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3><p><br></p><p>당신은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입니다. </p><p>빨갛고 노오란 원색으로 당신은 온통 물들어있습니다. 이 가을을 당신의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당신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당신은 커다란 감동입니다. 괜히 누군가의 마음을 한없는 설레임으로 울렁이게 합니다. </p><p>나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눈이 부셔 잠간 넋을 잃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당신은 이 토록 아름다운데 나는 왜 이다지 초라할가요. 당신은 이토록 풍요로운데 나는 왜 빈껍데기만 남은듯 허전할가요. 서른아홉의 나는 텅 빈 가슴을 그러안고 하루에도 몇번씩 울컥울컥 눈물을 쏟습니다.</p><p>세상은, 무엇인가를 얻고 싶으면 나를 버리라고 합니다.</p><p>앞만 보고 달리라고 합니다.</p><p>그 말을 믿었습니다. 닫는 말에 채찍질하듯 달렸습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옆을 곁눈질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가는 내 육신을 경멸하듯 쓴웃음으로 대하며 그렇게 버텨왔습니다. 버티다 보면 버텨진다는 호기로운 말을 내뱉으며 말간 눈이 흐려지도록 버텨왔습니다. 그 끝에 있을 망연한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달려왔습니다. 달리다 보면 정말로 그 끝에 무엇인가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p><p>하지만 지금 나는 텅 빈 들판에 빈손으로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p><p>나를 버리고 달려온 시간들이 나한테 준 것은 비여버린 마음과 덜컥거리는 고장난 기계 같은 육신과 텅 빈 마음 뿐이였습니다. 내가 바라왔던 망연한 무엇은 환영이였을 뿐입니다. 나를 유혹했을 뿐 아무 것도 던져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없습니다. 나를 온전히 죽여가며 산 시간은 조금씩 나를 소멸해 마침내 나는 사라졌습니다. 누가 육체보다 중요한 건 정신이라고 했던가요? 육체가 고장 나는 순간, 정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봄이 되면 순식간에 녹아버리던 내 고향 개울물의 얼음덩어리보다 더 빨리 무너져버렸습니다. 손을 뻗어 잡을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멀리멀리 가버렸습니다. </p><p>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내 안과 밖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가 어디를 가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p><p>바람이 부는군요. </p><p>당신의 손 같은 잎들이 술렁이며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p><p>나를 바라봐.</p><p>내 손을 잡아.</p><p>나는 나를 버렸는데 왜 아무 것도 얻어지지 않는 걸가요.</p><p>나는 울먹이며 당신께 간절히 묻습니다.</p><p>당신의 손과 내 손 사이에 구멍난 통로라도 있는 걸가요? 무엇인가 당신의 몸 안에서 내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는듯 가슴이 뭉클합니다. </p><p>당신은 내게 서뿌른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p><p>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p><p>아침이면 당신은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행복하게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여났습니다. 해빛에 몸을 열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 줄 알았습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가며 당신을 키워갔습니다. 굳은 땅 속으로 뻗어가는 당신의 뿌리들은 때론 돌멩이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멈출 줄도 알았고 돌아갈 줄도 알았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길게 뻗어갔습니다. </p><p>한줄기 바람에 실려온 꽃향기를 맡으며 당신은 웃을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그 사소한 순간의 행복들 속에서 당신의 삶을 꽃피웠습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당신의 잎들을 푸르게 물들였고 이제 빨갛고 노란 잎을 하늘 높이 피워올려 이 가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p><p>당신은 내게 말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온전한 나여야 누군가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해줍니다. 삭막해서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이 더욱더 삭막해지는 풍경이여서는 안되지 않겠냐고 넌지시 말을 걸어옵니다. 나를 마주하고 선 누군가에게 가슴 속에 먼지 한점 일어나는 그런 풍경이면 안되지 않겠냐고 말해줍니다.</p><p>눈물이 끝내 눈확을 타고 흘러나옵니다. </p><p>나는 내가 버렸던 나를 만납니다. </p><p>한없이 미안해집니다. </p><p>나는 버렸던 나를 다시 보듬어안습니다. </p><p>가슴이 먹먹해집니다.</p><p>당신께 고백합니다.</p><p>이제, 나는 어느 순간에도 나를 버리지 않겠습니다.</p><p>내가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도 당신처럼 누군가의 근사한 풍경이 되겠습니다. </p><p>나는 흐느적거리는 내 육신에 물을 주고 정성으로 보듬겠습니다. </p><p>저 멀리에 있는 희미한 것들을 쫓아 지금의 나를 죽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온전히 사랑하며 내 삶을 뜨겁게 사랑하겠습니다. </p><p>나라는 존재만으로 향기가 되고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p><p>나를 바라보는 모든 풍경들에게 근사한 한폭의 풍경이 되고저 합니다.</p><p>내가 어찌 나만의 풍경일 수가 있겠습니까.</p><p>당신이 어찌 당신만의 풍경일 수가 있겠습니까.</p><p>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다운 풍경이여야 합니다.</p><p>내가 당신을 바라보며 나도 누군가의 근사한 풍경이 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였듯이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당신처럼 아름다움을 줄 수 있는 한폭의 풍경이 되고저 합니다. 내가 당신 앞에 서서 이렇게 마음을 열고 내 속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충일을 얻듯이 나 또한 누군가가 샘물처럼 차오르는 충일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풍경이고저 합니다.</p><p>나는 천천히 손을 올려 내 얼굴의 물방울을 닦습니다.</p><p>해빛이 찬연합니다. 바람이 불고 멀리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언덕 너머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풀잎 아래에서는 작은 벌레들이 소곤거리는 듯합니다.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가슴에 채워가며 나는 조금씩 조금씩 차오릅니다.</p><p>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p><p>그런 나는 이제, 한폭의 수채화 같은 당신의 풍경입니다.</p><p><br></p><p>김경화 </p><p><br></p><p>2018. 1.24 길림신문 </p></h3>