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모란은 왜 늘 피여있지 않는가

김경화

<h3><br />&nbsp;&nbsp;&nbsp; 어느 가을, 푸름이 사라진 고향집뜨락을 배회하다가 한켠에 볼썽사납게 죽어있는 잡초 한무더기를 발견하고 허망 뽑아든적 있다.<br />&nbsp;&nbsp;&nbsp; 감자같기도 하고 고구마같기도 한 뿌리가 뽑혀져나오는것이였고 나는 그것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br />&nbsp;&nbsp;&nbsp; 썩 후에 호미를 들고 모란뿌리를 캐러 나간 엄마가 푸념질하는것을 듣고서야 나는 내가 뽑아버린 볼썽사나운 잡초 한무더기가 한여름 함박꽃보다 더 이쁜 자색의 꽃을 피워올리던 모란이였음을 알고 경악했다.<br />&nbsp;&nbsp;&nbsp; 나의 데설궂음을 나무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전에서 사라져갈 무렵이던 이듬해 봄, 모란뿌리를 김치움에 잘 건사했다가 옮겨심은 이웃집 뜨락 한켠에 파란 모란싹이 돋아나고 한 잎 두 잎 꽃잎이 늘어가다가 어느 무더운 여름밤을 하얗게 지새고나더니 떨기떨기 진붉은 꽃을 피워올리는것을 담장너머로 보면서 나는&nbsp; 지난 가을, 꽃봉오리 하나 머금어보지 못하고 애절하게 사라져간 그 자모란을 떠올렸다.<br />&nbsp;&nbsp;&nbsp; 언제나 떨기떨기 진붉은 아름다움만 자랑할것 같은 저 모란도 언젠가는 꽃을 지우고 바람에 몸을 떨고 추위에 옴츠리며 한무더기 쓸쓸한 잡초로 잠잘수도 있다는것을 나는 새삼 깨달았다고 해야겠다.<br />&nbsp;&nbsp;&nbsp; 사람들에게 모란은 어쩌면 진붉은 꽃을 떨기떨기 피워올리는 그 순간만으로 기억되는게 아닐가.<br />&nbsp;&nbsp;&nbsp; 꽃이 지고 잎이 떨어지고, 으스스 찬바람이 몰려와 어느 한켠에 서럽게 쓰러질때쯤이면 사람들은 모란을 까맣게 잊고있지는 않을가. <br />&nbsp;&nbsp;&nbsp; 한때는 떨기떨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모란을 한낱 흔하디흔한 잡초로 보고 짜증내며 송두리채 뽑아던질 사람은 나 하나뿐일가.</h3> <h3>&nbsp;&nbsp;&nbsp; 나는 능력없고 무능한 남편과 리혼한 어떤 녀사 한분을 알고있다.<br>&nbsp;&nbsp;&nbsp; 련애하던 시절에는 꽤 유능한 남자였는데 어찌되여 결혼을 하고 애 하나 낳고나서도 직장내에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뿐 승진도 없고 어떤 비전도 없었다고 한다. 티각태각 남편의 약삭빠르지 못함을 탓하는 안해의 목소리가 커져감에 따라 부부간의 싸움은 깊어갔고 그 무렵 그나마 밥술이라도 먹던 직장에서 남편은 밀려나게 되였다고 한다.<br>&nbsp;&nbsp;&nbsp; 결국 그것이 두사람이 갈라서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버렸고,<br>&nbsp;&nbsp;&nbsp; 리혼을 하고 얼마후 어느 모임에서 만난 녀사는 리혼을 금방 한 사람답지 않게 얼굴에 생기가 돌고 즐거워보였다.<br>&nbsp;&nbsp;&nbsp; 물어보니, 리혼하고 이내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첫눈에 서로에게 끌려 지금은 열련중이라는것과 그 남자가 어느만큼 잘 나가는 회사의 요직에 머물러있다는것과 이 도시에 아파트만 서너채 되고 얼마나 살뜰한지 전남편과는 비교도 안된다는 등 이야기를 하면서 내심 리혼하기 잘했다고 자랑하는 눈치였다.<br>&nbsp;&nbsp;&nbsp; 그 이후, 반년쯤 지나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녀사는 얼굴이 곰삭아 십년은 늙어보였다.<br>&nbsp;&nbsp;&nbsp; 어떻게 지내냐고 했더니 열련중이라고 하던 그 잘나가는 이혼남과 재혼했는데 재혼하고보니 큰 사업체를 한다던 사람이 어느 다단계업체의 판매원이고 부동산이 세채 있다고 하던것도 모두 거짓말이였다는것, 애초에 살갑던것과는 달리 안해부려먹기를 머처럼 알고, 쩍하면 화내고 소리를 지른다는 등 푸념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였다.<br>&nbsp;&nbsp;&nbsp; 대신 녀사의 전남편은 외자기업에 취직을 했고 거기서 인정을 받아 외국을 드나들며 회사의 중요한 일을 맡고있다가 요즘은 독립해나왔는데 그야말로 으젓한 사장님이 되셨다는것이다.<br>&nbsp;&nbsp;&nbsp; 어느 옷가게에 점원으로 나가는 녀사의 수입으로 세식구가 어렵게 살고있다는 말을 하면서 녀사는 아들애의 장래를 위해 아들애를 전남편한테로 반년전에 보냈다고 하면서 보구싶어서, 하면서 눈굽을 찍었다.<br>&nbsp;&nbsp;&nbsp; 나는 모란을 잡초로 여기고 훌쩍 뽑아던졌던 그 가을의 나를 떠올렸다.<br>&nbsp;&nbsp;&nbsp;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늘 피여있을수는 없음을 나는 문득 알았다고 할가.<br>&nbsp;&nbsp;&nbsp; 승진도 못하고, 덜컥 실직까지 당해야 했던 그 시절은 바로 그 녀사남편에게 모란의 겨울같은것이 아니였을가.<br>&nbsp;&nbsp;&nbsp; 자연계의 화초도 늘 피여 아름다움을 뽐내지 못하는데, 한송이의 모란꽃을 피워올리기 위해 모란은 초라한 가을의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추위에 얼어죽지 않을만한 어느 바람막이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옴츠리고있어야 하는데,<br>&nbsp;&nbsp;&nbsp; 녀사의 남편이라고 어찌 사계절 아름다운 꽃을 자랑하는 호시절만 있을수 있었을가. <br>&nbsp;&nbsp;&nbsp; 간난신고를 거쳐 어느 손에 받들려 땅에 묻어져 아픔의 싹을 피여올리고 눈물의 잎사귀를 낳아가면서 마침내 피워올린 저 모란 한송이,</h3> <h3>&nbsp;&nbsp; 그 녀사가 만약 모란의 가을과 겨울을 보듬어주는 어느 살뜰한 손이였다면 언젠가 당신의 남편은 저 모란처럼 기필코 한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올릴것이라 생각하면서 남편을 좀 더 리해하고 내조하며 힘들고 막막했던 그 남편의 겨울을 함께 보듬어주었더라면, 저 마침내 피여올린 모란꽃같은 전남편의 오늘에 녀사도 함께 서서 행복할수 있지 않을가.<br>&nbsp;&nbsp;&nbsp; 단란한 한가정도 지켜냈을것이고 어린 아들애를 힘들게 하는 일도 없었을것이고 녀사도 오늘 눈굽을 찍으며 고달픔을 가득 싣고 한탄하지 않아도 될것이다.<br>&nbsp;&nbsp;&nbsp;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어느 모란의 가을을 짓밟고 겨울맞은 모란을 다시 피여날수 없게 저 차디찬 엄한속으로 내모는것일가.<br>&nbsp;&nbsp;&nbsp; 잠간동안 무능력해지고 초라해진 내 안해, 내 남편을 탓하고 원망하며 갈라서기를 밥먹기처럼 쉽게 여기는 요즘 사람들,<br>&nbsp;&nbsp;&nbsp; 그 옛날, 잡초가 된 모란싹을 조심스레 붙잡고 모란뿌리를 정성스레 캐여 겨울동안 얼지 않고 마르지 않게 잘 보관했다가 봄이 되면 땅을 파고 잘 묻어주던 엄마가 떠오른다.<br>&nbsp;&nbsp;&nbsp; 기필코 파란 싹이 돋고 이쁜 가지가 펼쳐지고 진붉거나 혹은 자주빛이거나 연분홍이거나 하는 모란이 필거라고 확신하면서 즐거워하던 엄마,<br>&nbsp;&nbsp;&nbsp;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결여된것은 바로 내 엄마의 모란을 향한 그 인내와 정성과 마음가짐이 아닐가.<br>&nbsp;&nbsp;&nbsp;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폄할때도 우리는 흔히 떨기떨기 피여올린 그 꽃송이만 보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허다한 우를 범한다.<br>&nbsp;&nbsp;&nbsp; 가을바람에 스러진 모란의 아픔과 그속에 진주처럼 숨겨져있는 아름다운것을 무자비하게 짓밟은적이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할수 있으랴.<br>&nbsp;&nbsp;&nbsp; 시련과 고통을 거쳐야만이, 눈물과 산고의 나날을 견뎌내야만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란꽃을 떨기떨기 피여올릴수 있음을 저 모란은 알고있으리라.<br>&nbsp;&nbsp;&nbsp; 아마 그래서 저 모란은 늘 피여있기를 거부하는게 아닐가.</h3> <h3>&nbsp;&nbsp;&nbsp; 열달동안의 신고와 출산의 고통을 거쳐 마침내 한 생명을 태여나게 하는 그 순간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경험해본적 있다.<br>&nbsp;&nbsp;&nbsp; 긴 가을의 시련과 참담한 겨울의 숙지를 거쳐 마침내 싹을 피우고 떨기떨기 꽃송이를 피여날때의 그 환희를 저 모란을 알고있으리라.<br>&nbsp;&nbsp;&nbsp; 잠간의 실패와 좌절에 온통 하늘이 흑빛으로 물들고 나 혼자만 불행하다고 자포자기하는 누군가에게도 당신의 모란은 사계절 어느 쯤에 와있는건지 한번쯤 돌아보라고 권하고싶다.<br>&nbsp;&nbsp;&nbsp; 모든걸 잃고 힘없이 스러져있지는 않는건가. 아직은 내게 다시 피워올릴 싱싱한 밑뿌리가 남아있는 모란의 가을같은것이 아닌가를, 아무것도 할수 없는 막막함이 한가득 몰려와 실의에 가슴이 시려온다면 때와 기회를 노리고 아직은 잠자코 있어야 하는 겨울모란의 지혜를 배우라고 말하고싶다.<br>&nbsp;&nbsp;&nbsp; 그래서 어느날 따스한 바람이 불고 나비가 날아오면, 당신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기필고 하나의 아름다운 싹으로 다시 눈부시게 피여날것이라는것을,<br>&nbsp;&nbsp;&nbsp; 여린싹은 기어이 하늘을 향하고, 뿌리는 혼신을 다하여 땅속으로 뚫고 들어가 자신을 굳혀 어느날 파릇파릇 잎사귀가 무성해지고 어느날 작은 꽃봉오리를 가슴에 품어올린, 여름날 소나기뒤끝에 함초롬히 젖어 이제 막 새 생명을 잉태한 싱싱함으로 당신은 화려하게 빛날것이다.<br>&nbsp;&nbsp;&nbsp; 진붉은 꽃을 떨기떨기 피여낸 호시절의 모란같은 당신이라면 한껏 어여쁨을 자랑하라고 말하고싶다.<br>&nbsp;&nbsp;&nbsp; 조금 오만해도 좋고 어리광을 부려도 좋다.<br>&nbsp;&nbsp;&nbsp; 아낌없이 피여나 생애를 다해 후회없는 한송이 모란이 되라고 하고싶다.<br>&nbsp;&nbsp;&nbsp; 그리고 언젠가 당신은 더 많고 아름다운 모란을 피여올리기 위해 초라한 가을과 힘든 겨울속으로 스스로 걸어갈줄 알아야 함도 말해주고싶다.<br>&nbsp;&nbsp;&nbsp; 한줄기의 모란뿌리가 가을과 겨울의 시련을 거쳐 마침내 피워올린건 떨기떨기 아름다운 저 모란꽃송이만은 아닌, 이제 수없이 많은 모란을 피워올릴 약속의 뿌리들을 줄레줄레 품고있다는것이다.<br>&nbsp;&nbsp;&nbsp; 가을자모란을 버리고 담장너머로 이웃집 뜨락의 연분홍모란꽃을 바라보며 애처롭던 그 여름의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있다.<br>&nbsp;&nbsp;&nbsp; 부디, 녀사가 아니, 누구라도 스러진 가을모란같은 내 인생의 소중한것들을 허망 버리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의 모란을 소중히 사랑하고 정성들여 가꾸어서 언젠가 진붉은 한송이 모란꽃으로 피워올리기를, 수많은 약속의 뿌리들을 하얗게 피워올려 더욱 아름다운 당신이기를 저 령롱한 이슬의 이름으로 축복한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