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류학 간 한 소녀의 편지

미니

<h1>아빠에게 올립니다</h1><h1><br></h1><h1> 어느덧 미국으로 류학온 지 4년이나 되였어요. 소학교 6학년 때 한국으로 떠난 아빠는 이미 기억에서 흐릿해졌고 엄마도 결국 한국으로 갔지요. 밤이면 밤마다 엄마아빠와 같이 재미있게 살아가는 상상을 하다가 잠들었어요. 그만큼 그리움도 원망도 컸어요.</h1> <h1><font color="#010101"> 그 때는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참으로 못난 인간이였지요.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간 ***중은 불행하게도 나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곳이였어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 마음은 항상 조바심과 질투심으로 차있었고 그에 따라 인간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져 학교에 있는 시간들이 고통의 련속이였지요.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도 나를 반겨주며 이런 고민과 문제들을 털어놓고 얘기할 사람도, 들어줄 사람도 없었어요. 밑바닥을 친 자존심과 절망 속에 나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의미없는 존재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찾은 해탈의 답이 류학이였지요.</font></h1> <h1> 낯선 환경에서 이방인으로 혼자 류학생활을 하면서 위기도 있었고 어려움도 참 많았지요. 그 어려운 순간마다 아빠에 대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너무나 따뜻한 부애(父愛)라는 힘이 나를 일으켜주었고 지켜주었어요. 지금 당장 곁에 없지만 항상 내 곁에 있다는 힘이 너무나 큰 용기를 주었어요.</h1> <h1><font color="#010101"> 류학생활을 하면서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단단한 어른이 되여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나 자신, 그리고 나와 련결되여있는 가족과 사회에 대해 거시적인 측면과 내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되였어요. 낯선 땅, 낯선 문화, 낯선 사회 속에서의 생존투쟁이 얼마나 치렬한 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아빠의 타국 생활도 쉽지 만은 않았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를 리해하게 되였고 존경하게 되였어요.</font></h1> <h1>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 가정은 먹이사슬 최하단에 위치해있으며 자본이 없는 이상 우리는 약자일 수 밖에 없어요. 약자는 자본의 힘에 휘둘릴 수 밖에 없어요. 아빠가 항상 하는 “계층을 뛰여넘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너무나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류학을 하면서 뼈 속까지 스며드는 그리움도 이기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그 노력들이 언젠가는 정비례의 행복으로 다가오리라 믿어요. 나의 바람과 꿈은 우리집 식구들이 약자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에요. 이 모든 꿈들이 실현되려면 아직도 많은 노력과 인고의 시간과 시련들을 겪어야 할 거에요.</h1> <h1> 얼마전 버클리대학 합격 소식에 나는 100퍼센트 기뻐만 할 수 없었어요. 학교 이름만큼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지요. 엄마도 아빠도 이미 많이 지쳐있고 나 또한 엄마 아빠한테 더 큰 부담을 주긴 싫어요. 그리하여 장학금 제공이 가능한 일반대학을 선택할 생각입니다. 학교 이름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명예보다 내 이름이 나 자신에게 주는 명예가 더 가치있을 수 있게 더 악을 쓸 것이며 내가 ‘명문’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게요. 모든 일은 나 자신에게 달려있으며 열심히 하노라면 나에게도 엔젠가는 행운이 오리라 믿어요. </h1> <h1>너무 주절주절 길게 쓴 것 같아요. </h1><h1></h1><h1><br></h1><h1>아빠, 너무 고맙고 사랑해요.</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