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p>열 살 때 일이다. <br>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br>회색털에 눈이 똥그랗고 털이 반들반들한 강아지였다. <br>"이리 온."<br>하고 부르면 총알같이 달려와 꼬리를 흔들고, <br>"왼발 줘봐." <br>하면 왼발 주고 <br>"오른발 줘봐"<br>하면 오른발을 펼쳐진 내 손바닥우에 올려놓던 강아지였다. <br>학교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 내 발자국소리를 들었는지 저만치 멀리서부터 뛰여왔고, 친구집으로 놀러가도 항상 따라오던 강아지였다. 나는 좁쌀에 감자를 섞어 먹던 그 시절에 늘 내 몫의 밥을 조금씩 남겨서 옥수수가루와 풀을 섞어 끓여서 만든 개죽에 넣어주곤 했다.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자린고비인 아버지도 내가 강아지를 이뻐하는 마음에 감동이라도 받은건지 그것만은 뭐라하지 않았다. <br>강아지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허리께가 늘씬해지면서 제법 우람한 개로 커갔다. 나는 앉은 키가 나만한 강아지를 껴안고 무수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늘그막에 낳은 딸이라고 친구들이 아버지를 보고 너네 할아버지냐 햇을 때 창피했던거며, 그때 나보다 여섯 살이상인 오빠가 몰래 담배를 피웠는데 비밀로 해주긴 했어도 어쩐지 나쁜일을 숨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한데 그렇다고 어른들한테 말하면 고자질이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심히 혼란스럽다는거며, 새로 부임되여오신 잘생긴 체육선생님이 나를 무지 이뻐한다는거며, 그게 너무 좋은데 친구들앞에서는 아닌척 한다는거며, 아무한테도 터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br>그러면 내 말에 개는 눈을 끔뻑끔뻑거렸고. 나는 넌 알아도 못듣지? 하면서 툭 이마빡을 쥐여박군 했다. <br>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그 개가 보이지 않았다. <br>"촌에서 청년활동이 있는데 우리 개를 사갔다. 아마 지금쯤 잡아서 가마에 끓이고 있을걸."<br>언니가 내 눈치를 살피며 그런 말을 해주었다.<br>툭.<br>내 어깨에서 국방색의 천가방이 미끄러 떨어졌다.<br>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이란 이런것인가.<br>나는 더없이 비통한 마음으로 청년활동이 있다는 아래집 박철이네 마당께로 다가가 자잘한 널판자로 된 울타리너머로 그 집 마당을 들여다보았다.<br>박철이네 집 마당은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영이네 엄마, 부녀주임, 동춘이네 아버지도 보였다. <br>마당에 임시로 돌을 막아 부뚜막을 해놓고 거기에 커다란 솥을 걸어놓았는데 장작이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빨간 다라이에 한가득 고기덩어리가 담겨져 있었다. 영이엄마가 가마두껑을 열자 김이 한꺼번에 피여올랐다. 다리, 갈비쪽. 차마 우리 집 개라고 믿을수 없는 그것들이 하나씩 가마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불에 그슬려 눈께가 시커멓게 된 대가리가 건져올려졌을 때, 나는 차마 그것을 마저 보지 못하고 돌아서서 강으로 달렸다.<br>믿을수 없었다.<br>저 사람들은, 책에서 보던 나쁜 사람들이 아니였다. 길에서 만나면 나를 이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삶은 옥수수를 쥐여주던 사람들이였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였고,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였다.<br>그런 사람들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개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불로 개의 털을 그슬리고 내장을 빼고 각을 떠버렸다는 것, 그 행위들을 심지어 아무런 죄책감 없이 웃으며 행하고있다는 것, 맛있는 한끼 식사가 누군가에겐 고통이 된다는걸 전혀 모른다는 것, <br>열 살짜리 소녀에게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였다.<br>강물속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들여다보면서 해가 지도록 강가에 하염없이 앉아 고민했던 그 저녁, 나는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br>세상은 이해할수 없는것들이 너무 많고, 온통 모순덩어리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저녁이였다.<br>나이를 먹고 점차 어른이 되면서 나는 이 모든 것은 생존의 법칙이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 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또한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라는것도 알게 되었다. 많은걸 안다는건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의미라는것도 동시에 알아버렸으니 말이다.<br>세상이 내게 보여주는 모순속에서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던 많은 시간들, 그 시간들을 거쳐가면서 나는 늘 마음이 헛헛했다. 그 헛헛함은 달달한 음식으로도, 우정으로도, 사랑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br>내 글쓰기는 그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의 헛헛함을 위한 것, 그러므로 내 글쓰기는 지극히 개인적인것이라고 해야겠다. 거창한 어떤것도 아닌, 지극히 내 자신의 내면의 충일을 위한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전부의 이유이다. <br>첫 소설을 시작해서부터 꼭 십년이 된다. 십년동안 쭉 글을 써온건 아니다. 소설이 밥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꿈과 일상사이에서 모순에 빠지고 아파하는 수많은 선배님들과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밥을 버는 일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를 던져왔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해 육체적으로 아픈 시간도 있었다.<br>그 시간을 거쳐 이제 나는 안다. 정신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웨치는건 참으로 철없던 시간의 오기같은것이라는 것, 육체가 무너지면 정신은 손가락사이로 새여나가는 모래알보다 더 빨리 무너져버린다는 것, <br>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분이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할 수가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아. 저렇게 추악한 사람의 내면에도 아주 작은 빛은 있어 아름다운 글도 쓸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br>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육체적으로 많이 피폐해져있었고 따라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던 시기였다. 어떤것에도 집중할수 없었고 어떤것도 객관적으로 바라볼수 없었던 시기였다. 몸만 회복되면 글같은건 안써도 무관하다고 생각했다.<br>그러나, 몸이 회복되고 일말의 여유가 생기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아. 이제 소설을 쓸수 있겠구나. 였으니. 아마도 나는 글을 써야 되는 사람인가보다.<br>글을 쓰다보면 정말 난 재능이 꼬물만치도 없는가보다 하면서 한없이 절망하는 시간이 온다. 더듬더듬 어둠속을 짚어나가다보면 가까스로 한편의 문장을 완성하기도 한다. 그런걸 보면 썩 문학적인 재능이 있는건 아닌가보다는 스스로의 평을 내린다.<br>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면 그렇게 뿌듯하고, 글쓰는 동료와의 대화보다 더 신명나는 일이 없는걸 보면 아마도 나는 글쓰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걸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br>오랜 시간의 발자국을 짚어올라가, 내 열 살 소녀의 가슴을 온통 치런치런하게 했던 그 강아지를 다시 안아본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내 강아지를 일용할 양식으로 간주했던 그분들도 너그럽게 안아보기로 한다. <br>삶은 본래 그러한 것을. <br>모든 사물은 존재 자체가 모순인 것을.<br>내 글쓰기는 그 모순투성이인 삶을 향해 던지는 내 방식의 대화이다. <br>부디, 나와 삶 사이에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할뿐이다. <br>그리하여, 나는 덜 헛헛할테니까. </p><p><br></p><p>김경화 </p><p><br></p><p>2017년 12. 7일 연길에서 .</p><p>2018년 장백산 1기. <br></p></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