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

云龙

<h3>수필</h3><h3> '똘이'</h3><h3> 문운룡</h3><h3> '똘이'는 얼마전 출생 둬달만에 우리 집으로 온 강아지 이름이다. 견종이 '비웅(鼻熊)'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주둥이가 긴 등 여러 특징이 뚜렷하지 않고 대신 이상하게 한쪽 귀가 뒤로 잘 말리며 '싼'티 나는 모습을 보여주어 처음부터 나는 녀석의 '근본'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도 솜뭉치 같은 쬐꼬만 놈이 첫대면부터 발에 살살 감기며 하도 살갑게 굴어 여간 귀엽지 않았다.</h3><h3> 나도 전에부터 티비에서나 길 가다 보며 강아지가 귀엽다고 여겨오긴 했지만 우리 집 실내에서 직접 키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위생적이고 시끄럽고 비용 들어가고...리유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집사람은 더더욱 반대였다. 집청소를 하며 웬간한 물건은 버리기를 좋아할 정도로 거치장스러운 것을 싫어할 뿐만 아리라 휴각이 개코 이상으로 발달하여 웬만한 냄새를 참지 못해 했다. 5년전 딸애가 친구가 일본 출장 다녀오며 기르던 애완견을 한주일간 부탁한다며 슬쩍 제 엄마의 의중을 떠봤을 때도 집사람은 처음 단칼로 거절했다. 사정이 딱하고 또 고작 한주일이라니 호기심도 작동하고 해서 내가 옆에서 바람잡이 하여 요행 데려오게 된 것이 우리 집과 애완견과의 첫 인연 혹은 인견연(人犬緣)이였다.</h3><h3> 그때 '해피'라고 불리던 녀석이 상대적으로 '고급' 견종이였는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격'이 있게 행동하였다. 녀석은 첫날부터 대소변을 신통히도 가렸는데 낮에는 물론 한밤중에도 배변판이 놓인 화장실로 스스로 찾아들어가서는 볼일을 마치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군 하였다. 식사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끼 차례지는 사료를 먹고나서는 별로 보채지도 않았다. 저녁 우리가 티비를 보면 조용히 발녘에 붙어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고 아침이면 앞발을 척 침대에 걸치고 사람과 눈맞춤을 하는 것으로 문안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는 짓이 예뻐서인지 외모도 품위있어 보였다. 한주일만에 제집으로 돌아 갈 때는 정이 퍽 들어 저런 강아지라면 얼마든지 집에서 키울만 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였다. </h3><h3> 근데 이번에 정작 맞이하게 된 '똘이'는 '해피'와 너무 달랐다. 녀석은 집에 들어서자 아무데나 대고 시원히 볼 일을 보았고 여기저기 다니며 무엇이나 주둥이를 들이대고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였다. 후에 알고보니 그때 '해피'는 10개월쯤 되는 성숙견에다 훈련을 거친 터였어라 '똘이' 같은 아기견과 비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였다. 그래도 나는 처음 이 두 녀석의 차이가 하나는 혈통이 순수한 고귀품종이고 하나는 '근본'없는 잡종 때문일 거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지어진 '똘이'란 이름이 '똘아이'와 비슷해서 똘아이처럼 노나 싶어 개명할가도 생각해봤지만 별 신통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만 두었다.</h3><h3> 근데 날이 감에 따라 녀석에게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차 대소변을 여기저기에 비치해둔 배변지에 누기 시작했고 배변지도 혹시 몰라 여러 곳에 나두던 것을 한 장소에 고정하기에 이르렀다. 녀석은 배변지에 소변을 볼 때마다 격려의 차원에서 사료 몇알씩 주었더니 이젠 습관이 되여 주지 않으면 쪼르르 달려와 발을 핥고 낑낑거리며 왜 자기의 소변행위를 보상 않느냐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마치 누구를 위해 배설을 해주는 양 녀석의 그런 모습이 가소로우면서도 귀여웠다. 그러면서 녀석은 그래도 '행운아'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하고 억울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한둘뿐인가! </h3><h3> 녀석에게서 교정해주고 싶은 행위중 또 하나가 끌신 물어가는 버릇이였다. 집에 거실용, 주방용, 화장실용 끌신들이 따로 준비되여 모두 제 위치가 있건만 '똘이'가 온후부터 이 끌신들이 질서가 뒤쭉박쭉 되버렸다. 화장실용 한짝이 주방에 나뒹구는가 하면 주방용은 거실에 내팽겨져있었고 나머지 절반 이상은 '똘이' 둥지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녀석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끌신 한짝을 주둥이에 문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힐끔힐끔 눈치를 보아가며 줄행랑을 놓군 했다. 그리곤 득의양양해서 마치 큰 사냥감이라도 하나 얻은 양 한쪽 구석에 엎드려서는 물고 뜯고 난리였다. 후에 그것이 이가 돋으며 간지러워서 하는 행위란 것을 알게 되였다. 처음 갓 와서도 그래서 입에 닥치는대로 물어뜯었었다. </h3><h3> 시초에는 녀석의 '별난 집착'을 꼭 고쳐보겠다며 녀석이 끌신을 물어가면 빼앗아 제 위치에 도루 갖다놓으며 고성으로 훈계도 하고 가끔은 '체벌'로 한두대 쥐여박기도 했지만 녀석의 집착은 고쳐지지 않았다. 후에 사유를 달리해보니 그 끌신들을 꼭 위치들을 정해놓고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집착인듯도 싶었다. 약간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신은 신을 때 찾아 신으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미물인 강아지를 변화시키기보단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모든 일을 자신의 립장에서 생각하고 뭐든지 자신의 편리를 우선 순위에 놓기에 앞서 한번쯤 상대방(그것이 인간이든 미물이든)을 먼저 배려하는 아량도 지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h3><h3> 돈 한푼 내지 않고 공짜로 안아온데다 생긴 모양새가 원 주인집에서 주장하는 견종의 특징이 선명하지 않아 녀석이 출신이 고귀하지 못하고 비천해서 아이큐가 떨어질 거라는 나의 의심과는 달리 녀석은 영특한 구석이 있었다. 녀석은 누구든 밖에서 방금 들어오는 사람에 한에서는 두길 세길 뛰여오르며 격하게 반기였고 집에서 외출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그가 평소 자기를 가장 귀여워했던 사람일지라도 엉뎅이를 돌리고 앉아 자기가 한던 놀이에 열중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가는 님 붙잡지 않고 오는 님 화끈하게 맞는다'는 녀석의 이런 '행위준칙'에 처음은 웬 영문일가 궁금했고 은근히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꼼꼼히 따져보니 녀석 역시 리해타산에 밝았고 그 밑바탕에는 '실리주의'가 깔려있음을 알수 있었다. 출생 수개월의 짧은 견생(犬生)에 녀석은 벌써 '떠나는 님' 붙잡고 매달려봐야 코고물 하나 떨어지는 것 없고 그래도 '오는 님'에게 잘 보여야 개껌 하나라도 차례짐을 명확히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견생이든 인생이든 처세술은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세상에도 '사람이 떠나니 차잔이 식는다(人走茶凉)'는 말이 있지 않은가! </h3><h3> 가끔 말썽을 일으킬 때면 저 녀석을 계속해서 거둬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다가도 인간에게서 흔치 않는 장점을 보여줄 때는 또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벗 삼아 한지붕 아래서 지내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서 보기 힘들고 감추어진 진실한 모습들을 녀석들은 려과없이 보여주고 사람들은 또 그런 거짓없는 모습에 심신의 피로를 풀고 정식적으로 위안을 받지 않나 생각해본다. </h3><h3> 내가 '똘이'를 보면 편안해지는 리유중 하나가 녀석이 '뒤끝'이 없다는 것이다. 가끔은 녀석의 친절과잉이 귀찮아 발로 툭툭 밀쳐내며 호의를 짓밟는 나의 '무례'에도 녀석은 앵돌아지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h3><h3> 녀석은 집사람들이 휴식일이건 공휴일이건 상관없이 아침 사료먹을 시간이면 에누리 없이 거실 제 둥지에서 빠져나와 침실문을 빡빡 긁으며 늦잠자는 사람들을 깨웠다. 체면따위를 가리지 않고 본인 의사를 솔직히 표현하는 이 역시 녀석의 장점으로 꼽지 않을수 없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괜히 남사정 봐주다가 배를 곯으면 자신만 손해이니말이다.</h3><h3> 처음 '똘이'를 두고 '근본' 없느니 '똘아이'니 막말을 하고 타견과의 공정성 떨어지는 비교를 함부로 한 것에 대해 요즘 슬슬 미안한 마음이 갈마들기 시작했다. </h3><h3> 충분한 관찰과 기다림이 없이 속단하고 편견과 아집의 수렁에 쉽게 빠지는 행태 역시 인간의 추악한 모습중 하나가 아닌가 반성해보기도 하면서...</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