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당신의 창가

조각달

<h3>서북향으로 놓인 이 창가에 서면 당신들 닮은 넉넉한 바람이 불어주는 시원한 사거리가 보입니다. 은행나무가 가로수인 길이라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푸르다가 노랗게 익는 은행나무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창가입니다. 창가 커튼도 당신들과 함께 고른 것이지요. 하늘색과 연두색 세로줄이 촘촘히 짜여진 원단으로 된. 그래서 우리 집 창가는 늘 청량한 바람이 솔솔 불어들어오는 듯 합니다. 그 촘촘히 짜여진 세로줄 무늬사이로 말입니다. 그 꽤 널직한 창턱에는 고추장 항아리가 두개 놓여져 있고 지난 봄에 담근 매실액즙과 오디액즙,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약술도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켠으로는 책들과 매일 치워라고 엄마의 ‘구박’을 받는 미니 와인받침대에 레드, 화이트 와인이 놓여져 있습니다. 가끔씩 퇴근길에 내가 사오는 술을 제일 반가워하시며 당신은 싱글벙글 창가에 술을 진열해 놓기도 합니다. 겨울 아닌 날씨 좋은 날에는 낚시하러 다녀오시고는 자름자름한 붕어를 이 창가에 펴 말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젊은 신사들도 많이 나왔더라. 좋은 차 몰고, 좋은 낚시대 들고들. 허허” 하시면서. 이렇게 방금 여기 오셨을 때는 창밖세상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은 내다보는 일상이 더 많아졌습니다. 추운 겨울이라 누구나 일상이 더 단일하겠지만도 시가지 생활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나 봅니다. 오랫동안 시골에서 닭을 기르고 개를 기르며 나물, 버섯을 캐고 열매를 따며 살았던, 자연과 대화를 하던 삶보다 재미가 없으시나 봅니다. 집안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한참 안들리면, 당신은 어느새 창턱에 팔을 고이고 계십니다. 무슨 상념에 빠졌는지 가끔은 불러도 대답이 없으십니다. 어두운 겨울 아침에도 당신은 일찍 깨셔서 창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가십니다. 손에는 묵직한 쇠붙이 팽이와 책찍을 들고 말입니다. 좀 지나면 이 창가로 쩡쩡~ 울리는 아버지의 팽이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은 우리 동네 사람과 둘이서 팽이 쳤다” “허허, 오늘은 다른 동네에서 둬명 와서 여럿이서 쳤다.” 아버지는 들어오실 때 늘 즐거운 모습입니다. 때로는 식후에도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에 다가섭니다. 저녁 식후에는 창너머 바라보시면서 야시장 장사군들이 장 서는 중이라고 하고 벌써 사람들로 붐빈다고도 하십니다. 그러다가 춥지 않은 날은 야시장으로 나가십니다. 무슨 야시장 관리원이라도 된듯 한바퀴 휙 돌아보고 오셔서는 “오늘 사람 참 많다 많아.”, “별 것 파는거 다 있다.” 하시면서 즐거워하십니다.</h3> <h3>서북향으로 열린 창가. 한껏 부풀어오르는 아침 햇님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봄날 오후쯤이면 한소끔 여유로워지고 느긋해진 햇살이 조금씩 비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여름부터는 작열하는 정오의 태양이 비껴들어와 저녁무렵이면 장엄한 서산노을과 일몰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닮은 풍경입니다. 한껏 느긋해진 눈빛과 가슴으로 우리를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이 세상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풍경선입니다. 40 바라보는 이 딸이 출근전에 멜끈가방을 메다가 한쪽 끈을 못찾으면 얼른 찾아서 팔에 끼워 어깨에 단정히 잡아주시는 당신, 사거리를 건너가는 우리의 출근길을 내다보시는 당신의 창가에는 늘 기다림이 쌓여져 있습니다. 어쩌다 토요일에 외출했다가 일요일에 돌아오는 우리한테도 적적했다며 함께 사는 것이 너무 좋다고 고백하십니다. 그럴때면 창가에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가 생각하며 가슴이 짠~해집니다. 언젠가 토요일 아침이였습니다. 아침 식후 창가에 팔을 고이고 계시는 당신 곁으로 다가섰습니다. 당신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눈도 참 많이 내리네.” “오늘은 참말로 휴일이다.” 아버지는 매일 ‘휴일’이면서도 오늘은 폭설에 10급 바람이 분다는 일기예보를 미리 알고는 제대로 된 ‘휴일’이라 하십니다. “저쪽 저 운동기구 있는데, 작년에 시멘트 발랐는데 아직도 기구가 놀더라(움직이더라)” “바람이 얼마나 쎈가 봐라. 저 신호등 대가 막 흔들리네.” “저쪽 저 눈치는 두사람 요즘 매일 눈치는거 보면 아마 저기 출근하는거 같다.” “저쪽 하늘에서 또 눈 넘어오네.” “이렇게 밖에 내다보면 참 재미있다. 허허” 그리고 봄이 왔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말입니다. 아침 일찍 창가로 다가선 당신이 창문을 활짝 여십니다. “세월 다 됐다. 세상 다 풀렸다.” 하시면서. 아무리 살펴봐도 일상뿐인 움직임을 당신은 이렇게 내다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십니다. 세월 그쯤 서 계시면 바라보는 것도 다 즐거우신 걸가요. 세월이 흘러갑니다. 창밖에도, 창안에도. 그 세월이 더디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창가에도, 당신의 창가에도 세월이 더디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일상이고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가, 그 창가 앞에 선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당신의 등에서 몇 십년 세월을 읽고 당신의 목소리에서 세상이 가르쳐주는 삶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렇게 한 세상으로, 커다란 세상으로 창문앞에 서 계셔주시는 당신이, 참으로 너무 너무 고마울 뿐입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속으로 조용히 뇌어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6.03.14</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