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 저자: 강학선</h1><h1><br></h1><h1>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안해, 큰 이모와 작은 이모부 모두 저세상에서 잘 계시지요...<br> 하늘같은 은혜와 사랑을 되새기며 효와 사랑을 못 다 한 죄송한 마음을...<br> 저세상에 앞서 가신 친인들을 그리며 청명날 위챗 가족그룹에 올린 형님의 고백이다.<br> 그것을 보면서 문득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난 친인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으면서 마음이 쓸쓸해진다.<br> 사람들은 흔히 부모님은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며 언제까지라도 우리와 함께 살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사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저세상으로 돌아가시면 그때서야 못다한 효와 못다한 수많은 말들이 남아있었음을 실감하며 그때서야 어쩔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br> 우리는 죽음을 이름하여 리별 또는 영별이라 말하기도 한다. 생명의 종말과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과의 영원한 리별이 되는 까닭이다.<br> 망망한 밤하늘에 꽉 차서 흐르는 별의 흐름과도 같은 인간생명의 흐름, 그 무상한 흐름속에서 인간이 생의 시작과 현재와 미래에 다가올 생의 끝자락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는 각자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br> 나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생생한 현재를 아무런 위기감이나 아쉬움이 없이 주어진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아득히 멀어진 생의 시작에 대해서는 기쁘고 경탄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반면, 마찬가지로 아득해 보이는 미래 생의 끝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회피하고 싶어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br><br></h1> <h1> 그러나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해 버리기에는 납득못할 부분이 너무 많다.<br> 일단은 죽음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죽음에 대한 감수를 알길이 없다. 실제 '죽었다'가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사람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죽는 순간 고통도 번뇌도 없고 평온했다고 하는데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만...<br> 무신론에서는 육체가 죽으면 령혼도 따라서 사라진다고 주장한다.<br> 일부 종교에 의하면 육체는 죽었지만 령혼은 살아있다, 영생한다, 혹은 그 령혼이 륜회를 통하여 다른 육신으로 환생한다고 본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선정한 현시대 가장 걸출한 3대과학자중의 한 사람이며 물리학, 량자력학, 천체물리학 방면의 권위인 로버트 렌저 박사도 저서 <<생물중심론>>에서 인간은 사망후 생명이 종말되는 것이 아니라 영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br> 이처럼 죽음에 관한 설이 다양하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한 것이 있다. 즉 죽음은 가족과 친인들과의 리별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죽음은 내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겪어온, 나와 엮여져있던 모든 대상들과의 영원한 리별을 의미한다.<br> 설사 환생을 통하여 다른 육신으로 태여난다 한들, 설사 령혼이 영생하여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한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영영 다시 얼굴 못보는 생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br>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리별이 슬픈 것이다. 죽음보다 못견디게 슬픈 이별!</h1> <h1>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 그리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푸른 하늘, 아름다운 산야, 찬란한 해빛, 그리고 나를 스치는 한줄기 바람, 리별을 생각하니 고마운줄 몰랐고 무심히 스쳐지났던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br> 내곁에 있어주어서 고마운 것들, 미처 내가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것들, 그것들이 있어 나는 행복했을텐데 미처 내게 행복을 주는 존재들의 감사함을 몰랏던 것 같다.<br> 때가 되면 리별해야만 하는게 자연의 섭리라면 어찌 인간의 힘으로 그것을 거스를수 있으랴.<br>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은 그 리별의 순간이 오기전에 좀 더 많이 사랑하고 좀 더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가 싶다.<br> 오늘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리별의 순간이 왔을 때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덜 유감스러운 그런 삶을 살아야지 않을가.<br> 유감없이 사랑하고 후회없이 아껴주어 조금이라도 덜 리별앞에 아쉬운 그런 삶을 살아야지 않을가 싶다.<br>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수 없는 죽음과 리별이라는 숙명앞에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리별을 맞이하기 전에 가족과 주변에 원없이 사랑을 주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의 모든 것에,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매미소리와 청명날 내게 찾아오는 작은 비방울 하나하나에도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h1><h1><br></h1><h1>2018.5.18 료녕신문 압록강부간. 강학선. <br></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