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그러니까 애초에 이런 글을 쓸 생각은 없었다. 세상사람들의 온갖 실수를 혼자서만 저지르고 다니는 내 실수담에 이제 사람들도 지쳤을 테고 또야? 하고 식상해할 게 뻔할 테니 말이다.<br /></h3><h3><br /></h3><h3>그러나, 그래도 적어야겠다. 글쓰기란 나 스스로의 행위이다. 경험상 마음 치유에 글쓰기만한 것은 없다. 순전히 나를 위한 적기를 해볼까 한다. </h3><h3><br /></h3><h3>그날은 그냥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보통날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근처 병원에를 잠깐 갔었다. 혼자서도 오줌 누기를 잘하더니 그날따라 같이 화장실에 가잔다. 들고 있던 폰을 넣을 주머니가 마땅치 않아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넣었다. </h3><h3><br /></h3><h3>오줌을 누이고 아이가 혼자 바지를 추어입게 하려고 했으나 밖에 줄 선 사람들이 보이자 맘이 급해나서 내가 쭈그리고 앉아 아이의 바지를 추어올렸다. 다 추어올리고 일어서려던 찰나에, 이제 막 손을 잡고 나가려던 찰나에 뒷주머니 폰이 스르르 빠져서 화변기에 똑 떨어진다. </h3><h3><br /></h3><h3>통! 통! 단 두 번의 튀어오름을 끝으로 폰은 쏘옥 구멍으로 빠져들어갔다. 폰의 투하는 거치장스러움 1도 없이 매끄러웠다.</h3><h3><br /></h3><h3>뭔가 이물질이 더덕더덕 벽에 가득 묻은 내부를 들여다본다. 빨간 케이스가 눈에 뜨인다. 케이스 뒤에 꽂아두었던 하얀 회사 직원 카드도 보인다. </h3><h3><br /></h3><h3>몇 초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머릿속이 하애졌다. 아들애 손을 끌고 나와 복도에 서있는 간호사를 불러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物业아저씨를 부른단다. </h3><h3><br /></h3><h3>실날 같은 희망을 품어보았다. 그 폰은 쓸 수 없을지 몰라도 안에 전화카드는 꺼내서 잘 씻어서 쓴다면 다시 전화카드 받으러 가는 번거로움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방수 기능이 되니 폰도 여차여차 잘 씻어서 내부 자료를 꺼내고 중고로 팔아도 되지 않을까?(못된 생각.)</h3><h3><br /></h3><h3>物业 아저씨가 갈고리 같은 것을 들고 왔다. 잠시 후 도착한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아저씨와 같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커다란 전등을 들고 내부를 비추고 아저씨가 갈고리를 안에 밀어넣었다. 갈고리를 요리조리 돌리며 건져보려 했지만 맘처럼 잘 안 된다. 걸린 것만 같아 낚싯대 같은 갈고리를 끌어올렸으나 걸린 것은 누런 이물질 뿐이었다. </h3><h3><br /></h3><h3>다시 밀어넣어본다. 그런데 이를 어째, 두어 번의 낚시질(?) 끝에 폰은 뒤집어져서 이제 그 시커먼 구멍 속에서 정체조차 보이지 않는다. 뒷면 케이스가 보일 때는 그래도 희망이라도 있었는데 검은색 폰이 정면을 드러내자 이제 아예 깜깜해져 버린 것이다. </h3><h3><br /></h3><h3>그러니까 그때 흰색 폰을 샀어야 했는데… 아 이런 후회나 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h3><h3><br /></h3><h3>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몇 번을 허우적거렸지만 폰은 걸리지 않았다. 그 새 화장실로 급히 왔다가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아저씨 말에 우거지 죽상을 하고 다시 돌아간 몇몇 환자들 보기에도 미안했다. </h3><h3><br /></h3><h3>姑娘啊! 够呛啊! 아저씨가 누런 이물질 묻은 손을 물에 헹구며 나에게 말한다. </h3><h3>好吧,知道了。</h3><h3><br /></h3><h3>깨끗이 포기하고 나왔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지 말아야 한다. 건져 올려 헹궈서 팔 생각을 하니 하늘이 굽어보고 이런 벌을 내리는 게다. ㅠㅠ </h3><h3><br /></h3><h3>하…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 </h3><h3><br /></h3><h3>새 폰을 사야 한다. 원래 카드 번호 받으러 통신사로 다녀와야 한다. 그렇다면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분증이 필요하다. </h3><h3><br /></h3><h3>지금 내게는 그 두 가지가 다 없다. <br /></h3><h3><br /></h3><h3>카드랑 신분증을 어디 잘 모셔둔다고 평소 잘 쓰지 않는 가방에 넣어서 잘 모셔두었는데 정말 너무 꽁꽁 잘 모셔두어서 찾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하나 있던 카드는 며칠 전 기계가 먹어버렸다. </h3><h3><br /></h3><h3>집에 있는 현금을 빡빡 끌어 갖고 가서 원래 거랑 똑같은 폰을 사고 남편에게 시치미 뗄까 하는 못된 궁리도 해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금은 한참 모자란다. 남편에게 sos를 청했다. </h3><h3><br /></h3><h3>남편 카드를 들고 가서 폰을 샀다. 이번엔 흰색으로 샀다. 혹시나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서, 시커먼 동굴 같은 데서도 쉽게 눈에 띌 수 있는 흰 색으로 샀다. </h3><h3><br /></h3><h3>이제 카드가 문제다. 카드를 넣지 않은 공기계는 시계랑 사진기 구실밖에 못했다. </h3><h3><br /></h3><h3>에또, 카드를 만들려면 신분증이 필요한데 내게는 지금 그것이 없다. 호구부가 회사에 있으니 일단 회사로 가자. 해서 회사까지 탈탈거리고 왔다. </h3><h3><br /></h3><h3>회사에 오고보니 너무 더워서 위에 입은 진초록 남방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이 행위가 그 다음의 일련의 복잡한 상황을 만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h3><h3><br /></h3><h3>회사에서 호구부를 가지고 또 복사도 하고 가방에 정히 넣은 후 통신사로 갔다. 여권도 챙겼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신분증 아니라도 되겠지. </h3><h3><br /></h3><h3>통신사 카운터 앞에 도착했을 때에야 내 생각이 얼마나 아름답기만 했던지를 알 수 있었다. 신분증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안 된단다. 신분증이 아니라면 임시신분증이라도 만들어오란다. </h3><h3><br /></h3><h3>호구부와 여권을 번갈아 들이밀었지만 통신사 여자 직원은 단호했다. 그리고 임시 신분증으로 카드를 받을 경우, 반드시 왕푸징에 있는 이동통신사로 가야 한단다. </h3><h3><br /></h3><h3>에라이 덴장이다. 중국의 공기업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꼭 번거로움을 일부러 만들어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려 하는 것 같다. </h3><h3><br /></h3><h3>지가 잃어버려놓고 꼭 이렇게 딴소리다. 그러나 이런 때 남탓도 좀 해야 심리건강에 이롭다. 이건 뼈저린 경험교훈이다. </h3><h3><br /></h3><h3>다시 파출소로 왔다. 임시 신분증을 만들겠다고 했다. 칼치같이 생긴 파출소 직원은 나를 아래 위로 훑더니 흰 옷을 입어서 안 된단다. 흰 배경으로 찍는 증명사진인데 흰 색을 입으면 눈에 뜨이지 않아서 안 된단다. </h3><h3><br /></h3><h3>아놔 진짜, 원래 신분증 사진도 흰색 옷을 입고 찍었다고요! 했더니 그건 그때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단다. </h3><h3><br /></h3><h3>그럼 여기 잠깐 입고 사진 찍을 만한 검정 자켓 같은 게 없나 물었더니 없단다. 전에 보면 증명사진 찍는 곳엔 대개 그런 후줄근한 자켓들이 비치되어 있지 않았던가. </h3><h3><br /></h3><h3>그런데 없단다. 한발 더 내밀어봤다. 당신 그 곤색 제복 입고 찍음 안 되냐고 물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나를 쳐다보던 칼치아저씨가 "呵,这姑娘真是的。" 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나 오늘 기분이 최악이에요. 막 나갈 거예요. </h3><h3><br /></h3><h3>어쨌거나 뒤띠 부얘서 파출소를 나왔다. 한오후의 태양의 무척이나 뜨겁다. 그러니까 아까 그 진초록 남방을 회사에 벗어놓고 오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바로 사진을 찍고 동성구 행정청에 가서 한 시간을 기다려 임시 신분증을 만들어 거기서 다시 왕푸징에를 가서 카드를 받으면 오늘내로 복구 가능한 건데…</h3><h3><br /></h3><h3>회사로 가기엔 너무 멀다. 근처에서 옷을 사입기로 했다. 후줄근한 진그레이 티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사입고 다시 파출소로 갔다. </h3><h3><br /></h3><h3>또 어떤 험난한 요새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두구두구두구두구….</h3><h3><br /></h3><h3>이번엔 머리 색이 퇴짜를 맞았다. 노래서 안 된단다. 아놔, 이게 지금 해빛이 비추니까 노래보여서 그렇지 방안에선 괜찮다니까요~ </h3><h3><br /></h3><h3>不行!</h3><h3>칼치 같은 나그내 어디서, 그럼 그렇다고 아까 말하든가, 속으로 죽어라 욕을 퍼부었다. </h3><h3>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40분이다. </h3><h3><br /></h3><h3>그래 오늘 내 일처리 마무리하는 것은 아예 깨끗하게 포기해야겠다. </h3><h3><br /></h3><h3>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진초록 남방을 보자 담담한 회한이 밀려온다. </h3><h3><br /></h3><h3>깨끗이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다. 사무실에서 조금 안정을 취하고 집에 돌아갔다. </h3><h3>김동무가 시물거린다. 새 폰 사고 싶어 일부러 그러재야? </h3><h3><br /></h3><h3>이제 2년도 넘은 김동무의 낡은 폰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써개만한 미안함이 저기 마음 한 끝에서 조용히 올라온다. </h3><h3><br /></h3><h3>오늘은 바짝 자세를 낮춰야겠다고 전략방침을 바꾸었다. 고양이 낙태상을 지으며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어올리고는 </h3><h3>"오빠 애나겠슴다. 내 같은 사고뭉치까 살자니." 하고 나직이 읊조렸다. </h3><h3><br /></h3><h3>"그러니까 봐라, 넌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옳거니 하고 그쪽에서 받아친다. </h3><h3>이건 내가 생각했던 예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h3><h3><br /></h3><h3>"아니,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속상한 건 넌데." 이런 말을 기대한 건 그러니까 나의 과분한 욕심이었다. </h3><h3><br /></h3><h3>다사다난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폰 구출에 다시 나섰다. 이튿날엔 그 칼치 아저씨 자리에 만두 닮은 아주머니가 있었다. 머리 색은 전혀 문제가 안 되었고 철컥철컥 사진도 무난히 찍고 동성구 행정청으로 가서 임시 신분증을 받아들고 왕푸징으로 룰루랄라 달려가서 카드번호도 받았다. </h3><h3><br /></h3><h3>그 모든 걸 끝내고 나니 점심이다. 임시 신분증을 들고 은행에 가서 기계가 삼켜버린 카드도 꺼내왔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그 순조로움이 너무너무 눈물나게 고마워졌다. </h3><h3><br /></h3><h3>카드를 넣고 폰을 켰다. 나 없는 하루 새 폰 속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를 애타게 찾는 이가 있을까봐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h3><h3><br /></h3><h3>그렇게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h3><h3><br /></h3><h3>4월은 정말 다사다난한 달이었다.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 같다.</h3><h3><br /></h3><h3>뭐 따지고 보면 모든 게 소홀했던 내 탓이지만 이걸 다 운으로 밀어버리면 나는 조금 더 즐거울 수 있다. 내 탓을 뼈저리게 하고 있노라면 "나는 왜 사나?", "나 같은 게 살아서 뭐 할까?" 라는 깊고 깊은 자책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다.</h3><h3><br /></h3><h3>적당히 남탓도 하고, 또 적당히 운 탓도 하면 조금 더 편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적고 나니 이제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h3><h3><br /></h3><h3>신분증이랑 폰 같이 분실해서 임시 신분증으로 폰 번호 받아야 할 때는 왕푸징 이동통신사로 호구부를 들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알게 된 고급정보이다. 이 정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 아마 이런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나 말고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공유한다. 쓸모가 있길 바란다. 아니아니, 쓸 모가 없는 편이 좋겠다. 아무래도. </h3><h3><br /></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