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건 전화

ʚ엔젤ɞ

<h3>♠ 잘못 건 전화.. ♠ </h3><h3> </h3><h3>지금은 아니지만...</h3><h3>그때는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였다. </h3><h3> </h3><h3>시작은 </h3><h3>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됐다.</h3><h3>친구에게 건다는 게 그만 엉뚱한 번호를 눌렀다. </h3><h3>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h3><h3> </h3><h3>&quot;여보세요&quot; </h3><h3> </h3><h3>&quot;아빠~?&quot; </h3><h3> </h3><h3>아마도 내 딸 현정이와 비슷한 또래로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는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h3><h3> </h3><h3>&quot;넌 아빠 번호도 모르니? </h3><h3>저장이라도 하지 !&quot; </h3><h3> </h3><h3>괜히 내 딸 같아서 </h3><h3>핀잔을 준 건데 ... </h3><h3> </h3><h3>&quot;아빠 바보...</h3><h3>나 눈 안 보이잖아!&quot; </h3><h3> </h3><h3>순간 당황했다. </h3><h3>아! 장애있는 아이구나 </h3><h3> </h3><h3>&quot;엄만 요 앞 슈퍼가서</h3><h3>대신 받은 거야 </h3><h3>아빠 언제 올거야?&quot; </h3><h3> </h3><h3>너무 반기는 말투에 </h3><h3>잘못 걸렸다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h3><h3> </h3><h3>"아빠가 </h3><h3>요즘 바빠서 그래&quot; </h3><h3> </h3><h3>대충 얼버무리고 </h3><h3>끊으려 했다. </h3><h3> </h3><h3>&quot;그래도 며칠씩 안 들어오면 어떡해?</h3><h3>엄마는 베개싸움 안 해</h3><h3>준단 말야.&quot; </h3><h3> </h3><h3>&quot;미안~ 아빠가 바빠서 그래!</h3><h3>일 마치면 들어갈게&quot; </h3><h3> </h3><h3>&quot;알았어 그럼 오늘은 꼭 와 </h3><h3>끊어~&quot; </h3><h3> </h3><h3>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됐다. </h3><h3>애가 실망할까봐 그랬지만 결과적으론 거짓말한 거니까, </h3><h3>큰 잘못이라도 한 것 처럼 </h3><h3>온종일 마음이 뒤숭숭했다. </h3><h3> </h3><h3>그날 저녁, 전화가 울린다. </h3><h3>아까 잘못 걸었던 그 번호... </h3><h3>왠지 받기 싫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h3><h3> </h3><h3>&quot;여~~ 여보세요?&quot; </h3><h3>침묵이 흐른다. </h3><h3> </h3><h3>&quot;여보세요&quot; </h3><h3> </h3><h3>다시 말을 하니 왠 낯선 여자가... </h3><h3> </h3><h3>&quot;죄~ 죄송합니다.</h3><h3>아이가 아빠한테서</h3><h3>전화가 왔대서요&quot; </h3><h3> </h3><h3>&quot;아~ 네... 낮에 제가</h3><h3>전화를 잘못 걸었는데 </h3><h3>아이가 오해한 거 같아요.&quot; </h3><h3> </h3><h3>&quot;혹시 제 딸한테</h3><h3>아빠라고 하셨나요?</h3><h3>아까부터 아빠 오늘 온다며 </h3><h3>기다리고 있어서요&quot; </h3><h3> </h3><h3>&quot;죄송합니다 엉겁결에...&quot; </h3><h3> </h3><h3>&quot;아니에요. </h3><h3>사실 애 아빠가 한달 전에</h3><h3>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셧어요.</h3><h3>우리 딸이 날 때부터 </h3><h3>눈이 안 보여서 </h3><h3>아빠가 더 곁에서 보살피다보니</h3><h3>아빠에 대한 정이 유별나네요&quot; </h3><h3> </h3><h3>&quot;아~ 네! 괜히 제가~...&quot; </h3><h3> </h3><h3>&quot;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h3><h3>제 딸한테</h3><h3>아빠 바빠서 오늘도 못 가니 </h3><h3>기다리지 말라고 말씀 좀 해주실 </h3><h3>수 있나요?&quot; </h3><h3> </h3><h3>&quot;그냥 그렇게만 하면</h3><h3>될까요?&quot; </h3><h3> </h3><h3>&quot;네 부탁 좀 드릴게요.</h3><h3>잠도 안 자고 기다리는 게 </h3><h3>안쓰러워서요.</h3><h3>죄송합니다. </h3><h3>참 애 이름은 '지연'이에요.</h3><h3>유지연! </h3><h3>5분 뒤에 전화 부탁드릴게요&quot; </h3><h3> </h3><h3>왠지 모를 책임감까지 느껴졌다. 5분 뒤에 전화를 걸자 </h3><h3>아이가 받는다. </h3><h3> </h3><h3>&quot;여보세요.&quot; </h3><h3> </h3><h3>&quot;어 아빠야~ 지연아!</h3><h3>뭐해?&quot; </h3><h3> </h3><h3>&quot;아빠 왜 안와? </h3><h3>아까부터 기다리는데&quot; </h3><h3> </h3><h3>&quot;응~ 아빠가 일이 생겨서 </h3><h3>오늘도 가기 힘들 거 같아&quot; </h3><h3> </h3><h3>&quot;아이~ 얼마나 더 기다려?</h3><h3>아빤 나보다 일이 그렇게 좋아?&quot; </h3><h3> </h3><h3>아이가 갑자기 우는데... </h3><h3>엉겁곁에... </h3><h3> </h3><h3>&quot;미안 두 밤만 자고 갈게&quot; </h3><h3> </h3><h3>당황해서 또 거짓말을 해 버렸다. </h3><h3> </h3><h3>&quot;진짜지? 꼭이다!</h3><h3>두밤자면 꼭 와야 해! 헤헤~&quot; </h3><h3> </h3><h3>잠시 뒤에 아이 엄마에게서 </h3><h3>다시 전화가 왔는데 너무 고맙단다. </h3><h3> </h3><h3>아이한테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 없어 이틀 뒤에나 간다고 했다니까</h3><h3>알아서 할테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 줬다. </h3><h3> </h3><h3>그리고 이틀 뒤, </h3><h3>이젠 낯설지 않은 그 번호로 전화가 왔다. </h3><h3> </h3><h3>&quot;아빠!&quot; </h3><h3> </h3><h3>울먹이는 지연이 목소리 </h3><h3> </h3><h3>&quot;아빠! 엄마가 아빠 죽었대. </h3><h3>엄마가 아빠 이제 다시 못 온대... 아니지? </h3><h3>이렇게 전화도 되는데 아빠 빨리 와 엄마 미워 거짓말이나 하고... </h3><h3>혹시 엄마랑 싸운 거야? </h3><h3>그래서 안 오는 거야? </h3><h3>그래도 지연이는 보러 와야지 </h3><h3>아빠 사랑해 얼른 와~&quot; </h3><h3> </h3><h3>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서 </h3><h3>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있을 수밖에 없었다. </h3><h3> </h3><h3>&quot;지연아 엄마 좀 바꿔 줄래?&quot; </h3><h3> </h3><h3>전화를 받아 든 지연이 엄마는 </h3><h3>미안 하다며 애가 하도 막무가내라 사실대로 말하고,</h3><h3>전화걸지 말랬는데도 저런단다. </h3><h3> </h3><h3>그말에... 딸 둔 아빠로써</h3><h3>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제안을 했다. </h3><h3> </h3><h3>&quot;저기~~ 어머니! </h3><h3>제가 지연이 좀 더 클 때까지 </h3><h3>이렇게 통화라도 하면 안 될까요?&quot; </h3><h3> </h3><h3>&quot;네? 그럼 안 되죠. </h3><h3>언제까지 속일 수도 없고요&quot; </h3><h3> </h3><h3>&quot;지연이 몇 살인가요?&quot; </h3><h3> </h3><h3>&quot;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quot; </h3><h3> </h3><h3>&quot;아~ 네 저도 딸이 하나 있는데 3학년 이거든요. </h3><h3>1학년이면 아직 어리고 장애까지 있어서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을테니까 제가 1년 쯤이라도 통화하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h3><h3>안 될까요?&quot; </h3><h3> </h3><h3>&quot;네? 그게 쉬운 게 아닐텐데&quot; </h3><h3> </h3><h3>&quot;제 딸 보니까 1학년 2학년 3학년</h3><h3>한 해 한 해가 다르더라고요. </h3><h3>좀 더 크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아요&quot; </h3><h3> </h3><h3>오히려 내가 지연이 엄마한테 </h3><h3>더 부탁을 했다. </h3><h3>그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연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h3><h3>그리고 그 뒤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h3><h3>보름에 한번쯤 지연이와 통화를 했다. </h3><h3> </h3><h3>&quot;아빠 외국 어디에 있어?&quot; </h3><h3> </h3><h3>&quot;사우디아라비아&quot; </h3><h3> </h3><h3>&quot;거기서 뭐하는데?&quot; </h3><h3> </h3><h3>&quot;어~ 빌딩짓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지&quot; </h3><h3> </h3><h3>&quot;아~ 거긴 어떻게 생겼어?&quot; </h3><h3> </h3><h3>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노동자로 몇해 다녀오신 적이 있어서 </h3><h3>그때 들은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려 </h3><h3>지연이한테 말해줬다.</h3><h3> </h3><h3>그렇게 한 게 </h3><h3>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h3><h3>내 딸 현정이 선물살 때 </h3><h3>지연이 것도 꼭 챙겨서 택배로 보냈고... </h3><h3>그렇게 지연이의 가짜 아빠 노릇을 </h3><h3>전화로 이어나갔다. </h3><h3> </h3><h3>&quot;당신 어린애랑 요즘 원조교제 같은 거 하는 거 아냐?&quot; </h3><h3> </h3><h3>한때 아내에게 이런 오해를 받을 만큼 자주 통화도 했다. </h3><h3> </h3><h3>현정이는 커 가면서... </h3><h3> </h3><h3>&quot;아빠 과자 사와, 아이스크림 피자~</h3><h3>아빠 용돈 좀~~&quot; </h3><h3> </h3><h3>늘 그런 식인데 </h3><h3>지연이는... </h3><h3> </h3><h3>&quot;아빠 하늘은 동그라미야 네모야? </h3><h3>돼지는 얼마나 뚱뚱해? </h3><h3>기차는 얼마나 길어?&quot; </h3><h3> </h3><h3>등등...</h3><h3>사물의 모양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h3><h3>그럴 때면 안쓰러워 더 자상하게 설명하곤 했지만 가끔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h3><h3> </h3><h3>3년쯤 지난 어느날, </h3><h3>지연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h3><h3> </h3><h3>&quot;어~ 지연아 왜?&quot; </h3><h3> </h3><h3>&quot;저기~ 나 사실은... </h3><h3>작년부터 알았어!</h3><h3>아빠 아니란거&quot; </h3><h3> </h3><h3>&quot;.....&quot; </h3><h3> </h3><h3>뭐라 할 말이 없었다. </h3><h3> </h3><h3>&quot;엄마랑 삼촌이 얘기하는 거 들었어 진짜로 아빠가 하늘나라 간 거&quot; </h3><h3> </h3><h3>&quot;그그그~~ 그래 미안~ </h3><h3>사실대로 말하면 전화통화 못할까봐 그랬어&quot; </h3><h3> </h3><h3>&quot;근데 선생님이 4학년이면 고학년이래~!</h3><h3>이제부터 더 의젓해야 된댔거든&quot; </h3><h3> </h3><h3>&quot;지연아! </h3><h3>근데 진짜 아빠는 아니지만 </h3><h3>좋은 동무처럼 통화하면 안 될까?</h3><h3>난 그러고 싶은데 어때?&quot; </h3><h3> </h3><h3>&quot;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quot; </h3><h3> </h3><h3>&quot;그럼 당연하지&quot; </h3><h3> </h3><h3>그 뒤로도 우린 줄곧 통화를 했다.</h3><h3>다만 이제 아빠라고는 안 한다. 그렇다고 아저씨도 아니고 </h3><h3>그냥 별다른 호칭없이 이야기하게 됐는데 솔직히 많이 섭섭했다. </h3><h3> </h3><h3>그래도 늘 아빠로 불리다가 한순간에 그렇게 되니까... 그렇다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뭐하고... </h3><h3> </h3><h3>시간이 흘러 지연이가 맹학교를 졸업하는 날이 됐다. </h3><h3> </h3><h3>전화로만 축하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h3><h3>몇해 동안 통화하며 쌓은 정이 있는데 그날만은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h3><h3> </h3><h3>목욕도 가고 가장 좋은 양복도 차려 입고 한껏 치장을 했다. </h3><h3>비록 지연이가 보지는 못하지만 </h3><h3>그래도 처음 만나는 날인데, </h3><h3>그 옛날 아내와 선보러 갈 때보다 더 신경쓴 거 같다. </h3><h3> </h3><h3>꽃을 사들고 들어간 졸업식장에서 </h3><h3>지연이 엄마를 처음 만났다.</h3><h3>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씩 하시는데 왠지 쑥스러웠다. </h3><h3> </h3><h3>잠시 후, </h3><h3>졸업장을 받아든 아이들이 </h3><h3>하나 둘 교실에서 나오는데</h3><h3>단박에 지연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h3><h3>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 </h3><h3>유독 지연이만 눈에 들어왔으니까 </h3><h3> </h3><h3>&quot;지연아!&quot; </h3><h3> </h3><h3>지연이 엄마가 딸을 부른다. </h3><h3>그러자 활짝 웃으며 다가온 지연이한테... </h3><h3> </h3><h3>&quot;지연아! 누가 너 찾아오셨어 맞춰봐&quot; </h3><h3> </h3><h3>하며 웃자 지연이는... </h3><h3>&quot;누구?&quot;하며 의아해 할 때 </h3><h3>꽃다발을 안겨주면서 </h3><h3> </h3><h3>&quot;지연아! 축하해&quot; </h3><h3> </h3><h3>그러자 갑자기 지연이가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h3><h3>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연이 엄마도 나도 어쩔 줄 모르는데 지연이가 손을 더듬어 나를 꼭 안았다. </h3><h3> </h3><h3>&quot;아빠! </h3><h3>이렇게 와줘서 </h3><h3>너무~~ 너무 고마워&quot; </h3><h3> </h3><h3>그 말을 듣는 순간 </h3><h3>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h3><h3> </h3><h3>난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나 착하고 이쁜 딸을 둘이나 둔... </h3><h3>너무 행복한 아빠였음을 </h3><h3>그날 알게 됐다. </h3><h3> </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