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수필</h3><h3> 걷기</h3><h3> </h3><h3> 문운룡</h3><h3> 요즘 걷기운동에 재미를 붙이고있다. 물론 전에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거의 빠짐없이 수년을 견지해오기는 처음이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휴대폰에 첨가된 위챗 보행기록 기능이 '동기부여'에 은근히 한몫 작용하는듯 했다. 가끔은 게을러져 하루이틀 빠질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날그날 남들의 보행기록이 쭉쭉 오르는 것을 보면 먼가 손해를 본다는 느낌과 더불어 일종 알지 못할 승벽심이 생기며 다시 운동화를 찾아신게 된다. </h3><h3> 건강관리 차원에서 시작한 운동으로 지극히 개인적 사안인건만 여기서도 타인과의 비교가 이루어지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게 되다니, 한 모임에 갔다가 아무개는 보행수를 늘리기 위해 휴대폰을 마구 휘두르는 '수치(數値)제조' 행위까지 서슴치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허구픈 웃음을 금할수 없었다. 문득 요즘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이 쓰이는 '초심(初心)'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무릇 무슨 일이든 이처럼 초심을 잊으면 변질되기 십상인가 보다.</h3><h3> 도심에서 적당한 걷기 코스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주변에 공원이 없는 조건에서는 상대적으로 차류량이 적고 가로수가 잘된 길을 택해야 한다. 이런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초기에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다 앞이 가로막힌 장벽에발길을 돌려도 봤고 로천시장의 인파에 묻혀 갈팡질팡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꾸준히 찾아다녔더니 류암화명이라고 관목숲이 우거지고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인행보도가 눈앞에 기적처럼 나타날줄이야! 인공물길을 따라 쭉 뻗은 것이 걷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삽시에 감동의 쓰나미가 전신에 굽이쳤다. 역시 포기를 모르고 꾸준히 공력을 들이는 자에게 자연은 이처럼 이벤트 같은 '선물'을 하는 거라고 나름 '깨우침'을 얻었다. </h3><h3> 운동 차원을 떠나 인간은 태여나 돌이 잡히면서부터 걷기를 배우기 시작해서 한생을 걸어야 되는 운명이고 보면 인생 자체가 걷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듯 하다. 지금의 비활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소시적 나는 부모가 한눈 파는 사이 어디로 잘 새였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어렴풋이나마 지워지지 않는 장면 1, 려행객들이 다 빠져나간 기차역 검표구 쇠창살을 붙잡고 서있는 나를 향해 저 멀리서 한절반 정신이 나간듯한 어머니가 황황한 모습으로 치마폭을 휘날리며 달려오시던 모습이다. 그날 아침 아버지가 외지출장을 다녀온다는 소리를 주어듣고 네댓살 어린 놈이 4-5리 상거한 역까지 '마중'갔다가 역일군들의 보호 덕에 다행이 큰 사고 없이 '모자상봉'의 장면을 연출할수 있었다. 장면 2, 부모의 감시권안에서 벗어난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직진만 하다가 길거리 참외장수의 참외에 시선이 꽂혀 길가에 아예 진을 치고 앉았는데 용케도 아버지가 이곳까지 찾아와 또 한번 미아의 신세를 면할수 있었다. 당시 발에 신었던 고무신을 두 손에 끼고 앉아 애오라지 참외만 응시하던 나한테 아버지가 참외를 사주며 뭐라고 타이르시던 모습이 영원한 기억으로 각인되여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물정 모르는 치기로 얼룩진 어릴 적의 걷기, 이런 미숙한 걸음마들이 한걸음 한걸음 쌓여 후날 튼실한 걸음걸이의 토대로 되지 않았을가? </h3><h3> 걷기운동이 건강유지에 특효가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는 도리이다. 건강관리 외에도 걷기는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음을 체득했다. 반복으로 걷는 길이라지만 어제와 오늘의 경관이 다른듯 했다. 지나는 행인들이 달랐고 벌어지는 일이 달랐다. 청아한 날 달콤한 련인들의 데이트를 보면 곁따라 마음이 즐거워지고 석양을 배경으로 손잡고 거니는 만년의 로부부를 만나면 또 숭경의 감정으로 한가슴 그들먹해진다. 모 주택단지 앞 광장에서 어제는 주차문제로 두 남자가 시비 붙어 언성을 높이더니 오늘은 그 자리에서 경쾌한 음악소리에 맞추어 통일복장까지 갖춰입은 아줌마들의 춤사위가 한창이다. 그리고 일기변화에 따라 느끼는 감수도 달라진다. 쾌청한 날씨가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면 흐린 날씨는 그 어떤 사색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선물'처럼 발견한 인공물길 옆 인행도보를 걸으면서는 계절에 따라 꽃길, 숲길, 눈길로 바뀌는 자연의 신기한 '마술'에 탄복하면서 아울러 자연의 길은 그래도 미래의 모습이 예측되지만 바로 코앞에 벌어질 일도 내다볼수 없는 것이 인생길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매일매일 겪는 이런저런 감수들이 내 삶의 내용을 풍부히 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듯 하다. 이런 감수를 바탕으로 근년에 촬영에 재미를 붙였고 글쓰기에도 활력소를 찾은듯 싶다. </h3><h3> 요즘은 걸어서 가도 될 거리를 꼭 뻐스나 지하철, 택시나 자가용을 리용하려 하는 사람이 많다. 빠른 생활절주속에서 어쩔수 없는 편승을 뭐라 한다기보다는 느긋함으로 얻어지는 일상의 깨달음 같은 것마저 류실될수 있음을 한번 문제시 삼아보는 것이다. 좀은 엉뚱하지만 옛날에 말타고 꽃구경이 부정적인 의미지로 락인찍혀 속담으로 남았다면 오늘날의 자가용 타고 드라이브 하기는 과연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을가 하는 궁리를 가끔 해보기도 한다. 현대인이 누릴수 있는 특권으로 폼 잡고 시내구경 하고 타인이 뭐라 할 사안은 아니지만 매연 뿜기고 교통 혼잡에 일조하며 신경 곤두세워 질주하기보다는 저녁식사후 여유로운 걷기로 주변 사물을 둘러보며 그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해나감이 오히려 더 멋져보임은 단지 나 개인의 고리타분한 견해일뿐일가? </h3><h3> 걷기운동을 하면서 가장 가시적인 성과로 뚜렷이 꺼진 배살을 꼽지 않으수 없다. 크지도 않은 키에 둥글해진 배살이 한때 고민거리였다. 모임이나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배를 슬쩍 안으로 걷어들이고 있으려니 무등 괴로웠다. 그 부담거리가 걷기를 하며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에도 수없이 도전했던 배까기가 이번에 효험을 볼수 있었던 것은 바로 꾸준한 견지 때문이 아니였나 싶다. 이전에는 약간 바람이 분다고 쉬고 눈보라가 날리다고 쉬고 또 피곤하다고 쉬고 술먹는다고 쉬고 이래저래 쉬다보니 쉬는 날이 걷는 날보다 많았다. '견지가 곧 승리다'란 말도 있듯이 걷기뿐 아니라 인생길 갈래갈래에서 이 근성을 바탕으로 한 꾸준함이 곧 성공의 '령단묘약'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h3><h3> 걷기운동으로 몸이 좀 가벼워지자 슬슬 욕심이 생길 때도 있다. 그래서 보행수를 콲 늘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기 십상이다. 관절에 무리가 생겨 후날 걷기에 불편을 초래하니말이다. 그래서 좀 잘 나간다고 으쓱거리지 말라고 했던가! 교만심에 대한 일침이 아닐수 없었다.</h3><h3> 초기에는 이미 시작한거 이번에는 중도포기 말아야지 하는 의무감에서 약간은 자신을 강박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하루일과에서 걷기에 나설 시간이 은근히 기대되고있다. 오늘은 또 어떤 경물이 새롭게 눈에 띄일가, 또 어떤 사연과 접할수 있을가 등의 궁금증을 지니며 말이다. 아마 나도 이제야 약간이나마 걷기의 묘미를 알아가는가보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