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 2018년 6월 26일 우리는 엄마를 모시고 청도로 기차려행을 떠났다. 엄마의 건강때문에 비행기를 고집했지만 기초생활보조가 취소될까 우려되여 엄마는 완강히 거부했다. 이렇게 저렇게 고려하던 끝에 우리는 엄마의 요구대로 기차를 선택했다. 열세네 시간을 시달렸지만 엄마는 구경잘했다면서 괜찮다한다. 나와 윤정이도 큰 시름을 놓았다. 기차역에서는 기분좋게 인민페 6원짜리 전신안마까지 했다. 기분이 좋으니 엄마도 피로가 적게 쌓인것 같다. </h1> <h1> 기차로 이동하자니 곤난이 많다. 당날도착은 거의 열네시간 기차에서 보내야한다. 윤정이와 내가 고집하고 기차에 올랐지만 마음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겠다. 기나긴 기차려행에서 엄마는 지쳐가지만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때로는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장난기를 발동하여 우리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어 감사하면서도 눈물이 왈칵할때도 있었다. 기차를 타니 산천경개 구경잘했다고 고맙게 말씀까지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h1> <h3> 이튿날 오후 우리는 집 근처의 세기공원으로 산책나왔다. 드넓은 호수가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만끽하면서 더위를 식혔다. </h3> <h1> 수양버들이 늘어진 호수가에서 련인들의 찰싹이며 노젓는 소리에 맞추에 지종지종 지저귀는 참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엄마와 같이 있을수 있는 이시각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h1> <h1> 윤정이가 좋은 가이드가 되여서 엄마를 즐겁게 만든다. 집까지 마련해놓고 연길로 돌아가는 윤정이를 엄마는 마냥 못마땅해 하신다. 인연을 따라 사랑을 찾아 가는 애한테 한소리 하실때마다 퉁을 주지만 엄마는 때때로 못 박는다. </h1> <h1> 엄마의 건강때문에 우리는 많이 다니지는 못하였지만 커피점도 가고 공원에도 가고 쇼핑도 하고 집에서 미용도하고 하면서아무튼 여자로서 할수있는 줄거움은 만끽하면서 하루하루를 유쾌히 보냈다. 이제 엄마가 계시지않을 먼 옛날에는 좋은 추억이되여 우리의 마음을 적셔줄것이다. </h1> <h1> 몸은 편치않으셔도 때로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웃음을 자아낸다. 저녁의 한국과 독일의 축구전을 보지못해 안달이기에 저녁에 우리는 청와대온천으로 갔다. 열시부터 시작된 축구전은 상반전까지 보았는데 규정으로 하여 텔레비죤을 끊는단다. 할수없이 나와 엄마는 핸드폰으로 후반전을 보았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한국팀이 0:2로 독일팀을 이겼다. 정말 볼만한 경기였다. </h1> <h1> 사우나에서 어제밤을 보낸 우리는 아침은 맛집을 찾아가서 죽에 만두를 먹었다. 식후 점심거리로 수산물시장에 갔다. 알이 꽉 찼다는 면보게(面包蟹)에 바다가재며 간장게장용으로 작은 계를 샀다. 우리셋 모두가 수산물을 좋아하는지라 점심밥은 뒤로하고 수산물로 만끽했다. 말할나위없이 맛있게 잘 먹었다. 인민페 250원이 아깝지않다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저녁에는 영수네 부부가 우리집에 와서 맛있는 연변소고기 감자갈비탕을 잘 드시고 갔다. </h1> <h1> 오늘은 6월 29일 집조나오는날까지 이제도 몆일 더 있어야겠는데 엄마도 나도 무료에 지쳐 싫증난다. 낮이면 웃집 장식소음에 속이 들볶인다. 할수없이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환경이 좋은 커피숍에 가서 둬시간 에때웠다. 팔십을 바라보는 엄마지만 이젠 제법 커피숍에 적응되였다. 둘째딸의 덕분인것이다. 연길에서는 백화부근의 스타벅스에가서 두세시간 에때운다. 참 좋은 새상이다. </h1> <h1> 청도의 날씨는 정말 무덥다. 33도의 고온이지만 우리는 점심은 맛집을 찾아 "명동우동 " 으로 갔다. 열두시가 넘은 늦은 점심시간이지만 사람들이 꽉 차있다. 이십분가량 기다려서 우리는 제각기 면을 시켰다. 맛은 괜찮은것 같다. </h1> <h1> 오늘은 청도에서 나흘째 되는 날이다. 엄마 건강때문에 멀리 나갈수도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청양근교에 있는 澜湾예술공원으로 나왔다. 점심은 간단한 주먹밥으로 에때우고 나무그늘아래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몆시간은 족히 잘 보냈다. 강에서 낙시질이 생각보다 잘 되고있다 손이 근질거린다. 오늘 엄마는 바지를 꺼꾸로 돌려입고 나왔다. 치매의 증상은 점점 더 나타나고 있다. 나 참 진퇴량난이다. 예문이도 내 도움이 필요하고 엄마도 내가 곁에서 지켜야하고 윤정이일도 말끔히 내가 정리해야겠는데 나한테 주어진 시간은 여유가 적다. </h1> <h1> 7월 2일 엄마와 같이 청도에 온지 일주일이 되였다. 몸이 불편한 엄마는 하루하루 너무 지루해하며 힘들어한다. 엄마와 단둘이 먼저 연길로 돌아갈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윤정이 홀로 두고 안가겠단다. 우리는 5.4광장부근으로 일박이일 려행을 하기로하고 민박을 정했다. 시원한 바다바람을 맞으며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을수 있는 해경집으로 정했다. 엄마도 기뻐하신다. </h1> <h1> 우리는 우아한 커피점에서 더욱 관건적인 대화를 나눌수 있어서 웃음이 많았고 친구처럼 어깨곁고 마음껏 다닐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h1> <h1> 몆메터에 한번씩 앉아쉬면서도 우리는 기나긴 해안선을 따라 많이 걸었다. 저녁은 백종원의 추천으로 유명해졌다는 해물교자집에서 해결하고 겨우 야경을 구경할 시간까지 기다렸다. 고층건물의 벽면을 산데리아 불빛으로 꾸며놓은 5.4광장은 유람객으로 붐비였다 . 축구팬인 엄마는 야경구경보다 축구를 볼수있다는것에 더 기뻐하신다. 열시부터시작되는 巴西와 哥伦比亚대결을 밤늦게 까지 구경하셨다. </h1> <h1> 이튿날 아침 윤정이와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영수네 집으로 가서 그들의 열정적인 초대를 받았다. 내가 좋아한다고 비싼 야생전복과 해삼을 회쳐서 오래만에 회포를 나누었다. 비록 남편의 친구였고 동창이였지만 이젠 정말 나의 진정한 지기로 되여간다. </h1> <h1> 7월4일 예정보다 빨리 집조가 나왔다. 이튿날 아침 귀로에 올랐다. 새벽기차여서 엄마도 많이 피곤할듯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여서인지 정신이 충만되여있다. </h1> <h1> 7월 12일 나는 우리스키팀을 따라 서부려행을 떠났다. 동생들 눈치도 많이 보이고 기분나빠하는 엄마를 떼어넣고 가기도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회를 영원히 놓칠것만 같아서 떠나기로 했다. 매사마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는것이 이제 받아야할 수술의 압력일것이다. </h1> <h1> 엄마는 건강회복쎈터에도 다니고 기린병원에 침구치료도 다니지만 별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어린애가 되여간다. 나에대한 집착도 더 심해간다. 정말 걱정이다. 이국면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가 머리 아프다. 정상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에 대하여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도 병이 더 심하기전에 모든걸 원만히 해결해놓고 수술을 했으면하는 바램이다. </h1> <h1> 8월13일 로인절을 계기로 비암산에 갈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길 떠나는 날이면 새벽부터 바빠진다. 엄마의 분주한 걸음때문에 우리는 웃음이 나온다. 이것도 엄마가 계시기에 더 보태여진 웃음일거다. 엄마는 재활쎈터에 부지런히 다닌 덕분에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투정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냥 이정도로라도 오래 오래 앉으셨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건강한 조건하에서 — 요사이 머리가 너무 열이 난다. </h1> <h1> 8월 30일 엄마는 동풍 독보조를 따라 비암산으로 산보를 떠났다. 여덟시까지 동북아앞에 모이기로 했다는데 일찍부터 바삐도신다. 어린애들처럼 많이 들떠있다. 도시락은 김밥에 구운오리 돼지귀와 혀를 샀다. 농촌사람은 고기를 반가워하신다며 엄마가 짠 메뉴이다. 저녁에는 연길에 돌아오셔서 랭면까지 드셨단다. 기분이 엄청 좋았던같다 . 이런 모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h1> <h1> 9월8일 엄마는 아침 일짹 일어나셨다. 나는 사우나에 가려고 했고 엄마는 고추사러 시장에 가려했다. 엇갈리는 주장앞에서 나는 뒤로 물러서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다섯시반 나와 엄마는 장백로에 있는 천지시장에서 룡정시장으로 돌아서 고추를 샀다. 동풍에 도착하니 일곱시다. 한 둬시간 썰고 널어놓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졌다. </h1> <h1> 8월 20일 엄마는 고향분들을 모시고 비암산으로 가자한다. 꽃을 특별히 좋아하시기에 꽃길을 걷겠다고 한다. 모두가 고향분들이기에 나도 즐거웠다. 애들처럼 좋아하고 수다도 많이 떤다. 점심은 닭곰집에 안배했다. 비록 흐리고 오후는 비가 쏟아졌지만 로인들은 기뻐서 난리다. 가고싶을때 종종 찾으면 내가 기꺼이 복무하겠다고 약속했다. </h1> <h1> 9월18일. 래일이면 새집으로 이사간다. 혼자 앞뒤로 뛰여다니는 내가 안쓰러워 엄마는 변변찮은 몸으로 열성을 내서 짐을 싸고 있다. 새집에 가서 엄마는 어떻게 변할까 기대가 크다. 한편 엄마는 가까운 친척 모두에게 “우리 19일에 이사하오” 하면서 알린다. 이틀후면 엄마의 생일인데 참 난처하다. 래일은 가족의 찬치가 되여야겠다. 나도 참 힘든데 별수가 없게 되였다. </h1> <h1> 9월 21일 엄마의 생일이지만 강석이가 멀리에서 비행기도착이 늦어져서 하루 미루어서 쇠였다. 엄마는 매우 즐거워하신다. 강석이가 가져온 포도주도 퍼그나 마셨다. 발길을 끊었던 삼촌 내외도 왔다. 엄마가 마음이 많이 풀리시여 받아들이여 다행이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어색하고 멋적게 생각되면서 심가가 많이 불편하다. 앞날이 얼마남지 않은 로인들이기에 눈 딱 감고 하루 지나기로 약속했다. </h1> <h1> 새집 이사한지 일주일이다. 엄마한테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재활쎈터에서 뻐스선로를 타고 혼자 집으로 오시는가하면 오후 반나절 집에 혼자 계시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주무실때 방문을 열어놓고 쉬시던것이 오늘저녁은 문을 꼭 닫고 쉬신다고 들어가셨다. 윤정이도 나도 몹시 놀랐다. 정말 천지개벽이다. </h1> <h1> 10월 2릴. 우리는 지인의 안배로 사과배따러 왔다. 엄마는 당년의 사과배 재배가 생각나서 신나한다.솔밭을 따라 과수원으로 가는길에서 자신이 따라가도 괜찮나 ? 당년에는 사과배를 어떻게 땃는데하면서 쉴새없이 이야기하신다. 넘어라도 지실까봐 길까에 앉아있어라니 모르는 사람이 보았으면 사과배밭에 와서 사과배한알도 못따는 등신이 왔는가하면서 웃음거리를 만들겠냐며 신나게 사과배를 딴다. </h1> <h3> 10월 3일 우리집에 큰이모 작은이모에 이모부까지 왔다. 너도 나도 화토치기에 열심이다. 이렇게 다섯분이 같이 놀수있는 기회는 손가락으로 꼽을지경일거다. 정말 열성이다. 하루 련 여섯시간이상씩 논다. 나는 감기때문에 좀 힘들지만 로인들을 위해 할수있어 행복하다. 소고기국에 호박죽 세치네탕까지 만들어놓기만하면 작은 이모가 차려서 대접한다. 신체가 좋치않은 이모가 많이 힘들꺼다. </h3> <h1> 작년 11월18일 엄마가 쓰러져서 만 일년하고도 한달이 지났다. 엄마의 끈질긴 노력으로 엄마는 많이 회복되여 간다. 이제는 재활쌘터로 가는것을 한가지 필수과로 생각하면서 비오나 눈이 오나 하루라도 빼지않고 갈려고 한다. 하지만 사유만은 회복이 불가능한것 같다. 점점 어린애사유로 변하고 있다. 당분간의 눈앞에 자기생각만 있지 기억력은 점점 못해가고 있다. 그렇게 명석하던 엄마가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한번 로년 치매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심각하게 느끼게 되였다. 많이 불편한 엄마이지만 엄마가 있기에 우리자매는 웃을 일도 많다. 북경에 있는 둘째가 시어머님이 편치않으셔서 계속 들락날락하기에 나는 아주 바삐 돌지만 엄마와 화토치고 식사하고 고담하면서 얼마나 많이 웃는지 모르겠다. 엄마때문에 많이 행복한 웃음을 웃는다 . 부디 이정도로 오래오래 앉으셨으면 좋겠다. </h1> <h1> 1월15일 나는 엄마와 같이 시루떡을 만들었다. 엄마는 언녕부터 둘째딸이 와있는동안에 폭신폭신한 시루떡을 해보고 싶어했다. 나는 많이 보아는 왔지만 직접해본 경험이 없기에 한번 만들어볼 욕심도 생겼다. 어제저녁 쌀을 불렸다가 아침에 가루를 내여서 온 오전 엄마의 잔소리와 가르침속에서 시루떡이 완성되였다. 아주 맛있게 된것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폭신폭신 괜찮게 잘 되였다. 다음에는 나 혼자서라도 맛있게 할 자신이 생겼다. 쓰러졌던 엄마가 그래도 이정도로 회복되였기에 가르침을 받을수 있어서 감사했다. </h1><h1><br></h1> <h1> 설을 쇠고 보름을 쇠였다. 채숙이 시어머님이 편치않으시고 돌아가시기까지 연길에 있었기에 집안은 피곤할 정도로 북적이였지만 엄마는 화투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때로는 심술굿은 어린애로 변하여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오래만에 딸 셋을 가까이에 두고 있는 엄마도 너무 행복해하신다. 정말 천지신명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h1> <h1> 3월 16일 아침 .설이 지나고 생일이 많고 모임이 많아서 바삐 돌다보니 로인들이 우리집에 모인지가 꽤나 오래되였다. 여덟시에 출발하여 이모 고모 큰마다매를 싣고 오래만에 드라이브로 신광으로 물 길으러 갔다. 온 겨울 집에 갇혀있던 큰 마다매가 너무 좋아서 흐흐한다. 이제 몆년 더 살아계시겠는지 걸음도 비틀어져서 거동이 참 많이 불편하다. 이틀간 주무시면서 화토치기로 시간을 보낼것이다. </h1> <h1> 오늘은 3월 28일이다. 설부터 3.8부녀절까지 지나고 나니 많이 홀가분해졌다. 오늘은 우리스키팀의 최영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왜서인지 내가 눈물이 쏟아졌다. 로양원에 보내놀고 가슴아파 목이메여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엄마를 보낸 친구의 심정이 내 마음에 닿으면서 눈물샘을 터져놓았다. 예약도 없이 나한테도 엄마를 보내야 될날이 오겠지하는 슬픔을 감수랬다. 때로는 내가 신경이 사나와지면서 엄마한테 많이 서운하게 한다. 정말 먼 훗날에는 나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남을것이라는 번연히 알면서도 정말 엄마한테 미안하다 </h1> <h1> 오늘은 5월29일이다. 엄마는 꾸준히 건강쎈터에 다닌탓에 많이 좋아졌지만 때로는 심술굿은 로인으로 때로는 천진한 어린애로 되여버린다. 오늘도 바람이 세차게 불지만 오후에 고사리 캐러 가겠는가하니 좋아하시며 따라나선다. 무조건 차에 싣고다니면 좋아하신다. 두시간쯤 돌고나니 집으로 가시잖다. 앞뒤로 차를 타고 다니는것이 그렇게 즐거우신것같다. 사진을 찍어서 동생들한테 보내자니 싫다시며 안질을 아래로 내리시운다. 그래도 머리는 잘 돌아가시는 편이다. </h1> <h1> 6월22일. 우리 윤정이가 결혼하였다. 윤정이의 결혼을 핑계로 우리자매는 원없이 드레스도 입고 한복도 입고 청바지도 입고 하면서 거금을 들여가면서 엄마를 모시고 원없이 사진을 찍었다. 수십년을 한가족으로 살면서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가족사진 한장 없었다. 비록 빈자리가 많치만 우리 자매에게는 엄마를 모시고 찍는 가족사진 엄마를 모시고 다니는 려행이 유일한 소원으로만 남았다. 이제 엄마의 건강이 더 좋아지시면 멋있는 려행도 한번 떠나고 싶다. 잊지못할 추억을 남기고 싶다. </h1> <h1> 오늘은 8월2일. 오후 낮잠을 잘려는데 엄마가 모욕하러 가잖다. 열흘전 모욕갔을때는 별일 없던 엄마가 오늘엔 이십센치높이의 돌층계를 오르지 못해 주춤거린다. 행동으로 보나 사유로보나 점점 더 심각해진다. 내 꽁무니 따라나서면 전화도 가방도 갖지않고 달리는 차속에서 끝없이 이야기하신다. 무조건 행복한 얼굴이다 때로는 엄마이지만 귀엽기까지 하다. </h1> <h1> 오늘은 로인절이다. 어제저녁부터 옷을 무얼 입을까 고민하다가 우리가 추천하는 원피스는 기어코 입지않고 검은 옷을 입고 갔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오후까지 계속 내린다. 엄마는 점심식사가 끝나자 데릴러 올만한가고 전화왔다. 물론 된다고 모시러 갔더니 곁에 있던분들이 엄마를 가정에서 사령원이라 하더라면서 무척 기뻐하신다. </h1> <h1> 오늘은 추석 이튿날이다. 엄마가 요사이 정신안정제약을 의사처방에 따라 바꾸었는데 많이 불안히다. 너무 맥이 빠진것 같아서 여쭈었더니 약 자체가 이렇케 사람을 펀 하게 머저리 만드는것이 아닌가고 한다. 비록 많이 무표정으로 덤덤히 말씀하셨지만 나는 눈물이 왈칵 솟는다. 총명하신 우리 엄마 자아판단하신것이 너무 꼭똑하신거였다. 의사와 의논하고 반으로 줄이기로 하였지만 계속 멍한 상태다. </h1> <h1> 오늘은 10월 20일이다. 엄마는 위이신에서 오토고 일식집 광고를 본 모양이다. 막내딸과 아침부터 연길에 오토고 일식집이 있다메? 하더란다. 막내는 엄마가 일식을 자시고 싶은 모양이라고 모시고 갔단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짜팬을 당했다하면서 가슴아파한다. 광고보다 너무 아니더란다. 맛도 없으면서 비싸기는 엄청 비싸 380원 던지고 왔단다. 그래도 가보고싶은데로 가보았으니 좋은거 아닌가고 생각한다. 막내가 수고했다. </h1> <h1> 갑자기 엄마가 나와 예문이 새벽수영장으로 가는데 따라가겠단다. 새벽 네시반에 나가는데 혼자 있으면 안되는가 하니 막무가내로 혼자 못있겠단다. 별수없이 이틀아침 모시고 나갔다. 너무 무리였다. 여섯시에 돌아와서 다시 건강쎈터에 가자니 나도 함들고 엄마도 지치고 포기하고 말았다. 엄마는 당신을 모시고 다니는게 창피해서 그런가 한다. 정말 어이없다. </h1> <h1> 오늘은 2020년 5월 1일이다. 엄마와 간만에 드라이브를 떠났다. 진달래 살구꽃이 만발하고 날씨도 화창하다. 하지만 엄마는 별로인듯 하다. 많이 힘든 모양으로 차에서 내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꽃을 더없이 좋아하던 엄마인데 정말 속상하다. </h1> <h1> 오늘은 5월 4일이다. 미리 스카우드한 자리로 야외활동하러 나왔다. 이모까지 모시고 진달래 만발한 꽃밭에서 그럴듯한 바비큐로 즐겼다. 엄마가 술이 적다하니 비상용 술 한병까지 터뜨렸다. 대단히 흡족한 모양이다. 다음번은 언제 나오는가 한다. 모두가 즐거워하니 나도 한결 뿌듯해난다. 집앞에 도착하니 오늘도 우리사는 小区이름을 물어본다. 기억력이 가물가물 꺼져가는 엄마앞에서 가슴이 아려온다. </h1> <h1> 오늘은5월11일. 막내가 광고약 쓴다고 의사와 말한것이 대단히 화난 엄마다. 간만에 이렇게 화를 내니 나나 동생이나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기분도 풀겸 배꽃구경 떠났다. 사진을 안찍겠다고 거절하던 엄마가 꽃밭에서만은 사진 찍는다. 기분이 많이 좋아진것 같다</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