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당신의 열매

김경화

<h3><p>가을산을 내려오는 길에서 이름모를 빨간 열매를 만났다. 사선으로 내리쬐는 가을해살이 열매의 뒤편을 밝혀 마치 조명이라도 켠 듯 열매는 불타오른다. </p><p>"이 열매 이름이 뭐지?" </p><p>"글세, 말오줌?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아마 그렇게 부르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p><p>"열매는 이쁜데 이름은 별루네 하하." </p><p>"이쁘면 되죠. 이름이 대순가요. 호호" </p><p>우리는 아름다운 빨간 열매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겨 시끄럽게 떠들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선배는 대작이라도 건지려는 듯 신중하게 각도를 잡아보고 또 머리를 갸우뚱하고 다시 각도를 잡아본다. </p><p>"핫, 건졌다." </p><p>호기롭게 내민 선배의 핸드폰화면에는 배경을 최대한 죽이고 빨간 열매를 살린 사진 한장이 떠있다. 눈부신 빨간 열매, 이름은 그닥 이쁘지 않지만 외형은 간사할 정도로 이쁜 열매가 막 사랑을 시작한 청춘남녀의 심장처럼 타오르고 있다. </p><p>열매는 결실을 맺는다는 뜻이다. </p><p>눈부신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잠시 생각해본다. </p><p>모든 열매가 오기까지의 멀고 긴 려정을 짚어본다. </p><p>싹이 트고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에 작은 열매 하나가 빼꼼히 돋아난다. 해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맞고 비를 맞고 어둠이 내리면 별을 바라보고 작은 소망을 빌면서 열매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고 단단히 영글어간다. </p><p>해빛도 바람도 열매를 재촉하지 않는다. 열매가 스스로 몸을 키우고 영글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필요한 영양을 스스로 흡수하게끔 가슴을 열어 자신을 내주고 지켜볼 뿐이다. 가장 아름다운 열매는 그렇게 해빛과 바람의 느긋한 기다림 속에 스스로 자란다. </p><p>송나라 때, 어떤 농부가 벼모를 심어놓고 빨리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에 벼모를 잡아당겨 결국 벼모가 다 죽었다는 우화가 있다. 요즘 아이 키우는 부모들을 보면 생각나는 우화다. 5살에 영어학원을 보냈더니 벌써 늦었더라면서 후배는 울상을 짓는다. 아직 우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한테 영어며 바이올린, 태권도를 비롯해 무려 여덟 개의 학원을 팽이돌 듯 돌아치게 하면서도 또래의 아이 누구보다 뒤진다고 울상짓는 후배를 보며 가슴이 아리다. 후배의 아이가 어쩐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p><p>내 아이가 룡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나부터도 내 아이가 모든 면에서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진 건 아닐가 괜히 조바심을 냈었다. 비슷한 시기에 태여난 다른 아이들은 기여다니는데 아직 기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속을 졸이기도 했고 다른 아이는 걸어다니는데 아직 발자국도 제대로 못떼는 아이 때문에 괜히 밤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p><p>그 뿐인가. </p><p>내 아이가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어떤 것 하나 부모의 속을 들었다 놓지 않는게 있을가. 내 아이는 나의 열매라고 부모들은 생각한다. 아이의 성장과정에 부모는 손에 땀을 쥐고 매순간을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내 뜻대로 되여주지 않는 아이를 잡아당겨서라도 뭔가 되게끔 만들고싶어 안절부절한다. </p><p>그렇게 빨리빨리 자라서 어디쯤 닿아야 할지, 그 것이 과연 내 아이의 자리이고 내 아이라는 열매가 빛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자리인지 사실은 부모도 막연하다. 자신도 확실하지 않은 것을 무작정 아이한테 강요하고 벼모를 잡아당겨 키우 듯 아이한테 이 것 저 것 주입시키고 강요한다. </p><p>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의 부모님은 자식한테 어떤 강요도 제한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자랐다. 녀자아이지만 산으로 강으로 뛰여다니며 마음껏 놀았고 어떤 아이와 어울리고 어떤 것을 해도 제재를 하지 않았다. </p><p>나의 도를 넘은 간섭과 아이의 반항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내려앉는 나 자신이고보면 넉넉하게 지켜보면서 자식을 키운 부모님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p><p>나라는 열매는 세상의 기준으로 썩 괜찮은 열매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자유로운 부모 아래에서 원하는대로 성장한 덕분에 후회나 유감이 없다. 좋은 추억을 많이 갖고있고 나 스스로 무엇이든 해온 경험이 나를 어떤 길에서도 주저하지 않게 한다. </p><p>내 열매에게도 기회를 주자. </p><p>해빛과 바람처럼 가슴을 활짝 열고 내 열매가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주자. 내 열매가 스스로 성장하고 영글어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자. 괜한 조바심으로 자칫 내 열매가 설익고 일찍 자신을 죽이게는 하지 말자. 내 열매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감당하게 하고 자신의 상처 앞에 의연할 수 있도록 단단해지거나 혹은 한없이 부드러워질 기회를 주자.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는 온전해질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다. </p><p>혹여, 당신도 우화 속의 주인공처럼 당신의 열매를 억지로 키우려고 조바심을 내며 밤잠을 설치고 있지는 않는지? </p><p>혹여. 당신이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가을을 붉게 물든 정열의 빨간 열매를 당신께 보여주고 싶다. 이 아름다운 열매가 스스로 익어 자신만의 자리에서 이토록 빛나기까지, 작은 열매를 향한 해빛과 바람과 비방울의 굳은 믿음과 기다릴줄 아는 사랑을 당신도 한번 눈을 감고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p><p>이제, 우리 모두 자신의 열매를 돌아볼 시간이다. </p><p>나는 아름다운 빨간 열매와 눈을 맞춘다. </p><p>그 것은, 가을의 해살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p><p><br></p><p>김경화. <br></p><p>2017년 12월. 연변일보 </p></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