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

云龙

<h3>수필</h3><h3> '덤' </h3><h3> 문운룡</h3><h3> 덤 같은 인생, 덤 같은 삶, 요즘 자주 들을수 있는 말이다. 그만큼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살아갈 앞날을 그려보며 인생과 삶에 대해 반성하고 사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으로도 풀이되겠다. </h3><h3> 사전에는 덤을 제 값어치의 물건 밖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이라 했다. 지난 가을 그 아찔한 사고로 아직도 깨끗이 사그러지지 않은 머리 한쪽의 혹을 만질 때마다 나는 그날 이후의 삶이야말로 나한테는 바로 '운명'이 내린 '덤' 같은 선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날 고중동창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소가툰, 심양의 여러 식당을 거쳐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귀가하다 2층 복도까지 올라와서 그만 필림이 끊겼고 이어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아빠트의 새벽고요를 깨뜨렸다. 이튿날 침상에서 깨여보니 왼쪽 머리에 달걀만한 혹이 생겨 가까스로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를 부축하느라 낑낑거리던 집사람의 얼굴이 시야에서 클로즈업 되여 가물거리다 서서히 사라지던 정경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그날 밤 사고현장을 감안했을 때 약간의 위치변경이 있었서도 머리가 뾰족한 모서리에 부딛치지 않았으면 몸이 층계아래로 굴러떨어져 경하면 뇌진탕이요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잃었을 것이라는 것이 사후 집사람의 설명이였다. 물론 더러 과장도 내포되였겠지만 스스로도 이번 사건은 내 생애에 몇손가락 안에 꼽을수 있는 '사변'감으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h3><h3> 과음이 여러모로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정작 술상에 앉으면 리지적인 생각이 주향에 취해 무너진다는 것이 문제다. 하지만 인간의 이러한 실수를 '운명'이 과연 번마다 귀엽게 바주며 '덤' 같은 선물을 내릴지는 더더욱 문제다. 요행 차례진 한두번의 '덤'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한 인생의 행로와 결과가 좌우될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번 '사변'을 통해 하게 됐다.</h3><h3> 물론 실수가 무섭다고 인생을 살며 과감한 도전마저 버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학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 자전가가 딱 한집 있었는데 하루는 그 집의 애가 자전거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주동적으로 권유해왔다. 처음 좀 무섭긴 했지만 나는 도전하기로 작심했다. 지금 보면 한낱 자전거 배우기에 불과했지만 당시로서는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 며칠을 동네에서 돌다가 자신감이 생겨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 나섰는데 그만 달리는 자동차와 접촉사고를 낼줄이야! 불행중 다행으로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자전거 앞바퀴가 좀 비틀어졌다. 어쩌면 그때 멀쩡할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운명'이 소년의 차실을 귀엽게 봐줘 선물한 '덤' 같은 것이 아니였나 싶다. 아무튼 그 덕에 나는 그후 쭉 자저거를 타고 편리하게 출퇴근을 할수 있게 되였고 딸애가 소학을 다닐 때도 역시 그 자전거로 '공주님'을 '모셔'가고 '모셔'오며 오늘날의 자가용 구실을 착실히 했다. 이렇게 '운명'은 또 '덤'같은 선물을 '하사'함에 있어서 마냥 린색하지 만은 않은 것 같다. 만약에 '운명'이 인간의 실수를 용남못해 가차없이 벌만 내리고 덤 같은 선물을 '원천봉쇄'한다면 인간사회가 과연 오늘과 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수 있었을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도 아마 그래서 성립되지 않나 싶다. </h3><h3> 어쩌면 나의 삶 자체가 '덤'으로 얻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네댓살 때의 일이라니 나는 기억을 못하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어느 꽃피는 봄날 나는 오히려 봉오리도 펴보지 못한채 수장(水葬)당할 번 했다고 한다. 동네 어느 집에서 물이 잠긴채 땅에 묻힌 빈 김치독을 뚜껑까지 덮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두었는데 '봄경치에 취해서' 그랬는가 혼자 밖에서 놀던 내가 그 김치독에 홀랑 빠질줄이야! 천운이 닿았는지 그때 마침 동네와 이웃해있는 방산(房産)기업 창고 보관원 로인이 이곳을 지나게 되였다. 로인은 처음에는 슬쩍 지나치다가 웬 물구뎅이에서 기포가 계속해서 샘솟듯 하는게 이상해서 다시 돌아와 손을 슬쩍 밀어넣었더니 놀랍게도 아이의 머리가 잡히더란다...그렇게 그때 나는 '한번의 실족(失足)으로 천고의 한'을 남길번 하다 '귀인'의 덕으로 지금까지 '덤' 같은 삶을 연장중에 있다. 후에 어머니로부터 당시 그 로인을 찾아가서 크게 '사례'를 하지 못한 것이 한뉘 마음에 걸린다고, 그때는 왜 그렇게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았는지 하고 외우시는 것을 여러 번 들은적 있지만 나는 '덤'으로 연장할수 있은 나의 삶을 남 부끄럽지 않게 사는 과정이야 말로 그 로인을 비롯한 내 인생에서 만난 많은 '귀인'들에 대한 최상의 보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위인의 업적과는 거리가 멀고 요즘 '어른' 취급 받는 사업가나 기업가도 되지 못했으며 한 분야에서 당당히 무슨 가(家)로 대접 받을 만한 성과도 이룩하지 못했지만 나름 노력을 기울였고 어떤 상황에서든 정직과 성실 만은 잃지 않으려 자신을 편달해왔기에 지금까지의 삶이 떳떳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h3><h3> 혹자는 황당하고 억지 소리로 취급할 지 몰라도 나는 가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여난 사실이 무엇보다 큰 '덤'이 아닐가 하는 엉뚱한 궁리를 해보기도 한다. 불경스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어찌어찌 해서 시초에 지금의 짝과 인연이 닿지 않아 좋아하던 '첫사랑', 혹은 다른 누구와 결혼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이 세상에 과연 지금의 '내'가 존재했을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출생만큼 은혜롭고 경이로우며 축복받을 만한 '덤'이 이 세상에 또 있을지 싶다. 더불어 부모님의 '영명'하고 '정확'한 력사적인 선택(결합)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두고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있다. </h3><h3> 사람들은 흔히 '덤'으로 얻어진 것을 상대적으로 덜 노력을 들이고 공짜로 생겼다고 취급해서인지 별로 소중히 여기지 않고 랑비하거나 막 대하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실은 이 '덤'이란 것은 한 인생에게 차례질수 있는 몇번 안되는 기회이고 '가르침'이며 교훈일 것이다. 아찔한 사고에서 운좋게 별일 없었다고 자신의 그릇된 습관과 착오적 작법을 계속 고집하며 개변을 시도하지 않을 경우 필경 '덤' 대신 '천고의 한'이 앞에서 기다릴 것이다. </h3><h3> 세상 모든 사물은 모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법, 이 '덤'이란 것도 우연히 생기는듯 하면서도 실은 어떤 필연의 요소가 작용하지 않나 싶기도 한다. '운명'도 좋고 '하나님'도 좋고 그래도 어느 정도 아직은 기회를 줄만하고 그 잘못이 더는 용서못할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주는 인생길에서의 '옐로카드' 같은 것은 아닌지? </h3><h3> 바란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운좋게 나타났을 때는 또 당연한 일로 간과하지 말며 그 어떤 '경종'으로 자각한다면 좋을 법한 인생길의 '덤', 한번 삶의 자세를 정검해볼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닌가 한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