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우산

快乐每一天 ,幸福在身边

<h1><b style="font-size:22px;">  나에게는 영원히 잊어지질 않는, 비오날 우산이 되여준 분이 있다. 난 그분을 다시 찾아 보려고 할때에는 이미 저 세상에 돌아 가셨다.</b></h1><h1><b style="font-size:22px;"> 그 분이 바로 저의 소학교 4학년 ㅡ 5 학년 반주임 선생 김기호 선생이다 .훈춘시 경신진 금당 소학교 다닐때 김기호 선생은 저의 4ㅡ5 학년 반주임 맡았다. 김기호선생이 맡으면서 저에게는 많은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b></h1><h1><b style="font-size:22px;"> 그때 당시 문화대혁명시기 아버지는 해방전 27세나이에 군중 선거로 일년반이란 시간에 금당툰에 툰장질한 것으로 말미암아 죄없이 억울하게 투쟁 받았다. 그리하여 소학교 3학년 다니던 저는 말할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 .</b></h1><h1><b style="font-size:22px;"> 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숙제를 꼭꼭 완성하면서 매번 중간 시험이거나 기말 시험이면 기본상 100점 98점 일등이란 우수한 성적을 따냈다. 하지만 시간중에 날 지명해서 물어 보는 선생이 하나도 없었으며 성적이 좋아도 관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동학들이 모를것이 있으면 나와 물어보구 숙제 할때면 날 데릴러 왔다.</b></h1><h1><b style="font-size:22px;"> 김기호 선생은 4학년 첫학기 어느 하루에 &lt;헤아릴수 없는&gt;단어로 단문 지으라 문제를 내였다. 난 제일 먼저 선생님께 바쳧다 선생님은 이튼날 어문시간 우리들이 지은 단문 중 네편를 흑판에 적어놓구 하나하나 분석 하셨다 하나는 틀린 단문이고 그 다음 단문은&lt;풀밭에는 벌레가 혜아릴수 없이 많다 &gt;는 맞는 단문이라 하셨다 또 다른 하나는 &lt;하늘에는 헤아릴수 없는 뭇별들이 반짝 인다&gt; 이 단문은 류춘희 쓴 단문인데 우수한 단문이라 평가 하셨다. 제일 마지막으로 또 단문 한편이 흑판에 적혔다 &lt;혜아릴수 없는 외국 손님들이 우리 중국에 방문 온다 &gt;였다. 선생님은 격동된 심정으로 단문&lt;혜아릴수 없는 외국 손님들이 우리 중국을 방문 한다 &gt;를 목청높혀 읽으면서 이것은 우리 중국에 대한 열애와 전 세계에서 우리 중국이 위신이 아주 높다는 뜻으로 표달 했다고 높이 평가 하시면서 다른 사생들 보다 생각하는 법위가 넓다고 하면서 이 단문을 바로 저기 제일 키큰 류희숙 학생이 지은 단문이라 하면서 저를 일커 세워 놓고 높이 표양 했다 .저는 정말로 처음으로 더구나 이렇게 높이 표양 받고 집으로 돌아오기 바쁘게 집식구들과 자랑 했다 .그 다음부터 저는 용기가 났다 또 한번 이였다. 수학 시간이 였다 .전날에 배워주면서 가장 혼돈 되는 문제를 상세히 교학 했다 그다음 날, 시간에 비슷한 문제를 우리에게 내였다 나는 이응용 문제를 또 제일 먼저 풀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이 문제를 계산한 학생들 손 들라 하셨다. 저는 손 높이 들었다. 그런데 앞줄에 다른 학생을 먼저 지명 하셨다. 나와 답안이 틀리였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다른 학생을 지명 했는데 역시 같은 답안이 였다. 난 선생님이 언제면 날 지명 하시기를 고대히 기다 렸다 . 그런데 선생님은 그 다음 차레로 지명해서 나갔다. 전반 남녀 학생 32명중에서 31명이 모두 똑 같은 답안이 였다 제일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나를 지명 하셨는데 나 단독으로 답안이 달랐다. 전반 학생들이 한결같이 뒤로 저에게 눈길이 왔다. 선생님은 또 한번 큰 소리로 [소수인에게도 진리가 있다] 고 류희숙이 답안이 정답이라 하시면서 [수학 머리] 라고 높이 칭찬 하셨다. 또 글시를 잘 쓴다 던가 매번마다 칭찬은 제가 잊을 수 없이 나의 머리속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메아리 친다 !!</b></h1><h1><b style="font-size:22px;"> 그후 고향을 떠나서 시집간 후 남편이 화룡 송화평탄광병원으로 분배 받으니 남편따라 그 곳에 몇해 살다가 연길에 이사 와서 애들을 공부시켜 대학까지 입학 시키느라 바삐 보내다 보니 내가 선생님을 뵈욉자고 찿을 때에는 이미 저세상에 돌아 가셨다 . 난 후회 된다 . 아무리 바빠도 한번이라도 선생님을 뵈옵고 그 때에 고맙던 감사의 말 한마디 라고 하여 드렸으면 얼마나 기뻐 하셨 겠는지? 난 선생님의 덕분에 중학교에서도 수.리.화는 매번시험마다 학년에서 최고 성적을 다투었으며 문과도 량호한 성적을 따냈다 .난 지금 의사남편 뒷 받침을 잘 할수 있는 기초는 김기호 선생님 은덕과 갈라 놓을수 없다고 생각 한다 .</b></h1><h1><b style="font-size:22px;"> 그렇다 ! 한 학생이 출세하거나 사람이 되는 것은 선생님 은덕과 갈라 놓을수 없다 ! </b></h1><h1><b style="font-size:22px;"> 선생님 ! 나의 존경하는 선생님 ! </b></h1><h1><b style="font-size:22px;">저 세상에서도 나의 이 글 볼수 있겠지요 ?</b></h1><h1><br></h1><h1><b style="font-size:22px;"> 늦은 오늘이 라도 미편 이 아름다운 공간이 있어서 세상에다 이 글 남김니다 !</b></h1><h1><br></h1><h1><b style="font-size:22px;"> 선생님은 영원히 나의 마음속 깊이 살아 계십니다! ! </b></h1><p class="ql-block"><br></p><h1><b style="font-size:22px;"> 김기호선생 제자ㅡ 류희숙 올림</b></h1>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color:rgb(237, 35, 8); font-size:22px;">경신공사 금당소학교 필업기념</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color:rgb(237, 35, 8); font-size:22px;">존경 하시는 김기호 선생님</b></p><p class="ql-block"><br></p><p class="ql-block"><br></p> <h1><b style="font-size:22px;">(나이 어릴때에는 철없어서 선생님 보면 부끄러워 쑥스럽게 지나갔는데 나이 들고보니 고마운 인사말 못한것이 참으로 유감 스럽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사연을 두고도 찾아뵙지 못한것이 마음으로부터 죄책감이 듬니다 한 마을에 본가집이라도 있었으면 찿아 뵈옵겠은데 연길에 이사오고 없었으니 .... )</b></h1><p class="ql-block"><b style="font-size:22px;">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때 정형들을 다시 회억해 보니 선생님이 자기 자식이나 조카처럼 사랑 하시고 관심해주신 그 마음에 감격의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내린다 .</b></p><p class="ql-block"><br></p> <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r></p><p class="ql-block" style="text-align:center;"><b style="font-size:22px;"><span class="ql-cursor"></span>제자 ㅡ 류희숙</b></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