작했다. 처음 코스로 陡坡塘폭포에 도착했다. 아마도 볼때마다 장관인것같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상상속의 폭포구나하는 생각이 든다.절경앞에서 젊은 유람객들은 너도나도 사진기를 들고 야단법석이다. 우리는 정말 늙은것같다. 예전보다 사진찍는 열정이 너무 많이 식어버렸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사진속에서 자신들의 망가져가는 모습이 너무도 선명해서 보기싫어져서 인것같다. 병변이 온것처럼 축 늘어진 량볼이 무척 신경이 쓰인다. </h1> <h1> 이곳은 天星桥풍경구이다. 협곡사이에는 천차만별의 암석들이 자리잡고 있고 사이사이로 맑은 물이 감돌아 흐르면서 바위마다에 선인장이 숲을 이루고 년륜의 냄새가 넘치는 나무 뿌리와 넝쿨들이 어우러져 색다른 풍경을 이루고 있다. 美女龙은 나무뿌리가 꺼꾸로 매달려있는 미녀들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고 명명한 바위로서 전설도 많치만 네명이상의 룡녀를 볼수있는 남자라면 색마라고 한다고 하여 관광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h1> <h1> 이곳은 또 다른 풍경 — 말궁둥이 처럼 생긴 바위틈에서 쏟아지는 폭포라하여 马尾瀑布라 하고 높게 우뚝솟은 바위틈 사이사이에 선인장이 우거져있어 长青峡라 했다. 정말 상상력이 풍부한 옛인들이 그럴듯하게 명명도 잘해 놓았다. </h1> <h1> 이곳은 天星湖풍경이다. 접시모양의 물꽃이 곺게 피여 올라 조용한 호수면에 뿌려지면서 또 다른 더큰 접시꽃을 피운다. 호수에서 좀 더 올라가면 高老庄이 있다. 저팔계가 嫦娥를 调戏하여 인간세상에 돼지의 탈을 쓰고 태여나 이곳에서 高老太公의 셋째딸 (손오공의 변신)을 안해로 맞으며 기뻐서 술에 취해 업고 다녔다는 전설의 발원지이자 영화 서유기의 取境地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 </h1> <h1> 여기는 황과수폭포이다. 황과수 폭포는 아마 장백산 폭포보다 먼저 알았던것같다. 우리가 어릴때 소학교 교과서에 기재되였던만큼 유명했으니까. 정말 名不虚传이였다. 이년전에 왔었는데 코스가 다르다보니 먼 발치에서 보았기에 기억이 아리숭하여 많은 놀림을 받았다. </h1> <h1>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도 장관이지만 폭포뒤켠쪽의 水帘洞에서 바위틈사이로 떨어지는 폭포를 보는것도 장관이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줄기는 은구슬이 쏟아져 내리는것만 같았다. 온 하루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져 유쾌히 잘 보냈다. 저녁식사 하려는데 우리 엄마가 전화왔다. 부부들사이에 끼워하는 외톨이 려행인것만큼 눈치껏 행동하면서 조심하라고 부탁한다. 우리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근심하는 엄마의 때때로하는 조언이 우리 일행의 려행에 양념으로 뿌려져 웃음이 더 많아졌다. </h1> <h1> 4월27일. 우리는 세계적 명승지 석림으로 왔다. 2억7천년 전에는 바다였던 해저(海底)의 천라만상이 적라라하게 륙지에 올라와있다. 천태만상의 암석과 물 호수 나무가 잘 어우러려 자연공원을 이루고 있다. 영화 “아스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유람객이 너무 많아 가이드들이 자기의 팀을 부르는 혼잡한 목소리가 머리를 친다. </h1> <h1> 아름다운 경치가 너무 많아 어느사진을남길까 방황하게 된다. 하는수없이 우리는 마음속 한곳에도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바위숲 한가운데 자리잡은 莲花池에서는 금붕어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유람객을 맞이하고 영화 阿诗玛의 명장면 촬영지앞에서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서로서로가 阿妹阿哥로 된 기분인것 같다. </h1> <h1> 나와 옥희는 려행에 굶주린 방랑객처럼 사람들틈, 돌틈을 비집고 다니며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사람이 닿지않은 곳이면 더 찾아갔다. 동행들을 애타게 기다리게도 하고 찾아 다니하게도하여 전업촬영가가 되겠는가고 놀림도 받는다. 하지만 어떻게 이 먼곳까지 차를 몰고 왔는데 하면서 한곳도 놓치지 않고 찾아 볼려고 헤매며 뛰여다닌다. </h1> <h1> 입안의 혀도 씹을때도 있다고 한집식구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긴 려행을 할수있는가고 그 누군가 묻는다. 자기들은 려행은 좋아하는데 조직하자니 타이밍이 맞지않아서 조직이 영 안되더란다. 우리는 동창과 부부간,동료가 어울려 십년간의 우정을 쌓아왔고 삼년째로 이렇게 유쾌한 自驾游 려행을 하였다. 묻는자에게 대답하기는 힘들지만 명확한건 우리는 희생할줄도 奉献할줄도 包容할줄도 배려할줄도 아는 사람들로 모였기에 유쾌한 려행으로 삶을 즐기며 즐거운 삶을 만들어 가고 있는것이다. 정말 서로서로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사귀여 가고있는것이다. </h1> <h1> 점점 늙어가며 처지는 얼굴을 사진으로 보면서 마음이 허전해진다. 이번 려행길에서도 몆번이고 작년 혹은 재작년의 사진을 찾아서이번 걸음에 찍은 사진과 대조해본다. 세월앞에서는 어쩔수없는 일이라고 위안하면서 좋은 경치를 뒤받침으로 이렇게 사진을 남긴다. </h1> <h1> 석림려행이 끝나고 우리는 대리로 출발했다. 달리던 도중 우리가 들린 读书铺휴계소이다. 아마 세계는 몰라도 중국에서는 제일 호화로운 휴계소일거다. 건축물도 특이하지만 주위환경은 정말 잘 가꾸어진 공원이다. 화장실도 창의성이 있게 만들어졌다. 화장실 거울마다에는 지능 동영상이 갖추어져있다. </h1> <h1> 4월 28일 우리는 洱海에 도착했다. 흐리터분한 날씨지만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려고 배를 탔다. 해발 1900메터의 고원에 자리잡은 256평방공리의 담수호—얼해는 운남성의 두번째로 큰 호수로써 대리의 母亲湖로 불리운단다. 수심이 평균 십여메터로서 제일 깊은곳은 이십여메터 된단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속에는 각가지 미생물이 공존하고 있단다. 흐리터분한 날씨때문에 주위경치는 아리숭하게만 보이여 아쉬움을 남겼다.이제 다시 한번 이곳으로 오면 배를 타지말고 드라이브로 호수주위를 한바퀴 도는것이 퍽 나을상 싶다. </h1> <h1> 4월29일 우리는 香格里拉에 도착하였다. 香格里拉는 장족말로 천당이란다. 해발삼천여메터가 넘으니 모두가 고산반응의 영향으로 힘들게 하루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 힘든 움직이지만 우리는 보슬보슬 내리는 비속에서 려행을 떠났다. 처음 도착한곳은 天生桥이다. 다리 웃면에서는 다리라고 상상할수 없이 평평한 바위산이다. 골짜기 따라 내려가니 강이 바위 밑으로 흐른다. 완연히 자연이 만들어준 천연다리이다. 옆으로는 뿌연 석회암 온천물이 흘러나오고 아담한 실외온천이 자리잡고 있다. 피곤한 몸을 푹 담그고 피곤을 풀고싶은 마음이 불같지만 몸이 불편한 분들이 있어서 포기했다. 아쉬움만 남기고 떠났다. </h1> <h1> 우리는 普达措국가공원으로 향했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세계유산에 든 자연공원이란다. 하지만 세개 景区에서 한개만 개방하고 있었다. 아직 좀 이른 초원경치는 메말라있었다. 해발 3625메터의 고산에 属都湖가 자리잡고 있다. 이 물은 금사강으로 흘러드는데 락차가 이천여메터란다. 륙월의 여름에 오면 고산두견화가 활짝 피고 초원이 푸르러지면서 경치가 여간만 아름답지 않단다. 香格里拉로 향할때 험한 산길을 톱아가면서 기대치가 컸던것만큼 실망도 컸다. 찔끔거리며 비까지 오는바람에 기분도 찌뿌둥해졌다. 실망도 잠시 돌아오는길 우리는 두견화가 만발한 산으로 흙길따라 올라갔다. 진짜로 천연花海였다. 처음으로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여난 두견화 꽃밭속에서 마음껐 즐겼다. </h1> <h1> 리강으로 향한 길목에서 우리는 전설의 虎跳峡로 향했다. 포효하는 금사강의 물결은 석회암의 지리적 영향과 고속도로 시공의 영향으로 완전히 뿌옇고 찐한 황갈색의 물결로 세차게 흘러내렸다. 정말로 장관의 금사강. 력사의 금사강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香格里拉에서의 실망이 완전히 소실되였다. </h1> <h1> 4월 30일 우리는 리강의 관광명소 蓝月谷로 향했다. 5.1절 휴가가 띄여 사람이 여간만하게 많은것이 아니다. 려행의 피로도 엄습하고 려행코스 안내도 엉망이다보니 리강의 려행은 미미하게 끝나고 말았다. 아름다운 蓝月谷의 맑은 푸른물과 장엄한 설산의 모습은 매력적이였지만 인위적인 경치가 너무 많이 첨가되여 자체의 자연 매력이 상실되고 자연이 파괴되여 가고있어 마음이 아팠다. </h1> <h1><br></h1> <p style="font-family: -webkit-standard; white-space: normal; -webkit-tap-highlight-color: rgba(26, 26, 26, 0.301961); -webkit-text-size-adjust: auto;"> 오후 우리는 리강에서 사천성을 향해 떠났다. 고속도로가 아닌 308국도를 따라 산을 넘었다. 준엄한 산봉우리를 굽이굽이 도는 국도로는 고속도로공정으로 대형화물차와 일반 화물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렸다. 가파로운 급카브에서 두차가 서로 지날때면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금사강의 아름다운 비취색 빛깔의 물결을 볼수 있었고 근로한 백성들의 삶을 느끼고 볼수 있었다. 나는 벼농사는 평평한 벌판에서만 가능한것으로 알고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좁은 골짜기에 다락식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논밭을 볼수 있었다. 한창 모내기 철이여서 산비탈을 내려오며 관개하는 물길도 볼수있었고 작은 돌들로 한톨한톨 쌓아올린 논두렁 사이로 다니는 농부들도 볼수있었다. 논두렁에서 논밭에서 우리는 세세대대로 살아온 농부의 손길과 피땀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어떤 뙈기밭은 벼모를 두줄정도밖에 심을수없을 정도지만 열심히 가꾸어 놓았다. 고속도로의 건설이 이 소중한 밭뙈기를 훼멸할까봐 근심이 되면서 이런것들이 진짜 세계유산이 되였으면 하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들었다. </h3> <h1><br></h1> <p style="font-family: -webkit-standard; white-space: normal; -webkit-tap-highlight-color: rgba(26, 26, 26, 0.301961); -webkit-text-size-adjust: auto;"> 5월 1일. 오늘은 래일의 아미산 등반을 위하여 夹江县으로 가야했다. 거리는 833킬로메터 떨어져있으니 오늘은 꼼짝 못하고 차에만 있어야 했다.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도 적지 않았다. 이주임께서 전국에서 제일 멋있는 고속도로를 볼수있다고 했다. 크게 기대를 안했는데 눈앞에 놀라운 정경이 펼쳐졌다. 높은 산아래 골짜기에는 대규모 풍력발전소가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고 산과 산사이를 굽이굽이 돌면서 멋있는 구름다리들이 산중턱에 걸려있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였다. 특히 甘海子螺旋隧道는 해발2500메터의 산중턱에서 타래치며 내려온다. 길 안내도가 쌍환 고리를 제시한다. 세계에서 桁跨가 제일 큰 다리란다. 그리고 대도하를 가로 질러 놓여진 一腊八斤大桥의 장엄한 경관도 혀를 차게 만들었다. 240공리의 雅西高速를 잔잔한 비속으로 달리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보면서 自驾游를 정말 잘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h3> <h1> 5월 2일 우리는 세계의 명산 아미산을 찾았다. 아침부터 날씨는 흐렸지만 명절인지라 인산인해를 이룬데다가 관리가 너무 허술하여 두시간씩 기다려 표를 끊고 산에 오르니 열한시가 넘었다. 산중턱에 오르니 구름이 바람에 흩날리고 장사꾼들의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관광코스의 소개도 없고 언어도 엉망이고 정말 관광명소에서 제일 어지럽고 관리가 허술한 곳이 아미산일거다. 겨우겨우 인파를 비집고 정상까지 올라가니 매캐한 연기냄새에 머리가 띵해졌다. 초불과 향불의 연기가 타래치며 휩쓸어 부처님이고 보살님이고 모두가 질식해 쓰러질지경이다. 내려오면서 군데군데를 구경하려 했지만 관광뻐스를 타니 산아래까지 쭉 와서 부려놓는다. 정말 인민페 백여원이 뻐스타는거로 끝났다. </h1> <h1> 5월 3일 우리는 九寨沟를 향해 떠났다. 중도에 이천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는 都江堰을 보려했었지만 비가 내리여 볼수가 없었다. 운이 따르지 않는것이다. 온하루 차에 갇혀있어야 하는구나하고 고양이 락태상이 되였는데 都江堰을 지나고 나니 비는 멎었지만 고속도로의 수리공정으로 백여리길을 에돌아야만 했다. 별수가 없이 우리는 몆시간을 달려 四川省广元市剑阁县에 들어섰다. 이곳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유람지로서 온천이 많았다. 우리는 剑阁北온천에 주숙했다. 생각밖에 류황냄새가 코를 찌르는 천연온천으로써 꽤나 호화로웠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뜨끈뜨근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려행의 피로를 마음껏 풀었다. 정말 나쁜일이 좋은 일로 된셈이다. </h1> <h1> 5월4일 우리는 九寨沟로 위풍당당 떠났다. 고속도로가 없어서 212국도에 들어섰다. 길은 좁고 수시로 분주한 상업거리를 빠져나오느라 아주 힘들었다. 그래도 산길에 들어서니 좀 나을상싶더니 도처에 도로건설로 길이 막히고 공정차량들로 붐비여 말이 아니였다. 또 길은 얼마나 꼬불꼬불인지 멀미가 날지경이였다. 겨우 풍경구에 도착하니 2017년 8월8일 지진이후 여태껏 개업못했단다. 지금도 복구중이여서 올해 8월에 개업할 예정이란다. 다행히 黄龙은 볼수있단다. 九寨沟에서 黄龙까지는 백여리길이였다. 黄龙으로 가는도중 우리는 지진피해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할수 있었고 복구현장도 볼수 있어서 당시의 처참한 광경을 상상할수 있었다. </h1> <h1> 5월 5일 아침 또 비가 찔끔거린다. 먼산에는 하얀눈이 내렸다. 망쳤구나 하는 실망이 앞섰지만 우리는 黄龙으로 향했다. 유람객이 적어서 한적할 정도로 싸늘하다. 하지만 화장실에 空调를 안장할만큼 깨끗하다. 지저분한 곳을 찾을수가 없이 깨끗하게 잘 정돈되여 있다. 삭도를 타고 정상에 도달하니 산책로에는 눈가루가 쌓여있어 무척 싸늘하였다. </h1> <h1> 해발 삼천여메터의 산중턱에 高山杜鹃들이 토실토실한 아기주먹만큼 큰 꽃봉오리를 막 터치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우로는 꽃봉오리들로 가득 맺혀있었지만 산아래의 꽃들은 이미 탐스럼게 피기 시작했다. 찐한 분홍과 연분홍 杜鹃들이 호함지게 피여난 꽃잎을 겨우겨우 이고있었다. 그밑에서는 깜찍한 다람쥐가 사람의 발길을 피하지 않고 까딱댄다. 빗속을 걸으면서 대자연을 감상하는것도 퍼그나 정감을 사로잡는다. </h1> <h1> 우리는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五彩湖까지 올라왔다. 설산의 물이 녹아내리고 비가 내려야 물이 넘쳐 흐르며 장관을 이루겠는데 아직 눈이 날리는 이른봄인지라 각양각색의 호수에는 물이 고여있어 아름다운 자태를 볼수있지만 물이 넘쳐 흘러야할 물길에는 钙化地貌만 적라라하게 드러나 있다. 하지만 钙化地貌 또한 다른 매력이 있었다. </h1> <h1> 해발5588메터의 岷山의 설봉에서 내리는 물은 해발3900메터에서 아름다운 钙化彩池群을 693세개나 형성하여 五彩湖를 만들었고 해발3400메터의 높이에서는 658개의 두번째로 큰 钙化彩池群을 형성하여 오색령롱한 争艳池를 만들었다. 이곳은 물이 적어 많은 못이 비여있다. 영업막바지에 물을 빼여버린 온천욕조를 방불케 한다. 해발 3200메터로 내려오니 높이 10메터 너비 40메터의 钙化瀑布가 있다. 여기는 전설에서 仙人净身修道한던 溶洞이 있다.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钙化岩이 화려한 钙化瀑布를 만들어 놓았다. 내려오면서 굽이굽이 钙化된 물곬은 황하의 물결을 방불케 한다. </h1> <h1> 빗속에서의 관광을 끝내고 우리는 다음 려행지를 목표로 달렸다. 산속을 빠져나오는 길은 좁은 향촌 도로다. 량켠에는 깍아찌른듯한 절벽이 있어 금방이라도 집채같은 바위가 머리위에 떨어질것만 같고 오랜 아스팔트길은 세찬 강물에 할키워 도로면이 허공에 들려있는곳이 많아 당장 꺼져내려갈듯하였다. 다행히 큰차들은 통제되여 통행차량은 많이 줄었지만 길위의 곳곳에서는 산에서 굴러내려온 락석들을 볼수 있었다. 때로는 산중턱에서 불쑥 튕겨져 뿜어나오는 자연폭포가 길위를 넘어 강으로 흘러드는것을 볼수가 있었다. 진정한 험산준령을 보았다. 저녁 여섯시가 넘어 작은 현성마을 平武县에 도착하여 주숙을 정하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온하루 긴장했던 탕개가 풀린것이다. </h1> <h1> 5월 6일. 하늘이 구멍이 난듯 비는 계속 내린다. 고속도로도 아닌 현성의 작은 길로 몆시간을 달리니 모두가 속이 괴여오른다. 중도에 인터넷에 뜬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향촌도로가 있다하여 우리는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30여공리의 산길을 달렸다. 이곳은 아직 유람객의 발길이 닿지않은 무명지이다. <span style="font-family: -webkit-standard; font-size: 17px; white-space: normal; -webkit-tap-highlight-color: rgba(26, 26, 26, 0.301961); -webkit-text-size-adjust: auto;">락차가 심한 산비탈에는 梯田이 차곡차곡 잘 가꾸어져 있다. 풍년의 가을이면 산의 단풍잎과 아담한 집들과 잘 어울려 한폭의 수채화가 그려질 곳이였다. 량켠의 절벽에서는 도처에서 폭포가 쏟아지고 있어 우리들을 깜짝깜짝 놀래우며 “야—”하고 감탄이 터져나왔다. 암벽에 뻥 하고 뚫려있는 굴 입구는 얼마나 큰지 우리는 별의별 추측을 다 하면서 웃음보를 터트렸다. </span></h1> <h1> 산끝자락까지 도착하니 村村通공정으로 만들어진 挂壁公路가 나타났다. 2006년에 98.7만원을 투자하여 만들었단다 . 이렇게 숨겨져 있는 절경을 찾아 빗길도 주저없이 따라나서는 우리는 려행을 위하여 만난 인연인것 같다. 이것으로 우리는 사천성에서 6일동안의 려행을 빗속에서 끝마쳤다. 관리가 엉망인 아미산이며 개방되지도 않은 九寨沟—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아무이상없이 호텔만 满客로 알려져 있는곳. 정말 인상적이다. 그래도 5.1절 휴가기간 관광수입이 제일 높은 곳이 사천성이란다. 몆백만명의 유람객이 우리와 같은 심정으로 사천성을 떠났을것이다. </h1> <h1> 5월7일 우리는 사천성을 벗어나 섬서로 산서로 달리기 시작했다. 섬서에서 秦岭山脉의 수십개의 동굴을 뚫고 나오니 오래간만에 태양이 보이고 날씨도 대강 개이였다. 이정도면 황하의 壶口瀑布를 볼수있겠다는 욕심으로 길을 재촉하여 더 신나게 달려왔다. 폭포의 입구 매표소에 도착하니 오후 다섯시반이다. 우리는 제일 마지막 유람객으로 표를 사고 들어갔다. 포용하는 황하의 물결소리가 먼데서 부터 들려온다. 瓶口처럼 쫄려진 곳에서 흘러내려 온다고 壶口瀑布라 명명하였단다. </h1> <h1> 황하의 포효하는 물결에 유람객 모두가 흥분되였다. 어떤이는 “大黄河”의 노래가락의 흥에 맞추어 두팔을 젓고 어떤이는 산서 미녀의 자태를 본따 나귀를 타고 붉은 앞치마를 두르고 두손을 턱밑에 받치고 사진포즈를 잡느라고 야단이다. 얼마나 웃음깡스러운지 눈물이 나게 웃었다. 우리는 폭포며 물갈퀴를 찍느라 저마다 신나게 뛰여다녔다. 壶口瀑布—정말 마음이 부글부글 인상이 깊었다. </h1> <h1> 5월 8일 우리는 국내외에 유명한 乔家大院에 왔다. 명청시기의 상업대거 乔致庸등 가족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보존하여 온 곳이다. 우리 혹은 나의 조상이 아니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흥미가 그닥이다. 문표 138원이 좀 아까울 정도이다.그래도 궁금증은 풀었다. </h1> <h1> 5월 9일 우리는 시간을 재촉하면서 북경부근의 延庆으로 달렸다. 나라주석님이 친히 개막식에 참가하셨다는 세계원예박람회를 참관하려고 새벽길을 떠나 두시간넘어 달려서 아홉시쯤에 입구에 도착했다. 대국답게 평일인데도 유람객으로 붐빈다. 입구도 몆개나되여 우리는 주차장에서 한참이나 걸어서 입장했다. </h1> <h1> 먼저 중국관을 보기로 하였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는 한시간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수 있었다. 각 省별로 전시장을 꾸렸는데 정말로 별라별 꽃이 다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口红吊兰이며 卡特兰이며 눈길을 사로 잡는다. 그외에도 이름 모를 꽃들이 많지만 이름을 표명하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긴다. </h1> <h1> 각가지 다육식물들도 눈길을 끈다. 뽈만큼 큰것도 있고 작고 이상하게 생긴것들도 꽃을 막 피기 시작한 깜찍한 모양이 요물단지처럼 다종다양하다. </h1> <h1> 처음으로 보는 꽃들이 너무 많아서 신기하기만한데 꽃 이름을 표기하지 않아서 좀 서운했다. 口红吊兰이며 卡特兰처럼 혹여 이름표를 달아준것이 있으면 관광객에 대한 배려에 감사해하며 다시 한번 머리를 돌리게 한다. 중국관에서는 정말 많은 꽃과 식물을 보았다. 하지만 국제관은 집은 참 대국답게 특색있고 후더분하게 잘 지어놓았지만 볼것은 별로였다. 전시관 전체를 거의 중국의 국화 목단으로 도배했다. 그리고는 상품전시장으로 되여있었다. 좀 실망이였다. </h1> <h1> 5월 10일 우리는 중국 대륙의 중부를 가로 질러 제일 멀리로는 신비의 도시 香格里拉까지 여덟개의 성을 지나 일만일천공리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20일 동안 우리는 전기밥솥에 흰 쌀밥을 짓고 때로는 갈비찜 때로는 장국을 맛있게 해서 점심도시락을 싸고 저녁식사는 맥주까지 곁들어가면서 가족과 같은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집밥과 고향음식이 동반하였기에 우리는 집에 대한 그리움이 없이 대장정을 무난히 마칠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기전에 벌써 명년의 自驾游계획을 세웠다. 명년 이때가 기대된다. </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